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은 다른 올림픽에 비해서 인기가 덜 하지만 경기는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올림픽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는 경기가 육상경기다. 제일 재미없을 것 같지만 육상경기에 관람객들도 가장 많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그 크고 넓은 육상 경기장의 벤치에 사람들이 빼곡했을 것이다. 나는 마라톤 중계를 보는 것이 야구 중계를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다.


경기는 어떤 경기든 실제로 보면 정말 재미있다. 물론 육상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지만 자주 볼 수는 없다. 내가 매일 저녁 강변을 조깅하는데 그 강에서 조정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죽 뻗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다. 그리고 강 상류로 가면 일반인들도 조정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앉아서 이렇게 보면 강이 보인다. 그리고 강으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세계 조정경기가 열렸었다. 그때 굉장했다. 구경하는 것 역시 재미있지만 온 나라의 외국인들이 이 도시로 몰려 들어서 조정경기를 일찍 끝낸 외국선수들이 다운타운으로 몰려나와서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이 도시를 몹시 좋아했다. 이렇게 큰 강이 도시의 중심지로 흐르고 바로 옆에 다운타운이 있어서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모두가 밤을 즐기는 것에 신나 했다.


다운타운은 전체 거리를 돔으로 덮어놔서 겨울에는 눈 축제를 하고 여름에는 물 축제를 한다. 주말이면 크고 작은 축제가 늘 열리고 자동차들은 힘들지만 도로를 시간을 정해놓고 막기도 했다. 처음에는 상가에서 싫어했지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물 축제를 하면 상가의 문을 닫고 옷을 가게 안으로 넣고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여름 동안은 매주 주말마다 다운타운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공연, 전시, 노래가 이어지고 밤이 되면 맥주를 곳곳에서 마실 수 있다. 초반에는 술을 자정까지 팔았지만 사람들은 술이 취해서 서로에게 벌레라고 욕을 했지만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9시까지밖에 맥주를 팔지 않았다.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술집을 찾아서 가면 되었다. 이런 문화가 십 년에 걸쳐 죽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지금은 모든 것이 멈췄고 강에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모습만 간간이 볼 수 있다. 조정경기를 구경하고 있으면 정말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올림픽에서 육상은 단연 나의 눈길을 끈다. 100미터도 400미터도 허들도 다 재미있다.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량이 대단해서 달릴 때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도 정말 멋지다. 마치 말들이 전력 질주하는 모습처럼 눈을 뗄 수 없다. 근육이 많으면 100미터에서 바람의 저항이 더 할 것 같지만 단거리에서는 올록볼록한 근육이 바람의 저항을 피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수들이 입장에서 몸을 푸는 모습부터 정말 멋지다. 그에 비해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은 근육량보다는 오래도록 달려야 하니 지구력 위주로 몸을 만든다. 근육량이 많아서 오랜 시간 뛰게 되면 몸이 무거우니 몸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긴 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나는 지금 이곳에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마라톤도 재미있지만 3000미터도 아주 재미있다.


어제는 남자 3000미터에 일본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선두였다. 그런데 1500미터부터는 뒤에 쳐진 선수들이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맨 앞의 케냐 선 수 두 명까지 제치고 선두에 오르는 장면은 정말 볼 만했다. 그리고 어제 800미터 준결승에서 미국의 이사야 주이트 선수가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뒤따르던 보츠나와의 니젤 아모스가 부딪히며 같이 쓰러진 것이다. 두 선수는 그만 망연자실해서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또 한 명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까.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데 실력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지다니.


그런데 두 선수가 손을 맞잡고 일어나 서로를 부축했다. 아모스는 미국의 이사야를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선수는 나란히 들어왔다. 이건 정말 감동이었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거 별거 없고 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제의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그리고 주이트 때문에 넘어진 아모스는 심판의 구제를 받아서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높이뛰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우상혁이 달려와서 도움 닿기를 할 때에는 보는 이도 일시 정지가 된다.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세계 4위다. 게다가 한국 신기록도 달성했다. 육상 경기는 정말 흥미롭고 짜릿하다. 왜냐하면 마라톤을 제외하고 몇 초만에 결론이 나기 때문에 다른 경기에 비해 더 손에 땀을 쥔다. 우상혁의 신체에 대해서 알게 된 우리들은 그를 지금 이전보다 지금 이후 더 많이 응원한다. 이번 한국 선수들이 이전에 비해서 다른 모습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우울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깝지만 이 정도로 했으니 됐어! 같은 표정으로 헤맑다. 게다가 우상혁은 3위를 하면 바로 제대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관없이 경기를 끝냈을 때 거수경례를 한 다음 아주 밝게 웃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감동으로 다가왔다. 멋있고 거기에 잘 생겼다. 다음에는 일을 낼 것만 같다. 정말 지금 엠 지 세대는 이 스포츠라는 것을 즐긴다.

