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가 손주를 업고 창문틀에 원고지를 대고 글을 썼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은 옥고를 치르고 외동딸인 김영주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 손주를 돌 볼 사람은 박경리뿐이었다.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마른 북어포를 뜯어먹어가며 손주를 달래며 서서 글을 적었다.


글을 적으려면 불빛과 탁자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누워서도, 걸으면서, 불빛이 없어도 글을 적을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일일이 메모했다가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어서 글을 적을 필요도 없어졌다. 더 쉬워졌고 간편해졌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렇게 편리하고 글을 쓰기에 너무나 적합한 요즘 저 위의 박경리 소설가가 글을 적기 위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글을 쓸 만큼 절실함이 나에게 있을까.


나는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창틀에 서서 북어포를 먹으며 손주를 업고 한 손으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를 생각한다. 고작 계란 프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계란 두세 개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계란값이 오른 작금의 시기에 마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사치는 조금씩 영역을 넓혀 아직 아이로 남아있으려는 마음속의 절실함을 가져가는지도 모른다.


복어포를 뜯으며 창문턱에 서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근래에 나에게 이토록 글에 대한 절실함이 남아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분명, 글에 대한 갈망으로 잠들기 전까지 고민하며 글을 쓰다가 잠들었다. 매일 조금씩 그 시간에는 쓰고자 하는 글을 썼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환자가족 대기실에서 글을 쓰다가 잠들기도 했다. 그때 새벽에 눈을 뜨니(겨울이었는데 5시가 되면 보일러를 끈다. 그래서 추워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다른 가족이 나에게 이불을 덮어놨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때에 가졌던 절실함을 손상되지 않게 가지고 있느냐,라고 한다면 나도 자신이 없다. 지금은 분명 그때보다 방대하게 글을 쓰고 있다. 습관과 루틴이 고착되어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에 맞게 방호막을 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상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메모를 해놓고 모두가 잠든 밤이 도래하면 노트북을 열어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받은 나는 신나게 글을 적었을 때의 나에게는 마음의 사치는 적어도 없었다. 그때 맛있게 먹었던 계란 프라이는 지금 먹는 맛과는 또 달랐다. 그때는 고작 계란 프라이였고 단골 식당에서 계란 프라이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박경리의 토지는 못 읽었다. 아마 앞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허장강, 엄앵란과 황정순이 나오는 영화로도 몇 번 봤다. 통영의 유지 김약국 네가 일본인이 들어옴으로 해서 몰락해가는 과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을 했던 유현목 감독은 붕괴해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 ‘오발탄’도 만들었다. 나에게 있어 재산이라 함은 흑백 시대의 한국 영화를 잔뜩 본 기억이다.


박경리 소설가는 글을 써야만 하는, 그리고 그의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절실함을 넘은 어떤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초기 작품들이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경리는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비극은 칼날이 되어 베고 찌르고 아프게 했다. 고 생각한다.


예술은 잔인하다. 예술은 삶과 흡사하고 밀착되어 있다. 삶도 잔인하다.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세운다. 고작 계란 프라이를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건 잔인한 매일을 숨을 쉬게 해 준다. 북어포를 씹어 먹으며 창문 틈에 서서 손주를 업고 글을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26년 동안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대문호라는 칭호는 박경리 소설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소설 ‘토지’를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의 딸 김영주 토지문학 재단 이사장이 토지를 알리기 위해 생을 보냈다. 그랬던 김영주도 201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이전에도 매일 먹었던 고작 계란 프라이를 앞으로도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의 사치를 줄이고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열심히 글을 적겠다. 연일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마지막 여름을 일별 한다. 매미소리가 좀 더 크게, 길게 들려온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mLc5FHrVTP0

가사가 좋아서 왕왕 듣게 되는 하얀 나비. 아주 많은 리메이크가 있는 노래가 이 노래, 하얀 나비가 아닐까 싶다. 김정호는 폐결핵 때문에 일찍 죽었다. 김정호는 폐가 망가지는대도 요양원에서 뛰쳐나와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아마 딸에게 아빠가 가수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래를 힘겹지만 불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련하다. 아련함이란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될까.


