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이는 이반이다. 효봉이는 이반인 것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효봉이 주위 사람들 역시 효봉이가 이반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에 이해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가 아니라 효봉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대하는 태도다

 

드라마라는 것이 극본, 촬영, 배우, 스폰서 등 수많은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에 시청자가 불편할 만한 요지는 소거하거나 아니면 심각하게 다루거나 아니면 축소 왜곡하는데 ‘멜로가 체질’은 아 몰라! 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테야, 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대중에게 관심을 떨어져 시청률은 높지 않으나 점점 강바닥의 밀도 있는 모래알처럼 마니아들을 불러 모은다

 

효봉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내기까지 효봉이 자신이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건 은정이의 지속성 복합 장애를 둘러싼 모습을 보며 지금의, 겉으로는 이렇게 행복한 생활에 도달할 수 있었던 효봉이 역시 편견과 싸워가면서 아파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을 것이라 시청자는 상상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드라마지만 머리로 여러 상상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 드라마의 태도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반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건 나에겐 이반인 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잠을 자고 남자와 헤어져 울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릴때 부터 그랬으니까. 하지만 직장을 잡고 일을 하면서 겪는 하대와 냉대, 그리고 수많은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괴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이 시대와 이 사회와 이 나라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사악한 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다운 영화라 생각하면서 막상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님비가 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효봉이는 처음으로 힘들다고 안아 달라는 은정이를 안아주며 이 모든 일이 마치 자신이 이반인 것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상심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도 드라마 밖에서도 효봉이를 응원한다. 그건 이반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효봉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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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이는 정말 현실에 없는 사람이다. 민준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한 번 주인에게 준 사랑은 죽기 전까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이소민을 향한 마음이 시간과 관계와 미움과 물과 불에 상관없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세계 속에 파고든 인간을 닮은 슈퍼맨인 것이다

 

현실적임을 와장창 파괴하는 민준이의 활약을 보면, 이소민이 식당에서 트림을 하면 큰 소리를 내서 무마시키고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이소민이 살찌는 걸 걱정해 혼자서 2인분을 이소민 앞에서 1인분처럼 먹고, 이소민이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걸어 다녀도 군말 없이 따라다닌다

 

무엇보다 이소민이 정신적으로 힘든 것, 그러니까 외부로부터의 의식의 공격에 대한 자기방어가 안 될 때 민준이가 리추얼의 방호막이 되어준다. 민준이와 이소민은 고등학교 때 일진과 짱으로 만나 지켜주기로 한 이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초현실 세계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다

 

민준이를 처음 봤을 때 못생기지는 않았네, 정도였지 잘 생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회차가 지날수록 잘 생겨 보이는 걸 넘어 잘 생긴 거였다

 

민준이만 그런 게 아니다. 뭐야? 했던 홍대도, 효봉이도 잘 생겨 보이는 거다. 야 감독도 12회를 기점으로 너무 존잘인 것이다. 뭔가 남주혁이나 이종석이나 이민호 같은 조각 같은 얼굴에서 트렌드가 바뀌어 가는 것 같다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예전 식당이나 술집에서 금연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흡연자들은 들고일어났다. 그래서 평수에 따라서 술집에서 흡연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실내에서의 흡연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바뀌어간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자리에 우리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좀 웃기네

 

민준이는 극한의 개싸가지 이소민에게 너는 싸가지가 없다, 너는 깬다,라고 대놓고 말할 줄 안다. 그러면서 이소민을 이소민보다 세심하게 보살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하나가 될 때 민준이는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 떨어져서 일하고

바빠지더라도

서로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개뿔 그러지 말자.

매일 보는 거야

얼굴 마주 보고 싸우고

멱살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보며 사랑하자

 

민준이는 정말 유치하고 진부한 캐릭터인데 유치하고 진부한 게, 그게 무섭다. 왕좌의 게임 이후 뇌의 7구간을 채워줄 영상 콘텐츠가 없었는데 그걸 ‘멜로가 체질’이 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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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처럼 보내던 중학교 시절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었던 나는 매일 아침 귀를 때리는 듣기 싫은 노래를 들으며 일어났다. 그 노래가 엘튼 존의 ‘크로커다일 록’이었다. 정말 미칠 것처럼 듣기 싫은데 잠결에 듣고 있으면 무척 신나면서 짜증 났던 그 노래를 3년 내내 들었다. 모친이 그걸 매일 아침마다 틀었다. 3년 내내 라 라라라라 하는 후렴구가 따라다녔다

 

후에 고등학생이 되어 음악감상실을 집처럼 들락거리며 엘튼 존의 저 노래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일말의 짜증이 다 증발하고 엘튼 존의 여러 노래를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때는 한창 바쏘리, 오비츄어리, 판테라 같은 신경을 긁는 강한 헤비메탈을 듣던 때였는데 그 사이를 벌리고 엘튼 존이 파고들었다. 엘튼 존은 세계적인 인기에 비해 한국에서는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썩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로켓맨을 보면서 놀랐던 건 엘튼 존의 전기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인간 엘튼 존을 잘 조명했고 무엇보다 태런 에저튼이 몽땅 직접 부른 엘튼 존의 노래를 이렇게나 잘 불렀다니, 하는 거였다

 

