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검색하려고 창에 검색어를 치면 온통 음식점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나온다. 그래도 보이는 페이지에 쳇 베이커의 음악 하나 정도는 나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검색이라는 게 뭐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녀석이 해버리는 것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순으로 나와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나 뭐라나.


티파니의 노래를 들으려고 해도 소녀시대 티파니밖에 나오지 않는다. 겨우 노래를 검색어로 입력해야만 티파니가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티파니의 소싯적, 잘 나갈 때의 모습이나 느낌은 안희연, 하니를 닮았다. 외모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 무대 위에서 해내겠다는 그런 느낌이 닮아 보인다. 티파니는 비틀스의 노래(I Saw Him Standing There)를 리메이크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곡을 받았을 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거부를 했다. 비틀스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라고. 하지만 노래를 내놓는 순간 엄청났다. 티파니는 당시 다른 가수들이 홍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로 치면 집 더하기 같은 대형마트에 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그대로 뮤직비디오에 실리기도 했고 먹혀들었다.  https://youtu.be/w6Q3mHyzn78


그런데 학창 시절에 음악감상실에 다니면서 들었던 음악에 대해서 기억만으로 이제 말하려니 요즘은 본격적으로 방송하는 유튜브가 있어서  내가 하는 말은 뭔가 어설퍼졌다. 유튜버들은 정말 전문적이며 그들의 구독자들 역시 전문가 수준으로 희귀한 방송 분을 소장하고 있다가 유튜버 주인장에게 보내서 방송을 하기도 한다. 팝가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유튜버들은 전문가 그 이상이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 내가 좋아했던 팝 가수들의 소식을 20대의 젊은 유튜브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떻든 티파니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아주 좋다. 작년에 미드 ‘엄브렐라 아카데미’를 보는데 티파니의 노래가 사정없이 나왔다. 슈퍼 초 사이아인 같은 몸을 가진 톰 하퍼가 노래에 맞춰 앙증맞게 춤을 춘다. 시즌 2가 나왔는데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티파니는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7080 무대 같은 곳에서 열심히 활약 중이다. 그리고 조금은 살이 찐 모습이지만 본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멋집니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다. 살이 찌고 얼굴이 늙었다고 해서, 또 혹시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하고 싶은데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죄악이다. 왜냐하면 팬들이 그런 것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티파니는 우리나라에서 공연-토토즐에서 티파니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가수 이지연도 티파니의 노래를 공연에서 많이 불렀는데 두 사람이 만나기도 했고, 티파니는 써니텐 광고도 찍었다. 티파니 했으니 데비 깁슨도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패스.


https://youtu.be/JmeJ2VsCs-0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음식점으로 검색이 되니 인기 좋은 음식점은 사람들이 줄 서서 먹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다 먹게 되면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음식의 맛을 좌지우지하는데 요리한 음식의 맛 이외에도 ‘공기’라는 것이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그 공기 속에는 분위기와 환경 같은 것들이 차지한다. 맛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라 객관화될 수 없다.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그 맛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줄을 서서 먹는 음식은 맛이 없을 수 없다. 보통 줄을 서게 되면 한 시간 이상, 두 시간도 기다리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가만히 서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몸을 움직이면서 소모되는 에너지보다 더 클 수 있다. 가만히 서 있는데 무슨 에너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경우를 보면 그렇다. 물론 과학적으로 드러난 정황 증거는 없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할 때 두 시간씩 교대근무를 했다. 재소자들이 다니는 길목에 서서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서서 철문을 열었다가 닫는다. 접견(면회)이 없는 주말에는 정말 앞을 보며 가만히 두 시간 서 있기만 할 뿐이다. 졸따구 때는 벽에 기대지도 못한다.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두 시간 근무가 끝나고 교대를 하고 나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모른다. 다른 근무지에서 몸을 움직이며 근무를 하는 것보다 훨씬 배가 고프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근육을 사용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라고 고참이 처음 근무를 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해보니 그렇다. 두 시간을 그렇게 견뎌야 한다는 게 에너지가 쪽 뽑혀 나가는 기분이다.


식당에서 줄 서 있다가 가서 먹는 음식은 일단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그것과는 무관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 때문에 맛있다. 나는 음식점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걸 휴지 없이 변기에 앉는 것보다 싫어하는데 예전에 서울에 갔을 때 거기 사는 사촌동생과 인사동에 갔다. 그때 줄 서서 먹는 단팥죽을 먹고 가자는 것이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사촌동생은 억지로 나를 끌고 결국 줄을 섰다. 운 좋게 사십 분 정도 만에 먹었지만 다리가 아팠다. 가만히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사십 분을 있어야 한다니. 묵묵하게 줄을 서서 대기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다. 스고이.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어서 단팥죽을 먹었는데 머리 위에 헤일로가 보일 정도로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그릇을 더 먹고 십전대보탕도 먹었다. 십전대보탕은 맛에서 멀어져야 할 씁쓸한 맛과 약간 달큼한 맛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우리 동네 시장에서 파는 단팥죽과 비슷한 맛인데 참 맛있는 것이다. 단팥죽을 감싸고도는 공기 때문이다. 단팥죽이 맛이 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냐마는 공기 때문에 단팥죽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 공기 속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닳은 에너지가 크게 한 몫한 것이다.


