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하는 영화 이야기,라고 쓰고 그냥 영화 리뷰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저냥 떠들어대는 영화 이야기. 영화는 일상 중에서 일탈을 맛볼 수 있는 예술의 한 부분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 사진, 의상, 미술, 건축, 자동차를 보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이 세계를 떠나가 있는 기분이 든다. 



1. 킹덤: 아신전

https://youtu.be/rO3gF04G-2I

생사초를 먹은 노루를 호랑이가 먹고 그 호랑이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이었던 생사초가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존재하는 인간을 위협한다. 그 중간에 아신이 있다.


킹덤 시즌 1, 2에서는 가장 권력을 쥔 자들이 가장 밑바닥의 서민들을 학살한다. 이제 그 반대를 통해 모순과 역설을 말한다. 킹덤 아신전 첫 장면에서 화면은 밑에서 나무가 빼곡한 하늘이 반영된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조선, 평온한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생사초를 먹은 노루가 그 물에 빠지며 세상은 흐트러진다. 그렇게 킹덤 아신전은 시작한다.


아신은 악착같이 살아간다. 조선인도, 여진족도 아닌 아신은 처절하리만치 돼지우리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 아신이 분노를 넘어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표정으로 바뀐다.


아신의 얼굴에서, 그 표정에서 분노, 희망, 그리고 절망의 한 올까지, 모든 감정이 한순간 확 걷히는 표정이 눈빛에 나타난다. 그건 바로 체념이었다. 일종의 안정된 코마 상태. 마치 말기 환자가 모든 것을 체념한 후 나타나는 온후한 표정. 아신은 그렇게 체념의 상태가 되어 인간 그 이상의 인간이 된다.


그 체념의 표정을 지은 전지현의 연기가 아주 좋았다. 킹덤 아신전은 한국판 왕좌의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손톱의 더러움, 누런 이빨, 해에 그을린 볼살 등 마치 다큐를 보는 것 같은 미장센과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극본의 힘이 굉장했다.


앞으로 킹덤이 더욱 기대되는.




2. 정글 크루즈 

https://youtu.be/OMFHBSz0Nk8

정글 크루저가 시작할 때와 프랭크가 회상할 때 메탈리카의 ‘낫띵 엘스 메럴’이 나온다. 정말 학창 시절에 메탈리카를 미친 듯이 들었던 나로서는 도입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옆에 앉은 일행에게 야, 메탈리카 야!라고 했지만 일행은 그게 뭐? 같은 표정으로 영화만 관람.


영화 속에서 낫띵 엘스 메럴은 노래는 없이 연주만 흘러나온다.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에 있는 곡으로, 대체로 암울하고 우울하지만 믿음과 함께 있음을 말하는 노래다. 암튼 요즘의 넥스트 레벨보다 더 좋아했음. 넥스트 레벨 커버 치는 영상도 재미있음. 런던, 파리, 러샤, 브라질은 남자 녀석들이 제껴라 제껴라 하고, 일본, 중국 재미있음. 그나저나 에스엠은 도대체 광야는 왜 포기 못함?


여하튼, 정글 크루저는 구니스, 인디애나 존스, 커스롯트 아일랜드, 피터 잭슨의 킹콩을 거쳐 도달한 느낌. 모험과 모험이 모험으로 모험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미! 국!이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 생각된다. 앞서 말한 심각하지 않고 자본이 충만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 식 판타지 영화를 이어받았다.


그간 에밀리 블론트의 영화들 중에서 이 영화의 에밀리가 제일 러블리하다. 몹시 사랑스럽다. 치켜뜬 눈동자며, 나만 살면 되지만 동물들을 구하는 모습이며, 똑똑한데 멍청하며, 안 그런 척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나온다. 러블리의 끝판이다. 실제로도 그런 모습인데 영화 유튜버 천재 이승국과 비대면 인터뷰하는 모습을 봐도 아주 장난기 넘치는 사랑스러움으로 대화를 한다. 한 번 보시길.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며 낫띵 엘스 메럴은 정말 우주 최고로 좋은 노래다.




3. 래치드

https://youtu.be/CE1KOhXX2no

래치드는 오래전, 1940년대의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아주 기묘하고 난해하고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다. 밀드레드 래치드라는, 어떤 단어로 지정할 수 없는 간호사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샤론스톤도 나오고 신시아 닉도 나오고 주디 데이비스 등 유명한 배우들이 와장창 나온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라 폴슨의 의문스러운 간호사 연기가 좋다. 사라 폴슨은 꼭 우리나라의 조여정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사라 폴슨도 꽤나 많은 영화에 나왔다. 아마도 이대로 필모를 이어간다면 줄리안 무어처럼 되지 않을까. 한 50대가 되어서 완전한 두각을 드러내는 배우. 뭐 그런.


