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먹고 싶은 음식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라도 먹은 음식의 종류로 따지면 또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 화면 속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음식의 종류가 있지만 우리는 하루 세 끼, 내지는 두 끼를 무엇을 먹을까로 늘 고민을 한다. 그것 참 희한하다면 희한한 일이다. 이렇게 먹을 게 많은 세상에서 뭘 먹을지가 늘 고민이다. 선택 장애를 겪는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우리는 간단한 선택의 기능을 점점 잃어간다. 똑똑한 바보가 되어간다. 이것 역시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먹었던 음식 중에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찾아서 먹게 된다. 그 음식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다. 그런 순환이 단골을 만들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음식의 맛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가서 현지의 음식을 먹으며 만족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긋지긋한 감염병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맛있게 먹는 음식 중에 자주 먹지 않는데 가끔 먹어서 맛있는 음식에 오리 훈제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리 요리는 닭처럼 백숙이나 진흙구이 정도로 먹는다. 하지만 오리는 많은 요리로 먹는다. 무라카미 류의 글에도 오리고기를 먹는 것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피와 골수 소스 위에 놓인 오리가 날라져 왔다.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냈다가 잊어버린 자신의 내장 일부를 몸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듯한 감각적이었다. 이렇듯 지구에서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치는 베르사체를 능가하고 내 하루 세끼 식사비보다 더 비싼 것’라고 되어 있다.


오리 요리는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비싸기도 하다. 중국의 유명한 북경오리도 저렴한 것은 만원 미만이지만 비싼 건 33만 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어떻든 오리가 닭보다는 비싸다. 불포화지방산이라는 것 때문에 닭보다는 좀 더 위에 자리 잡은 요리임에는 확실하다. 오리훈제도 가끔 먹는데 맛있다. 내 입맛에 맛 이즈 뭔들, 이지만 훈제 같은 맛을 집에서는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훈제로 나온 음식을 사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리 훈제도 집 앞 마트에 가끔 들어온다. 그래서 한 마리?를 사면 몇 번 나눠서 이렇게 먹을 수 있다. 훈제는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마늘이나 양파를 넣어서 뜨겁게 데워서 먹으면 더 맛있다.


오리 훈제하니까 추억이 하나 있다. 친구와 내가 사는 집의 딱 중간 정도의 동네에 작은 술집이 하나 있었다. 여러 안주 중에 오리훈제도 있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사는 곳의 중간에서 만나 그 집에서 소주 한잔을 했다. 왕왕 가다 보니 주인(아주머니)하고 인사도 하게 되었다. 보통 거기 가면 오리훈제 한 마리를 주문해서 소주를 한 두 병 마시고 왔다. 오리 훈제라고 해서 그 술집에서 요리를 한 것은 아니고 대체로 마트에서 구입해서 데워서 내주는 것이다. 긴 다리 하나 들어가 있고 그 주위에 (사진에서처럼 보이는) 오리 훈제 요리였다. 그리고 술집에서 파는 오리훈제는 좀 비싸니까 반찬들이 딸려 나왔다. 그래 봐야 김치나 양배추에 케첩이 뿌려진 것과 땅콩 같은 것들이 나온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다니다가 늘 그렇듯이 그날도 친구와 함께 오리 훈제와 소주를 주문했다. 이야기를 하며 오리 훈제를 먹었다. 그런데 친구가 한 마리 더 먹고 싶다는 거였다. 친구는 여자다. 한 마리 더 먹자는 말은 그만큼, 정말 배가 너무 고팠다는 말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배고픈지도 모르고 지냈다가 이렇게 먹고 나니 더 먹고 싶다는 거였다. 친구와 나는 오리 훈제를 좋아해서 한 마리 더 먹는 것에 좋았다. 오히려 늘 먹을 때면 주문한 한 마리가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주인에게 한 마리 더 주문할 테니 밑반찬을 좀 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된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반찬은 가격 때문에 한 테이블에 한 번 나간다는 거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주문을 새로 한 마리 더 하는데도 안 되냐고 물으니 그래도 안 된다는 거였다. 이런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 술집은 친구와 내가 같이 오기가 수월해서 왕왕 왔던 곳인데 올 때마다 손님은 늘 없었다.


주인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단호했다. 주인의 머릿속에는 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이,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먹을 것을 계산을 다 한 다음에 일어나서 옆의 테이블에 가서 앉아서 한 마리를 주문했다. 이러면 밑반찬이 나오는 거에 문제가 없죠?라고 하니 주인은 우물쭈물 아무 말 없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니. 아무리 세상에 여러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까지만 생각하고 그날은 다른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고 나왔다.