이번 올림픽의 변수가 많이 작용하지만 이제 한국 선수들의 수준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경기에 골고루 퍼졌다. 유럽이나 서강의 선수들과 맞을 정도로 대등해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수영이라든가, 육상, 여자 기계체조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대단한 일이며 이런 대단한 일들을 한국 선수들이 해내고 있다.


양궁에서 메달이 많이 나왔지만 어찌 보면 양궁에서는 메달이 더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양궁은 기업과 국가차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는데 양궁협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전폭적이다. 다른 종목은 이렇게 지원을 받지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구는 지난번 올림픽 때 김연경이 사비로 도시락을 사서 선수들에게 먹이고 담당 의사도 없이 경기에 임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번 한일전에도 정말 투혼을 발휘해서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감동에 강타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올림픽의 꽃은 개막식과 폐막식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그 점에 있어서 좀 아쉽다. 올림픽은 개막식과 폐막식을 보는 재미가 있다. 브라질 올림픽 때에도 등장하는 나라를 보면서 이름도 처음 듣는, 참 신비로운 나라들이 많다며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이 가장 좋았던 올림픽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폐막식은 오전 네신가? 암튼 새벽에 했는데 못 일어날까 봐 밤을 새우고 폐막식을 봤다.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 식이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영국의 대중가요로 개폐막식을 장식했기 때문이고 대부분 좋아하는 팝 가수들이었다.


‘더 후’부터 제시 제이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오아시스의 노엘이 원더월드를 불렀고, 지금은 죽고 없는 조지 마이클도 노래를 불렀다. 올림픽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스파이스 걸스를 뭉치게 했다. 스파이스 걸스는 역시 멋졌다. 영국의 신화 프레디 머큐리가 부활했을 때 경기장 안의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와 노래를 주고받았다. 대단했다. 하얀 사자 머리의 브라이언 메이의 솔로 기타 연주가 이어졌다. 공학박사이기도 한 브라이언 메이(그의 기타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편곡에 유리하도록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기타를 제작했다)가 작곡한 ‘위 윌 락 유’를 연주하며 무대를 걸어 나왔다.https://youtu.be/YzoyDILKlhY

제시 제이와 퀸의 합동 공연,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음


그리고 제시 제이가 노래를 불렀다. 제시 제이가 라이브를 그렇게나 잘하다니. 개막식에 하이라이트는 폴 메카트니가 나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헤이 주드를 불렀다. 그 당시 실시간으로 지구인 7억 명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온 경기장에 헤이 쥬드~ 가 울려 퍼졌다.

https://youtu.be/azZZZbSwLQg 

감동적 ㅠㅠ


개막식의 서막을 폴 메카트니가 장식했다면 폐막식의 대미는 존 레넌이었다. 죽은 존 레넌을 영상과 모형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존 레넌은 임예진이 아니라 이메진을 불렀다. 정말 극적으로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올림픽을 통해서 전 세계에 외쳤다. 우리가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은 바로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대중이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런던 올림픽은 보여줬다.

https://youtu.be/IgPRI6-8Efw 

대미를 장식한 존 레넌의 이메진. 눈물 줄줄

줄넘기를 잘한다면 앞으로 올림픽 종목에 줄넘기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줄넘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요즘 초딩들 사이에서는 한 발 줄넘기가 유행인데 이 역시 잘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올림픽에 3인 농구와 스케이트보드가 종목으로 채택이 됐고 다음 올림픽에는 브레이크 댄스가 종목으로 채택이 된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만 빨리 종식되기만 바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외할매의 호박잎 쌈


여름이 되면, 이렇게 이글이글 거리는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런 음식은 순전히 추억에 기인한다. 그래서 귀찮아도 해 먹게 된다. 막상 먹으면 맛있지만 추억의 맛인지 어떤지 가물가물하게 된다.


외가에서 내 외할매의 품에 안겨 할머니가 쌈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었던 음식들이 있다. 외할매는 손주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나를 자주 안고 있었던 건 어린 시절에 형편이 좋지 않아서 세 살 때부터 네 살 정도까지 집에서 떨어져 외가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밥 먹기 싫어서 울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엄마 없는 놈이라고 놀림받아서 울고, 그런 내가 딱했던지 외할매는 울고 들어온 나를 안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흘리는 나를 닦아 주고 배고프니까 밥을 먹여 주었다.


