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지겨워도 밥벌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보장되니까. 하지만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너무나 큰 범죄를 일으킨 자는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소주 파티를 하는데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단식투쟁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가야 할까. 왜 사람들을 주말에 쉬지 못하게 광장으로 나오게 할까. 왜 법이 법 기술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될까. 왜 일상을 누리는 이 작은 밥벌이까지 못 하게 할까. 수많은 ‘왜’가 괴롭히는 오늘 또 오늘의 연속.

혈압이 올랐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석 달 동안 자다가 자주 깨고, 안 꾸던 꿈을 꾸고, 화가 나고, 온라인으로 긁우들과 싸우고, 오프라인으로는 그놈의 윤석열 좋아하는 모친과 싸우고, 주위에서 폐업이 늘어나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식은 와작 깨지고, 정의는 먼지처럼 흩어지고, 일상은 점점 무너지고, 이러다가 양쪽으로 갈라진 사람들은 내전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다. 지방이지만 16년도에는 박근혜 탄핵 집회를 매일 나갔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움직이지 못해서 더 화가 난다.

지금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이런 불안한 시국과는 무관하게 맛있는 음식과 행복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내 피드는 거의 백 프로에 가깝게 탄핵과 파면 피드만 올라온다. 그래서 나 몰라라 하는 피드는 알고리즘이 걸러내는 데 가끔 시국과는 무관한 피드가 올라오면 드는 생각이 부럽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왜 동참하지 않냐며 욕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처럼, 계엄 전처럼 이런 시국과 상관없는 글을 올리고 싶다. 하지만 한 번 들여놓은 발을 뺄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다. 위고비 같은 약이 있어서 두정엽의 7구간을 건드려 싹 잊고 봄 타령이나 하고 싶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영화 초혼에서 그랬다. 이 정부가 무능이고 폭력이다. 무능과 폭력의 인간들이 정부, 언론, 헌재, 극우로 똘똘 뭉쳐있고 그 꼭대기에는 가장 무능하고 가장 폭력적인 윤석열이 있다. 무슨 짓을 어떻게 할지 아직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역대 최악으로 산불이 크게 번지는데 컨트롤 타워는 없고 이재명 대표를 마치 대통령으로 알고 왜 이제 왔냐고 소리치는 주민들도 있었다. 우리들의 애순이 아이유는 그렇게 소리치는 주민들을 위해 2억을 기부했다. 슈퍼맨도 죽음에서 부활했다. 그리고 슈퍼맨 혼자서 세상을 구할 수 없어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부활한 슈퍼맨은 힘없는 정의와 정의 없는 힘이 아닌,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정의로 국민들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날개를 달았다. 이제 우리와 함께 망가진 세상을 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게 슈퍼맨이 하는 일이니까.

어제 저녁에 조깅하러 나왔다가 비 소식이 없었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비를 맞아 감기 걸려도 괜찮으니 이 폭우가 저 안동으로 몰려가라. 여기 언양에도 산불이 어마어마했는데 폭우 덕에 산불이 잡혔다. 나는 이 비가 이재명 덕분이라 믿고 싶다. 그가 그 수모를 겪으며, 욕 들어가며 안동으로 갔기에 이 비가 내렸다고 생각하고 싶다. 윤석열이 때문에 장사가 너무 안 되지만 안동 산불 지역에 후원까지 했는데 이재명한테 욕하는 모습 보며 후회를 잠시 하기도 했지만 아마 보수지역 그들도 이재명을 대통령이라 여겼나 보다. 지금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건 헌재의 파면뿐인데, 판새들이 법복을 입고 정치를 하고 있다. 평의도 한두 시간 정도 할 뿐이고 이대로 끌다가 문형배와 이미선이 임기가 끝나고 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될까 너무 짜증 나고 불안하다. 어제 잠시 이재명 무죄로 기뻤는데 오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다.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한 발 나아가면 두 발 뒤처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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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는 일은 간단하다. 단전과 단수다. 단수만 해도 사회는 곧바로 지옥이 될 것이다. 단수를 하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나오지 않으면 씻고 해 먹는 문제보다 변기에 싸질러 놓은 대변을 처리하지 못한다. 하루 정도는 눈 감고 지낼 수 있다. 


그 위에 다시 대변을 볼 수 있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면 그 변기는 대변으로 더러워진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균이 득실거릴 것이다. 변은 점점 흘러넘쳐 화장실을 점령할 것이고 곧 집 거실까지 더러워진다. 그 냄새의 역겨움에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만,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밖은 더 심각하다. 


