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는 순간 프라이팬이 달아오른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후끈 뜨거워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니 기름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동글동글 계란을 탁 깨트려서 달군 프라이팬에 펼친다. 촤아아아 소리가 경쾌하다. 일상에서 이렇게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계란 프라이가 익어가는 소리가 아닐까.


기름을 만나 지글지글 투명하던 흰자가 점점 하얀색이 되어 간다.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어디 가지 말고 계란 프라이는 이 모습을 두 발로 딱 서서 지켜봐야 한다.


기름을 찰방 하게 둘렀다면 계란 프라이의 끝이 비스킷처럼 그러데이션으로 바삭하게 익어 갈 텐데. 하지만 괜찮다.


그 순간 중간의 노른자가 샛노랄 뿐야, 라며 익어간다. 어제는 이맘때 꺼내서 먹었으니 오늘은 좀 더 익혀서 먹자. 한 번 뒤집는다. 샛노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입을 다물고 숨을 참고 한 번에 성공을 한다.


계란 프라이가 잘 보일 수 있게 옮긴다. 접시 위에 계란이 떠올랐다. 후추를 솔솔 뿌리고 참기름을 한 두 방울 뿌린다. 으음 고소한 향이 코 안으로 들어와 뇌를 전부 흩트려 놓는다.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어도 맛있지만 오늘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자. 끝에서부터 잘라서 야금야금 먹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 만에 몇 가지가 확 달라졌다. 어제까지는 조깅하고 찬물에 샤워를 했는데 오늘은 뜨거운 물이어야만 했다. 어제까지 들리던 매미소리가 오늘 저녁에는 싹 사라졌다. 이중창처럼 귀뚤이와 매미소리가 동시에 들렸지만 오늘 저녁에는 귀뚤이 소리만 들렸다. 정말 하루 만이었다.


잠들기 전 창문을 열어 놓는데 찬 바람이 들어와 이불까지 덮어야 했다. 어제까지는 이불은 덮지도 않고 잠들었는데 하루 만에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유튜브로 캐럴을 틀었다. ASMR처럼 한 음으로 된 캐럴인데 온후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슬픔이라는 게 꼭 그렇게 강요해야 할까. 정말 슬프다면 거기서 혼자 슬퍼하기도 벅찰 텐데 나에게까지 연락을 해서 같이 슬퍼하자고 해야 할까. 꿈을 꾸다 일어났다. 꿈속에서 슬픔을 강요한다. 슬픔을 강요하는 일들이 근래에는 많아졌다. 모두가 슬픈데 너 하나는 왜 슬퍼하지 않느냐. 공공에 반하는 것이다.라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름이 없는 것들이 있다. 이름이 없는 것들은 순수하다. 요컨대 돈과 시간에는 이름이 없다. 거기에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돈과 시간은 아주 무섭다. 세상에는 돈과 시간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매일 보는 자연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 입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코로나가 세상에 도래한 후 재미있는 건 제비가 날아다니고 이전에 잘 보이지 않았던 메뚜기가 아주 많아졌다. 그 메뚜기를 잡아서 가지고 노는 고양이도 볼 수 있고 강 역시 더 맑아져서 그런지 물고기가 늘어났다. 더불어 낚시꾼들도 많아졌다. 코로나는 인간의 생활을 멈추게 했지만 자연은 더 자연답게 만들었다.

세상의 시끄러움과는 무관하게 하늘은 맑으나 흐리나 늘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고요하면서 아늑한 이 느낌은 언제나 좋다. 날은 흐린데 비가 개니 무지개가 희미하게 떴다. 무지개는 자주 볼 수 없는데 무지개가 떴어도 큰 감흥이 없다. 아마도 자주 볼 수 없어서 그러려나. 자주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이 나는 더 좋을까.


무지개 밑으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이런 장면은 좋다. 조깅을 하는 도중에는 잘 멈추지 않는데 멈춰서 눈에 들어오는 이 풍경을 한 컷 담았다. 무지개도 흐린 날에 가려져 거의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도 올해 들어 무지개를 처음 본 것 같다.

