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에 두부를 넣어서 끓여 먹는 것을 ‘연포탕’이라 한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뭐야?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확실하게 두부를 넣은 탕이 연포탕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 ‘아침에 초계 군수가 연포탕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지만...’라는 부분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먹었다는 연포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포탕이 아니라 두부를 넣은 탕이다.


조선시대 가정생활서 ‘산림경제’에서 연포탕은 두부를 잘게 썰어 한 꼬치에 서너 개 꽂아 흰 새우젓국과 꿀을 타서 그릇에 끓이되, 배를 그 위에 덮어 소금물이 스며 나오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연포탕’이란 오래전에는 두붓국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먹었다는 연포탕 역시 두부탕에 가깝다. 낙지가 아닌 쇠고기가 들어가고 주재료가 여러 갈래로 썬 두부이다. 해서 감칠맛은 배제되어 있고 두부의 향과 맛이 풍부했다고 전해진다.


어렵게 찾을 필요 없이 네이버에 ‘연포탕’을 쳐 보면 지식백과에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정의는 두부를 지져 닭고기, 표고, 석이, 다시마 같은 재료들과 함께 끓여 여기에 가루즙을 풀어 넣어서 부드럽게 만든 두붓국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두부를 먹기 시작한 지가 놀랍게도 고려 시대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 문헌인 ‘목인집’을 보면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 국만 먹다 보니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성긴 이도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늙은 몸을 장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라고 쓰여 있다.


후에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칙서가 이르거든 특히 두부 만드는 솜씨를 익히 보내주기 바라오’까지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두부는 이렇게 역사가 깊고 맛도 깊었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은 원래 두부가 들어간 국을 칭하는 것이다.


낙지를 넣어서 끓인 연포탕은 그 앞에 낙지라고 넣어줘야 한다. 낙지 연포탕이 정확한 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두부를 넣어서 끓인 두붓국은 속을 든든하게 해 준다. 나처럼 위가 튼튼하지 못해도 먹기 좋은 음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촌의 전통시장에 손두부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출근하면서 들러 한 모를 구입하여 소중하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저녁에 데워서 뜨겁게 한모 먹을 수 있었다. 맛이 정말 좋다. 간장도 뭣도 필요 없이 두부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으로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져서 그런 두부의 맛을 보기는 힘들다.



두부 하면 하루키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두부를 늘 찬양했다. 한 에세이에서 ‘최근에는 맛있는 두부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동차 수출도 좋지만 맛있는 두부를 없애는 국가구조는 본질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에세이가 지금으로부터 25, 6년 전의 칼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의 두부는 최악일까. 아니다. 현재 한국의 두부를 먹다가 일본으로 가서 먹어보면 그동안 내가 먹은 두부가 정녕 두부였는지 알게 된다.


하루키는 두부를 맛있게 먹는 법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우선 제대로 된 두부 가게에서 사야 한다. 슈퍼는 안 된다.
둘째, 사 가지고 오면 곧바로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셋째, 그날 안에 먹어야 한다. 간장이나 양념 같은 것은 일체 치지 않고 그냥 새하얀, 매끈매끈한 걸 꿀꺽하고 먹어치우는 것이다.


두부는 새벽에 오는 음식으로 절대 비싼 음식이 아니다. 손두부 전문점에서 두부를 코스식으로 만들어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음식을 팔고 있다. 이건 정말 반칙이다. 두부는 기껏해야 두부일 터인데. 두부는 그저 두부다.


두부의 본연의 자세는 두발로 딱 버티고 서서 맛으로 맞서는 맛.
그것이 두부 본연의 자세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두부를, 맛있는 두부를 밥상에서 만나면 즐겁기 그지없다.


요즘은 두부에 두부 맛 이외의 맛이 들어왔다

또 이렇게 요즘의 또 다른 두부는 맛으로만 보자면 더 맛있어졌다. 두부만 가지는 담백한 맛에서 벗어나 좀 더 맛이 가미되어서 누구나 두부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확실히 맛은 더 나아졌지만 단단하게 두부의 담백한 맛 만을 가지고 있던 두부가 그립기도 하다.


