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촌스럽게 입(는)은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다. 패션리더가 있으면 패션 테러범도 존재한다. 나 역시 옷을 촌스럽게 입는 스타일이라 그런 사람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나는 대체로 체육복을 입는 경우가 많고 여름에는 늘 반바지이고 겨울에도 반바지에 레깅스를 입고 있는데 저녁에 그 복장으로 바로 조깅을 하고 갈아입기 편하기 때문에다. 특별히 복장을 신경을 쓰고 일을 해야 하지 않기 때문에 혐오감을 주지 않는다면 늘 이런 복장이다. 

옷을 촌스럽게 입는 시람이 기껏 차려입었다고 입고 나왔는데 촌스러우면 상대방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여름에 샌들에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는다던지 하는. 

그런데 촌스러움도 그 개체가 상상 이상 되면 또 해볼 만하다. 괜찮다는 것이다. 요컨대 할머니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곳에서 할머니들의 여름옷들을 보면 컬러가 난해하다. 

지정할 수 없는 색채다. 마치 러브 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처럼 형용할 수 없는 컬러다. 알록달록한데 그 색에 다가가면 알록달록이라는 짧은 단어로 함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세계가 있다.

패션 블루.
카마인 레드.
오페라 바이올렛.
러시안 퍼플.
퍼머넌트 옐로 딥.
같은, 알 수 없는 단어로 불러야만 할 것 같다. 

이런 지정할 수 없는 컬러가 왕창 모여있으면 그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 버려서 촌스럽네,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 세계에는 '나도 여자야' '우리는 꽃과 같은 존재' '지금부터라도 예뻐질 테다' 같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우리 한국인은(나부터도) 입는 옷에 있어서 컬러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유럽의 막 자란 토마토 같은 녀석들도 형형색색의 난방이나 바지를 입고 길거리를 막 뒹구는데 우리는 단색 또는 단색과 좀 더 연한 단색으로 살아왔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예전의 나이 든 멋쟁이 신사들은 백구두를 신었다. 패션은 자신감과도 결을 같이 한다. 여자와 데이트가 원활하려면 입고 나온 옷을 칭찬하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옷이 예쁘고 잘 어울린다는데 싫어할 여자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이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몇 번이고 다른 옷과 비교해가며 입어보고 고민을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촌스럽게 입는 것이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옷차림이 아니라, 장소에 맞지 않는 패션도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 멋지게 차려 입고 누가 봐도 세련된 옷차림의 그 사람도 농사짓는 곳에 가서는 그런 옷차림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렇게 입고 밭일을 할 수 있겠어? 촌스럽게.

옷을 촌스럽게 입어도 스타일이 되면 유행처럼 퍼질 수 있다. 요컨대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하나 정도 편하고 괜찮다면 촌스럽게 입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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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5wq9o6WwBs


또 비 온다. 비가 오면 출몰하는 좀비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비만 오면 나타나는 것이다. 꼭 물리지 않아도 좀비의 입 안에 들어갔던 비가 좀비의 비말이 되어 사람에게 튀어 코나 입으로 들어가도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마기간이 있는 한국에서 레인좀비로 인해서 아포칼립스가 되는 이야기

넷플릭스를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는 B급 영화부터 좀비이야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내고 있다. 영국드라마 시리즈 중에는 좀비였다가 치료제가 개발이 되면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 좀비들이 살던 곳으로 보내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되었지만 아직 좀비의 그 무시무시한 얼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좀비였을 때 자신이 한 살육의 기억이 남아있으며 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다시 인간이 된 좀비를 배척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다

좀비는 현대사회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지만 위에서 말한 영국 드라마 좀비 이야기는 감염 병을 대입시키면 딱 들어맞는다. 우리나라의 좀비 영화는 반도나 부산행 이전에는 없었을까. 꽤 있었다. 거대한 산이 좀비인 영화도 있었다. 그 산에서 만약 피를 흘리면 그 인간은 좀비가 된다. 나는 꽤 재미있게 봤었다

