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공벌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공벌레에 관한 이야기다. 왜 공벌레는 2, 정도가 되겠다. 하루키의 에세이에도 개미와 도마뱀과 곤충에 관한 에피소드를 잡지에 싣고 후에 나온 잡지에 또 후속으로 개미와 도마뱀과 송충이에 관해서 2편 격으로 잡지에 실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나도 공벌레에 관해서 한 번 더 적게 되었다.

지난번 공벌레에 관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정리해 놓은 게 한 일주일 정도 전이었는데(그때 연일 비가 왔고 비가 그치고 공벌레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아파트 현관에 공벌레가 화단에 엄청나게 기어 나와서 살충제를 뿌린다는 거였다. 그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벌레가 작정을 하고 땅 속에서 전부 땅 위로 올라오는구나. 공벌레라는 건 사실 인간이 살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벌레가 화단에서 나와서 도로를 다니던, 인기척 때문에 몸을 말아서 공처럼 가만히 있던 인간은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바쁘고 빨리빨리 해야 하고, 빨리 되는 곳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지렁이만큼 천천히 움직이는 이 작은 공벌레에 관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공벌레가 화단에서 단체로 기어 나오게 되었다. 그러면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번 단편 소설 ‘런던 팝’에서도 올린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 잠자리도 한 두 마리 일 때는 인간이 잠자리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자리는 잠자리니까. 잠자리일 뿐이니까. 사마귀도 아니고 말벌도 아니니까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잠자리 수백 마리가 머리 위에서 떠 있으면 그건 대단한 공포다. 특히 붕 하는 잠자리의 날갯짓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들리면 두렵다. 잠자리들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아도 인간은 그만 무서움에 다리의 힘이 풀린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으면 인간은 겁을 먹게 된다. 공벌레가 화단 밑의 땅속이 오염이 되어서 아아 못 살겠군, 하며 전부 땅 위로 올라와서 꾸물꾸물 거리면 인간들은 또 겁을 먹고 살충제를 발포한다. 그러니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주의하라고 했다.


예전부터 영화계는 크리처 물이나 괴수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근래에 그래픽이 훨씬 좋아진 후에는 어쩐지 괴수물이 줄어든 것 같지만 오래전, 6, 70년 대에는 특촬물로 괴수물이 많이 나왔다. 공벌레가 오염된 토양을 먹고 점점 덩치가 커지는 것이다. 점점 부풀어 올라 하루 잠을 자고 났더니 공벌레가 저만큼 커진 것이다. 몸을 말고 지나가면 남대문도, 63 빌딩도 전부 다 박살이 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도망 다니고 아비규환이다. 공벌레는 굴러 굴러 모든 것을 납작하게 만든다.


또 한쪽에서는 연구목적으로 성범죄자들의 성기에 곰팡이 포자를 심어놨는데 공벌레가 몸속으로 기어 들어가 곰팡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사람도 같이 갉아먹는다. 공벌레는 사람의 뼈를 제외하고 말랑말랑한 부분부터 갉아먹으며 점점 부피가 커져간다. 곰팡이 포자는 그만 하늘의 한 곳에서 분포되어서 사람들에게 전부 옮겨 가서 붙어버리고 공벌레들은 곰팡이 포자의 냄새를 맡고 사람들의 몸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점점 갉아먹으며 몸집이 커진다.


그래서 오염으로 커진 공벌레와 곰팡이 포자를 먹고 커진 공벌레가 인간을 사이에 두고 결투를 한다. 그 사이에서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 놓은 문명이 파괴가 된다. 사람의 성향이나 신체의 세포에 따라서 공벌레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부풀어 오르고,,, 까지 상상하다 보면 밑도 끝도 없어진다.


합성을 한 5분 만에 하느라 저 모양이지만 배경은 60년대에 나온 크리처 영화 ‘대괴수 용가리’의 장면이다. 일본의 고지라 팀에서 용가리의 특수촬영을 도맡아서 했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의 20대 초반의 이순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이런 특촬물의 영화가 왕성하게 만들어졌다.


