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이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과 공생을 잘하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은 요즘이다. 내가 다니는 길목에(해안도로까지) 고양이 시체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있었는데 이제는 로드킬을 당한 길냥이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영차영차 노력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늘어난 고양이가 못 마땅한 사람도 있겠지만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코지를 먼저 하는 모습은 본 적은 없다.


길바닥에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삶도 길바닥을 떠도는 저 고양이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매년 이맘때 길냥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지만 이제 느닷없이 추위가 몰아닥칠 텐데 또 이번 겨울은 어떻게 버티려나,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매일 조깅을 하면서 지나치는 길냥이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길냥이들과의 인연을 한데 모아서 한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참 여러 길냥이들을 스치고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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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을 원래 쳐다보지 않았는데 한 10년 전에 한 길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도시락을 열심히 싸다니던 시기였다. 밤에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대리를 불러 집으로 오고 있었다. 한 새벽 2시 정도 되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공기의 밀도가 다르고 새벽의 운치가 가득한 날이었다. 술도 올라서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아파트 단지에 다 와서 대리기사분이 도로에 뭐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차를 운전했다. 그래서 이렇게 보니 도로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파트 단지 밑의 도로는 2차선이다. 가고 오고. 도로의 양옆으로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그래서 차들이 새벽에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도로 중간에 고양이 몇 마리가 있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차에서 내려 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 어미 고양이가 죽어 있고 새끼 고양이들이 주위에 모여있었다. 아직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어미 고양이가 일어나기만을 바라듯이 새끼 고양이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네 마리였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만화에서나 볼법한 얼굴과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차장까지 차를 넣지 말고 근처에 주차를 시켜달라 하고 계산을 했다. 만약 술에 취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어쩌면 그냥 집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 시간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투덜투덜 거리며 도시락통에서 숟가락을 꺼냈다. 그리고 조깅을 하면서 흘린 땀을 닦느라 들도 다니던 수건도 들고 왔다.


어미 옆으로 가니 아직도 이 어두운 새벽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낯선 내가 다가가도 어미 옆에 붙어 있었다. 나는 새끼들을 휘휘 저어서 이 위험천만한 도로에서 내 보냈다. 후다다닥 하더니 작은 소리로 ‘왜 그러냐, 인간 놈아’ 같은 말을 하며 주차되어 있는 차들 밑으로 숨었다. 나는 죽은 어미 고양이를 수건으로 돌돌 말아서 들었다. 어미 고양이는 아직 몸이 따뜻했다. 자동차의 바퀴가 그대로 어미의 몸통을 밟고 지나갔는지 입으로 피가 나오고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다. 돌돌만 어미 고양이를 안고 아파트 단지 뒤의 저수지까지 올라갔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고양이는 저수지로 올라갈수록 몸에 남아있던 온도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그리고 도시락을 퍼먹던 숟가락으로 저수지에 있는 어떤 멋지게 보이는 나무 밑을 열심히 팠다. 술이 되어서 그런지 숟가락으로 팠는데도 잘 파졌다. 열심히 파다 보니 옷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의 온도는 싸늘해졌다. 그제야 고양이를 묻어줬다. 잘 가라, 네 새끼들은 열심히 살아가겠지, 나 같은 놈도 잘 살아가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 이후 아파트 근처 고양이들을 보면 그때 그 새끼 고양이가 죽지 않고 이렇게 커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깅을 하면서 길고양이가 있으면 잠시 멈추어서 보게 되었다. 더운 여름에는 이렇게 더운 날에는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려나, 추운 날에는 어디에 몸을 욱여넣어서 추위를 견디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그런 잘 설명할 수 없는 엔트로피, 무질서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튼 세상은 온통 신기한 것들과 고리 터분한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핼러윈데이에 동네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길냥이에게 핼러윈 텐트를 만들어줌. 어찌 알고 저 안에 들어가서 포즈를 잡고 있다. 고놈 참. 야옹.


담벼락 위의 고양이처럼. 이 녀석은 마치 오브제처럼 저 마시다가 두고 간 음료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다.  무슨 맛일까냥. 내가 매일 핥는 내 사타구니의 맛일까냥.


이제 슬슬 겨울을 준비해야지. 고양이들은 느긋하다. 그러다가도 물수제비처럼 재빠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고양이들이 우리 주위, 손 닿을 수 있는 반경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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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11-08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몇번 길 옆 나무잎들 사이로 옮겨준 적이 있어요.
생명이 빠져나간지 얼마되지 않은듯 손으로 전달되던 그 따스한 체온이 왜 그리 낯설고 어색하던지...