보통 줄 서서 기다리는 집 옆의 별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집도 음식이 맛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서 원조를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엄청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줄 서서 먹는 인기 있는 식당은 흘러넘치는 손님을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벅차다. 그래서 간혹 원조 집이 쉬는 날 사람들이 찾아갔다가 어? 날을 잘못 잡았군, 하면서 할 수 없이 그 옆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웬걸 이 집이 더 맛있는 거 같아?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원조집과 옆집이 주고받고를 잘하는 곳은 옆 집을 위해, 또 본인들의 휴식을 위해 쉬는 날을 정해 놓고 쉬고 그 날은 옆집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어차피 줄을 서서 기다려봐야 그날 하루 음식은 정해져 있으니 두 집 모두 손님이 흘러넘치고 줄 서는 시간이 줄어든다면 손님들, 원조집, 그 옆집 모두가 윈윈 하는 하는 것이다.  




어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과 '서울의 지붕 밑'을 봤다.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은 오래전 수학의 정석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못해서 수학의 정석 앞부분만 항상 더러웠다. 해리포터의 시리즈가 죽 있지만 마법사의 돌만 집중해서 본 것 같다. 비밀의 방을 봤을 때 애들이 생각보다 커 버렸다. 그 후로 이상하게 봐지지 않는다. 어른들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던 것이다. 마법사의 돌을 계속 보는 건 주인공들 중에서 론 위즐리가 너무나, 정말, 울고 싶을 만큼 귀엽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처음 해리포터를 만났을 때부터 특히 마법학교 식사시간에 둘러앉아서 음식 먹을 때 양 손에 닭다리 하나씩 들고 먹는 모습은 꼭 봐야 했다. https://youtu.be/1-JKP2gp80k


61년에 나온 '서울의 지붕 밑'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한의사 김학규의 한약방 맞은편에 최두열이라는 젊은 양의가 들어와 버린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신의 딸, 인두질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을 하는 현옥과 눈이 맞아서 열불 터진다.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데 이 놈의 딸이 자꾸 맞은편의 양의와 눈을 맞춘다. 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김학규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에 나가게 되지만 낙선하게 되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딸을 위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허준호의 아버지인 허장강, 코믹의 대부 김희갑, 그 당시 영화를 보면 거의 다 나오는 김승호부터 도금봉, 황정순까지 싹 다 나온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주인공들은 전부 비슷한 또래지만 누구는 어머니를, 누구는 딸을 연기했다. 구봉서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신성일의 아주 젊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최은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화한 것에도 출연을 했고 '해녀'나 다른 영화를 봐도 최은희 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지붕 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민이지만 그래도 꽤 중산층이고 그중에서도 '상'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처럼 중산층으로 그 자식들은 죽으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내내 유쾌하지만 아직 61년이라 전쟁의 여파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전시에 남편을 잃어버린 최은희도 그렇고, 한국의 생활 전반에 서러운 단어 가난이 파고 들어와 있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난을 모르며 뛰어다니고 또 연애를 불태웠다.

첫 장면은 동네 주모(황정순)의 딸인 점례(도금봉)가 몸이 이상해서 한약방을 찾고 진맥을 짚어보는 김학규가 혼전 임신라고 하며 술집 주인은 주모라서 자신을 무시한다며 펄떡 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맥 보는 과정에서 딸의 윗도리를 벗게 하고 문방 너머에서는 김희갑과 허장강이 구멍을 뚫어 그 모습을 훔쳐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60년도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점례를 임신시킨 사람은 김학규의 백수 아들 현구(신영균)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 김학규는 현구를 쫓아낸다. 현구는 점례와 아이를 낳고 힘들어 하지만 나중에는 다 같이 잘 살게 된다.

그 당시에 젊은 양의 최두열(김진규)과 남편을 잃은 현옥(최은희)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봉건 제도를 무시했던 소설 '무정'의 영채와 선형처럼 부모 세대라는 엄청난 벽을 깨고 시랑을 쟁취한다. 현구와 점례도 혼전임신을 했지만 결국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모습들이 7, 80년대 티브이 속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시초가 되었지 싶다. 그 물꼬를 튼 영화가 '서울의 지붕 밑'이다.  

