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vEkbf7kLuk  


 카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사람이 늘 많았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색으로 칠해진 벽돌로 파티션을 만들어 놓아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모든 테이블이 독립적이어서 비밀 공유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카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블랙박스라고 하자. 블랙박스는 당시의 안전지대(옷) 같은 느낌이라고 해두자. 블랙박스에는 늘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겨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가요 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에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같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면 수순처럼 따라오는 겨울 이야기 속 두 여인에 빠져든다. 블랙박스가 바로 추억의 노래가 흐르는 카페가 아닌가. 블랙박스에서 겨울 이야기의 테이프를 계속 튼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애였다. 눈이 크고 안경을 썼고 포니테일의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작은 몸에 목소리가 큰 여자애였다. 당시의 카페에서는 카페만의 유니폼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었다.     


 카페에는 요즘과는 달리 사이다와 우유도 팔았다. 요즘처럼 혼자서 당당하게 카페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로 친구와 가서 커피를 제외한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주문을 하면 아르바이트가 서빙을 했다. 한 번 주문하고 세 시간이 되면 재주문을 하거나 나가야 했다. 나는 고등학교 사진부여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자니며 여러 사진을 담았는데 봄이면 내가 있는 고장을 찾아서 오는 제비를 많이 찍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얼굴이 동글동글한 여자애를 보기 위해 사진부 애들과 함께 블랙박스를 거의 매일 가서 우유와 사이다를 열심히 마셨다. 블랙박스에 가면 그 여자애가 있었고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저 그 정도만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학교 축제 준비로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블랙박스에서 회의를 자주 했다. 나는 제비를 사진으로 담는 걸 좋아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기와집 같은 곳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서 열심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신기하기만 했다. 새끼들은 주둥이를 벌리고 짹짹 울어댔다. 어른들은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 집 밑에 판자를 대주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겨울이 오기 전 제비들은 스텔스처럼 도로에 바짝 붙어 비행을 했다. 셔터를 누르지만 필름 카메라가 제비의 비행을 담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유와 사이다를 마시며 제비 사진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축제에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여자애가 와서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 계기로 우리는 좀 친해지게 되었다. 그 여자애는 우리 학교와 멀리 떨어진 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좋아하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심도 있게 본 문학소녀였다. 늘 블랙박스에서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그 애는 테이블 옆에 서서 잠깐씩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밖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별거 아닌데 너무 떨렸다. 그날 그 애는 안경을 벗고 머리를 풀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좋아한다는 그 애를 데리고 나는 주성치 영화를 보러 갔다. 라면이 오맹달과 주성치의 입으로 들어가 코로 나왔다. 유치했지만 그 애는 주성치 영화는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온통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다.


 주성치 영화를 알아봐 주니 내심 뿌듯했다. 그리고 영화 보고 나와서 바닷가에 앉아서 그 애가 들고 온 조관우 2집 리메이크 앨범을 같이 들었다. 조관우가 겨울 이야기를 부르고 슬픈 인연을 부르고 님은 먼 곳에를 불렀다. 조관우 얼굴 어떻게 생겼어? 나도 몰라, 이렇게 미칠 것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데 얼굴이 뭐가 중요해.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 애와 두 번을 더 만났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손을 잡았다. 주로 그 애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그 애는 말할 때 단어 같은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을 했다. 경구, 인식, 소유, 질서의 파괴 같은 말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문학소녀답게 릴케와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했고,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사랑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경청하는 학생이 되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6번 정도 번갈아가며 불렀다. 내가 부를 때는 조관우를 따라 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애가 잘한다고 치켜세워서 계속 불렀다. 그 애는 내가 찍은 제비 사진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진 뒤에 글자를 써서 주기도 했다. 3번째 만나고 헤어질 때 이제 블랙박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블랙박스에 갈 일도, 또 겨울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삐삐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서는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 애의 삐삐로는 연락이 되지 않고 그대로 추억은 하이얀 눈처럼 무화되었다. 근래에 도시에서 사라졌던 제비가 코로나 덕분인지 다시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제비의 비행을 보니 블랙박스에서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내내 들었던 그 애가 문득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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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하는 방탄 이야기