요즘은, 공벌레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수천 마리의 공벌레가 거대 괴수가 되는 영화보다는 밥그릇에 밥 대신 들어 있어서 그걸 먹는 장면이 있는 영화가 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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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잘 때 에어컨을 켜고 자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여름에도 잠을 잘 때에는 에어컨을 켜고 잠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다. 보통 6월이 되면 바닷가도 여름의 옷을 입는다. (참고로, 처음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저의 집 앞은 바닷가입니다) 그럼 그때부터 거의 매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바닷가에 나가 홀라당 벗고 오전에 잠시 책을 읽으며 살을 태운다. 그러다 보면 무더위에 몸이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조금씩 이글거리는 해에 몸을 내주고 살갗을 태운다. 살이 그러데이션으로 검게 물들어 갈수록 땡볕에 있어도 못 견딜 지경은 아니다. 아 덥군, 하는 정도지, 아아 미치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살갗이 진열장의 나무색과 흡사해지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다지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 카페에 앉아 있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실내온도가 26도 밑이면 좀 추운 것이다. 요즘도 내가 일하는 곳의 실내 온도는 26, 27도 정도에 늘 맞춰져 있다. 거기에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꽤 시원하다.


생각해보면 해외 휴양지의 현지인들은 그렇게 더위를 타지 않는다. 에어컨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 정도로 폭염이나 무더위에 몸이 적응을 한 것이다. 요 며칠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허덕이며 죽으려고 하는데 바닷가도 가까우니 가서 썬텐이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음은 매일 하는 조깅이다. 폭염이면 운동을 하지 마라, 심한 조깅은 큰일이 난다, 같은 뉴스가 있지만 매년 여름이면 늘 폭염이었고 늘 더웠다. 더운 날일수록 밖으로 나가 달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의 오후 3시에 조깅을 하러 나가면 나처럼 미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전부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움직이며 저기서 여기를 지나 저기로 신나게 달려간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복장을 잘 갖춰 입고 열심히,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다부진 표정으로(사실 마스크와 고글 같은 것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페달을 밟는다.


요즘 같은 날 조깅을 하면 엄청난 땀이 흐른다. 무릎에서도 땀이 비어져 나오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땀이다. 일 년 중에 이렇게 엄청난 땀을 흘릴 수 있는 날도 여름뿐이니 여름을 즐기면 된다. 그렇게 지정해 놓은 코스까지 달려가면 땀이 온몸을 급습하는데 그때부터 되돌아올 때 걸어오다 보면 덥덥한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시원하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덥덥한 바람에 불쾌지수가 오를지 몰라도 조깅을 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여름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만 맞다가 야외로 나가면 부는 바람이 당연히 덥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조깅을 하면서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잔뜩 주어 땀을 죽 빼고 맞이하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러니 집으로 들어와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앉아 있으면 아파트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할 수밖에 없다. 집은 10층이라 바닷가의 바람이 여름에도 늘 분다.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시원하다. 그냥 이대로 잠들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고 잠들지 않는다.


다음은 조깅 후에 마시는 물이다. 대부분 더우면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를 마시지만 나는 시원한 물을 보온이 되지 않는 텀블러에 미리 채워두고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그 물을 마신다. 그 물은 내가 조깅하는 동안 미지근해져 있다. 시원한 물이 갈증을 해갈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조깅을 해서 땀을 이만큼 흘리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캬 하는 소리가 나오며 좋을 것 같지만 그건 순전히 그저 미화된 광고 영상의 영향이다.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자주 홀짝이면서 물을 체내에 채워준다. 그러면 물이 몸에 잘 퍼져 들어간다.

