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딸 대너리스, 불타지 않는 자, 미련의 여왕, 안달족, 로이나, 최초인의 여왕이며 속박의 해방자이자 용의 어머니, 대초원의 칼리시가 칼리시를 소개하는 말이다. 마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같다. 칼리시는 용들을 대동하여 노예를 풀어주고 노예재도를 없애가면서 노예상이 판을 치는 나라를 하나씩 잠식한다. 한낱 팔려가는 여자의 몸이었던 칼리시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나라의 왕으로 우뚝 선다. 칼리시에게 구원을 얻은 노예들이 칼리시를 왕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짜릿했다

 

왕좌의 게임은 남성주의, 남성우월이 가득한데 그 속에서 칼리시는 자신의 입지를 하나씩 굳혀 나간다. 그 사이에서 자신에게 반하는 남자들이나 내 편이라 생각했어도 배신을 하면 가차 없이 목을 내리치고 용의 먹으로 던져버린다. 왕좌의 게임 시즌4까지 보면서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는 주연이 없고 조연도 없다. 주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몇 회가 거듭하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몸이 반동가리 나거나 목이 날아간다.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상상을 뒤엎고 어떻게든 살아서 다음 회에 얼굴을 내민다. 영화적 작법에서 벗어났다. 주인공이 없는 영화는 사람을 끌어당길 수 없다는 것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 주연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하나의 모멘텀이라는 것이 소름끼치고 놀랍다

 

어떤 조직을 사람들이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늙어서 하나씩 죽게 되면서 조직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앞서 조직을 만든 사람이 사라지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조직의 규율을 하나씩 바꾼다. 나중에는 처음에 만들었던 조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변이된 조직의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죽어서 나가지만 조직은 하나의 세계를 계속 만들어간다. 사람은 그저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조직만이 살아서 세계를 이끌어 갈 뿐이다. 왕좌의 게임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끔찍하고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강철은행이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악질적이고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할 인간성이 소거된 채 그저 여자들을 노리개감으로 여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고 사악하고 인간군상에서 제일 쓰레기 같은 모습의 인간인 왕 조프리도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독극물에 체내가 뒤틀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이리도 리얼하고 통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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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하고 싶은 여행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말을 어른들은 한다. 한 번 여행해봐라 1년 12달 365일 여행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여행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여행을 다니지 않던 사람이 여행을 가면 지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사람들은 이 일만 때려치우면, 애들 다 키우고 나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말을 왕왕한다. 그럴 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사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일이라면 가치관에 타격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섹스와 비슷하다. 섹스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사랑 위에 얌전히 앉아 있길 거부한다. 우리가 성장하면 아기 때와는 달리 부모가 우리 존재 자체에 대해 흐뭇해하지 않는다. 흥분, 확실성 애액과 페니스의 발기는 이성이 미치지 않는 순수한 승낙의 표시이다. 오르가슴은 유토피아, 자신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때 느낌이다. 섹스와 일상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비참한 기분이 느껴질 수 있다고 알랭드 보통은 말하고 있다

 

주입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도 주입식으로 강요받는다. 일 년 동안 쉬어,라고 했을 때 자유가 주어져도 불안하다. 틀 속에서 누리는 안전한 자유를 사람들은 바란다. 완전한 자유는 주입식이 아닌 것에서 느낄 수 있다. 신형철이 그랬는데, 남들의 아픔이 내가 느끼는 아픔만큼 크지 않지만 남들의 아픔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주입식에서 벗어난 우리에게는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면 그 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 반드시 의미를 둘 필요는 없으나 무의미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된다. 그 순간이 쓸데없는 시간일지는 모르나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힘든 순간이 자유하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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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에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시즌3까지 잘 나오던 여자도 엉망진창인 왕 조프리가 가지고 놀다가 활을 쏘아 그대로 죽여 버리고 아이가 칼로 목을 찌르는 장면도 여과 없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초경이 지나면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 도구로 이용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남자의 노리개로 전락하다가 죽음을 당하고 도로의 표지판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사실 잔인하다기 보다 끔찍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은 언어로 상대방의 아픈 부분을 여지없이 건드리는 대사다. 난쟁이로 태어났기에 그의 아버지는 너를 버리려 했는데 가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살려뒀다거나,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자른 너의 아버지의 머리를 가지고 축제 때 테이블에 놓겠다거나, 너의 엄마는 아버지가 잠시 외도를 하던 창녀를 덮쳐 너를 낳았으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를 웃으며 한다. 참 잔인하다. 왕좌의 게임을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의 잔인함은 요즘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기사는 올해 초의 기사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콘돔은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2011년에 지정이 되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고 콘돔을 구입하는 것도 쉽게 구할 수도 없다. 기사를 보면 2012년도에 15살의 여학생이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었는데 남자친구가 콘돔대신 비닐봉지를 사용해서 관계를 맺어서 걱정이 된다는 커뮤니티 글도 있다. 청소년들이 관계를 맺는 이유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콘돔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부관계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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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에는 초현실 존재의 극에 있는 용이 나온다

브란든을 도와주는 늑대, 고스트도 나온다

남자를 후리는 붉은 여자도 나오고

그 여자가 낳은 검은 그림자 악마도 나온다

거인도 나오고

동물의 마음으로 들어가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도 나온다

살아 움직이는 죽은 자가 나오고

죽어도 계속 살아나는 자도 나온다

용의 엄마를 비롯해서 왕좌의 게임에는 초현실 존재가 가득 등장한다

 

이 속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국민을 이끄는 이들은 그저 일반사람이다. 이 세계에서는 첩자가 굉장히 많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모두가 진실보다는 거짓으로 한 겹 덮어쓴 말을 할 뿐이다. 인사하는 방법만으로, 너는 어디서 왔는지 언제 왔는지 꼬치꼬치 캐 묻다 보면 정체가 탄로 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왕족과 귀족은 딸들을 낳아서 딸들의 아이를 얻고 그 아이들의 아이를 가진다. 남매끼리 사랑을 하고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얻는다. 그것이 온당한 자기사람들을 가지는 방법이라 여긴다

 

사람은 자기와 성향이 맞는 사람과는 이야기가 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과 성향이 맞는 사람에게는 끌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난하게 자란 자가 후에 자수성가해서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과 비슷하기 때문에 더 경멸을 보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야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했다. 인간은 그래서 알 수 없다. 왕좌의 게임에서도 그렇게 딸을 아내로 맞이해서 딸을 낳고 그 딸을 아내로 맞이해서 또 가족을 만들다가 멸망하게 된다. 못생긴 사람이 못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것과 흡사할까,  다이어트에 성공한 뚱뚱했던 사람이 현재 뚱뚱한 사람을 보고 업신여기는 것과 흡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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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시즌 2에서는 시작할 때 용 새끼들이 나오고 끝날 때 그 새끼들이 불을 뿜으며 시즌 2를 마감한다. 왕좌의 게임을 보면 이권의 쟁탈 속에서 절대 권력도 없고 완전한 믿음도 없고 진정한 친구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 속에서 왕이 앞장서지 않고 숨어버리면 국민들은 왕을 비난하고 어제까지 옆에서 수발을 들던 신하가 배신을 하고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일본과 한국의 심상치 않은 기류가 있는데 일본에게 저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보수언론인들이 있다. 일본은 엘리트 사회라 예전부터 엘리트가 일본을 이끌었지만 한국은 어려움이 있을 때 민초가 이끌었다. 특정 집단이 나라를 죽 끌어온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하나같이 들고 일어나서 지금까지 끌어왔다

 

따로 국밥을 먹던 국에 밥을 말아 먹던 가만히 내비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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