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키는 가난하다. 더 이상 가난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집’이라 부를 수도 없는 집에서 엄마 없이 사는 디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다. 오늘도 꿰맨 신발을 신고 등교하는 디키. 언제나 모두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따쟈 하오. 디키를 멸시하는 남자 선생님, 디키를 감싸주는 여자 선생님. 여자 선생님은 디키의 얼굴을 닦아주고 아빠를 만날 수 있게 말해달라고 한다. 예쁜 여자 선생님의 이름은 유엔

명문 사립학교에서 디키는 가장 꾀죄죄하고 아주 더럽지만 제일 밝다. 영화 장강 7호에서 야심차고, 못돼먹고, 철면피에 욕심 많은 이 친구. 집도 부자에 싸가지가 없다. 여러모로 디키와 대비된다. 역시 디키를 괴롭힌다. 모두가 선생님에게 커서 부자나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디키는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 가난해도 사람들한테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런 디키를 비웃는다. 딱 한 친구만 빼고

남자 선생님은 디키를 아주 벌레 보듯 대한다. 그래도 디키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싸가지는 세상에서 두 개뿐인 장난감 장강 1호를 가지고 있고 친구들을 업신여긴다. 밥 많이 먹는 뚱보 친구를 약 올리는데 디키가 막아준다. 하지만 싸가지와 일당들은 디키를 거지라며 꺼지라고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체육시간이지만 디키는 운동화가 다 떨어져서 벌을 서야만 했다. 아빠에게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지만 아빠는 그럴 여력이 안 되고 디키는 속상하다

무더위에 잠을 잘 못 자는 디키를 위해 아빠는 선풍기를 쓰레기장에서 주워왔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두 팔을 뻗을 수 있는 것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쓴다. 요컨대 이렇게 바퀴벌레 잡기 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 이때 흐르는 중국 풍의 배경음악이 화면과 잘 어울린다. 가난하지만 절대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라, 싸우지 마라, 아빠는 디키에게 매일 이 말을 한다

티브이가 없는 디키 부자는 길거리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유에프오 인터뷰 방송을 보게 된다. 같이 보던 디키가 장난감 가게에 가서 장강 1호를 아빠에게 사달라고 한다. 너무 가지고 싶다. 이거 하나만 사주면 다음부터는 뭐 사달라 하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아빠. 장난감 가게 안에서는 아이에게 마음껏 장난감을 사주는 다른 집을 본다. 아빠는 장강 1호를 놓지 않는 디키를 때리고 만다

밖으로 나온 아빠는 디키가 유엔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본다. 유엔 선생님 앞에서 마음을 여는 디키. 아빠에게 가지 않고 유엔 선생님에게 안기는 디키. 유엔 선생님은 디키를 위해 가정방문을 했으면 한다. 집으로 들일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은 착잡하다. 선생님은 가야 한다, 디키는 뚱해있지 말고 아빠 말 잘 들어라고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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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디저트란 무엇인가.


디저트가 나오기 전까지 먹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코스요리를 전부 딜리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나오는 순간, 쳐다만 보고 있어도 능변하는 자태에 시선을 빼앗겨 계속 미소 짓게 만드는 것.
접시의 공간을 건축학적으로 살리고, 여백을 요리사의 영역으로 마음껏 연주하여 활용한 것.
무엇보다 당뇨의 기운을 뇌 속의 뉴런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진하고 단 것.
내 앞에 놓이는 순간, 같이 온 일행 따위가 하는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
셰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노력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무라카미 류의 말을 빌리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야. 파우스트도 그랬지만, 책을 열기 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라는 것. 또 “빌리스 바는 24블록, 애버뉴 오브 아메리카에 있는 토플리스 바 다. 피와 골수 소스 위에 놓인 오리가 날라져 왔다.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냈다가 잊어버린 자신의 내장 일부를 몸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듯한 감각적이었다. 이렇듯 지구에서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치는 베르사체를 능가하고 내 하루 세끼 식사비보다 더 비싼 것”라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런 디저트를 맛볼 수 없다. 몇 해 전에 유행을 탄 ‘리리 케이크’도 한 번 먹어보지 못했다. 리리 케이크는 광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위에 열거한 만큼은 아니지만 리리 케이크 정도면 훌륭한 디저트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디저트는 그 정도를 먹을 수 있고 그 정도의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한 디저트에 관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라면은 무엇인가.