당연하지만 이후로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장사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을 혈액형으로 나누면 몇 가지 안되는데 인간은 얼굴처럼 다 , 전부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집에서 저렴하게 구입해서 더 맛있게 오리훈제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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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받기 위해 가는 길목에 십 년 넘은(분명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내가 본 것만 십 년 정도이니) 나무가 있어서 매일 나무를 찍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의 모습도 달라진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을 보여주던 나무는 봄이면 슬슬 연녹색의 옷을 입기 시작하여 4월부터는 본격적인 녹음을 장착해서 오월이면 초록으로 한껏 자신을 뽐낸다. 살아있는 생명이어서 분명 아픈 날도 있을 텐데 나무는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자가 치유로 아픔을 낫거나 아픔이 심해져 시들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나무에 눈독 들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매일 나무를 촬영하면서 나무에 대해서 한 번씩 생각했다. 그렇게 그 나무의 사진을 찍은 지도 오래되었다.


3월이 되니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매일 아침마다 보는 까치의 분주함은 노래 가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10분 정도 서서 구경하기에 나무 위 까치의 분주함만큼 좋은 구경거리도 없다. 2층의 카페에 앉아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1층에서 고개를 꺾어 나무 위 둥지를 튼 까치의 부산함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소리 소문도 없이 나무가 뽑혀 나가고 말았다. 그 전날 이곳의 나무를 옮길 예정이라든가, 없앤다던가 하는, 그런 팻말이나 예고 같은 걸 전혀 알 수 없었다. 까치들 때문에 속상하고 오랫동안 봐오던 나무가 사라져서 몹시 섭섭했다. 공사 때문에 나무를 뽑았는데 공사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소방서를 허물고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규모가 상당한 지식산업센터를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볼 땐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나무를 뽑아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무를 없애고 말았다.


그놈의 지식산업센터 때문에. 도대체 지식산업센터는 뭐하는 곳일까. 그래서 찾아보니 공장형 아파트의 요즘 말이란다. 지식산업센터에서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파트 같은 것이다. 그저 인간이 들어앉아 사는 아파트를 짓는 것뿐이다. 거기에 허울 좋은 첨단산업이 접목하는 것이라 한다. 결국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나무가 사라졌다.


까치의 둥지도 사라졌다. 까치는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거리로, 아니 허공으로 내 쫓기게 되었다. 그저 돈만을 쫓는 인간들 때문에 돈이 필요 없는 생명체는 쫓겨나거나 사라지고 만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뭔가 도시를 움직이는 꼭대기에 앉아 있는 수장들이 꼴 보기 싫어진다. 공사를 하는 것도 참 밉다. 이하 글은 따로 적어서 올리려는 글인데 여기서 뭉쳐서 올려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물을 많이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비누칠을 해서 손을 씻을 때 비누칠하는 동안 물을 틀어 놓는데 그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마시는 물을 제외하고 물이 쓸데없이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잠그게 되었다. 그러니까 비누칠을 하는 동안에도 물을 잠그고 당연하지만 양치질을 하는 동안에도 물을 잠근다. 이건 좀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비빔면을 좋아해서 자주 해 먹었는데 찬물에 씻어야 한다. 하지만 손을 씻을 때처럼 그렇게 버려지는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그렇게 문득 든 생각은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왜 차게 해서 먹는 것보다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으면 시원하게 해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설거지도 콸콸 틀어놓지 않고 최소한의 물 만으로 하게 되었다. 몇 년을 그러다 보니 물세가 좀 줄어들었다. 유난 떠는 것 같지만 일단 습관이 되면 불편한 건 없다. 어차피 매일 해야 할 행동이면 밥을 먹듯 하면 된다. 밥을 늘 거창하게 한 상 가득히 차려 놓고 먹을 수는 없다.

물이 아깝다고 근래에 생각이 드는 게 공사현장이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먼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도심지에서 건물을 부수고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 호수로 물을 뿌린다. 몇 시간을 호수를 들고 뿌리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 부족 국가라고 소리를 질러봐야 자본 앞에서는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몇십 년 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소방서가 있는데 드디어 철거를 하고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꼴 싸나운 걸 짓고 있어서 물도 미친 듯이 뿌려댄다. 몇 시간 동안 물을 뿌린다. 그래야 하겠지만 그래야 하는 것이 꼴 보기 싫은 것이다. 그 앞의 나무까지 뽑아가면서 이런 건물을 짓고 있다.