김정호는 솔로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사월과 오월’ 그리고 ‘어니언스’에서 활동을 했다. 풍부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음악만을 하게 두면 되는데 대마초 파동에 연관도 없는 김정호가 연루되어서 피해자가 되고 만다. 김정호가 죽은 나이 고작 33살. 그의 노래 ‘이름 없는 소녀’는 정말 호소력 짙다.


재미있는 건 저 유튜브 속 윤복희 쇼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정호의 영상 댓글에 가수 윤복희가 댓글로 김정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 어린 대댓글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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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가장 재미있는 모습은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늘 그 자리에 이는 물결과 그 색이 그 색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바다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재미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멍에 빠지면 아무튼 돌처럼 가만히 있게 된다. 세속적인 것은 잊고 체재니 나르시시즘이니 그런 것 따위 그저 다 잊게 된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는 이유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태어나서 사회에 흘러 들어가게 되면 복잡한 인간관계와 돈에 얽힌 것들에 늘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바다를 보며 세금을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생각 없이 멍 하게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하늘도 그런 비슷한 이유로 자주 쳐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닷가에서는 갈매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번에도 갈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했다. 지난번에는 갈매기를 따라 하고픈 바닷가의 비둘기의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갈매기와 까마귀의 이야기다. 바닷가에는 갈매기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각종 새들이 있다. 각종 새들이라 하면 비둘기나 도요새도 볼 수 있다. 참새와 제비도 바닷가 근처에서 날아다닌다. 그리고 까마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까마귀들은 겨울이면 많이 볼 수 있는데 근래에는 여름에도 무리를 지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https://brunch.co.kr/@drillmasteer/1820

갈매기들이 바닷가에 자주 오지 않고 까마귀들이 어슬렁어슬렁 무리를 지어 동네 간섭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까마귀들이 바닷가의 갈매기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까마귀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바닷가에 있던 새들을 겁주기 시작했다.


어이, 이제 이 구역은 우리 거야, 그러니 당장 여기서 벗어나. 까악. 까악.


까마귀들은 까만 옷으로 무장을 하고 여러 새들을 위협한다. 까마귀들이 오면 동네 새들이 무서워서 바닷가에서 도망을 가고 만다. 닭처럼 보이는 비둘기들은 아예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무법자 까마귀들 앞에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갈매기 녀석은 까마귀들이 위협을 하든 말든 흥, 하며 어부가 던져 준 물고기를 맛있게 뜯어먹고 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는 까마귀들.


야, 저 녀석 우리를 겁내지 않네. 신경도 안 쓰잖아. 저 미친 갈매기는 뭐야. 까악. 까악.


까마귀들이 자신들을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갈매기 녀석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갈매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서 맛있게 물고기를 뜯어먹었다.


냠냠, 아이 신나. 이렇게 맛있는 물고기를 먹게 되다니.


그러다가 까마귀들이 하도 시끄럽게 까악 까악 거리니까 갈매기가 까마귀 세 마리를 쳐다봤다.


엥? 뭐야? 까마귀 세끼들? 너희들? 너희들 지금 여름인데 덥겠네? 우헤헤.


갈매기는 귀찮은지 먹던 물고기를 들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냠냠 맛있게 물고기를 먹는 갈매기 녀석. 기가 막힌 까마귀들은 한 마리를 더 불렀다. 까마귀는 총 네 마리가 되었다. 아마도 까마귀들 중에 대장이 온 것 같았다. 이제 갈매기 한 마리를 혼내줄 때가 온 것이다.


어이, 대장 왔어? 저 녀석이야, 저 녀석이 혼자서 아주 큰 물고기를 먹고 있어. 까악. 까악.

뭐야? 정말이야? 우리 구역에서 그렇다 이거지? 가서 뺐어오자. 까악.


그렇게 까마귀 무리는 작당모의를 하고 갈매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무리가 갈매기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물고기를 먹던 갈매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딴청 하는 까마귀 한 마리.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는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 마리가 이야기 중이다. 그런데 말이야 어제 우리 집에 까치가 와서 잠들었지 모니, 어머? 그래? 호호호. 까아악.


갈매기는 까마귀 무리를 한참 노려봤다. 마치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내 음식에 눈독 들이지 마라.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라고 했다.