사실 현실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아직 이곳에서 무지개를 타고 비현실의 세계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빛의 굴절은 어쩌고 저쩌고 해서 스펙트럼의 입자의 몇 만 분의 일 이상의 인공 빛을 쏘아 어쩌고 저쩌고 해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다. 19년도에 '과학과 사람들'의 원종우 작가의 SF 소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모양이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장편이 아닌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이렇게나 맛깔나게 적어 내다니 하며 읽었었다. 읽기에 어려웠던 테드 창의 소설보다 쏙쏙 들어왔다. 마지막 편은 나중에 읽어야지 했는데 이제 읽어 볼까 싶다.

태풍이 지나가고 3일 정도 지난날인데 비 때문인지 바닥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 낚시꾼들은 비가 온 직후가 가장 신나는 모양이다. 저 끝으로 죽 낚시꾼들이 나와서 낚싯대를 여러 대씩 강에 던져 놓고 입질을 기다린다. 고기를 많이 잡아서 그 자리에서 배를 가르고 손질을 해서 집으로 들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올바른지 어떤지 잘 알 수는 없다. 강물이 고기의 내장이나 머리통으로 더러워지는지, 아니면 그 잘라낸 부위를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로 사용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또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낚시도 과학적으로 하면 고기를 쉽게 낚을 것만 같다. 요리와 낚시는 과학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낚시는 물론 경험과 감이지만 그렇게 하는 요리를 봐도 과학적인 문법이 많이 적용된다. 이번 올림픽에서 수학 선생님이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사이클에서 1등을 먹은 것을 보면 낚시는 과학이다. 그래서 낚시 어플을 개발하는 것이다. 어플을 돌리면 지금 현재 날씨와 물 온도, 유속 같은 것들을 AI가 빅데이터로 계산해서 찌 높이, 오늘의 미끼, 바늘 크기와 낚싯대의 위치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면 96%의 확률로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 ‘뭐든 낚아’ 어플을 구입하세요.

지난 주말이었을 것이다. 8월 들어 며칠 날이 개었는데 그중에 한 날이다. 하늘이 마치 구름이 만들어 놓은 길처럼 보였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면서 사진에는 주로 파란 색감이 가득할 것 같다. 아마도 인디언 써머까지는 이런 색감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산은 곧 단풍으로 붉게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 수순이다.

강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풍경이 펼쳐졌다. 오리가족들과 왜가리의 모습이 아주 평화로웠다. 폰을 들어 양팔을 앞으로 뻗으니 오리가족과 왜가리가 저 멀리 도망가는 모습이다. 도망을 가려면 아주 빨리 가야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태풍이 압도적으로 왔을 때 의자를 어딘가에서 여기 강변으로 이동을 시켜놨다. 덩그러니 보이지만 또 이렇게 보면 하나의 오브제 같다.

밤이 되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가끔 보이던 인적이 자정을 넘어가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곳에 서 있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며. 도심 한복판에서도 사람들이 없는 곳은 적요만 가득했다.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누구도 오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모르고 지냈다. 어쩌면 지금이 편하게 쉴 때이다. 그저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 2시의 강변은 그야말로 깊은 숲 속처럼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강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도 하나둘씩 소거되더니 말 그대로 아. 파. 트. 의 형상만 보였다. 도로에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는다.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모두가 잠드는 시간이다. 적요와 고요 그 사이에서 내 몸이 조금씩 융해되어 간다. 나는 이제 비로소 자연에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도대체 매일 어디로 저렇게나 열심히 가는 것일까. 한 곳에 머물러 가만히 있지는 못한다. 심지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유유자적하지 못하고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꿈쩍거리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고작 백 년도 못 살아서 그럴까. 인간들은 저렇게 좁은 건물 속에 틀어박혀 잠이 들고 날씨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노심초사다. 마치 이렇게 고요한 물에 돌을 던지면 일어나는 파문에도 허덕이며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보낸다.


가끔은 가만히 바람을 느껴봐. 그리고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봐. 우리가 무엇을 진심으로 바라는지.

새들은 하늘 높이 떠서 날아가는데 이렇게 강 위를 날갯짓 없이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모습에는 그만 엄마미소 짓는 중. 이 넓은 강이 너의 집이로구나.

조깅을 하고 평소에 다니지 않는 길로 오는데 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카센터에서 혼자인 개 한 마리를 만났다. 내가 쪼그리고 앉자, 반갑다며 놀아달라고 애교가 막 흘러넘치는 중이다. 그런데 묶어놔서 나의 손길을 받으려면 이렇게 누워서 필사적이 되어야 한다. 한 3분 정도 목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3분이 넘어가면 헤어지기가 힘들어진다. 개의 눈빛도 몹시 애절하게 변한다. 그러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강아지의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굉장히 스위트하다고 한다.

