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버스는 참 재미없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저 그런 상태로 두 시간이 넘어 흘러간다.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다. 재미없는 게 재미있는 영화, 곧 우리 인생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상태,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게 끈을 힘 있게 부여잡으려 치열하다. 자칫 끈을 느슨하게 놓쳤다가는 그대로 궤도에서 벗어나고 만다. 그러지 않기 위해 모두가 겉으로는 웃으며 온갖 애를 쓰고 있다.


주인공은 이혼 후 새로 만난 여자 친구와 15년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쩐지 다정하고 활달한 시호는 주인공과 재혼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주인공은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 나카타와 도쿄를 오가는 고속버스를 운전하는 주인공은 도쿄에서 식당을 하는 시호를 나카타의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다. 하지만 그날 도쿄에서 회사를 다니던 아들이 다 때려치우고 집에 와 있고, 아들과 시호를 제대로 인사도 시켜 주지 못한 채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심야버스를 운전하는데 이혼했던 미유키가 버스에 올라 타면서 주인공은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 즉 지금의 가족과 헤어진 가족, 진짜 가족 같은 가짜 가족과 헤어진 가족의 가족과 더불어 그런 관계 속에서 평범해 보이지만 살얼음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을 영화로 담았다.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너무 비현실적이다. 너무 잔잔하고 고요하고 재미없게 흘러가는데 보다 보면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참 기이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반복을 거부하지 않지만 반복 속에서 변화를 찾던 지금 이전의 생활에서 벗어나 그저 똑같은 행동과 생각으로 매일을 반복만 하고 있다. 누군갈 만나지도 않고 술을 마시지도 않고 책도 술렁술렁 읽을 뿐이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배만 채운다. 도대체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무기력할 때가 있지만 또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가끔 현실이 힘들다고 종교를 맹신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렵다 해서 현실에서 맹신한다면 현실을 지옥으로 만든다. 무기력하게만 있다가는 그렇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 대사가 생각난다. 주인공과 헤어진 아내 미유키는 서로 왜 재혼을 했는지, 왜 아직 재혼을 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미유키는 외로우니까, 외로워서 재혼을 했다고 한다. 미유키가 주인공에게 왜 아직 재혼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안 외로우니까,라고 한다. 그게 인간이다. 인간이란 그렇다. 전부 제각각이고 강하지만 장난감 같아서 쉽게 망가지기도 한다.


https://youtu.be/YXcLTuM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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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볼 수 있는 풍경 그래서 늘 아름답다

요즘은 모든 풍경이 사진으로 담으면 예쁘다. 미운 4살처럼 딱 이맘때가 가장 예쁠 시기다. 이 시기는 금방 지나가 버릴 텐데, 지나가 버리고 나면 5월부터는 부예진 탁한 공기층과 더위가 점령해서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과정을 매년 보고 스치고 있다.


한사랑 산악회에서 택조가 그러던데, 어제가 제일 힘들었는데 오늘이 되니 오늘이 더 힘들더라고, 그래서 내일이 오는 게 겁이 난다고. 거 C8. 한사랑 산악회는 그저 큭큭거리며 웃으며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이 코미디라는 걸 여실히 보여줘서 놀랍고 슬프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4월 25일이 되었다. 4월 25일이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고 매년 오는 4월 25일이지만 오늘은 딱 한 번 뿐이니까 그저 한 번 써보는 것이다. 매일 비슷하게 스치는 평범한 것들이 사실 딱 한 번 세상에 태어났다가 무화하는 것들이 가득하니까 그저 한 번 써본다.

달과 나무와 태화강

매일 달리는 조깅코스인데 매일, 조금씩 바람이 다르고 색채가 다르다. 풍경은 시기에 맞게 변화하지만 변함없다. 변화하되 변함없는 사람이 된다면 자연과 같아질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같아진다면 쓰고 있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처럼 자기장을 인간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쓴 장편소설을 올리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이제 거의 끝나간다. 워드 한 페이지 분량으로 매일 올렸는데 일 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433장까지 올렸는데 이제 한 달 정도 이 속도로 올리고 나면 끝이 난다.


매일 조금씩 수정하고 수정해서 올리려면 아프면 안 되고, 주위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일어나서도 곤란하고 다쳐도 난처하다. 그저 미국의 한 성직자가 쓴 글처럼, 바뀔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바뀔 수 있는 것들은 변화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가릴 줄 아는 지혜를 달라고 하며 매일 늘 비슷하고 같은 루틴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긴 이야기라 이어 붙이면 200자 원고지 5000매 정도가 된다. 처음 써 놓은 글은 거의 7000매가 넘어서 자르고 자르고 잘랐다. 지금 올리는 글은 3인칭으로 쓴 글이지만 처음에 쓴 글은 '나'로 시작하는 1인칭이었다.


