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오는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그래서 토비오를 닮은 로봇을 만든 것이 우주소년, 원작으로는 철완 아톰이다. 아톰은 태어날 때 10만 마력으로 태어난다. 마력이란 말이 끄는 힘을 말한다. 그러니까 10만 마리의 야생마가 끄는 힘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어마어마한 힘인 것이다

 

자동차도 100마력이라면 굉징한데 10만 마력으로 태어난 아톰은 굉장한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아틀라스(아톰의 설계도를 훔친 와루프로기스 남작이 만든 로봇으로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졌는데 원자력인가 힘이 더 좋음) 때문에 후에 100만 마력으로 바뀌게 된다

 

어쩌면 그건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에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은 당연하게도 아톰을 괴물처럼 여기고 멀리하려 할 것이다. 클라크가 그 이유로 학창시절에 고뇌에 휩싸였던 것처럼 말이다. 클라크는 슈퍼맨의 이름이다. 100만 마력이라고 하면 그래? 그렇군, 할지도 모르지만 마징가제트가 60만 마력이다. 마징가제트의 900분의 1? 1000분의 1정도 크기에 100만 마력이라는 건 슬픈일이다

 

아톰의 인공심장은 가슴에 하트 모양으로 심어 놨는데 아톰은 인간이 아니기에 심장이 아닌 인공두뇌가 아톰을 움직이게 한다. 그 인공두뇌를 가슴에 심어 놓은 하트인 것이다. 놀라운 건 그래서 어쩌면 아톰은 인간보다 더 절실하고 진정으로 가슴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사고하고 가슴으로 사람을 대한다

 

아톰은 7가지 특수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전투기능으로 현재의 과학기술력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만화적 허용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요컨데 엉덩이의 기관총과 손가락 레이저, 눈에서 나오는 라이트 등이 있겠다. 60개 국어를(아스트로 보이 이후에는 160개국으로 늘어난다) 하고 인간보다 1000배가 넘는 청력을 지니고 있다

 

토비오의 아버지였던 텐마 박사는 아들과 똑같은(토비오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아톰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들처럼 대할 수 없는 아톰을 버리고 만다. 그 아톰을 다시 탄생시킨 박사가 오차노미즈 박사다. 후에 텐마 박사는 종적을 감춘 후 마지막에 나타나 아톰을 죽이려 하고 아톰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아톰은 오차노미즈 박사의 도움으로 동생과 부모님도 생겨 가족을 이루고 인간처럼 생활하지만 예술이나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없고 무엇보다 겁이 없어서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데 그런 아톰을 위해 박사는 감정의 레벨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인공심장을 심는다. 그래서 아톰은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만 일시적이었다

 

아톰은 7가지 특징 중에 전자두뇌의 기억은 15조8000억 비트 메모리를 장착했다. 이를 바이트로 환산하면 1조 9759억 바이트이다. 기계치인 나는 이 소리가 뭔 소린지 잘 모르지만 현재 컴퓨터 저장 용량이 몇 테라바이트가 최고인 것으로 보아 아톰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게다가 토비오의 유전자를 심어서 인공지능이지만 근래에 나오는 인공지능 영화에 나오는 AI를 능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톰을 탄생시킨 데츠카 오사무는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아톰은 1930년대(정확히는 1928년) 미키 마우스와 1940년의 피노키오를 닮았다. 월트 디즈니를 우상으로 여겼다. 처음 아톰을 디자인 했을 때 미키마우스를 따라 손가락을 네 개만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인간의 손가락과 같아졌다. 하지만 오사무는 미키마우스의 손가락 네 개를 따라 아톰의 손가락을 네 개로 계속 그렸는데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이 왜 네 개인지 몰랐는데 65년에 뉴욕박람회에 취재차 갔다가 월트 디즈니를 만나 그 이유를 듣게 된다

 

데츠카 오사무는 이후 일본의 여러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줬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도 데츠카 오사무를 좋아한다. 하나와 엘리스에는 데츠카 역이 나오고, 학교에서 창밖으로 아톰의 풍선인형이 서서히 옆으로 지나간다

 