과학적으로 또 의학적으로 잘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그저 기도 부분에 자극만 줄 뿐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갈증을 부축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잘 모르니 설명하기가 힘듦(웃음). 그리고 내가 나를 봤을 때 태생적으로 추위는 견디질 못하는데 더위는 그냥저냥 참고 잘 견디는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늘 더웠고 늘 폭염이었고 늘 불쾌지수 같은 말이 따라붙었고 매미소리가 들렸다. 올해 여름이 지난여름들보다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작년과 올해는 이 더운 여름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덥다고, 폭염이라고 유난 떨 것 없다. 그건 전부 미디어나 언론에서 늘 하는 말이다. 랑종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최강 공포 영화라며 유난 떨며 불 켜고 상영하는 극장까지 생기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게 무서운 건지 그저 잔인하고 징그러운 건지 알 수 있다.


유튜브의 옛날 티브이 영상을 보면 90년대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 생각으로 에어컨이 없이 이런 무더위에 어떻게 생활을 할까 싶지만 영상을 보면 더위에 허덕이면서도 다 견뎌낸다. 그렇게 여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낸다. 댓글들 중에 이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저렇게 더워 보여도 마스크 안 쓰고 있는 게 너무 부럽다’. 지금은 덥고 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 언젠가 분명 오늘도 재미있게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방탄이들의 퍼미션 투 댄스를 보면 희망은 절망 끝에 있고 곧 모두가 마스크를 벗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말을 한다. 게다가 감동적이기까지 한 노래의 힘을 보여준다.


여름에 날이 시원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더우니까 여름이고 우리는 이런 여름이 오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사 문제가 있다 손 치더라도 답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한반도는 장마기간이라 진정한 폭염은 다음 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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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벌레는 왜 비가 온 직후에는 많이 기어 나올까. 왜 공벌레는 화단이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 굴러다니지 않고 꼭 아파트 시멘트 바닥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위험하게 굴러다니는 걸까.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공벌레가 비가 온 직후에는 꼭 길 위에 나타나서 꾸물꾸물 다닌다. 공벌레가 다니는 걸 보는 건 꽤 재미있다. 꾸물꾸물 기어가다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인간이 본다는 걸 아는지 갑자기 몸을 공처럼 말아버린다. 그런 모습은 꽤나 흥미롭다.


왜 공벌레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기어 다니지 않고 이렇게나 위험천만한 곳으로 기어 나와서 기어가는 것일까. 태양이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듯이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공벌레들을 그렇게 이끄는 것일까. 조금 멀리서 보면 사람들에게 밟힐 것 같은데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인기척이 느껴져 몸을 공처럼 말지만 인간이 밟으면 그대로 납작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공벌레는 그 사실을 모른다. 마치 타조 같은 새가 몸을 숨기기 위해 땅바닥의 구멍이 머리만 숨기는 것과 비슷하다. 공벌레는 머리와 일곱 개의 마디로 된 가슴, 다섯 개로 이루어진 배로 나뉜다. 참 신기하다. 더 신기한 건 더듬이가 두 쌍이 있다고 한다. 한 쌍의 더듬이는 퇴화하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공벌레는 낮에는 낙엽이나 돌 밑과 같은 습한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비가 온 직후에는 늘 이렇게 쨍한 날, 오전에 이렇게도 돌아다는 걸까. 왜. 왜. 공벌레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로 곰팡이나 부식질을 먹는다. 또 화단이나 흙 속의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영양분이 잘 돌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생긴 게 징그럽게 생겨서 그렇지 인간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건 인간이다.

공벌레를 보느라 30분가량 땡볕에 앉아 있었더니 땀이 줄줄 흘렀다. 일어나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하수구 쓰레기가 가득한 곳에 꽃이 피었다.

꽃은 깊은 하수구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팔을 뻗어 뻗어 하수구 뚜껑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꽃에 나비가 일었다. 딱 한 송이 핀 꽃 위에 나비가 앉아서 꽃에게 약속을 하고 있었다. 꽃씨를 좋은 곳에 뿌려 줄게. 자연은 정말 살아있는 선생님 같은 존재다. 발로 툭 차면 없어져 버릴 잡초와 나비가 이렇게도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척박한 땅에도 희망은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 1917에서도 그런 장면이 계속 나온다. 인간의 욕심으로 모든 곳이 파괴되고 폭탄으로 터진 곳에도 꽃은 핀다. 감동적인 장면이 언뜻언뜻 스쳤다.