사라 폴슨의 최근의 화제작은 ‘런’이었다. 아무튼 넷플 미드 ‘래치드’는 정말 재미있다. 스토리, 호러, 고어,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딱인 영화다. 잔인한 듯 아닌듯한데 몹시 고어적인 장면도 많다. 요컨대 팔이 잘린다거나, 다리가 총에 맞아 터진 모습 같은 장면은 쏘우처럼 드러내 놓고 고어적인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또 19금 장면 역시 그렇지 않은데 몹시 야하다. 드러내는 장면은 없지만 간호사가 남자 환자의 자위를 해주는 장면은 대화와 두 사람의 얼굴만 보여주는데 대 놓고 보여주는 영화보다 더 야하다.


시리즈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면서 점점 무섭고 호러에 가깝게 흘러간다. 미쟝센이 아주 좋다. 배경과 정신병원의 내부 색감은 박찬욱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가 많다. 예고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미술이 죽인다.




4. 보스 베이비 2

어릴 때도 만화 본다고 엄청 혼났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더 보는 것 같네. 귀여움과 귀여움으로 심장어택 당하다가 감동의 풀 스윙을 먹어 버렸다. 더위 먹는 것보다 낫지.


닌자 베베 귀염둥이를 나올 때 어쩔 뻔. 티나의 막 나가는 귀여움과 타바타의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좋을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신나고 귀여워서 죽을 것 같지만 어린이보다 으른이가 보면 더 좋을 영화가 아닐까 싶다.


내 아이들이 나와 점점 멀어진다고 느낄 때(싫지만 분명 그런 시기가 오기 때문에) 보스 베이비 2를 보라. 돈이 좋고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어도 지나고 보면 꼭대기는 외롭다.


정신없이 보다가 정신 차리고 난 후에는 뭉클한 영화 보스 베베 2였다.




5.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  

https://youtu.be/58mGvTiQ4Yg

영화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는 26년 전에 마이클 조던이 벅스 바니와 손잡고 외계 종족들과 농구 한 게임을 해서 지구를 구하는 스페이스 잼의 후속 편이다. 학생들과 어른들의 우상 마이클 조던과 아이들의 우상인 벅스 바니가 만나서 농구로 빌런들을 무찌른다는 이야기.


마이클 잭슨의 노래 ‘잼’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이클 조던이 나와서 농구를 한다. 거기서는 마이클 잭슨도 살아서 마이클 조던과 같이 농구를 하면서 노는 모습이 마치 꿈처럼 몽글몽글하다. 랩 하는 부분에는 크리스 크로스도 나온다. 걔네들이 누구냐면 미국의 량현 량하 같은 애들인데 빌보드 찍었었다. 랑현 량하를 크리스 크로스를 보고 따라 만들었을 것이다 박진영이.


당시 흑인 음악에 빠져 있었으니까 박진영이. 그래서 빌보드 찍고 세계 난리 난 크리스 크로스 같은 어린 노무 세키들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크리스 크로스의 점프는 지금 들어도 신난다. 하하하하하 학교를 안 갔어, 와는 다르다. 박진영이 너는 이번에 '잇지' 노래 가사도 똥망이야 알지. 프로듀서나 하란 말이야. 크리스 크로스 형제 중에 한 명은 얼마 전에 죽은 것으로 안다.


여하튼 그래서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는 근간의 농구 천재 릅신이라 불리는 르브론 제임스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인 에이아이 같은 돈 치들에게 빼앗긴 아들을 찾기 위해 벅스 바니와 농구팀을 이루어서 대결을 한다. 마이클 조던처럼 연기할 엄두가 안 났던지 온전하게 만화가 되어 벅스 바니와 투니버스 캐릭터들과 한 팀을 이루는데 그 과정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빌런으로 워 머신 돈 치들이 나오는데 돈 치들은 첫 연기가 30년 전인데 그때 모습이 마치 지금 돈 치들의 1초 전의 모습 같다. 돈 치들은 날 때부터 저런 얼굴로 태어난 것 같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워너 브라더스의 작품들이 그대로 나오고 그 안으로 벅스 바니와 릅신이 만화가 되어 들어간다는 점이다.