김진규는 김승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후 모든 영화의 주연을 차지했다. 내가 본 김진규의 마지막 영화가 '삼포 가는 길'이었다. 황석영의 소설이 영화가 되었는데 젊은 백일섭의 "지랄로"라는 대사가 착착 달라붙고 백화로 나온 문숙이 너무나 예뻤던 영화였다. 마지막 헤어질 때 정류장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세상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픈 계란이 아닌가 싶다. 김진규하면 최근래에는 정애연까지 내려온다. 정애연의 남편이 배우 김진근이며, 그의 누나가 영화배우 김진아다. 김진아는 라디오스타에까지 나왔는데 어느 날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김진규다.

서울의 지붕 밑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주 선명한 꿈. 하지만 선명한 꿈도 결국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신영균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꿈처럼 사라졌으니까.

https://youtu.be/XxMG1IhCLZY


얼마 전에 끝난 마마 2020에서 방탄의 무대를 보고 세계 아미들이 난리 났다. 재미있는 것은 방탄의 소식은 일본의 예능에서는 매주 다루는데 이상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그 어느 방송에서도 방탄에 대해서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런데 또 일본은 자주 다룬다. 일본은 방탄을 언급하면서 아라시를 대대적으로 띄운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일본에서 자존심이라 불리는 아라시가 FNS 가요제에서 올해 마지막 무대를 가진 것을 보고 많은 일본인들이 실망과 충격에 빠졌다. 춤은 학예회 수준에 노래마저 립싱크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자막으로는 라이브라고 했지만 입모양이 맞지 않았다. 급하게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그 영상을 보던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들과 패널들의 당황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 전날 일본에서 방탄의 무대를 본 일본인들은 아라시가 방탄만큼은 아니라도 그 반은 해 줄거라 악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방탄의 이번 마마 2020의 무대를 보면 블랙스완에서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방탄이들이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는데 정말 무대바닥에는 물이 있었고 그 위에서 백조들이 날아다니듯 춤을 선보였다. 봐야 한다. 보면 알 수 있다. 보면 왜 대단한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무용수들이 물이 갈라지는 퍼포먼스는 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가 싶더니, 거기에 카메라가 슬로우로 촬영을 한 것이 아니라 춤을 한 부분 슬로우로 추는데 정말 환호가 절로 나왔다. 그저 영화 한 편이 아닌가.


그리고 미국 실시간으로 반응이 엄청났던 제이홉의 그 춤. 다이너마이터의 중간 부분에 방탄이들이 마이클 잭슨을 오마주 한다. 호비가 들고나온 저 모자는 뭐지? 하다가 그만 호비의 춤사위에 정말 마이클 잭슨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았다.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넘어질 듯하면서 올곧은 동작은 가히 최고 중의 최고였다. 제이홉이 마이클 잭슨의 모자를 쓰고 있다가 넘어질 듯 비켜가면서 모자를 던질 때는 짜릿하다.


영상을 본 마이클 잭슨의 가족인 조카 타지 잭슨이 트위터에 방탄에게 삼촌을 오마주 해줘서 고맙고 놀랍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그 영상을 지켜보던 많은 팬들의 리액션이 재미있고 놀랍다. 블랙스완을 시작으로 온, 라이프 고즈 온, 다이너마이트까지 대략 20여분 정도 죽 이어지는 영상을 보면 가슴을 터지게 하는 중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외국 아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https://youtu.be/eB-yibko0dk


마지막으로 노민우와 아야세 하루카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식이 일본의 한 매체를 통해 전해졌고 도쿄올림픽 이후에 결혼할 것이라는 기사도 났다. 말 그대로 노민우는 한국의 배우이고 아야세 하루카는 일본의 배우다. 그런데 일본에서 난리 났다는 것이다. 아야세 하루카는 일본의 국민적인 배우라서 누구나 다 아는 배우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사람도 '호타루의 빛'을 통해서 아야세 하루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노민우는 어쩐지 좀 뒤처진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노민우는 트랙스에서 드럼을 칠 때 비주얼과 실력을 보고 이건 마치 만화에서 그대로 뛰쳐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뭐랄까 얼굴이 원빈보다 더 조각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반인과는 어울리지 못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잔뜩 달고 있다. 노민우는 자신의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비욘세, 마이클 잭슨처럼 노민우의 어머니가 작정하고 노민우를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을 시킨 것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노민우 회사의 수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지만 실력이나 외모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너무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왜 그런지 배우의 길은 순탄지 않은 것 같다) 입대를 했고, 제대를 해서 일본 활동을 하다가 아야세 하루카를 만나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일본의 한 매체에서 아야세 하루카를 쫓아서 기사를 터트렸는데 한국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반면에 일본에서는 꽤 회자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열애설을 부인하고 있다. 근래에 '호타루의 빛'이 재방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다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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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0-12-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TS 영상 고마워요. 넘 재밌었어요.^^

교관 2020-12-20 12:40   좋아요 0 | URL
방탄보유국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분 좋네요 ㅎㅎ
 


내 주위 모두가 두부와 목살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좋아하지만 나는 된장국을 더 좋아한다. 된장국에 두부 정도는 괜찮지만 고기는 별로다. 된장국에 고기가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형이상학적인 된장국에서 멀어지게 된다. 시래기와 된장만으로 된 뜨거운 된장국을 마시고 나면 시원한 바다의 맛도 나고 실루엣이 펼쳐진 들판의 탁 트이는 기분도 든다. 그렇다고 하지만 고기가 있으면 넣어서 된장국을 먹기도 한다. 


