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세탁소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는 적당히 판타지 영화이고 적당한 드라마가 있고 적당히 클리셰가 있는 영화다. 귀신이 보이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삼촌(오다기리 죠)이 귀신이 못 빠져나간 집에 들어가서 살며 부동산 어쩌고 하는 영화다. 조용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판타지지만 벽 짚고 지랄 옆차기 같은 재미는 없다

오다기리 죠(이하 오다기리)는 언젠가부터 늘 이른 모습에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오다기리 특유의 그 표정과 발음으로 대사를 한다. 그게 이상하다던가 별로라던가가 아니라 어쩐지 비슷하게 나오는데 또 보다 보면 그 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고 그렇다

오다기리도 키아누 리브스처럼 예수 스타일, 노숙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그게 아주 멋지다. 멋있다고 해서 따라 했다가는 요즘 너도나도 따라 하는 박새로이 머리로 주위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오다기리는 잘 생기고 멋있어서 그런지 부인도 참 예쁘다

오다기리가 나온 영화 중에 가장 이상했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왔을 때다. 그 영화에는 이성재도 나오고 장근석도 나온다. 그리고 오다기리의 애인으로 후지이 미나가 나온다. 후지이 미나는 후에 사람들에게 강간당하고 오디기리는 죽는다. 그 영화는 초현실 영화로 여객선이 갑자기 바다 위를 떠올라 공중 부유를 하더니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속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서열이 정해지며 여자는 남자들의 노예처럼 되고, 뭐 그런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오다기리는 그 영화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일본 영화에서처럼 ‘난데?”라고 멋진 발음으로 말하지만 어이없게 칼에 찔려? 죽는다

영화 속에서 삐딱하지만 인간적이었던 오다기리의 모습은 ‘행복 목욕탕‘에서였다. ‘행복 목욕탕‘은 하나하나 떼어내서 보면 우리나라 막장 아침 드라마를 죄다 끌어모아 만들었는데 참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또 고레에다 감독이 만든, 아들과 벽이 없이 지내는 모습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족 간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마음 세탁소는 비교적 최근의 영화로 오다기리는 최근의 드라마에서도 노숙자 스타일로 저렇게 나온다. 오다기리를 보고 있으면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위 사람들도 잘 모르지 않을까. 오다기리는 늘 저런 모습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꼬박꼬박 등장해 묘한 지점에서 웃음을 주지만 2015년에 둘째 아들이 장폐색으로 죽었다. 보기에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오다기리의 이 부부도 산보다 큰 아픔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정말 좋아해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르는데 아이들은, 어린이는 말고기 대신 말고기 맛이 나는 과자를 먹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을 한다. 따지고 보면 기적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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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과의 관계가 깊은 나라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많은 나라들이 코비드 사태 진압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 30일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 알리 총리가 한국과의 정상 통화를 요청했다. 아직 에티오피아는 26명의 확진자 밖에 없지만 아프리카는 본격적인 증가 추세로 넘어가고 있다. 그로 인해 문제는 막대한 경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예상되고 있다


아비 총리는 전화 통화에서 형제 국가의 대응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 접촉자를 끝까지 추적해 치료하는 모범적 대응이 인상적이다며 한국의 발 빠른 대응을 극찬하는가 하면 대응 노하우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했다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에티오피아는 꼭 도와야 한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에티오피아를 반드시 도와야 하는 나라로 꼽았을까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을 통해 한국을 전투 지원했던 16개 국가 중 하나였다. 에티오피아는 과거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국제연맹에 이탈리아의 부당한 침략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외면당하고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때의 아픔을 잊지 않았던 셀라시아 황제는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당한 이유로 침략을 받는 나라가 있다면 반드시 도와야 한다며 에티오피아 내부에서 일부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음에도 1950년 8월 파병을 결정했다


황제는 에티오피아군의 정예부대인 황실 근위대에서 지원자를 뽑아 ‘강뉴 부대’를 만들었다. 강뉴 부대의 강뉴는 ‘Kangnew’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셀라시아는 강뉴 부대 파병 전 부대를 향해 이같이 말했다


가거라!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 전사하거라.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안겨주어라.

우리 민족이 과거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고통을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면 그것은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이렇게 황제의 명으로 한반도에 파병된 강뉴 부대는 6,037명. 3개 대대로 나뉘어 파병되었다. 121명의 전사자, 536명의 부상자를 낳았지만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하였다


강뉴 부대는 또 그들 자신의 월급을 모아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차렸다. 에티오피아 강뉴 부대는 한국과 미국의 부대표창을 모두 수여받았는데 이때의 의리를 잊지 않고 코비드 사태에 에티오피아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국인들은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의리를 지킨 미국이나 아랍에미리트, 루마니아 등의 국가는 이미 지원을 받으며 사태를 통제하고 있고 한국의 우선순위에 들어있는 다른 국가들 역시 하나 둘 지원을 받으며 사태를 진압해 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을 무시하기만 했던 중국, 일본, 베트남, 스웨덴 등의 국가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태의 악화 속에서도 손 놓고 지켜만 보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보통 선진국이나 국가 간의 질서는 세계대전 이후 결정이 되었다