매트릭스에서도, 매드 맥스의 그 장면에서도, 킹콩과 해리포터에도, 그리고 왕좌의 게임에서도 똑같이 용을 타고 나온다.  이런 장면 너무 재미있고 좋았음. 다시 실사로 돌아온 릅신. 실사, 2D, 3D의 완벽 조화. 시청 고고고.




6. 발신제한

https://youtu.be/WSmgHodVqDk

영화 발신제한을 보면서 든 생각은 빌런에게 제발 사연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그저 돈이 좋은 똘아이가 폭탄 설치하고 끝으로 치달았으면 한다. 빌런에게 딱한 사정을 주고 복수를 위해 이런 일을 펼치지 말고 그냥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이코패스라서 그냥 돈이 필요해서 재미로 폭탄을 설치하고 사람을 죽여줬으면 한다.


발신제한의 연기들을 보면서 호평이 가득한데 나만 보면서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경찰들이 미운 건 알겠는데 정말 너어어어어무 무능하고 답답하게 연출을 했다. 왜 이러는지 당최 모르겠네.


제네시스 광고하는 김에 버튼을 누르면 창의 한 편에 홀로그램으로 아내와 대화를 하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비상약 상자가 튀어나오고,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수륙양용차가 되어서 바다가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질주를 하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붕 하며 바다 위를 달려가고, 어떤 버튼은 날개가 나와서 그만하자.


아무튼 자산어보 한 번 더 봤는데 조우진 역시 대박임. 아 진정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라.




7. 노바디

https://youtu.be/zeWm0Snl-Fo

질질 끌지 않는다. 답답함이 없는 테이크의 향연. A급 바로 밑까지 바짝 다가온 B+급의 액션이라 더 마음에 들었던 영화.


일상에서 늘 보던 중년 아저씨의 이유 불문 악당을 향한 차별이 없는 통쾌한 타격을 영화 마지막까지 보여준다. 존 윅의 스핀 오프라고 까지 소개하는 ‘노바디’의 빌런들은 어쩌면 존 윅에게 깔끔하게 당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카타르시스가 오랜만에 팍팍 터져 나왔던, 존 윅이 이성을 잃게 만든 게 기르던 반려견이었다면 하치에겐 딸이 아끼던 반려묘의 팔찌가 사라지면서 폭발하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분리수거를 하며 출근 후에 책상에 앉아 엑셀이나 하는 반복의 매일을 보내는 허치. 어느 날 밤 집에 강도가 들어와 아들 대치를 하지만 허치는 저항 없이, 저기 돈 있으니 가져가라면서 그저 강도를 보내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또 주위 모든 이들에게 무능하고 나약한 아버지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허치의 선택을 손뼉 쳐주고 싶다. 그렇잖아, 영화지만 현실과 타협을 한 장면이었다. 아버지로서 어쩌면 가장 바람직하고 멋진 모습이 아닐까. 생활을 ‘유지만 하고 있다’고 속상했던 때가 그리운 지금은 ‘유지만 하면 좋겠어’가 된 요즘이다. 살도 계속 찌는 사람들이 늘어나 ‘유지만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허치가 인내를 가지며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삶이든 살이든 유지하기 힘든 요즘에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잘 흘러가나 싶지만 끔찍이 사랑하는 딸의 고양이 팔찌가 사라지며 허치는 코만도가 된다. 일반형 히어로가 되어 펼치는 허치 이야기. 맨손 격투는 물론이며 총기며 일상의 생활 도구의  무기화, 부비트랩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힘없이 흘러간다. 에이 특공대처럼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점점 허치에게 우리는 빠져든다. 이 아저씨 도대체 뭐야!


그리고 귀를 너무나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다. 라이프 이즈 비치를 시작으로 왓 어 원더풀 월드나 하트브레이크 등,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산타 에스메랄다 버전으로만 알고 있던 ‘돈 렛 미 미스 언더스투드’가 니나 시몬의 버전으로 나올 때는 와아 음악들이 리발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동네 아저씨의 빡침으로 시작하는, 내용을 떠나 신나고 통쾌한 액션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로 버무려져 90분이 즐거웠던 영화. 나 같은 인간이 좋아할 만한 영화 ‘노바디’였다.


