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끔 유튜브로 오래전 오락실 게임 채널을 본다. 갤러그라던지, 너구리 같은 게임들. 


아이들은 단음처럼 소박한 음향이 나오고 홀린 듯 동전을 밀어 넣으며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동전을 넣는 순간 묘한 음이 들리면서 게임을 시작된다. 아이들(오락실을 차지하는 손님 대부분이 아이들과 학생들이었다, 왜 그런지 어른들은 오락실을 찾지 않았다, 아마도 어른들은 어린이였을 때 이런 게임 같은 것을 모르고 자라온, 그래서 기기 속 게임에 동전을 넣어가며 열을 올리는 아이들을 몽땅 호러블 한 것으로 간주했을지도 모른다)은 게임기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게임을 하는 동안만은 진지해진다. 무서운 선생님의 수업시간보다 더 진지해진다. 동전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동전이 내 손에서 게임기 속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오락기와 나 사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기묘한 흐름의 세계로 들어간다. 띠리리리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화면에 보이는 게임을 이겨야만 한다는 의지가 올라온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알아 버리게 된다. 


단음의 똥파리들 소리가 미묘하기 달라지는 중독에 한차 한차 더욱 강력해지는 똥파리들이 나타날 뿐 결국에는 내 쪽에서 죽어야 게임은 끝이 난다. 절대 이길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우리들은 그동안 잘도 갤러그에 빠져서 져야만 하는 게임에서 승리의 목표 속으로 계속 달려들었다.


갤러그는 하면 늘지만 이기지는 못 한다. 똥파리들을 다 죽였을 때 나는 음향과 다 죽이지 못했을 때 들리는 음향의 차이가 있다. 하다 보면 회차가 두 자리를 넘기고 40차, 50차 까지도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지고 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에잇 뭐야, 하고 넘기기보다 이 지기 위한 순차적 반복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다음 회차를 위해 여러 번 이겨야만 하지만 한 번 져버리면 동전을 다시 넣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모아 놓은 주머니 속의 동전이 다 없어지도록 갤러그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지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동전을 소비해가며 도전을 했다.


인간의 인생이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기 위해서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지는가 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확정 지어질 수 있다. 바로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이다. 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갤러그를 하기 위해 매일 삼사십 분씩 학교 앞의 오락실에 들러 동전을 밀어 넣으며 오늘도 지는 순간 가방을 울러 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 그리고 동전을 밀어 넣는 횟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게임에서 지고 나면 허탈해하고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오지만 다음 날이면 어제보다 나은 회차를 넘기리라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기대를 가지고 오락실의 문을 당당하게 연다.

어제까지의 풍요로움이 오늘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절망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연애시대 은호의 말처럼 고요한 물과도 같은 일상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쉽게 허덕인다. 우리 인생은 너무 약하여 금방 부서지는 장난감과 같다. 여러 번 이겨도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런 일은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다가온다.


힘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서 갤러그 오락기에 집어넣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무너지기 전까지 그동안 쌓아놓은 개개인의 비교할 수 없는 금자탑이 있어서 다시 하면 된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힘들어서 질 수 있지만, 내일이 되어 다시 오늘을 맞이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인생이란 꼭 이 기기 위해 치열하기보다는 덜 지기 위해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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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구이를 하면 몸통 부분은 잘 발라서 어렸던 조카를 먹였다. 신중하게, 가시가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잘 발라서 조카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러면 조카와 조카의 엄마와 조카의 외할머니 모두가 나에게 어떤 존경의 눈빛을 보였다. 사실은 살이 많은 그 몸통 부분이 크게 맛이 없어서, 나는 가시가 많은 지느러미가 아무래도 내 입맛에는 맞나 봐. 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다. 모두가 평화로운 길을 나는 택했다. 


가자미 구이에 백후추를 쏠쏠 뿌려 잘 잘라서 먹으면 참 맛있다. 후추를 쏠쏠 뿌려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가자미 구이를 입 안에 넣어서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꼭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가자미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은 살이 많은 몸통 부분이 아니라 가시가 많은 지느르미 쪽 부분이다. 아주 부드럽고 기름기도 적당해서 후추와 잘 어울리며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단지 가시를 제거하고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몸통 부분은 가시는 없지만 지느러미 쪽 보다는 맛이 떨어진다. 