1인칭과 3인칭으로 시작하는 차이가 뭐냐고 한다면 이것저것 세세하게 많이 다른데, 글쎄 뭐 잘 모르겠다.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잘 모르지만 하다 보면 또 알게 된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장편소설을 꾸준하게 쓰려니까 포기하는 게 많아졌다. 약속이라든가, 매일 그 시간에 소설을 써야 하는데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접어버린다든가. 장편소설을 썼다고 해서 누군가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쓰는 동안에 정말 푹 빠져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전문지식을 요할 때, 막혔을 때,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따고, 튕기고, 문전박대당하고, 전문서적을 읽느라 끙끙하기도 했고, 그렇게 작성했던 원고지 70매 정도를 그냥 다 버린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지나고 나니 그런 기억들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은 카 더 가든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라는 노래는 참 많은 위로가 된다. 리메이크한 ‘명동 콜링'을 듣고 있으면 정말 가슴 저 안쪽 공백의 텅 빈 부분이 촉촉하게 된다. 아아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나 빠져들어간 적이 얼마만이었을까. 언제나 우리 둘이는 영화였지, 라는 노랫말을 카 더 가든의 통주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들으니 장면 장면이 눈에 확 떠오른다.


긴 글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게 쓰기 위해서 매일 조깅을 하지만 재작년에 달리는 거리에 비해 올해는 그만큼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억지로 달렸지만 1월에서 4월의 25일이 되는 과정에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편안해진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하면 된다. 5월이 되면 전시회를 한다. 요즘 시기에 전시회는 자살행위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준비를 했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식이 아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차피 코로나 사정이 더 안 좋아져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러는 이유는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소심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한 주를 내가 아닌 가족 또는 나의 주위 사람들을 위해 생활했다면 2021년 4월 25일 일요일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해 음악을 듣고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자. 그렇게 변함없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자.


땀을 쏟으며 조깅 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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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는 우리나라에서는 잔치음식의 대명사이다. 생일잔치나 돌잔치에 초대되어서 갔는데 잡채가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다. 그렇다고 잡채가 있다 해서 매달리지도 않는다. 잡채는 언제부터 우리 밥상 위에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잘 갖춰 입은 재미없는 도련님 같은 느낌이다.


잡채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그 맛을 내기까지는 여러 실수를 맛봐야 한다. 자산어보의 변요한이 한 말처럼, 실수가 변명이 되면 실패가 되고 실수가 과정이 되면 실력이 된다는데 잡채를 맛있게 하는 사람은 그런 실수의 과정을 겪었기에 맛있는 잡채의 맛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잡채는 다른 음식과는 다른, 만드는 이의 스토리가 깃들여 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잡채를 아주 쉽고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어서 따라 하면 비슷하게 맛을 낼 수는 있지만 일단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찮다. 당면은 찬물에 불려 놔야 하고, 고기는 밑간을 해주는데 간을 하려면 진간장, 설탕, 후추, 참기름, 마늘을 넣어서 밑간을 해서 볶는다. 시금치도 끓는 물에 데쳐서 물기를 또 바짝 짜야한다. 그리고 소금과 참기름 같은 걸로 또 밑간을 해준다. 버섯이나 당근, 양파도 볶아야 하는데 잡채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같이 볶으면 안 된다. 버섯을 볶고, 양파를 볶고, 당근을 따로 볶아야 한다. 이렇게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 준비가 되면 잡채를 비빌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게 잡채를 만들어도 다른 음식들 사이에 놓여 있으면 처음부터 인기를 독차지하지 않는다. 치킨을 먹고, 피자를 먹고, 국을 먹고, 밥을 먹고 다 먹고 난 다음 술을 마실 때 안주가 더 필요하다면 잡채를 먹는다. 잡채는 분명 참 맛있는 음식임에는 분명하다. 맛있는 잡채를 맛있게 먹으려면 잡채만 오롯이 밥상 위에 오르면 된다. 잡채는 김밥처럼 적은 양으로 할 수가 없다. 집에서 김밥을 말 때 달랑, 한 줄만 말 수는 없다. 잡채도 마찬가지다.


고독한 미식가에서도 고로 상이 잡채를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 한국 사람이 하는 가게에서 고로 상이 김밥과 함께 잡채를 먹는다. 고로 상이야 워낙에 음식을 맛있게 먹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잡채가 당장 먹고 싶다. 내가 사는 도시의 전통시장에 가면 먹거리 골목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잡채가 있다. 그곳을 지나가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기며 데면데면 앉은 아주머니들이 잡채를 호로록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가 고플 때 그곳을 지나치면 앉아서 잡채를 사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잡채가 잔치상 위에서 다른 음식에 비해 약간 홀대를 받는 것처럼 수많은 식당이 있지만 잡채 전문점도 없다. 잡채만 파는 음식점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잡채에는 콩나물을 넣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넣는 집고 있고, 소고기를 넣는 집도 있다. 잡채는 밥과 함께 먹는 사람도 있지만 잡채를 우유식빵에 싸서 먹어도 아주 맛있다. 잡채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많아서 전문점에서 다루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잡채 전문점은 없다. 그러니까 잡채가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면처럼 해 먹을 수도 없고 잡채 전문점도 없어서 쉽게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잡채는 먹거리가 흘러넘치는 요즘 더 소외되는 게 아닐까. 잡채는 누구나 좋아하는데 아무나 먹을 수 없다.


