이긴 것 같다가도 질 것 같은 불안감이 맴돌면 그게 마치 하나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졌다고 느껴졌을 때 드는 박탈감과 허무 그리고 열패감은 크다. 그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진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인생을 살아보면 언제나 내 생각대로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건 나의 문제, 내 쪽에서 일어난 오류로 인한 실수와 실패다. 그러나 내가 진 상황이 나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억울함이 몸 안에서 꿈틀 되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오컴의 면도날에 대입하여 하나씩 소거한 다음에 다시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억울하기에 할 수밖에 없다.

엑스맨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 브라이언 싱어가 맡은 1, 2편은 아주 잘 만들었다. 영화 속 정부는 매그니토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그냥 매그니토라서 그렇다. 매그니토로 태어났기 때문에 싫어한다. 매그니토 같은 별종이 엘리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저 싫은 것이다.

‘왜’가 아니라 ‘너’라는 이유로 싫어한다.

엑스맨에 나오는 돌연변이들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양한 인종, 질병에 노출된 사람, 사고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런 모습이기에 싫어한다. 엑스맨 1편에는 잊을 수 없는 대사가 나온다. 트럭에서 로그가 울버린에게 아다만티움의 갈퀴가 손을 뚫고 나올 때 아프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대답 한 “매번”이라는 대사였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매번 힘들고 지치지만 바로 털고 일어나서 맞서야 한다. 덕분에 더욱더 결속하고 뭉쳐야 하는 힘을 얻었다. 나의 모친은 평생 우파였다. 평생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던 모친이 어제는 뉴스를 꼼짝하지 않고 보고 있다가, 이건 판사들이 법을 어기는 거라며 이번에는 이재명을 찍겠다고 했다. 저들은 그저 이재명이기에 안 된다는 것이다. 어제 이후 다시 뭉쳐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후보가 우리를 믿고 가겠다는데 우리가 쓰러질 필요가 있나.

여기(어제)는 비가 온다. 이전에는 비가 내리면 사람들에게 하늘이 존재를 알리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문학적인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근래에는 비가 내리면 모든 게 귀찮다. 특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쏴아 쏟아지는 비에 비해서 더 옷을 젖게 만드는 것 같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희망 따위 여지를 두지 않고 쓸어버리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유리창에 물방울로 붙어 떨어지기 일보직전 절망 끝에 보이는 희망 같은 거? 비가 오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는데, 몇 달 동안 폭력을 많이 본 것 같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찮은 한 개인의 힘을 보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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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다가 하늘에 뜬 달을 봤다. 달은 언제나 저기 저 하늘에 외롭지만 쿨하게 떠 있다. 떨어지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저 멀리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지도 않은 채 저기에 뜬 채 내가 바라보면 고독하게 나를 바라봐준다.

달은 늘 같은 모습일 테다.

400년 전의 달도 지금의 달이었다.

300년 전의 사람도 지금 내가 보는 달을 고개를 꺾어 바라보았다. 윤동주도 감옥에서 조그맣게 난 창으로 보이는 달을 보며 ‘달을 쏘다’를 썼다.

그 달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란 몹시도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기분이다.

달은 그렇게 오래 전의 사람들과 나를 이어준다. 달은 항상 똑같은데 매일 다르게 보인다. 그건 달과 나 사이에 있는 불순물 때문이다.

가스층이 없는 맑은 날은 진하게 보이더니 습도가 높고 대기에 먼지가 많으면 달은 뿌옇게 보인다.

구름이 하늘에 많은 날은 달이 가려지기도 하고, 아주 흐리게 보인다. 저렇게 쿨하게 떠 있으려면 달은 꽤나 힘들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일큐팔사에도 나온다.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고 든 생각을 한다. 어느 날 1984년에서 1q84년으로 와 버린 아오마메가 매일 달을 쳐다본다. 요즘 일큐팔사를 다시 읽고 있지만 참 재미있다. 읽을 맛이 난다.

그 분위기, 주위의 건물이나 사건들이 상상력으로 떠오른다. 노부인이 살고 있는 주택의 모습도, 심지어 아오마메의 얼굴도 떠오른다.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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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 거대해진 판타지 액션을 선 보인다. 시즌 1은 학생들의 영역 안에서 이야기가 흘렀다면 시즌 2에서는 학생의 영역을 벗어난, 범죄 집단을 꾸리는 연합의 백진과의 대결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보다 보면 액션이 마치 캡아의 시빌 워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장고와 연합이 비가 오는 광장에서 서로 와하며 달려들어, 서로 패싸움으로 붙을 때는 여러 영화의 결투 장면이 쓱 지나간다.

몰입이 잘 되는 점이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괜히 나와서 다치고, 아껴주고, 눈 맞고, 러브러브 모드 같은 건 전혀 쓸모없다. 이런 모습이 전혀 없어서 몰입이 최고다. 단지 시은 엄마로 나오는 공현주도 전혀 필요 없는데 괜히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 1에서 범석은 유학을 가고 수호는 뇌사 상태고, 범석의 양아버지인 국회의원이 시은을 퇴학시키려고 했으나 범석이 쓰러진 수호를 마구 밟는 장면이 녹화된 영상을 풀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퇴학은 하지 않고 꼴통들만 모이는 은장고로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늘 혼자인 시은은 수호 덕분에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은장고에서도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 친구들 중에는 은장고 대장인 바쿠가 있고, 바쿠만 깡패집단인 연합에 들어가지 않고 있고, 연합의 대장인 백진은 바쿠를 무릎 꿇리려고 한다.

