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6yVzyZRz7w



좋아요! 히카루 겐지 군에서 치바 유다이 이 녀석 신문물에 점점 눈을 뜨고 아마이 한 타베모노에 점점 살이 붙어 불어터진다. 사오리 집에 얹혀 살면서 티키타카 정말 유치하면서 웃기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타카네노 하나의 차가운 치바 유다이 녀석 살쪄서 뒹굴뒹굴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사오리로 나오는 이토 사이리는 블루아워에서 세상 다 산 탬버린 걸 낫짱으로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일본 코믹 드라마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뭐라 뭐라 말하는데 듣지 않고 있으면 무심한 듯 “젠젠 킷데 나이”하며 허탈해하는 표정이 많이 나온다


예전 연애시대에서 동진과 공준표가 만나서 서로 다른 말하면서 전혀 듣지 않으니 공준표가 동진에게 “이 친구라고 불리는 자식아“라며 내 이야기 좀 들으라고 하고 동진은 공준표 머리를 가리키며 뭐랬더라? 그거 달고 다니는 거, 사람이라고 알리기 위해서 달고 다니지,라고 했나. 아무튼 이런 재미있는 대사가 일본 드라마에는 많다


히카루 겐지는 모노가타리의 인물로 한 마디로 초현실적 존재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가 현실의 세계로 와서 신문물을 접하며 나날이 놀란다. 그러면서 머리 긴 여자만 보면 입을 헤 벌린다. 치바 유다이 녀석 금세 인스타그램 같은 것도 배워서 먹은 것들만 줄줄 올린다


거기에는 가장 좋아하는 파르페 같은 것이 있다. 아마이 한 타베모노에 빠져서 하와이까지 가버리고 사오리가 걱정하는 사이 하와이에서 금발의 미녀들을 사귀고 같이 아마이 한 타베모노를 먹으며 인스타에 올린다


살이 찐 히카루에게 살을 빼자며 운동을 시키는 사오리. 평생 천천히 걷던 히키루는 뛰는 것에 팔짝. 살이 좀 찌면 안 되느냐,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느냐. 저 녀석 전혀 내 말을 듣지 않는군. 다른 방법을 써야지.


히카루를 대하는 사오리가 정말 웃기고 재미있다. 아주 예쁜 동생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고 히카루와 지내는 동안 싸우고 소리 지르고 달래고 하는 동안 정이 드는 가운데 히키루를 찾아온 또 다른 인물 츄죠가 나타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일드 #좋아요히카루겐지군 #치바유다이 #이토사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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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는 기근과 내란으로 아이들의 목숨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서 노래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가수들이 있었다. 보브 딜런이 그랬고 제니스 조플린이 그랬다. 지미 핸드릭스가 그랬고 엘튼 존이 그랬다. 악동에서 벗어난 메시아적인 모습의 존 레넌 역시 그랬다. 우드스탁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는 무저항 운동으로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여들어 자유를 외쳤다.


하 지 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체재라든가 이념 같은 벽은 너무 크고 두터웠다.

(후에 핑크 플로이드가 그 벽을 허무는 노래를 불러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80년대까지 갔지만 세계는 여전한 전쟁과 기근이 이어졌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모타운의 수장 격이었던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이 그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마이클?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마이클과 퀸시 존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위대한 가수 한 사람이 세계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위대한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세계는 분명히 노래로 바뀔 수 있다고 믿고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45명의 팝스타가 퀸시 존스의 말에, 세계를 구하는 일에 동참하라는 말에, 그들은 스케줄을 다 버리고 퀸시 존스의 녹음실로 모여들었다. 그것이 위 아더 월드의 첫 시동이었다. 그들은 굶주린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한 곳에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만만찮았다.

