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맘때 해가 떨어지고 난 후 밤에 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좀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은 반팔이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닷가 바람에 추우니 겉옷이 필요한 날이다.


조깅을 하고 난 후 맞는 바닷바람이 아주 시원한 날의 연속이다. 그런 날에 앉아서 책을 좀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이 취하지만 책을 읽으며 홀짝홀짝 마시면 이만큼만 마셔도 술이 오른다.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마시는 맥주와 안주로 먹는 튀김을 씹는 소리, 기분 좋은 잡음이 어울리다 보면 저 달달한 프랑스식 맥주를 마시는데도 금방 술이 취하고 만다. 술이 오르면 책을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또 한 번 취하고 풍경을 멍하게 바라본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묘하게도 파도치는 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등을 보이며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본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두려 한다.


이곳의 바닷가에서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 내가 없다. 대포항에서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곳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심해지는데 여기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의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게 나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기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떠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 같다. 저기 옆에서는 버스킹이 한창이고, 날이 좋아 거리를 두고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예전보다 못 하지만 외국인들도 보인다. 그들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그들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간에 행복한 사람도 있고, 덜 불행한 사람도 있고, 아픈 사람도 있고, 더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계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니까.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서 다니다가 하늘만 찍어서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하늘은 똑같은데 매일 다르다. 늘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하늘을 찍는데 매일 다르다. 정말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


어제 오전 라디오에서 토미 페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소년 같은 목소리로, 알 비어 에브리띵, 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는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토미 페이지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지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조금 떴을 때 티파니와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오프닝 같은 무대에 섰다. 그때 사람들에게 너 같은 거 말고 빨리 뉴 키즈를 불러내, 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너무 긴장을 했다. 투어 중에 혼자서 호텔 로비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뉴 키즈의 조던 나이트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부를 노래를 준다. 그 노래가 ‘알 비어 에브리띵’이었다. 그리고 대니 우드도 붙어서 토미 페이지가 그 노래를 완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하늘로 가버렸다. 노래 부르는 건 즐거운데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생활을 해 나가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인기는 한순간이고 유한한 삶을 이어 붙이지 못했던 토미 페이지는 그렇게 짧은 생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프린스도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러 가버렸고, 데이빗 보위도 행렬에 끼게 되었다. 각자 자기네 별로 돌아갔다.


나의 별은 어디일까. 같은 쓸데없는 생각도 바닷가에서는 해도 된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https://youtu.be/rTki_oqDLqk

Tommry Page -I'll Be Your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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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RrseIiQEK0


이 영화는 일단 매력적이다. 일단 매력적으로 보려면 견자단을 좋아해야 한다. 견자단을 좋아해야 한다는 건 액션영화를 좋아해야 한다. 액션이지만 홍콩액션을 말한다. 견자단이 엽문 4를 마지막으로 액션을 끊겠다고 했는데 어쨌든 견자단의 신나는 액션을 볼 수 있는 영화로 견자단의 액션이 매력적이다


견자단의 액션은 이전의 홍콩 선배액션 배우들과는 달랐다. 홍콩액션은 아크로바틱하며 초현실에 가까운 액션이었는데 견자단이 등장하면서 실전에 가까운 액션을 펼쳤다. 견자단은 이소룡의 절권도를 기본으로 한 액션이었다. 그래서 강력하고 실제 같고 실재하는 액션이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견자단은 이전의 액션을 버렸다. 주위의 사물을 이용해서 펼치는 액션은 성룡을 보는 것처럼 신나고 또 신난다. 그리고 거대해진 몸으로 펼치는 액션은 마치 홍금보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았다. 저렇게 무거운 몸으로 아주 날렵하게 발차기를 하고 공중돌기를 하며 견자단의 발차기를 한다


그러다가 견자단 특유의 사마귀 동작도 나온다. 그리고는 이전의 홍콩액션으로 돌아가서 사물을 이용하고 홍금보가 되어서 날렵하게 발차기를 한다. 이 영화의 내용은 볼 것 없다. 그저 견자단의 시간을 초월한 액션을 보는 것으로 아주 신나는, 매력적인 영화다