영화는 뮤지컬처럼 엘튼 존의 노래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배우들이 직접 부른다. 환상과 초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엘튼 존의 노래가 영화를 꽉꽉 채운다. 한 번 들으면 피아노로 연주해버리는 천재였던 엘튼 존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쏟지 못하고 사랑을 얻지 못해 점점 술과 약과 쇼핑의 중독에서 해어 나오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꼬꼬마 엘튼 존, 그 모습은 마치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프렌츠 카프카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보헤미안 렙소디가 인기를 끌었는데 지난번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나에게는 회의적이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인데 프레디 머큐리에 초점은 튀어나온 차아에게만 맞추었고 나머지는 희미해지고 감독이 바뀌고 마지막 촬영에는 아예 나오지 않고, 그래서 그저 흥행에만 몰두했고 그것을 한국에서 덥석 문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로켓맨은 영화 적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정말 좋았다. 물론 엘튼 존 본인이 제작자로 뛰어들었기에 자신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왜 로켓맨일까. 엘튼 존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약과 술에 절어 갔지만 팬들의 열광과 환호만 있으면 요사스러운 복장을 하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록스타로서 로켓처럼 무대를 누볐다. 그는 진짜 로켓맨, 록엣맨이었다

 

엘튼 존이 젊을 때 저쪽 구역의 미친놈은 빌리 조엘이었다. 빌리 조엘이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친다고 하면 엘튼 존은 블라블라 하며 가십을 장식했었다. 엘튼 존은 영국의 후배 가수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다. 로비 윌리암스나 테이크 댓의 노래에서도 엘튼 존의 감성이 가득하다. 지금은 죽었지만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부른 ‘돈 렛드 선 고 다운 온 미’는 정말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1절을 조지 마이클이 부르고 2절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 디스 이즈 엘튼 존’ 하며 조지 마이클이 소개를 할 때 찌릿하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물론 영화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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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0-1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처럼 보내던˝이라는 문구는 마구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람처럼 가벼웠다는 것일까, 축적이 안 된다는 뜻일까?
저는 엘튼 존과 빌리조엘 두 구역이 동시대적인줄 몰랐는데 덕분에!!!^^

교관 2019-10-11 12:26   좋아요 0 | URL
먼지처럼 보낸 건, 존재감이 없이 보냈다는 ㅎㅎ.
참 존재감이 없었네요.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내내 음악을 들었던 같습니다 ㅡㅡ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트위스트 엔 샤우트’가 금지옥엽에서 레슬리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정말 신난다. 레슬리의 트위스트 앤 샤우트를 듣고 있으면 몸을 안 움직일 수 없다. 비틀스보다 신나고 미스터 빅보다 강렬하게 부른다. 열과 성의를 다한다

 

샘으로 나오는 장국영은 극 중에서 유명한 프로듀서지만 음악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오래된 친구들과 트위스트 앤 샤우트를 부르는 장면은 참 좋아서 이 부분만 몇 십 번을 돌려서 봤는지 모른다

 

다음 장면에서 부부가 막 싸운다. 그때 장국영이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노래가 ‘진생뭐뭐’인데 금지옥엽의 주제가인 ‘추’보다 더 좋은 것 같다. 극 중에서 이 노래는 샘의 친구인 부부가 결혼을 할 때 만들어 준 노래인데 그 부부가 싸움을 해서 다시 부른다

 

장국영의 목소리에는 늘 옅은 비애가 서려 있다. 그것이 노래가 되었을 때 가슴을 지긋하게 누른다. 그래서 장국영이 부르는 신나는 노래도 신나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비를 맞는 기분이다

 

금지옥엽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진신 격인 영화가 아닌가 싶다. 류자링의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고 남장을 한 원영의가 이들과 함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학창시절에 장국영의 영화보다 노래를 더 들었는데 추석이 다 되어가는 요즘, 눈을 감으면 명절 전에 극장가에 장국영이 등장하고 그의 노래가 곳곳의 레코드 점에서 흘러나왔던 것이 생각난다

 

쉐키럿 베베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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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그림은 마우스로 따라 그리기가 재미있다. 미술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호크니의 그림을 보면 볼수록,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호크니의 그림들은 보통 200억이 넘으며 천억이 넘는 그림도 있다. 수영장에서 노는 그림 ‘예술가의 초상’이 그렇다. 그러니까 생존 작가 중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판매한 작가이다

 

그 그림을 보면 캘리포니아의 강한 해살이 투명한 물살에 반사되는 평온함과 토막 난 생동감과 함께 물속에서 유영하는 남자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붉은 재킷의 남자가 있다. 그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요동치는 수영장에서 몸을 담그고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호크니는 공간을 색채로 표현을 했다. 공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공간이란 나의 공간이 있고, 우리의 공간이 있고 때에 따라 공간에 맞게 몸을 구겨 넣는 경우도 있다. 타인의 공간 속에 내가 들어가기도 하고 나의 공간에 모르는 이가 침범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간은 부지런하게 우리를 기억한다

 

호크니는 이런 공간을 슥삭슥삭 그린 것 같은데 색채로 그것을 강렬하고 강렬하게 그렸다. 이 다큐 영화는 호크니의 일상과 지난 과거, 미술에 빠져들었던 젊었던 호크니, 그리고 미국으로 가게 된 경위 같은 것들이 암호의 조각난 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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