교관 2021-11-09 11:21   좋아요 0 | URL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은 언제나 적응이 어렵고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요 ㅎㅎ
 

이제 11월이 되었다. 그 말은 겨울로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말이고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미국과의 분위기와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저 평일처럼 훅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브가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지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딜 가나 북적이는 북새통의 골치 아픈 날이었다. 울고 짜고 가장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싸우고 헤어지는 커플이 우르르 쏟아진다.


또 분위기가 80년대, 90년대, 2천 년대 초반과도 많이 다르다. 오히려 그때가 더 미국스럽다. 미국스러운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미제가 좋아 보인다. 각 가정에 케이크 하나씩 놓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캐럴을 들으며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2천 년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면서 2015년쯤에는 성탄절 주간에 울려 퍼지던 길거리의 캐럴도 사라졌다. 그래서 배캠에서 배철수 형님도 흥청망청의 연말 분위기는 별로지만 길거리의 캐럴이 사라지고 구세군 냄비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어떻게 봐도 별로라고 했다. 그랬는데 이제 21년의 크리스마스가 되면서 코로나 시국이라 완전히 분위기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흥! 하게 되었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성탄절이 휴일이다. 하지만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캐럴도 다양함에서 멀어졌다. 북치는 소년이나 탄일종이 땡땡땡 같은 캐럴은 이제 아예 들을 수 없고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송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1월이 되면 나는 슬슬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딱히 별다를 건 없다. 그저 혼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12월 25일까지 죽 이어가는 것이다. 옆에서는 또 시작이군, 같은 반응이지만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근래에도 옆에서 캐럴이 좋아서 잘 듣고 있다.


먼저 잠들기 전에는 피아노곡 캐럴을 듣는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루더 벤더로스의 캐럴과 빙 크로스비의 캐럴을 조금씩 듣는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놓는다.


하루키가 라디오 방송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을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매일 한 시간씩 듣는다. 여기에서 하루키는 10곡의 하루키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송을 틀어 주는데 전부 다 좋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080


삼일에 두 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영화 리뷰만 올리는 인스타 계정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주야장천 올리다 보면 감독이 댓글을 달기도 하고, 제작사가 와서 댓글도 달고, 배우도 댓글을 달기도 한다. 심지어는 옆 나라 일본의 배우도 와서 조용하게 좋아요를 누르고 간다. 재미있다] 6일에 한 편 정도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다. 지금부터 성탄절 당일까지 죽 본다. 그래서 매년 봤던 걸 또 보게 된다. 그래도 재미있다. 시즌 영화는 8, 90년대의 크리스마스 영화들이 의외로 재미있다. ‘그렘린’부터 ‘34번가의 기적’이나 ‘패밀리 맨’ 같은 영화들. 촌스럽지만 내가 촌스러워서 더 좋게 와닿는다. 그렘린은 2편까지 있는데 그렘린 녀석들이 화난 얼굴을 하고 뉴욕, 뉴욕을 부르는 장면은 참 재미있다.


그리고 곤 사토시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도 매년 볼 때마다 재미있다. 그건 대단히 이상한 현상이다. 볼수록 재미가 더해진다. 초반에 일본의 길거리 속 삼계탕 간판의 모습도 인상 깊다. 곤 사토시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영화를 와장창 만들었을 텐데, 얼마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저메키스 감독의 스쿠루지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과 ‘폴라 익스프레스’는 나의 영원한 시즌 영화다. 스쿠루지의 목소리를 짐 캐리가 해서 그런지 정말 좋다.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는 마빈 게이의 딸, 노나 게이가 소녀의 목소리를 낸다. 마빈 게이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마빈 게이의 죽음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노나 게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영화도 좋다. 재미있다. 예전만큼의 충만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시즌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크리스마스 연대기’도 커트 러셀과 골디 혼이 같이 나온다. 2편까지 나왔는데 아주 재미있다. 산타가 21세기에 맞춰 우당탕 하는 이야긴데 빠져든다. 역시 하늘을 나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영화의 멋진 장면이다. 작년에도 딱 이맘때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40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특별해서 단 시간에 만들지 못한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몇 날 며칠 카드를 만들면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컴퓨터로 레이아웃을 잡고 사진을 여러 장 일일이 선별해서 작업을 한다. 텍스트도 그에 맞게 다시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크리스마스라는 기분이 든다. 작업이 끝나면 카드로도 만들고 액자에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을 주위 몇몇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관념은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인데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크리스마스는 다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몹시. 단지 드러내 놓고 왁자지껄하게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 나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건 6세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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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맘때 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바닷가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 방역도 예전만큼 심하지 않고 해변도 오늘 이전보다 오늘 이후 더 활기를 찾게 되지 않을까. 여기는 아직 낮동안은 더워서 반팔이 어울렸다. 해변이 어둠이 이불처럼 깔려도 바람이 없어서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좋은 날이다.