갈매기를 가까이서 보면 크기가 크다. 날개를 펼치면 어린이 다리 만하다. 그리고 눈도 아주 무섭다. 하지만 까마귀들 역시 크기가 아주 크다. 비둘기는 아예 이 근처에 오지도 못한다. 까마귀들은 우르르 달려가서 갈매기를 혼내주고 먹이를 뺐어오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가 까마귀 무리 중에 대장이 갈매기에게 한 마디 했다.


물고기 내놔! 까악!


그러자 바로 까마귀 무리 곁으로 달려오는(절대 날아오지 않는다. 갈매기의 본분은 다다닥 달려서 가는 것) 갈매기 녀석. 갈매기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까마귀 무리로 간다. 이 구역 미친놈 갈매기는 무서운 것이 없다. 그러자 까마귀 무리 중에 가장 겁이 많은 까마귀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간다.


뭐야 저 갈매기 새끼, 도대체 왜 겁을 먹지 않는 거야! 까악.


이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는 그렇게 까마귀들과 맞짱을 뜨려 했다. 하지만 무서움을 느낀 까마귀들은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에게 욕을 하며 전부 멀리 달아난다.


그런데 이 틈을 이용해서 오른쪽 바다에 있던 갈매기 두 마리가 슬슬 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 저 갈매기 녀석이 왜 이 구역의 미친놈이었나 하면, 지 물고기에는 갈매기들도 오지 못하게 했다. 그 어떤 갈매기가 날아와서 물고기를 먹으려 해도 전부 다 막아내는 이 구역 미친놈 갈매기. 이 구역 미친 갈매기 놈은 갈매기든 까마귀든 참새든 도요새든 자신의 먹이를 건드리면 누구든 달려들어 물고리를 지켰다. 대단한 놈이었다. 끈질긴 놈.


문득 갈매기 소리를 내고 싶지만 까악은 까마귀고 갈매기 소리는 어떻게 되지? 아무튼 바닷가에 있으면 큭큭큭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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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을 먹을 때 찍먹이냐 부먹이냐, 이걸 가지고 상반된 두 의견이 대립을 한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산이냐 바다냐, 대실이냐 숙박이냐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힘든 문제라고 한다. 탕수육을 일 년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한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는 힘드나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건 기호의 문제고 상반된 두 사람이라면 대립이 가능하다. 그런데 탕수육을 주문해서 반은 찍어 먹고, 반은 부어 먹으면 되지 않을까.


찍먹이냐 부먹이냐는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문제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보통 택시를 잡아서 타는 사람들은 평소에 택시비가 너무 아깝다. 악착 같이 택시비에 집착을 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택시를 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별거 아닌데 이 별거 아닌 게 별거 아닌 게 아닌 것이다. 그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파게티를 먹을까 피자를 먹을까, 같은 고민이 아니다. 탕수육은 반으로, 또는 삼분의 일로 분할이 가능하기에 부먹, 찍먹의 고민은 매체를 통한 언어유희로 끝나야 한다.


많은 책과 명언에서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에 차서 하루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벤트가 일어나는 하루는 거의 없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은 오늘처럼 흘러가리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오히려 호러블 하게 보내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또 재미라고는 1도 없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라고 시작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전혀 기대가 없는 가운데 어떤 작은 이벤트가 일어나면 그건 정말 행운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희망 고문 같은 낙관보다는 낙관적이지 않은 비관에 가까운 의식을 가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탕수육을 작년에는 한 번도 안 먹었고 올해도 아직 한 번도 안 먹었는데 딱히 이유가 있어서이기보다는 그저 손이 가지 않아서 먹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게 부먹이냐 찍먹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부먹 쪽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이다. 김밥으로 하루 세 끼 꼬박 먹어라고 해도, 일주일을 김밥으로 때우라고 해도 나는 큰 소리로 넵, 하며 대답할 수 있다.


김밥이라는 음식을 먹을 때 전혀 귀찮지 않다. 가시를 발라 먹을 필요도 없고, 구워야 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 쌈 싸 먹을 필요도 없고, 부글부글 끓여 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집어서 입에 넣으면 끝이다. 게다가 칼로리도 높아서 한 줄만 먹어도 몸에 필요한 칼로리는 다 찬다고 한다.


