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하루키의 활자에 영향을 받고 하루키의 루틴적인 생활방식을 동경해서인지 대체로 낭만을 지니고 있다. 그건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에는 음악이 잔뜩 나오니 낭만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자연스럽게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 내지는 사람들은 낭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루키에게 빠져있는 사람들을 하루키스트라 칭한다면 하루키스트들은 낭만적인 색채를 띤다

 

하루키 덕분에 소설과 에세이에 잔뜩 등장하는 음악을 덩달아 찾아서 들어보게 되는데 유독 많이 듣게 되는 게 Blossom Dearie(블로섬 디어리)의 노래들이다. 블로섬 디어리의 목소리는 마치 요정이 말을 하는 것 같은데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작은 클럽에서 마주쳤다거나 실제로 만났다거나, 이런 에프소드가 많다. 블로섬 디어리의 많은 곡들을 듣다 보면 여기가 현실인지 초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지기도 해서 낭만적이 되고 만다

 

낭만이라는 게 현실과 거리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시큰둥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누구나 그 방면에서 낭만적인 색채를 조금씩 띠며 생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키를 (너무나) 좋아하는 것에 한 일자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하지만 살면서 하나에 빠져든다는 것만큼 멋진 건 없다

 

게다가 중독이라 부를 수 있는 그 하나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아니며, 알코올이나 마약류도 아니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멋진 일이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몇 번씩 읽고 탐독하는 사람들을 덕후라 부르고 그들의 행동을 덕질이라 한다면 세상의 중요 사이클은 대체로 덕후들의 덕질이 이뤄낸 쾌거라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인간은 세상을 꼭 두 부류로 나누는데 나는 어리석어서 어리석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덕질을 하는 인간과 덕질을 모르는 인간으로 나눈다. 덕질을 모르고 무난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덕질의 매력에 빠져버리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키 세계의 덕질에 빠져 있다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말을 하게 된다. 아직 오프라인으로 하루키에 대해서 듣기 보다 주로 말을 많이 해버리는 편인데 모두가 아, 오, 와씨, 같은 반응이다

 

온라인 안에 들어가면 하루키에 대한 깊이 있는 덕후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모르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루키 덕후 중에는 일반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임경선 작가도 덕후고 김연수 소설가 역시 덕후다. 오래전 광고에서, 저 이제 내려요,라는 대사를 했을 때 앉아서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광고 속 예쁜 여주인공이 읽고 있던 책도 노르웨이 숲이었다

 

그리고 하루키 글을 덴마크어로 번역하는 덴마크 번역가 메테 홀름도 그중 한 사람이다. 메테 홀름은 하루키에 관한 단편 영화 ‘Dreaming Murakami를 만들었다. 덴마크어로 하루키의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파인딩 하루키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예고편을 보면 고베에 있는 재즈 바 ‘하프타임’에 앉아 있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곳은 78년부터 영업하고 있고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영화가 되었을 때 촬영을 한 곳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쥐가 바에 앉아서 땅콩을 재떨이가 넘치도록 까먹으며 맥주를 마시던 곳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래서 세계의 하루키스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나저나 블로섬 디어리는 어쩜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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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몇 번을 계속 보는지 모를 토이 스토리4에서 이 장면은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다. 소외된 자, 소외된 것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내가 상대방을 향해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공감하게 된다. 나처럼 하찮은 인간은 늘 소외된 자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촉망받았던 엘리트였다고 해도 사회에 뛰어 들어 조직 속에 스며들어 버리면 그저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나는 소외된 자가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나는 소외된 자이다

 

그래서 소외된 자, 하찮은 것, 작은 것들에 대해서 노래를 한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방탄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그렇게 전반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50명 중에 서너명 정도가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흐름을 타야한다. 음악만 듣고 가사만 듣고, 이러면 깊이 빠지기 어렵다. 그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들, 방탄 음악세계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 뮤직비디오의 미학적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방탄에 깊게 빠져든다. 안무부터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서태지와도 흡사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태지의 음악세계와 패션, 손짓 하나하나 깊이 있게 좋아한다.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보브 딜런의 의식에 빠져 들려면 보브 딜런의 음악을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꾸준하게 들어야만 한다

 