*

지난주 할리우드 소식에 노바디의 밥 오덴커크가 영화를 찍다가 의식이 없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8. 괴기맨숀

https://youtu.be/y8ZT2xXp414

괴기맨숀은 올해 나온, 괴기맨숀 이전의 한국 공포 영화보다는 훨씬 좋았다. 한국 공포물로써 한국 공포가 지니는 민담, 설화를 무서운 이야기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놀래는 점프 스퀘어도 없고, 랑종처럼 굉장히 징그러운 장면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꼭 손이 쓱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영화다.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이어진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한 장면에서 한 번씩 만나거나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단 제목에서 흥미롭다. 괴기맨숀. 제목이 올해 나온 한국 공포 영화 중에서는 가장 궁금하다. ‘괴기’라는 단어가 던지는 기기묘묘하고 안갯속에 가려진 식인 하는 생물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의문을 자아낸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었는데 마지막 김보라가 그 아파트 관리실에서 선배를 보고 선배! 하며 반가워하다가 선배의 뭔가를 보고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그 뭔가가 뭔지 모르겠네. 하도 금방 지나가버려서. 그리고 선배의 눈동자가 전부 검게 변하는 장면이 0.1초 나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의 장점은 빠르다. 질질 끌지 않는다. 그리고 공포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게 장점이다. 또 아주 별거 아닌데 그게 별거 아닌 게 아니라서 무섭다. 요컨대 “자기야 나 여기서 목욕한다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라는 말을 계속하면 그게 공포다.


평소에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로 계속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게 정말 무섭다. 또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 우리 사랑했었잖아, 우리 사랑하는 사이였잖아, 라며 계속 그러면 굉장히 두렵다. 현실에서도 공포의 질과 종류는 다양하다.


마지막 그 뭔가가 뭘까.




9. 블랙위도우

https://youtu.be/BOEVQSprNv4

이 영화의 포지션은 어벤져스 2를 지나 시빌 워와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중간에 있다. 그래서 나타샤는 동생에게 받은 그 조끼를 엔드게임에서 죽기 직전, 인피니트 워에서 줄곧 입고 나온다.


초반의 반딧불은 마지막의 반딧불로, 초반의 어린 나타샤와 어린 옐레나가 우리는 거꾸로 보인다고 했나? 아무튼 거꾸로 대사는 마지막에도 한다. 그렇게 블랙 위도우는 가족이라는 것에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마블의 영화답게 코믹한 부분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걸 찾아내는 재미 또한 관객의 몫이다. 데드풀 2에서 슈퍼파워들의 착지를 꼬집는 부분을 옐레나도 꼬집었다. 그리고 한 번 따라 한다. 그건 마치 엘사가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엘사엘사하며 렛 잇 고를 부를 때 흥, 하며 유행은 따라가기 싫어! 하지만 혼자일 때 레 잇 고,를 한 번 몰래 불러본다. 그런 심리와 비슷하다.


만약 스탠 리가 살아있었다면 어느 장면에 깜짝 등장했을까. 아마 나타샤와 옐레나 둘이서 작은 슈퍼에 들어가서 내가 옳니, 네가 나빠, 같은 대사를 할 때 계산하는 점원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 둘의 대화가 레드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나타샤에게 여권을 스무 개씩 만들어 주던 친구에게 이런 이름은 강아지 이름 같잖아?라고 하는데 쿠키에서 나타샤는 죽고 옐레나가 차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내리는데 그 이름을 부른다.


마블 시리즈는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은데 또 나오면 보게 된다. 당연하지만. 아직 완다 비전이나 로키 시리즈도 못 봤는데 세계관이 넓어도 넓어도 너무하네.


이 영화에서 좀 재미있는 건 레이첼 와이즈의 얼굴은 플로랜스 퓨의 얼굴과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을 다 섞어 놓은 것처럼 닮았다. 또 나타샤를 잡으려는 로스 대령인가 로스 장관은 아주 오래전,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 시절의 로스 대령이었는데 마블 시리즈에 줄곧 나온다. 그때 딸로 리브 타일러가 나왔는데 그동안 리브 타일러는 왜 소모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마블 영화는 보고 나면 영화 이외에도 할 이야기가 많음.




10. 리플리

https://youtu.be/oo9UHZp3V2A

코로나 확진자로 극장에도 갈 수 없고 요즘 영화에 지칠 때는 예전의 영화를 보면 된다. 다시 봐도 재미있는, 아니 다시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 ‘리플리’다.


우선 이 영화에서 주드 로의 미모는 가히 천만 불 짜리다. 영화에는 가장 예쁠 때의 케이트 블란쳇과 귀넷 풸퉈뤄우가 나오지만 주드 로가 다 이겨버릴 정도다.


맷 데이먼의 리플리가 디키(주드로)를 죽이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치닫는다. 야망을 위해 점점 거짓을 확대시키고 또 확대시킨다. 상대방 앞에서 디키인 척 행동하는 리플리와 혼자 있을 때 괴로워하는 리플리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또 몰입된다.