서로 부르려고 하는 파트가 겹치고 엉망이었다. 당시에 팝스타는(지금도) 스포츠 스타보다 더 우월했고 영역이 확실했다. 티타 터너, 브루스 스프링스턴, 스티비 원더, 신디 로퍼 등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와 자존심으로 세계의 자리에 우뚝 섰다. 정말 녹음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아이들을 좋아했던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는 지금 여러분들이 부르는 노래는 세계를 바꿀 것이다. 굶주리고 등이 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다투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며, 단지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파트가 됐던 노래를 불러달라. 그 한 마디에 팝스타들은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이오넬 리치와 스티비 원더의 시작으로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신디 로퍼의 풍부한 음역을 보탰고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의 감성이 위 아더 월드에 녹아들었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이며 우리는 같은 자손입니다, 우리는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니 진심으로 베풀어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구원한 기회입니다.

https://youtu.be/M9BNoNFKCBI

세기의 스타들이 한 곳에 모여 위 아더 월드를 불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위 아더 월드를 듣고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2억 달러를 모금해 아프리카 난민을 도왔다. 노래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노래가 진정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아이티에는 지진으로 해일이 덮쳤다. 아이티는 지진 해일로 수많은 인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보쉬의 지옥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해일은 아이티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퀸시 존스는 25년 만에 다시 한번 위 아더 월드를 재 구성하게 된다. 셀린 디옹을 부르고 나탈리 콜을 불렀다. 카니에 웨스트를 불렀고 악동이었던 져스틴 비버를 부른다.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팝 가수 75명을 불러 모아 아이티의 재건에 도움을 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퀸시 존스는 고민에 휩싸였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던 것이다. 아무리 배치를 해도 마이클 잭슨의 파트는 그 누구도 해 내지 못 하는 것이다. 퀸시 존스는 문을 열고 빛이 한 곳에 비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이클이 누워 자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클을 흔들어 깨웠다.

이봐, 마이클, 푹 잠들어 있는데 정말 미안하네. 이번에 다시 위 아더 월드 아이티를 부르게 되었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의 파트가 비어 있어. 잠시 깨어나서 그 부분을 불러주게. 자네의 목소리는 아이티의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네.

퀸시 존스는 잠들어 있던 마이클 잭슨을 깨워서 위 아더 월드 아이티에 합류시킨다. 그렇게 해서 지구 상의 어벤저스가 탄생해서 아이티의 아이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 라이오넬 리치가 첫 시작을 알렸던 예전에 비해 조금은 불안하지만 자신감으로 져스틴 비버가 스타트를 끊는다. 신디 로퍼의 풍부했던 음역은 셀린 디옹의 폭발하는 음역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75명의 팝 가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위 아더 월드를 부른다. 특히 아이티 가수는 정말 혼을 다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뒤에는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받쳐준다.


https://youtu.be/Glny4jSciVI

또 한 번 위 아더 월드 아이티를 부르기 위해 팝스타들이 한 곳에 모였다


혹자는 노래가 그저 노래 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중간에는 잠들어 있다가 아이들을 위해 깨어나서 노래를 부른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그는 진정 아이들을 좋아했고 사랑했다는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위대한 노래가 있다면 바로 위 아더 월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 92년도에 신해철이 작사, 작곡한 ‘내일은 늦으리’가 대한민국의 가장 잘 나가는 가수들의 입으로 불렸다. 봄여름 가을 겨울로 시작을 해서 신해철이 두 번째로, 윤상이 이어받고 유영석으로 이어지고 신성우, 김종서, 신승훈, 이승환, 서태지와 아이들, 장호일이 내일은 늦으리를 외쳤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 주오,라고 떼창을 했다. 쉽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던 스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해서, 미래의 아이들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의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늦으리는 93, 94, 95까지 환경콘서트로 이어져 슈퍼스타들이 한 곳에서 힘을 주는 위대한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mtqP38-nq9A