2018년이 아톰 67주년으로 프랑스에서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의 원화 1장인가?가 3억 5,000만 원에 경매가 되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인스타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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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말하자면 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를 통해 90세까지는 열렬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와세다 대학에 유산을 기증한다고 해서 하루키가 이제 다음 세대 작가에게 물려주는 구나,라고 하루키스트들은 기운 빠질 필요가 없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 수는 없으나 하루키의 지난 생활을 돌아보면 앞으로 20년을 봤을 때 나이와 환경과 사회적인 반발 등을 감안하더라도 걱정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장편도 두 편 정도는, 단편은 꽤 많은 편이, 에세이도 여러 편이 나올 것이라는 말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글이 영화가 된 것에 대해서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건 최근 스티븐 킹의 샤이닝 후속편인 닥터 슬립이 나왔는데, 쇼생크 탈출을 적었을 때 판권을 단돈 500만원에 감독에게 팔아버리고 감독은 소설을 다시 시나리오로 재배열하고 구성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소설과 영화는 다르기 때문에 원작자라 해도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꽤나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역량을 다 하는 한 가장 공포에 가까운 이야기를 쓰려고 한 작품이 ‘헛간을 태우다’였다. 영화 버닝에 대한 리뷰를 나도 세 번에 걸쳐서 다른 시각에서 적어 올린 적이 있다

 

인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유전자의 무서움을 하루키는 참 잘 적었고 그걸 영화적인 문채로 아창동 감독이 정말 잘 풀어냈다. 특히 종수의 촬영 분은 자연광만으로 촬영을 해서 스산한 분위기를 영화 내내 끌고 간다. 대단하다 정말. 영화 한 편은 진짜 기적 같은 것이다

 

하루키는 어릴 때(라고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 시절) 남미 문화에 아주 매료되었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글을 아주 좋아했다고 했다. 일본인들도 마르케스의 글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내 개인적인 일화?가 있는데 2014년 2월인가 3월 ‘작가란 무엇인가’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문학문외한이지만 1편 격인 그 책에는 다행히 읽었던 작가들만 있었다. 하얀성의 오르한 파묵, 만화가?이자 철학가이자 수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 레이먼드 카버, 그리고 하루키가 있었다. 그 책에는 아직 마르케스가 살아 있어서 1927.3.6. ~ , 이렇게 사후가 비어 있었는데 읽은 도중에 마르케스가 죽어 버려서 볼펜으로 이렇게 기입을 한 것이 기억난다

 

열심히 읽었는데, 특히 하루키를 중점적으로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라디오헤드가 KID A 앨범에서 자신을 언급해서 기분 좋다는 게 기억난다. 그건 아마도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녀석이 오시마 상의 안내로 숲에서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앨범을 듣는다. 중학생이 듣기에 꽤나 집중해야 하는 앨범인데 다무라 녀석은 그걸 줄곧 듣는다. 아마도 톰 요크가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는 것 같다

 

또 키가 2미터에 가까운 레이먼드 카버가 좁은 자동차 구겨지듯 앉아서 열심히 글을 적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18살에 결혼해서 먹여 살려야 하는 가정과 장모에게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글이 쓰고 싶어 집구석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자동차 안에서 구겨져서 글을 열심히 적었다. 자신의 글이 팔려서 그 돈으로 BMW를 구입해서 엄청 기뻤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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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거리의 백화점과 커플링 판매하는 곳에서는 이미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슬슬 마음 속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은 특별하게 없다. 그런데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3, 4학년부터인지 꽤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그 당시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들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는 클럽이었다. 흠, 기억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그런 클럽이 초등학교에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내 기억은 그렇다. 그때의 사진도 있고. 그 담당 선생님이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비틀스, 아바, 카펜터즈 같은 팝을 늘 들었다. 클럽활동이 끝났는데도 선생님은 앉아서 늘 음악을 들었고 당연하게도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같이 들었다. 레코드 점을 따라가기도 했고 좋아하는, 또는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가지 않고 끝까지 듣고 있었다. 6학년인가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니카세트와 헤드셋을 선물로 사주었다

 