나무가 사라져서 사진 찍을 맛이 나지 않는 요즘의 오전이다. 지식산업센터에 얼마나 뛰어난 지식충들이 들어앉아 생활하는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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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6-03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 속에서 풍경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을 사람들은 알까요?

교관 2021-06-04 12:13   좋아요 0 | URL
세 명만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ㅋㅋ



사진관에 자주 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풍채가 좋고 키도 180이 넘고 목소리도 걸걸한 할아버지였다. 나이는 80은 넘은 것 같은데 워낙 건강하게 보여서 또 80대로 보이지 않았다. 외모는 마치 일본의 60년대 레슬링 선수 같은데, 일본 영화 ‘내 이야기!!'에 나오는 타케오의 늙은 모습이 딱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딱 그렇게 생겼다. 눈썹과 머리 모양이나 눈매나. 단지 머리가 하얗고 술 때문에 얼굴이 좀 붉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케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타케오 할아버지가 사진관에 자주 오는 이유는 주말마다 산악회에서 등산을 가는데 거기서 찍은 사진을 출력하려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사진관에서는 일반 사진은 출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케오 할아버지의 사진은 출력소에 맡겨서 사진을 인화를 해주었다. 그렇지만 또 일반 사진은 증명사진처럼 수정을 할 수 없는데 늘 타케오 할아버지는 자기 위주로 수정을 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사진에 날짜를 꼭 넣어달라는 것이다. 몇십 장이 되는 사진에 일일이 날짜를 넣어주고 타케오 할아버지의 얼굴은 전부 다 수정을 해주고 한 장에 이백 원이다. 엉망진창인 것이다. 아무튼 날짜를 넣어주고 난 다음에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세팅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항상 날짜는 사진에 없고 꼭 나에게 넣어달라고 했다.


타케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아서 그런지 술을 드시고 올 때면 그 큰 몸을 잘 지탱하지 못해서 조금 비틀비틀거리며 들어온다. 그리고 그 걸걸한 목소리로 보자마자 여차저차 다른 말 없이 걸걸한 목소리로 “여어”하며 들어온다, 여어, 할 때 억양이 올라가면 그 날 기분이 좀 좋은 날이고, 여어, 가 짧고 억양이 없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말이다. 기분이 좋은 이유는 막걸리를 한 잔 거하게 와서 기분이 좋은 것이고, 기분이 별로인 건 기분이 별로인데 막걸리를 마셔서 기분이 더 별로라 그런 것이다. 아무튼 그런 할아버지가 타케오 할아버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타케오 할아버지가 뽑은 일반 사진은 동네에 있는 사진관이나 출력소를 가서 출력을 해야 한다. 내가 있는 사진관에서는 일반 사진은 취급하지 않지만 어쩌다 처음에 타케오 할아버지의 길을 그렇게 닦아 놓은 것 같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처음 한 번 해주면 다시는 안 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 왔을 때 그렇게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등산을 하고 와서는 카메라를 던지며 걸걸한 소리로, 알제?라고 하고 가버린다.  

그런데 이 풍채 좋은 타케오 할아버지가 죽 오다가 한 일 년쯤 뒤에는 할머니의 사진도 뽑아 달라며 카메라를 던졌는데 할머니의 발가벗은 사진, 누드 사진을 타케오 할아버지 식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게 중에는 할머니의 버자이너가 드러나는 사진도 있었다. 참 난감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해서 그래,라고 걸걸하게 말했다. 그냥 좀 뽑아줘. 마치 오래되고 빛바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사진들이었다.


예전에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욕조에서 같이 목욕을 하며 와인 잔을 들고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어떻게 출력을 해야 하냐며 들고 온 친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발가벗고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서 출력을 하려면 출력소의 사람들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몇 장 더 인화를 할 수도 있으니 4-6 사이즈만 출력할 수 있는 작은 프린트기를 하나 구비해서 집에서 출력을 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사진을 수백 장씩 사진을 찍게 되니 그때 가서도 꽤 프린트가 유용하니 하나 구입해두고 신혼부부 둘이서 발가벗고 찍든, 서로를 찍어주던 둘만의 사진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타케오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몇 번은 할머니 나체 사진을 찍어 와서 출력해갔다. 다행인 것은 보통 사진을 출력해서 들고 가기 전에 여기에 앉아서 하나씩 보면서 하하하 웃으며 사진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 산은 무슨 산이고, 여기는 산의 어디이며, 이 녀석은 나 보다 몇 살이 적은데, 같은 설명을 했는데 할머니 나체 사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이제 안 온 지 몇 년 정도 되었다. 아마도 돌아가신 모양이다. 풍채가 아무리 좋고 키가 커도 나이가 많고 술을 이만큼, 매일 마시니까 몸이 버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타케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할머니 나체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였다.