잡채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잡채에 대한 추억이 있고 스토리가 있어서 잡채가 우리의 밥상 위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잡채를 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엄마를 떠올리는 사람, 할머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식에 스토리가 입히면 그 맛은 두 배가 된다. 나에게 잡채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릴 때 잡채가 밥상에 올라오면 나와 동생 앞으로 잡채 그릇을 밀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잡채는 어린 시절에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잡채를 좋아하는 어린이들도 있겠지만 잡채도 어른이 된 다음에 맛있게 먹게 된 음식이다. 아버지는 자주 먹지 못하는 잡채를 자신이 먹고 싶었을 것이다. 어릴 때 친척들 결혼식에 가면 아버지는 잡채를 가져와서 맛있게 먹으며 맥주를 한 잔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전통시장 먹자골목의 잡채 거리에는 장 보러 온 어머니들이 앉아서 잡채를 호로록 먹고 있다. 잡채를 먹는 동안은 어린 시절에 엄마가 잡채를 해서 생일 상에 올려줬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호호 거릴 수 있다. 잡채는 어른들 마음속에 아직 아이로 남아 있는 마음을 꺼내 준다. 아버지가 되고 나면 아이들처럼 먹고 싶은 걸 마음 놓고 아내에게 만들어달라고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잡채는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 생일에 잡채가 올라오면 다른 음식에 밀려 저 옆으로 빼놓으면 그제야 아버지들은 잡채를 맛있게 먹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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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를 챙겨 먹기란 어려운 것은 아니나 쉽지 만은 않다. 게다가 나처럼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는 인간에게는 끼니란 정말 여가는 1도 없는 오로지 생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고 결국 끼니의 걱정에서 해방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매일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거창하게 끼니를 때울 수가 없기 때문에 늘 간결하게 챙겨 먹게 된다. 보기에는 간결한 음식인데 간단하지 만은 않다. 이유는 뭐랄까 단지 배를 부르게 먹는 것보다는 먹는 음식의 영양가 같은 것도 조금은 생각해야 하고 간결한 한 끼를 차리는데 간단하지 만은 과정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멸치 덮밥은 실패도 없고 뒷정리도 아주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맛이 좋다. 그리고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린다. 멸치 덮밥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맛있게 보였는데 실제로도 해 먹으면 아주 맛있다. 원래는 덮밥 위에 간장소스를 뿌려 먹지만 곁들이는 깻잎무침에 양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비벼 먹으면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의 멸치 덮밥은 음식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주인공들은 더 맛있게 먹는다. 박찬일 요리사의 글처럼 추억의 절반은 맛이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란 건 기억보다는 추억으로 그 맛을 내면 깊숙이 간직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맛있는 멸치 덮밥을 해 먹으려면 간단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과정이라는 건 음식을 만드는 과정보다는 저렇게 조리가 다 된, 아주 맛있는 멸치를 구하는 일이다. 촉촉하면서 간이 살짝 배인 멸치가 정말 맛있는데 여기 근처 백화점에만 판다. 매일 파는 것도 아니며 인기가 좋아서 그런지 오후에 가면 다 팔리고 없다. 그저 멸치볶음이라서 다른 곳에서 구입하면 전혀 맛이 다르다. 그러면 한 번 갈 때 왕창 사 오면 되는가? 그것도 어려운 게 많이 비싸다.


멸치볶음을 뭘 어떤 식으로 볶는지 몰라도 집에서 하는 그런 멸치볶음의 맛과는 다르다. 간결하게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멸치 덮밥을 슥삭삭삭 비벼서 한 입 먹으면 먼저 멸치의 고소한 맛과 살짝 단 맛이 치고 들어오며 밥과 어우러질 때 깻잎의 풍부한 맛이 들어온다. 입 안에서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이 정도로 간결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 까지가 꽤나 험난한 과정이 있다.