미래의 아이들을 걱정해서 환경을 노래하기 위해 한국의 스타들도 한 곳에 모였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엠에프로 많은 가장이 무너졌던 99년에 다시 슈퍼스타들이 모여 ‘하나 되어’를 불렀다. 이제 그 누구도 탓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을 다시 생각해, 라는 가사가 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강해지는 믿음이 있기에 다시 시작해보자고, 우린 해낼 수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스타들은 노래를 불렀다. 무너져갈 때 노래는 옆에서 기운을 내라고 말해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우린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 내 왔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노래가 말하고 있다. 


https://youtu.be/ADct5rBI1Ng

스타들이 모두 하나 되어를 외쳤다. 그건 분명 힘이 되는 노래다


이제 슈퍼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다. 그만큼 감염병은 무서워진 것이다. 그래도 가수들이 예전처럼 힘을 내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모이지 않아도 된다. 아니 모이면 안 된다. 각자 녹음실이나 집에서 노래를 죽 불러서 그걸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로 보내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이상민이 하고 예전 가수들, 양희은과 송창식도 참여를 하고 중견가수들, 신승훈, 이승환, 김종서, 엄정화, 박기영 등 그리고 최근의 가수들 임영웅, 영탁, 홍자, 송가은, 에이프릴, 방탄소년단, 잇지도 노래를 불러 파트별로 편집을 해서 의료진들에게, 사람들에게 힘을 내고 이겨낼 수 있다고 2020 버전 '하나 되어' 노래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


감염병의 확산으로 모두가 불안하고 미래를 알 수 없다. 작금의 사태에 그 누구를 탓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멍청한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피해는 욕을 할 정도의 피해가 아니라 생명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힘을 내고 이 사태를 버텨냈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다. 사람들이 힘들 때 스타들의 기운 내라는 노래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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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kSyE0qidyI


영화 강철비는 웹툰 스틸레인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스틸레인의 글도 양우석이 썼으니 영화로의 변화도 자연스럽다. 현실을 무시하고 만든 국가 간의 전쟁영화는 보는 동안 재미있을 수 있다. 아니 재미있다. 국뽕이라도, 국뽕이니까 재미있다. 전쟁영화나 전쟁소설은 전부 자기네 나라가 이기는 설정이다. 그렇지 않은 현실을 무시한 전쟁영화는 없다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척 무시하고 쓴 전쟁소설, 요컨대 김진명의 소설들은 참 재미있었다. 강철비 1이 그래도 재미있었던 건 현실을 무시하고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최고 존엄이 총상을 입어 정우성에게 들려 한국으로 온 것도 그렇고, 원작인 스틸레인의 뜻은 탱크 같은 전쟁 군용 무기를 일컫는다. 탱크처럼 생겼는데 미사일을 여러 발 쏘는 탱크의 별명을 스틸레인이라 한다. 스틸레인은 확산탄을 쏘는데 고공에서 폭발하면서 수십 개의 탄환이 되고 다시 폭발하면서 강철 조각이 되어 마치 비처럼 쏟아져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간다. 강철비 1에서 엄청난 북한 주민을 이 스틸레인으로 죽였다. 아주 잔인한 장면이었다

어떻든 현실을 무시한, 북한이 미국의 MLRS를 탈취하고 핵을 일본에 쏘는 전개 같은 것들이 막 나갔지만 강철비 1은 긴장과 재미를 거머쥐었다

그리하여 다시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 2를 만들었다. 강철비 2도 나쁘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옷빨이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 등장하며 살 빠진 북한 지도자가 나오며 트럼프를 상기하는 미국 대통령도 나오며 물론 국뽕에 취하게 되는 영화다

국뽕에 완전히 취해 재미있었을 뻔했는데 영화는 현재 정치적인 현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버렸다. 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잠수함 장면은 정말 잘 만들었지만 내용에 있어서 너무 작금의 현실에 끼워 맞추려 억지를 부렸다