소외된 자들, 왕따에 관한 이야기는 외국에서 많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최시원과 친하며 최시원의 얼굴길이만한 에드리언 브로디가 나온 ‘디테치먼트’도 소외된 자들에 관한 영화 중에서는 좋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드가 알렌 포의 어셔가의 몰락의 스산하고 불안한 첫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말미에 태양의 빛이 에리카를 밝게 비출 때 아, 하는 잘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올라온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따라 우리는 울고 웃게 된다. 그 거리를 조절하는 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디테치먼트에서 좋은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누구나 혼돈 속에서 살아가니까 삶은 몹시도 혼란스럽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고, 하지만 네가 이걸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토이 스토리4의 저 장면에서 간단하게 내가 도와줄게,라고 소외된 자가 소외된 자에게 마음을 여는 장면과 교차된다. 디테치먼트에서 제목이 왜 디테치먼트일까. 그런데 디테치먼트의 반대말이 어테치먼트였다는 것을. 영화라는 게 한 편 만들어지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최근 ‘뭉쳐야 찬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초기 시절의 무한도전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기 무도는 뭐든 도전을 했다.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무모하게 닥치는 대로 도전을 했다. 가수와 배우에 비해 그들만큼 인정을 덜 받는 개그맨들과 가수지만 가수 같지 않은 가수와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에 제대로 들지 못하는 방송인이 모여서 아주 무모한 도전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무도는 도전을 해서 성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은 세상에 적응 못하고 루저로 살고 있는 하찮은 나 같은 인간도 도전을 하면, 무모하지만 도전을 하면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주었다. 그들의 도전은 친밀했고 위로였고 감동이었다

 

뭉쳐야 찬다를 보면 멤버들은 무도 멤버들과는 다르게 이미 세계 1위를 한 슈퍼스타들이다. 자존심도 하늘을 뚫을 듯하고 자기 분야에서는 타인이 넘볼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랬던 멤버들이 평소 관심 없었던 축구를 하니 엉망진창인 것이다. 무도멤버들보다 더 수준미달에 다른 멤버에게 잘못을 떠넘겼다. 왜냐하면 팀의 패배가 최고였던 ‘나’라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이들이 있다 보니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도 귀찮다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다. 세월의 흐름을 정통으로 맞아서 전성기 때와는 다르게 살도 올랐다. 이런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왕년의 슈퍼스타들이 축구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무엇을? ‘나’라고는 자신을 극복해 나간다

 

무도 멤버들이 더 떨어질 곳 없는 사람들이 불가능에 도전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면 뭉쳐야 찬다 멤버들은 세계의 꼭짓점을 찍은 슈퍼스타들이 미개척세계였던 축구를 통해 일반인들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맛보면서 성장해 나간다. 축구에서는 소외된 자들이 팀을 위해서는 희생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도의 초기 멤버들에게서 받았던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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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의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는 현재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데 쾰른 음대에서 유학시절 걸핏하면 전화가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그녀가 레슨을 마치고 접시를 닦고 이것저것 하고 전화를 하면 나는 대체로 쿨쿨 잠들어 있던 새벽이었다

 

으 하는 좀비 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으면 슈만이 어쩌고 독일 사람들이 어쩌고 오늘 식사를 대접받은 독일 아줌마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폴더폰을 귀에 걸쳐 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늘 연주하다 손톱이 빠졌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였지만 이쪽에서는 몽롱한 새벽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화비 많이 나오지 않아?라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주렁주렁 늘어놓는다

 

쾰른 음대는 학비가 없다. 대신에 졸업을 하려면 혹독하다. 생활비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절박했고 필사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백건우였다. 덩달아 클래식에 대한 문외한인 나 역시 백건우의 연주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나이가 많음에도 청년 같은 힘과 아이 같은 유약함과 느긋한 어른의 면모가 다 느껴진다 그래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참 못 생겼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정말 멋있구나, 하게 된다. 다행인지 아파트 바로 옆에, 1분 거리에 예술 회관이 있어서 백건우가 매년 연주회를 왔다. 게다가 가격도 엄청나지 않아서 야호 하며 왕왕 보러 갔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후 매년(까지는 아니지만) 열리는 백건우의 연주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얼핏 윤정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오래된 일이었다

 