된장국은 된장과 한없이 데쳐지고 데쳐진 배추가 입 안에서 허물어지는 된장국이 가히 최고다. 뜨겁게 해서 호로록 마시는 된장국, 그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된장국이다. 


꼭 겨울에 어울릴 필요는 없지만 겨울에는 역시 된장국이다. 된장찌개는 더운 날에 먹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지만 된장국은 겨울에, 길거리 리어카의 어묵 국물처럼 후루룩 하며 속을 한 번에 데워주는 게 겨울에 딱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된장찌개와는 멀어지고 된장국과 친밀하게 지낸다. 된장찌개와 된장국은 무슨 차이가 나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크다. 찌개와 국은 글자부터 완전히 다르니까. 


짜장면과 간짜장 정도의 차이일까. 된장찌개가 간짜장이고 된장국은 짜장면이라면 그냥 짜장면이 간짜장보다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된장국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푹 데쳐진 시래기다. 시래기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그래, 이 추운 날에도 괜찮아, 그러니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위로가 된다.  


겨울에 이렇게 된장국을 찾는 이유는 지금(도 그렇지만) 보다 더 내세울 것 없고 무척 힘들었던 시기에 추운 밤에도 지새워야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오들오들 떨면서 작업을 할 때 보온병에 담아온 된장국을 호로록 거리며 냉철한 추위를 이겨냈다. 분명 오늘 밤 안으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거래하는 곳이 사라질 것 같은데 보온병의 된장국이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 겨울에 커피를 그렇게 마시면서 작업을 했다면 몸에 무리가 왔을지도 모르고 술이라면 작업을 하다가 내팽개치고 그대로 달아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된장국은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심리적인 안정은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약해질 때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 불안정한 기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처럼 불안을 잔뜩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이라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문제다. 된장국 정도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은 덜 불행하게 죽 이어질 수 있다. 뜨거운 된장국을 한 그릇 그대로 몸에 넣어서 속이 뜨거워졌다면 이제는 밥을 말아서 위로를 받을 차례다. 된장국은 그런 존재니까. 우리 삶에서 위로를 주는 것들은 된장국처럼 늘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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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0-12-19 13:06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들은 가까이 있었네요 ㅎㅎ
 

나는 동물을 인간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동물이라고 해봐야 개와 고양이로 축소되지만 유순한 눈동자의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개냐, 고양이냐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참 힘겹지만, 굳이 골라야 한다면 그래도 나는 개 쪽이다. 개들은 오랫동안 키웠고 개와 교감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버려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죽을 때까지 키웠다. 한 마리는 18년 동안 키웠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주워올 당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할 수 없지 뭐, 하는 심정으로 데리고 와서 키우다 보니 11년을 같이 살게 되었다. 물론 키우는 동안 돈이 많이 들었지만 돈이 들어간 것에 비해 그들에게 받은 행복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어서 후회는 없다.

 

고양이가 물수제비 같은 느긋함과 자유함이 있다면 개는 몰아치는 개울물처럼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한 번 정을 준 주인에게는 죽음이 덮칠 때까지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개보다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고양이는 신비스러운 면모가 많아서 인지 고양이에 대한 글이 개에 대한 글보다는 더 많은 것 같다.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봐도 그렇고, 김영하 작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하루키 역시 그렇다.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고 개를 좀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양이와 나와의 일정한 간격과 좁혀졌던 거리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는 버려진 개가 그냥 다니고 버려진 개들이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에 비해 요즘은 그런 개들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으로 볕이 드는 곳에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고 누워 졸거나 햇빛을 받는 광경을 볼 수 있다.

 

1.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는 대체로 사람이 다가가면 멀리 가버린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나에게 다가온 몇몇의 고양이가 기억이 난다. 첫 번째로 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난 고양이 말콤이라는 녀석이다. 이름은 그냥 내가 멋대로 부른다. 말콤은 안타깝고 기묘한 면이 많은 녀석인데 잘 보면 뒷다리 한쪽이 없다. 그래서 안타까운데 내가 부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갸릉거리며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공원에 나와있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사람들 보면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나를 보더니 그대로 팔을 활짝 펴고 달려오는 연인처럼 다가와서는 쪼그리고 내 발밑에 자리를 잡고 퍼졌다. 말콤은 유독 내 다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 다리라고 하는 것이 그래도 고양이에게는 인기가 있구나. 사실 이때까지도 말콤이 다리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일어나서 움직일 때 보니 다리가 하나 없었다. 말콤이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서 다리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째서 나에게는 이렇게도 연인처럼 다가와서 몸을 비빌까.