당시 가난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던 때라 단칸방에서 방 두 개짜리 집으로 겨우 이사를 갔었는데 아버지는 나를 위해 카세트 플레이어를 선물로 사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위나 모친에게 핀잔을 들을 법한데 모친도 눈감아 준 걸로 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그걸 꼭 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카세트 플레이어로 한 앨범을 지치지 않고 들었던 게 아바의 치키티타 앨범인 것 같다. 그리고 겨울이라 빙 크로스비의 캐럴 앨범을 닳고 닳도록 들었다. 겨우내 헤드셋을 끼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빙 크로스비의 캐럴을 듣는 건 무척이나 행복했다. 음악을 듣는 내내 따뜻했고 부드러웠고 안온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옳은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에 올라가 음악감상실에 들락거리며 본격적으로 풍부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송이 이렇게나 좋았다니 하며 들었다. 음악이라는 게 참 묘해서 어떤 음악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을 이렇게나 흔들어 버린다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시 시즌 송 방송을 했다. 링크( https://hoy.kr/54NLl) <=(짧으니까 그대로 타이핑하면 방송을 들을 수 있다)가 되면 참 좋으련만. 하루키는, 슈퍼든지 몰이든지 백화점이든지 어디나 새해까지 캐럴을 듣게 되는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오늘 무라카미 라디오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그런 캐럴은 최대한 걸지 않을 예정이니 안심하세요. 55분 동안 제대로 음악을 즐겨 주세요.라며 짧은 음악에 대한 견해와 함께 크리스마스 송을 들려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앨범을 들고 방송국으로 와서 말이다

 

첫 곡으로 리사 오노의 윈터 원더랜드. 그러고보니 보사노바 풍으로 캐럴을 부른 것은 별로 보이지 않네요, 남미와 크리스마스의 조합이 없어서 일까요? 그런데 얼마전에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에 다녀왔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보사노바와 크리스마스 캐럴은 음악적으로 꽤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떠신가요

 

두 번째 곡으로 찰스 브라운의 플리즈 컴 홈 포 크리스마스. 꽤 좋은 곡입니다. 흑인 소울 가수인 찰스 브라운이 1960년에 녹음한 크리스마스 송이랍니다. 이글스와 본조비도 다시 불렀답니다

 

세 번째 곡으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 레코드 정말 잘 듣고 있어요. 그래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들을때 마다 그 스테레오 장비의 냄새를 기억하곤 한답니다

 

네 번째 곡으로 콜비 카레이의 크리스마스 인 더 샌드.는 어디서인가 열대 해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노래입니다. 물론 산타클로스 복장도 수영복이네요

 

다섯 번째 곡으로 바비 더 포트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 그룹은 이전에 로버트 케네디가 트로그스의 야생마를 노래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노래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 노래도 상당히 웃을 수 있는 곡입니다. 그 곡의 후속곡이라고 볼 수 있죠. 덧붙여서 로버트 케네디는 이 레코드가 나온 몇 년 후 대선에 출마했지만, 그 선거 운동 중에 암살되었습니다. 희망의 별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달까요. 그 당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여섯 번째 곡으로 셰릴 크로우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전 셰릴 크로우를 예전 부터 좋아했습니다. 장녀 타입이랄까요. 확고한 성격의 첫째 언니로서 동생들을 돌보며 항상 신경을 쓰며 살고 있는다고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되고 말죠

 

일곱 번째 곡으로 브라이언 윌슨의 리틀 세인 닉. 작곡자는 브라이언이고요. 뭔가 효이효이! 하게 가볍게 만들어 버린 것 같은 분위기의 노래지만 잘 들으면 구조가 확고하고 편곡도 센스가 좋은, 그리고 반세기 이상 들어도 전혀 질지 않는 곡입니다. 물론 펫 사운드 이후의 브라이언도 훌륭하지만 초기의 이 가볍게 툭툭 치는 감각도 버리기 어렵습니다

 

여덟 번째 곡으로 더 포 시즌즈의 아이 쏘우 마미 키싱 산타 클로스. 엄마가 산타에게 키스를 했다. 그런데 엄마가 산타와 불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아빠가 산타 분장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니 너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홉 번째 곡으로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송하면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곡입니다.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분들은 아마 이곡에 감미롭고 달콤한 추억이 있는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어떠신가요