가자미 구이는 아버지가 좋아했다. 아버지는 가자미를 구우면 지금의 나처럼 몸통의 살을 잘라서 동생과 나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시가 많은 부분을 끙끙 발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쪽이 훨씬 더 맛있어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몸통을 발라서 먹였을 것이다.라고 애써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치킨도 터벅살 보다는 날개가 맛있고 돼지도 부속물이 더 맛있는 경우가 있다.


가자미 구이도 그런 연장선 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잘 구워진 가자미를 잘라서 오물오물 먹고 있다 보면 금방 사라지지만 이 짧은 시간은 좋아하는 시간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조금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혹독하네. 혹 독 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지만 좋은 시간 약간을 만들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 이 서럽고 강하고 유약하면서 바늘 같은 대사는 가자미 구이를 먹고 있는 나에게 와서 박혔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가자미의 맛이라는 건 그저 가자미의 맛이다. 아버지가 밥 위에 올려 주었던 가자미 구이의 맛은 아니다. 그 속에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밥을 먹었던 추억이 기억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서 오는 맛은, 지금의 지느러미의 맛있는 부분의 맛이 아니라 추억 속 몸통의 맛이다.


내가 만약 아버지가 된다면 내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매일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같이 할 자신이 없다.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는 건 지구가 도래한 이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극히 평범해서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순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시골 가족’의 식사를 보면 마음이 편하다. 지금의 유튜브는 돈을 벌기 위해, 불빛을 보면 달려드는 나방 같은 인간들로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도 모르는 유튜버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얼마 전에 죽은 사람을 가지고 조회수를 올리는 인간도 있고, 죽은 아이와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서 조회수를 올리는 인간도 있다. 이미 시궁창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된 곳이 유튜브다.


나방이 하늘을 덮어버린 곳이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나비는 있다. 시골 가족 유튜브는 한 가족이 둘러앉아 그저 식사를 할 뿐이다. 과하거나 축소나 확장 없이 한 가족이 밥상을 놓고 빙 둘러앉아 소박한 밥 한 끼를 먹을 뿐이다. 시골 가족의 밥상에는 강요가 없다. 엄마가 미역국을 금세 먹고 나면 막내가 많이 남은 자신의 미역국을 엄마에게 건네준다.


이 소박하고 조용한 한 끼 밥상을 보는 것으로 봉인되어 있는 내 추억이 실타래가 풀리듯 열리게 된다. 내 아버지는 평일의 저녁은 어떻든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도 늘 밥상에 빙 둘러앉아 같이 먹었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아버지가 오는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종종 나갔다. 동생의 손을 잡고, 놓칠세라 꼭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어느 광고에서 '마중'이란 '마음이 오는 중'이라고 하던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가 오는 버스의 번호를 맞춰가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작업복 남자들을 유심히 보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리면 동생은 뛰어가서 안겼다. 그리고 저녁은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그 속에 가자미 구이가 자리 잡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떡국에서 오르는 김이 꼭 하얀 실뱀장어처럼 보였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어머니는 마른 김에 밥을 싸주었다. 어린이였던 우리는 그걸 간장에 좀 찍어서 먹었다. 떡국을 좀 떠먹고 동생은 뭐라 뭐라 종알종알거렸다. 그리고 밥 위에 가자미 구이를 아버지가 올려주었다. 한 입, 두 입. 그렇게 먹는 동안 우리는 성장했고 어른들은 쪼그라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늘 신파로 흘러가지만 추억은 조금 신파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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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단점이 없는 사람은 장점도 거의 없다고 링컨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단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장점 하나를 찾아보았다. 단점 투성이인 나에게도 장점이 하나 있었다. 나의 장점이라면 지금까지 반찬투정을 해 본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에이, 그게 무슨 장점입니까,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장점이 꼭 슈퍼파워를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장점이 없기 때문에 이거 하나 정도를 장점이라고 우기고 싶다. 거의 없다는 말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기에 매운 음식에 대해서는 투정을 한 두 번 정도 했었다. 그 때문에 매운 것에 적응을 하기 위해 요즘은 집에서 왕왕 땡초를 곁들여 먹고는 있다.