어릴 때라 기억이 거의 없지만 사진을 보면 외가에서 빼빼 마른 어린놈의 꼬꼬마인 내가 늘 울고 있거나 울고 난 다음 퉁퉁 부어 있거나, 그런 사진들이 있어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술처럼 기억이 형성된다. 그때는 어린이였지만 여름에 땀을 흘리고 들어오면 외할매가 손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닦아 줄 때 나던 그 냄새가 좋았다. 할머니의 냄새가 손수건에서 났다. 물에 적셔 희미해진 할머니의 냄새가 내 얼굴에 조금씩 와서 붙었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서럽다가도 할머니의 품에서 잠이 들고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가곤 했다. 외가는 불영계곡 중간 즈음에 있어서 어린놈의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은 없었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들 거기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외할매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스크림은 꼬박꼬박 사주었다.


외가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 마을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놀다가 흙으로 샤워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할머니는 나를 씻기고 선풍기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호박잎을 삶아서 감자를 넣고 뜸을 들여 밥을 지었다. 밥을 조금 호박잎에 올리고 된장을 찍어서 후후 불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맛이라는 게 맛 자체는 기억날리는 없지만 그렇게 먹었다는 추억 때문에 이런 여름에 호박잎과 양배추를 삶아서 밥을 싸 먹으면 외할매의 모습이 가물가물거리지만 밀려온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은 중학생 때까지다. 나에게는 친할아버지도, 친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래서 외할매 밖에 나에겐 오롯한 할머니였다. 손주들이 많았어도 대부분 서울에서 외삼촌이나 이모들과 같이 지냈지만 나는 집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툭하면 외가에서 지냈다. 그때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 외할매였다.


중학생 때 외할매의 손을 잡고 서울에 잇는 이모집과 외삼촌 집에 갔을 때였다. 외할매는 전철을 타면 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를 잃어버릴까 봐 손목을 꽉 잡았다. 아아 아프다고 해도 외할매는 그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나를 놓칠까 봐 꽉 잡았다. 겨울의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외할매와 나는 육개장을 먹으러 들어갔다. 나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할머니는 육개장을 주문했다. 나는 매운 걸 못 먹었는데 외할머니의 육개장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밥그릇에 나 좀 떠 달라고 했는데 밥그릇에 요만큼 떠더니 할머니는 큰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줬다. 


할머니는 그때 무슨 약을 잘못 먹었던지 혀가 말라서 갈라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친척들 집에서 할머니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떼를 써서 외할매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외할매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외가에 가면 외가의 냄새보다는 외할매의 냄새가 있다.


호박잎 쌈, 양배추쌈, 오이를 그대로 듬성듬성 썰어 넣어서 만든 오이냉국은 내 외할매의 음식이다.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헤어졌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21-08-0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8-07 12:36   좋아요 0 | URL
여름만 되면 호박잎으로 쌈싸먹고 싶고, 그렇게 먹고 있으면 외할머니 생각나네요 :)
 

매년 여름이면 조깅 후에 이 엘리베이터에서 이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대충 어디가 변했는지 확인을 해본다. 나는 헬스장에는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다. 물론 헬스클럽에서 제대로, 운동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대형 헬스클럽이 있고 거기 트레이너들과도 잘 알고 지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만 보면 와서 운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 역시 매일 하는 조깅 대신 위층으로 올라가 헬스클럽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려가며 운동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조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돌 다 같이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매일매일 낼 수는 없다. 어떻든 올해 지금까지는 2월의 하루와 4월의 며칠을 제외하고, 그러니까 올 상반기에는 6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매일 조금씩 조깅을 했다.


굉장히 무더웠던 2018년도인가 그때는 이틀 빼고는 다 달렸다. 비가 오면 어떡하냐는 말을 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걷거나 다리 밑까지 가서 거기서 몸을 풀고 오면 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위 때문에 절대 나가지 말라는 날도 조깅 코스에 나가면 의외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뭐 어떡하냐? 이게 문젠데? 이럴 때는 못 달릴 것 같은데?라고 걱정과 핑계가 먼저인 사람들은 달려보지 않은 사람들이며, 조깅을 해도 고작 일 년 정도, 일주일에 이삼일, 한 시간도 정도 시간을 내서 달린 사람들이다.