저 앞의 피드를 보면 윤정희가 나온 영화도 리뷰를 했을 정도로 윤정희의 영화는 예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옮긴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시작으로 여러 편 봤다. 마지막으로 본 윤정희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거기서 윤정희는 치매가 걸린 역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백건우의 이 인터뷰에 애착이 간다. 인간의 삶이 필멸하게 되어있다. 살아봤자 몇 년이나 살지 모른다. 백건우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과 싸워가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내일 위해서?라는 말보다 오늘을 존버하는 거다. 하루키도 근간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사후에 자신의 원고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어서 와세다 대학에 기증을 한다고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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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가장 최근 단편 소설 ‘CREAM’이 뉴요커에 실렸다. 단편소설이 실린 시기가 1월이라 거의 1년 정도가 지나서 인터넷에 하루키스트들이 번역을 해서 올려놓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

 

이 단편이 한국어로 제대로 출판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단편 소설 ‘잠’보다 더 짧은 분량이라 한 편만 출간하려면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수월하게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

 

하루키 같은 대작가도 계간지나 문예지 또는 신문 지면에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아직 일본과 미국의 문학은 그렇게 새로운 문학을 문예지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잘 모르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문예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라 그 속에는 소설, 시, 수필, 기행문 등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뷔페다 뷔페. 뷔페는 자주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갈 때는 본전을 뽑아야 하며 어릴 때는 가기 전부터 두근거린다. 문예지가 바로 그런 거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문예지나 계간지나 신문을 통해서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전쟁 중에도 책은 발간되었으며 티브이나 영화가 귀한 시절이었기에 사람들은 활자에 목을 맸다. 신문에 다음 회를 투고하던 황석영은 한 때 그 압박이 무서워 도망을 가버렸다. 신문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소설이 장길산이었는데 무려 74년 7월부터 84년 7월까지 2,000회가 넘는 동안 매일 투고를 해야 했으니 황석영은 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고를 들고 어딘가 멀리 가서 그곳에서 우편으로 보낸 후 종적을 감췄고 당시 황석영을 잡으러 다닌 사람이 그때 기자였던, 지금의 대 작가 김훈이었다

 

현존 한국의 대작가들 중, 거의 모든 작가들을 통 털어서 아직도 손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김훈과 조정래 이 두 사람이다. 어떻든 한국도 대작가들이 지면을 통해서 신작을 발표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은 어떤가

 

곧 50돌이 되는 문예지 ‘샘터’가 영영 없어지게 생겼다. 출판사에서도 문예지나 계간지는 슬슬 꽁무니를 빼는 형국이다. 그 이면에는 사람들이 문예지나 계간지를 그렇게 문학책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야, 책은 그냥 사는 거야,라고 하는 이면에는 책은 예뻐야 하고 들고 다니기에 사람들이 뭐지?하는 시선이 와야 한다

 

문예지나 계간지는 어쩐지 그런 예쁘장한 모습에서는 좀 벗어났다. 때문에 요즘 문예지는 겉모습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글을 기고한 문예지도 그렇게 생겨먹은 게 예쁘장하지는 않다

 

시인 같은 경우 시집 한 권이 나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계간지나 문예지를 통해 새로운 시를 발표하는데 문예지의 세계가 슬금슬금 조금씩 말살되는 기분이다

 

하루키의 신작 ‘크림’의 대략적인 내용은 안다. 18살의 10월 어느 날, 같이 피아노 레슨을 받던 여자후배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이 날아오고 초대장을 보고 난 후 답장을 보내고, 공연 당일 11월의 쌀쌀한 날 콘서트 장 앞에 도착을 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건물 속에도 인기척이 없다. 그때 처음 건물로 들어올 때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공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데 노인이 계속 나에게 ‘원’에 대해서 반복한다. 중심의 원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끝에 그 중심의 원이라는 것이 나의 삶의 크림이 된다고 한다,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설핏 영화 밀양도 스쳐지나갔고, 전문 서퍼와 파도가 등장하는 것으로 ‘하나레이 만(베이)’도 스치고 지나간다. 어떻든 제대로 ‘크림’을 읽어보고 싶다. 안 그렇습니까 하루키스트분들? 하루키를 좋아하고 영어가 된다면 번역 좀 해주세요

 

 