집집마다 사진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게 된다. 예전 사진이든, 아주 오래된 사진이든 집집마다 앨범이며 액자며 오래된 집의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남아있다. 할머니의 나체 사진도 불태워 버리지 않은 이상 어딘가에 남아있게 되는데 많이도 뽑아간 할머니의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어서 할머니 본인이 처분을 하면 되는데. 타케오 할아버지 참 재미있었던 분이셨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섭섭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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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없이 풀어헤쳐진 자연스러움에 녹아내리는 마음이 뜨거워 두 손으로 잡고 싶은 영화.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잔상이 내내 맴돌아 돌아서면 눈물이 흐르는 영화다.


아이들이 눈밭의 강아지처럼 즐거울수록 눈물이 난다. 눈물의 원천은 따뜻함이다. 아이들만이 지니고 있는 온도의 따뜻함이 차갑거나 뜨거운 어른들의 눈두덩을 어루만져 준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울어야 할 때 울고 즐거울 때는 즐겁다.


엄마에게 확인받고 싶은 다이. 엄마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자꾸만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 같은 다이. 더 먼 곳으로 병원을 옮긴 엄마를 찾아 떠나는데 다이만 보낼 수 없는 찬구들이 하나둘 붙고, 결국 다이와 아이들의 멀고도 기나긴 여정.


재경의 변화가 뭉클한 이유는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경과 다이가 함께 찍은 엄마를 위한 노란 꽃 사진은 진짜 꽃 사진이다. 어느 예술 사진 못지않은 예쁜 사진.



아이들의 멀고도 험하지만 즐거운 여정의 길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일상의 기적을 믿고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속의 아이들은 세계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어도 울지 않는다.

엄마와 떨어져 살아도,

아빠 없이 엄마와 살며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예쁜이라고 해도,

키우던 마블이 죽어도,

아이들은 즐겁게 하루는 보낸다.

묘하게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바늘로 살짝만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싫어하는 줄 알았어,라고 무던한 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기적은 아이들 주위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고기 회를 먹지 못해 고작 말고기 맛이 나는 비스킷이라도 상관없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봐, 너 자체로 기적이야, 네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그때 아이들에게서 받은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였다. 웹툰을 제대로 영화화한 좋은 예다.


아쉬운 점은 다이 아빠의 눈썹이다. 정리가 심하게 잘 된 눈썹이 몰입에 방해를 단단히 한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눈썹을 정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영화 속에서마저 방송 예능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깔끔하게, 누가 봐도 눈썹을 정리하는 곳에서 관리를 받은 것처럼 정리가 된 눈썹을 하고 나올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다이의 아빠잖아. 다이의 아빠는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다. 다이 엄마의 병원비를 대기에도 너무나 벅차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다. 실제로 이렇게 생활하는 남자의 눈썹이 영화 속 다이의 아빠의 눈썹처럼 로봇처럼 잘 다듬어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얼굴에서는 다이와 엄마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고민에 휩싸인 표정이지만 눈썹이, 너무 깔끔하고 다듬어진 눈썹이 몰입을 떨어트린다. 다이 아빠의 눈썹 정도는 실제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가장의 눈썹 이어야 했다. 정글처럼 마구 자라 있거나 숱이 일정하지 않거나. 모든 게 가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눈썹은 잘 나가는 샵에서 받은 것 같은 괴리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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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6-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하십니다. 눈썹을 잡아내시다니....
전 손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교관 2021-06-02 11: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냥 화면에 딱 보이더라구요. 영화는 참 좋았습니다!!
 


편육은 정말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한국적이다. 사실 한국적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편육은 잡채처럼 보통 잔치집이거나 장례식장에서나 먹을 수 있어서인지 편육에 대한 내밀한 기억들은 아마도 ‘어른'이나 ‘잔치’ 내지는 ‘외가’ 같은 단어와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족발은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또 편육은 잘 볼 수 없다. 편의점에서 편육을 팔지만 나는 아직 편의점에서는 편육을 사 먹어 보지 못했다. 시장의 족발집에서 편육도 같이 만들어 파는 경우가 있는데 매일 나오는 족발에 비해 편육은 뜨문뜨문 올라올 뿐이다.