우리는 코비드 19 풍선을 하늘에 띄워 저 멀리 날려 보낸다. 결국 수많은 분홍 바이러스는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서로에게 말한다. 그건 어딘가로 떨어지더라도 그곳에 착륙하는 방법을 아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너와 나는 추락은 두려워하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도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우리는 즐겁게 춤을 추면서 평화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엘튼 존의 노래를 듣자. 엘튼 존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 그 모든 것을 헤치고 왔잖아. 무엇보다 노래를 들어봐. 엘튼 존은 다이애나 비를 노래했고, 조지 마이클과 노래를 불렀지. 엘튼 존은 벌써 여러 번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렇게도 멋진 모습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피아노를 치고 있잖아.


그러니 말뿐인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마, 그리고 행동으로 오늘 밤을 옮기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거야. 너와 내가 춤을 추는데, 평화를 말하는데 누군가의 허락을 전혀 필요 없으니까.


자주색 절망의 끝에 자줏빛 희망이 있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키스를 할 수 있는 날이, 친구들끼리 웃으며 놀 수 있는 날이,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날이 곧 온다.


매주 주말 저녁 배캠에서 전주연의 빌보드 탑 10에서 방탄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요즘. 방탄에 죽 빠져보자.


https://youtu.be/AVXvYqP_BKA

요즘 아무튼 화면을 통해서 보는 가장 기분 좋은 영상이 방탄이들의 퍼미션 투 댄스다. 방탄 티브이에 올라온 라이브를 보면 정말 와, 할 정도다. 라이브도 어떻게 이렇게 청량하게 부를 수 있을까. 방탄이들의 이야기는 앞서도 계속했다.


이미 팬들은 다 찾아봤겠지만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보라색 풍선이라든가. 수화를 한다던가. 수화를 수어라고 해야 한다는데 찾아보면 수어라는 말은 수화 언어를 줄여서 그렇게 부르기 때문에 수화라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두 명이 나오는데 입고 있는 옷의 프린트가 호돌이다. 호돌이가 뜻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뮤직비디오에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의 여자 꼬마 아이는 이 뮤직비디오 감독의 아이인가? 그렇다.


또 고등학생들이 나오는데 여고생들 중에 오른쪽에 있는 학생은 빅히트 소속으로 이번에 가수로 나온다고 한다. 이전의 어떤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궁금하면 찾아보기 바람.


라이브 영상 말고 뮤직비디오를 보면 초반에 핫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여성이 보인다. 이 뮤직비디오가 세계에 선보였을 때 아미들을 비롯해서 도대체 방탄이들의 뮤비에 나오는 저 춤추는 여자는 누구지? 하며 궁금해했다.


그 여성은 오래전 스타 도전 골든벨에서 아주 귀여운 얼굴로 나온 꼬꼬마 아이 리아였다. 어느새 훌쩍 커서 방탄이들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오게 되었다. 리아는 영상 제작 같은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그런 일?


가장 재미있는 건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에 빅히트 회사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춤을 추는데 저 화살표가 방시혁이다. 17일에 일본에서는 방탄이들이 라이브가 있었고 방송사들이 속보로 그 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 라이브를 들어보자. 정말 기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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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올해 들어 처음 에어컨을 틀었다. 28도에 바람세기를 가장 약하게 했는데도 나는 좀 추워서 홑이불을 덮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더위에 적응이 되어 있던 모양이다. 잠을 잘 때에는 에어컨을 끄고 자는데 새벽이 되면 덥다. 그러다가 오전 8시 정도가 되면 또 괜찮다.