매운 걸 먹으면 나는 피부가 뒤집어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매운 고추를 먹으면 그저 땀이 나고 마는데 화학적인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든 매운 음식은 먹으면 피부가 뒤집어지는데 얼굴이 정말 볼품없이 지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꽤 고통스럽다. 그래서 식당에서 파는 매운 음식에 좋은 고춧가루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캡사이신 같은 화학적으로 매운 조미료를 사용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집 밖에서 매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오래전일이지만, 친구와 친구의 여자 친구가(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그런 내가 싫었던지 매운 주꾸미 구이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 나의 여자 친구도 합세를 해서 세 명이서 나에게 매운 주꾸미를 먹이려 했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은 주꾸미를 맛있게 먹고 나는 그에 딸려 나오는 것으로 밥과 술을 마시면 되니까, 라는, 늘 매운 음식 앞에서 하는 말을 했는데 그날따라 그들 모두가 만약에 먹지 않으면,으로 시작해서 어떤 무엇을 못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는 걸 다 알면서 왜 굳이 나에게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하느냐. 그저 세 사람이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졌다. 기분이 나쁜 건 여자 친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옆의 사람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이미 먹은 탓인지 동참하는 꼴이 너무 안 좋았다.


주꾸미는 나올 때부터 벌겋게 된 채, 불판 위에서 구우며 타들어갈 때 매 쾌한 매운 냄새만 났다. 친구의 여자 친구는 매운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매운 음식에 땡초를 같이 넣어서 먹는 사람이었다. 매운 주꾸미 구이를 상추에 올려서 땡초와 마늘을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래, 그렇게 너희들끼리 맛있게 먹으면 될 텐데. 하지만 그들은 내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이끌었다. 할 수 없이 매운 주꾸미를 먹었다.


그리고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나의 얼굴을 뒤집어졌고 눈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매움 뒤에 따라오는 땀과 혀의 고통보다는 피부가 따끔거렸고 무엇보다 그런 일행들이 너무나 싫었다. 왜 꼭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할까. 왜 이런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그래서 그 뒤로 나는 그들과는 자주 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그마한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꼭 옆에 있는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틈 속에 꼭 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계를 호러블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밥상 위에 올라온 반찬이나 밥에 대해서 질다, 짜네, 다네,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찬이나 밥을 내주는 사람이 너 오늘 한 번 죽어봐라, 라며 그렇게 만들어 내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수로 양념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음식이면 다음부터는 먹지 않으면 된다. 밥투정이 없는 이면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음식이 확고해서 그 음식을 일정기간이 지나면 찾아서 먹거나, 또 그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에 가는 행위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소문난 맛집이라고 해서 들어가서 먹어보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지도 않고, 돌아다니다 허기가 져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음식은 또 대체로 맛있었다. 배가 고프면 뭐든 맛있으니 식당에서 돈을 지불하고 먹는 음식이면 맛은 좋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싫다.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몇 년 서울에 일 년에 두 번 이상 올라간 적이 있었다. 돌아다니며 볼일을 보고 저녁이면 고가다리 밑에서 생선구이도 먹고, 인사동에서 막걸리도 마셨다. 인사동에서 자주 먹었던 게 인사동 노가리였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자리가 꽉 차도 기다리지 않았다. 두 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을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하게도 한 테이블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경상도에서 올라왔기에 사투리가 심했고 술을 한 잔 두 잔, 노가리를 질겅질겅 씹어 먹다 보면 모두가 친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서울은 전국에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다. 물론 다 맛있지는 않겠지만 위에서 말한 곳은 대체로 기분 좋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특히 여름이 다가오는 밤의 기운이 오소소 내려앉음과 함께 고가다리 밑에서 생선구이를 파먹으며 술을 한 잔 마시고 주위의 이야기를 듣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다. 이제 서울에 가면  주머니에 돈을 두둑하게 넣어서 '몽로'에 가서 맛있고 먹고 멋지게 술이 취해야지,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좀 재미있는 것은 나는 '몽로'에는 한 번도 안 가봐놓고서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들에게는 '몽로'라는 주점이 생겼는데, 박찬일 요리사가 주점을 열었어, 그런데 김치도 가격을 받는데 아주 맛있나 봐, 그러니까 하루키가 주업이 소설이고 부업이 에세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박찬일 요리사가 식당을 하면서 주점을 연 거지, 거기서는 비교적 식당보다는 저렴하게 박찬일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아주 좋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 있는 팔로워들은 오오 그래? 하면서 가서 먹어보고 리뷰를 올리곤 했었다. 그게 벌써 8, 9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몽로'도 여러 분점이 생긴 걸로 아는데, 어떻든 코로나를 핑계로 이제는 가야지 하는 생각이 많이 반감이 되었다. 