피아노 조율사로 호텔 보이로 미래가 캄캄한 리플리는 이 지옥 같은 뉴욕을 떠나고 싶다. 별 볼일 없는 리플리가 선박 재벌의 제안을 받으며 달콤한 유혹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을 죽였지만 거짓을 늘어놓을수록 아름다운 여인과 자유와 쾌락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돈이 달콤한 인생을 살게끔 한다.


무엇보다 디키의 친구로 나오는 프레디 역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가 압권이다. 리플리를 경멸하듯 쳐다보는 눈빛, 멸시하는 말투, 가난한 자와 선을 긋는 행동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프레디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리플리에게 조각상의 머리로 프레디 머리는 작살이 나고 만다.


1999년 ‘리플리’의 원작은 훨씬 이전에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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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에 먹는 송이의 맛은 좋다. 일품이라는 맛이 어울린다. 송이는 제철이 아니더라도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맛있다. 송이는 정말 희한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버섯은 어딘가 음식에 곁들여서 굽거나 삶겨서 옵서버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송이는 도대체 뭔가? 송이는 왜 그런지 굽거나 삶아서 먹기보다 생으로 죽 찢어서 먹는 게 더 좋다. 송이가 밥상 위에 오르는 순간 다른 모든 음식이 송이를 위한 곁들인 밑반찬이 된다.


죽 찢어서 입에 넣으면 아침에 바로 구입한 초초한 두부처럼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 오로지 송이가 간직하고 있는 그 맛을 전부 느낄 수 있다. 정말 희한하고 대책 없이 귀하고 맛이 좋다. 송이의 맛을 굳이 따지자면 ‘맛있다' 보다는 ‘맛이 좋다’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어떤 무엇인가가 가미되어서 단맛, 짠맛,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아아 정말 맛있어가 아닌 참 맛이 좋네, 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 송이다. 그렇게 생으로 먹다가 참기름 장에 살짝 찍어서 먹으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건 아무래도 음식이 가지는 기묘한 힘인 것이다.


송이의, 송이 만의 향과 맛이 마치 뇌를 깨끗하게 청소를 해 줄 것만 같다. 최상급 자연산 송이는 비싸다. 자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송이가 택배로 날아오면 고기와 함께 먹어서 그런지 송이는 육류와 잘 어울린다. 송이에는 기묘한 흐름이 존재한다. 송이를 먹고 나면 건강해진다는 알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송이와 함께면 고기도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걸,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주 나쁘면서 절대 놓치기 싫은 그 사람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송이를 먹고 나면 괜히 힘이 들어가고 막 달리고 싶어 진다.


그런 기류를 형성하는 여러 음식이 있다. 그런 식재료에는 플라세보가 강하게 작용한다. 먹고 나면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마치 뽀빠이가 된 것만 같다. 게다가 누가 그러던데 이거 먹고 그러니까,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 그렇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버섯은 음식에 들어가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데 송이는 당당하다. 송이 자체로 맛을 내고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자태 또한 도도하며 색감 역시 깊고 진하다. 송이가 가지는 저 색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맑은 산속의 공기를 그대로 입안으로 들이는 기분을 송이는 느끼게 한다. 먹는 순간 온후하고 웅숭깊은 자연의 맛을 송이는 보여준다. 자연의 온전한 물산이 코를 어루만지고 혀를 주무른다. 환절기에 먹는다면 버석거리는 코 속이 송이의 향으로 촉촉해지는 기분도 든다.


송이는 거개 구워 먹어도 맛이 좋지만 역시 생으로 죽죽 찢어서 향을 듬뿍 느끼며 먹는 맛이 좋다. 향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먹을 수 있는 게 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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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라오스에는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연이은 하루키 이야기.


