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tHgzM5RM-JY


삼일에 두 편을 보고 본 영화 중에 리뷰를 시작한 이래, 근래에 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수인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주수인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수인 파이팅, 파이팅!!!하게 된다. 마치 마법처럼,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겉으로는 야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는 주수인의, 주수인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주수인은 99년 대통령배 4강전에서 덕수정보산업고와 배성고의 시합에서 나온 안향미 선수를 기반으로 탄생된 캐릭터이다. 안향미는 구속이 130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 속 주수인의 구속을 보면, 구속이 136이었던-미국 야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한국으로 와서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 소속 내야수를 맡고 있는 재미교포 제인 어 선수와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보면, 일본출신으로 미국으로 진출한 너클 프린세스라고 불린 요시다 에리 선수를 오마주한 것 같다

주수인은 그냥 제멋대로 탄생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실존인물을 말하고 있다. 안향미 선수는 우리나라 1호 여성 투수였다

주수인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이제 힘들어서 못하니 포기하렵니다,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너는 못 할 것이니 포기하라고 한다. 욕과 괴롭힘과 힐난조의 시선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에 노력에 노력을 할 뿐이다

영화에서 초딩때부터 같이 야구를 한 정호가 코치에게, 수인이는 감독에게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어서 나가떨어지겠지 하며 훈련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대사를 한다

이는 실제로 안향미 선수가 유니폼을 벗을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덕수정보산업고 하득갑 감독은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재수 없다’는 이유로 야구부 전용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고, 안향미 선수만 따돌리고 연습경기나 시합을 나가고, 심지어는 선수들에게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합숙생활이 힘들다고 적어내라고 조장하기도 했다

부당한 처사에 격분한 안향미 선수 아버지가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고 최숙현 선수가 있었던 트라이애슬론을 보면 된다. 엄청난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감독은 원래 페미니스트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여자라서 받는 몹쓸 대우에 대해서.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점점 주수인에게 동화가 되었다. 야구란, 특히 프로 입단이라는 건 여자건 남자건 모두에게 힘든 벽이라는 걸. 그래서 주수인이 점점 해내는 것을 보고 여자가 아닌 주수인의 성장을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주수인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영화다. 주수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도 좋을 영화 야구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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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김밥을 먹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니 옆에서 이만 원짜리 김밥을 먹으면 위로를 몇 십배는 받겠네,라고 했다. 참 뭘 모르는 말이다. 이만 원짜리 김밥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싸구려 김밥에 든든해지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이만 원짜리 김밥을 먹고 든든해지지도 않고 맛도 이만 원 어치만큼 나지 않으면 위로는커녕 불만 가득한 식사시간일 것이다.


내가 조깅을 하는 길목에는 김밥 튀김을 파는 곳이 있다. 역시 김밥 튀김도 나를 위로해준다.


김밥 튀김은 뜨거울 때보다 식은 김밥 튀김에 와사비를 듬뿍 뿌려 먹는 게 맛있다. 하나에 사백 원, 다섯 개 이천 원. 사천 원이면 김밥 튀김이 열 개다. 맥주와 함께 홀짝거리며 먹다 보면 꽤 기분이 좋다. 미나리 무침과 함께 같이 먹다 보면 분명하게 위로를 받는다.


이만 원짜리 김밥에서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다. 넌 김밥은 싸구려를 먹으면서 이어폰은 뱅 앤 올룹슨을 쓴다며 핀잔을 들었다.


다이소에서도 이어폰을 판다. 오천 원이다. 다이소에서 급한 김에 조깅을 하다가 두 번 구입을 했지만 하나당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뱅 앤 올룹슨이 주는 위안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싸구려 김밥이 주는 위로도 존재한다.


세계는 그런 위로들이 공존하고 있다. 공존을 위협하고 공존을 깨트리는 건 둘 중에 하나만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각각의 사정이란 게 있고 우리 모두는 그 각각의 사정에 따라 사고하며 지낸다. 그리하여 성격이 비슷한 사람은 있으나 같은 사람은 없다.


싸구려 김밥이라고 해서 맛 까지 저렴하지는 않다.