앉아서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이 취하지만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면 이상하게도 요만큼만 마셔도 술이 오른다.


고개를 들어 바닷가를 보면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마시는 맥주와 안주로 먹는 튀김을 씹는 소리가 어울리다 보면 저 달달한 불란서 식 맥주를 마시는데도 금방 술이 오른다. 술이 오르면 책을 잠시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거나 풍경을 멍하게 보는 것도 좋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파도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등을 보이며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본다. 다른 이들보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 두려 한다.


이 바닷가에서 신기한 건 여기 바다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 내가 전혀 없다. 대포항에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곳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더 심해지는데 여기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에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게 나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기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떠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 같다. 저기 옆에서는 오랜만에 버스킹이 한창이다. 일요일이라 일찍 바닷가에 산책을 하러 나온 동네 사람들과 이 바닷가로 온 관광객이 섞여서 노래를 듣는다.


바다를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조급해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지구 밑에서 지구가 잘 굴러가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라디오에서 토미 페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소년 같은 목소리로 ‘알 비 어 에브리띵’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의 음캠에도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가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태도를 존중했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어디로 갔을까. 프린스는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러 갔고 얼마 전에 보위도 사라졌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바닷가에서 술이 오르면 멍하게 바다를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쓸데없지만 쓸모없지는 않다. 그런 생각의 바다에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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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했을 때 그 속에 아줌마들도 있었다. 사실 아줌마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외모에 운동을 많이 해서 배에 11자 복근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나보다 훨씬 동생들이다. 그래서 "나 결혼하고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예요"라고 하지 않는 이상 아줌마라고는 전혀 알 수 없는 회원들이 있었다. 독서모임의 주최자는 나니까 나도 뭔가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보통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을 열거해서 이야기를 한다. 주로 시인 백석 이야기나 윤동주의 이야기나 저 먼 나라의 보들레르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주절주절 했다.


백석은 자야를 만났을 때 가장 찬란한 시들이 탄생했다. 나타샤부터 흰 바람벽이 있어 같은 시는 온통 자야에 대한 이야기다. 백석이 가장 좋아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12살 많은 루 살로메를 사랑했을 때 가장 찬란한 시가 나왔다. 릴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목숨을 걸었다. 일명 루(미 비포 유의 루가 아니다)에게 목을 매는 남자들이 많았다. 니체와 프로이트도 루의 남자들이었다. 루는 자신의 처녀성을 바친 사람은 아버지뻘의 교회 목사였다. 그 사람이 루의 재능을 눈치챈 사람이었다.


루 살로메라는 영화로도 있다. 당대의 지성인 남자들과의 염문도 볼 수 있다.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사랑할 때 최고의 글들이 나왔고, 보들레르도 흑백 혼혈 잔 뒤발을 사랑했을 때 최고의 시가 나왔다.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은 당시에 프랑스 정부에서 금지시켰다. 판매를 하지 못하게 했다. 죄악, 탐욕, 어리석음의 인간 군상을 표현했는데 사람들이 열광하다시피 했다. 아무튼 보들레르의 시는 지금도 문학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이기도 하다.


어떻든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독서모임에서 하면 사람들은 재미있어했다. 아줌마 회원이(라고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고) 글을 잘 쓰려면, 문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을뿐더러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인문계 고교를 나왔지만 거기서 사진부 활동만 하다가 졸업을 했다. 그리고 건축을 전공했다. 어떤 식으로 보면 나는 자연계 쪽이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기둥도 모른다. 그런데 또 소설을 좋아해서 한때는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끼인 존재 같은 인간이다. 그러니 내가 글을 잘 쓴다던가, 문학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알 수는 없다. 이런 걸 알려면 작가들의 강연을 듣거나 그들의 서적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가 소설에 빠져서 소설을 읽고 또 읽다 보니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없고 유명 작가들에게 빠져 있지 않는 이상 쉽게 그들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조촐하게 하며 우리끼리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을 풀었다. 문학이라는 게 사실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마도 문학이라는 건 계란찜처럼 별거 아니게 너무나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지 싶다.