하루키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보면 시벨리우스에 대해서 나온다.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의 자랑이라는 것도 이 글을 읽으면서 알았다. 무엇보다 시벨리우스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오래된 음악가인 줄 알았는데 시벨리우스는 1957년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집에 수도시설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작곡하는데 시끄럽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너무나 불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핀란드 국가가 그 집을 가족들에게서 구매한 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는 독립되기 전에 러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덩달아 시벨리우스 역시 인세를 못 받고 오케스트라를 작곡하고 싶었지만 빚 때문에 바이올린의 소품곡 정도만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재성이 국가가 놓인 이유 때문에 인정을 못 받은 케이스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하루키는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아마도‘ 가족들은 이제 집에 수도를 놓고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군, 아버지 정말 깐깐했잖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나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거의 다 본 편이다. 특히 ‘안녕하세요’와 ‘꽁치의 맛’은 꽤나 여러 번 봤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면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 그의 영화에 얼마나 신세를 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는 59년 영화인데 미장센과 대사, 호흡이 전혀 50년대 영화 같지 않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만 소거되었지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어색함이 없다. 특히 미장센은 놀랍다. 중산층의 가옥이 아주 현대식이며 통일된 균형감과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컬러풀한 서랍장, 녹색의 주전자, 세련된 등과 빨강과 노랑의 빨래, 지붕의 색채는 마치 칸딘스키의 그림 속 컬러를 보는 듯하다.


꽁치의 맛에서 청순하던 이와시타 시마는 이후 아와즈 누님으로 10년에 걸쳐 야쿠자의 아내로 나와서 또 한 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감독 윤단비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며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는 동안 옥주와 동주의 가족을 보는데 이상하게 나의 유년시절 깨끗한 여름밤 기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죽지 않으면 따라다닐 어린 시절의 지독한 선명한 여름밤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서 현재가 힘들지만 어떻게든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를 통해 시벨리우스, 오즈 야스지로, 남매의 여름밤을 관통하는 여름이었다. 이렇게 해변에서 하루키의 ‘라오스에는~‘는 읽으며 좋았는데 나중에 보니 책을 해변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아, 시벨리우스.

여기까지 참 좋았는데, 책을 저기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ㅠ


책 잃어 버리고 분노의 조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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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 중에 ‘비 피하기’라는 소설이 있다. 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오래되어서 그런지, 보다 보면 이렇게 교정의 오류도 보인다. 이 빠진 부분에는 어떤 단어가 들어가야 할까 하고 보면 ‘어쩐’이 빠져있다. 뭔가 재미있고 정겹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럴지도)은 일큐팔사의 아오마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아오마메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대략적인 내용은 하루키가 레코드를 사러 가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어떤 바에 들어가고, 곧 비를 피해서 한 무리의 남녀가 들어온다. 그 무리 중에 한 여자가 하루키를 알아보고 무리에서 나와 하루키 옆에 앉는다. 여자는 5년 전에 하루키가 첫 소설을 낸 후 인터뷰를 한 잡지사의 기자였다. 그 인터뷰가 하루키의 생애 첫 인터뷰였다.


여자는 그 잡지사를 나오게 되었고 이야기 수집가답게 하루키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잡지사는 망했는데 망하기 전 사원들의 퇴출이 있었다. 주인공 여자는 느닷없이 총무부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자신보다 높은 직책의 애인(유부남, 부인과 이혼을 생각이 없는)에게 말했지만 어영부영 넘어가는 꼴에 미래가 없다고 느낀 여자는 회사를 나오게 되고 애인과도 연락을 끊는다.


처음 여자는 얼마간 개인적으로 늘어난 자유한 시간에 만족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공허와 허무가 밀려오고 사람들도 바빠서 처음처럼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다. 천만 명이 넘게 사는 도시에서 여자는 고독해진다. 이런 내용의 영화도 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셰임’이다. 정확하게 하루의 루틴을 순환하며 탄탄대로를 걷지만 대도시에서의 극렬한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하루키 소설로 돌아와서, 여자는 바에서 술을 마시던 중 한 수의사가 접근하고 그 남자와 잠을 잔다. 여자는 느닷없이 7만 엔 을 부른다. 그 외의 모든 비용을 남자가 낸다. 이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여주인공이 이상한 생각을 할 수 없게 정성이 담긴 애무와 배려가 있는 섹스를 한다. 여자는 그 뒤로 4, 50대의 침대 위에서 배려가 있고 괜찮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돈을 받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루키에게 한다. 배려에 압도당하고 식사와 돈까지 지불이 되는 섹스에 대해서 여자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하루키는 여자에게 만약 자신과 그런 자리를 가지게 된다면 얼마를 부를 거냐고 묻고 여자는 대답한다. 과연 얼마라고 할까.


