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zJiw-tiY9Q

러브레터 (Love Letter) OST - Winter Story


러브레터는 볼 때마다 포인트가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다시 볼 때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보면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알지 못했던 이츠키와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에 좀 더 깊게 발을 담근다.


히로코가 눈 밭에서 잘 지내냐고 감정이 오를 대로 올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아마도 히로코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그 한 장면에 깊게 몰입되어 그대로 함몰될지도 모른다.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림이 되어 다시 이츠키의 손으로 돌아오고, 히로코와 이츠키는 그렇게도 몰랐던, 잊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간다.

 

이와이 슌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서 어쩌면 이츠키와 히로코를 후에 하나와 아리스(엘리스)로, 4월 이야기로 다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또 흘러서 휴대폰이 도래한 이 시대에 ‘라스트 레터’로 태어나 아직 편지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다. 언니의 지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중학교 동창회에서 동생의 외모가 언니와 똑 닮아서 언니로 착각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이츠키와 히로코의 외모가 같은 모습을 이와이 월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답습한다. 그렇게 동생은 언니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다가 편지 속에서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 이야기를 이와이 슌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본 특유의 영화라고 하는데 일본 특유가 아니라 이와이 슌지가 가지는 고유한 색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말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침에 눈 뜨면 잘 잤냐고 물어보고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평범한 인사일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정도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     

나카야마 미호는 러브레터에 등장하기 전에 아이돌로 먼저 데뷔를 했다. 나카야마 미호의 영화 중에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큰 굴곡이 없는데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된다. 영화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훨씬 이전에 소설로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는 아주 기묘하다고 생각하는데(개인적으로),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영화고,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는 치즈 히토나리의 아내이다. 현재는 이혼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은 현실적인데 읽고 있으면 담담하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독은 인천 상륙작전을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회상 부분은 화양연화의 미장센을 보는 듯하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화양연화보다 좀 더 허구의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주인공들이다. 빼빼 마른 몸이지만 너무나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인 나카야마 미호의 이미지와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몸과 얼굴을 가진 니시지마 히데토시(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의 이미지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이 문장이 영화를 관통한다. 주인공 유타카는 약혼녀를 놔두고 타국에서 관능적인 토우코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유타카와 토우카는 마치 첫사랑처럼 타오른다. 재가 될 것처럼 만나는 매 순간을 태워버린다.      

         

인간은 매일 먹은 밥보다 가끔 먹는 라면이 더 맛있고 집보다는 경치 좋은 곳의 펜션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라면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고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하고 불편해서 일상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넌 더 이상 젖지 않고 난 더 이상 서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꿈같던 일탈도 끝내게 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남아서 세월을 괴롭힌다. 두 사람은 불장난을 끝내고 헤어진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후 재회를 한다.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을 위해 카메라는 주인공들 얼굴 가까이 크게 줌인해 들어간다. 너무나 예쁘고 정말 멋진 얼굴과 몸매로 첫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처럼 태국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화양연화처럼 배경음악 역시 좋다. 나카시마 미카의 노래가 아주 은은한 향초처럼 좋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꼭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를 기울이면'의 아마지와 세이지가 현실로 뛰쳐나와서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별 인사 '안녕'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받았어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륵 녹아 버리는 얼음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난 반드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   

            

안녕, 언젠가. 사요나라, 이츠카,였다.   

           

https://youtu.be/bpFz8ksR2vU

나카시마 미카 - 안녕, 언젠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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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3-1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겡끼데스까~~~~~

참 좋아했던 일본 영화군요.

교관 2021-03-19 11:37   좋아요 0 | URL
페러디가 있었어요 ㅎㅎ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의식의 흐름대로 바리스타 룰스 민트 라임 라테를 하나씩 마신다. 나는 어쩌면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민트가 들어간 맛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아침 로컬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이천 원, 이건 이천오백 원이다. 오백 원이 더 비싼 만큼 맛이라는 것이 훨씬 난다. 맛있다는 것보다 단 맛과 민트 맛이 난다. 그저 커피 맛만 나는 오전의 커피보다 못하다 괜찮다의 문제보다 이 맛에 조금씩 길들여져가고 있다. 땀을 흘리고 마셔서 그런지 더 흡족하다. 그냥 라테 정도는 집에서나 어디서나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민트 라테는 글쎄, 카페에서 취급하는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커피에 타 마시면 아주 맛이 좋은데 그런 맛의 음료 버전이라고 할까.


