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소군과 이교는 힘겹게 몇 겹에 걸쳐 입었던 옷을 더 힘겹게 벗어서 몸을 나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에 실은 사랑은 없다. 소군과 이교는 외로웠던 것이다. 외로움에 몸서리 처질 정도로 처절하고 절박한 하루를 매일 보냈다. 두 사람에게 진실한 사랑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립되는 것에 겁이 났던 소군과 이교는 누가 먼저 라고 할 것 없이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면서도 이교 옆에 머무르고 싶었던 소군과 애인이 있는 그와 몸을 나누는 것에 오는 죄책감을 생각하기에는 벗어나고픈 외로움이 더 컸다. 잘 나오지 않는 수도와 겨우 들어오는 50촉 백열등과 한 사람 다리 뻗어 잘 수 있는 공간에서의 매일을 맞이하고 소멸하는 것에서 오는 공멸함과 우물 밑으로 떨어지는 결락감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과 도덕 그 위에 있었다. 소군과 이교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이 지낸다. 황인숙 시인이 그랬지만 인생이란 고단하지 않으면 구차한 것이다. 두 사람은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절박한 고단함을 택했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해주는 건 앞에 있는 실체였다. 멀리 있는 내 사랑을 떠올리며 매일 구차해지기는 싫었던 소군과 여자들이 꺼려 하는 일을 하면서까지 손에 잡힐지 모를 그 무엇인가를 향해 구차해지지 않으려는 이교. 두 사람의 불륜적 사랑은 절박하면서 쓸쓸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추악하고 아름다워서 애틋하고 눈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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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노선이 강한 짐 자무쉬가 뱀파이어를 건드렸고 이제 좀비를 건드렸다. 대중의 흐름에 짐 자무쉬도 호숫가에 앉아서 그럼 나도 좀비 영화를 만들어봐야겠군, 하며 빌 머레이를 필두로 해서 셀레나 고메즈를 대동하여 좀비를 건드렸다. 하지만 잠 자무쉬는 온통 불친절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아담 드라이버의 열쇠고리에 스타워즈 제다이를 걸어 놓아서 특유를 유머까지 발산했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말하지만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에서 헤리슨 포드의 아들로 나왔다

 

짐 자무쉬의 이번 영화를 보고 실망했다, 자본주의 비판만 있으면 이렇게 만들어 낸다, 좀비 영화에 무슨 교훈을 집어넣느냐, 등 욕과 비난 일색이다. 생각해보면 짐 자무쉬의 영화는 그동안 친절하지 않았다. 항상 불친절했다. 따지고 보면 늘 그렇게 해 와서 지금도 그렇게 한 것인데 그만 ‘좀비’와 엮이게 된 것이다. 지구인이면 좀비를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시점에 와 있다

 

짐 자무쉬의 영화가 그동안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또 그동안 재미없었던 적은 있었을까. 짐 자무쉬의 영화는 재미는 없는데 참 재미있다. 못생겼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예쁜 것이다. 그리하여 별거 아닌 이야기를 별거인 것처럼 만든 ‘지상의 밤’이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조니 뎁을 데리고 난해하지만 깊게 빠져들었던 데드 맨이나 예쁜 에바를 따라 클리블랜드로 떠난 윌리와 에디의 천국보다 낯선,이나 82년의 영원한 휴가도 썩 재미는 없었다. 그렇지만 재미있었다

 

현대인이 좀비에 거는 기대는 상상 이상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 열풍이 좀 덜 하지만 영미권에서의 좀비는 그야말로 흘러넘치는 술과 같다. 좀비는 의지만 있기에 좀비를 같은 편으로 둔다면 상대방은 초토화가 될 수 있다. 의지만 가지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전진할 뿐이다

 

영화 이야기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어쩔 수 없이 2달 가까이 오전에 돌로 직구를 날리는 쇼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 나오는 패널과 진행자가 좀비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2달 가까이 지치지 않고 조국과 그의 가족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어떤 날은 참 애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조국과 조국의 가족을 공격하면서 하나같이 하는 말이 그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한다

 

[영화와 관계 없는 긴 얘기라 중략]

 

이 사람들이 현대 시대의, 현재 사회의 좀비라는 생각이 든다. 의지밖에 없다. 눈과 귀를 닫아서 다른 말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는다. 돌로 던지는 이런 막돼먹은 쇼는 폐지되어야 한다. 좀비들끼리 앉아서 앞으로 가자, 와 하며 우르르 가는 꼴이 안타깝고 우습고 애쓴다

 

다시 데드 돈 다이, 좀비 영화로 와서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세미 아저씨가 나온다. 부세미 아저씨가 나오면 그저 좋다. 몰입되어 버리는 함몰된 눈코입과 그 특유의 건들거림과 놀란듯한 동공은 늘 영화를 보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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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의 코미디는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길쭉길쭉한 피지컬에서 뿜어 나오는 시원시원함의 사나이가 내뱉는 걸쭉한 사투리와 주위 배역들과 어우러지는 차승원식 코미디는 꼭 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배우 중 최고였다. 확실하게 임창정의 코미디와는 달랐다. 그리하여 신라의 달밤은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지금 봐도 또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이후로 김봉두와 라이터를 켜라 등 차승원식 코미디를 죽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차승원은 코미디를 버렸다