어제는 새벽에 더워 깨어나서 좀 멍 한 상태였는데 그대로 일어나서 하루를 보냈다. 이런 낯선 몽롱한 상태를 느끼는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다. 마치 오래전 한, 몇 년 전에 밤새 술을 마시고 그다음 날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약간 머리가 띵하며 눈은 감기는 거 같은데 잠은 또 오지 않고, 아무튼 아주 좋은 컨디션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깅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서 쉴까 하다가 조깅을 하기 위해 환복을 한 다음에는 평소보다 더 신나게 달렸다. 더 신나게 달린 이유는 강변으로 나가니까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폭염이라 노인들은 외출을 삼가라는 방송이 여기저기서 계속 나왔지만 저녁 6시가 넘어간 강변의 조깅코스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시원해서 가을 날씨 같았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나와서 운동을 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어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날이었다. 그래서 신나게 달렸다. 한 20분 정도 달렸는데 내 앞에서 달리던 남성이 느닷없이 쓰러지는 것이다. 쓰러지는 그 장면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옆으로 푹 꼬꾸라졌다.


바로 뒤에 있던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마도 온열질환으로 탈수증 같았다. 그늘로 옮기 다음 119에 연락을 해다. 전화를 했을 때 119에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의식은 있는지, 숨은 쉬는지, 등등.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해 놓고 길가로 나가서 구급차가 오면 신호를 해서 쓰러진 남성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남성은 서른 살 후반에서 사십 초반으로 보였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후에는 몹시 아파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너무 힘들어했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얼굴에서 풍기는 그 고통이 마치 나에게로 옮겨 붙어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비록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그 엄청난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곧 하나둘씩 모여든 어르신들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르신들은 나에게 쓰러진 남성과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만 네 번 정도 했다.


구급대원에게서 연락이 왔고 나는 길가에 서 있다가 수신호를 보내고 구급대원들은 내려와서 쓰러진 남성에게 응급치료를 했다. 나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다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 하시던 운동을 계속하셔도 된다며, 자리를 피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종의 공감대에서 걱정과 간섭의 중간을 오고 가는 모습들이었다.


나는 구급대원들이 와서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조깅을 위해 코스를 달렸다. 그 난리통에 한 30분을 그 자리에 있었다. 날은 정말 시원했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많이 나왔다. 이 여름에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것은 남녀노소를 구분 짓지 않는다. 쓰러진 분은 분명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것에는 그런 구분이 없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 여름을 잘 나는 방법은 늘 하는 말이지만 더위를 즐기는 것뿐이다. 인간이 계절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더위에 일단 적응이 되는 몸으로 만들면 그다음은 좀 수월하다. 내가 있는 곳은 바닷가라 누군가 놀러 온다고 하면 긴팔이나 덮을 수 있는 큰 수건이나 큰 타월을 준비해라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 이런 폭염에 무슨 소리냐,라고 하지만 바닷물은 생각 이상으로 차갑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닷바람에 입술이 정말 새파랗게 변한다. 그때 얼어버린 몸의 체온을 되돌리지 않으면 여름에 걸리는 질환에 걸리기 십상이다.

일단 여름에 길에서 쓰러지면 어떻든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직은 그게 나는 창피하다. 사람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몰려드는 것이지만 사실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잘 없다. 어떻든 여름에는 물을 자주 마시고 적당한 운동으로 더위에 적응시키자. 그리고 때가 된다면 하루에 몇 분씩 태닝을 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맥주를 좋아하지만 근래에는 잘 마시지 않았다. 맥주를 마셔도 한 캔 정도를 마실 뿐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이 지속될 때는 술과 야식을 피하는 것도 좋다.