내 주위에도 2년 운동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길게 운동을 한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나는 2년 동안이나 운동을 해봐서 아는데, 같은 말을 한다. 2년 운동을 했다고 치자. 2년 동안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하고 5일을 했다고 치자. 운동을 하러 가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한다고 하는데, 5일 정도 운동을 하러 가서 옷 갈아입고 거울보고 휴대전화 들고 확인하면서 운동과 운동 사이의 시간이 10초 이상일 텐데, 그렇다면 2시간 꼬박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고 한다면, 일주일에 다섯 시간 운동을 한 샘이다. 한 달이면 서른 시간도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2년 동안 도대체 길게 운동을 했다는 건 몇 시간을 했다는 말일까.


후배가 서른몇 해 동안 살아오면서 2년 운동을 한 것은 정말 미미한 움직임일 뿐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2년 동안 이라든가, 길게, 운동을 했다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2년 동안 운동을 하고 난 뒤 운동을 하지 않고 그저 금붕어처럼 생활한지도 오래되어버리니까 살도 더 찌고 컨디션도 늘 별로인 것이다. 일주일에 고작 이삼일 시간을 내서 두 시간씩 운동을 해서 많이 했다고 느끼지 말고 하루에 십오 분씩이라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깅을 하면 좋은 점은 이렇게 무더운 폭염의 날에도 그렇게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 그건 늘 에어컨 속에서만 생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깅을 하려면 어떻든 밖으로 나가야 하고 밖에는 당연하지만 에어컨이 없다.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땀을 흘리고 땀이 식다 보면 자연의 바람이 시원하다.


그리고 조깅을 오랜 기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코스가 몇몇 생기게 된다. 오르막길을 코스에 넣을 때가 있고, 계단을 넣을 때가 있고, 동네 공원 운동하는 곳에서 근력 운동을 좀 하기도 한다. 보통 조깅을 하다가 그곳에 들러 이삼십 분 정도 몸을 푸는데 그것 역시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어깨 같은 곳에 근육이 붙어 버렸다.


헬스클럽에서 하는 것만큼 보기 좋지는 않지만 어떻든 매일 조금씩 하게 되면 몸은 그에 반응을 한다. 십 년 전에 비하면 그때는 몸이 좀 더 슬림했고 근육량이 많았는데 지금은 허리둘레도, 배도 그때보다는 좀 나왔다. 어차피 홀딱 벗고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옷을 입으면 그럴싸하게 보이면 그만이다. 십 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어깨와 팔뚝인 것 같다.


조금씩, 매일 십 분씩이라도 아무 생각 말고 그저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몸은 분명히 반응을 한다. 어떻든 작년에 비해서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작년에는 재작년과 비슷하게 유지를 했고 올해는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유지를 했다. 분명 언젠가는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그전까지는 실컷 달리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지는 않는다. 그저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고 중간중간 힘들면 걷거나 쉬면서 주위의 풍경을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간직한다.


여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강변을 달리다 보면 강변 주위에 풀숲이 낮동안 뜨거운 태양 열을 받아서 나는 냄새가 있다. 여름에만, 폭염이 지속되는 날에만 맡을 수 있는 풀숲의 후끈한 냄새가 좋다. 여름의 별미는 아무래도 하늘이 타들어가는 붉은 노을이다. 붉은 노을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곳을 코스에 집어넣은 후 해가 사라지기 직전 그곳까지 어떻든 달려가서 이 모습을 본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는 것 같은 노을이다. 푸름과 붉음이 공존하고, 철거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공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youtu.be/Cbtruybkv-c

기후변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뉴스를 봤을 것이다. 산불이 엄청나게 나고, 중국과 독일에서는 유래 없던 폭우에 모래 폭풍에 강이 뜨거워져서 연어들이 익어서 죽어가는 현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을 통해서 소식을 접하니까 음, 그렇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군. 할 뿐이다.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감지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들, 즉 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 정도 일 뿐이다. 코로나로 경제 활동이 힘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졌는데 샤인 머스켓보다 더 비싼, 한 송이에 8만 원짜리 포도가 나왔는데 동이 날 지경이다. 어렵다 어렵다고 해도 줄을 서서 먹는 곳은 늘 붐비고 그런 곳은 또 비싸다.


