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즈코 디오라마 완성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귀멸의 칼날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던 극장판 ‘무한 열차’ 편이었다. 영원한 오니의 삶보다 유한한 인간이 아름답다는 이유를 알려준 쿄쥬로 때문에 극장 안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던 귀멸의 칼날: 무한 열차 편에서 귀칼 빠들은 또 한 번 온몸이 불타오르는 격렬한 감동을 느꼈다.


사람들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을 영화나 장면에서 뜨거운 돌을 삼킨 것 같은 뜨거움이 속에서 올라와서 그대로 눈물샘을 터뜨려 펑펑 울게 되면 당황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는다. 쿄쥬로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등에서 거대한 송충이 한 마리가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슈퍼히어로 영화였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그런 장면이 몇 있었다. 요컨대 초반에 완다와 비전이 타노스 부하들에게 당할 때 기차역으로 떨어지고, 비전은 부상을 입고 완다는 비전을 부축하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찰나, 기차 뒤에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그쪽으로 타노스의 부하가 창을 던질 때 실루엣이 몸을 살짝 피하면서 그 창을 콰악 잡는다.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한 것이다. 별것 아닌 그 장면에서도 울컥한다.


이번 귀칼 무한열차 편을 보고 온 사람은 끝없는 쿄쥬로 앓이를 하고 있다. 쿄쥬로의 잔상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닌다. 처음 쿄쥬로가 등장했을 때 뭐 이런 올바른 말이나 쳐하는 정의감 쩌는 놈을 봤나, 우마이 우마이 할 때까지도 그랬는데 그만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무너지고 만다.


십이귀월인 아카자에게 쿄쥬로는 체력으로나 기술로나 밀린다. 하지만 그 둘의 카운터 필살 공격을 펼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힘 좋은 9세 남자아이가 줄로 몸을 꽁꽁 묶어서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그 장면에서 몸이 꽉 조여드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아카자에게 밀리던 쿄쥬로는 급소인 가슴이 뚫리게 된다. 그래도 쿄쥬로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미칠 듯 터지는 투지로 급습하는 아카자의 왼팔을 꽉 부여잡는다. 해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쉽이귀월 아카자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팔을 자르고 도망가는 아카자를 뒤쫓는 탄지로에게 우리는 몰입 최강이 된다. 탄지로의 마음에 이입이 되었기에 탄지로가 울부짖는 절규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 또한 탄지로처럼 일생을 보내면서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쿄쥬로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탄지로에게 유언과 함께 히노카미 카구라의 단서를 알려주고 웃음을 보이며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모두가 울음바다가 된다. 귀칼에서 가장 뭉클하고 뜨거운 장면이다. 탄지로 때문에 글썽이던 눈물이 쿄쥬로 때문에 터지고 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극장에서 모두를 울게 만드는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유곽 편에서 네즈코는 울트라 각성을 한다. 점점 기대되는 귀칼의 시리즈.


https://youtu.be/R5sTnuMOD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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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칸딘스키를 오마주해서 그려본 그림



집에 들어와 밥을 먹으며 잠깐씩 티브이를 보는데 티브이가 나오지 않은지 며칠이 되어서 라디오만 듣고 있으니 전혀 코로나에 대해 무뎌지는 기분이 든다. 라디오에는 노래가 나오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즐겁고 보다 평온한 이야기가 흐른다. 라디오라는 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어도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라디오를 진행하는 디제이는 참 대단하다. 그들도 사람이라 집안에 누군가가 아프거나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희로애락이 다양할 텐데 언제나 늘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청취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래라는 건 정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그런 무엇일까. 


어제는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에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낮에는 겉옷을 벗어도 될 만큼 포근했고 저녁에 조깅을 할 때에는 많은 땀으로 티셔츠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겨울의 냉기가 어제의 봄기운을 잠식하고 차갑고 시린 비를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게 하더니 강풍마저 불었다. 결국 조깅을 포기했다. 올해는 이제 두 달 지났는데 이틀을 뛰지 못했다. 하루 정도 달리지 못하는 게 뭐 큰 대순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당최 여기 서서 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요즘은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유튜브를 열어 유튜브의 섬네일을 보고 영상을 찾아보다가 두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간다. 딱히 나에게 유익한 정보도 없는데 그걸 앉아서 보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서도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지? 같은, 청춘일 때나 하던 방황의 고민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날씨는 아직 추운데 아무래도 봄인 것이다. 봄이 되면 나도 알 수 없는 감정선이 온몸을 지배한다. 봄이 오면 봄을 타게 된다. 찬란한 봄이 세상에 도래하면 반비례적으로 나는 깊은 결락을 느끼고 만다. 세상은, 인간의 삶은 정말 한 인간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시작도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고통으로 아프기 싫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약을 먹어둔다. 아프게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는다. 마음이 아프기 전에 미리 약을 먹는다.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과거와 잘 마주 할 수 있는 약, 오래된 주스 밑바닥에 깔린 찌꺼기처럼 미미하게 남아있는 그리움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약, 조금 슬픈 일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약을 미리미리 잘 챙겨 먹어 둔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봄바람에 떠밀려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무섭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시'다. 시는 시인의 고통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나는 순간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의 것이 된다. 그리하여 시는 읽은 이의 메타포 속으로 들어가 약이 된다. 약은 읽은 이의 세포 곳곳으로 퍼져 들어가 고통을 덜어준다. 