그리고 옴니버스 영화 ‘무서운 이야기, 앰뷸런스’가 있다. 이 영화는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중에서 좀비를 다룬 영화다. 2012년에 나왔으며 앰뷸런스라는 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좀비 이야기로 설정이 꽤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좀비화가 되어 버리고 앰뷸런스에 생존자 모녀가 타게 되는데 딸이 어딘가 좀비에게 물린 것 같아서 군의관은 딸이 좀비가 되기 전에 앰뷸런스에서 버리려고 하고 엄마는 그 딸을 지키려 한다. 그 사이에서 간호사(영화 써니에서 소녀시대 리더로 입담으로 한 따가리 하던, 김예원이 간호사 역이다)가 아직 언데드가 되지 않았다고 말리면서 좀비들이 떼로 앰뷸런스에 뛰어 들고 군의관이 좀비에게 물리고 앰뷸런스 운전사도 물리고 그러면서 엄마는 끝까지 딸을 지키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보는 사람들이 좀 답답할 수도 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에서 벗어나는 결말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앰뷸런스라는 갇힌 공간과 25분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서 설정에 맞는 괜찮은 좀비영화였다. 그 짜임새를 탄탄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이야기도 길게 끌었다면 완전 외면 받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는 총 네 편인데 그 중에서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다. 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 영화는 꽤 무서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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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여운을 뒤로하고 밤에 에드워드와 단둘이 체스를 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체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내일 다시 하자고 했다. 그는 피곤했다. 내일은 일하지 말고 하루 쉬어요. 에드워드는 내가 한 말에 정말 그렇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즐기는 방식으로 에드워드와 휴일을 보냈다.


 잔디밭에서 맨발로 누워 셰익스피어를 읽고 내가 다니는 작은 퍼브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쓸모없지는 않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나요?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좋겠어?

 당신은 만약 음 내가 못생겨지면 비비안 오늘은 못생겼어,라고 할 사람이에요.

 설마, 그럴 리가.


 에드워드가 해주는 어떤 말에 나도 모르게 '빌어먹을'라고 해버렸다.

 비비안, 방금 그거 욕 한 거라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에드워드, 욕하지 않았어요. '빌려먹을'라고 했어요.

 그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에드워드를 고객이라 부르기 싫었다. 그 사람과 나누는 일상적인 평범한 대화를 그가 가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다니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해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게 무섭고 겁이 났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에드워드의 향기에 취했다. 그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기댔을 때 에드워드의 얼굴이 살짝 다가왔다. 운명이 어느 날 나에게 온 것처럼, 나에게 와서 이제 나는 네 것이야,라고 말한 것처럼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행복에 젖어들었다. 에드워드는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 아니 피곤하겠지만 그런 얼굴을 보이기 싫어했다. 늘 나보다 일찍 일어났고 늦게 잠들었다. 사람들 앞에서도 에드워드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비쳤다. 아마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호텔로 들어와서 씻고 나오니 에드워드가 잠들어 있었다.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이 사람의 자는 모습은 웃기다. 흐트러짐도 없이 그저 눈만 감은 것 같다. 웃기면서 슬펐다. 그리고 불쌍했다. 딱딱한 자세로 잠이 들어 있는 그의 잠자는 모습은 완벽했다. 그 완벽함이 에드워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음의 습득보다 지식의 채집이 생활화된 남자.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같았다. 신과 신 사이에서 끝없는 반복의 인간적 굴욕과 그걸 숨기기 위한 끝없는 자기 계발이 불편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견뎌가는 에드워드가 딱하고 불쌍했다.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살짝 건드렸는데 예민한 에드워드는 눈을 떴다. 입술을 벌렸고 그의 혀가 나의 입으로 들어왔다. 키스를 했다. 그와 내내 키스를 하고 싶었는데 하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마치 몇 년 동안 못한 키스를 하는 것 같았다. 키스는 깊고 깊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에드워드의 팔에 안겨 그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이 남자의 손등을 쓰다듬는 일은 무엇보다 황홀하다. 그의 손등을 쓰다듬을수록 에드워드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그의 품에서 나는 이렇게 세상모르고 포근함을 느낀다. 그 작은 포근함에서 나의 마음속 생각이 들렸다. 에드워드의 미미하게 뛰는 심장의 소리가 꼭 나의 심장소리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그게 정말 좋아서 그에 품에 파고들었다. 그의 맨살에서 안온감을 느낄수록 나의 목을 죄여 오는 불안함에 나는 그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사랑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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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술을 마신다. 좋아하는 술은 맥주. 그중에서 칼스버그로,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에도 줄곧 칼스버그를 마시는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 막걸리 맑은 부분을 마신다.