최근 2년 동안 라면을 그 이전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되었다.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빠져 버렸다. 라면을 끓이는 물은 판매용 곰탕 한 봉지에 물을 좀 더 부어서 끓인다. 거기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김치 조금과 파를 썰어 넣는다. 햄이 있다면 넣고 없다면 다른 재료, 요컨대 냉동 물만두 작은 것들을 넣거나 목살이 있으면 넣는다. 다 끓이고 나면 마지막에 다진 마늘을 요만큼 넣는다. 그렇게 들어가는 재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2년 동안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들려 여러 가지의 식재료와 여러 종류의 라면을 돌아가면서 끓여 먹게 되었다.


라면을 끓일 때 빠지지 않고 넣은 건 방울토마토였다. 방울토마토는 그냥 생으로 먹는 것보다 컵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도 넣어서 먹는데 흐믈흐믈 뜨거울 때 먹는 방울토마토가 아주 맛이 좋다. 짜파게티를 먹을 때에도 방울토마토를 같이 넣어서 끓여 먹으면 약간의 신맛이 나면서 맛의 풍미가 더 올라오는 것 같다. 좀 수고스럽지만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들려 갖은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 먹다 보니 어쩐지 라면이 가지고 있는 그 단단한 맛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일전에 사촌동생과 함께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정말 많은 음식이 있었는데 콩나물국밥과 짜장면과 해물탕이나 잡채밥 등 많이 있었다. 라면도 떡라면, 오징어 라면 무슨 무슨 라면 등 종류가 많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냥 라면을 주문했다. 라면은 그저 라면이었다. 안성탕면을 끓이고 계란이 풀어져 있을 뿐이었다. 한 젓가락 먹었는데 새삼 알게 되었다.


라면의 맛이란 건 이런 것이구나. 라면 본연의 맛. 잊고 있었던 라면의 맛이었다. 그저 물에 라면만 넣고 끓인 맛이었지만 훌륭한 맛이었다.


능력이 좋고 논리 적이며 언어에 뛰어난 사람은 당연히 훌륭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단단한 마음만으로 진심이 전달되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거짓된 마음이 드러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라면만큼 꽤 많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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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가족이라는 유튜브가 있다. 시골 가족 유튜브는 한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것뿐이다. 

여타 먹방처럼 과하거나 확장됨이 없이 한 가족이 밥상을 놓고 빙 둘러앉아 소박한 밥 한 끼를 먹을 뿐이다


그럴 뿐인데 이 소박하고 조용한 한 끼 밥상의 조회수는 엄청나다. 그저 밥에 무채와 계란을 넣고

 비볐을 뿐인데 50만 회가 넘고, 계란 프라이와 김치와 찌개를 먹을 뿐이지만 180만 회가 넘는다.

 시골 가족의 모든 영상이 그렇다


그리고 댓글 대부분이 ‘나도 저기에 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시골 가족의 한 끼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소박한 밥상에 끼고 싶어 진다. 이 

가족만의 소담스러운 식사에는 웃음이 있고 배려가 있다. 무엇보다 행복이 오소소 밥상 

위에 떨어져 있다. 보고만 있어도 보는 이들의 마음이 정화된다. 저절로 힐링이 된다


시골 가족은 총 여섯 명이다. 시집 간 큰 언니를 빼고 큰 오빠도 같이 식사를 했는데 군대를 갔다. 밥을 먹으며 건네는 

한 마디가 왜 그런지 마음을 주무른다. 사람들이 시골 가족에게 열광하는 건 뿔뿔이 흩어져 

혼밥족들이 많아진 탓이다. 가족이 있어도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먹을 수 없고 같이 먹는 

시간은 지옥 같은 시간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잔소리에, 부부싸움에, 윽박지르는 오빠에,,,,, 식사는 혼자 하는 게 편하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해버렸다. 이 시대에 얼어 죽을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어? 편하게 내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깨끗하게 사는 게 낫지, 라며 생활하던 사람들은 실은 단란하게 둘러앉아 웃으며 