한 손으로 김밥을 뜯어먹는다면 다른 한 손은 놀기 때문에 책이 있다면 소설을 보면서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음식인가.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귀찮은 음식들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져먹고, 구워 먹고, 발라먹고 하는 음식들은 전부 귀찮다. 남들이 죽고 못 사는 ‘게’ 요리는 아주 질색이다.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서 발라 먹어야 하는 삶은 게 요리는 맛을 떠나 너무 귀찮다. 남들은 그 재미로 먹는다는데 나는 도통 그 재미에 도달하지를 못 한다. 주문하면 숟가락 들고 그냥 딱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좋다. 주문하면 탁 나오는 치킨, 족발, 수육, 카레, 칼국수, 스파게티, 빵, 삼계탕 이런 음식이 좋다.


그래서 탕수육을 먹을 때 굳이 찍어 먹기보다는 한 번에 부어 놓고 먹는 게 나는 더 낫다. 사람들은 탕수육을 바삭하게 먹어야 한다, 소스 맛을 즐겨야 한다, 같은 말들을 하는데 나는 다 거기서 거기다. 눅눅해도 탕수육은 맛있고 바삭해도 탕수육은 맛있다. 그래서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가 없어서 그냥 간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간장이 없어도 상관없다.


맛으로 따진다면 눅눅해지면 탕수육 맛이 떨어진다는데, 그리하여 찍먹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눅눅해도 맛있는 탕수육이 맛있는 탕수육이 아닐까. 눅눅해졌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면 그 집 탕수육은 맛이 없는 게 아닌가. 갓 나온 탕수육이 맛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갓 나온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있나. 오죽하면 튀기면 신발도, 지우개도 맛있다는 소리가 나올까. 시간이 지나 식어도 맛있는 탕수육이 진짜 맛있는 탕수육이다. 커피도 그렇다. 식어도 맛있는 커피가 있다. 그런 커피가 맛있는 커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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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고 있는 카세트테이프


요즘, 폭염 직전부터 해서 죽 듣고 있는 음악들이다.

미스터 빅은 아마도 2집이고,

알라니스 모리셋은 아이로닉이 들어있는 앨범,

마이클 잭슨은 가장 많이 좋아한 데인져러스 앨범 두 장 중에 첫 번째 앨범이고,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앨범에는 아직도 인기가 많은 노래 ‘톤’이 있고,

본 조비는 물기로 미끄러운 앨범과 존 본 조비 1집 - 영화 영건 2 주제곡 앨범,

유투의 베스트 앨범,

신해철의 넥스트 1집,

이승환 2집,

마돈나(는 마다나로 발음하는 게 훨씬 좋은데 마돈나라고 해야 한다니, 스칼렛 조핸슨도 스칼렛 요한슨으로 불러야 한다니) 레이 오브 라잇 앨범,

노 다우트 앨범은 돈 스피크가 들어있는 앨범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i wanna dance with somebody가 들어 있는 앨범이다. 정말 신나는 노래다. 제목부터가 신남 신남이 가득하다.

장국영,라고 써 놓은 카세트테이프는 장국영의 앨범인데 레벨을 잃어버려 볼펜으로 장. 국. 영. 적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이 앨범에 없다.

그리고 슈만의 소품집이 하나 있고,

시나위 앨범인데 몇 집인지는 모르겠고 김바다가 보컬을 할 때다. 김바다의 목소리에 빠져서 엄청나게 들었다. 그런데도 테이프가 늘어지거나 그런 문제는 없다.


테이프는 한 삼백 개 정도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대부분 잃어버리고 백개 정도 남았다. 게 중에 요만큼 들고 와서 듣고 있다. 아 저기 장국영 밑에 있는 테이프는 라디오 헤드의 더 밴드즈 앨범이다. 역시 미친 듯 듣다 보니 테이프 두 개, 시디 한 장을 구입했다. 라디오 헤드의 이 앨범은 시디로 테이프로 번갈아가며 듣고 있다.


마돈나의 일화 중 하나는 싸이가 한창 인기가 많아서 월드투어를 할 때 마돈나와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때 두 사람은 연습을 하면서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쉴 때 공연 바닥에 누워서 숨을 할딱 거리고 있는데 마돈나가 싸이에게 말했다. 이따 공연할 때에는 리허설과 다르게 내 몸의 어떤 곳에서도 터치를 해도 되니 진심으로 춤을 추라고 했다.