 

열 번째 곡으로 조니 마티스의 왓 어 원더플 월드. 언젠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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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따뜻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치즈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데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한껏 어깨를 구부리고 미간에 내천 자가 흐르고 있다. 칼날 같은 추위가 햇살이 가득한 환한 세상에 상처를 준다

 

참 기이하지? 사람의 마음에 상처로 인해 구멍이 생기면 어떤 인간은 거기에 쓰레기를 룰루랄라 버린다. 또 어떤 인간은 그 모습을 이렇게, 이런 삐딱한 자세로 서서 구경을 한다. 마치 영화를 들여다 보듯이

 

그런데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X ? ray 앞에 SE를 써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어쩌면 그 사람이 사랑병원에서 사랑을 나눌 때 딸깍하며 버튼을 눌렀는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우주에 대한 동경이 너무나 커. 영화 콘텍트를 봐, 그래비티를 봐봐, 잴 수 없을 만큼 넓고 검은 공간을 바라보며 한 없이 고독한 유영을 하며 절대적 신과 같은 그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 버리잖아. 어쩌면 우리는 우주에 전부 갈 수 없으니 우주와 닮은 인간의 몸을 엑스레이로 찍는 것이지. 그리고 세엑스레이는 그 찬란한 우주 그 위에 있는 소중한 행위고 마리아

 

경진은 그런 말을 해. 내가 개를 고양이라고 우겨도 믿을 사람은 믿고 떠들 사람은 떠든다고 말이야. 메기가 부르르 뛰어 오르면 도로에 구멍이 생겨. 구멍이란 여기저기에 늘 생기게 마련이지

 

구멍은 늘 인류를 위협해 왔지. 구멍은 그래. 구멍이라는 건 한 번 생겨버리면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 누군가 투입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본을 불어 넣어줘야 하지. 구멍이란 꼭 그런데만 생기는 것이 아니야. 구멍은 인간의 머리에도, 사람의 마음에도 생기게 마련이야. 구멍은 인류가 낳은 상처지

 

크르르르르. 포크레인을 몰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봤어? 꽤 멋질 것 같지 않아. 포크레인의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가기위해 포크레인 자격증을 따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말고 메기를 선물해 주고 싶어

 

우리가 이 힘든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상처를 줬다면 가만히 생각해봐. 그 상처가 만든 구멍에 퐁당 빠져서 나오지 못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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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겨울이 오면 겨울 노래를 들으며 귤을 까먹고 하얗게 변한 마당을 쳐다보는 것을 즐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본격적인 겨울이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날이 차가워 두꺼운 옷을 입었음에도 코끝이 시큰거리는 날이 도래한 것을 말한다

 

 

겨울 노래라는 건 보통 11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오니까 대체로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날이니 임의적으로 루더 밴드로스의 캐럴 송을 듣자.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앨범을 듣고 싶지만 여기저기 이미 많은 곳에서 써먹었기에 루더 밴드로스로 하자

 

 

루더 밴드로스는 겨울에 아주 어울리는 목소리와 리듬을 가지고 있다.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느낌을 지니게 한다.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런 종류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뒷골목에서 불한당을 만나더라도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를 틀어주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이렇게 어깨를 움직이며 리듬을 탈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느낌이다. 일종의 리듬에 동화되는 기분이 든다

 

 

겨울의 마당은 차갑다. 지나치게 세제를 많이 넣은 빨래처럼 새하얀 마당은 참으로 차갑다. 그런 마당의 틈으로 비죽 올라오던 잡초들도 없기에 마당은 그야말로 하얗게 표백된 세계다. 중앙시장의 김성룡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면서 시장에서 귤 몇 천원어치를 사면 검은 비닐 봉다리에 이만큼 귤을 담아준다. 그걸 들고 집으로 와서 손을 씻고 양반다리로 앉아 등에는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으며 마당을 본다

 

 

루더 밴드로스의 디스 이즈 크리스마스가 나온다. 루더 밴드로스의 캐럴 송은 마치 리사 오노의 보사노바 풍의 캐럴 송을 듣는 것처럼 낯설기만 한데 익숙하다. 어렸던 그때는 리사 오노를 몰랐으니 넘어가자