잘 다녀와, 기다릴게.

오늘 기분은 어때? 괜찮아?

기분이 안 좋아? 같이 놀까?

배가 고프면 배부를 만큼 먹고 사랑을 주면 마음을 되돌려 주고 감추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내 보일 수 있는, 인간과 다른 생물. 더 이상 동물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사회로 들어왔지만 인간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딱한 생물.


사람은 배가 불러도 더 가지려 하고 사랑을 이용하거나 배신하기도 하며 욕망과 부끄러움을 뒤로 감추려 하는 존재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개’를 보면 자신을 버린 주인에게로 향한 눈망울 속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주인을 바라보기만 한다. 이제 곧 헤어지는 것도 모른 채 한 번씩 사랑을 하는 인간과 달리 오로지 평생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개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어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동물의 틈에도 끼지 못하고 완전한 인간도 되지 못한 채 인간화의 경계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동물이 개일 지도 모른다.

고요하다. 그야말로 적막이 감돈다. 평소 강물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에 떠 있는 나뭇가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비가 우르릉 콰쾅 많이 오면 눈으로 강물의 흐름을 볼 수 있지만 평소에는 세상이 멎은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이 멎었고 날씨 때문인지 강도 멎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후 인간의 일상은 망가졌지만 십 년 만에 제비도 봤고 메뚜기도 많아졌다. 조깅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방아깨비가 계속 나온다. 아주 반가웠다. 조깅 코스에 올라오면 자전거나 발에 밟히기 때문에 방아깨비는 보는 족족 집어서 풀숲으로 보내줬다.

이렇게 적막이 흐르는 모습이 싫어서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휘저어본다. 마아블링처럼 마구 역동적이고 싶다. 일상이여 위로 아래로 옆으로 마구마구 휘몰아쳐라.

사진 속에 사람이 있으면 풍경은 살아난다. 아주 멋진 풍경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스토리가 사라진다. 그저 감탄만이 사진 속에 존재하지만 사진 속에 사람이 있으면 생명력과 더불어 감동이 있다. 스토리는 중요하다. 스토리는 단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한 인간,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만든 문명에도 스토리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한 스토리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야만 한다.


인간의 인생이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기 위해서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지는가 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확정 지어질 수 있다. 바로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이다. 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런 스토리를 우리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통 나이가 들면 꿈을 안 꾼다고 하는데 요즘도 지치지 않고 꿈을 꾼다. 게다가 얼씨구 꿈의 반 할은 하늘을 나는 꿈이다. 어린 시절처럼 죽 날지는 못하고 여기에서 저어어기까지 날아가는 꿈을 꾸는데 정확히 긴 점프를 하는 꿈이다. 크게 점프를 했는데 도약이 잘 못되면(꿈이라 아 이건 잘못 도약했구나 한다) 점프 도중 중간에서 떨어질 것을 안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착지가 불안해서 아악 하게 된다. 반은 신나는 꿈이고 반은 악몽이다.


꿈을 꾸다 일어나면 왕왕 폰의 메모장에 꿈의 내용을 적어 놓는데 꿈은 황당하고 엉망진창 대환장파티다. 어떤 날의 꿈은, 피범벅이 된 여자를 잡고 말해보세요,라고 하니, 제가 어제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분이 나에게 차를 사줬어요. 그런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울면서 차를 버리고 앰뷸런스를 타고 집으로 왔지 뭐예요, 제 기분 이해하시겠어요?라고 적어놨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또 한 번은 이런 글이 메모되어 있었다. 네, 그 섬에 신혼여행 간 일본인 부부가 좀비에게 당했던 거예요. 그런데 신부가 너무 예뻐서 제가 그 좀비에게 당한 신부를 데리고 와서 얼굴을 닦아주고 창백해진 몸을 문질러주는데 글쎄 그녀가 제 팔을 물어뜯어버린 겁니다. 전 너무 놀라서 팔을 빨리 그녀의 입에서 뺐는데요, 금세 시커멓게 변하더니 팔이 나를 죽이려 하는 겁니다. 어이가 없어서 팔을 잘라버렸죠. 그랬더니 팔에서 희한한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절 닮은 좀비가 탄생되는 겁니다. 좀 징그러웠지만 전 그 녀석과 함께 사진을 찍었죠 하하.