#문예춘추에는 하루키 신작 단편 소설 3편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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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2편을 올리기 전에 하루키 통신을 하나 올리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어쩌다 하루키를 접하고 난 후 매일 밥을 먹듯 하루키 책을 들여다보게 되어서 어느 순간까지는 하루키를 일부러 멀리하려 했는데 최근에 새로운 책보다는 읽었던 하루키 책을 계속 읽는 것으로 그냥 하루키를 좋아하는 구나,하고 받아들여 버렸다. 그래서 이왕 하루키를 좋아하는 거 하루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을 때,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왈칵 쏟아내 버리고 싶다

 

하루키가 한국에 출판한 출판물을 제외하고는 방송이나 세계각지의 인터뷰 소식은 잘 알 수 없었는데(어쩌면 그래서 한국 하루키스트들이 더 하루키에 목매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는 하루키에 모든 것이 가득한 사이트를 발견하여 그 속에서 헤엄치며 하루키 소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진정 하루키스트가 아닌가 싶다. ‘파인팅 하루키’https://finding-haruki.com/라는 이 곳에는 하루키에 관한 모든 것이 전부 들어있다.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과 에세이를 제외한 부분도 망라했다. 엄청난 하루키의 인터뷰와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과 거기서 소개된 하루키 음악, 그리고 하루키의 기고글과 하루키를 언급한 방대한 책이나 소식지도 전부 여기 이 사이트 ‘파인딩 하루키 닷 컴’에 다 들어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열 번 정도 읽어서 나는 꽤 하루키에 대해서 우쭐해있었는데 나 같은 인간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는 일본을 비롯해서 전 세계 각지에서 하루키를 인터뷰 한 글들을 친절하게 전부 한글로 옮겨 놨다. 그 중에서 하나의 기사를 소개하려는데 여러 인터뷰 중에서 저기 밑에 있는 ‘하루키 19년 2월 뉴요커 인터뷰-1Q84 4권 주인공은 덴고의 16살 딸’이라는 기사를 소개하려 한다. 아마도 하루키스트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사이트에는 원문 인터뷰도 링크가 되어있기 때문에 영어가 되면 원문으로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처음에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노르웨이 숲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이야기도 죽 이어지고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사람들이 기다리던 일큐팔사의 4권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일큐팔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인터뷰 기사가 굉장히 기쁠 것이고 또 슬플 것이다. 하루키는 70세가 되었지만 뭐랄까 아직 진지한 장난기가 떠나지 않는, 고기를 저민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인터뷰가 이어진다. 일큐팔사4권의 주인공은 덴고의 16살 딸이며 일큐팔사 이전의 이야기, 프리퀄도 있다고 한다. 오 와우

 

덴고의 딸은 달이 두 개인 세계에서 아오마메와 교접이 없이 아오마에의, 덴고와 아오마메의 딸을 잉태했다. 그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마지막이 애매했다. 마치 찰턴 헤스턴의 예전 혹성탈출에서 지구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상한 지구(자유의 여신상이 망가져있고 쓰러져 있던)로 귀환한 것처럼 덴고와 아오마메도 원래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비틀어진 세계에서 그 후의 모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어버린 우시카와의 입에서 호우호우 기어 나온 공기번데기들이 덴고와 아오마메의 딸을 추격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며 뒷이야기를 기다렸는데 어쩐지 인터뷰 기사를 호기롭게 다 읽고 나면 기운이 죽 빠져버린다

 

무라카미 라디오 1편 격인 런 앤 송을 방송하고 난 이후 정규방송으로 편성이 된 건 아니지만 내키는 대로 방송을 하여 올해, 2019년 10월까지 총 9번의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을 했다. 여기 ‘파인딩 하루키‘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렇게 모든 방송분의 하루키의 육성을 글로 옮겨놨으며 노래도 바로 들을 수 있다. 정말 대단하다. 박수

 

그리고, 무라카미 라디오 총 9회 방송을 전부 들을 수 있는 곳이 중국판 유튜브 비리비리 사이트다. 이곳에 가면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의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요즘 아이패드 같은 기기들이 사파리도 화면 분할이 되니까 따순 해가 비치는 곳에 건방지게 앉아서 하루키의 방송을 들으며 하루키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도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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