말콤은 앉아서 자신의 얼굴을 긁어야 했지만 다리의 부재 때문인지 공백이 있어서 얼굴을 매몰차게 긁지 못했다. 하지만 말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말콤은 쿨 했다. 나는 가야 했지만 30분이나 앉아서 말콤과 놀았다. 치열한 삶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하나를 내어주고서도 말콤은 능청하게 나를 따랐다.

한 달 후 다시 만난 말콤


그리고 한 달 동안 비슷한 시간에 공원을 찾았지만 말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가 5월로 가장 좋을 날씨를 자랑하는 계절이었다.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말콤은 다시 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나를 보더니 갸릉갸릉 거리더니 벤치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길을 바랐다. 말콤을 쓰다듬고 문질러 주었다. 으레 고양이의 눈은 한 일자로 좁혀지며 기분이 좋은지 졸기도 했다.


죽어야 끝나는 부조리는 말콤을 따라다닐 것이다. 어디를 가든 부조리는 말콤을 괴롭히고 감시하고 끊임없이 바늘이 되어 찌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콤은 개의치 않고 쿨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말콤 역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네 발의 고양이들 속에서 세 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2.

또 마주친 고양이 카오루는 바람의 검심에 나오는 카오루에서 이름을 땄다. 아마도 그때 바람의 검심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닷가에 사는 길고양인데 크기도 작고 다른 길고양이들에게 늘 위협을 당하는 그런 작은 고양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치즈를 먹고 있다가 나에게 다가왔기에 치즈도 먹나? 하며 조금 주었는데 발로 툭툭 건드려보더니 다른 걸 달라는 것이다.

처음 만날 날. 비 안 오는 날



비 오는 날

하지만 고양이는 뭘 먹는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어서 내일 다시 올 테니 내일 다시 와라,라고 말(해봤자)했다. 카오루는 응 그래 알겠어, 라며 그날 헤어졌다. 다음 날은 비가 왔는데 캔으로 된 닭가슴살과 물을 가지고 갔다. 설마 있으려나 했는데 카오루는 어제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여어 카오루 이리 와, 너의 음식을 가져왔어, 이거는 먹을 수 있나. 라며 캔을 따서 이렇게 주고 옆에 물 뚜껑에 물을 부어서 놔두었다. 그랬더니 먹는 것이다. 먹을 때는 건드리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사진도 한 컷 찍을 수 있었다. 다 먹고 났을 때 손등으로 카오루의 등을 슬슬 문질렀더니 나에게 등을 내밀어 주었다. 기특한 녀석.


다시 비 안 오는 날

그 뒤로 나만 보면 저렇게 닭가슴살을 달라고 한다. 그걸 매일 사들고 다니는 건 참 귀찮은 일이고, 또 고양이는 고양이 사료를 먹어야지.

이걸 마지막으로. 이제 사료를 먹도록 해라 카오루야

바닷가에는 덩치가 큰 다른 길고양이도 많고 까마귀가 많다. 비둘기야 고양이를 건드리겠냐마는 덩치 큰 까마귀들은 보기에도 무섭고 날개를 펼치면 겁도 난다. 그런 까마귀들까지 피해 가며 지내야 하니 카오루는 역시 힘겹다. 다니는 자동차들도 피해야 하고. 단지 사람들이 좋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자기 집의 새끼처럼 보살피려고 한다. 카오루도 이곳 카페의 주인(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주인 부부로 고양이가 카페에 들어와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심지어는 손님들도 개의치 않는다, 아주 기분 좋은 카페다)이 잘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3.

그리고 조깅을 하면서 횟집 앞에서 늘 이런 모습으로 보는 양추녀석이다. 횟집에서 주는 사료는 먹지 않고 횟집에서 손님들이 들고 나오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양추의 모습은 만화를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저 자리에 앉아서 졸면서 앞발이 추운지 늘 꼬리로 발을 감싸고 있다. 여름에는 저러지 않는 걸 보면 겨울에는 발이 시려서 그러는가 보다. 아무튼 지나치며 보니 저런 모습이다. 살며시 이렇게 가서 툭 건드리면 그저 눈을 뜨고 어? 뭐야? 물고기는? 이런 제길, 같은 표정을 짓는다.

포즈와 생긴 것부터 재미있는 양추 녀석




4.

이곳은 계단이 있는 작은 공원으로 조깅코스에 넣어서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랑이는 귀찮은지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 꼭 '날은 바야흐로 선탠을 즐기는 날이지? 이런 날은 비타민을 생성시켜야 해' 라며 낮잠을 즐긴다. 이봐, 길고양이라면 사람을 좀 무서워해달라고,라고 하면 '아이구 거참 귀찮아' 하며 몸을 쭈욱 스트레칭을 하며 뒹굴뒹굴한다. 말랑이(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무척 평온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기이한 것은 저 문으로 사람이 나오거나 다른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면 후다닥 하며 풀숲으로 잽싸게 도망가 버리고 만다. 아무래도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옆으로 가면 되게 귀찮아하면서 다른 사람이 오면 아주 날렵해진다. 살짝 기분이 나쁘다.