계란찜, 계란찜이라는, 이거 먹고 싶으면 언제나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다. 그저 물만 넣고 휘휘 저어서 폴폴 삶아 시간만 되면 맛있는 계란찜을 맛볼 수 있다. 계란찜이라는 건 묘해서 특별히 맛있는 계란찜은 있지만 딱히 맛이 없는 계란찜은 없다. 식어도 맛있는 것 같다. 문학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하게 좋은 문학은 있지만 딱히 안 좋은 문학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좋지 않다고 느낀 문학이라는 건 문학을 읽은 후니까 그것대로 아 이런 건 좋지 못하구나, 라며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문학은 접하지 말아야지 하는 경험이 생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글이라는 건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형태는 일단 우리가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이라는 건 어딘가에 쓰여야 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공책이든, 노트북이든 쓰면 된다. 무슨 글?라고 묻는다면 나의 글, 자신의 글을 쓰면 된다. 여기서 자신의 글이라 해서 나 자신의 글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글도 자신의 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글이 쓰고 싶을 때 내 아이의 얼굴을 글로 써보면 재미있다. 웃을 때 이런 모습이 되는구나, 여기에 점이 있었네, 잠을 잘 때 내 아이는 이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같은 모습이 떠오르며 다 적고 나면 몹시 재미있다. 아무래도 글은 재미있게 적으면 좋겠지. 내 아이의 모습을 글로 적다 보면 글이 순식간에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 쓰고 난 글을 보면 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이제는 내 엄마의 얼굴을 한 번 써본다. 하지만 내 아이의 모습을 적을 때처럼 수월하게 적히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주름이 몇 개가 있는지, 짐꾸러미처럼 잠을 든 모습에서, 갈라진 발 뒤꿈치에서 나는 어떤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 엄마의 모습을 내가 곧 답습하게 된다. 내가 내 엄마 품에서 벗어나 내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듯이 내 아이도 나를 벗어나 자신의 울타리 속으로 갈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별거 없다. 별거 아이야. 계란찜과 같은 것이다. 늘 곁에 있지만 관심 가지지 않으면 잘 모르는, 늘 접하지만 손을 뻗지 않으면 촉감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재미있게 본 오징어 게임이나 듄 같은 영화의 기초는 시나리오다. 문학이다. 거기서 시작한다. 매일매일 듣는 노래는 가사에 음을 붙은 것이다. 가사는 바로 시다. 역시 문학이다.


문학, 즉 예술이라는 게 우리가 밥을 먹고사는 생활에 불필요할지 모른다. 없어도 무관하다. 하지만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서로에게 이어준다. 문학과 예술이 발전한 나라는 대체로 몹시 선진국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계란찜은 참 별거 아니어서 별거다. 계란찜과 문학 그거 뭐 별거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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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1-03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교관 2021-11-04 12: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셔요!
 

내가 학창 시절에 다운타운에는 음악감상실에 두 곳이 있었다. 한 곳은 규모가 꽤 되고, 지방의 라디오 디제이들이 돌아가면서 음악을 틀어주는 곳으로 주로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조지 마이클 같은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비교적으로 맨트와 음악적 소개가 전문적이었고 떠들썩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곳에 가면 뮤직비디오를 영화관처럼 큰 대형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 앨범의 곡들 뮤직비디오를 볼 때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쌍벽을 이루었던 건스 앤 로지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끼리는 누구의 뮤직비디오가 더 좋은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의 앨범 뮤직비디오는 모든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이어진다. 그래서 영화와 비슷했다. 아니 영화였다. 뮤직비디오 속에는 주인공 알라시아 실버스톤이 나온다. 당시 최고의 하이틴 인기 배우였다. 그리고 리브 타일러도 나온다. 근래에는 리브 타일러는 꾸준하게 활동을 하지만 알라시아 실버스톤은 인스타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리브 타일러는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브 타일러의 딸인데, 리브 타일러가 훌쩍 큰 다음 티브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세계 최고의 록스타가 자신과 너무 닮아서 찾아가서 따져 묻고 이런저런 우당탕탕 해보니 스티브 타일러의 딸이 맞더라, 그래서 그 후로 스티브 타일러는 리브 타일러의 길을 열어 주었다? 같은 이야기를 음악 감상실의 디제이 입을 통해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디제이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

 