매일 저녁 음식을 차려서 술과 함께 먹는다. 그때가 가장 하루 중에 좋은 시간이라면 좋은 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시간이라는 것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좋은 시간과는 좀 다르다. 글을 쓰면서 가지는 시간에는 온갖 상상과 공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몹시 좋은 시간이다. 그것과는 다르게 밥을 먹으며 한잔 하는 시간은 멍하게, 그저 퍼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가지는 시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술은 매일 마시지만 칼스버그 한 캔이면 딱 좋다. 막걸리는 얼음을 동동 띄워서 맑은 부분 한 컵이면 족하다. 술을 많이 마실 때도 있었는데 하고 돌이켜 보면 그때는 잘 모르겠다. 적당하게 마시는 것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술을 마시고 토하거나 필름이 끊겨본지도 근 10년 안에는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다.


사람들과 술을 마셔도 비슷하다.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안 되겠다 싶으면 권하는 불편한 사람이라도 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런데 사진 속 요런 술은 얼마나 마셔야 할까.


어느 날 후배 놈이 평소에는 내가 마시지 않는 사케, 산사춘, 매취순, 꽃빛서리, 백세주 같은 술을 선물이라면서 왕창 사주고 갔다. 냉장고에 덩그러니 넣어두니 어울리지 않는 병정 옷을 입은 군인처럼 보였다. 그중 꽃빛서리 한 병을 꺼내서 돼지고기에 한 잔 마셨다. 뭐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냥 소주였다. 소주는 잘 마시지 않아서 따버린 술을 어떻게 할까, 한 병을 다 마셔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잔 마시고 뚜껑을 닫아서 넣어두고(이 술은 후에 LA갈비를 조릴 때 넣었다) 색이 짙은 산사춘인가,를 꺼냈다.


산사춘 한 잔 마시고 나니 이야, 술이 이리도 달다니. 이런 술은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면 그 단맛에 취하는 그런 술이었다. 이런 술은 나처럼 맥주 한 캔이나 막걸리 한 잔 정도를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마셔야 할까. 이렇게 단맛이 나는 술은 뭐랄까 별로라서 뭔가를 섞어 마셔야 할 것만 같다.


몇 해 전까지는 여름에는 상그리아를 늘 만들어 먹었다. 그때는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과 다 만들고 난 후의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집에서 마시면 밖에서 마시는 것에 비해 돈을 왕창 아낄 수 있으며 손님들이 오면 부담 없이 대접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당시에는 마트에 가면 세 병에 이만 원하는 와인이 있었다. 그걸 구입하고 가장 맛없고 싼 과일들을 산다. 수박도 다 먹고 난 후 껍질을 잘 씻어서 넣으면 되고, 아주 맛없는 복숭아나 사과, 자몽 같은 과일을 썰어서 넣어준다. 만약 과일가게 주인과 친하다면 버리는 과일을 나에게 주시겠소! 해서 얻어와서 넣어도 무방하다. 과일을 왕창 넣고 와인도 왕창 붓고 배도 있다면 왕창 넣고. 


밖에서 파는 상그리아에는 사이다를 섞지만 집에서 해 먹을 때는 사이다 대신 꿀을 뜨거운 물에 희석시켜 그걸 같이 넣어준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서 24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그러면 큰 통에 가득 상그리아가 만들어져서 4명이서 세 잔씩 가득 마셔도 될 만큼의 양이 나온다. 초콜릿 시럽이 있다면 컵의 안쪽 벽에 잘 발라서 상그리아를 담아서 마셔도 좋다. 텀블러에 넣어서 일하면서 홀짝홀짝하기에도 좋다.