5.

이 녀석은 아주 작은 녀석으로 여름에 조깅을 한 시간 정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내 신발보다 더 작은 새끼 고양이다. 이 녀석의 이름은 고무. 고무라는 이름은 고무신에서 '신'을 뺀 이름이다. 검정고무신이 생각이 났나? 고무야,라고 부르면 또 온다. 고무 녀석은 경계심이 많고 작은 소리에도 자주 놀란다. 처음 만난 날에 도망을 가지 않기에 그런 녀석이거니 했지만 누군가 가까이 오면 경계를 바짝 하다가 사라진다. 앉아있으면 놀아달라는 건지 배를 보이며 눕기도 하고 앞발로 얼굴을 문지르며 야옹야옹거린다. 고무 녀석은 온몸이 전부 까맣다. 눈도 까만데 이는 새하얗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고무 녀석이 심하게 우는 것이다. 아무래도 배가 너무 고픈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나왔는데 참치 캔 작은 것과 물 한 병을 살 수 있었다. 참치의 기름을 좀 버리고 물을 약간 부어서 고무 녀석에게 내주었고 물병 뚜껑에 물을 받아 옆에 놔주었다. 역시 달려들어 맛있게 참치를 먹었다.


아무래도 마르고, 새끼에다가 자동차들도 휙휙 지나가고, 누군가 먹이도 주지 않으니 나에게 다가와서, 여어 인간 친구 나 배가 많이 고픈데 먹을 것 좀 줘, 건 멸치면 참 좋겠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괜찮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고무 녀석은 그렇게 실컷 배를 채우고는 발바닥을 핥았다. 시간이 지나면 고무 녀석도 뒷다리가 멋진 어른 고양이가 되겠지만 아직 엄마의 품에서 마냥 애교를 떨며 어미 고양이가 잡아 준 작은 쥐를 가지고 놀며 세상을 알아가야 하겠지만 까맣고 작은 고무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무래도 크고 멋진 검은 표범 같은 고양이가 되어 있겠지요.



6.

강변의 조깅코스에 있는 길고양이 녀석이 새끼들을 낳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차례차례, 십시일반으로 고양이 사료를 챙겨 와서 길목에 먹도록 놓아주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예쁜 어린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려 그저 무럭무럭 잘 커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야생의 길고양이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런 따뜻한 손길로 인해 인간과 동물이 소통을 한다.

지구 재난 영화 '그린랜드'에서도 마지막에 새 두 마리가 날아다는 것을 보고 벙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는다. 고작 새 두 마리에게서 인간들은 웃음을 보인다. 사람들은 어린 고양이들을 보며 얘들이 이곳에서 잘 커가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과 교감하는 상상을 하면서 행복해한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운동 중인 아저씨

자전거에 치이지 말고,  배고프다고 윗 도로로 달려들어 로드킬 당하지 말고 열심히 크거라.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어린 고양이들의 먹이를 책임져 주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사람들의 잔혹함에 대해서 나오지만 눈을 돌리면 이렇게도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꽤 흐뭇한 광경이다.



7.

저 녀석들이 커서 이제 강변에서 낚시를 하러 나온 아저씨의 오토바이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타서 던져주는 물고기를 기다린다. 서열이 안 되는 녀석들은 그 밑에서 눈을 감고 추위를 견뎌가며 물고기를 기다린다. 낚시를 하는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양이가 오토바이 주위에 몰려와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으면 한 마리씩 고양이들에게 던져 준다. 그러면 고양이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잽싸게 맞은편의 수풀(6번 사진에서)로 들어가서 맛있게 만찬을 즐긴다.

사진에는 총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8.

마지막으로 거의 몇 개월 동안 내 손을 뿌리치던 길고양이가 나에게 등을 내주던 날이다. 가장 최근의 날로 그날은 추운 날 속에서 밤에도 포근했다. 달리는데 땀이 엄청 흐르는 날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까칠이인데 역시 오늘도 까칠하게 굴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민 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까칠이가 웬일이지. 그리고는 내 손바닥의 냄새를 한 번 맡더니(장갑을 끼고 있다가 벗었다) 다리 사이로 몸을 비볐다.

아아 까칠이의 애정표현이 시작되었다. 나에게서 어떤 친밀한 감정을 느꼈는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야옹야옹하는 소리는 아주 부드러웠고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등을 내밀었다. 인간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없는데 동물과의 거리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이대로 영영 동물들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고픈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벌 것 아닌데 아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까칠이가 나에게 등을 내밀더니 이내 단으로 올라가 얼굴까지 내밀었다. 그날 까칠이는 거의 50미터를 나를 따라왔다. 그날 정말 까칠이를 안고 집으로 가서 키울까 하는 생각이 이만큼 찼었다.