시즌 2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영역에서 벗어난 빌런 짓을 한다. 바쿠가 워낙에 강력한 싸움꾼이라 바쿠를 이기지 못하면 바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건드린다.

슈퍼맨을 이길 수 없는 빌런들이 슈퍼맨을 잡기 위해서는 슈퍼맨이 사랑하는 루이스와 슈퍼맨의 엄마를 잡아들인다.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는데 연합 애들이 그런 짓거리를 한다. 시은은 약한 영웅답게 주먹만으로 상대하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이 흉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볼펜, 안경테, 화분 등 갖가지 것들을 전부 사용해서 상대와 결투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이 비겁하다고 하는데 나 죽을 것 같은데 비겁한 게 무슨 상관.

연합의 뒤를 봐주는 조직의 보스로 카메오 출연하는 사람이 조정석이다. 조정석은 바보, 회사원, 깡패, 양아치 전부 잘 어울린다. 조정석은 엄청난 인기도 얻지 않고 인기가 바닥을 치지도 않은 채 새벽의 호텔 수영장처럼 늘 그 찰랑거림을 유지하고 있어서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시즌 2에서는 주인공인 시은보다 바쿠가 분명하게 눈에 확 띈다. 시즌 1에서는 빌런으로 점점 변해가는 범석이가 기억에 남는다면 시즌 2에서는 쌈장인 바쿠의 액션과 호탕한 웃음 뒤 울보의 성격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시즌 3에서는 확 거대해진 금성제의 연합이 바쿠와 시은, 현탁이 뇌사에서 깨어난 수호와 한 편 묵고 판을 벌일까. 그나저나 결투할 때 주먹 휘두르는 소리가 너무 할리우드 같다.

속도감과 타격감, 돌아이들의 액션 퀄리티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던 약한 영웅 시즌 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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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빈속에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아서 가끔씩 아침도 점심도 그른 채 허기가 질 때 싸구려 술을 위장에 들이붓는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퍼지는 알코올의 향과 타들어가는 것 같은 내장의 뒤틀림의 느낌을 좋아하는 그 사람.

담론이니 이론 같은 틀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용기는 난폭한 루머의 파편을 흩뿌리기도 하고 악마의 리얼리즘을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고 그 사람은 흐린 눈으로 말했다.

먼지가 가득한 황폐한 곳에서 그 사람은 치열하다. 기억의 언덕을 지나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그 사람은 절망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손톱 끝까지 술이 퍼지는 굉장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대로 술이 깨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 사람은 말했었다.

나는 절망적인 나를 위해

나의 절망을 알게 해 준

나보다 더 절망의 당신을 위해

치열하게 나를 황폐하게 만든다.

언젠가 그 사람이 술이 되어 잠들어 있는 테이블 위에 써 놓은 글귀였다. 술은 추억을 반추하고 기억은 반목해서 좋다던 그 사람.

주먹만 한 위장이 술로 채워져 큰 세계가 된다. 온몸이 타들어갈 듯한 이 죽음의 기분 좋음이 좋아서 술잔에 슬픔과 좌절을 담아 그 사람은 빈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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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화가 마를렌 뒤마(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 봤다. 그녀의 그림에는 세상에 대한 냉소와 슬픔 그리고 차별에 대한 아픔 같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가 마우스로 따라 그림 그림에는 그런 표현이 안 되었지만. 마를렌 뒤마의 여러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리다 보면 사는 건 대체로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방황하는 한 마리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면 어느새 처음의 오늘, 어느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환절기는 내게서 빠득빠득 세포를 앗아가려 하고, 봄과 여름 같은 날의 중간에서 계절을 마주하니 깊은 한숨과 소름 돋듯 선명한 지난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철 지난 가요가 듣고 싶어 오래된 카페에 들어갔다. 


웃음으로 아픔을 가린 여자와 작정하고 얼굴을 드러내 과거 따윈 없다고 노골적인 표정을 짓는 여자가 중앙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생각만큼 안 된 과거의 남자와 생각처럼 안 되는 현재의 남자와 생각 외의 미래의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보니 상처 같아 보여서 한 번에 마실 수 없어 그대로 두었더니 그 속의 하늘에 뜬 별이 하나 빠진다. 


이 커피를 마시면 별을 마시는 건가, 별은 하늘이 낸 상처의 흔적이다. 나는 하늘의 상처를 마신다. 


어김없이 이달의 마지막 주가 왔다는 건 이달의 첫 주가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한 줄기의 빛이 가시광선으로는 같으나 관념 광선으로는 많이 달리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별빛이 떨어지는 곳에 가지 마라. 

별빛에 다치면 무지개밖에 약이 없으니 약을 바르고 나면 몸이 보남파초노주빨이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처로 가득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보면, 나를 부르던 삼월이 기억나고 그 기억은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들고, 내 의식의 강 위에 배를 띄워 상처를 담아 보낸다. 


새끼손가락을 들고 그럴싸하게 하늘의 상처를 마시고 나니 

폐허 속에서 나는 상처의 맛, 

피지 못하고 꺾여 버린 상처의 맛, 

소리 없는 우는 상처의 맛이 났다. 


메마른 계절에도 그대는 내 속에서 그대로 살아있으므로 악착같이 살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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