일본인 부부 하니까 얼마 전에 일본 도쿄의 지하도 근처에서 생긴 일이 생각이 납니다. 일본에 볼일이 있어서 바다 위를 달려서 뛰어갔던 적이 있었는데 지하도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겁니다. 나는 무엇인가 궁금해서 가보았더니 글쎄 헤그리드가 그곳에 와 있는 겁니다. 전 헤그리드의 수염이 진짜인지 궁금해서 다가가서 하나를 뽑아왔습니다. 자 여기 이것 보세요 굉장하죠.


완전 맙소사다.

하루키의 에세이에도 꿈에 관한 글이 꽤 있다. 나이가 어릴 때는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꾸다가 나이가 들면서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떠 있는 것 같은, 그저 공중 부유하는 꿈을 꾸다가 더 나이가 들면 꿈을 꾸지 않게 된다. 사실 나는 꿈을 안 꿨으면 한다. 꿈을 꾸는 것도 힘들고 습관 때문인지 꿈을 꾸면 으 하는 얼굴로 일어나 메모를 해 놓는 것도 힘들다.


힘든 것이 하나둘씩 늘어가는데 꿈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어제도 꿈을 꾸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요거트를 하나 먹고 잤다. 어린 시절에 꿈을 꾸면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꿈을 여러 번 꾸는데 어쩐지 나는 알몸이라 호랑이의 털이 몸에 닿는 그 기분이 좋다고 느끼면 어김없이 오줌을 쌌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꿈을 꿔도 오줌을 안 싸니 다행이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통닭


일단 발음부터 통닭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는 흥, 하겠지만 치킨보다는 통닭. 귀에 쏙 들어와 박힌다. 냄새도 치킨보다 통닭이다. 치킨배달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뒤를 난타하는 경우보다 통닭을 들고 탄 아버지들이 내린 다음 후려갈기는 냄새가 더 좋다. 정말 그 냄새는 마력적이다. 특히 배고플 때 맞이하는 짜파게티 냄새만큼 유혹적이다. 냄새로 이토록 사람을 아름답게 미치게 하는 건 음식 냄새가 유일할 것이다.

통닭이 치킨보다 나은 건 학습 때문인지 튀긴 닭의 모습이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치킨은, 특히 순살 치킨은 닭고기와 고등어를 같이 갈아서 만들어도 모를 것이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도 통닭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통닭은 치킨과 후라이드와 각종 맛있는 닭요리 덕분에 자취를 감춰야 함이 마땅한데 곳곳에서 통닭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치킨과 후라이드에 비해 저렴하기까지 하다. 치킨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도 이제 통닭을 팔기도 한다.


통. 닭.이라는 요리가 마요와 땡초로 버무려진 양념치킨과 후라이드가 점령한 요즘에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통닭에 사람들은 각각 하나씩의 추억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식업이 발전하면서 그간 닭요리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통닭의 모양과 맛을 비교적 유지하면서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통닭을 파는 전문점들이 늘어나서 프랜차이즈가 되었고 비슷한 통닭이지만 맛도 조금씩 다르다. 약간 매콤한 맛이 통닭에서 나는 경우도 있다.


통닭이나 치킨이나 역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으니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맛이 어떻네 저러네 따질 수는 없지만 통닭이나 치킨이나 다 맛있다. 양념치킨의 맛은 양념이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통닭의 맛도 튀길 때 입히는 튀김가루에 밑간을 하는 것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닭 뭐 먹을래? 하면 나는 통닭이 입에서 나온다. 치킨도 후라이드도 좋지만 통닭이 먼저다.


통닭을 주로 사 먹는 사람들은 통닭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들고 온 통닭을 밥상 위에 펼쳐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다 같이 먹었던 기억이 통닭의 튀김옷에 고스란히 스며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가족은 행복하다. 그저 튀긴 닭에 사이다 한 잔일뿐인데 뭐가 좋은지 온통 행복만이 기억을 점령하고 있다.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에 초등학생 아들 둘과 산자락에서 생활하시는 분의 피드는 늘 활기차고 행복하다. 거기의 행복은 가공되지 않았다. 팔로워도 만 명이 넘는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그 음식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같이 두런두런 앉아서 먹을 때 종알종알 행복이 쏟아진다. 내 기억 속 통닭이 그렇다.