약을 짓는 약사도 시인이다. 약을 먹는 이들의 위로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제조실에서 시를 짓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약사를 알고 있다. 그녀가 쓰는 글은 모두가 시다. 늘 아프고 고통에 힘겨워하지만 격렬한 사랑을 갈구하는 멋진 약을 짓고 있다. 자신을 거짓 없이 과감 없이 드러내 보이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치부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이 세상을 두 발로 서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매일 시를 짓고 있다. 시를 짓는 순간 시는 봉투에 담겨 환자의 손으로 옮겨져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다. 시는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고 약은 읽는 이의 고통을 덮어준다. 나는 그런 멋진 약사를 알고 있다. 


이제 시간은 새벽 두 시. 술을 마시기엔 좀 늦었고 커피를 마시기엔 이른 시간이다. 창밖에서는 바람의 소리가 백일 된 아이의 울음 같다. 라디오에서 기타 연주가 나온다. 기시감이 든다. 7년 전 오늘도 새벽 두시게 창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겨울에서 봄의 경계에 서서 이사토 나카가와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당연하지만 나는 7년만큼 밥을 먹었고, 7년만큼 달렸고, 7년만큼 나이를 먹었고, 7년이 지나도 죽은 사람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중간에 만난 사람에게 미안해서 못되게 굴기도 했다. 러브레터의 죽은 이츠키처럼 이츠키를 닮은 히로코를 좋아하게 된 경우처럼 닮은 사람을 만나고 다닌 나 자신이 정말 밉기도 했다. 닮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약도 소용이 없다. 그냥 이대로 몸에 돌 하나를 삼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2시 11분. 이제 잠을 청해야 하는데 잠은 아직 팔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밤은 흑색으로 덮여 소음이 죽었고 소리만이, 바람 소리만이 기생하고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싸구려 와인 한 병이 저기 있다. 2시 13분. 밤과 새벽 사이. 이 집에서 잠들지 않는 건 나와 진열장 속의 피규어들. 불을 전부 끄고 내가 잠이 들면 피규어들이 토이 스토리처럼 일어나서 움직이는 상상을 자주 한다. 아마 집에 피규어가 좀 있는 사람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이유는 어느 날 문득 건들지도 않았는데 위치가 바뀐 것 같거나 데드풀의 루즈 하나가 떨어져 있다거나. 피규어처럼 영원히 시간 속에서 멋진 모습으로 그대로 머물었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봄의 길목에 있는 밤과 새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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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주성치)는 엑스트라로 영화판을 어슬렁 거리며 단역이라도 얻으려 한다. 사우는 배우가 꿈이지만 녹록지 않다. 같이 출발했던 성룡은 이미 저 위로 올라갔는데 사우만 아직 밑바닥에서 맴돌고 있다. 그렇지만 매일 영화판으로 단역을 따내려고 나간다. 그렇지만 연기를 너무 못해서 늘 쫓겨난다.

 

벌이가 없으니 늘 굶주려있어서 영화 촬영 장소에 가면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지만 그것마저 만만찮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거의 지옥 같다. 하지만 사우는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믿고 단역을 따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영화판으로 나간다.

 

사우는 연기학원을 열어서 연기 수업을 하고 있지만 강연장에는 아이들만 모여들어간 돈이 없는 노인들뿐이다. 사우는 자신이 가난해도 깡패들에게 돈을 빼앗기는 노인의 앞에 돈을 슬쩍 놓아두기도 할 정도로 정의롭다. 그러던 중 술집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들이 사우를 찾아온다.