표정은 아주 시리어스 ㅋㅋㅋ


길고양이의 인연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오래전이지만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해오는 날이었다. 그날 집으로 오는데 차에 치여 목숨이 갓 끊어진 고양이가 도로에 있다며 대리기사가 차를 멈추었다. 그래서 내려서 보니 아파트 밑 도로(2차선 도로인데 밤에는 길가에 차를 주차한다. 구청에서도 아침 7시까진가는 주차를 허용하는 그런 도로)의 중간에 고양이가 죽어 있는데 죽은 고양이 주위에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모여있었다. 새벽이라 다행히 오고 가는 차가 드물었지만 저대로 뒀다가는 새끼 고양이들도 전부 차에 치일 것 같았다. 할 수 없이(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를 묻어 준 적이 있었다. 어미를 들었을 때 아직 몸은 뜨뜻했고 창자가 터졌는지 입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다. 그때에는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을 때라 포크 숟가락이 있었다. 그 숟가락으로 저수지 근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 땅을 열심히 파고 묻어 주었다. 술 때문에 새벽에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다니, 하면서 씩씩 거렸던 기억이 있다. 어미를 들었을 때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들에게 술이 취해서 한 소리 했다. 미안하다, 인간들 때문에 엄마도 잃고, 대신 내가 잘 묻어줄게!라고. 뭐 알아듣지는 못했을 테지만.


길고양이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중에 가장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나약해서 어느 날 아무 소리도 없이 차에 치여 그저 길바닥에서 싸늘하게 죽어간다.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길고양이들이 우리와 다를 바 하등 없다. 우리의 존재도 비가 오면 창문에 붙은 빗방울과 같다. 악착같이 창에 붙어있으려고 하지만 무게가 무거워지면 그대로 창에서 떨어지고 만다. 나는 고양이들과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간의 고양이들은 나에게 등을 내밀어 주었다. 마치 괜찮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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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달을 거의 시켜먹지 않는다. 배달앱도 깔려있지 않다. 그래서 불편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집에 있는 시간이 잠자는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음식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집으로 올 때 포장을 해서 들고 온다. 주문을 하고 앉아서 대기하는 게 아니라 조깅을 하러 가면서 주문을 하고 조깅이 끝나면 받아서 오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이 요즘에 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언택트 시대에 배달이라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고, 또 문 앞에 두고 벨만 눌러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준다. 아주 간소한 음식도- 요컨대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해주고, 국수 한 그릇도 배달을 해 준다. 한 그릇은 배달 안 됩니다, 같은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배달앱에 한 번 빠져들면 끊을 수 없다,라고 하기보다 사용을 중지할 수는 없게 된다. 티브이의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예능도 한몫했고 그것이 트렌드이자 요즘의 언택트 시대에 살아가는 당연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일인 거주자는 끼니를 만들어 먹기보다 때우기에 더 가까운데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또 배달보다 더 비싸게 치기 때문에 일인 거주자가 요리를 해 먹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요리를 하고 나면 치울 거리도 많다. 그럴 바에는 배달을 해 먹는 게 시간이나 돈이 적게 든다. 요즘은 배달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맛으로 지켜온 음식점도 배달앱에 등극을 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배달앱을 통해 음식의 조리의 정도도 선택을 할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 또한 지정하여 넣을 수 있기에 당연하게도 비대면 주문방식이 작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흐름에 동참을 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의 작은 스파게티 전문점에서도 주문은 테이블마다 로봇이 찾아가서 받는다. 이런 시대에 배달앱이 없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있다. 


그건 뭐랄까, 무더운 여름에 모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혼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할까. 모두가 정장에 구두를 코디하는데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 것과 흡사할까. 아무튼 폰에 배달앱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나의 폰에는 그것이 없다. 게다가 나는 폰에 깔린 어플이 총 서른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배달을 시켜먹지 않지만 그래도 배달을 해서 먹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바닷가에서다. 그때 배달앱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배달앱으로 바닷가로 배달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가끔 누군가가 내가 사는 바닷가에 눌러 왔을 때 치킨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바닷가에 앉아서 먹으면 뭐든 맛있지만 치킨 역시 맛있다. 해운대에서도 치킨이 가장 맛있는 것 중 하나라고 하던데. 하지만 치킨은 주로 포장을 해서 바닷가에서 먹는다. 배달은 안 되지만 근처에는 예전에 백종원의 삼대 천왕에서 백종원이 방송에 소개한 치킨집도 있다. 이 치킨 집(위의 사진 치킨은 아님)은 아주 오래된 집으로 배달이 없다. 그리고 하루에 정량만 판다. 그래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먹지 못하는 치킨 집이다. 치킨인데 탕수육 같으면서 치킨인 그런 치킨이다. 아무튼 아주 맛있다. 그걸 포장해서 바닷가에 앉아서 먹어도 맛이 난다.


