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로 꽉 찬 영화다. 달리기와 소설. 이 두 주제가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다. 타치바나는 늘 달린다. 왜 그렇게 매일 달리는 거야?라는 물음에 대답은 딱 정해져 있다. 달리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오기 때문에 달릴 수 있을 때 그 기분 좋음을 잔뜩 느끼는 것, 그것이다. 매일 숨을 할딱거리며 여기서 저기 끝도 보이지 않는 곳을 달리다 보면 여름에는 자칫 데드포인트까지 도달하는 아찔함도 느낄 수 있다. 꼭 약을 해야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콘도 마사미는 이혼 남에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 소설가의 꿈을 지니고 있지만 늘 좌절하고 만다. 하는 일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장. 손님들에게 맨날 굽신거리기만 하고 허술하고 꿈도 희망도 없지만 시간만 나면 책이 가득한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남자다

 

그런 이혼남에 별 볼 일 없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육상 유망주였던 고등학생 타치바나의 이야기가 이 영화다. 타치바나는 일본 여학생 중에 가장 빠른 기록 보유자이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짐으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좌절을 겪는 여고생이 좌절을 겪어버린 이혼남을 좋아하는 이야기

 

영화에는 좋은 대사가 나온다. 책은 일방적으로 추천받아서 읽는 건 아니야, 그 책이 안 맞으면 계속 읽는 게 고통이 되거든.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집에 책이 있으면 그걸 읽으라고 해버리는데 이런 이유다. 책을 추천해 달라는 것만큼 좀 이상한 건 없는 것 같다. 책을 추천하는 건 음식을 추천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보다 일반인이 더 멋진 댓글을 남겼는데 평론가는 여고생과 이혼남 아저씨의 어쩌구 하는 식으로 댓글을 남겼다면 어떤 일반인은 ‘이 영화의 주제는 이혼남 아저씨와 여고생의 사랑이 아니라 좌절에서의 회복이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아마도 평론가는 달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설을 쓰고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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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오아물 루의 그림에 빠져 있다가 구석진 곳에서 그림을 컴퓨터로 따라 그려보고 있으면 무념무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마우스로 그려보는데 몇 시간이나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다. 이런 세계에 빠지는 걸 한 마디로 묘미다

 

진짜 도화지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흙 냄새같은 물감 냄새가 그림을 그리는 공간에 퍼지고 손으로 질감도 느낄 수 있고, 더 괜찮을 것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컴퓨터 마우스로 그리는 것과는 달라서 실패하면 좀 낭패니까 집중의 강도가 반쯤 먹은 곱창전골에서 남아있는 곱창을 찾는 것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나는 일러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토샵으로 하니까 여러 개의 레이어를 마우스로 일일이 그려놓은 다음에 레이어를 합치는 것이다. 먼저 배경화면을 그린다. 원본을 눈으로 스캔을 휙 한 다음 브러시 툴로 오패스티나 굵기나 뭐 이런 것들을 조절하면서 그린다. 배경을 그릴 때가 마음이 제일 편하다. 그저 굵기를 조절하며 생각 없이 휙휙 그리면 된다

 

실패했다? 그러면 고민 없이 전부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사진 편집이든 뭐든 실패하면 아까워하지 말고 다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고 생각 한다

 

배경의 윤곽이 잡혔으면 배경을 좀 더 휙휙 칠한다. 색감을 조절하며 거침없이 휙휙 마우스를 움직여준다. 그런 다음에 레이어를 하나 더 만들어 꽃을 일일이 그려서 집어넣는다. 꽃을 집어넣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다

 

꽃은 브러시 툴로 대충 그린 다음에 수채 필터나 스케치 필터 같은 것으로 이것저것 조절해서 그림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무튼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잘 해야 할 것 같은데 두말하면 잔소리처럼 마우스는 좋은 게 좋은 것 같다. 만 오천 원짜리 마우스는 어떻게 해도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런 다음에 꽃을 그려 넣은 레이어는 잠시 꺼 두고 배경화면에 사람을 그려 넣는다. 역시 레이어를 하나 더 만들어서 사람을 그린다. 변명인데 마우스만 좋았다면 사람의 얼굴을 좀 더 슬프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원본에는 사람을 따라가는 개가 있는데 나는 우리 집 2호였던, 보호소에서 안락사 되기 직전에 데려온 오래된 땅콩이 사진을 그림처럼 만들어서 집어넣었다. 아무튼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작은 꽃도 그려 넣는다. 그런 다음 꺼 놓은 꽃 레이어를 켜 놓으면 모든 레이어가 살아나면서 그림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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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아물루 #컴퓨터로 #따라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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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녀석들을 보라. 호기심을 코풀 듯 풀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하고 싶은 것을 잔뜩 하며 지낸다

 

이 녀석들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생동감이다

 

어른스러우면서도 어른스럽지 않은 아이 같지 않은 아이 같은 대사가 뭐야! 이 녀석들! 하게 된다

 

웨스 앤더슨의 그림 같은, 동화 같은, 초현실, 현실 파괴, 실존은 벽 짚고 지랄 옆차기 해버리는 영상이 죽 이어진다

 

독특하고 독특해서 독특할 수 없는 독특한 미장센이 왕따에 고아인 샘과 문제 소녀인 수지를 더 없는 이상주의로 그려낸다

 

샘! 수지와 함께 포에버!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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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날씨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날씨도 인간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인간의 짧고 긴 역사의 존재양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악착같이 기억하는 것이다

 

#416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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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그렇게 있다간 현실에서는 할매도 딸도 딸의 남편도 손녀도 또 그녀의 피앙새도 다 죽고 말아 할배!라고 외치면 할배는 그러겠지, 뭐든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가 없더군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는 이름은 동쪽 숲의 클린트, 남자 이름 클린트, 클린트의 또 다른 의미는 돌출한 바위라고 되어 있는데 동쪽 숲의 뽀족한 바위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정말. 깐깐하고 서쪽 숲이나 북쪽 숲이 아닌 동쪽 숲의 바위이기에 그 나이까지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 때문에 많이 봤다. 서부극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찰슨 브론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서부극은 꼭 나를 데리고 극장에서 봤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서부극이 재미없고 먼지 날리는 곳에서 셋을 세겠다 같은 말을 하자마자 탕탕탕 소리가 나면 한쪽이 자빠진다. 뭐가 재미있는지도 몰랐지만 그저 아버지와 극장에 가는 게 좋았다

 

하지만 후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어? 하게 되면서 그의 영화를 몇 편 찾아보게 되었다. 사선에서를 보고 이렇게 좋을 수가 하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젊은 시절의 청바지가 아주 잘 어울렸던 더티 헤리 시리즈를 봤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70년대부터 그 특유의 눈매를 멋지게 표출하고 있었다 맙소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또 어땠는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그는 한물간 총잡이지만 이토록 스타일리시하게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랜토리노에서 마지막 그랜토리노 음악이 올라갈 때는 묵직함(남들이 많이 써서 쓰고 싶지 않은 단어)이 마음을 꾹 눌렀다

 

잘 모르지만 당신은 그동안 시간을 잘 샀더군요 클린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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