낚시를 해서 고기를 낚으려는 건 세월을 낚으려는 것이다. 마치 세계가 정지해 버린 곳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사색에 잠긴다. 우리가 언제 한 번 깊이 있게 사색에 잠긴 적이 있었던가. 바다 멍에 이어 강 멍도 좋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멍 때리기에는 불 멍이다. 새해를 맞이할 때 여기 바닷가에는 모닥불을 피워서 해를 기다린다. 그때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을 보는 건 무척이나 빠져든다. 불 멍에는 대책 없이 흡수된다.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에 그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강 멍도 좋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 역시 좋다. 그들의 등에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마 중에 조깅을 했다. 잠시 소강상태인데 낚시꾼들과 강과 하늘과 비행기. 공항에 여기서 꽤 가까이 있어서 비행기를 조금 큰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비행기가 날면 소리가 크다. 항공기뿐 아니라 경비행기들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소리가 크다. 하지만 전투기 소리에 비할바는 못 된다. 전투기는 거의 점 만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 위를 날아 가는데 그 소리는 천지를 울린다. 전투기 두 대가 지나가면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다. 정말 전쟁이 나서 전투기가 분당 간격으로 날아다닌다면 그건 정말 공포일 것이다. 엄청난 소리의 공포가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소리가 사람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소설을 적고 싶다.

아직 어린 고양인데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가 휙휙 다니는 도로의 저기에 꼭 새초롬하게 졸고 있다. 부르면 개무시하듯 눈을 가늘게 한 번 떠 준다. 그리고 다시 꾸벅꾸벅 존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휙휙 지나가기 때문에 위험한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는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유튜브에 길고양이에 대한 안 좋은 영상과 기사가 많다. 도가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그게 신념이 되면 무섭다. 신념이라는 좋은 말이 오로지 신념밖에 없는 사람이면 그건 좀비와 다를 바 없다.

34도의 여름날인데 가을의 밭에 온 기분이 드는 곳이다. 강변의 상류에는 이렇게 꽃밭이 있고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여름에 핀 코스모스는 마치 장난감 같다. 5세 조카가 크레파스를 들고 여기저기 알록달록하게 칠해 놓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요즘 나비가 많이 보이는데 코스모스에 나비가 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조깅을 하면서 그저 설핏설핏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코스모스에 나비가 앉는 모습을 사진으로 한 번 담고 싶다.


글을 적으면서 보니 손톱이 또 자랐다. 손톱이 너무 빨리 자란다. 손톱을 깎은 지 고작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손톱은 생각보다 길게 자라나 있었다. 손톱은 손가락마다 다 다르게 자란다. 가장 빨리 많이 자라는 손톱은 검지 손톱이다. 새끼손톱(문득 든 생각이지만 새끼가 손톱 앞에 붙으면 귀여운데 손톱 뒤에 붙으면 욕이 된다. 손톱 새끼. 병아리나 강아지도 그렇다. 새끼 병아리, 새끼 강아지는 괜찮은데 병아리 새끼. 강아지 새끼는 욕이다)은 새끼손톱이라 그런지 제일 늦게 자란다. 손톱이 빨리 자라는 게 시간과 흡사하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빠르다는 것이다. 손톱을 일단 깎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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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의 노래를 매주 배캠의 전주연의 빌보드 차트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팝 10을 소개하는 곳에는 말 그대로 해외 팝스타들의 노래만 있었다. 그런데 매주 주말에 라디오를 통해, 그것도 배캠의 빌보드 10위의 차트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방탄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소개를 하는 배철수의 목소리도 좀 더 경쾌하고 힘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이번 퍼미션 두 댄스는 정말 에드 시런의 분위기가 뒤에 깔리는 기분이다. 거기에 방탄이 완벽하게 노래와 춤을 추었다. 마치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곧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올 것만 같아서 사람들이 더 힘을 내는 것 같다. 방탄의 노래는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속의 가사와 노래가 말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팬들은 깊게 빠져든다.