따지고 보면 간결한 음식들은 대체로 간단하지 만은 않다. 제일 간편한 컵라면도 컵라면을 사러 거기까지 가야 하고 컵라면에 스프를 뜯어 넣고 집이나 직장이라면 물도 끓어야 한다. 우리는 컵라면을 먹기 위해 벌이는 이런 일련의 행동을 거의 귀찮아하지는 않지만,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간단하지만은 않는 과정을 거쳐야 끼니라는 걸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음식은 어떤 음식이 맛있냐면 다른 사람이 해주는 모든 음식이 맛있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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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글에 집중하는데 세 시간 정도 매일 틀어 놓는 브이로그가 있다. 그저 단조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일 뿐인데 그 단단한 단조로움과 반복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매일 몇 시간씩 틀어 놓는다. 늘 비슷한 영상으로 편집을 할 뿐이다. 마치 일기 같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보고 있으면, 틀어 놓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브이로그의 주인공의 순환의 일상에서 나오는 백색소음이 작업을 하는데 집중하게 만든다.


그 소리 역시 평소에 늘 지나치며 듣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지나치기 일쑤여서 무시했던 소음들로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젖은 마음으로 내려오는 하얀 밤의 소리, 낮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어떤 밤의 소리, 그리하여 그 소리로 젖은 마음을 바짝 말릴 수 있는 소리. 시리고 하얗고 투명하게 맑고 더럽지만 사랑스러운 소리. 표현하자면 그런 백색소음들이다.


주인공은 직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 임고생으로 비슷한 여타 브이로그와 다른 점은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사진에서처럼 항상 저 위치의 카메라가 주인공의 일상을 비쳐준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약간 위로 올려보는 듯한 다다미 촬영기법을 보는 것 같다.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를 내려다보는 시야각에 비해 약간 위로 보는 듯한 각도는 안정감을 준다.주인공은 그저 쳇바퀴 굴러가듯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을 하며 점심 먹고 오후 일과를 보내고 퇴근해서 공부를 하는, 단순한 반복의 매일을 순환한다. 고요한 물처럼 재미없을 것 같은 일상이지만 주인공은 그 속에서 작은 것에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요컨대 금요일이면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주말 저녁을 보내는 것이 기뻐하고,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하며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행복해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간다. 사람들도 대부분 나도 작은 것에 많이 기뻐한다고 말하지만 썩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작은 일에 기뻐하기보다, 작은 일에 분개하는 경우가 더 있는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개하는가'를 읽어보면 그 시를 이해하게 된다. 작은 일에 기뻐하는 건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 브이로그의 주인공은 그렇게 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주인공이 보내는 일상 속에서 자아내는 백색소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꾸고 그 속에서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자유한 소리를 듣기를 바라지만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해하며 일상을 그리워한다. 일상에서는 일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주인공이 일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소리, 구두 소리, 버스 소리, 하루가 저물어 가는 소리는 백색소음으로 편안하다. 그 소리는 나의 소리이며 모든 이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에 모든 일들이 집중이 잘 된다. 그 이유 중 하나에 매미소리가 있다. 매미소리를 집중해서 들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매미소리가 편안하지 않고 시끄럽게 들리는 건 매미소리와 함께 다른 소음이 껴 있어서 그렇다. 시골집 앞마당 평상에 누워서 듣는 매미소리는 음악과 같다. 제목을 붙이면 ‘매미 협주곡 라장조 작품 32’ 정도 되겠다.


주인공은 직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데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한다는 건 내입장에서는 굉장한 일이라고 본다.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못하고 담을 쌓아서 그런지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봤다. 주인공은 일하는 모습을 제외하고 나면 영상에 넣을 것이 없다며 슬퍼하는 자막은 재미있다. 그렇게 주인공은 오늘도 조금 성장해간다.


주인공도 청춘이다. 현재 취업하지 못한 취준생들은 앞이 깜깜하다. 그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꿈을 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다르다. 신해철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운전을 하고 가다가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보험회사에서 나와서 주유소까지 갈 만큼 최소한의 기름을 주유해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일만 해라고 하는 사회구조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멈춘 청춘들이 최소한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해줘야 하는 게 이 사회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할 일이다.


'목표'와 '꿈'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청춘인 주인공은 꿈을 향해 일상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까지 위로를 받는다. 미래에 대한 건강한 고민과 작은 기쁨에서 큰 만족을 느끼는 모습에서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하던 강의에 초대를 해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힘든 일상을 단단하게 보내는 모습에서 아마도 청춘들 역시 많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재미없는 일상을 통해서 성장해간다. 무엇보다 매일 경험하는 오늘은 모두가 처음이라 서툴다. 처음부터 뭐든 잘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가 도래하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많이 낸다. 화를 낼 일이 있으면 당연하지만 화를 내야 하지만 화가 나기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주인공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놓은 상황을 받아들인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는 걸 주인공은 보여준다. 


주인공이 브이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는데 나부터 위로가 된다. 위로는 실은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는 일이 많다. 위로라는 건 일상 같은 것이다. 이 브이로그의 주인공을 보면서 일상을 보내는 근사한 방법이란 그 속에서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브이로그를 만들기를 바라며.


https://youtu.be/gDr96OntC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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