두부는 만두와 함께 라면에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두부는 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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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좋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말 하기 이전에 비가 와도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나온다. 운동이라고 정의하기는 뭣하지만 우산을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평소처럼 아예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과 다를 바 없이 꾸준하게 나오는 사람들은 늘 나온다.


비가 살짝살짝 오거나, 비가 어느 정도 오면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강변으로 나온다. 하지만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사람들이 없다. 정말 없다. 장대비가 쏴아 쏟아지는 날에 조깅코스에 있는, 중간중간의 천막이 있는 곳에 가면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람이 없다. 사람만 없으면 상관없지만 비가 와도 날아다니던 갈매기나 여타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쏟아지는 비속에서 길고양이나 새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도심지에서  혼자라고 느끼고 싶다면 장대비가 오는 날 야외의 운동하는 곳에 가면 온전히 ‘나 홀로’라는 기이한 감각에 사로 잡힌다. 강변의 저쪽에도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덩그마니 있게 되면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적으로 고독은 즐기고 외로움은 견디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 즐기는 것도, 견디는 것도 힘들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비가 천막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고 크게 들린다. 비가 아주 세차게 오면 좋은 건 이렇게 세상에서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서서 크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한국인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나도 한국인이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래방에 가는 건 또 별로다.


그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가 운전을 할 때뿐이다. 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지는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눈치를 볼 것 없다. 크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산 정상에 올라 고함을 지른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서 가수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프로가 되면 이것저것 많이 따져야 하지만.




완전히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두발로 딱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모른다.
비가 내려도 새는 난다. 저건 먼지가 아니라 새다.
자전거도 달리고
걷기를 포기할 순 없지



노래 따위 늘 흥얼거리지만 입 속에서 흥얼거리는 것보다 큰 소리로 내지르듯 노래를 부르고 나면 기분이 굉장하다. 겨울과 여름을 제외하고 밖에 있어도 괜찮을 날씨에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일행과 노래를 부른다. 바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묘미다. 그때는 사람들이 간혹 지나가기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술도 마셨고 지나치는 사람도 누군가 바닷가에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른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시를 음에 맞춰서 소리를 낸다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시에 음을 붙인 것이니까. 그래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실컷 노래를 불러본다. 책을 읽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데 어떤 노래를 부를 때는 눈물이 난다. 노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손가락만 한 아이팟 셔플에 노래를 잔뜩 욱여넣고 비가 세차게 내리면 강변으로 간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인 것 같은 강변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헤드의 노래도 부르고, 본 조비의 노래도 부른다. 이승열의 노래도 부르고 나윤권의 노래도 부른다. 팔 굽혀 펴기를 몇 회 하고 노래를 부른다. 스쿼트를 몇 번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장대비가 와도 복장을 갖춰 입고 조깅코스로 나가는 것이다. 일단 저기까지 가려면 2, 3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적당히 비가 오면 늘 나오는 아버님들은 꾸준하게 나와서 운동을 즐긴다.


땀이 이렇게 흐른다


이제 이렇게 다리에서 땀이 나오는 날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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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왜 어제 한잔하고 내가 뽀뽀하자는데 피했어? 그러자 남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요즘 코로나가 유행이잖아, 조심해야지.라는 웃픈 사연이 있었다. 남편은 그렇게 질문을 하는 아내에게 웃으며 여보, 왜 그렇게 웃어? 무섭잖아. 


공포란 무엇일까. 컨저링처럼 집 나간 영혼에 빙의되어 악령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공포일까.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 당신의 지금 마음 상태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해서 듣는 대답으로 심리를 다 알 수 있을까.


요즘 같은 때에 공포는 (어떤 무엇에) 분노한 사람들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분노한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마음일까. 어떤 식으로 분노하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뇌가 분노하게 작용을 하는 것일까.