얼마 전에 빵을 먹었는데(라고 하면 매일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빵을 하나씩 사 먹는데, 그것과는 다른 빵을 먹었다), 내가 손을 뻗어서 먹던 빵과는 다른 빵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한 입 먹는 순간 오오 이건 뭐야, 하는 감탄이 나왔다. 달아서 죽을 것 같은데 치즈의 짠맛이 치고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맛의 균형을 잡아주더니 또 한 입을 불렀다. 그런 맛을 빵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빵을 매일 먹다가는 정말 살이 금방 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민트 라테를 먹고 있으면 왜 그런지 라면에 넣어서 먹어봐야지 하는 별난 생각에 자꾸 근접하게 된다. 민트맛라면,라고 하면 분명 대부분이 발로 차 버릴 것 같겠지만 단짠단짠의 맛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처음의 이상한 느낌의 맛만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라는 나의 생각을 끊고 다시 일어나서 마지막 코스로 조깅을 한다.

 

근래의 내가 있는 도시의 날씨는 아주 기묘해서 초봄의 혹독한 냉기가 흐르는 날의 연속이다. 자칫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 조깅을 하면서 흘린 땀이 그대로 축축해져 버리면 감기에 그대로 걸리기 쉬운 날이다. 요즘은 감기가 걸리면 주위에 민폐를 예전보다 크게 끼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민트 라테를 하나 마시고 일어나는 구간(이라고 해야 할까. 전문 러너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달리는 길목)은 1.5킬로 정도 되는 오르막길이다. 끝과 끝의 수평을 봤을 때 1층과 2층의 높이 정도 되는데 그 정도로 죽 오르막길이다. 그래서 40분 정도 달리고 난 후에 이 마지막 오르막길을 달리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등을 후려갈기는 고통이 밀려오는데 민트 라테를 마시는 곳까지 일단 달리고 나면 기분은 상쾌하다. 통쾌한 고통이 주는 기분 좋음은 민트 라테를 마시며 죽 이어진다. 편의점 야외 테라스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민트 라테를 쪽쪽 빨면서 멍하게 있다 보면 의식의 흐름이 민트맛라면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빠른 시일 내에 민트맛라면을 먹어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라면에 새우깡도 넣어서 먹어보고, 초콜릿도 넣어서 먹어봤는데 꽤나 맛이 좋았기 때문에 아마도 먹지 않을까. 만약 해 먹게 된다면 여기에 당당하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민트 라테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으니 이어폰으로 '김성호의 회상'이 나온다. 김성호의 회상은 제목이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다. 그러니까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이다. 이 노래는 생각해보면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서 아직도 여기저기의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 어쩌면 터보의 회상보다 이 김성호의 회상이 더 많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제목을 그냥 회상으로 짓지 않고 김성호의 회상으로 지어서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노래 제목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처음이라 실수로 이렇게 지었는데 그게 그냥 하나의 제목이 되어 굳건하게 박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처음부터 영차영차 착착 잘 해내고 다 이겨내는 사람이라면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윤여정이 그랬는데, 나도 이 나이가 처음이라 실수가 많다고. 그래서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그것도 못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건 없다. 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끓는 물처럼 지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청소년들을 보면 또 이해하지 못한다. 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거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것도 몰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라고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은 시작한다. 바람이 없다고 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해류라든가, 그런 것들이 막 이상해지고 마땅해져야 할 썰물, 밀물 이런 것들도 엉망이 되고 그에 따라 바닷 생물이 마구 죽어 나가고 뭐 그렇게 될까. 의식의 흐름대로 막 쓰다 보면 이렇게 조깅에서 민트 라테를 지나 지구 멸망까지 오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란 때로는, 가끔 재미있는 생각의 바닷속을 거닐게 한다. 그래도 민트맛라면은 좀 그런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맛이 정말 궁금하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궁금하니까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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좐 아저씨나 죠의 가족들에게 김치를 새로 하면 한 두 포기(왜 배추나 김치는 이런 단위를 쓸까, 한 장, 두 장도 아니고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그러고 생각해보니 한 개, 두 개나 한 장, 두 장도 계속 발음하니 뭐가 더 어울리고 덜 어울리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한 명, 두 명이 아닌 게 어딘가) 정도를 갖다 주는데 외국인들은 김치를 접시에 담으면 신기하게도 김치만 먹는다.