통닭은 분명 한 마리로 가족 네 명이서 먹었다. 요즘에는 두 마리나 세 마리를 포장해서 먹었을 텐데 내 기억 속의 통닭은 딱 한 마리였다. 한 마리를 펼쳐 놓고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먹었는데 누가 닭다리를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재생산해봐도 닭다리를 누가 먹었을까 같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워하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게다가 사진까지 있어서 행복이 꿀 떨어지듯 떨어지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집 근처에는 맛있는 통닭집이 없어서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는 날이면 아버지는 회사 근처의 인기 많고 맛있는 통닭집에서 닭을 한 마리 튀겨왔다. 얼마나 냄새가 심하게 났을까. 모두가 허기질 시간 저녁 7시에 아버지는 당당하게 통닭 봉지를 들고 버스에 올라 여봐란듯이 들고 왔다. 아마 요즘 같았으면 누군가 한 소리를 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때에는 아마도 사람들이 버스에 마술처럼 퍼지는 그 통닭 냄새를 맡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통닭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갓 지은 밥 위에 엄마가 뜯어 주는 닭을 올려서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냠냠 먹고 있으면 고소하면서 뜨거운 밥과 함께 후후 입을 불어가며 먹는 그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통닭을 포장해서 집에서 먹을 경우에는 밥과 함께 먹는다. 기름에 들어갔다가 나온 통닭을 밥과 함께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옛날의 어렸던 내가 소환되기도 한다.


언제 처음 통닭을 먹었을까. 기름에 제대로 빠진 닭의 맛을 알게 된 건 몇 살이었을까.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가면 통닭골목이 있어서 거기서 기다려서 한 마리를 포장해오곤 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튀긴 닭에 똥집은 떼어 버리는데 그때는 똥집도 같이 튀겼다. 그게 살이 가장 많이 찐다는데 나는 또 똥집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닭을 튀겨왔던 통닭 골목은 아직도 시장에 남아 있어서 닭을 튀겨서 판다. 하지만 통닭은 없고 대부분 치킨과 후라이드를 판다.


어렸을 때 기억은 현실과 좀 다른 구석이 많다. 다녔던 학교를 가면 초등학교가 이렇게나 작았다니 하는 것처럼 그때 먹었던 기억만으로 요즘 통닭을 먹게 되면 양이 적어서 뭐지? 이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한 마리이긴 한데 한 마리가 아닌 것 같다. 한 마리를 먹고 나면 닭이 남아야 하는데 요즘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치킨의 맛을 알고 난 후 통닭은 나의 문화권에서 멀어졌다. 대학교 때 닭을 엄청 먹었는데 다 후라이드나 치킨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 가는 단골 닭집이 있어서 늘 모임을 거기서 했다. 먹은 닭만 해도 뼈 무덤이 일반적인 담벼락만큼이지 않을까.


몇 해 전에 집 근처에 통닭집에 생겼기에 한 마리 튀겨 가려고 들어갔다. 그 아련한 통닭 튀기는 냄새가 확 풍겼다. 주인장은 젊은 사람으로 수건을 동여매고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니 전자시계의 시간을 맞추었다. 기다리면서 안을 둘러보니 근처 제조회사 작업복을 입은 한 아버님이 앉아서 홀로 통닭을 뜯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국밥집에서 아버지들이 등을 굽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후루룩 국밥을 먹는 모습과 닮았다. 통닭을 혼자서 뜯는 아버님은 통닭이 정말 좋아서 혼자 왔거나 아니면 그 아버님도 어떤 추억에 끌려 통닭을 뜯으러 왔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떤 집에서는 통닭을 듣으며 온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나온다. 노 웨이 홈에서 1대, 2대, 3대가 다 같이 나올 것 같다. 이렇게 삼대 스파이디들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게 몇 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하지만 뉴 유니버스가 나왔을 때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파이더맨의 팬들은 알지 않았을까.