뉴스나 토론하는 프로그램에서 많이들 다루고 있지만 사람들의 분노는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거나 무시를 당했다고 순간적으로 느낄 때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만약 위에서 아내가 무시를 당했다고 순간적으로 느끼면 남편은 그날 사망인 것이다. 남편은 그걸 캐치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심리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왜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하는 건물의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러 내려가면 주차공간이 텅텅 비어있음에도 차가 다니는 통로 길목에 주차를 하루 종일 해 놓은 사람들이 있다. 딱 한층만 더 내려가면 텅 비어있는 주차공간이 가득한데 어째서 사람들을 기를 쓰고 주차를 하지 말라고 친절하게 표시까지 붙여놓은 통로에 이렇게 주차를 해 놓는 것일까.



중력이 너무 싫어서 조금이라도 지상에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싶어서였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서일까. 이들의 심리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잠깐 건물에 볼일을 보기 위해 정차를 해 놓은 경우라면 이해를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통로에 주차를 해 놓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주차를 해 놓는다. 마치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좀 지난 일이지만 나는 지하주차장에서 공포를 목격했다. 통로에 주차를 해 놓은 자동차 때문에 이삿짐센터 트럭이 지하주차장에 왔다가 턴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트럭 운전사는 통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주에게 전화를 해서 차를 빼 달라고 했다. 하지만 차주는 운전을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욕설이 전화상으로 오가고 차주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트럭 운전사와 마주한 차주의 눈빛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눈빛에 살기를 품고 있었다. 분노하고 있었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다가 결국 사람을 때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서워서 그 자리를 피했다. 결국 이런 일까지 일어나게 한 상황을 만든 차주는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에 악착같이 차를 주차시켜 놓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아슬아슬하지만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왜 저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5분 이상 공회전을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도 30분씩 에어컨을 틀어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며 이탄화탄소를 콸콸 내보내는 사람. 통로에서는 오토바이나 자전거의 탑승 금지라고 되어 있지만 그대로 타고 다니다 누군가와 부딪히는 사람. 야외의 운동 구역에서 모두가 사용하는 식수대에서 일회용 종이컵으로 물을 마신 다음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그대로 식수대에 버리고 가는 사람. 

코로나 시대에 그런 사람들은 더 늘어났다. 감염 병상에서 과일을 달라, 짜장면을 달라고 말하는 사람. 동선을 숨기며 끝까지 말하지 않는 사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최초에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의사가 타인에게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생활을 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사람들이 주로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심리학을 전공한 분들, 

심리학자님들 도대체 이런 사람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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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6yVzyZRz7w



좋아요! 히카루 겐지 군에서 치바 유다이 이 녀석 신문물에 점점 눈을 뜨고 아마이 한 타베모노에 점점 살이 붙어 불어터진다. 사오리 집에 얹혀 살면서 티키타카 정말 유치하면서 웃기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타카네노 하나의 차가운 치바 유다이 녀석 살쪄서 뒹굴뒹굴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사오리로 나오는 이토 사이리는 블루아워에서 세상 다 산 탬버린 걸 낫짱으로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일본 코믹 드라마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뭐라 뭐라 말하는데 듣지 않고 있으면 무심한 듯 “젠젠 킷데 나이”하며 허탈해하는 표정이 많이 나온다


예전 연애시대에서 동진과 공준표가 만나서 서로 다른 말하면서 전혀 듣지 않으니 공준표가 동진에게 “이 친구라고 불리는 자식아“라며 내 이야기 좀 들으라고 하고 동진은 공준표 머리를 가리키며 뭐랬더라? 그거 달고 다니는 거, 사람이라고 알리기 위해서 달고 다니지,라고 했나. 아무튼 이런 재미있는 대사가 일본 드라마에는 많다


히카루 겐지는 모노가타리의 인물로 한 마디로 초현실적 존재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가 현실의 세계로 와서 신문물을 접하며 나날이 놀란다. 그러면서 머리 긴 여자만 보면 입을 헤 벌린다. 치바 유다이 녀석 금세 인스타그램 같은 것도 배워서 먹은 것들만 줄줄 올린다