기존의 선진 국민이라 불리며 높은 수준으로 생활하는 선진국도 불같이 확장하는 감염병 앞에서는 질서가 무너지고 사재기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세계의 질서 추이는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인이 이전만큼 무시당하거나 한국을 변방의 작은 나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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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알렌의 영화는 어느 시점부터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홍상수는 배우고 똑똑한 지식인들의 찌질함을 대놓고 표방하는 반면 우디 알렌은 드러나지 않는 찌질함을 대사로 쏟아내는 것 같다. 인간 그 하나로 자신을 표출하기 힘들어서 과정에서 프로이트, 디킨즈, 토마스 홉스와 논리와 명료한 해석과 해법과 지성을 들먹인다


하지만 결국 영혼이 움직이는대로 이성과 논리는 사랑이라는 기묘한 감정에 끌리게 되고 결국 속에 있는 찌질함이 드러난다. 찌질함이 나쁘냐?라고 한다면 또 잘 모르겠다. 찌질함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도 아니고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아니다. 찌질함이란 발을 디디고 있는 불확실성과 비슷하다. 찌질함으로 생활이 끊어지지 않고 죽 이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찌질함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해서 인생의 실패를 늘 안겨주기도 한다


찌질하다,를 찾아보면 ‘지지리도 못난 놈‘이란 뜻이다. 으이그 이 못난 놈은 찌질한 놈으로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찌질한 놈들이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우디 알렌의 영화들 속에는 찌질한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 또는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또 주인공은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늘 있다. 약혼자라든가 애인이라든가


찌질함으로 무장을 한 주인공을 좋아하는 약혼자는 새로운 사랑에 의해서 걷어 차이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차이는 약혼자는 대체로 똑똑하고 현명하며 예쁘거나 잘 생겼고 차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 그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처럼 영화는 흘러간다. 아주 교묘하게 영화를 잘 만드는 우디 알렌이다


우디 알렌의 초기작들을 보면 본인이 직접 등장하여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지지리도 못난 놈을 홍상수가 잘 만들어낸다면 아마도 미국의 찌질함은 우디 알렌이 아닌가. 그 와중에도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속에서 엠마 스톤이 몸을 살짝살짝 흔들며 춤을 추는 장면은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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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모두가 믿기지 않았던 그날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추모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스 때문이었다. 사스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장국영의 믿기지 않는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장국영이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걷고 장국영은 47살의 아름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팬들의 곁을 떠났기에 언제나 그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반이었던 장국영은 금지옥엽에서 이반이 아닌 연기를 했다. 금지옥엽의 주제곡인 ‘추’는 내내 좋아서 유튜브 덕분에 왕왕 듣고 본다. 남자로 장국영을 깜쪽같이 속인 원영의가 피아노 앞에서 어설프게 연주를 하니 장국영이 피아노 앞에서 ‘추’를 부르고 비틀스보다 더 신나게 ‘트위스트 엔 샤우트’를 부른다. 우리의 기억 내면에 장국영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데이와 우희의 삶을 갈라놓는 것이 힘들었던 패왕별희의 도즈. 우희로서만이 패왕의 온도를 느끼는 인생이지만 변혁과 전통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두려운 병처럼 퍼지는 집단사고 속에서 무서운 건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도즈를 연기했던 장국영. 보는 동안 도즈의 감정에 휩쓸려 파도처럼 너울거렸던 패왕별희.


고등학교 시절 사진부 암실에서 주성치가 좋아서 가유희사 같은 시나리오를 꼭 써보리라. 가유희사 속에도 다정한 장국영이 나와서 주성치와는 또 다른 웃음을 줬다. 17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마스크를 꼭꼭 쓰고 다닌다. 마치 장국영을 추모라도 하듯이.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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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봄나물에 밥을 비벼 먹는 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짧은 봄이 야속하기만 하다. 제철음식만큼 맛있는 음식이 없지만 제철의 봄나물은 숟가락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매년 봄이 지나면 여름에 죽어라 조깅을 더 해야 한다.


봄에 나오는 미나리도 맛있고 달래도 맛있지만 냉이가 가장 봄의 한가운데 서 있게 한다. 특히 된장에 무친 냉이는 봄날의 곰이 된 기분이 들게 한다. 냉이무침을 한 접시씩 먹어 치우는데 그렇게 먹지 않으면 다음 일 년을 기다리는 동력이 달리는 느낌마저 든다.


냉이는 터프한 음식이다. 겨우내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와 생명을 노래한다. 봄에는 냉이무침에 밥을 비벼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따지고 보면 냉이 자체로는 식감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주 맛있지도 않다. 오히려 뿌리가 씹혀 태어나서 생전 처음 준비 없이 냉이를 먹는다면 퉤 뱉어낼지도 모른다.


봄나물 무침은 의외로 조물조물 만들기가 까다롭고 맛을 내는 것도 어렵다. 그러므로 냉이가 된장과 만나 무침으로 상에 오르면 고단한 음식의 과정을 잊고 밥에 슥삭슥삭 비벼 된장찌개와 함께 먹으면 천상의 맛이다. 봄날의 냉이무침은 터프하지만 맛 좋은 음식이다.


냉이무침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미각보다는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봄마다 쌓이고 쌓인 경험치가 봄이면 냉이무침을 맛본다는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다. 냉이는 오롯한 자연의 맛이다. 좋아한다고 해서 즐겨 먹지도 못한다.


그러니 짧은 봄날의 기간 동안 최대한 즐겨야 한다. 기껏해야 냉이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맛은 좋고 건강한 식품이라 훌륭한 음식이 된다. 냉이무침의 소박함이 입안을 풍부하게 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을 수 있을까. 냉이무침으로 버무린 비빔밥으로 세련된 목 넘김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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