나는 마블의 대단한 팬은 아니지만 그들 중에서 스파이더맨을 가장 좋아한다. 거슬러 거슬러 어린 시절로 가서도 스파이더맨을 좋아해서 손에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쥐고 있었다. 그랬는데 커서도 이렇게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고 있다니. 인간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날씨와 사랑은 늘 변하는데 인간은 왜 안 변하는 거야.


스파이더맨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다. 토르나 아이언맨처럼 어디로 멀리 날아가지도 못한다. 바다 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도심지에서나 거미줄을 뿜어서 이동이 가능하다. 어찌 보면 도심에서 장거리를 가야 할 경우 전철을 타는 것보다 훨씬 늦을지도 모른다. 양팔을 이렇게 번갈아가며 거미줄을 쏘아서 장거리를 가려면 아무래도 전철보다 늦다. 또 날지 못하는 건 비슷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만큼 통솔력도 없고 둘이 붙으면 힘으로도 딸릴 것이다. 그런데 왜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으냐. 거미인간이니까.


거미인간으로 바뀐 피터는 그저 동네의 친절한 이웃이다. 자전거 도둑을 잡고, 강도들을 매달고, 편의점 같은 것들을 터는 애들을 혼내주고,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건져주는, 고작 그 정도의 일을 한다. 그래서 아주 좋다. 다른 슈퍼 히어로처럼 지구를 구하고, 미사일을 막고, 외계인과 맞짱 뜨고 하지 않는다. 잘 보면 스파이더맨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있다가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나타나서 위기에서 구해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슈퍼맨이 실제로 있다면 사실 두려움이다. 슈퍼맨이 화가 나거나 나에게 악한 감정을 먹으면 나는 그대로 골로 가지만 스파이더맨은 꼭 그렇지 않을 것만 같다. 비록 다른 어른 슈퍼히어로에 비해서 판단력이 떨어지고 느리지만 사람을 죽인다거나 외계인을 죽이지도 않는다.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또 슈트가 몸에 착 달라붙어 스파이더맨의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이 좋다. 멋지다.


영화 적으로는 20년 전에 나온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다. 그때 1편이 나왔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첫 상영을 봤다. 그러니까 자정을 좀 지난 시간에 예약을 해서 여자 친구와 함께 달려가서 봤는데 사람들이 첫 상영에 다 들어찼다. 스파이더맨이 움직일 때마다 촌스럽지만 우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소리도 터져 나오는 게 마치 어린 시절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그때 스파이더맨 첫 상영에 진심이었다. 빈자리가 없었다. 다 보고 나왔을 때 새벽 3시 가까이 되었는데 극장 앞이 마치 저녁 8시 같았다. 바글바글했던 극장 앞의 사람들. 그 사람들 손에 첫 상영 티켓이 들려있고 모두가 스파이더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기분은 영화를 본 후 극장에서 나왔을 때만 가능하다.


피규어도 1대, 2대, 3대가 다 다르다. 3대로 넘어오면서 피터가 16세에 맞춰져 있어서 근육의 표현이 과하지 않다. 1대 스파이디는 근육이 굉장하다. 영화로 토비 맥과이어가 했는데 이번 노 웨이 홈에 나올 가망성을 예고편에서 넌지시 흘렸다.


나는 피규어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 없어하지도 않는, 그냥저냥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무슨 말이냐? 고가의 피규어를 사 모으는 수준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피규어는 갖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정도다. 나는 피규어도 스테츄를 좋아한다. 스테츄가 뭐냐 하면 움직이지 않는, 구체관절이 아닌 딱 멈춰 있는 포징으로 나온 피규어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구체관절이면 입으로 슝, 푸악, 크아아, 하며 가지고 놀았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떤 포즈를 그대로 놓고 디피를 하는 게 좋다.

그래도 구체관절이 좋을 때가 있다. 피터 파커가 자신의 무게에 눌려 고뇌하는 이런 장면을 연출을 할 수 있다. 스테츄는 그 한 장면의 모습만 그대로 볼 수밖에 없지만 구체관절은 눈도 작아지고 생각하는 모습이나 전화를 받는 깜찍한 표정이나 포즈도 연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뉴욕의 배경을 하나 합성하면 그럴싸한 장면이 연출이 된다.

어벤져스에서의 스파이더맨에서는 나노 슈트를 입는다. 역시 근육이 슈트에 다 가려졌다. 이렇게 피규어를 촬영해서 타이탄 행성에서의 스파이더맨으로 연출을 해본다.