감염병만 아니었다면 여름이면 바닷가 퍼브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늘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언젠가 또 그런 여름을 맞이하겠지. 그때까지 여름에 적응 잘할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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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01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우....그래도 교관님께서.빨리.연락을 취해주셔서.다행입니다. 굉장히 무섭네요..더위먹는다. 말로만.듣던

교관 2021-08-02 12:43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어지럽고 더위가 오기 전에 전조를 느끼지 못하냐고 하는데, 뇌에서 그런 증상을 느끼기 전에 몸이 먼저 힘들어서 쓰러지는 거 같아요. 쓰러질 때는 더 큰일이 날 수 있으니 물 자주 마시고, 운동 매일 조금씩 해주고 ㅎㅎ. 더위 잘 이겨보아요 :)
 

유튜브에서 먹방만큼 인기가 많은 채널이 영화 관련 채널이다. 영화 해석이나 영화 리뷰, 오래전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의 최근 근황,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공포영화만 올리는 채널, 마블의 세계관을 해석하는 채널, 일본 영화만 올리는 채널, 19금 영화만 리뷰하는 채널 등 아주 다양한 영화 채널이 있고 또 대체로 전부 인기가 많다.


그만큼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또는 봤던 영화나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엘리베이터를 타면 대부분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영화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유명 영화 음악 감독은 일반 시사회가 끝나면 바로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거기서 소변을 보며 영화 음악을 흥얼거리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고 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니 꼰대 아버지가 도대체 영화 이야기가 밥을 먹여주냐, 뭣에 도움이 되냐 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삶에 도움이 안 되니 당장 치우라는 거였다. 드라마나 영화는 삶에 도움이 전혀 안 될까.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왜 영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것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러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나가는 이유도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취준생이 경쟁률이 엄청난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매일 시간을 쪼개 그 많은 과목을 공부하는 이유도 당연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묘하고 짜릿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치 봄에 피는 벚꽃처럼 잠시 활짝 피었다가 곧 무화(無化)된다.


회사에서 월급이 올라서 행복해도, 진급을 해서 행복해도, 취업에 성공해서 공기업에 출근하여 행복해도 그 순간은 금방 끝난다. 곧 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고, 더 복잡한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더 돈이 필요해서 피곤하고 덜 행복한 나날들이다. 행복의 순간이란 잠깐이다. 취업에 합격했을 때 그 기분을 2년 뒤 오늘에도 똑같다면 그 사람은 행복의 기준이 남다르겠지만 일탈 같은 행복도 일상이 되면 그저 그런 삶일 뿐이다. 벤츠를 구입해도, 에르메스를 들어도 3년이 지나면 그저 그런 생활 속의 가방과 자동차 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일탈을 맛보는 기쁨은 영화나 공연에서 얻는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작 두 시간 정도면 영화는 끝이 난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두 시간 정도의 행복을 맛본다. 그리고 그 짧았던 행복을 길게 끌고 가고 싶어서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영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영화를 이야기하며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을 맛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을 투영하면서 나를 본다. 영화 속 초현실을 비틀어서 현실을 직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한 일상을 버텨낼 힘이 없다.


어제는 오랜만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봤다. 스무 살의 미오가 9년 후의 미래로 가서 아이오와 자신의 아들인 유우지를 만나고 오는 이야기.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의 이야기지만 레인 시즌이 되면 어쩐지 보게 되는 아름다운 영화. 말이 되지 않아서 말이 될 만큼 예쁜 영화다. 영화 속에서 미오는 아이오에게 계속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설령 일찍 죽더라도 같이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기 때문에 나는 괜찮다고 한다. 지금 그 대사를 들으면 더 몽글몽글하다. 다들 잘 알겠지만 다케우치 유코는 가장 아름다울 때, 아름다운 계절에 죽고 말았다.

https://youtu.be/gwpXMS4WnZ0

그렇게 비가 되어 버린 유코 씨, 그곳에서는 행복하길 바랍니다.

미오는 오래 살 수 있는 미래를 선택하지 않고 아이오를 만나러 간다.