북한의 조선사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모든 북한 지도자를 섞은 모습이다. 조선사의 모습처럼 정치적인 현실을 염두에 두지 말고 현실에서 좀 벗어났지만 시원시원하게 만들었어도 될 법 했던 영화. 하지만 나는 재미있게 봤다. 희망적인 포인트도 있고 일본 잠수함에게서 대통령을 구한 한국의 잠수함들이 여기는 한국의 영해이니 나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은 찡하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대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일 없슴다

#강철비2 #영화이야기 #근데 #연기들너무잘하지않니 #특히스무트대통령 #대통형같은스무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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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9-26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올해 가장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교관 2020-09-27 11:49   좋아요 1 | URL
저도 꽤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ㅎㅎ

NamGiKim 2020-09-27 11:57   좋아요 0 | URL
좀따가 영화 리뷰 올릴 예정
 



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루키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 글에서 하루키는 독자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사진에서처럼 독자는 취직시험에서 자기 자신을 원고지 4매로 설명하라는 말에 자신은 도저히 자신을 원고지 4매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글이었다. 일본은 원고지가 한국처럼 200자 원고지가 아니라 그것보다 긴 400자 원고지다.

그에 대해 하루키도 자신을 원고지 4매로 설명을 하는 건 힘들다고 했다. 아무리 소설가라고 해도 자신을 그렇게 길게 죽 설명을 하기는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니 굴튀김에 대해서 적다 보면 원고지 4매로 설명이 가능하며 그동안에 자신과 굴튀김의 거리감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굴튀김을 적는 동안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굴튀김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적을 때 주로 음식에 관한, 그러니까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제외하고 집에서 내가 만들어서 또는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서 먹는 음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는 동안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컨대 예전에는 파스타를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만드는 동안에는 콜먼 호킨스의 음악을 곧잘 틀어놓곤 했다. 계속 그러다 보니 관성이 붙어서 파스타를 해 먹을 때는 콜먼 호킨스의 음악을 꼭 틀게 된다. 나는 딱히 재즈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파스타와 콜먼 호킨스는 나라고 하는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어떤 무엇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콜먼 호킨스가 맹렬하게 활동했던 시기의 재즈를 또 찾아보게 된다. 그런 나를 발견한다.

분명 나에게는 있어봤자 쓸모없을 약간의 집착성이나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나의 행동이 '나'라고 인간을 결정짓는 여러 요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매사에 귀찮은 것들을 아주 싫어하고 귀찮음 때문에 먼 곳에 상을 받으러 가는 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게으르다. 게으름은 확실하게 인간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철저했던 스티브 잡스도 게으른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앉아서 저기에 있는 티브이까지 가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결국 리모컨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귀찮아서 식재료를 구입하러 가기가 마뜩잖을 때는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해 놓고 보면 보기에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맛도 그럴싸하다. 냉장고에는 일회용 사골곰탕이 몇 봉지 있고 만두가 있고 김치가 있고 먹다 남은 두부가 있다. 사골국을 끓이고 그 안에 열거한 것들을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잡탕 만둣국이 된다. 

이런 맛일 줄은 몰랐다. 데워진 두부가 사골을 빨아들여 스펀지처럼 국물을 죽 짜내는가 싶더니 만두가 터지면서 미묘한 향이 입안에 축제처럼 퍼진다. 허기질 때 잡탕 만둣국은 행복이다. 이럴 때 가장 행복하다. 밥 위에 탕에서 건져낸 김치를 올려 국물을 조금 따른 다음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먹는다. 누군가는 이런 행복은 금방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이런 짧고 한정된 행복이 모이고 쌓여 인간사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인간사에 나라는 인간이 속해 있다. 그렇지만 자기를 정의하면서 음식을 말하는 것이 정당한지 어떤지 알 수는 없다. 