군대에서도 맛이 좀 떨어지는 추어탕이 나오는 날이 있다. 군대 추어탕에는 간 미꾸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등어를 갈아서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이상하거나 추어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맛이 없다며 아이들은 대부분 먹지 않았다. 나는 그게 맛있어서 한 그릇 먹고는 또 한 그릇을 먹기도 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미꾸리의 추어탕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두 그릇이나 먹었지. 어어 저 녀석 오늘 두 그릇 먹겠네, 라며 고참들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보란 듯이 한 그릇을 기분 좋게 미우고 다시 돌아서 한 그릇을 받아와야 깔끔하게 해치웠다. 그날은 저녁이 오기까지 든든한 것이다. 


 요즘에는(언젠가부터) 한 번 먹게 되면 많이 먹는 경향이 있어서 먹는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늘여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건 무리가 되었다. 예전에 거래처 사장님과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뜨거운 국밥을 15분 만에 다 먹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국밥은 그렇게 먹는 게 맛있지만 나는 아직 3분의 1 정도 먹었을 뿐이었다. 맙소사. 거래처 사장님은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후에, 왜 이렇게 잡내가 나는 거야,라고 했다. 이런 태도는 좋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먹으면서 비난이나 욕을 하기보다 다 먹고 난 후 한 마디 하고 난 후에 그 집의 음식이 맛이 없으면 다시는 안 오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집에서 밥을 차려주면 먹으면서 이렇네 저렇네 하는 건 아주 옳지 못한 태도다. 정말 맛이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먹고 난 후에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음식을 차려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밥을 먹지 않아서 숟가락을 들고 다녀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에 밥을 먹지 않는 아이로 소문이 날 정도로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힘겨워했다고 한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정말 말라서 뼈만 남아 있다. 밥뿐만이 아니라 과자나 다른 빵 같은 것에도 그렇게 달려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나 문방구에서 파는, 그 좋다는 불량식품도 썩 마음을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될 동안 죽 지내다 보니 무엇인가 먹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덜하다. 오늘은 뭘 먹지? 같은 선택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있으면 있는 것으로 먹고 없으면 팔을 뻗을 수 있는 안에서 해결을 한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라면을 먹을 수 있으니 먹을 게 없을 때 라면을 먹으면 더없이 행복하다. 보통 배고플 때 사람들은 짜증을 많이 내는데 그런 점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배고플 때 맛없는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은 없다고 내가 아는 여자들은 말하는데, 위에도 말했지만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물 하나에 밥을 먹어도 꽤나 맛있고, 김치찌개를 대충 끓여서 먹는 것도 좋고, 고등어를 구워서 먹는 날이면 진수성찬이고, 컵라면에 만두를 빠트려서 먹어도 기분 좋다. 그리고 물김치만 있을 때는 거기에 밥을 말아서 먹어도 맛있고 좋다. 물김치에 밥을 말아 오물오물 먹으면 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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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은행에 갔었다. 동네 은행이지만 일하는 직원원들이 7명, 6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한 명 빼고는 다 여성이었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1년 전 오늘은 한국의 모든 은행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은행의 모습은 몹시 기이하고 낯선 풍경이어야 하겠지만 마치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1년 동안 마스크 생활에 인간이 흡수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흡수를 하는 것은 시간이고 우리는 시간 속에 흡수되는 동시에 적응이라는 모멘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은행의 풍경 속에는 투명 칸막이가 생겨났고 마스크를 한 채 직원들은 고객을 응대했다. 초기에는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군에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마스크를 벗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마스크에 적응이 되었고 이제는 마스크를 벗거나, 쓰지 않으면 은행에는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고객을 응대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감염병 일선에서 환자들과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것이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입니다, 물을 많이 드시고... 같은 뉴스 앵커의 당부를 듣고 마스크를 마음껏 벗고 물을 마시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다가 점심밥을 먹을 때 잠깐 벗는 정도가 되었고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불안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1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우리 주위에는 많은 것들이 변했고 앞으로 1년 그 이전의 일상으로는 다시는 돌아가지는 못 할 것이다. 감염병 시대에 빈익빈 부익부는 더 벌어져 저소득층 아이들은 1년이 넘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후에 분명하게 표가 날 것이다.

 

은행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문을 열고 한 아이와 엄마가 들어왔다. 아이는 남자아이로 5살? 4살? 정도 되어 보였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종알종알거리다가 은행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은행의 로비에 들어오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용해졌다. 아이도 감염병 시대에 맞게 적응을 한 것이다. 마스크를 쓰면 나 좋을 대로 집에서처럼 마음대로 떠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아이는 엄마가 볼일을 보는 동안 엄마 옆에서 한 손에 들린 아이언맨을 가지고 놀며 조용하게 엄마의 볼일을 기다렸다. 남자아이는 마스크를 썼지만 너무 귀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의 할머니 고객이 여느 때 같으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며 이런저런 관심을 보였을 텐데 그런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을 나와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다. 엄마는 그네를 밀어주고 아이들은 신나는 듯 그네에 올라타서 재미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놀이터를 휘감았다. 적막할 줄만 알았던 놀이터가 아이들의 소리로 인해 순간 봄날의 곰처럼 변했다. 