사람들은 생리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는 공중화장실을 찾겠지만 단수가 된 세상의 공중화장실은 가장 끔찍한 장소가 될 것이다. 벌레와 각종 쓰레기가 주위에 가득하고 무엇보다 악취, 평소에 도저히 맡을 수 없는 악독하고 미쳐버리게 하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손으로 코를 막을 수도 없다. 


단수가 되어서 더 이상 손을 씻을 수 없어서 손은 꾀죄죄하다. 더 이상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성폭행도 보란 듯이 일어날 것이다. 단수가 되어도 며칠 동안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백화점이라든가, 고급 아파트 같은 건물은 비상용으로 물이 나온다. 


그러나 이마저도 얼마 가지 못하고 악취와 더러움이 도배를 해버렸다. 어떻게든 매일 먹어야 하고, 매일 배설해야 한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만 마땅히 속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항문을 씻지 못해 차츰차츰 병균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는 옆 사람으로 전이한다. 병원은 폭도들이 이미 차지했고 지옥이 된 사회에서 노숙인이 진화된 인간 형태를 띠고 있다. 


급기야 배설을 하고 닦지 못해 몸에 묻은 채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단전과 단수로 인해 완전한 혼란을 넘어 걷잡을 수 없는 환란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만약 윤석열이 복귀를 하고 정부에서 단전과 단수를 해버린다면, 정부가 싫다고, 윤석열이 싫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해 우리들의 집과 건물에 단전·단수를 해버린다면 우리는 지옥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평소에 하지 않던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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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유, 어린이 애순이 누구야, 어렸던 애순이 누군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냐. 엄마라는 게 그런 거지. 애순이를 위해서는 쉬헐크로 변하던 전광례 여사. 그런데 그런 헐크 같은 전광례 여사도 학교 선생님 앞에서는 몸을 굽히고 잘 봐달라 촌지를 건네준다.

이 모습 보니까 울 엄마도 생각나데. 고등학교 입학하고 성적이 전교 17등이었는데 그다음부터 공부를 포기해서 성적이 바닥을 쳤을 때 초중고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던 울 엄마 담임을 찾아가 촌지를 건네고 그 날밤 많이 싸웠다.

울 엄마 요즘은 나이가 많아져서 음식을 해도 간을 맞추지 못하는데 극우에 가까워서 윤석열 편들고 그놈의 박근혜는 왜 맨날 불쌍하다는지, 궁궐에서 잘 사는데. 그래서 극우보수에 가까운 모친과 이것 때문에 내내 싸운다.

근데 얼마 전에 울 엄마 생일이라 외할머니 사진을 편집해서 곱게 만들어서 드렸더니 사진을 문지르며 엄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데. 1화의 애순이와 전광례 여사를 보는데 그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 나의 아저씨 감독이 만났다. 아직은 [1막] 봄비 같은 이야기다. 봄비는 땅에 닿아서 시가 된다. 시는 온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시를 읽어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찾은 사람은 초본의 슬픔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가 왜 재미있나 봤더니 단순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하고 일반적인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라 너도나도 맞아, 그랬지 하며 공감을 해서 재미있다.

세상 꼴 보기 싫던 부상길의 얼굴은 젊으나 늙으나 얼굴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관식이나 애순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데 상길의 얼굴이나 꼬장 한 태도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 아버지들이 있었다. 생각 없이 자기 하고픈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내뱉고 사는 사람들, 비록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지 꼴리는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얼굴의 변화가 없고 늙음이 더디게 온다.

내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말 마음으로 숨기고, 가고 싶은 곳도 미루고, 먹고 싶은 음식도 자식을 위해 아끼는 사람은 얼굴에 빨리 금이 간다. 시간에 이기는 장사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옆에 영원히 있어 줄 것만 같던 사람도 빈자리만 남아 부재가 아프기만 하다.

참고 사는 사람들, 부모들은 그랬기에 몸집도 작고 키도 작고 빨리 늙고 빨리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을 깔때기 없이 하는 사람들, 자식세대는 그래서 정크푸드를 그렇게 먹어도 키도 크고 덩치도 좋다.

영원한 악역도 없고 마냥 착한 사람도 없는, 그저 단순하고 일반적인 이야기.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게 나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라 이 드라마가 재미있구나 하게 된다. 상길이의 젊은 아내는 언뜻 임청하를 닮은 것 같았는데 또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네.