무엇보다 바닷가에서 먹으면 맛있는 것 중에 최고는 짜장면이다. 바닷가에 짜장면집이 있어서 배달을 할 필요 없이 그릇째 들고 밖에서 먹으면 바로 바다이기 때문에 그 맛이 배가 되는데, 실내에 앉아서 먹어도 유리창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방파제가 나오는데 거기서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다가 짜장면을 배달을 시켜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방파제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 것은 쓰레기가 나오기 때문에 별로다. 예전에는 테트라포드에 짜장면 배달 010-XXX-XXXX 같은 번호를 페인트로 써 놓기도 했지만 요즘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방파제가(슬도) 관광지가 되어서 거의 가지 않는다. 


배달앱이 없이도 너무나 잘 지내는 것이 이상해진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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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12-1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의. 시켜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개 산책하는 시간에 미리 주문하고 산책 끝날 때 받아옵니다. 그게 편하더라고요..

교관 2020-12-17 11:51   좋아요 0 | URL
^^ 비슷한 분 발견 ㅎㅎ
 


요즘은 끊었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저녁에는 배철수의 음캠도 듣고 있다. 배철수 음캠을 거의 십 년 넘게 매일 들었는데, 그래서 배철수 음캠에 참여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선물이 없는 배캠에서 선물이 오기도 했다.


 라디오를 다시 들으니 그 세계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변화는 있으나 변함없었다, 참 신기하게도. 4년 만에 다시 라디오를 듣게 되었는데 라디오 속의 오전과 저녁은 세상의 혼잡과 환란과 무관하게 편안하고 평안했다. 그게 마음에 든다. 오전과 저녁의 디제이의 멘트는 꼭 새끼 고양이의 털과 발바닥처럼 부드럽고 헤어지기 싫은 기분이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반응을 받고 커피세트 같은 걸 선물로 바로바로 날려주니까 뭔가 듣기 오그라드는 댓글도 많다. 가령 어떤 노래를 디제이가 틀면 '어머 그 노래 대박 사건, 우리 사무실 전부 떼창으로 따라 불렀답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대박이라고 외쳤어요, 다 미쳤어요'라는 멘트를 읽어주고 커피 선물을 쏜다. 듣고 있으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택을 받을 수 없으니 튀거나 오버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된 요즘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모든 부분이 그렇다는 사실이 재미있으면서 좀 씁쓸하긴 하다.


나는 실시간으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듣지 못했는데 요즘 유튜브로 그걸 들을 수 있어서 왕왕 듣게 된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는 밤 11시에 했기에 시끄럽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다. 그리고 이종환이 어디서 누구의 엽서입니다, 라며 '엽서'를 읽어준다. 엽서는 사연과 이동거리가 길며 기다리는 동안의 두근거림이 있다. 그리고 신청하는 노래 역시 주로 사람의 마음과 온도,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의 이야기를 한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실시간으로는 감상하지 못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듣고 있으면 보브 딜런과 제네시 조플린과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이 던지는 세계에 몸이 희석되는 기분과 흡사하다. 사연을 들어보면 요즘과는 달리 문학적인 표현이 많고 그에 따른 문학을 소개하기도 한다. 릴케가 죽고 못 살았던 루 살로메의 글 한 구절을 엽서에 써 보내고 이종환이 읽어주기도 하고, 클래식도 들려준다. 이종환의 목소리는 그 영역에서 헤리티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종환은 좀 독불장군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방송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음주로 방송을 하는 건 금지되지만 이종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있었던지 술을 마시고 디제이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횡설수설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방송이라는 게 빵구가 나면 아주 큰일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이종환 하면 판피린 물약 같은 판콜에이와도 뗄 수 없다. 항상 손을 뻗는 곳에 한 박스씩 구비를 해두고 한 병씩 꺼내 마셨다고 한다. 판콜에이는 달달하면서 뒷 맛이 주는 기묘함 때문에 한 번 중독이 되면 계속 찾아 마시게 되는 무엇이 있다. 바카스와 다르지만 비슷한, 그래서 한 병을 마시면 초기 감기를 잡고 좋지만 두 병 이상은 무리가 올 수 있다. 이종환은 디제이 맨트가  하나 끝나면 누구야,라고 불러서 판콜에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자주 마셨다고 한다.


이종환은 청취자에게 폭언을 해서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하차하기도 했고 후에 '이종환의 음악살롱'을 했지만 결국 음주방송으로 하차해야 했다. 이종환은 73년에 종로에 음악 감상실 '쉘부르'를 열어서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출신 가수들이 어니언스, 이수만, 허참, 주병진, 남궁옥분, 변진섭 등이다. 실시간이 없었던 그 오래전, 오직 엽서로 청취자들과 소통을 했던 라디오에서 이종환의 목소리는 김중식 시인의 시에서 궤도를 이탈한 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s0MokpD2b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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