벌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봤을 것이다. 꿀벌들이 줄어들고 있고 꿀벌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어쩌고 하는 이야기. 결론은 꿀벌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면 인류도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인데 이 역시 사람들의 관심의 밖이다. 음 그렇군, 그것 참 큰일이군. 하며 당연하지만 지금 당장 오른 월세나 라면 값에 더 격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렇지만 걱정할 것 없다. 지금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구가 찌그러져가도, 폭삭 망하더라도,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류가 망하는 건 보지 않고 눈을 감는다. 후세야 어찌 되던 말든 그런 것쯤 관심 밖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몇몇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면 이런 것들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아이들이 제대로 뛰어놀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 이런 참 허울 좋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는다.


아이와 강아지의 교감의 중요성. 아이들과 강아지들의 교감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세계의 소식을 티브이를 통해서 본다.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서 보기도 하지만 뉴스를 통해서, 어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우리는 대부분 해외의 소식을 접한다.


거기에 기근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을 영상을 통해서 본다. 영상을 통해서 보는 그 아이들,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코 안으로 파리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그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한다. 딱하구나. 그 장면은 대체로 저녁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며 그런 영상을 본다.


수잔 손탁의 글을 보면 그런 부분을 잘 이야기한다. 우리는 화면을 통해서 보는 우리 이외의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손을 잡을 수 있는가. 하지만 화면이 바뀌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보도사진을 끊임없이 찍어서 세상에 알리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의 가슴에 더 깊게 박히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도 화면을 통해서 그런 장면을 보지만 직접 만지고 보고 감촉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생각 그 이외의 것은 모른다. 강아지와의 교감이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강아지와 교감을 하려면 강아지를 키워야 한다. 개가 10년을 넘게 살기 때문에 아이가 4, 5살 정도에 강아지를 키운다면 고등학교에 가는 동안 그 강아지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과 애정을 듬뿍 준 강아지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그 감정에 대해서 아이는 알게 된다. 언젠가 나보다 먼저 죽을 나의 부모와도 교감이 있었기에 사랑을 준 사람과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몸이, 세포가, 감촉으로 알게 된다.


최초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기후 변화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몇몇 방송에서 다루고 있다. 과학자 조천호의 강연을 들어보면 이거 큰일이군, 하며 입을 벌리고 경청하게 된다. 지금 당장 나부터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화면이 돌아가면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고 강연을 보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그냥 또 생활을 하게 된다.


조천호 박사는 요즘 티브이에 연예인 패널들과 나온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인류다. 인간이 무분별한 무엇의 사용이 그 원인 중 하나다. 특히 한국처럼 하나의 도시에 경제, 문화, 사회, 정치를 한 곳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곳에서는 여름에는 돔 열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뜨거워지는 태양은 아스콘으로 떨어져 복사열을 내뱉으며 그 모든 열기가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해 도시 안에서 뜨겁게 순환하며 익어간다. 도시에서 이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전력이 문제다.


하지만 라디오를 들어봐도, 유튜브를 봐도 대부분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에어컨을 하루 종일 튼다. 조천호 박사와 같이 나온 연예인 패널들이 방송에서는 아아, 하며 마치 기후변화에 동참할 것처럼 말하지만 정말 방송이 꺼진 폭렴 속 일상에서도 에어컨을 단지 몇 시간 틀고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계절에 인간이 이길 수 없으니 더위와 추위에 적응을 하는 몸으로 만들어 조금이라도 기후변화에 도움이 되고자 하려 해도 이런 말은 사람들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


여기서는 구조를 걸고넘어져야 한다. 구조라는 게 참 광범위하고 현실적이지 않는 말이지만 구조를 비틀어야 한다. 그건 예전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과, 되고 싶은 사람에 과학자가 있었다. 과학자 속에는 기상 과학자도 있을 것이고, 세포나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을 것이고, 지질 과학자, 섬류 과학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학생들은 취준생이 되어 공기업에 도전만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죽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하고 있다.


왜 이런 구조가 되었을까.


얼마 전에 담배 피우면서 남학생은 목 조르고 여학생은 성기 만지는 일산 중학생 폭행 사건이 있어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 피해학생과 피해자의 부모가 처벌 의사가 없어서 경찰서 수사부서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의 부모 의사가 있기 전 법이 먼저 있어서 법의 보호 속에서 피해학생이 피해를 당했을 때 처벌이 가해져야 다음 재발 가능성이 낮다.