이런 식의 단맛이 나는 술은 좋은데 산사춘인가? 이 술에서 나는 단맛은 좋은 단맛은 아닌 것 같다. 막걸리의 단맛과는 또 다르다.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는 막걸리 맑은 부분의 단맛은 또 좋다. 



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고등학교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 선배들은 소주를 '한 컵'씩 주었다. 그걸 마시면 배속이 설명할 수 없는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고 맞았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았다. 선배들은 몽둥이를 들고 다리에 내려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더욱 친밀해졌다. 그리고 축제 준비를 한다. 구타가 잦았던 이유는 축제 기간에 교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사진부, 컴퓨터부, 미술부가 늘 경합을 벌였고 작년에 미술부에게 뺏겼던 명당자리를 탈환하게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 암실에는 늘 술이 있었다. 작년에는 나는 중 3으로 아직 고등학교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1학년이 되어 사진부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 이전의 부채마저 떠안아야 했다. 그때부터 야금야금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그렇게 나의 세계로 잠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술을 참 좋아한다.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교마저 졸업을 하고 사회에 뛰어들면 술자리가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인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는 삼총사가 있고 여러 술이 있지만 삼총사가 가장 인기가 좋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술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것처럼 여기겠지만 OECD 국가 중 22위로 술을 소비한다. 1위는 룩셈부르크, 2위는 오스트리아, 3위는 프랑스고 4위는 독일 순이다. 그런데 독한 술을 소비하는 것은 세계 1위라고 나와있었는데 독한 술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또 어디서 조사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독한 술이라면 증류주가 있다. 증류주는 노동자의 술이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쌘 놈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에서는 쌘 술을 제조하지 못했다. 집에서 대부분 담가 먹어야 하니 발효 술이었다. 농경사회에서 과일로 발효하여 마실 수 있는 술이 도수 15도 정도였다.


요컨대 멕시코의 테킬라도 쌘 술이고 멕시코의 노동자의 술이었다. 술을 털어 넣고 안주를 집어 먹어야 하는데 손이 너무 더러우니 손등에 소금을 뿌려 먹었던 게 요즘 테킬라 마시는 법이 되었다. 보드카 역시 러시아 벌목공들이 추위와 노동의 고달픔을 잊고자 마신 술이다. 근래에 그런 독한 술을 마시는 한국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마도 삶이 고달프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단언컨대 소주를 좋아한다. 이 소주에 붙는 세금은 소주 제조 원가보다 높을까 낮을까. 소주 한 병을 천 원으로 가정하면 병당 부과되는 세금이 무려 530원이다. 세금을 뺀 470원이 회사의 매출이 된다. 소주, 맥주, 위스키에는 원가에 비해서 72%까지 세금이 붙는다.


지역 소주(좋은데이, 화이트, 잎새주, 한라주)는 세금이 본사가 있는 지역으로 갈까? 아니다. 부산을 살린다고 좋은데이만 주야장천 마신다 해도 부산으로 좋은 데이를 마신 세금은 가지 않는다. 주세는 대부분 국가에 귀속이 된다. 지역 소주의 세금은 지역이 가져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문제 하나.
맥주는 맥주잔에, 막걸리는 막걸리 잔에 마신다고 했을 때 와인이 막걸리보다 칼로리가 높을까 낮을까.


어떻든 매일 술을 마신다. 의도치 않게 기준을 넘겨 버려서 취하면 몇 글자 적기도 한다. 

나중에 보면 창피한 일이지만.