이제 남은 이야기에서 충섭이 엄니가 애순이 시집을 재단해서 한 권 내주려나. 그나저나 김성령은 누굴까. 관식이 짝사랑인가. 사람들은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냥 화나면 화내고, 조금만 기쁘면 기뻐하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꿍하지 않고 내뱉으며 사는 게, 설령 그로 인해 미친 연놈 소리 듣더라도, 그런 소리 하루만 지나면 싹 없어지는데, 그렇게 하루 일희일비하면서 사는 게 낫다.

삶은 우리에게 음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데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이 힘든 시간도 과거 속 추억이 되면 아름답게 채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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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의 골목에 어김없이 봄이 왔다. 


봄이 되면 악몽 같은 봄에 대해서, 

나의 결락에 대해서, 

봄의 슬픔에 대해서 생각한다. 


노래도 그렇게 말하지만 봄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계절이기 때문에. 


봄날의 곰이 아니라 동백이 되어 목을 꺾어 밑으로 떨어질 때 나 역시 봄과 함께 심연의 결락으로 이어진다. 


봄이 아름다운 여러 색을 띠는 이유가 빛이 고통으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흑백으로 사진을 담기도 한다. 


빛은 고통이 심해질수록 십수만 가지의 색으로 나타난다. 


고통이 점철되고 극화되는 봄이 골목으로 온다. 이런 봄에 우울을 느끼지 않으면 언제 느낄 수 있을까. 


날이 따뜻하여 두꺼운 옷을 벗었지만 봄의 바다는 몹시 차갑거나 아주 차가울 뿐이다. 


그래서 봄의 바다 역시 슬프다. 세상의 슬픈 것들은 봄으로 집약되고 우리는 그 슬픔을 조금씩 떼먹으며 등에 살찌운다. 


그러나 봄은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잠시 스쳐 간다. 


사람들의 이 고통도, 사람들의 이 울분도, 사람들의 이 분노도, 사람들의 이 힘듦도 그저 잠시 스쳐 가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이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독 이번 3월의 봄은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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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비디오 볼 때가 좋았다.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그 기분이 있다. 빼곡하게 꽂혀있던 비디오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와 함께 고르는 동안의 그 시간이 좋았다.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생긴 비디오 가게는 그리 크지 않고 비디오도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분 있었다. 작은 곳이라 비디오 가게 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한다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영화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장 클로드 반담 팬이라서 그런지 반담 영화의 추천을 많이 했다. 장 클로드 반담 영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길 건너편에 대형 비디오 대여점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부터 해서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전부 대형 비디오 대여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근데 나는 처음에 갔던 작은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큰 이유는 없고 귀찮아서 갔던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나는 이상하게도 연어 같은 회귀성 본능이 강한지 한 번 갔던 곳에 계속 가고, 늘 다니던 길로 다니고 가던 식당에 늘 간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처음 생긴 작은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작은 비디오 가게는 맞은편에 생긴 대형 비디오 대여점 때문에 망할 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대형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 폐점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처음에 생긴 작은 비디오 가게로 사람들이 다시 몰렸다. 친구와 함께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골랐다. 그런데 나는 반값이었다. 친구가 왜 자신은 반값이 아니냐고 물었다. 주인은 나를 베스트 회원으로 등록시켜 놓았다. 베스트 회원은 반값이라고 했다.

나의 고집스러운 습성이나 습관이 나를 공격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롭게 하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그런 경우가 지금까지 꽤 있었다. 빵집도 45년이 된 오래된 빵집에서 빵을 자주 사는데 단골이라고 주인이 생각하면 가격도 깎아주고, 빵도 하나씩 더 넣어준다. 처음 생각한 대로 해주길 바란다. 처음에 생각한 그 선택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평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던 처음에 선택한 대로 선고를 해주기를 헌제에게 간절하게 바란다. 숱한 고학력의 바보들을 봤지만, 헌제는 그러지 말자.

어린 시절의 비디오 가게가 있던 동네의 골목이 며칠 전에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딱 한 집은 회수하는 데 실패해서 그 집만 빼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 집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 일대가 전부 이런 집들로 빼곡했는데 몇 년 동안 전부 허물고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이 집만은 그냥 이대로 살래요, 같은 분위기로 버텼다. 이 동네의 오래된 집들은 5억씩 받고 철거가 되었다고 한다. 5억이면 적은 돈은 아니나 5억만 가지고 또 어딘가로 훌쩍 가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구획정리하에 다 떠나고 이 동네는 아파트 기초 공사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집은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오랫동안 살고 계시다가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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