거기에는 가장 좋아하는 파르페 같은 것이 있다. 아마이 한 타베모노에 빠져서 하와이까지 가버리고 사오리가 걱정하는 사이 하와이에서 금발의 미녀들을 사귀고 같이 아마이 한 타베모노를 먹으며 인스타에 올린다


살이 찐 히카루에게 살을 빼자며 운동을 시키는 사오리. 평생 천천히 걷던 히키루는 뛰는 것에 팔짝. 살이 좀 찌면 안 되느냐,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느냐. 저 녀석 전혀 내 말을 듣지 않는군. 다른 방법을 써야지.


히카루를 대하는 사오리가 정말 웃기고 재미있다. 아주 예쁜 동생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고 히카루와 지내는 동안 싸우고 소리 지르고 달래고 하는 동안 정이 드는 가운데 히키루를 찾아온 또 다른 인물 츄죠가 나타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일드 #좋아요히카루겐지군 #치바유다이 #이토사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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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는 기근과 내란으로 아이들의 목숨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서 노래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가수들이 있었다. 보브 딜런이 그랬고 제니스 조플린이 그랬다. 지미 핸드릭스가 그랬고 엘튼 존이 그랬다. 악동에서 벗어난 메시아적인 모습의 존 레넌 역시 그랬다. 우드스탁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는 무저항 운동으로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여들어 자유를 외쳤다.


하 지 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체재라든가 이념 같은 벽은 너무 크고 두터웠다.

(후에 핑크 플로이드가 그 벽을 허무는 노래를 불러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80년대까지 갔지만 세계는 여전한 전쟁과 기근이 이어졌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모타운의 수장 격이었던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이 그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마이클?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마이클과 퀸시 존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위대한 가수 한 사람이 세계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위대한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세계는 분명히 노래로 바뀔 수 있다고 믿고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45명의 팝스타가 퀸시 존스의 말에, 세계를 구하는 일에 동참하라는 말에, 그들은 스케줄을 다 버리고 퀸시 존스의 녹음실로 모여들었다. 그것이 위 아더 월드의 첫 시동이었다. 그들은 굶주린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한 곳에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만만찮았다.

서로 부르려고 하는 파트가 겹치고 엉망이었다. 당시에 팝스타는(지금도) 스포츠 스타보다 더 우월했고 영역이 확실했다. 티타 터너, 브루스 스프링스턴, 스티비 원더, 신디 로퍼 등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와 자존심으로 세계의 자리에 우뚝 섰다. 정말 녹음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아이들을 좋아했던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는 지금 여러분들이 부르는 노래는 세계를 바꿀 것이다. 굶주리고 등이 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다투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며, 단지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파트가 됐던 노래를 불러달라. 그 한 마디에 팝스타들은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이오넬 리치와 스티비 원더의 시작으로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신디 로퍼의 풍부한 음역을 보탰고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의 감성이 위 아더 월드에 녹아들었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이며 우리는 같은 자손입니다, 우리는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니 진심으로 베풀어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구원한 기회입니다.

https://youtu.be/M9BNoNFKCBI

세기의 스타들이 한 곳에 모여 위 아더 월드를 불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위 아더 월드를 듣고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2억 달러를 모금해 아프리카 난민을 도왔다. 노래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노래가 진정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아이티에는 지진으로 해일이 덮쳤다. 아이티는 지진 해일로 수많은 인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보쉬의 지옥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해일은 아이티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퀸시 존스는 25년 만에 다시 한번 위 아더 월드를 재 구성하게 된다. 셀린 디옹을 부르고 나탈리 콜을 불렀다. 카니에 웨스트를 불렀고 악동이었던 져스틴 비버를 부른다.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팝 가수 75명을 불러 모아 아이티의 재건에 도움을 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퀸시 존스는 고민에 휩싸였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던 것이다. 아무리 배치를 해도 마이클 잭슨의 파트는 그 누구도 해 내지 못 하는 것이다. 퀸시 존스는 문을 열고 빛이 한 곳에 비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이클이 누워 자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클을 흔들어 깨웠다.