 

술집에서 연기를 해서 술이 취한 손님들의 돈을 뜯어야 하는데 연기를 너무 못해 주성치, 사우에게 배우러 온다. 피우(장백지)에게 돈을 받은 사우는 첫사랑의 감정, 그 느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준다. 피우는 첫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첫사랑에게 마음과 몸을 빼앗기자 첫사랑이었던 남자가 돈을 벌어 오라며 구타를 일삼는 바람에 지금의 술집에서 호스티스가 된 것이다.

 

피우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연기를 수업받다가 사우에게 사랑을 느끼고 만다. 사우도 피우의 맑은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같이 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러 나간 피우를 보며 사우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세상에서 제일 예쁜 호스티스와 잠을 자면 얼마를 줘야 하느냐고 묻는다.


피우가 들어오기 전에 시우는 저금해 둔 얼마 안 되는 돈을 다 그러모아 옷 위에 올려놓는다. 방으로 들어온 피우는 옷 위에 놓인 돈을 보고 그대로 쥐고 옷을 입고 “잘 있어요 사장님”라고 주성치의 집을 나온다.

 

사우는 이불을 덮고 있다가 밖으로 따라 나와서 멀어지는 사우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네가 먹여 살려 줄 거냐고 피우가 큰 소리로 말한다. 주성치, 사우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먹여 살릴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장백지, 피우는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며 택시를 타고 가버린다. 택시 안에서 피우는 눈물을 펑펑 흘린다.


시간이 지나 주성치, 사우는 계속 연기를 해서 최고의 영화배우 부망(막문위)의 눈에 들어간다. 그리고 사우는 오열하는 사랑에 대한 연기로 주연배우를 꿰차게 된다. 그런 온몸으로 연기를 하는 사우를 부망도 사랑하기 시작한다. 사우가 잘 나가고 있을 때 피우는 술집에서 거액의 돈을 줄 테니 술 시중을 들라는 재벌의 요구를 거절한다. 장백지, 피우는 이미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찼다.

 

시중을 들라는 재벌과 그 요구를 거절하는 피우 사이에 결국 첫사랑처럼 재벌은 폭력을 휘두른다. 재벌은 그동안 피우를 꼬시려고 쓴 돈이 얼만데 네가 나를 배신을 하냐며 얼굴을 때리고 배를 걷어찬다. 그래도 피우는 더 이상 거짓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틴다. 계속 걷어 차이며 술 시중을 들라는 재벌에게 장백지, 피우가 하는 말은 “안 돼요”였다.


영화 촬영이 다 되어 무방(막문위)이 스포츠카를 몰고 주성치, 사우를 데리러 사우의 집으로 왔을 때 얼굴이 엉망이 된 장백지, 피우가 와서 사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방이 빨리 가야 한다며 사우를 옆에 태운다. 사우는 피우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말에 피우는 없다고 말하며 잘 가라고 한다.


차는 그대로 떠난다. 차가 저 멀리 떠나갔을 때 피우가 큰 소리로 사우를 불러 차를 세우고, 날 먹여 살린다는 말 진짜예요?라고 묻는다. 무방이 사우의 눈치를 본다. 사우는 무표정으로 “그! 래! 요!"라고 한다. “거짓말 아니죠?"라고 하니 그제야 주성치가 환하게 웃으며, 나는 당신 대답만 기다렸어요, 라며 두 사람은 포옹을 한다.


주성치의 희극지왕을 보면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착각이 든다. 보는 내내 유치해서 웃긴데 다 보고 나면 어쩐지 찡하다. 채플린이 말한 코미디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받아들여진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온통 비극 투성이다.


주성치는 늘 루저들을 다룬다. 루저는 모자라고 불쌍하지만 주성치는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다룬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잔뜩 만들 수 있을까. 주성치만큼 사람을 유치하게 만들어버려 웃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와중에 택시 안에서 눈물을 쏟는 장백지는 제대로 인상 깊다. 이런 장 바이즈의 모습 덕분에 어쩌면 파이란에 발탁되지 않았나 싶다. 


주성치의 영화는 복잡하지 않고 사상이나 나르시시즘 따위를 따지지 않고 사랑을 말하고 있다. 보석 같은 사랑. 오래전 영화지만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매력은 보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 빛남은 변하지 않아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 영화는 후에 주성치 감독으로 다시 한번 리메이크가 된다. 리메이크된 희극지왕은 주성치만큼 웃음으로 덜 두드려 맞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눈물이 펑펑 난다. 몹시 감동적이었다. 더불어 세상을 떠난 주성치 영화의 또 다른 꽃,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오맹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https://youtu.be/cWtq4d-oM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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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sMro6_1BqA


첩혈쌍웅은 안타까운 누아르 영화였다.
킬러와 형사의,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소개를 하지만 돌이길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실명을 한 여자 가수를 지켜주는 한 킬러의 이야기.
비싼 가격에 사람을 죽여 실명한 여자의 눈을 수술해 주고픈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쫓는 한 형사의 또 다른 이야기.