사진을 좀 크게 해서 보면 (영화 상으로 타노스와 싸우면서) 스파이더맨의 슈트가 더러워진 것을 작업을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니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피규어의 또 다른 재미는 이런 것이다. 피규어를 가지고 영화 속 그 장면을 연출해보고,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다. 정말 신나게 빌딩 숲을 날아다니는 거미처럼 보이는 좋은 예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다. 샘 레이미의 영화들 중에서도 좋다.

이건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의 빌런이다. 리저드도 일렉트라도 빌런이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빌런이 되었다.

다시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다. 작은 스파이디의 스테츄. 스파이더맨의 중점적인 포즈를 아주 잘 잡아냈다.

요건 또 다른 포즈의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 위의 포징이 서서 거미줄을 쏘는 버전이라면 이 포징은 어딘가에서 떨어지면서 거미줄을 쏘는 포징이다.

스파이디들의 총출동. 베놈도 보이고.

베놈 2가 이번에 나온다. 거기에는 카니지도 나오는데 베놈보다 더 못 생기고 더 악랄하고 더 강한 놈이다. 내가 알기론 원래 카니지는 베놈의 새끼로 더 거대한 악이 되는데, 베놈은 자웅동체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노 웨이 홈에 등장하는 옥타비우스다. 예고편에 모습을 나타냈다. 예고편에 닥터 옥타비우스가 등장했을 때 정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했다. 옥타비우스의 알프리드 몰리나는 모습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알프리드는 예전 영화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에도 나온다. 더 이전에 스피시즈에도 나오는데 그때나 저때나 지금이나 모습이 비슷하다.

앞으로 스파이더맨의 영화가 지치지 않고 계속 나온다면 이 버전의 영화도 나올 것 같다. 실사든 애니메이션이든.

역시 샘 레이미의 작은 버전의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의 특유의 포즈다. 만약 실제로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특수 거미에게 물려 거미인간이 된다면, 팔이 몸에 비해 길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거미처럼 움직이는데 인간의 몸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빠르게 움직일 때만 팔이 길어지는.....

역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멋있다. 피규어가 그렇다는 것이다. 근육의 움직임이 돋보여서 좋다. 만약 이런 근육이라면 어쩌면 빠르게 움직이기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만 영화니까. 흥.

이 포징은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거미줄을 쏘는 버전이다. 아무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재방송을 하면 그냥 닥치고 본 거 또 보게 된다.

이런 스테츄도 좋다. 그렇게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잘 없는 버전의 스테츄 피규어.

이런 피규어는 헤드 어택 버전이다. 너무 디테일하게 잘 만들어졌는데 재미있는 모습이다. 아주 진지한데 재미있다. 정말 심각하게 잘 만들었지만 재미있는 버전이다.

멀티버스로 만난 현실 스파이더맨과 스파이더 그웬. 영화 뉴 유니버스에서 그웬의 목소리는 영화 범블비의 그녀가 했다. 영화에서는 수수하게 보이는데 sns에서의 사진을 보면 예전 린제이 로한의 분위기다. 참 쓸데없는 이야기들의 향연. 숏버스의 저 대사가 좋아서 한 번 써 봤음.

사랑스러운 샘 레이미의 스파이디들. 떼샷이다.

이건 톰 홀랜더의 3대 스파이더맨이다. 피터 찌리릿 포징이다. 나노 슈트 전에 입은 슈트의 모습이다. 이 버전의 슈트까지는 좋은데 나노 버전은 또 별로다.

이건 스파이더맨 카드다. 아직 뜯지 않았는데 뜯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로 했다.

스파이더맨 미니카다. 뒤로 죽 당겼다가 놓으면 알지?

이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버전인데, 맨 위에 나온 2대 스파이더맨이다.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구체관절 피규어다. 이건 선물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날아온 것인데 거기에는 우리나라처럼 마트에 가면 장난감 코너에 이런 게 널려 있다. 피규어는 전문 피규어 샵에서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암튼 물 건너오느라 고생했다. 이놈아.

스파이더맨 이외의 피규어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코난과 라나, 포비, 빨강머리 앤이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 크리스마스 악몽(제목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인데 감독이 팀 버튼이 아니다), 아톰 같은 것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