#

같은 달빛 아래도 봄눈이 날리는 국경의 벌판을 달리면서 나는 손을 뻗는다 

저 먼 곳의 차가운 백색왜성도 봄눈으로 덮여 차가운 동시에 따뜻하다 

달리다 보면 평소보다 숨이 더 차오른다 

가슴과 등이 종이짝처럼 볼품없이 붙어 버릴 것만 같다 

멈춰 서서 숨을 할딱거리다가 그 자리에 앉는다 

아 그래, 봄이었지 

나의 마음속에는 네가 이미 꽉 차 있어서 고독하다 

순간의 고독을 견디고 나면 또 하나의 고독이 앙금처럼 마음에 눅진하게 쌓이고 만다 

고독은 유동적이다 

동시에 탐미적이며 순수한 결정체로 똘똘 뭉쳤다 

벚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하나씩 부서졌다 

봄은 그렇게 너의 마음을 빼닮았다 




#

내용에서 정정할 부분-

부산의 지역 소주는 대선이며

좋은데이는 창원의 지역 소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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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빛서리‘라는 뜻은 잘 모르겠지만 술 이름이 너무 이뻐서 술을 부르는것 같아요!ㅎ

교관 2020-08-17 12: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냥저냥 소주였는데 병모양이나 이름이 달라져도 술 맛이 또 다르게 느껴지는, 암튼 술이란 인간생활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ㅎ
 


https://youtu.be/4QM_L6VWMFo


서유기 영화가 나오면 재미가 좀 떨어지더라도 대체로 다 본 것 같다. 서유기라는 이름이 붙어 버리면 악착같이 찾아서 봤다. 국민학교 때에는 사월 초파일도 하나의 큰 행사로 티브이에서 이런저런 서유기 영화를 보여 주었다. 그날은 공휴일이니까 그 전날에는 학교에서 서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창 봄을 지나 여름의 초입으로 달려가는 계절이라 부처님 오신 날은 대체로 날이 화창하고 좋다. 이불도 얇고 보송보송하다. 오전에 일어나 그런 이불에 뒹굴 거리며 서유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일요일 오전에는 데즈카 오사무의 장편만화 손오공을 방영해주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손오공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든 계기가 아주 재미있는데 이야기하면 길어지니 넘어가고, 서유기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의 일체화처럼 되었다. 2021년에는 영화 드레곤볼Z가 나올 것이고, 더불어 드레곤볼까지, 서유기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나오면 어떻든 보게 되었다

서유기 2, 서유복요편에서 주성치의 냄새가 많이 나는 건 주성치가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해서 감독인 서극도 같이 각본을 써가며 만들었다. 여기에 자본이 700억이 들어갔다. 그래서 어떠냐고 한다면 재미있다. 주성치의 코믹함에 영화 곳곳에서 많이 묻어 나온다

주성치가 감독했던 서유기 1편의 다음 이야기다. 그래서 서유복요편에서는 서유기 1편의 회상장면이 영화 중간 중간 나온다. 다른 서유기에서의 손오공에 비해 주성치가 감독했던 서유기 1편에서의 손오공은 그야말로 극악무도의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요괴였다. 무시무시한 재천대상의 시초는 아무래도 주성치의 선리기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서유복요편은 세 편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그래서 다 보지 않아도 된다. 장면장면에 주성치의 웃음코드가 있어서 주성치를 좋아하면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재미있다. 여기서 손오공 역시 서유기 1편에서처럼 아주 성질이 더럽고 무시무시한 요괴이며 삼장에게 몽둥이질도 서슴없이 한다. 원래 손오공은 그렇거든

사오정도, 저팔계도 서유기 1편에서 본 그들의 모습 그대로 나온다. 700억을 들인 영화답게 컴퓨터그래픽 대잔치다. 700억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장면도 있지만 자본을 쏟아 붓고 재미없던 중국영화들만큼 재미없지는 않다. 서유기의 또 다른 버전인 몽키킹 시리즈와도 견줄 만 하다

아쉬운 건 너무 그래픽 철때반죽 대잔치니까 여의봉을 들고 휘두르는 손오공 액션은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성치가 감독을 했던 서유기 1편 모험의 시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쿠키 영상에는 주성치가 극장 직원으로 등장해서 쓰레기 주워서 빨리 나가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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