우리는 김치는 밥상의 옵서버라 최소 밥과 함께 김치를 먹거나 라면 내지는 국이나 찌개에 김치를 함께 먹지 김치만 먹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외국인들은 꼭 김치를 앞에 두고 김치만 야금야금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그리고 맥주를 들이켠다. 거참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먹게 되면 그렇게 먹고 싶어서 그렇게 먹게 된다.


양념이 많이 발린 배춧잎 부분을 비교적 양념이 덜 묻은 아삭한 배추 속에 넣어 같이 먹는다. 김치만 오물오물 씹어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몇 번 먹다 보면 (김치를 새로 하게 되면) 죽 그렇게 먹게 된다. 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배추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아삭함과 김치가 지니고 있는 양념 버무림의 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 김치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식당 김치는 데코레이션 수준이다. 그런데 김치를 새로 해서 이렇게 놓으면 맥주와 함께 천천히 씹어 먹다 보면 외국인들처럼 반 포기를, 접시 위에 올라온 김치를 거의 다 먹에 된다. 그리고 제대로 김치의 맛에 빠진다. 며칠 전에는 새로 한 김치와 함께 와인을 곁들였다. 김치는 정말 여러 술에 다 어울린다. 




또 이렇게 밥에 올려서 먹게 되면 역시 맛있다. 김치란 정말 내 주위에 있는 소설책처럼 당연하게도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또 안 보이면 보고 싶어 지는 뭐 그런 음식인 것이다. 이렇게 밥과 함께 먹게 되면 영화 똥개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똥개가 김치를 담그고 있는데 대문으로 두 명이 찾아온다.


똥개: 뭐고?

대뜩이: 니가 똥개가 난 대뜩이다. 니가 선배들이 개 잡아 뭇따꼬 선배들을 개패듯이 패뿟는거 맞나?

똥개: 뭐어?

뚱띠: 니가 하도 잘 친다캐서 실력의 자궁을 겨뤄보러 왔따. 

똥개: 나는 싸움 안 한다. 

대뜩이: 니는 그래 개판치고도 아버지가 짜바리라가 징역 안 갔다메. 

똥개: 뭐라고?

뚱띠: 니 엠제이케이라고 아나?

똥개: 그기 뭔데?

뚱띠: 니 맨크로 학교 댕기다가 짤린 아들끼리 맹그른 순수청년봉사단체다. 니가 지면 무조건 가입해야 되고 이기믄 안해도 된다. 우짤끼꼬. 

똥개: 느그,,, 점심 무긋나. 

뚱띠: (바로) 아직 안 뭇따. 와?

똥개: 그라믄 김치에다 밥 좀 묵고 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으야 할 꺼 아이가. 

[땀 뻘뻘 흘리며 김치먹방]

똥개: 원래 이름이 대뜩이가. 

대뜩: 아니 대득이다 한대득. 그래도 그냥 대뜩이가 편하다. 

똥개: 엠제이케이? 거 뭔 뜻인데. 

대뜩: 으응 잉그리 약자다. 밀양 주니어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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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CVRE4znbyc [Movie OST] 라스트 레터 Last letter 2020 ラストレター Main Theme, Melody Project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는 개인적으로 2년 전에 본 중국 버전이 더 와 닿았다. 이와이 슌지는 똑같은 영화를 어째서 두 번 연출했을까. 어떻든 재미있는 건 배우 '모리 나나'는 중국 버전에도, 일본 버전에도 다 나온다. 일본 버전에는 조연으로 소개되고 중국 버전에는 주연으로 소개된다.