노 다우트의 그웬 스테파니는 돈 스피크를 부른 이후 굉장한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노 다우트는 사실 엄청난 펑크 록 밴드인데 조용한 돈 스피크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인기를 얻으니까 다른 좋은 노래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웬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광고 모델부터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그웬은 아무튼 대저택에 살며 어째 늘 그 모습으로 늙지도 않는 것 같다.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했는데 떼창 할 줄 알았는데 어째 기운 빠지는 돈 스피크 따라 부르기.


본 조비가 독집으로 존 본 조비 1집을 냈을 때 같이 본 조비 그룹을 만들었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에게 말 안 하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리치 샘보라도 열 받아서 자신도 노래를 불러 앨범을 내기도 했다. 당시에 본 조비도 잘 생겼지만 리치 샘보라는 섹시의 아이콘이었다. 본 조비보다 더 잘생긴 얼굴로 온 몸이 섹시 섹시했고 기타를 무지막지하게 쳤다. 세상의 여자들이 리치 샘보라에게 목을 맸다. 기타리스트라 노래는 못 부를 생각하겠지만 노래도 엄청 잘 불렀다. 그러니 독집까지 내지. 본 조비의 노래는 대부분 본 조비와 리치 샘보라 둘이서 만들었다. 만난 여자들도 엄청 유명한 여자들인데 그 이야기는 패스. 본 조비에서 존 본 조비가 단연 인기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루피들은 대거 리치에게 몰리기도 했다. 아무튼 그 잘생긴 얼굴과 기타 실력으로도 모자라 옷에도 관심이 어찌나 많았던지 몇 해 전에는 어랍쇼, 일본의 한 홈쇼핑에서 나와서 옷을 팔고 있더라. 새삼 놀라고 웃겼음.


유투는 좋은 노래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 이렇게나 좋은 노래들을 이렇게나 많이 부를까,라고 생각이 들다가 사진 속 가수들이 대부분 좋은 노래들이 많구나. 유투는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슈퍼밴드가 되었다. 유투가 공연을 하기 위해 한 번 움직이려면 어마어마한 물량이 따라가야 한다. 유튜는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서는 돈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 기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곳으로 가서 노래로 기금을 모은다거나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분단국가라서 오래전부터 섭외를 했는데 늘 실패였는데 19년에 드디어 한국 공연을 했다. 76년에 데뷔한 이래 43년 만에 내한해서 공연을 했다. 유튜브로 찾아보면 정말 감동적이다. 유투의 보노는 눈에 문제가 있어 해가 비치는 공연장에서는 항상 색이 진한 안경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모든 노래들이 작살나지만 메리제이 블라이즈와 같이 부른 ‘원’을 보면 둘 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다. 감동적이다.


세계 공연하면 마이클 잭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은 두 대의 유조선만큼 큰 배에 물량을 실어서 한 대는 현재 공연할 나라로 가서 설치를 하고 공연을 한다. 그렇게 마이클이 공연을 할 때 다른 한 척의 배가 다음 나라로 가서 무대 설치를 했다. 그 규모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인원과 물량을 자본으로 따져 놓은 정보가 있는데 궁금하면 검색해 보기 바람요.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영화 ‘디스 이즈 잇’을 찍는 도중에 죽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후반 작업을 마이클이 없는 와중에 완성했다. 디스 이즈 잇이 후에 극장에서 했을 때 맨 마지막 날 맨 마지막 시간에 봤던 기억이 있다. 마이클이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 알게 되는 영화였다.


이런 슈퍼밴드의 가십은 이제 유튜브에서 아주 정확한 정보로 알려주는 채널이 많다. 몹시 전문적이고 아주 정확하다. 나처럼 어딘가에서 주서(주워) 들어서 큭큭거리면서 하는 이야기와 차원이 다르다. 저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할 때에는 슈만 빼고 저기 있는 가수들이 전부 살아있었는데, 장국영도 죽었고, 미스터 빅의 기타 펫 토페이도 죽었고, 마이클 잭슨도 죽었고, 신해철도 죽었고 휘트니 휴스턴도 죽었다. 누구나 다 죽는데 죽음이라는 게 왜 이렇게 멀게 만 느껴지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분명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죽음이라는 건 사람에게 늘 달라붙어 있는 터부 같다.