여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의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소개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다,라고 시작한다. 이 소설의 여자도 그렇고 아오마메 역시 그렇게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라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슴도 짝짝이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아오마메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라는 것은 얼굴의 예쁨이라는 것을 집어삼킨다. 어쩌면 몹시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하루키는 그렇게 쓰면 사람들이 일정하게 얼굴을 떠올릴 수 있기에 아마도 자꾸 미인은 아니지만, 또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이 단편소설의 여자 주인공도, 그리고 신작 속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의 말미에서도 이름을 잃어버렸던 잡지 기자였던 그 여자도, 그 외에 많은 소설 속의 여자들이 얼굴은 그렇게 미인은 아니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세련되고 날씬하고 옷은 기가 막히게 잘 입는다. 그래서 덴고는 언뜻 얼굴이 떠오르지만 아오마메의 얼굴에 접근을 하면 멀리 달아나버리곤 한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아오마메의 캐릭터를 탄생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설이라 여자 주인공이 실제 인물이라면 난처하겠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으니 또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이라 기분이 좋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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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은 다른 올림픽에 비해서 인기가 덜 하지만 경기는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올림픽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는 경기가 육상경기다. 제일 재미없을 것 같지만 육상경기에 관람객들도 가장 많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그 크고 넓은 육상 경기장의 벤치에 사람들이 빼곡했을 것이다. 나는 마라톤 중계를 보는 것이 야구 중계를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다.


경기는 어떤 경기든 실제로 보면 정말 재미있다. 물론 육상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지만 자주 볼 수는 없다. 내가 매일 저녁 강변을 조깅하는데 그 강에서 조정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죽 뻗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다. 그리고 강 상류로 가면 일반인들도 조정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앉아서 이렇게 보면 강이 보인다. 그리고 강으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세계 조정경기가 열렸었다. 그때 굉장했다. 구경하는 것 역시 재미있지만 온 나라의 외국인들이 이 도시로 몰려 들어서 조정경기를 일찍 끝낸 외국선수들이 다운타운으로 몰려나와서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이 도시를 몹시 좋아했다. 이렇게 큰 강이 도시의 중심지로 흐르고 바로 옆에 다운타운이 있어서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모두가 밤을 즐기는 것에 신나 했다.


다운타운은 전체 거리를 돔으로 덮어놔서 겨울에는 눈 축제를 하고 여름에는 물 축제를 한다. 주말이면 크고 작은 축제가 늘 열리고 자동차들은 힘들지만 도로를 시간을 정해놓고 막기도 했다. 처음에는 상가에서 싫어했지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물 축제를 하면 상가의 문을 닫고 옷을 가게 안으로 넣고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여름 동안은 매주 주말마다 다운타운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공연, 전시, 노래가 이어지고 밤이 되면 맥주를 곳곳에서 마실 수 있다. 초반에는 술을 자정까지 팔았지만 사람들은 술이 취해서 서로에게 벌레라고 욕을 했지만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9시까지밖에 맥주를 팔지 않았다.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술집을 찾아서 가면 되었다. 이런 문화가 십 년에 걸쳐 죽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지금은 모든 것이 멈췄고 강에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만 간간이 볼 수 있다. 조정경기를 구경하고 있으면 정말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올림픽에서 육상은 단연 나의 눈길을 끈다. 100미터도 400미터도 허들도 다 재미있다.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량이 대단해서 달릴 때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도 정말 멋지다. 마치 말들이 전력 질주하는 모습처럼 눈을 뗄 수 없다. 근육이 많으면 100미터에서 바람의 저항이 더 할 것 같지만 단거리에서는 올록볼록한 근육이 바람의 저항을 피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수들이 입장에서 몸을 푸는 모습부터 정말 멋지다. 그에 비해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은 근육량보다는 오래도록 달려야 하니 지구력 위주로 몸을 만든다. 근육량이 많아서 오랜 시간 뛰게 되면 몸이 무거우니 몸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긴 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나는 지금 이곳에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마라톤도 재미있지만 3000미터도 아주 재미있다.


어제는 남자 3000미터에 일본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선두였다. 그런데 1500미터부터는 뒤에 쳐진 선수들이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맨 앞의 케냐 선 수 두 명까지 제치고 선두에 오르는 장면은 정말 볼 만했다. 그리고 어제 800미터 준결승에서 미국의 이사야 주이트 선수가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뒤따르던 보츠나와의 니젤 아모스가 부딪히며 같이 쓰러진 것이다. 두 선수는 그만 망연자실해서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또 한 명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까.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데 실력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지다니.