밥공기의 밥을 반쯤 먹은 다음 남은 반은 냄비에 그대로 말아 버린다. 숟가락으로 뜨거운 잡탕 만둣국에 들어간 밥을 떠먹는다. 한 숟가락 안에 내가 알고 있는 식감이 공존하고 있다. 김치와 만두와 두부는 각각의 음식이지만 이 순간만은 한 곳에서 내 입으로 들어와 공존이라는 묘한 체험을 가진다. 먹다 보면 조깅을 할 때처럼 땀이 난다. 잡탕 만둣국은 그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잡탕 만둣국도 개인적인 나의 반영인 것이다. 그렇게 잡탕 만둣국을 통해서 나를, 자기를 알아간다. 그리고 소설을 쓴다면 이제부터 소설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한 숟가락을 떴을 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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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은 쌉싸름한 맛이 날수록 맛있다. 쌉싸름한 맛은 쓴맛에 가깝다. 그러니까 도토리묵은 쓴맛이 나면 좋다. 쓴맛이라 하면 어린 시절 가루약을 먹고 나서 느꼈던 쓴맛이 강해서 쓴맛을 일정기간 거부하게 되는데 도토리묵에서 쌉싸름한 쓴맛이 빠지면 이상하게 맹숭맹숭하다. 도토리 묵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복잡하다. 도토리묵에서 쌉싸름한 맛이 많이 나려면 도토리가 들어가는 비중이 높고 많아야 한다.


도토리묵은 양념장에 찍어 먹어서 쌉싸름한 맛과 간장의 맛이 어우러진다. 만약 도토리묵만 야금야금 먹게 되면 쓴맛이 많이 나는데 이대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많이 먹을 수는 없다.


신맛이 좋아서 뜨겁고 맑은 국에는 식초를 타서 먹게 된다. 국물을 넘기고 나면 따라오는 식초의 그 신맛이 좋다. 김치도 신김치가 더 좋다는 사람이 있다. 신김치의 그 신맛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라면을 끓일 때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끓이면 국물에서 신맛이 난다. 토마토에서 나오는 그 신맛이 라면에 스며든다. 라면이 맛이 한층 오른다. 짬뽕에도 토마토를 넣어서 먹으면 그렇다. 컵라면을 끓여서 넣어서 먹어도 마찬가지다.


아 미치겠다. 어쩌다가 쓴맛, 신맛에 빠져버린 걸까. 이 두 가지를 빼고도 단맛, 매운맛, 짠맛이 있는데 어째서 단맛 같은 것에 빠지지 않고 쓴맛이라니. 도대체 쓴맛에 길들여져서 도토리묵은 쌉싸름한 맛이 많이 나는 것을 찾아서 먹고 있다.


단맛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달면 머리가 아프다. 달다 앞에 ‘너무'가 붙으면 늘 그렇게 된다. 이전에는 ‘너무'가 부정적으로 쓰인 부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라고 쓰게 되면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너무 밝고, 너무 깊고, 너무 크고, 너무 높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도 그렇다. 지금 이전의 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 아름다운 미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아름답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 여자들도 있다.


세상을 알면(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알수록 기이하고 알 수 없다. 도대체 쓴맛과 신맛에 길들여져 라면을 끓일 때 토마토를 집어넣고 있는 나를 보면 이게 뭔가 하면서도 다 끓이고 나면 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식초를 넣고 있다.


쓴맛과 신맛에 길들여지면 좋은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집안의 생활구조가 아이들 위주가 된다. 그러면 반찬이나 밥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위주로 식탁이 차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루는 돈가스, 하루는 파스타, 하루는 뭐뭐. 그럴 때 도토리묵을 사 와서 딱 꺼내놓으면, 그것도 도토리가 아주 많이 가미된 도토리묵을 식탁 위에 놓으면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럴 때 냠냠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 위주로 식탁이 차려진다고 불평하지 않아도 되고 나도 좋고 누이도 좋다. 도토리묵에 밥을 비벼 먹어보자.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구석에서 먹고 싶은 묵 비빔밥을 야금야금 먹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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