그런데 이 음악들보다 더 많이 듣는 노래가 요즘 '넥스트 레벨'이다. 노래가 정말 너어어무 좋다. 원곡 때 정말 많이 들었다. 묵직하고 톤의 움직임이 덜 하면서 늪으로 빠질 듯한 원곡의 넥스트 레벨. 그러다가 이번에 에스파가 조금 발랄하게, 찐뜩찐뜩하게, 청명하게 넥스트 레벨을 불렀다. 특히 닝닝의 목소리는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청량해서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원곡을 많이 들어서 이제 그만 들어야지 할 때 에스파의 광야 세계관 '넥스트 레벨'이 나와 버린 것이다. 원곡도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는데 원곡은 19년 홉스 앤 쇼에 삽입되어서 영화를 보다가 뭐야 이거? 너무 좋잖아. 하게 되었는데 운전할 때 들어야'만' 하는 노래다. 운전할 때 들으면 정말 끝내준다. 그럼 오늘은 내 마음대로 선곡으로 원곡 '넥스트 레벨' 한 번 듣자.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뭉친 해티가 등장할 때 넥스트 레벨이 나온다.

https://youtu.be/JRZtD3VdlWQ

그나저나 SM에서 수만이 형 이제 손 땐다는데 이제 그럼 뭐 어떻게 돌아가? 유영진이 수장이 되고 뭐 강타가 이 인자가 되고 뭐 그런건가, 아 김민종도 있었지. 뭐 그렇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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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5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사진 보니, 갑자기 신해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교관 2021-08-16 12:43   좋아요 0 | URL
중독성있는 마왕의 목소리 ㅋㅋ 그립네요 :)
 

이 글은 폭염으로 아스콘에 계란을 터트리면 그대로 익어버릴 일주일 정도 전에 써 놓은 글인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시간은 절대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간이라는 건 몹시 좋아하는 사람과 아주 싫어하는 사람으로 갈라놓기도 한다. 오늘 오전 바닷가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어제 밤새 비가 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그래서 창에 빗물이 붙었다. 다다닥 하며 밤새 세차게 비가 와서 창에 붙었다. 창에 붙은 비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비가 다시 내려 물방울에 붙으면 무게 때문에 밑으로 떨어져 소멸하고 만다. 창에 붙는 물방울을 떨어트리려는 비와 악착같이 창에 붙으려는 물방울을 보며 마치 아등바등 악착같이 인생을 부여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악착같이 부여잡고 있지만 무게가 무거워지면 밑으로 떨어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멸해 버릴 텐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참으로 아등바등하며 보낸다. 아무리 이렇게 지낸다고 해도 시간은 손을 내밀거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좀비처럼 의지만으로 앞으로 앞으로 갈뿐이다. 그런 생각이 오전에 잠시 들었다.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 가면 늘 그 시간에 나와서 책을 읽는 한 아버님을 본다. 폭염이라 밖이 더울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후 6시가 지난 시간 강변의 그늘이 진 곳은 시원하다. 바람까지 불어서 정말 책 보기에는 딱이다. 아버님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와서 책을 본다. 볼펜으로 줄을 그어 가며, 옆에 필기를 해 가며 읽기 때문에 몹시 집중한다. 그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인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책을 읽는다는 게 의미 없어 보이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어릴 때는 했는데 노인이 되면 사실 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대부분 시간을 멍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모여서 한 곳을 바라보며 있거나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게 아니라면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틀어 놓고 본다. 그에 비해 저 아버님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곳에 나와서 책을 읽는다. 나이가 들어 책을 읽은 게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던 어린 날들을 반성한다. 책을 읽어 상상하고 공부를 하는 것만큼 하루하루를 충족하게 보낼 수 있는 건 나이 들어 없는 것 같다. 좀 떨어진 곳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 아버님이 와서 자리를 잡고 책을 읽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면 꽤나 마음이 안정된다. 아버님의 자세도 아주 안정적이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균형된 자세를 잡는다. 흐트러짐도 없다.