         뱅 앤 올룹슨이라고 해도 이어폰 정도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한 사만 원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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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는 내가 잔뜩 구입한 쇼핑한 옷들 중에 하나를 입혀 폴로 경기가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폴로 경기라는 귀족들만이 즐기는 문화에 내가 끼는 것이 두려웠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고리 터분한 사람들 중에 가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고 돈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 겁이 났다. 무엇보다 나를 알아보고 에드워드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10억 달러의 이번 사업이 날아가는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경계가 있는 폴로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나를 이끌었다. 재미있을 거야, 초조해하지 말고 웃어. 라며 에드워드는 고리 터분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귀족 여자들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에드워드의 이달의 애인이신가요? 귀족들의 언어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나 보다. 저 사람은 그저 섹스 파트너일 뿐이에요. 라며 나는 그 자리를 호기롭게 나왔다. 흥.


 에드워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스타키라는 자신의 변호사를 소개해주었다. 머리통은 삐뚤빼뚤하고 눈은 음흉하며 마치 무엇을 하나 더 가지려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 같았다. 에드워드에게 하는 모든 말들이 그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 말이었다. 포주 중에서도 그런 사람을 나는 안다. 아부가 몸에 잔뜩 껴 있는 사람.


 스타키라는 남자는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다 했다. 보기에는 그래도 유능한 변호사라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나는 에드워드가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려온 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고리 터분한 옷에 고리 터분한 이야기에 고리 터분한 말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인형 같은 옷을 입혀서 고리 터분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 속내를 거의 알 수 있지만 전혀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폴로 경기에는 잔디를 밟는 행사가 있었다. 잔디를 밟는 건 재미있었다. 에드워드가 옆으로 와서 같이 했다.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나의 웃음소리가 폴로 경기장을 채웠다. 처음 해보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시작하기 전에는 두렵고 무서웠는데 에드워드가 이끌어 막상 하고 나면 재미있는 일 투성이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잠을 자고 해가 지면 부랴부랴 옷을 입고 길거리로 나가서 돈을 벌어들였던 나는 점점 이 생활을 즐겼다.


 잠시 쉬고 있을 때 데이빗이 아는 척을 했다. 그는 내가 불편할 법도 한데 말을 구경시켜주었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친절한 사람이다. 데이빗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가 천박해 보일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리 터분의 바닷속에도 친절함과 재미와 좋은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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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벨드(벨기에 드라마) ‘인 투 더 나이트’, 한국 제목으로 ‘어둠 속으로’는 상당히 흥미 있는 영화다. 비행장에서 한 비행기로 군인 출신의 남자가 총을 들고 들어와서 문을 닫고 출발하라고 한다. 그는 빨리 떠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고 말한다. 비행장의 티브이에는 뉴스가 한창이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총을 들고 이미 시작되었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한다. 안 그러면 총을 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에는 몇 명 타지 않고 이륙을 하게 된다. 부조종사 한 명에 그저 헬기를 몰아본 실비라는 여자가 조종석에 앉고 각각 사연이 있는 주인공들을 태운 채 비행기는 어두운 밤하늘을 난다

어둠 속으로는 제목처럼 어둠을 찾아서 계속 비행을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세계는 무슨 이유인지 태양이 비치는 순간 모두가 죽어 버린다. 과학적으로 $%$^&^&@@% 이런 이유로 해서 11년 만에 오는 태양의 어떤 부분이 과부하가 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지구의 해가 비치는 곳의 생명체는 모두 죽고 만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혀 같은 장기는 바짝 마른 상태로 죽는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하던 주인공들도 나중에는 믿게 되면서 비행기는 어두운 항로를 따라 태양이 비치는 밝은 날을 피해 어둠만 찾아서 비행을 한다. 그리고 연료가 떨어질 때는 아직 어두운 나라의 가까운 비행장을 찾아가면서 연료를 넣는다