중국 버전의 라스트 레터를 봤을 때 이 영화는 러브레터를 지나 수많은 시간을 거쳐 영화를 보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방향을 느끼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라는 게 한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운 시절이 있고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죽을 것처럼 슬퍼하지만, 그렇기에 이 지옥 같은 매일을 견딜 수 있다고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꼭 말한다.


그 속에는 그리움이라는 기묘한 감정이 있어서 힘이 들 때 그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등장하여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고 슬퍼하는 가슴을 안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몹쓸 놈의 선배가 하는 말처럼 사람의 인생을 고작 소설책 한 권으로 다 담아낼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것이 인간이지만 반면에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도 인간이니까.

일본 버전 속에는 안노 히데야키도 나온다. 누군지 다 알겠지만 에반게리온의 원작자이다. 그가 만든 영화 ‘신 고질라’를 나는 재미있게 봤는데 그 영화 속에서 고질라를 소거하고 거기에 ‘핵’을 대입하면 대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영화였다. 이와이 슌지 월드 속에 쭈욱 같이 했던 마츠 다카코도 나오고, 러브 레터의, 역시 선배였던 토요카와 에츠시도 나온다. 감성 돋는 풍성한 연출로 그리움이라는 게 화면 가득 나오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중국 버전이 더 가슴을 적셨다.

일본 영화계를 보자면 이렇게 이와이 슌지의 창작 각본으로 만든 영화는 일본 극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다. 점점 더 영화 쪽 문화는 악화되어 가고 있다. 공각기동대의 오시미 마모루는 귀칼의 돌풍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한국의 영화산업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게도 일본에서는 그 자식 공각기동대 하나 빼고 뭐 만들어 낸 놈이지? 그런 놈이 왜 지껄이고 있냐,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봉 감독이 ‘옥자’를 만들 때 촬영장에 와서 감탄을 하고 돌아간 이력이 있다. 오시이 마모루와 비슷한 생각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가지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프랑스에서 상을 받고 해외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때 아베 정부가 전혀 언급이 없는 것에 프랑스 언론이 너도나도 그 사실을 신문에 실었다. 그제야 아베가 고레에다에게 축전을 보냈는데 고레에다 감독이 반사했던 일도 있었다.


일본은 감독과 배우들의, 그러니까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의 무덤이, 무덤 정도가 아니라 아무튼 지옥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와이 슌지가 이미 중국 버전의 ‘라스트 레터’를 만들었지만 일본 배우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라며 만들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자국의 영화산업이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것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귀칼이 돌풍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도 한국의 웹툰을 엄청나게 보고 있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일본의 영화가 몰락해가는 것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나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계속 보고 싶잖아. 지금까지 나온 영화를 다 봤는데 앞으로 나올 영화가 당연하지만 보고 싶으니까.



편지 하나로 이렇게 가슴 조이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와이 슌지에게 놀랐고 영화를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가는 나 자신 때문에 놀랐던 영화.


첫사랑(에게 쓴)

편지(를)

소설(로 적어서)

만으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기까지의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

무엇보다 코를 훌쩍거리게 되는 영화.


편지 하나로 가슴 뻑뻑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이와이 슌지는 마술사 같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러브레터를 볼 때보다 스웨터 두 장, 만큼의 더 한 감동이 가슴에 꽉 차 들었다. 이와이 슌지가 영화를 계속 만드는 한 나는 이 가슴이 꽉 차는 감정의 끈을 놓치지는 않을 것 같다. 


허접한 시나리오를 써 놓은 게 있는데 영화를 찍고 싶다고 강렬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와이 슌지는 이런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릴리 슈슈에서도 언두에서도 피크닉에서도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립반 윙클의 신부에서도. 마지막 편지에서 흐르는 음악 역시 머리보다는 가슴의 골 사이를 잔잔하고 깊게 파고든다.