이런 아버님이 있는가 하면 작년부터 거의 매일 나오는 영감님이 있는데 노 마스크다. 정말 꼴 보기 싫다. 마치 이 공간이 자신의 집인양 생수를 받아서 입을 헹군 다음 카악 하며 가래를 뱉는다. 딱 꼴 보기 싫다. 작년에는 어두워지니 집에서 생수통 가장 큰 통을 가져와서 숨겨 놨다가 사람들이 뜸해지니 생수를 받아서 갔다. 나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다. 물통이 어찌나 무거운지 영감도 잘 들지도 못하는데 욕심 때문에 어떻게든 들고 간다. 며칠 전에는 5분만 걸어가면 공중화장실에 있는데 책 읽는 아버님 옆의 풀숲 맞은편에서 소변을 봤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계속 그 영감을 쳐다봤다. 영감이 나의 시선을 피했다. 영감은 그 나이에 비해 몸이 좋고 건강하게 보인다. 매일 근력 운동을 하니 근육이 아직 발달해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니어 헬창 같은 몸은 아니다. 걸음걸이는 거만하다. 늘 아주 천천히 거만하게 걸으며 팔 운동을 하면 입을 헹구고 가래를 뱉고 다리 운동을 하면 거만하게 좀 걸어서 물이 있는 곳에 가서 입을 헹구고 가래를 뱉는다. 어제는 영감이 타는 자전거를 세우다가 잘 못 발을 디더 옆으로 넘어졌는데 누군가에게, 자신을 이렇게 넘어지게 만들 게 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에게,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욕설을 심하게 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만약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다면, 요컨대 왜 쳐다보느냐? 같은 말을 하면 나는 주머니에 항상 폰이 두 개라, 하나는 대 놓고 영상을 찍으며, 영감님 마스크 왜 안 씁니까, 여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있습니까, 마스크 쓰고 싶어 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섯 샐 동안 마스크 쓰세요, 안 그럼 신고할 겁니다. 1, 2, 3, 한 다음 다른 폰으로 바로 신고를 할 요량이다. 영감은 마스크를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다섯 샐 동안 마스크를 쓸 수 없다. 아무튼 꼴 보기 싫은 영감이다.

그리고 매일 나오는 초딩들이 있다. 두 명의 초딩으로 6학년으로 보인다. 둘 다 통통하다. 이 녀석들 늘 저기에서 논다. 매일 저기에서 빗물이 빠지는 하수구에서 뭔가를 늘 찾고 있다. 어느 날 보니 메뚜기 중에 방아깨비를 잡는 것이었다. 방아깨비가 저기에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메뚜기를 거의 볼 수 없는데 초딩들이 메뚜기를 매일 저기서 잡는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방아깨비의 다리를 하나씩 뜯어서 죽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곤충을 죽이는 재미 때문에 매일 저기에서 메뚜기를 찾고 있었다. 초딩 때 벌레 죽이는 재미를 알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 잠자리는 날개를 떼서 서서히 죽인다거나, 좀 큰 개미는 더듬이를 떼어 낸다거나. 하지만 요즘은 곤충이 드물어서 곤충을 찾기도 힘든데 녀석들 잘도 찾아내서 다리를 뜯어 죽이는 재미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방아깨비의 다리를 하나씩 떼서 바닥에 버린 다음 몸통만 남은 방아깨비를 버리고 다시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시커멓게 탄 내가 그 앞에 딱 가서 버티고 서서 초딩놈들을 봤다.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메뚜기를 잡아서 죽이는 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대 놓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사지가 분리된 채 버려진 방아깨비 앞에 서서 저 녀석들을 노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슬슬 본다. 내가 발을 탁 구르며 웍! 하는 큰 소리를 내면 호다닥 도망갈 것만 같다. 초등학생 녀석들도 내가 가면 늘 있으니 올여름에는 거의 매일 나왔다. 매일 나와서 방아깨비를 잡아서 다리를 하나씩 떼서 죽였다. 하루에 방아깨비의 세계가 하나씩 죽어갔다. 이 좁은 공간에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이 넓은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호러블 한 인간들이 있을까. 태양에 익은 풀냄새가 나고 메뚜기가 초딩들에게 죽어가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한 아버님은 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여름인 것이다.


조깅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면 자연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바람이 그린 그림'


빗질하는 하늘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금빛 하늘


붉은 구름의 역습


조깅 후 포토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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