미국 록 스타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더 디트’를 보면 당시 미국 록그룹 들은 미국 투어만으로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한다. 세계를 돌면 엄청난 공연을 하는데 그들의 공연하는 스타일이 밤 10시에 공연해서 새벽 2시까지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고 3시부터 광란의 술 파티다. 그 속에는 여자 팬들도 있고 난장판이다. 누가 누구와 자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눈 뜨면 오후 5시 정도. 그리고 밥 좀 먹고 밤 10시가 되면 또 미친 듯이 공연을 하고 새벽에 광란의 약과 술 파티를 한다. 그들의 피지컬은 한창 20대 초반이며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체격과 체력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너의 자식이 저기 어디, 막 브라질 같은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근래에는 록 스타뿐 아니라 호날두 녀석의 아들도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또 한 군데가 중앙시장에 있는 한 군데 음악 감상실이다. 이곳은 경남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디제이도 전문적인 디제이들이 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좀 좋아하는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재미있었다. 엉망진창이지만 시끌벅적했고 난장판 같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거의 집처럼 들락거렸다.


그곳은 보통의 음악이나 록에서 벗어난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노르웨이의 데쓰 메틀이라든가, 요컨대 바쏘리의 음악이나 판테라, 알파타우루스 같은 깊이가 꽤 되고 기기묘묘한 록들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뮤지션이 히데였다. 묘하지만 히데의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게 되는데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히데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어떤 연대가 느껴졌다.


히데는 나방 같았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들어 오늘 타버리고 나면 더 이상 미련도 없을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에 어딘가 폭발해버릴 것 같은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히데는 액스재팬의 기타였고 더불어 액스재팬의 음악도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다. 히데의 노래를 들으면 뭔가 마음 저 밑에서 두구두구두구 하며 드럼을 치며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듣게 된 히데의 음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히데의 음악, 히데의 스타일, 히데의 개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아직 히데는 여기 현실에 어떤 끈을 남겨두어 우리가 그 끈을 잡을 수 있게 한다는 말들을 하곤 했다.


일본에서는 히데의 유전자를 이어받으려는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의 음악이나 그의 개성 같은 것들. 음악적으로는 일본의 어떤 그룹이나 가수가 히데의 유전자를 이어가는지 모르겠지만 히데의 얼굴은 일본의 배우 나리야마 히로키가 닮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흡사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히데와 얼굴이 가장 닮은 사람은 슈주의 김희철이다. 김희철은 아직까지도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메이크업을 한다면 히데의 얼굴과 거의 같아진다. 또 스타일과 목소리(긁어서 내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이런 목소리는 20대까지 밖에 하지 못한다)는 지드래곤이 아주 닮았다. 지드래곤의 탁월한 스타일을 보면 자연스럽게 히데가 떠오른다. 지드래곤은 이대로 60까지 나이가 들면 아마도 데이빗 보위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적으로 닮은 유전자는 서태지다. 액스재팬의 베이스였던 타이지의 기타가 현재 서태지에게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실인지는 모른다. 그만큼 서태지가 정현철이었던 시절 액스재팬의 스타일을 동경했을 것이다. 시나위 4집 활동 당시 김종서와 함께 베이스로 서태지가 있었는데 흡사 액스재팬의 이미지가 있다.

 

가수라는 건 노래를 잘 불러야 하지만 노래만 잘 불러서는 슈퍼스타는 될 수 없다. 가창력? 기타 연주?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히데의 여러 노래 중에 다우트라는 노래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이게 20년이 넘은 스타일이라고? 그렇게나 된 노래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강력한 해비 메틀은 서태지의 탱크를 들어보면 이 강력함이 서태지의 버전으로 또 나타나는 것 같다. 뭐 이건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밑으로는 내가 그려본 히데의 그림과 다우트 뮤직비디오를 올려본다.


https://youtu.be/2fv812v6TQ4

이렇게 목을 긁어서 내는 소리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30대를 넘어가면 이런 목소리가 대부분 사라진다. 본 조비도 이런 목소리였다가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록그룹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아직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서태지와 지드래곤이다. 하지만 한계가 온다. 사람이니까. 그때까지는 실컷 듣자라는 주의다.


