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가운데 쉬는 날이 되면 봄 날의 햇살을 잔뜩 받으며 어촌의 골목길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게 몇 해 전까지의 봄이 오면 나만의 출사 

방법이었다. 어촌이라고 하지만 

광역시로 오래 전의 골목의 모습은 이제 대부분 개발되어서 

사라졌고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래도 차를 버리고 

발품을 팔아 입을 다물고 걸어서 다니면, 

제법 골목길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사진으로 담으면 기분이 좋다.


봄은 골목으로 가장 먼저 온다. 골목의 담벼락과 갈라진 틈으로 어김없이 

봄의 정령은 꽃을 피워 올린다. 고등학생 시절 봄이 되면 아직 겨울의 때를 

벗지 못한 골목의 축축한 틈에서 잡초가 올라오는 모습을 담곤 했다. 

감성이라기보다 사진부 선배들에게 맞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봄을 담으려 

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이며 선배라는 건 당시에 아주 기이한 존재로 

선배에게 맞으면 선생님에게 맞는 것의 몇 배는 더 고통을 느꼈다. 

다리에 멍이 파랗게 드는 것이 아니라 빨주노초파남보로 든다.



겨울 외투를 휙 벗어던진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따뜻한 온기가 

스며있다.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냉이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고 마당의 

화덕에서는 고등어를 굽는 냄새가 골목 구석구석 퍼진다. 이런 모습이 내 

머릿속을 이루고 있는 어린 시절의 골목의 풍경이다.


골목에 서 있으면 겨울 동안 굳어있던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작은 음식에도 

만족을 느낀다. 

몇 해 동안 봄의 골목을 가득 담은 사진이 꽤 있는데 이제 사진에서만 

존재하는 골목들이 많아졌다. 사진을 보면 봄은 골목으로 

가장 먼저 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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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티가 상영했을 때 하루키는 에스콰이어 지를 비롯해서 이티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적었다. 지겹도록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1983년 8월에도 하루키는 이티의 이야기를 적었다.


스필버그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수취인은 물론 스필버그가 아닌 이티다. 아이들은 이티에게 초대를 하기도 했고, 과자가 없어졌는데 네가 먹은 게 아니니?라고도 했고, 제발 그 옷만은 입지 말아 달라고도 했고, 네 덕분에 네 흉내만 내고 살아서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변태로 본다는 편지도 있었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초현실 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 토미 앤드리언이라는 20세의 자폐증 환자의 어머니가, 아들이 이티를 본 후로 겨우 바깥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며 쓴 감사 편지가 실려 있었다. 고 하루키는 소개를 했다.


[전략] 아들은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웃고, 그리고 울었습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폐증 환자는 자신 때문이든 타인 때문이든 절대 울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토미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티에 관해 쉬지 않고 얘기했습니다. 토미는 이티를 세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타인과 손가락을 맞추고는 진지한 얼굴로 ‘아우치’라고 합니다. 이티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아들이 드디어 자신 이외의 무언가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토미 자신이 별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고향인 별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이티처럼요. - 캘리포니아의 가든그로브에서, 앤 앤드리언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잘 말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하루키의 글을 지금도 헥헥 거리며 기다리고 있고 스필버그는 최근에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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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다. 어렵고 힘들수록 지치지 않고 호텔 풀 사이드 수면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호러블 한 곳곳에 유머가 있어야 한다. 여자에게 어떤 남자가 좋으냐고 물어보면 유머가 있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라 한다. 늘 심각하고 매일 진지한 사람이 답답하기까지 하면 맙소사다. 재미없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더러 있다

히트맨은 권상우와 황우슬혜의 대환장 코미디 영화다. 물이 빠진 임창정 식 코미디보다 낫다. 권상우 식 코미디는 가능성을 열었다. 꼭 심각하고 멋진 모습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짐 캐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보면 된다

이병헌과 하정우가 백두산의 폭발을 막고 하정우와 김남길이 벽장에 갇힌 아이를 구하는 심각한 영화보다 권상우의 코미디 선택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코미디언들이 무대에서 했던 공개방송이 공중파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공개방송의 코미디언들이 왜 공중파에서 사라져 버렸을까. 공개방송에 무대 하나를 올리려면 대학로 같은 곳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거기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한다. 보통 집은 잠만 자러 간다