이런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고 현재 구조를 비틀어야 할 사람은 누가 뽑는 것일까. 답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다시 최초의 이야기로 돌아가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은 과학자의 말만으로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자기 고집과 의지가 대단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자 주변의 사람들도 쉽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장 내가 더워 죽을 것 같으니까. 지금 이전처럼 지금 이후에도 인류가 계속 똑같이 생활한다면 우리는 상관없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니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랑처럼 하루 종일 에어컨 틀어 놓고 안 나가는 게 좋아요. 같은 말 좀 하지 말았으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21-08-04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8-05 13:06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은 요즘이네요 ㅎㅎ. 더운 날 시원하게 보내세요! 으샤으샤
 


https://youtu.be/jvEkbf7kLuk  


 카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사람이 늘 많았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색으로 칠해진 벽돌로 파티션을 만들어 놓아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모든 테이블이 독립적이어서 비밀 공유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카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블랙박스라고 하자. 블랙박스는 당시의 안전지대(옷) 같은 느낌이라고 해두자. 블랙박스에는 늘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겨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가요 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에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같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면 수순처럼 따라오는 겨울 이야기 속 두 여인에 빠져든다. 블랙박스가 바로 추억의 노래가 흐르는 카페가 아닌가. 블랙박스에서 겨울 이야기의 테이프를 계속 튼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애였다. 눈이 크고 안경을 썼고 포니테일의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작은 몸에 목소리가 큰 여자애였다. 당시의 카페에서는 카페만의 유니폼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었다.     


 카페에는 요즘과는 달리 사이다와 우유도 팔았다. 요즘처럼 혼자서 당당하게 카페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로 친구와 가서 커피를 제외한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주문을 하면 아르바이트가 서빙을 했다. 한 번 주문하고 세 시간이 되면 재주문을 하거나 나가야 했다. 나는 고등학교 사진부여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자니며 여러 사진을 담았는데 봄이면 내가 있는 고장을 찾아서 오는 제비를 많이 찍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얼굴이 동글동글한 여자애를 보기 위해 사진부 애들과 함께 블랙박스를 거의 매일 가서 우유와 사이다를 열심히 마셨다. 블랙박스에 가면 그 여자애가 있었고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저 그 정도만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학교 축제 준비로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블랙박스에서 회의를 자주 했다. 나는 제비를 사진으로 담는 걸 좋아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기와집 같은 곳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서 열심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신기하기만 했다. 새끼들은 주둥이를 벌리고 짹짹 울어댔다. 어른들은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 집 밑에 판자를 대주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겨울이 오기 전 제비들은 스텔스처럼 도로에 바짝 붙어 비행을 했다. 셔터를 누르지만 필름 카메라가 제비의 비행을 담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유와 사이다를 마시며 제비 사진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축제에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여자애가 와서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 계기로 우리는 좀 친해지게 되었다. 그 여자애는 우리 학교와 멀리 떨어진 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좋아하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심도 있게 본 문학소녀였다. 늘 블랙박스에서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그 애는 테이블 옆에 서서 잠깐씩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밖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별거 아닌데 너무 떨렸다. 그날 그 애는 안경을 벗고 머리를 풀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좋아한다는 그 애를 데리고 나는 주성치 영화를 보러 갔다. 라면이 오맹달과 주성치의 입으로 들어가 코로 나왔다. 유치했지만 그 애는 주성치 영화는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온통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다.


 주성치 영화를 알아봐 주니 내심 뿌듯했다. 그리고 영화 보고 나와서 바닷가에 앉아서 그 애가 들고 온 조관우 2집 리메이크 앨범을 같이 들었다. 조관우가 겨울 이야기를 부르고 슬픈 인연을 부르고 님은 먼 곳에를 불렀다. 조관우 얼굴 어떻게 생겼어? 나도 몰라, 이렇게 미칠 것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데 얼굴이 뭐가 중요해.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 애와 두 번을 더 만났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손을 잡았다. 주로 그 애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그 애는 말할 때 단어 같은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을 했다. 경구, 인식, 소유, 질서의 파괴 같은 말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문학소녀답게 릴케와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했고,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사랑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경청하는 학생이 되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6번 정도 번갈아가며 불렀다. 내가 부를 때는 조관우를 따라 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애가 잘한다고 치켜세워서 계속 불렀다. 그 애는 내가 찍은 제비 사진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진 뒤에 글자를 써서 주기도 했다. 3번째 만나고 헤어질 때 이제 블랙박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블랙박스에 갈 일도, 또 겨울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삐삐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서는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 애의 삐삐로는 연락이 되지 않고 그대로 추억은 하이얀 눈처럼 무화되었다. 근래에 도시에서 사라졌던 제비가 코로나 덕분인지 다시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제비의 비행을 보니 블랙박스에서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내내 들었던 그 애가 문득 생각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