김성호라는 가수가 있는데 김성호의 회상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는 너무 유명하니까 대부분 다 안다. 하지만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느닷없이 방탄 이야기를 하다가 김성호의 회상을 이야기하냐고 하겠지만 요즘은 방탄이들의 노래와 김성호의 노래들을 번갈아가며 듣고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 두 가수의 공통점 이리고 하면 (개인적인 생각에) 대단히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방탄이들의 노래도 시적이고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김성호의 노래들 역시 전부 감성적이다. 대단히 시 같아서 음을 붙이지 않으면 그대로 시다.


김성호의 회상은 제목이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다. 소개를 한다면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라고 소개를 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겨울에 조깅을 하다가 민트 라떼를 늘 사 먹을 때 김성호의 회상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이 노래가 가지는 시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을 듣고 있으면 그녀를 떠나보낸 아쉬운 마음이 그대로 들면서 후회로 점철된 오래전 나의 과오 같은 것으로 인해 그녀를 보낸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잊은 상흔이 다시 새겨지는 기분이다. 김성호의 회상은 김성호가 꼭 경험을 노래로 옮겨 놓은 것 같지만 이 노래는 김성호의 상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김성호의 노래들 제목을 보면 대부분 길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웃는 여잔 다 이뻐’ ‘김성호의 회상’처럼 그 당시의 제목과는 상반되게 길다. 그리고 노래들의 가사를 보면 역시나 시다. 하나하나 전부 예쁘고 애틋하고 감성이 풍부하다. 도대체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내는 김성호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김성호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아마 몇몇은 도대체 김성호라는, 이렇게 노래를 잘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생겨먹었지. 하며 나처럼 생각하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김성호는 자신의 노래도 만들어 불렀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나 서툴렀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의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 노래들이 바로


다섯 손가락의 풍선, 을 첫 시작으로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박준하의 바다를 사랑한 소년 등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만들었다. 김성호가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의 곡은 바로 고 박성신의 ‘한 번만 더’였다. 박성신은 노래 부르는 것을 타고났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의 곡이 아니라도 누구의 곡을 받았더라도 잘 불렀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박성신은 안타깝게 14년에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이렇게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진 김성호는 의외로? 밴드로 출발을 했다. 배철수처럼 전기기타와 드럼의 소리에 빠져 있던 학생과 청년 시절. 레드 재플린 같은 밴드를 보며 자란 김성호는 자신의 형이 써 놓은 시에 음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되었다.


김성호가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드디어 가수 신유와 소찬휘가 김성호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방송이 전주 엠비시를 타고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간 몰랐던 김성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신유와 소찬휘가 김성호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른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버린 김성호가 다시 한번 ‘김성호의 회상(1988)’을 부르는데(영상 10:08) 목소리가 예전의 목소리 그대로다. 감상을 해보면 딱딱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좋은 노래들로 하여금 힘을 얻고 신세를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래가 없는 세상을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빠른 노래를 들으며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이런 세상이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노래의 소중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김성호의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https://youtu.be/tbPTyK7KSow 

따뜻하고 예쁜 시 한 편을 듣는 기분

https://youtu.be/zKSEfnw8t5A

김성호가 작곡한 노래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김성호의 회상

웃는 여잔 다 이뻐

박영미 -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김지연 - 찬 바람이 불면

박성신 - 한 번만 더

황규영 - 나는 문제 없어

다섯손가락 - 풍선

오장박 - 내일이 찾아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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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다 2022-04-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다를 사랑한 소년‘은 진시몬 가수가 불렀고 박준하 가수가 ‘너를 처음 만난 그때‘ 불렀어요
 