 - 2019. 2. 9


2년 전 2월에 본 라스트 레터는 그런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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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한국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 통하는 외국사람도 있다. 요즘은 코로나 덕분에 일을 마치면 바로 귀가하지만 집에서 그저 잠만 잤던 나는 코로나 그 이전에는 일을 마치고 조깅을 하고 난 후에는 집 근처의 백색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책을 좀 읽거나 쓰고 싶은 글을 조금 쓰다가 들어갔다. 카페보다는 주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그날이 오픈인 퍼브가 있었다. 집 근처이고 분위기도 좋아서 그대로 들어갔다. 아뿔싸 그런데 주인이 외국인이 있었다. 내가 주로 마시는 맥주는 칼스버그인데 칼스버그가 없어서 기네스를 마셨다. 오오 근데 기네스의 맛이 뭐랄까 편의점에서 캔으로 파는 기네스의 맛보다 좋았다. 아주 진하고 깊은 맛이 났다.


나는 회귀성이 강해서 한 번 갔던 곳을 줄곧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일단 한 번 발을 딛게 되면 그 옆에 더 나은 곳이 생겨도, 더 괜찮은 뷰가 있는 곳이 나타나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늘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도 늘 가던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아주 작은 곳으로 동네에 처음 생긴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 그 옆에 아주 큰 비디오 가게가 생겼다. 모두가 다 그곳으로 갔지만 나는 그 좁아터진 곳으로 가서 비디오를 빌려 봤다. 주인아저씨와 오래되었기에 가서 비디오 제목을 말하면 바로 탁 찾아 주었다.


그래서 일 년 정도 뒤에 친구와 함께 내가 늘 가는 작은 비디오 가게에 같이 갔다. 친구도 간 김에 거기서 비디오를 빌리고 나도 빌렸는데 나는 VIP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 날은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정말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늘 가던 레코드 가게만 가게 되었다. 노래가 파일로 존재하기 전에 거대한 백화점 레코드 점이나 대형 마트 안의 레코드 점도 좋았지만 늘 가던 곳의 어떤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나를 꼭 안아준다. 서점도 그랬다.


일을 마치면 나는 그 바로 가서 기네스를 한 잔 주문하고 그다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주인은 웨일스 출신의 아저씨로 이름은 좐(존)이었다. 당연히 매일 가니 매일 인사를 하고 매일 맥주를 마시며 매일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조금씩 주고받았다. 한 달 정도 뒤에 좐 아저씨는 나에게 “너 때문인지 여기 오는 손님들이 혼자서 와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며 보라고 하는 것이다.


집 근처에는 굴지의 제조업 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아파트 근처에는 외국인들이 사는 사택과 아파트가 많아서 동네에는 외국인 반, 한국인 반 정도의 인구비율을 보인다. 다른 퍼브에 비해서 좐 아저씨의 퍼브에 가면 90%가 외국인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 아메리칸이나 잉글랜드는 없다. 대체로 러시아, 체코, 아프리카의 외국인들이 많다. 온 가족이 함께 이곳에 온 외국인은 회사에서 위치가 좀 되는 기술직의 사람이고, 혼자서 온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동북, 동남아시아 인들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저 끝으로 가면 방파제가 나오는데 거기의 어선에서 모두 일을 한다. 동남아시아인들의 재미있는 일화는 대체로 더운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한 5월 달 정도 되면 아, 이제는 내복을 좀 벗지, 하며 그때서야 내복을 벗어던진다. 그들과 낚시를 하면 꽤 재미있지만 이 일은 다음에 하기로 하자.


좐 아저씨의 퍼브는 밤 9시가 되면 이전에 가능하던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식은 일절 주문받지 않는다. 오로지 술만 판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누군가 와서 배가 고프다며 음식 먹기를 바란다고 해도 넉살 좋게 생긴 얼굴로 “오우, 이 시간 이후로 주방은 모두 퇴근이에요”라고 돌려보낸다. 미련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퍼브 안으로 주방의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다.