어린이들은 고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린이였으니까 의도를 가지고 좋아하기보다 그냥 보이는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특정한 장면이나 특정한 모습이나. 그러고 보면 어린이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좋아한 ‘프란다스의 개’의 네로도 고아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그 속에 역시 버려진 파트라슈가 들어온다. 라푼젤 역시 고아며 각종 공주들 역시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부모가 없다. 김영하 소설가도 그랬지만 해리포터도 고아다. 엘사 역시 모두에게 버려져 홀로 지낸다. 헨젤과 그레텔도 계모와 친부에게 버려진다. 아이들은 이런 고아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건 고아가 좋아서라기 보다 고아가 되는 게 무섭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한다. 아이는 고아가 되지 않더라도 고아가 되는 시간이 있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하루 같지 않다. 고작 3, 4년 정도 살아왔기에 하루라는 시간은 몹시도, 아주, 너무 길다. 그 긴 시간에 엄마와 떨어져 낯선 곳에서 낯선 친구들과 낯선 선생님들과 몇 시간 동안 고아가 되어 지낸다. 그러다가 저녁에 엄마를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기고 기분이 좋아 죽는다. 인생은 위험한 것 투성이다. 나를 미워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요즘처럼 때리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금이 가게 된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어쩌면 더 위험한 삶이 어른의 삶이다. 어른이 되면 낯선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된다. 대체로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마음이 맞아 매일 일하는 동안 이야기가 잘 통해 잠까지 자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모텔의 침대에서 그녀가 이렇게 묻는다. 나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은 언제 할 거야?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이다. 


나는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달려가지는 않지만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과는 곧잘 어울린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면 최선을 다해 같이 어울려 논다. 개인적으로 이유를 달자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비현실 같기 때문에 꼭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몇 시간 같이 있어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어른들도 아이들의 시기를 거쳤다고 생각하면 길어진 시간 동안 아이들과 있어야만 한다면 조금이라도 힘든 것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감염병 시대에 모두가 화가 나 있어서 성냥을 그으면 그대로 폭발할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저기서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소수를 향해 독버섯을 뱉어버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른들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나약하고 힘없는 상대를 골라 폭력을 행사했다. 편의점에서 취식은 금지되었지만 안 된다는 아르바이트에게 먹던 라면을 집어던진다든가, 9시 이후에는 장사를 안 한다는 주인을 폭행한다든가, 모두가 자신보다, 자기들보다 힘없어 보이면 폭력을 행사한다.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다. 그리고 가장 나약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을 폭행하는 어른들이 늘어났다. 


정인이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양모의 반성문을 보면 '짜증'이라는 말이 아주 많았다. 글을 쓸 때 김영하는 이 '짜증'이라는 단어를 될 수 있으면 남용하지 말라고 했다. '짜증'이라는 단어를 풀어헤치면 수많은 감정들이 있다. 화가 나고 울화가 치밀고 기분이 안 좋고, 등등. 그런데 우리는 이 많은 감정을 그저 '짜증'이라는 한 단어에 묶어서 사용해버리기 일쑤다. 정인이 양모의 반성문은 반성이라기보다는 반성 그 이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마도 법은 또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이 풀려 봄날이 되었다. 봄날이라고 착각할만한 날이다. 이렇게 겨울의 틈을 벌려 따뜻한 날 모두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행복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은 전쟁 속 폐허에서도 늘 행복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이 풍족한 세상에서 어른들 때문에 왜 행복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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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추우면 길고양이들을 본다. 고양이의 삶은 인간에 비해 너무도 짧아서 이래도 되나 싶다. 혹독하게 추운 날 조금이라도 길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곳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분명 고양이의 삶은 몹시도 짧아서 안타깝군,라고 생각하는 찰나 내 뒤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것이 묘생이지 다 그런 것 아니야? 어쩔 수 없지’라며 가곡을 부르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그건 걱정하지 마, 고양이는 인간처럼 뾰루지가 나서 걱정하고, 은행일 때문에 걱정하고, 진급이 안 되어서 걱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잠자는 것과 먹는 것만 걱정해’라며 발라드를 부른다. 그러다 보면 가곡의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발라드가 강세를 보이며 앞으로 한 걸음 나온다.