영화는 비행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사고를 보여준다. 그리고 태양은 통조림의 음식을 제외하고 과일 같은 식재료의 모든 분자구조를 망가트려 종이 맛을 내게 한다. 그리고 비행기 연료의 탄소성분도 망가트려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거나 리더를 교체하거나, 그 와중에 어떤 나라의 비행장에는 또 누군가를 버리고 오거나 엉망진창이다. 시즌 1은 6부작인데 한 회가 시작될 때마다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비행기를 탔는지 짤막하게 보여주며 시작을 한다

영화는 답답함이 없다. 비행기라는 갇힌 공간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무전으로 연락이 된 살아있는 군인들이 있는 어느 나라의 벙커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즌 1이 막을 내린다. 벨기에 영화인데 잘 만들었다. 태양이 망가져서 지구의 생존한 것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설정에 빠져든다

근래에는 세계의 종말,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이야기가 영화, 드라마. 소설 전반에 걸쳐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다루고 그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 아포칼립스가 도래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죽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서 이런 멸망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지금은 바다의 중심이 되는 빙하도 많이 녹아서 해수면이 조금씩 오르는데 2100년가에는 해수면이 1미터가 오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천천히 전조가 있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덮치는데 일본은 많은 땅덩어리가 바다에 잠긴다고 한다. 한반도도 뭐 어떻게 된다는 그런 과학적인 연구 이야기가 있다

쨍쨍해야 할 올해 7월은 6월보다 시원했고 매미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비가 오면 차들이 잠기고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기까지 한다. 비가 많이 왔다고 해서 이 정도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리라고는 이전에는 몰랐었다. 자연도 미쳐 가는데 사람들은 나날이 더 난리고 더 미쳐간다

근래에는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내몰린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에서는 침을 뱉으면 안 된다지만 일부러 침을 뱉는 미친놈도 있다. 이러다간 우리는 죽는 날까지는 별 탈이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말 그래도 매일이 생존이 될 가망이 높다. 그 사이에서 범죄가 필수가 되기도 하고 평범함이라는 것이 멀어질 수도 있다

영화들은 여봐란 듯이 지구가 조금씩 멸망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바짝 접근해서 만들어 낸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면 독감과 코로나가 쌍으로 온다는데 현실인지,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애매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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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못 자고 악몽을 자주 꾼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데 긴 시간 잠을 이루지는 못한다. 참 별로다. 잠은 길이보다 깊이의 문제라는데 악몽 때문에 깊게 잠들지도 못한다.


잠은 빨리 드는데 중간에 꼭 두 번 정도는 깨고 만다. 악몽 때문이기도 하다. 악몽의 질을 따지자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간혹 하늘을 날다가도 떨어지면 악몽이니까.


하늘을 나는 꿈도 나이가 들수록 꾸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공중 부유 정도도 점점 낮아져서 나중에는 그런 공상과학적인 꿈은 아예 꾸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의 악몽이라면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다가 일어난다.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지만 꿈속에서는 비슷한 행위를 또 하고 있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속의 그 집은 구조가 조금씩 늘 변경되기에 또 들어가서 꿈속의 이벤트에 놀라서 일어나게 된다.


어느 날은 악몽이라 불릴만한 제대로 된 악몽을 꾸었다. 담배를 피우는 꿈인데(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연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눈에 차오른다. 눈동자에 서서히 들어차는 것이다. 온 세상이 담배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담배연기는 그 압도적인 냄새와 함께 눈에 들어차 빠져나가지 않는다. 모든 세상이 담배연기로 가득 차 보여서 겁이 난다. 너무 무서운데 숨을 쉬는 것도 힘들다. 담배연기는 눈동자 그 위로 올라가 차곡차곡 쌓여 내 눈동자의 모든 부분을 연기로 덮어 버릴 때 잠에서 깼다.