좐 아저씨 퍼브의 재미있는 점은 주말이 되면, 금요일이 되면 외국인 가족들도 모두 퍼브로 와서 주말을 즐긴다. 좐의 퍼브에는 당구대도 있는데 모두가 한 손에 와인 한 잔씩 들고 당구대 주위에 서서 흐르는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든다. 한 손에 와인을 들고 몸을 흔드는 외국인들은 기술자들의 가족들로 주로 아내나 딸들이다. 이브닝드레스 비슷한 옷을 갖춰 입고 금요일에는 좐의 퍼브에서 밤을 즐긴다.


그런 시간, 그런 날, 좐의 퍼브에 있게 되면 모두와 친해져서 같이 떠들고 마시며 논다. 한 번은 경찰이 떴다. 퍼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오아시스의 ‘스탠 바이 미’를 따라 열창을 했기에 옆집에서 주민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시끄럽게 해서 경찰이 온 건 예전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모두 모여서 소주를 마시며 옛날 노래를 부르다 신고당해서 경찰이 오고서는 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좐 아저씨와 조금 더 친하게 된 계기는 나오는 음악 때문이었다. 좐 아저씨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을 좋아했는데 그의 노래와, 그리고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국 음악의 계보 같은 것들을 죽 이야기해 주었다. 비틀스를 시작으로 해서 버브,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뮤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죽 했다. 글래스톤베리 축제는 음악의 꽃이라는 것과 함께, 아일랜드 그룹 크렌베리스의 ‘좀비’라는 노래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를 꼬집는 노래라는 것도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버렸다.


좐 아저씨는 웨일스 출신으로 영국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크렌베리스의 노래 '좀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더욱 좐 아저씨는 나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어쩐지 그 뒤로부터 인가 기네스를 주문해서 반 정도 마시고 나면 반 잔 정도 남은 내 잔에 에이펙이라는 맥주를 섞어 주었다. 근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좐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노트북으로 나는 자신의 가족에게 인사도 시켜주었다. 노트북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가족은 저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전 부인과 딸들이었고 여기 퍼브에서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아내(한국인)와 아들이 같이 있다. 노트북으로 영상통화를 하는데 지금의 아내가 반갑게 예전의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마치 친 자매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런 문화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좐 아저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같이 지내고 있어서 퍼브에도 종종 놀러 왔다. 좐 아저씨에게 소개를 받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좐 아저씨와 아들을 보면 홍콩인들처럼 담배를 같이 피운다. 야외에 앉아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보인다. 해운대에 가면 대만인지 홍콩의 한 가족이-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들이 다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담배를 피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피운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니 담배를 피우고 카악 퉷 하면서 침이나 가래를 뱉는 행위는 없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계절도 바뀌었다. 여름 동안 떠들썩하게 주말만 되면 축제 분위기가 매주 이어졌다. 별 것 아닌 것에도 모두가 다 같이 웃고 즐겁게 시간에 충실했다. 그들은 주말은 칼 같이 지켰다. 금, 토, 일에는 그저 쉬는 것이다. 주말에 일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들의 가족들도 주말 저녁에는 모두가 나와서 와인이나 맥주잔을 들고 주말을 즐긴다. 또 크리스마스가 끼는 주말에는 보통 2주 정도가 휴가를 받는다. 쓰지 않고 모아둔 휴가까지 이어 붙이면 거의 한 달 가까이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그 기간에 가족을 보러 외국의 자신들의 집으로 가는 외국인들이 있고, 아예 2주 동안 느긋하게 이 곳 바닷가를 어슬렁 거리며 저녁에는 퍼브에 나와 간단한 조리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외국인들도 있다.


좐 아저씨의 퍼브에는 일단 외국인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굴지의 제조업 한국인 회사원들도 퇴근 후에 해물탕에 소주를 한 잔 걸리고 2차로 들리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읽었던 책이 이충걸의 ‘완전히 불완전한’이었다. 이충걸 하면 잡지 지큐의 편집장으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작가가 몇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황경신이라든가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의 글이 그렇다.