 

 

귤은 껍질이 얇지 않아서 손가락을 푹 넣으면 잘 까진다. 귤이 맛있어서 4개 정도는 그냥 연달이 까서 먹는다. 배가 부른지도 모르며 귤을 맛있게 까서 먹는다. 귤을 까먹으며 마당을 보며 잠시 귤을 좋아했던 김승옥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 나오는 시체가 된 주인공 아내를 떠올린다. 귤을 좋아했다던 아내가 죽고 시체 판 돈을 다 써버리기로 한 주인공. 김승옥의 소설을 읽은 것도 더 후에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마당을 쳐다보는 건 그저 보는 것이다. 그때는 시간이 막대한 자산이었고 시간이 흐르는 건 사막 거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흘렀다. 집에는 어쩐 일이지 아무도 없다. 딱 이런 시간이 좋다. 오후 2시의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서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으며 마당을 보는 것. 조금 지나면 동생이 엄마와 올 것이고 그러면 이런 고요한 자유가 깨진다. 마당의 화단에 많은 나무의 마른 나뭇가지가 바람에 미미하게 흔들린다. 그것마저 그림처럼 보인다. 새 한 마리 없고 누구 하나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세상은 분명 이런저런 이유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 텐데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루더 밴드로스는 이어서 마이 페이보릿 띵스를 부른다. 루더 밴드로스는 2005년에 죽었다. 아직 그때는 팔팔하게 살아 있는 시기이니 루더 밴드로스의 마이 페이보릿 띵스는 마치 갓 잡은 숭어처럼 팔딱거린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또 한 곳이 김성룡 치과다. 김성룡 치과는 항상 겨울에만 갔던 것 같다. 기억을 벌리면 김성룡 치과의 로비에는 난로가 있었고 언제나 불이 활활 타오를 만큼 뜨거웠다. 요즘처럼 실내전체가 난방이 되는 게 아니니까 두터운 겨울옷을 벗지 않아도 되고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으면 대체로 따뜻했다. 치과가 주는 무서움도 잊고 환자들과 간호사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모습 때문에 김성룡 치과가 겨울이면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화장실은 로비에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긴 복도가 나오는데 그 끝에 위치한 독특한 장소에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걸어가면 중간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의 중간 부분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철망으로 바리게이트가 쳐 있는데 고개를 빼서 그 밑을 집중해서 보면 장난감이 가득했다

 

 

그곳의 장난감은 뭐랄까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인데 어딘가 부서지고 어긋나고 기이하게 생긴 것들이다. 그러니까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주인공이 장난감이 있던 중간 열차 칸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조금은 불안하고 화가 난 얼굴을 한 장난감들처럼 말이다. 그런 장난감이 계단 밑의 창고 같은 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완전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있는 힘을 다해 내 작은 머리와 목을 주욱 빼면 어느 정도의 장난감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양이 대단했다. 장난감이 좋아서 집에 있는 장난감도 대단해서 동네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놀고 싶어서 좁디좁은 우리 집에(신기하지만 요즘도 집이 온통 피규어라 집으로 오고 싶어 한다) 오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완구와 프라모델이었지만 김성룡 치과의 한 지하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난감은 다리만한 완구와 인형들이다. 어딘가 선택받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그 인형의 얼굴이 내내 기억이 났다

 

 

그래서 또 김성룡 치과에 가는 날에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도 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의 내 이는 섞어서 자주 치과에 가야 했는데 김성룡 치과에 가는 것이 좋았다. 그 인형들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시간은 늘 겨울이었다. 치과에서 집으로 오면 그 인형들의 잔상이 저녁시간의 그림자처럼 길어졌다. 그때는 고작 9살, 8살 정도라서(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피규어를 좋아하고 있다 젠장) 이성이라든가 루더 밴드로스의 음악보다는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한 완구의 구겨진 모습이 내내 떠올랐다

 

 

그런 모습이 표백된 하얀 마당과 이불을 덮고 있는 내 모습과 작은 덩치인데도 귤을 한 번에 네 개씩 까먹으며 듣던 루더 밴드로스의 음악과 섞이면서 어딘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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