다행히 공채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이 집이 서울이면 괜찮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다. 단체생활이 편할 수 없다. 하루 종일 회의하고 리허설하고 잠이 오면 쪽잠 자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고 짜장면 배달해서 먹고. 집은 대체로 남자 대학생의 자취방처럼 퀴퀴하다

그러다 공중파 개그 프로그램의 무대에 오르게 되면 몇 주는 티브이에 얼굴이 나오게 된다. 인기가 오르지 못하면 무대를 내려와야 하지만 인기가 죽 올라가 대박이 터지면 몇 달을 그 무대를 하게 된다. 요컨대 MBC 개그야에서 김미려의 ‘사모님’이나, SBS 웃찾사에서 ‘그런 거야’나 ‘화상고’ 등이다

이렇게 전 국민에게 인기를 받으면 광고가 들어오고 행사가 들어온다. 공개방송의 무대에 오르는 몇십 배에 달하는 돈을 거머쥐게 된다. 거기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1도 없을 것이다. 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배고프고 힘든 단체생활을 하며 보냈다. 서로 안스럽고 딱하고 돈이 없어 차비에 벌벌 떨다가 이곳저곳에서 부르면 다음을 준비하는 무대 회의를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 사모님이 무대를 내려올 때 그만큼 대박을 터트리는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 그저 그런 무대만 공중파에 오른다. 이렇게 인기가 대체로 떨어지면 시청률이 곤두박질 친다. 그러면 공중파에서는 마지막으로 자본을 풀어 거대 게스트를 섭외한다. 가령 해외 유명 배우나, 도저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스포츠 스타, 잘 나가는 걸그룹 중 한 두 명을 부른다

그 이후에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으면 방송국에서 할 만큼 했다며 프로그램을 폐지하게 된다. 자본이 손을 내밀었을 때 뿌리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걸 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단지 다른 코미디언들, 후배나 다른 선배 또는 동료가 그 무대를 대처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기에 시청자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공중파에서 사라진 코미디언들은 유튜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시트콤을 제작해서 방송하는 팀이 있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개그를 펼치는 팀도 있다. 같은 동료들끼리 뭉쳐서 개그를 하기도 한다. 물론 베끼기식 주작 몰카나 ‘미녀 여사친’ 같은 말을 앞세워 내내 몸매 드러나는 식상한 방송만 하는 개그맨도 있다

흔한 남매 같은 경우는 유튜브로 이동해서 정말 대박을 친 케이스다. 흔한 남매는 꾸준하게 티브이에서 하던 콘셉을 유튜브로 옮겨와서 제작을 하더니 EBS에서 방송을 타고 결국에는 책까지 나왔는데 재미가 좋아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흔한 남매의 캐미가 좋은 건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는 코미디언들은 서로의 집에서 방송을 담기도 하는데 남자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개그맨들의 방은 대체로 위에서 말한 대학생의 자취방 같다. 유민상의 집 같지는 않다. 썩 깨끗하지 않고 지나치게 자유스럽다. 널브러져 있고 음식물 찌꺼기가 곳곳에 있다. 이들은 여전히 힘들어 보이지만 그들 전반에 깔린 기저는 타인에게 웃음을 주면 그만이야, 같은 분위기다

어떤면으로 티브이에서 매주 한 번씩 보던 코미디언의 프로그램을 서울에서는 운 좋으면 카페에서, 공원에서, 길거리에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구끼리 유머가 사라지면 암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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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세탁소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는 적당히 판타지 영화이고 적당한 드라마가 있고 적당히 클리셰가 있는 영화다. 귀신이 보이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삼촌(오다기리 죠)이 귀신이 못 빠져나간 집에 들어가서 살며 부동산 어쩌고 하는 영화다. 조용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판타지지만 벽 짚고 지랄 옆차기 같은 재미는 없다

오다기리 죠(이하 오다기리)는 언젠가부터 늘 이른 모습에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오다기리 특유의 그 표정과 발음으로 대사를 한다. 그게 이상하다던가 별로라던가가 아니라 어쩐지 비슷하게 나오는데 또 보다 보면 그 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고 그렇다

오다기리도 키아누 리브스처럼 예수 스타일, 노숙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그게 아주 멋지다. 멋있다고 해서 따라 했다가는 요즘 너도나도 따라 하는 박새로이 머리로 주위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오다기리는 잘 생기고 멋있어서 그런지 부인도 참 예쁘다