홍콩영화의 팬이라면 이 영화에는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가유희사에서 장국영과 티격태격하지만 결혼식까지 올리는 모순균이 나온다. 장국영이 실제로 모순균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모순균은 거절했다. 장국영의 팬들은 만약 그때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곤 한다


영화는 일본에서 펼쳐지는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일본 땅에서 핍박받고 괴롭힘을 당한다. 일본감독이 만든 일본까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의 필모가 재미있다. 중국 영화에 두 번이나 조연으로 나왔고 아오이 소라를 데리고 영화도 하나 찍었다. 비리 경찰로 다케나카 나오토가 나온다. 늘 그렇듯 웃음을 준다


견자단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이 신나고 매력적인 영화, 엔터 더 팻 드레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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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방은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팬트하우스였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외부의 냄새와는 차단된, 에드워드의 세련된 냄새가 나를 압도했다. 손님과 늘 가던 싸구려 모텔에서 나는 공허한 냄새가 이곳에는 없었다. 지정할 수 없는 가구와 내가 자는 침대보다 더 푹신한 소파, 공원에서 갖다 놓은 듯한 대형 화초와 화분은 내가 와서는 안 될 곳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들었다.


 에드워드는 옷도 벗지 않고 책상에 앉아 우편물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의 방 베란다는 전망이 좋았다. 베란다로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할리우드의 사람들 모습이 피규어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베란다로 나와 보라고 했지만 남자는 고소공포증이라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는 나에게 정중하게 돈을 주는 방법을 말했고 우리는 현금으로 통일했고 현금을 받은 나는 바로 나의 일에 착수했다. 남자가 자신의 몸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우편물 위에 앉아서 남자에게 나는 다양한 콘돔과 다양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 콘돔은 너의 고추를 확실하게 지켜준다는 뉘앙스로 말이다. 그러니 나를 다른 창녀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종 같은 것 말이다. 나는 돈을 받았으니 시간 내에 빨리 끝내고 가면 된다. 세련된 이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고 루카에게 받은 돈을 자랑도 해야겠고, 이래저래 마음이 급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남자는 샴페인에 딸기를 룸서비스로 주문했다.


 남자는 샴페인을 따라서 나에게 건넸다. 샴페인은 처음 마셔보는 맛이었다. 달콤했고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즐길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 늘 시간에 쫓기는 신세이고 시간이 나에게는 곧 돈이다. 이 짧은 밤에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시간을 쪼개야 한다. 나는 샴페인은 날름 마셔버렸다. 그는 딸기를 들고 나에게 왔다. 딸기마저 욕이 나올 만큼 신선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샴페인도 딸기도 먹지 않았다. 그저 나는 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빤히 볼뿐이다. 사실 그가 나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나는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푹 꺼진 매력적인 눈매의 그가 바라보면 나의 얼굴에 구멍이 크게 나서 뚫려 버릴 것만 같다. 그는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밤새같이 있자고 했다. 맙소사, 나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내미는 조건에 같이 밤을 보내기로 합의를 한 나는 나에게서 느긋함을 발견했다. 조급한 마음이 그가 내미는 달콤한 제의에 의해 사라졌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말이다. 나는 에드워드가 실력 있는 변호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가 아니라고 했다. 욕실에서 치실 사건이 있고 그는 나에게 좀 더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건 창녀가 아니라 마치 대등한 여자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전화기를 붙들고 서류를 보며 중간중간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술이, 미소 지을 때 눈 밑으로 그려진 세심한 주름이 나를 어떤 공간으로 이끄는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 비비안! 그저 손님, 돈 많은 손님일 뿐이야! 그런데 에드워드가 전화기와 서류를 버리고 소파에 앉아 천만 불짜리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땐 나는 무너질뻔했다.


 일을 해야지, 나는 그에게 다가가 옷을 벗었다. 티브이 소리를 소거하니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의 바지를 내리고 원하는 건 뭐든 해준다고 했다. 단 키스는 제외하고. 에드워드는 친절했다. 잠자리에서 배려가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인형 취급을 했지만 그는 나를 한껏 안아주고 달래주고 원하는 것을 알고 해 주었다.