좋은 냄새 중에는 시골 냄새가 있다. 시골 냄새라고 한다면 시골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고, 시골에는 할머니가 있다. 그래서 시골 냄새라고 하면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 냄새, 시골집에서 나던 냄새, 시골의 개울가에서 나는 냄새를 통틀어 시골 냄새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시골이라는 개념은 외가밖에 없다. 친가와는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되었고 대부분 돌아가셔서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스쳐도 서로 모를 정도다. 그에 비해 외가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이모의 장례식 때문에 다 같이 모이기도 했다. 내 기억 속의 시골 냄새는 불영 계곡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솥 냄새, 알이 작은 감자가 익어가는 냄새, 맑은 개울에서 나는 비린내,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강하게 났던 나무 냄새, 그리고 외할머니와 큰 이모의 체취가 묻어있는 외가의 냄새다.


논과 논 사이를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떠 있는 개구리밥, 그 밑에서 노니는 송사리들을 지나 개울물로 내려가면 물이 맑아 가재도 잡을 수 있었다. 개울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으려면 동네 슈퍼에서 낚시 줄과 바늘만 구입해서 긴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서 미끼를 끼워서 물에 던지면 된다. 미끼는 집적 잡아야 한다. 개울물에 잠긴 좀 큰 돌 같은 것을 들면 꾸물꾸물 장구아비처럼 생긴 벌레가 있는데 그걸 잡아서 바늘에 끼워서 낚시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그 벌레가 몹시 징그러워 손에 만지지가 무척 힘들지만 일단 한 번 바늘에 끼우게 되면 바위에 붙어 있는 그 벌레를 잡는 재미도 있다. 벌레를 검색을 해도 이름을 모르니까 찾을 수가 없네. 그래서 바늘에 끼워서 물에 던지면 고기들이 요래 오래 와서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되고 그냥 수영복을 입고 아예 물(이 맑아서 잘 보이니까)에 풍덩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된다. 그래서 미끼를 물면 잡아서 끌어올리면 된다. 그러면 피라미들을 낚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피라미들을 잡아서 개울가에서 매운탕을 직접 끓여 먹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게 놀다가 외가에 들어가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국수를 비벼 주기도 했고 시래기 무침을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기도 했다.


시래기 무침은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큰 이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시래기 무침을 전혀 먹지 못하다가 근래에 먹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서 밥에 비벼서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지쳐있었다는 걸 알았다. 시래기는 사 계절 중에 겨울에 어울린다. 시래기 된장국도 뜨근하게 먹으면 언 몸이 녹아내리고 시래기 국수도 겨울에 먹는 별미다. 어릴 때 살던 곳에서 엄마를 따라갔던 전통 시장에 연기를 폴폴 나는 작은 국숫집이 있는데 육개장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푹 삶아서 거기에 국수사리를 넣어서 후루룩 먹는다. 양도 많고 국물을 우려내는데 삼천 원이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시장을 여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시래기 국수를 호로록 먹는다. 고등학교 때는 사진 부여서 주로 전통시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딱히 전통 시장의 치열한 삶을 담아야 한다는 신념보다는 치열한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담아가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일요일 오전에 사진을 찍다가 허기가 지면 시래기 국숫집에 들어가서 시장 사람들 틈에 끼어 국수를 호로록 먹었다.


시래기는 그만큼 서민에 가까운 음식이다. 시래기 무침은 또 주로 여름에 많이 먹었다. 그 이유는 여름에 외가에 놀러 가서 개울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이렇게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었다. 어릴 때 시래기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먹다 보면 맛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 나에게 있어 시래기 무침 같은 음식은 추억과 기억으로 점철된 추상적인 음식 이외에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더 기분 좋은 건 많이 씹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음식은 소화 때문에 그만큼 씹기 싫어도 많이 씹어야 하는데 시래기 무침은 그렇게까지 많이, 우걱우걱 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좋다.


추억으로도 맛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래기 무침이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 먹기 싫은 시래기 무침. 이게 여름에 땀을 쭉 흘리고 난 후 샤워를 하고 나서 밥에 슥삭슥삭 비벼 먹는 맛은 왜 그리도 좋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몸은 늙어가도 머리는 낡아지지 말자. 그렇게 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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