오다기리가 나온 영화 중에 가장 이상했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왔을 때다. 그 영화에는 이성재도 나오고 장근석도 나온다. 그리고 오다기리의 애인으로 후지이 미나가 나온다. 후지이 미나는 후에 사람들에게 강간당하고 오디기리는 죽는다. 그 영화는 초현실 영화로 여객선이 갑자기 바다 위를 떠올라 공중 부유를 하더니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속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서열이 정해지며 여자는 남자들의 노예처럼 되고, 뭐 그런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오다기리는 그 영화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일본 영화에서처럼 ‘난데?”라고 멋진 발음으로 말하지만 어이없게 칼에 찔려? 죽는다

영화 속에서 삐딱하지만 인간적이었던 오다기리의 모습은 ‘행복 목욕탕‘에서였다. ‘행복 목욕탕‘은 하나하나 떼어내서 보면 우리나라 막장 아침 드라마를 죄다 끌어모아 만들었는데 참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또 고레에다 감독이 만든, 아들과 벽이 없이 지내는 모습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족 간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마음 세탁소는 비교적 최근의 영화로 오다기리는 최근의 드라마에서도 노숙자 스타일로 저렇게 나온다. 오다기리를 보고 있으면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위 사람들도 잘 모르지 않을까. 오다기리는 늘 저런 모습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꼬박꼬박 등장해 묘한 지점에서 웃음을 주지만 2015년에 둘째 아들이 장폐색으로 죽었다. 보기에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오다기리의 이 부부도 산보다 큰 아픔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정말 좋아해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르는데 아이들은, 어린이는 말고기 대신 말고기 맛이 나는 과자를 먹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을 한다. 따지고 보면 기적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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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과의 관계가 깊은 나라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많은 나라들이 코비드 사태 진압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 30일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 알리 총리가 한국과의 정상 통화를 요청했다. 아직 에티오피아는 26명의 확진자 밖에 없지만 아프리카는 본격적인 증가 추세로 넘어가고 있다. 그로 인해 문제는 막대한 경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예상되고 있다


아비 총리는 전화 통화에서 형제 국가의 대응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 접촉자를 끝까지 추적해 치료하는 모범적 대응이 인상적이다며 한국의 발 빠른 대응을 극찬하는가 하면 대응 노하우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했다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에티오피아는 꼭 도와야 한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에티오피아를 반드시 도와야 하는 나라로 꼽았을까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을 통해 한국을 전투 지원했던 16개 국가 중 하나였다. 에티오피아는 과거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국제연맹에 이탈리아의 부당한 침략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외면당하고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때의 아픔을 잊지 않았던 셀라시아 황제는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당한 이유로 침략을 받는 나라가 있다면 반드시 도와야 한다며 에티오피아 내부에서 일부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음에도 1950년 8월 파병을 결정했다


황제는 에티오피아군의 정예부대인 황실 근위대에서 지원자를 뽑아 ‘강뉴 부대’를 만들었다. 강뉴 부대의 강뉴는 ‘Kangnew’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셀라시아는 강뉴 부대 파병 전 부대를 향해 이같이 말했다


가거라!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 전사하거라.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안겨주어라.

우리 민족이 과거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고통을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면 그것은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이렇게 황제의 명으로 한반도에 파병된 강뉴 부대는 6,037명. 3개 대대로 나뉘어 파병되었다. 121명의 전사자, 536명의 부상자를 낳았지만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하였다


강뉴 부대는 또 그들 자신의 월급을 모아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차렸다. 에티오피아 강뉴 부대는 한국과 미국의 부대표창을 모두 수여받았는데 이때의 의리를 잊지 않고 코비드 사태에 에티오피아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국인들은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의리를 지킨 미국이나 아랍에미리트, 루마니아 등의 국가는 이미 지원을 받으며 사태를 통제하고 있고 한국의 우선순위에 들어있는 다른 국가들 역시 하나 둘 지원을 받으며 사태를 진압해 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을 무시하기만 했던 중국, 일본, 베트남, 스웨덴 등의 국가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태의 악화 속에서도 손 놓고 지켜만 보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보통 선진국이나 국가 간의 질서는 세계대전 이후 결정이 되었다


기존의 선진 국민이라 불리며 높은 수준으로 생활하는 선진국도 불같이 확장하는 감염병 앞에서는 질서가 무너지고 사재기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세계의 질서 추이는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인이 이전만큼 무시당하거나 한국을 변방의 작은 나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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