히데의 큐포스켓


두근거리는 거야. 굉장히 두근거렸지. 보들레르에 취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어. 다른 노래도 그렇지만 말이야 다우트를 부를 때 히데는 뭐랄까 카타스트로프적인 섹시함을 지니고 있어. 마치 양의 하얀 뇌로 만든 카레를 떠먹는 기분이 드는 거지


류가 그랬어. 양의 뇌로 만든 카레는 입과 혀와 목을 자극하면서 매끄럽게 내려가서 내장 전체를 뜨겁게 달군다고 말이야. 그리고 위장에 가서야 서늘하게 느껴지지. 아주 사치스런 불쾌함 말이야. 히데의 다우트는 마치 그래. 그런 느낌이라구. 두근거리게 만들어


아주 두근거렸어. 히데의 다우트를 듣는다는 건 말이야. 첫 시작부터 데커던스적이지. 히데는 섹시해 섹시해.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섹시해. 그런 속살이 아니야. 날에 베이면 벌어지는 살갗의 속살에 빠져드는 거야.  벌어진 살 속에 농염하게 숨어있는 붉은 형질의 표피와 세포 말이야. 농축된 섹시함을 히데는 다우트를 부르며 물처럼 흘려버려


히데스라는 토플리스 바에 가면 바의 상단에서 히데의 다우트가 퇴폐적으로 나왔어. 그곳에 오는 손님 중에는 이빨이 하나도 없는 여자도 있고 혀에 피어스를 24개 한 게이도 있어. 그리고 혈액과 골수 소스 위에 놓은 터키를 좋아하는 50살의 남자도 있어. 채찍으로 너무 맞아서 옷이 맞지 않아 항상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오는 외국인도 있어. 모두가 히데의 다우트를 들으며 데쳐진 시금치처럼 몸을 흔들어


자기혐오의 젤리 피시와 머릿속에서 소리치는 쌍둥이와 산산조각 나버린 카오스를 목에 쑤셔 넣으라고 히데는 노래를 불러. 다우트 다우트. 두근거릴 수밖에 없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서태지의 테이크 시리즈와 탱크에서 다우트의 오마주를 느꼈더랬지


97년까지 퇴폐적 섹시함으로 무장을 하고 다우트를 불렀어. 5월에 카오스로 가버리다니. 살이 부러지고 뼈가 줄어드는 기분이야. 너무 크게 틀었나 봐. 옆에서 욕을 하네. 히데는 어딘가를 향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다우트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  


- 히데의 다우트를 듣고 든 기분을 적었다. 히데에게는 퇴폐미라는 것이 있다.


이제부터는 허리 고 라운드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히데의 다큐영화다. 일본의 20대 청년의 배우가 히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히데를 추억한다. 그러면서 히데가 죽기 직전까지 히데와 관계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히데와의 일화를 회상한다.


히데의 다큐는 거의 다 봐서 이거 뭐 별거 있을까 싶지만 팬심으로 보다 보면 또, 늘 그렇듯이 마지막에 가면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영화는 히데가 죽은 지 20년이 되던 해, 2018년에 제작이 되었고 일본의 청년 배우 야모토 유마라는 녀석이 히데의 자취를 따라 과거로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허리 고 라운드는 히데의 마지막 노래이며 가사가 묘비에 새겨져 있다. 야모토는 히데가 활동할 당시 욕 들어가며 일을 배우던 히데의 로드 매니저인 히데의 동생(현 히데 소속사 대표)을 찾아가 히데가 엘에이에 머물며 음악 작업을 했던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면서 히데가 다녔던 거리를 현재의 야모토가 걸어간다. 그런 장면에 교차 편집되어서 나온다.


핑크 스파이더를 촬영했던 골목을 찾아가서 회상을 하다가 그 골목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히데가 다니며 남긴 끈을 찾아서 추억여행을 한다.


히데의 이전 다큐들을 보면 히데가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엘에이에서 음악 작업을 하며 술을 마시고 지내는 모습이 가득하지만 이 다큐는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를 히데의 끈으로 이어준다.


히데가 좋아하던 바 ‘랠리’에 다시 모여 히데가 죽기 전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은 정말 옆에서 히데에 대해서 조근조근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마지막에 가면 야모토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오고 거기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히데의 허리 고 라운드의 오리지널과 다른 버전이 들어있다. 20년 동안 누구도 듣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노래, 히데의 목소리로 부르는 다른 버전의 허리 고 라운드를 팬들에게 들려주라며 끝이 난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온다.


히데를 좋아한다면 볼만한 다큐영화 ‘허리 고 라운드’였다. 가사의 말미에는 봄에 다시 만나요, 봄에 만나요, 봄에 만나요.라는 후렴구가 있는데 봄이 되면, 5월이 되면 히데를 다시 만나게 된다.https://youtu.be/mwriPOK3Tw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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