이충걸의 그 책은 첫 소설이라 아주 푹 빠져서 보고 있었는데 바의 옆에 앉아서 술이 거하게 된 회사원(굴지의 대기업 회사원들이 입는 회사 점퍼를 그들은 늘 입고 있다) 두 명중 한 명이 내쪽으로 쓱 오는 것이다. 그러더니 나의 얼굴을 아래위로 조금 훑어보더니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아 유 제페니즈?"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보여줬다. 눈을 한 일자로 가늘게 뜨고 한 참을 보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행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야야, 저 일본인 한국 책 읽고 있더라, 제길.”


그렇게 좐 아저씨의 바를 들락거리다가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나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그러니까 조깅을 하면서 입고 있던 그런 체육복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아이패드나 책을 꺼내서 바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한 번 앉았던 자리에 늘 앉게 된다. 하루는 좌 아저씨가 새벽 2시까지 하는 장사를 자정에 접었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손님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정에 다 내보내고 셔터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둘이서 술을 마시자는 것이다.


좐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 아내 빼고는 그렇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꽤나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좐 아저씨는 숨겨둔 위스키를 들고 와서 맥주와 함께 어떤 식으로 섞어 마시면 맛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래서 둘이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좐 아저씨 퍼브의 맥주가 왜 맛있냐 하면은 편의점에 들어가는 맥주와는 다른 기법의 기네스와 에이팩 종류의 맥주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게 중에는 본토에서 가져오는 맥주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나는 잘 모르는데 나의 사촌동생이 한 번은 집에 놀러를 왔다. 사촌동생 가족이 온 것이다. 이모의 가족이다. 나의 어머니 동생과 그의 남편인 이모부, 그리고 딸인 사촌동생과 가의 남편이 온 것이다. 사촌동생과 남편은 맥주 킬러로 포틀랜드에 살다가 와서 맥주에 관해서는 꽤나 맛을 아는 사람들인데 좐 아저씨의 퍼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 맥주는 보통 다른 곳의 맥주와 확실히 다르다고. 나는 다 먹고 난 후 술값을 계산하지 않고 한 잔씩 시킬 때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계산을 했는데 사촌동생 내외는 그것도 꽤나 재미있어했다.


아무튼 좐 아저씨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둘 다 술이 많이 취했다. 좐 아저씨는 웨일스 해군 출신으로 그 약자를 퍼브의 상호명으로 했다. 덩치도 좋고 키도 엄청 커서 특수훈련을 받으며 군생활을 한 탓에 그다지 겁이 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는 정 반대의 나와 알게 되고 매일 책을 조금 읽고 하는 모습이 새로웠던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술술 하며 대화가 통한 건 아니다. 내가 영어가 안 되니 대화 사이에는 이런저런 몸짓과 폰의 도움도 받고 술이 정신을 때린 다음이라 서로 다른 말을 해도 그저 알아듣게 된다.


좐 아저씨와는 언어는 안 통하지만 말은 잘 통했다. 좐 아저씨를 비롯해서 나의 친구와 결혼을 한 영국인 죠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호구조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버지 뭐 하시노, 같은 질문은 전혀 없다. 그저 지금 하는 대화에 충실하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습관적으로 상대방의 나이, 상대방의 어머니, 상대방의 동생의 나이는 뭐야?라고 묻는 한국인들은 마치 그렇게 모든 것이 생각하는 틀에 끼워 맞춰져야 상대방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인상을 풍긴다. 언어는 통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 사람도 많다. 어떻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다.  


그러다가 굴지의 조선업 회사는 타격을 맞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외국인들이 각자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다. 결국 그 여파에 좐 아저씨의 퍼브도 문을 닫고 말았다. 어디서든 잘 지내시겠지.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를 들으며. 



차례대로

셔터를 내리고 4시까지 마실 때

좐 아저씨도 술이 됐음

바닷가 퍼브의 여름은 늘 이렇게 북적인다

퍼브에서 책 읽는 사람이 늘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늘 파티다

문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게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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