 에드워드의 밭은 숨에서 다정함이 오소소 떨어져 나에게 쌓였다. 무엇보다 아프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날 밤은 깊은 잠에 떨어졌다. 잠은 길이보다 깊이의 문제다. 내일 아침에는 피부가 다른 날보다 나을 것 같다. 행복한 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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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는 날이 흐리고 비가 곧 쏟아질 것 같다, 싶으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 진지하게 내리는 비는 좋다. 흩날리는 비는 옷의 어두운 부분을 적셔서 몹시 기분을 다운시키지만 우산을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진지한 비는 좋다. 비를 바라만 보는 것도 마음에 들고 우산을 쓰고 걸으며 우산 천장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도 듣기 좋다. 마치 버브의 드러머가 쉴 새 없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리듬 있게 떨어진다.


여행지에서 비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행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저녁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때 아닌 비가 쏟아진다. 옛날 민박집이라면 처마 끝에 앉아서, 펜션이라면 발코니에 앉아서 비를 바라본다. 꼭 음료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 마빈 게이의 음악이 있다면 더 좋다.



비가 오면 당연하지만 우산을 써야 한다. 우산은 별거 아닌 물품인데 비가 내리면 반드시 찾아서 들어야 하는 물품이다. 우산은 써야 하는 이유가 확실한 물건이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우산을 유심히 바라보면 연령대별로 들고 다니는 우산의 형태(라고 말해야 할까)가 다 다르다. 디자인이 확고하게 다른 것이다. 아직까지 남자들은 사용하는 우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우산도 비를 피하는 적확한 용도만큼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하면 많아졌다.


비가 오는 날 이층의 카페에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면 컬러나 조금씩 다른 모양의 우산들이 총총걸음을 옮기고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움직인다. 어떤 우산은 뱅글뱅글 돌아가기도 한다. 그 우산은 비교적 다른 우산에 비해 작다. 우산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어떤 이는 비가 오면 우비를 입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우비를 입고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난다. 비가 오는 와중에 찝찝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여자들의(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우 머리가 망가진다. 기껏 고대기로 말아 놨는데 우비를 입고 우비에 딸린 모자를 스고 약속 장소까지 가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머리카락은 미역처럼 머리에 뜩 붙어있고 땀 때문에 팔을 들 때마다 겨드랑이에 흐른 땀은 그 사람과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우산 없이 집 밖을 나왔다가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우산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왕이면, 하는 마음이 든다.



노래에도 있듯이 우산은 종류도 많다. 3단 접이식, 2단 접이식, 장우산 등 여러 가지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한 우산에 대해서 블로그를 통해서 사용 후기를 적어 올리고 공구를 하고도 한다.


비는 지구가 생선 된 이후로 꾸준하게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구는, 인류는 큰일을 당하게 된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는데, 도대체 우산은 누가 만들었을까. 분명 우산을 처음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만들어진 시대의 우산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편리한 물품 전체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냉대를 받았거나 소외당했다.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우산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다 하루키의 ‘더 스크랩’에 세상에 탄생한 첫 우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제일 처음 우산을 쓰고 런던 거리를 걸었던 영국인에게 인생은 결코 달콤한 장미정원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조나스 한웨이라는 박애주의자로, 때는 서기 1750년의 일이다. 우산이 널리 일반에게 퍼지게 된 것은 그 후로 약 삼십 년 뒤이니, 그 삼십 년 동안 한웨이 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차를 타든가, 아니면 신의 뜻대로 비를 맞고 다녀!” 하는 식의 비난 세례를 받았다. 18세기 영국에서 우산이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남자들 대부분이 칼을 차고 다녀서였다. 우신이란 건 상당히 우스꽝스럽고, 무엇보다 우산과 칼을 둘 다 갖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펴고 다니는 모습은 사람들 눈에는 뭔가 비열해 보였던 것이다. 19세기가 되어서 사람들은 겨우 칼을 들고 다니기를 그만두고, 대신 지팡이를 갖고 다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우산은 남자다움이라는 점에서 몇 단계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1852년에 요크셔에 사는 새뮤얼 폭스라는 남자가 요즘 사용하는 금속 뼈대의 우산을 발명하여, 둘둘 말아서 단단하게 접어 날씬한 우산 집에 넣도록 연구했다. 덕분에 그것은 칼집에 든 칼이나 지팡이라고 해도 충분히 통할 정도의 모양새가 되어, 사람들은 비로소 우산을 인정해도 좋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고작 우산 하나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역사가 있는 법이다. 제일 처음 전철에서 워크맨을 들었던 선인의 고충이 짐작된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우산 가게는 스웨인 아데니 브리그&선스(이하 브리그로 줄임)로, 이 가게는 왕실에도 조달한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최대한 단단하게 감긴 우산이야말로 신사의 긍지라고 믿는 적잖은 수의 영국인들이, 우산을 빨고 다림질하고 단단하게 말기 위해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우산을 들고 브리그 문을 두드렸다. 브리그 우산은 절대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다. 수북하게 밥을 다은 밥공기 같은 모양으로 둘이 같이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혼자 쓰면 비에 잘 젖지 않는다. 한 개의 우산을 만드는 데 브리그에서는 여덟 명에서 열 명의 직인이 세 시간을 들인다. 가장 싼 나일론 모델이 약 15,000엔이라고 하니 그 정도라면 우리도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최고급품은 14만 엔 정도.