밥을 먹고 싶은 거였다


시골 가족의 밥상에는 강요가 없다. 엄마가 미역국을 금세 먹고 나면 막내가 많이 남은 

자신의 미역국을 엄마에게 건네준다. 이게 뭐라고 찡하다. 영상에는 광고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광고를 넣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힐링을 주던 

시골 가족의 밥상이 이제 이전처럼 영상이 올라오지 않을 거라고 한다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리던 큰 딸이-큰 딸은 화면으로 봐서 알겠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중3이거나 고1쯤으로 봤는데- 이번에 간호대학에 가게 되어서 영상을 

이전처럼 일주일에 2번씩 올리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아아 정말 안타깝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짜증 나고 그 사람과 같이 먹는 식사가 맛이 없다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반면에 그 사람, 또는 그 사람들과의 식사시간이 기다려진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은 

잠시뿐이지만 행복한 시간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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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허슬은 봐도 봐도 새롭고 재미있다. 이후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를 미친 듯이 기다리지만 꼭 주성치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 감독으로 주성치의 영화가 나와도 좋다. 주성치는 실제로는 아주 과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건 짐 캐리도 마찬가지다

주성치는 동료들과도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한다. 주성치는 어린 시절 아주 소심한 성격에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랐다. 누나 두 명과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엄마는 아이 셋을 데리고 홍콩의 구룡인가,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빈민촌은 높은 아파트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으로 주성치는 쿵푸 허슬에서 돼지촌을 그렇게 표현했다. 바짝 말랐고 말 수가 적고 누나들을 배려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주성치의 엄마는 하루에 3건의 일을 하며 아이들을 겨우 먹여 살렸는데 먹을 것이 있으면 아이들을 먼저 먹였다

하루는 돈을 모아서 고기반찬을 만들어서 식탁에 내놓았다. 그때 늘 누나들을 배려하던 주성치가 고기반찬을 보더니 허겁지겁 입으로 쑤셔 넣었다. 엄마는 좀 놀랐지만 평소에 고기를 먹지 못했고 늘 누나들에게 양보를 하니 주성치가 고기를 많이 먹게 놔두었다

그런데 주성치가 고기를 입 안에 가득 넣어서 몇 번 씹더니 접시에 뱉어 버렸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엄마는 놀라서 애가 고기를 못 먹다가 먹어서 그런가, 뱉어버린 고기를 버리기 아까워서 엄마가 주워 먹었다

시간이 흘러 고기 먹는 날, 우리나라로 치면 명절 같은 그런 날에 돈을 빌려 고기를 구워 식탁에 올렸다. 누나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주성치가 또 고기를 허겁지겁 입에 넣어서 조금 씹다가 뱉어 버렸다. 이번에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회초리를 들었다. 누나들이 울면서 말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주성치가 배우로 이름이 알려져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에 어머니와 나란히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그때 그 일을 에피소드로 말하게 되었다

그때 주성치는 그 일을 회상하며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머니는 고기를 전혀 먹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게 주성치의 표현 방식이었다. 어릴 때부터 엉뚱하고 남달랐고 생각이 기이했지만 주성치의 표현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주성치의 영화를 보면 엄청 웃긴데 묘하게 찡하게 오는 무엇인가가 있다. 희극지왕에서도 장바이즈에게 했던 대사는 주성치가 만난 첫사랑과의 대화를 그대로 넣었다고 한다. 당시 무명이었던 주성치는 첫사랑이었던 그녀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며 안타깝게 헤어졌는데 영화에 녹여냈다. 희극지왕을 봐도 웃긴데 슬프고 기묘하다. 극 중 막문위의 이름도 그녀의 애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주성치를 찾아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이수현 사단에 들어가서 누아르부터 출발하여 삐걱거리며 뛰쳐나와 또 다른 사단에 들어가서 주성치의 이름으로 오르기까지의 일화들. 삼합회가 주성치를 캐다나로 못하게 하고 완벽주의자인 주성치는 한 장면 한 장면에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해서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것까지