 

차승원의 코미디가 돌아왔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필두로 문을 연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코미디로 범벅인 영화는 아니었다. 제목만 보면 도대체 무슨 영화지? 하게 된다. 이 영화는 과거를 잊고 싶어 하는, 과거를 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영화라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기저에 깔린 건 대구지하철 참사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엉망진창인 사건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일 년 뒤 현종문 감독은 다큐멘터리 ‘메모리즈’를 만들었다. 후에 메모리즈 2편도 나왔다. 그때 그 다큐를 구하기 위해 방송국에 전화를 하고 필름을 받아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현종문 감독은 당시 중앙대 연출부인지, 재학생으로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큐를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촬영하면서 점점 분노와 억울함이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게 불에 타버리는 재질로 지하철 소파를 허가해준 KS 공인허가서, 방화문은 불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내려와 버려서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해 방화문을 긁어대느라 손톱이 다 빠져나가면서 질식해서 죽었다. 대구시는 참사를 지워버리기 위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집중을 하느라 심지어 현장 보존이라는 법칙을 모두 무시하고 새벽에 용역 업체를 이용해 깨끗하게 치워버기도 했다

 

최초 범인이 자신의 몸에 불이 붙고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을 때 불이 삽시간에 쉽게 번졌다. 그때 제대로 된 공인 마크로 납품이 된 제품으로 소파를 만들고 내장재를 만들었다면, 그랬다면 사망자만 193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참사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일 년간 촬영한 다큐는 국가가 공인한 곳이나 검찰이나 경찰이 전부 부패했고 대구시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기만 했다. 그곳에서 소방관만이 당시에 죽음을 불사하고 시커먼 연기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동성로의 큰 빌딩들은 사건을 알리려고 검은 천을 대형 빌딩에 덮어 씌우고 뉴스에 나오기를 바랐다. 요즘 같았으면 sns를 타고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겠지만 대구시는 철저하게 사건을 막았고 전국의 사람들은 빌딩에 검은 천을 씌우고 참사의 진실을 알리려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때 6명을 모아 놓고 다큐를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그 참사를 관통하고 있다. 철수는 죽음을 감수하고 검은 연기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나온 후 바보가 되었다. 정신이 없는 아내를 들춰 업고 굳게 내려온 방화벽을 두드리는 장면은 방화벽에 손톱이 빠져가면서 질식해서 죽은 당시의 처참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참사 현장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서 타들어간 불꽃이 떨어지는 장면도 소파의 나일론 같은 것들이 불에 붙어서 녹아내리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극 중의 철수처럼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실제로 대체로 살이 많이 쪘다. 당분의 유혹을 떨쳐버리는 의지가 없다. 하지만 극 중의 철수는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런 피지컬을 유지하고 있는 건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참사 속에서 살아난 사람은 철수뿐만이 아니라 백혈병을 앓고 있는 샛별이도 있다

 

샛별이는 이 하루를 어떻든 버티는 것이다.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면 내년에도 생일을 맞이할 수 있다. 샛별과 환우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서 매일매일 버티는 것, 버티면 개 맛있는 것을 먹고, 돌아오는 생일에 개 좋은 선물을 친구들에게 받을 수 있다. 영화는 온통 신파지만 철수와 샛별이 때문에 눈물이 흐를 것이다

 

밤길에 술 취한 아저씨가 튀어나와 놀라게 되면 그 트라우마 때문에 그 골목으로 가지 못하고 빙 둘러 가게 된다. 참사를 당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 하지만 그건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철수와 샛별은 우리 모두의 과거이고 우리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다

 

아빠만 있으면 그저 좋은 샛별이. 바보 같은 아빠 없이 이제 살아 갈 수 없는 샛별이.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다음 생일을 맞이할 수 없는 샛별은 철수의 골수도 맞지 않아 이식받을 수 없고,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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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영화는 과거로 회귀하는 복고주의가 많다. 기묘한 이야기도, 범블비도, 가오갤도, 공포영화인 그것도, 그것 2도 그리고 우리나라 벌새 등 많은 영화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과거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것에서 벗어나 복고에서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화에서 회귀를 하고 있다. 그 말은 현재를 누가 지배하는 가에 따라 과거, 즉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트로 경향은 단순히 유행을 떠나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서 주류를 이끄는 사람들을 흡수한다. 그 속에서 추억을 기억하는 이가 있고,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는 이도 있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도 레트로 풍이다. 독특한 영상이며 독특한 대사며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불행한 연속의 이야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시즌 3까지 제작되어서 한 편의 영화로 나왔던 2005년에 비해서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내용은 다 아는 것처럼 불시에 고아가 되어 버린 보들레어 삼 남매가 그들의 유산을 노리는 올라프 백작을 피해 갖가지 상황과 마주하며 헤쳐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기지를 발휘한다