하루키가 적어 놓은 소설 이외의 글은 읽고 있으면 어떻든 재미가 있어서 키득거리게 된다. 검색으로도 우산의 유래 같은 것을 잘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흘러 들어와 비가 오면 들고 다니게 되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가 있다.


우산이 귀찮아서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일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고 특별하게 여기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반드시 우산이 있고 우산공장에서는 비가 많이 내릴수록 룰루랄라 하며 우산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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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아니다. 일하러 갈 시간이라고 알리는 자명종 시계 소리다. 루카의 집은 정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지저분하고 비좁은 곳이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안식처다.


 비비안은 할리우드에서 길거리 생활을 한다.


 친구인 루카의 집에 살며 집세를 내지 못해서 주인과 마주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집세를 내기 위해 변기 안에 돈을 숨겨놨지만 루카는 약을 사기 위해 그 돈을 가져가 버렸다. 약과 남자에 취해 비틀거리는 루카를 나는 사랑한다.


 할리우드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둠이 하늘을 덮고 네온이 거리의 불을 밝히는 시간에 나온 남자들은 나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고객들이다.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루카는 이곳의 생리를 잘 안다. 구역을 지키지 않으면 루카는 몹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루카는 나에게 늘 포주를 구하라 하지만 나는 사실 이 생활에 불만은 없지만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자가 걸려들었다. 4기 통 스포츠카를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몰고 있다. 비비안은 에드워드가 수동기어를 운전하지 못해 정차해 있는 곳으로 가서 가격을 흥정했다. 이 남자는 차분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남자는 딱 봐도 바람둥이에다 잘 배웠고 옷도 멋지게 입고 맵시도 좋다. 친절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남자는 잘 생겼다. 길거리 생활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다. 남자는 리전트 비버리힐즈라는 호텔의 길을 물었다. 오케이! 남자에게 돈을 긁어낼 구실을 찾았다.


 비비안은 에드워드의 운전 실력을 나무랐고 에드워드는 도저히 수동기어로는 운전을 하지 못해서 자리를 바꾸었다. 좋아, 멋지게 운전을 해주지. 라며 비비안은 핸들을 돌렸다.


 이 남자 처음 타 보는 스포츠카의 코너링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비비안에게 시간당 얼마냐고 묻는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100달러라고 해버렸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놀라는 얼굴도 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기어를 잡은 비비안의 왼손이 에드워드의 바지 앞섶에 닿았다. 이 남자 놀라지도 않는다. 말투 끝에는 ‘정중’이 늘 붙어있고 태어나서 단 한순간도 씨발, 라는 욕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 같다. 하지만 이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나는 그동안 그것에 대한 훈련을 착실히 해왔다.


 오 맙소사. 호텔이 아니라 궁전이었다. 살면서 처음 와 보는 세계였다. 하지만 호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리 터분한 얼굴이고 고리 터분한 옷을 입고 고리 터분한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에드워드와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데 마치 동네의 털 빠진 개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고리 터분한 중년의 남녀 한 쌍이 고리 터분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만 다리를 휙 올려 중년의 남자에게 나의 허벅지를 보여줬다. 중년의 남자는 고리 터분한 얼굴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부인의 얼굴은 더 고리 터분하게 변했다. 이곳에도 재미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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