하지만 주성치의 모든 작품을 본 팬들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회사에서 오기만을 기다리는 4세 아이처럼. 쿵푸 허슬 같은 영화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하는 심정으로. 주성치의 영화 속 의자는 앉는 게 아니라 집어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뭔가가 있다.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은 설명해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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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만 음악영화는 정말 재미있어서 빠져서 보게 된다. 애덤 르바인의 비긴 어게인도 좀비를 때려잡던 엠마 스톤의 라라 랜드도.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한 줄 평을 ‘엘리는 잭슨에게 사랑을, 잭슨은 엘리에게 세상을 선물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일반인이 한 줄로 영화를 이렇게나 간결하고 멋지고 힘차게 표현을 잘했을까


잭슨의 브레들리 쿠퍼는 정말 저세상 텐션으로 잭슨을 연기했다. 기타를 들고 블루스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마치 에릭 클랩튼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에릭 클랩튼의 노래를 오랫동안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에릭 클랩튼이 비비 킹과 협연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유튜브에게 정말 감사한다. 에릭 클랩튼과 비비 킹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 손에는 정말 알 수 없는 위스키를 들고 마셔가며 들어야만 할 것 같다. 뿌옇고 희미하고 황폐한 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은 연주다


에릭 크랩튼의 젊은 시절에는 영화 속 잭슨처럼 기타를 들고 블루스 연주를 하며 전 세계를 누비며 노래를 불렀다. 에릭 클랩튼 이야기도 이곳저곳 많이 해 버려서 할 때마다 또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의 수많은 기타 연주자들, 헤비메탈의 속주 기타나, 나는 기타 좀 친다고 하는 기타리스트들이 따라 하고픈,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 에릭 클랩튼이다


에릭 클랩튼은 15세에 런던의 음악 퍼브를 평정해 버렸다. 그때 당시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는 기타 코드의 F를 못 쳐서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조지의 친구였던 에릭 클랩튼은 절대 빌려주지 않는 자신의 기타를 조지에게 줘 버리기도 하고, 조지 헤리슨의 유명한 노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만들 때 옆에서 도움을 줬다. 덕분에 둘 사이는 인형 같았던 조지의 아내인 패티 보이드도..... 아마 조지는 인도 여행 후 머릿속 뇌에 어떤 정신적 칼침을 맞았는지 세상을 물질로 보는 시각에서 완전하게 정신으로 보는 시야를 장착하게 된다


어떻든 에릭 클랩튼의 90년대 이전, 젊었을 적 공연 모습을 보면 잭슨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에릭 클랩튼은 아들의 추락사 이후 만든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에릭 클랩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에릭 클랩튼이 한국에 대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예전에 한국 공연을 왔을 때 그 전날 시간이 남아서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한 시간 정도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 다행인지 거리의 멋진 젊은이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편하게 있다가 왔다고 했다. 아마 다른 나라였다면 셀카도 찍자고 하고 몰카도 찍고 말을 걸어서 개인적인 시간을 박탈당했을지도 모른다


스타 이즈 본에서 초반 장면에 엘리와 잭슨이 만나 잭슨도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치러야 한다. 레이디 가가의 베드 로맨스 앨범이 하나 있다. 그 앨범을 엄청 들었던 기억이 있다. 레이디 가가를 그 당시 봤을 때 죽어버린 에이미 와인 하우스도 떠오르고 요즘은 뭘 하는지 모르는 ‘홀‘의 코트니 러브의 모습도 보였다. 코트니 러브는 커트 코베인의 아내였다


그 당시에 레이디 가가의 인터뷰가 생각이 나는데 성적 욕구는 팀의 남성 멤버들과 돌아가면서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런 엘리와 잭슨이 만나 음악 영화를 만들었고 음악 이야기가 되었다. 이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엘리가 무대에서 얕은 곳에서 멀리 벗어나 깊숙한 곳으로 뛰어드는 나를 보라고 노래를 부를 때 울컥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잭슨의 뒤를 돌봐주는 매니저는 그의 형이다. 이런 관계는 실제로 히데를 보는 것 같다. 히데가 살아있을 당시 히데의 무대, 공연, 노래, 이동 등 모든 것을 관리했던 히데의 동생은 일을 못하면 모진 수모를 들어야 했는데, 이 이야기는 길기 때문에 다음에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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