사진의 저것은 닭발 편육이다. 아파트 앞의 중형마트에서 파는데 매일 나오지 않으며 어쩌다 가끔 나온다. 그래서 나오면 마트에서 연락이 온다. 어쩌다 보니 마트와 그런 관계가 되었다. 편육이 먹고 싶어 한 번 사 먹고는 계속 찾으니 마트 측에서 나오면 연락을 준다. 관계라는 건 강 사이에 놓인 다리처럼 전혀 왕래가 없을 것 같은 저쪽과 이쪽을 연결시켜준다. 그러다 보면 편육을 사러 가서 이것저것 수다를 떨곤 한다. 어쩔 때 나를 내가 보면 전혀 나 같지 않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닭발 편육은 돼지편육과는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면 닭발 맛이 난다. 또 보통의 편육과는 다르게 매콤하다. 내 입에는 꽤 맵다. 거기에 썰려있지 않고 통 짜로 포장이 되어 있는데 사들고 와서 직접 썰어서 먹어야 한다. 나처럼 귀찮음이 가득한 인간이 썰면 사진에서처럼 굵게 썰어서 먹게 된다. 볼이 볼록하게 되어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맛있음을 두 배로 올려준다. 아쉬운 점은 자주 사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편육은 이인자의 느낌이다. 늘 족발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내주면서도 이인자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인자의 자리로 오르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가끔 이렇게 매콤함으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족발을 사 오면 달려드는 가족에 비해 편육은 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른들의 술안주로도 좋다. 편육에 대한 추억은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편육을 접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분명 잔치하는 집에서 먹어 봤을 것이다.


예전에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가서 편육을 먹었는데, 친구는 종손에 장손이었고 상갓집은 경주 양남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마을에 있는데 마을 전체가 무슨 무슨 파로 한 마을 사람들이 다 친척이 되는 아주 큰 집안이었다. 그곳의 대들보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대적인 상을 치렀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마당의 한편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직접 만들었다. 편육도 직접 만들어서 먹다 보면 돼지의 털이 덜 뽑혀 입에서 막 씹혔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나는 편육을 몇 접시나 먹었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어른들도 편육은 잘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편육 특유의 식감과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나에게 편육을 이만큼 싸주기도 했다.


야호 하며 집에 들고 와서 먹으니 또 현장에서 시끌벅적하게 먹었을 때만큼 맛이 나지 않았다. 기묘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식당에서 맛있게 먹는 음식을 똑같이 포장해서 집으로 와서 먹으면 식당만큼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는 은은한 조명과 식당 안에 퍼지는 맛있는 냄새, 테이블마다 행복하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음식 맛을 더 끌어올려준다. 여자들이 왜 분위기 있는 카페나 식당을 가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었다.


편육 전문식당도 있으면 참 좋겠지만 없다. 아무튼 편육은 이인자다. 이상하게 편육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 자취를 할 때에도 족발이나 편육은 술안주로 먹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잘 먹지 않았고 사진을 찍는다며 타지방을 하릴없이 돌아다닐 때에도 각 도시의 전통시장에서도 편육은 사 먹지 않았다. 없어도 그만인 음식이 편육이다. 편육 같은 음식도 세상에 아주 많다. 그래도 누군가는 또 편육을 만들어 팔고 어떤 사람은 편육을 사 먹는다. 닭발 편육을 먹고 있으면 이 도시의 시내 중심가에 유명한 닭발집이 있는데 거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 장사를 했다. 처음의 닭발은 닭발 본연의 모양이었다. 뼈가 다 붙어 있는 닭발이었다. 닭발은 연탄에 구워서 판다. 그래서 연탄의 불맛이 닭발에 스며들어 아주 맛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해서 공간을 넓혔다. 공간의 벽을 부수고 그 뒤를 뚫었다. 그러면서 닭발 주인의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닭발집에서 일을 하더니 며느리, 또 다른 아들, 이렇게 해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안주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닭발도 뼈가 없는 닭발도 생겨났다. 이제 닭발은 체계적으로 구워서 판다. 한쪽에서는 초벌구이를 열심히 하고, 옆에서는 주문이 오면 한 번 더 구워서 테이블로 나간다.


참 이상한 게 규모가 커지고 메뉴가 늘어나면 이상하게 더 이상 안 가게 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초반의 맛도 변한다. 근간에 한 번 가서 먹을 때는 추세에 따라가서 그런지 너무 매웠다. 여성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매운맛이었다. 그래서 여자 손님들이 많다. 여자 손님들이 많으면 남자 손님들도 많아진다. 따지고 보면 그 집은 그대론데 우리가 변한 것이다. 단지 우리는 변화하지만 변함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인간은 이런 사소한 것에는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닭발 편육은 가끔 이렇게 먹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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