이봐, 마이클, 푹 잠들어 있는데 정말 미안하네. 이번에 다시 위 아더 월드 아이티를 부르게 되었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의 파트가 비어 있어. 잠시 깨어나서 그 부분을 불러주게. 자네의 목소리는 아이티의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네.

퀸시 존스는 잠들어 있던 마이클 잭슨을 깨워서 위 아더 월드 아이티에 합류시킨다. 그렇게 해서 지구 상의 어벤저스가 탄생해서 아이티의 아이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 라이오넬 리치가 첫 시작을 알렸던 예전에 비해 조금은 불안하지만 자신감으로 져스틴 비버가 스타트를 끊는다. 신디 로퍼의 풍부했던 음역은 셀린 디옹의 폭발하는 음역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75명의 팝 가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위 아더 월드를 부른다. 특히 아이티 가수는 정말 혼을 다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뒤에는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받쳐준다.


https://youtu.be/Glny4jSciVI

또 한 번 위 아더 월드 아이티를 부르기 위해 팝스타들이 한 곳에 모였다


혹자는 노래가 그저 노래 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중간에는 잠들어 있다가 아이들을 위해 깨어나서 노래를 부른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그는 진정 아이들을 좋아했고 사랑했다는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위대한 노래가 있다면 바로 위 아더 월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 92년도에 신해철이 작사, 작곡한 ‘내일은 늦으리’가 대한민국의 가장 잘 나가는 가수들의 입으로 불렸다. 봄여름 가을 겨울로 시작을 해서 신해철이 두 번째로, 윤상이 이어받고 유영석으로 이어지고 신성우, 김종서, 신승훈, 이승환, 서태지와 아이들, 장호일이 내일은 늦으리를 외쳤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 주오,라고 떼창을 했다. 쉽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던 스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해서, 미래의 아이들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의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늦으리는 93, 94, 95까지 환경콘서트로 이어져 슈퍼스타들이 한 곳에서 힘을 주는 위대한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mtqP38-nq9A

미래의 아이들을 걱정해서 환경을 노래하기 위해 한국의 스타들도 한 곳에 모였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엠에프로 많은 가장이 무너졌던 99년에 다시 슈퍼스타들이 모여 ‘하나 되어’를 불렀다. 이제 그 누구도 탓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을 다시 생각해, 라는 가사가 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강해지는 믿음이 있기에 다시 시작해보자고, 우린 해낼 수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스타들은 노래를 불렀다. 무너져갈 때 노래는 옆에서 기운을 내라고 말해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우린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 내 왔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노래가 말하고 있다. 


https://youtu.be/ADct5rBI1Ng

스타들이 모두 하나 되어를 외쳤다. 그건 분명 힘이 되는 노래다


이제 슈퍼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다. 그만큼 감염병은 무서워진 것이다. 그래도 가수들이 예전처럼 힘을 내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모이지 않아도 된다. 아니 모이면 안 된다. 각자 녹음실이나 집에서 노래를 죽 불러서 그걸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로 보내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이상민이 하고 예전 가수들, 양희은과 송창식도 참여를 하고 중견가수들, 신승훈, 이승환, 김종서, 엄정화, 박기영 등 그리고 최근의 가수들 임영웅, 영탁, 홍자, 송가은, 에이프릴, 방탄소년단, 잇지도 노래를 불러 파트별로 편집을 해서 의료진들에게, 사람들에게 힘을 내고 이겨낼 수 있다고 2020 버전 '하나 되어' 노래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


감염병의 확산으로 모두가 불안하고 미래를 알 수 없다. 작금의 사태에 그 누구를 탓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멍청한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피해는 욕을 할 정도의 피해가 아니라 생명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힘을 내고 이 사태를 버텨냈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다. 사람들이 힘들 때 스타들의 기운 내라는 노래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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