주윤발은 제니를 떠올리며 하모니카를 분다.
하모니카는 바이올린만큼 슬픈 영혼의 소리를 실처럼 뽑아낸다.
제니는 눈이 멀어도 계속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들릴 수 있도록.
서글프고 구슬픈 노래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노래를.

제니는 한 사람들 위해서만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눈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위한 노래를.

이 이야기는 슬프고 슬픈 이야기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제니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는 남자의 이야기.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데 찾지 못하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큰 눈에 
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표정을 짓는,
곁에 있어 줘야만 할 것 같은 여자가 제니다.

박정대 시인이 예뻐서 늘 쳐다보는 달력 속의 여자가 제니 같은 여자가 아닐까. 

제니는 사랑해선 안 되는 남자를 사랑하기에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엽천문은 가수이기에 노래 역시 잘 부르고 좋다. 

그녀는 다른 왕년의 스타들에 비해 소식을 팬들에게 자주 알린다. 
첩혈쌍웅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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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서 햄버거 먹고 안하무인 여자의 행태를 보며 참 말이 통하지 않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나도 며칠 전에 그런 사람을 겪게 되었는데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을 하는데 통하지 않으면 참 답답하다.


사진관에는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다. 작년에 터진 코로나 때문에 그 이전만큼 사람은 없지만 올해에는 모두가 개학을 맞이해서 등교를 하니 그에 따른 준비를 해야 한다. 그중에는 선생님에게 낼 증명사진을 들고 가야 한다.


어떤 학교, 어떤 선생님에 따라 직접 폰으로 찍어서 그걸 학생증이나 생부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찍은 사진을 자고 일어났을 때 코에 난 커다란 여드름 만큼 싫어하기에 보통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3월 1일까지 연휴라 학생들이 시내에 있는 사진관에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하지만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대기할 수가 없어서 일단 5명이 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없을 때 오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사진관에 두 명의 학생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보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단은 5명이 넘었다.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과 여고생인데 아들만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아이들만 남기고 가라고 할 수 없어서 두 명의 학생을 빨리 보정해서 보내야 했다.


그 어머니는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의 빳빳한 새 교복을 만지고 이리저리 몸에 맞게 각을 잡아 주었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더니 여기로 오려면 이렇게 이렇게 오라고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렇게 부른 사람이 그 어머니의 어머님과 남편이었다. 사진관은 6, 7평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 그 어머니의 남편과 그 어머니의 어머님까지 가게 안에 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좁은 공간이니까 5명이 넘으면 안 되니까,라고까지 말했는데 느닷없이 “우리는 직계 가족이거든요. 직계 가족은 괜찮거든요”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어머니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라고까지 말했을 때 (손을 외투 안으로 넣는 시늉을 하며) “저는 그래서 등본도 요즘 들고 다니거든요. 우리는 직계 가족이라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라는 것이다.


그때, 이 어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타인의 사정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후의 오고 갔던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있지만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아주머니가 미우니까 아이들도 밉게 보였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시종일관 계속 뭐라 뭐라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할 때는 마스크 정도는 쓰고 해야 한다고 다른 아이들은 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유독 그 어머니의 아이들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직 내 아이들만 소중해!라는 아우라가 마구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그런 스타일인 것이다. 솔직히 외투 안에 손을 넣었을 때 마음 같아서는 그래요? 어디 보여줘요?라고 할 뻔했다. 아마도 가지고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한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들 6명을 데리고 왔는데 두 명 씩 거리두기를 해서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앞사람이 다 되면 한 명씩 들여보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어째서 아들, 딸, 엄마, 아빠, 할머니, 이렇게 뭉쳐서 다닐까. 우리는 직계 가족이라 아무 상관없거든요, 라는 말이 맴맴 돌았던 날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매일 만나다 보니 이런 아주머니는 그래도 약과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있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부딪치느냐, 그렇지 않고 하루를 보내느냐, 그 정도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일회성이지만 만약 회사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상사로 두거나 밑의 직원이라면 매일매일 이런 고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아,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요. 남편과 할머니를 가게에는 못 들어오게 했고, 가게 앞 카페에서 깨물어 죽이고 싶은 꼬꼬마 아들의 사진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요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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