고양이들을 지나면 이삼일에 한 번 들러 빵을 구입하는 오래된 빵집이 나온다. 한 사십 년은 된 빵집이다. 주위의 건물들도 오래되어서 그런지 빵집이 크게 낙오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2021년에 40년 전의 공백 속으로 잠시 들어간다. 그 공백에는 질감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종의 부유감을 느낀다. 나는 작은 부표가 되어 유동한다. 그 느낌이 실려 다닌다는 기분으로 나쁘지 않다.

2021년과  사십 년 전 그 사이에 멋지게 지어진 건물이 있지만 건물로서 기능을 잃어버리고 ‘실패’라는 낙인 하에 비참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사이, 그 중간 즈음에 오래된 빵집은 끼여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빵집은 주위 환경에 억지로 맞춘 듯한 분위기지만 언뜻 지나치며 보면 균형의 부조화가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오래된 것은 확실하게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분명하게 낡았다.

빵집으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이 나온다. 빵집 정문, 천장과 벽면 사이에 티브이가 이질감 돋게 설치되어 있지만 소리는 죽어있다. 빵 집 안에는 기분 좋은 침묵이 빵에 가득 스며있다. 저녁에는 선반 위는 거의 비어 있고 조금 인기가 떨어지는 빵들이 남아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린다. 저녁 시간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빵들은 좀 애처로워 보인다. 모든 인간들이 열심히 오후 내내 빵을 집어 가다가 ‘아, 너무 지쳤네. 이제 끝이야’라는 식으로 발길을 끊어 버린 후 남은 빵들은 조급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어쩌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기 있는 빵 중에는 소라빵이 있다. 식빵과 소라빵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그날 빵을 사는 날이면 조깅을 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가야 집어 올 수 있다.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 그 안쪽의 제빵실에서 늘 비슷한 톤과 늘 비슷한 옷차림과 늘 비슷한 표정으로 나이 많은 주인이 나와서 반긴다. 오늘도 운동 중이신가, 같은 말을 건넨다. 아휴 이렇게나 추운 날에도 대단하시네. 다리의 움직임은 계절과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움직여줘야 해. 라며 가끔씩 이렇게 철학적인 발언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할머니에 가까운 주인은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이며 지금까지 그런 모습으로 지내온 것 같다. 안경을 썼고 느릿하지만 목소리 그 어디에도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요만큼의 증오도 묻어있지 않다. 저 안쪽의 제빵실에서 늘 빵을 만드는 주인아저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작은 빵집에서 빵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반 위에 올려놓으려면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매일 매시간 영차영차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집은 자주 가는 빵 집 두 군데 중 한 군데이다. 한 군데는 규모가 큰 지역 빵집이고 한 군데는 이곳, 아주 작은 빵집이다. 오래전 역이 있던 자리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역은 1935년부터 1992년까지 자리를 지키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 도심지 중심부에 역사가 있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는 영화에서처럼 딩동 딩동 하며 건널목의 팬스가 내려오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건넜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화이트 노이즈다. 터득 터득 거리는 기차소리는 집중하는데 도움도 되고, 잠이 오히려 잘 오기도 한다. 여름의 매미소리와 비슷하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이유는 매미 소리 이외의 소음이 많아서이다. 한적한 시골의 툇마루에 누워 맴맴 거리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매미소리가 없는, 여름의 침묵이 오히려 불안하게 한다. 기차소리를 일부러 들으러 기차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화이트 노이즈의 기차소리는 여기, 머릿속에서만 가능하다.


여하튼 도심을 관통하는 기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교통, 안전, 공해 등의 문제로 도시계획하에 옮겨갔다. 기차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북적였던 때가 있었다. 지상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그런 기억의 모습을 지니는 곳들이 존재한다. 역전을 지키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졌지만 빵집은 아직도 있다. 오래된 빵집의 소라빵은 아주 맛있다. 달지 않은데 시원한 단맛이 난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다들 못 알아듣지만 소라빵을 먹어보게 하면 무슨 맛을 말하는 건지 대번에 안다.

넷플릭스 영화 ''에서 인간은  사소한 것에서  무엇인가를 얻거나 느낀다고 했는데별거 없는 소라빵인데 이걸 들고 와서 먹고 있으면 짧지만 순간의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순간의 기억은 오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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