정말 무서운 꿈이었다. 이 정도의 강한 악몽을 꾸면 바로 잠들지 않고 꿈의 내용을 메모를 해 둔다. 그날 저녁에 좋아하는 멍게를 왕창 먹었는데 배탈이 나고 말았다. 설사를 며칠씩 했다. 처음이었다. 이런 경우 하루 정도 하다 끝나는데 약을 먹고도 며칠을 쏟아냈다. 악몽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악몽이 계속되는 기분이다. 악몽이 꿈속에서 성이 차지 않아 꿈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꾸는 것은 아무래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가 흡연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일부러 피우지 않는 것보다는 담배를 피우면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하고 만다. 담배가 전혀 몸에 받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학창 시절과 대학교 때 몇 번 피워봤지만 결국 구토를 유발하고 전부 토해내고 말았다. 순한 담배부터 독한 담배까지 다 피워봤지만 담배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담배가 보급품으로 나왔는데 옆 사람에게 다 주고 말았다. 아까웠다. 그 뒤로도 술을 마시고 몇 번 피워봤지만 술을 마시며 먹은 것들을 기분 나쁘게도 다 토해내고 말았다. 이후에는 아예 피우지 않게 되었다. 


담배연기가 딱히 기분 나쁘거나 냄새가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다. 흡연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에게는 있다. 겨울의 밤 골목, 가로등 밑에서 가죽재킷을 입은 남자가 기대어서 담배를 피울 때 여귀의 입김처럼 화악 퍼져 나가는 담배연기를 나는 좋아한다.


친구 중에는 담배를 피우면 유독 담배연기가 실처럼 나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한 친구는 담배를 피우고 머리를 한 번 쓱 쓸어 올리며 연기를 뱉어내는데 화악 컴퓨터 그래픽처럼 입에서 나올 때 멋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양쪽 코에서 연기가 가스처럼 밑으로 빠져나올 때는 멋짐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멋지게 보이는 건 딱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늘씬해서 가죽재킷이 잘 어울려야 했고, 앞머리가 찰랑거려야 하고 제임스 딘처럼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가 마치 손가락과 혼연일체가 되는 착각이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20대의 건강한 녀석이라야 한다. 아무래도 웃고 떠들며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고독하고 냉소적인 얼굴을 한 채 겨울의 한 모퉁이에서 담배를 철학적으로 피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열망이 악몽으로 피어 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꿈에서 담배가 등장하면 어김없는 악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놀라서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꿈이라는 것에 안도와 함께 담배가 등장하는 악몽이라는 것에 대한 찝찝함을 느낀다.


악몽이라는 건 왜 꾸는 걸까. 에 접근하면 여러 가지 설과 진단이 있다. 악몽이니까 당연하지만 꿈에서는 웃을 일이 없다. 그러고 보면 꿈속에서 웃어 본 적이 없다. 꿈이라고 해서 즐거운 꿈이 없을까. 하지만 악몽은 꾸지만 즐몽? 은 꿔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꿈속에서 웃었다. 제기차기를 하는 꿈이었다. 나는 꽤 제기를 잘 찼다. 양발로 차면 100개는 거뜬히 찰 수 있었다. 군대에서 소대별로 제기차기 대회를 했는데 내가 가장 오래, 많이 차서 그것으로 휴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제기차기를 한 번 해봤는데 서른 개 정도밖에 차지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서른 개, 많이 차면 50개 정도에서 끝이 났다. 만약 제기차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제기를 하나 구입해서 한 번 차 보면 평소에 쓰지 않던 다리 근육을 써야 한다. 제기를 차려면 다리를 이렇게 올려야 하는데 평소에 이런 식의 다리 근육을 쓰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제기차기를 하고 나면 엄청 힘들 것이다. 아무튼 꿈에서 제기차기를 하는 꿈이었는데, 상대방과 대결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은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을 쏟아낸 다음 제기를 찼는데 두 개를 찼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 웃음을 실제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에 내가 놀라서 깼다. 만약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얼마나 미친놈으로 봤을까.

문득 오규원 시인의 ‘죽고 난 후의 팬티‘가 생각난다. 시를 소개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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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근간에 죽음을 보았던 나는 나의 죽음 그 직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혹시나 악몽을 꾸었을 때처럼 얼굴을 찡그리고나 있지 않은지, 실실 웃는 얼굴로 미친놈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은지. 오규원 시인처럼 속옷은 깨끗하게 갈아입고 있는지. 때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욕은 잘했는지.


악몽보다 더한 현실 속에서 악몽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 영화 ‘멋진 악몽’처럼 악몽이 멋질 수 있는 이유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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