그런데 두 선수가 손을 맞잡고 일어나 서로를 부축했다. 아모스는 미국의 이사야를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선수는 나란히 들어왔다. 이건 정말 감동이었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거 별거 없고 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제의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그리고 주이트 때문에 넘어진 아모스는 심판의 구제를 받아서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높이뛰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우상혁이 달려와서 도움 닿기를 할 때에는 보는 이도 일시 정지가 된다.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세계 4위다. 게다가 한국 신기록도 달성했다. 육상 경기는 정말 흥미롭고 짜릿하다. 왜냐하면 마라톤을 제외하고 몇 초만에 결론이 나기 때문에 다른 경기에 비해 더 손에 땀을 쥔다. 우상혁의 신체에 대해서 알게 된 우리들은 그를 지금 이전보다 지금 이후 더 많이 응원한다. 이번 한국 선수들이 이전에 비해서 다른 모습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우울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깝지만 이 정도로 했으니 됐어! 같은 표정으로 헤맑다. 게다가 우상혁은 3위를 하면 바로 제대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관없이 경기를 끝냈을 때 거수경례를 한 다음 아주 밝게 웃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감동으로 다가왔다. 멋있고 거기에 잘 생겼다. 다음에는 일을 낼 것만 같다. 정말 지금 엠 지 세대는 이 스포츠라는 것을 즐긴다.

이번 올림픽의 변수가 많이 작용하지만 이제 한국 선수들의 수준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경기에 골고루 퍼졌다. 유럽이나 서강의 선수들과 맞을 정도로 대등해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수영이라든가, 육상, 여자 기계체조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대단한 일이며 이런 대단한 일들을 한국 선수들이 해내고 있다.


양궁에서 메달이 많이 나왔지만 어찌 보면 양궁에서는 메달이 더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양궁은 기업과 국가차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는데 양궁협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전폭적이다. 다른 종목은 이렇게 지원을 받지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구는 지난번 올림픽 때 김연경이 사비로 도시락을 사서 선수들에게 먹이고 담당 의사도 없이 경기에 임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번 한일전에도 정말 투혼을 발휘해서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감동에 강타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올림픽의 꽃은 개막식과 폐막식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그 점에 있어서 좀 아쉽다. 올림픽은 개막식과 폐막식을 보는 재미가 있다. 브라질 올림픽 때에도 등장하는 나라를 보면서 이름도 처음 듣는, 참 신비로운 나라들이 많다며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이 가장 좋았던 올림픽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폐막식은 오전 네신가? 암튼 새벽에 했는데 못 일어날까 봐 밤을 새우고 폐막식을 봤다.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 식이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영국의 대중가요로 개폐막식을 장식했기 때문이고 대부분 좋아하는 팝 가수들이었다.


‘더 후’부터 제시 제이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오아시스의 노엘이 원더월드를 불렀고, 지금은 죽고 없는 조지 마이클도 노래를 불렀다. 올림픽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스파이스 걸스를 뭉치게 했다. 스파이스 걸스는 역시 멋졌다. 영국의 신화 프레디 머큐리가 부활했을 때 경기장 안의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와 노래를 주고받았다. 대단했다. 하얀 사자 머리의 브라이언 메이의 솔로 기타 연주가 이어졌다. 공학박사이기도 한 브라이언 메이(그의 기타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편곡에 유리하도록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기타를 제작했다)가 작곡한 ‘위 윌 락 유’를 연주하며 무대를 걸어 나왔다.https://youtu.be/YzoyDILKlhY

제시 제이와 퀸의 합동 공연,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음


그리고 제시 제이가 노래를 불렀다. 제시 제이가 라이브를 그렇게나 잘하다니. 개막식에 하이라이트는 폴 메카트니가 나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헤이 주드를 불렀다. 그 당시 실시간으로 지구인 7억 명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온 경기장에 헤이 쥬드~ 가 울려 퍼졌다.

https://youtu.be/azZZZbSwLQg 

감동적 ㅠㅠ


개막식의 서막을 폴 메카트니가 장식했다면 폐막식의 대미는 존 레넌이었다. 죽은 존 레넌을 영상과 모형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존 레넌은 임예진이 아니라 이메진을 불렀다. 정말 극적으로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올림픽을 통해서 전 세계에 외쳤다. 우리가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은 바로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대중이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런던 올림픽은 보여줬다.

https://youtu.be/IgPRI6-8Efw 

대미를 장식한 존 레넌의 이메진. 눈물 줄줄

줄넘기를 잘한다면 앞으로 올림픽 종목에 줄넘기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줄넘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요즘 초딩들 사이에서는 한 발 줄넘기가 유행인데 이 역시 잘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올림픽에 3인 농구와 스케이트보드가 종목으로 채택이 됐고 다음 올림픽에는 브레이크 댄스가 종목으로 채택이 된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만 빨리 종식되기만 바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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