 

원작의 제목은 ‘불행한 사건의 연속’으로 작가인 레모니 스니켓의 내레이션부터 이 이야기는 불행하고 또 불행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운을 뗀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올라프 백작의 음모에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지만 발명을 잘 하는 첫째 바이올렛과 책벌레 둘째 클라우스, 뭐든 다 깨물어 버리는 정말 귀여운 비밀병기 셋째 써니가 힘을 합쳐 올라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면서 불행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이 불행의 연속에서 관객인 우리와 주인공인 바이올렛과 클라우스는 막내인 써니를 보며 불행을 잊어간다. 주인공들은 어떻든 써니를 보살펴야 하고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써니는 점점 자라서 더 깜찍하고 귀엽고 황홀하다

 

영화는 빠져들 것 같은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웨스 앤더슨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특이한 대사는 쉽게 넘길 수 없고 개성이 철철 넘친다. 이 불행한 사건의 기저에 깔린 이야기는 바로 모험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이라 오래전 구니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묘한 이야기도 떠올릴 수 있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전부 바보 같은데 만들어 놓은 말도 안 되는 규칙에서 아이들은 벗어나기 위해 지혜를 짜낸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확실하지만 아이들은 올라프라는 절대 악과 맞서면서 자신들이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방법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선택하기 이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어른들은 비록 이것이 선이 아니라도 내가 속한 집단에 이익이 된다면 고민 없이 선택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모험을 하면서 불행의 시간을 벗어날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비밀에 조금씩 접근한다. 절대 악인 올라프로 천재소년 두기의 닐 패트릭 해리스가 분했다. 연기 좋다. 막내인 써니는 시즌 1에서는 기어 다니다가 시즌 2에서는 걸어 다닌다. 그리고 시즌 3에서는 말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그래픽으로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할 정도로 귀엽고 예쁘다. 써니를 보는 것만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써니의 모습은 거의 환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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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가 붉은 피 같은 존재라면 미도리는 이름처럼 대책 없는 녹음의 싱그러운 존재다

 

키즈키의 죽음 후 대책 없이 스무 살이 되어 버린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목적지도, 결말도 없이 걷는다. 그건 마치 영혼 없이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이렇다 할 마음을 내보이지도 못했는데 나오코는 요양소에 들어가 버리고 이것이 방황인지 먼지의 흐름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나타베 앞에 청량감 같은 미도리가 나타난다

 

감독인 트란 안 홍의 마지막 영화를 제외하고 다 본 것 같다. 그러니까 트란 안 홍의 영화를 감돌고 있는 색채를 너무 좋아한다. 그의 영화기저에 깔린 깊고도 밝은 우울감이 좋다

 

씨클로, 에서도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도 절망을 넘어서는 우울감에 정신은 녹아버리고 몸은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그 사이에 흐르는 필름 카메라에서나 볼 법한 색감이 우울함에 번지는 물감 같다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닿을 수 없는 붉은 우울을 정화시키는 것이 미도리다. 하지만 우울이란 밝음 속에 숨어 있는 우울이 더 단단하고 크다. 미도리는 와타나베만 있어주면 된다. 약속을 해 놓고도 만나러 나오지 않아도 남는 게 시간이라 괜찮아, 자산 같은 시간에 책이나 읽으면 돼(이런 대사는 없지만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스타일을 떠올렸을 때),라고 해버리는 와타나베를 미도리는 좋아한다. 미도리는 그게 사랑이다

 

하루키의 문체를 영화의 문채로 옮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영화감독이 포기를 했다. 아마 30년은 더 인기가 있을 노르웨이 숲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을 때 트란 안 홍 역시 고민이었을 것이다. 다른 감독의 이전의 토니 타키타니에서 하루키의 문체를 영상으로 뿜어내야 하기에 한 공간에서 세트를 전부 바꿔가며 촬영을 했고 음악은 유이치 사카모토가, 미야자와 리에가 쓰러질 듯 말 듯 정말 멋지게 에이코와 히사코를 다 표현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하루키의 영화는 이창동의 버닝이었다. 그건 정말 영화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장면 사이에 온통 은유로 가득했다. 영화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다른 건 없고 몇 번씩 되풀이해서 보기 때문이다. 책도 영화도 10번 넘게 봤는데 하루키를 한 번 만나러 가면(기미 다 다이스키) 사인(절대 안 해주는)이라도 하나 받을래나

 

마지막 영화로 도쿄 기담집에 실린 하나레이 만(베이)이 영화가 되었다. 받아 놓고 아직 보지 못했는데 늘 그렇듯 기대가 된다. 상실의 시대 속 미도리는 현실감은 제로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스럽다. 키코의 파릇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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