 

짧은 시간이라도 사랑하는 두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택하겠어,

나를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대사는 이 영화와 함께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누구든 그 권리를 빼았어도 안 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끓어올랐던 이 행복한 기분을 다음 영화를 볼 때까지 길게 끌고 가고 싶다. 그러면 일상이 비록 지질하고 재미없지만 덜 불행하게 보낼 수 있다. 주위가 행복해지려면 먼저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힘들고 지치고 미칠 것 같을 때 적극적으로 힘들다고 말하고, 진짜 미치기 직전까지 미치자. 그러고 나면 조금은 행복에 가까워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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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트 똥 같다


민초단 초코파이


이 기괴하고 기묘한 컬러를 지닌 오묘한 맛이 나는 민초단을 어느 날 문득 먹게 되었다. 일상에서 특별한 일은 어느 날 문득 이뤄진다. 말똥말똥 만화 같은 눈으로 앞에서 먹기를 바라고 있어서 따자마자 세 개를 먹었다. 박하 초코파이가 입 안으로 들어온 날.


예전 연애시대를 보면 은호의 내레이션 중에, 우리의 삶(일상)은 장난감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쉽게 망가진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우리는 망가진 일상을 이어 붙인다. 계획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보통 잘 없다. 어느 날 문득 한 번 해볼까, 하고 한 번 생각이 들면 그대로 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그런 ‘어느 날 문득’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일행이 호들갑을 떨며 민초단을 들고 왔다. 내 약해빠진 일상이 와그작 망가졌다. 온몸이 민트로 꽃을 피울 것만 같다. 왕뚜껑 국물이 왜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 걸까. 일행은 오리온에서 깜짝 이벤트로 어쩌고 하면서 두 박스나 들고 왔다. 나는 보는 앞에서 세 개를 먹었다. 이틀 정도 지난 지금 아직도 한 박스가 냉장고에 있다.


어느 날 민트가 외계인처럼 생활 속으로 야금야금 파고들더니 사람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지난번에도 민트 라테를 마시면서 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했다. 민초단은 말 그대로 민트와 초콜릿을 섞어 만든 초코파이다.


첫 한 입을 깨물면 비누를 씹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비누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가 싶더니 이내 비누 맛은 사라지고 민트와 초콜릿이 뇌를 주무른다. 이렇게 말을 하면 맛이 이상할 것처럼 보이지만 꽤나 먹을 만하다. 나는 [어쨌든] 한 번에 세 개나 먹었다. 크기가 작기도 하고 마카롱 맛과 비슷하다. 일단 한 박스를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민초단 초코파이를 눈을 감고 먹으면 ‘먼 북소리’에 나오는 하루키 섬[먼 북소리를 읽으면 알겠지만 하루키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섬이 있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루키 섬으로 가는 내용이 나온다]에서 양치질을 하고 뱉을 수 없어서 그대로 입에 크림을 넣어서 같이 먹는 기분. 그 순간 하루키 섬의 바다는 가루를 뒤집어쓴 듯한 하얀 바위에 민트색 파도가 밀려와서 소리도 없이 민초단으로 파스텔톤으로 부서진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라며, 어떻게든 하루키와 엮어 보려는 나의 노력이 가상하다. 오히려 민초단인 일행이 호들갑을 뜬 것에 비해 잘 먹지 못했다. 아마 파리바게트의 민트 초코 마카롱 아이스크림의 맛을 따라오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민트 축제다. 이 뜨거운 붉은 여름에 민트 색이 온 세계에 팡팡 열려 있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파스텔컬러로 머릿속에 있는 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텐데 아쉽다. 민트가 도넛에도, 초코송이에도, 아이스크림에도, 다이제에도 가득가득이다. 봉지를 따면 민트 향이 솔솔. 천연향료로 멘톨(박하)이 개미 눈곱만큼 들어가 있다. 민트 민트가 세상에 안개꽃처럼 만개하여 민초단들이... 나는 미쳐가는 걸까. 민트 초코파이가 그냥 초코파이보단 덜 달다. 그저 내 입에는 그렇다.


어때요? 여러분은 민초단입니까? 반민초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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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30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화책 표지인줄 알았어요. 설마 저런 색상의 초코파이가?^^‘‘‘‘‘ 민초가 대세니 스벅도 민초 밀어주고 온통 민초 세상이네요^^;;;;

교관 2021-07-31 12:5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박하로 만든 빵 같아요 ㅋㅋ 민초 다음에는 어떤 유행이 올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