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들아 안녕 ㅋㅋ 오늘은 하루키 에세이 중에 <에스콰이어> 오십 주년과 스콧 피츠제럴드 비화에 대한 이야기야


하루키는 여러 에세이에서 언급했지만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잖아. 대중은 헤밍웨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하루키는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 제럴드 쪽이지. 인간적으로도 글도 스콧 피츠제럴드 쪽이야


노인과 바다에서도 말했지만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지. 근데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여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헤밍웨이 보다 말년에 처절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라도 다락방에서 끝끝내 글을 쓰다가 숨을 거둔 피츠제럴드 편에 하루키는 섰다고 생각해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가 절친이라는 건 다 알잖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헤밍웨이는 파티에 미쳐있는 젤다와 그녀에게 빠져있는 피츠제럴드를 찾아가서 “너를 망치는 것은 저 여자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 이 영화 속에는 거투르트를 비롯해서 살바도르 달리, 콜 포터, 마크 트웨인, 조세핀 베이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마티스도 나와. 게다가 전부 실물처럼 보여 ㅋㅋ 시대가 뒤죽박죽이지만 우디알렌은 한 시대에 전부 집합시켰지. 몹시 재미있어


하루키가 좋아해 마지않는 위대한 개츠비는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열어. 20년대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지.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고.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어. 생긴 것도 잘 생겼잖아. 영화에서는 톰 히들스턴이 피츠제럴드를, 젤다는 봉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임신해서 총 난사하던 그 언니


육군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이었지. 광고 회사를 다니며 소설가 꿈을 키웠는데,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소설을 썼지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어. 그런 생활 속에 일생에 한 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리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젤다 세이였지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한 여성이었어. 무엇보다 예뻤지.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어.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잖아. 피츠제럴드가 제다를 안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지.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어. 젤다는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하고, 그는 점점 압박감에 시달리지.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찌르는 압박감이었어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디스 사이드 오브 파라다이스’ 덕분에 출판 일주일 후에 젤다는 자신의 품으로 돌아와. 그리고 바로 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펴내지. 당시 피츠 제럴드는 제목을 원래 그냥 ‘개츠비’로 하고 싶었어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 그러나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 개츠비’가 된 거야


그 뒤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돈으로 담뱃불을 피울 정도로 두 사람은 미국 상류사회의 셀럽이 되고 매일 파티를 하고 그의 단편소설은 엄청난 돈으로 팔려나가지. 그러나 미국의 사조가 바뀌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해. 젤다도 사람들의 비난대상이 되고, 알코올 중독에 우울증과 정신병에 시달려.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병원의 화재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잖아


이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면서, 아무튼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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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아 오늘은 하루키 단편 소설 ‘침묵’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ㅋ 이 소설은 뭐랄까 하루키 식 공포야. 폭력을 다루고 있어. 흔히 주먹다짐의 폭력이 아니라 언어적 폭력과 가짜뉴스의 폭력을 말하고 있어.


폭력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하루키의 장편소설이 있는데 ‘어둠의 저편’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하루키의 모든 소설이 어쩌면 폭력을 다루고 있는지도 몰라.


소설 ‘침묵’은 주인공 나에게 오자와,라고 하는 회사 동료가 자신의 고등학교 때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야. 오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어.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것이 걱정이 된 부모님이 친척이 운영하는 복싱장에 보내게 돼. 복싱을 배우게 된 오자와는 복싱이라는 운동은 상당히 고독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그리고 복싱을 배우는 사람들은 링 밖에서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복싱을 배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오자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아. 바로 동급생인 아오키라는 친구를 때리게 돼. 아오키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였어. 하지만 친해지기 전에도 오자와는 아오키에게 느껴지는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어.


그건 아오키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것이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거짓처럼 보였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아오키는 진짜로 하지 않고 허울과 껍데기뿐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오자와는 느끼고 있었어.


그러던 중 복싱을 하면서 학교의 어떤 시험이든 일등을 하면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시험에서 오자와는 일등을 해버려. 영어 시험은 아오키가 늘 일등을 하던 과목이었어. 일등을 빼앗긴 아오키는 그 뒤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해.

오자와가 커닝을 한 것이라고 해. 소문은 돌고 돌아 오자와의 귀에 들어와. 화가 난 오자와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수련이 덜 된 오자와는 아오키와 말다툼을 하던 끝에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아.


하지만 그 뒤로 생활은 조용하게 흘러가.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어.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아오키와 오자와. 어느 날 같은 반의 마쓰모토라는 친구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해. 학교의 분위기도 안 좋아지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아. 아오키는 오자와에게 맞았던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었어.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아오키는 몇 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해.


첫째, 마쓰모토는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둘째, 오자와는 오랫동안 복싱을 배워왔다.

셋째, 나는(아오키는) 중학교 때 오자와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흘리게 돼. 그 뒤로 사실이 진실에서 벗어나게 되거든. 마치 복싱을 배운 오자와가 마쓰모토를 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지. 오자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어.


어느 날 오자와는 아오키를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돼.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지. 오자와는 제대로 아오키의 눈빛을 봐. 후에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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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아 태엽 감는 새 이야기야 ㅋㅋ 2편으로 넘어오기 전 전쟁 포로의 살가죽을 벗기는 고문하는 장면이 몹시 잔인하면서도 아주 흥미로워서 읽을 때마다 두려움과 흥분이 동시에 드는 것 같아


2편에서는 아내가 어느 날 문득 집을 떠나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집으로도 돌아오지 않아서 주인공은 초조하면서도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잖아


이런 대목이 있거든 [어떤 종류의 천박함, 어떤 종류의 물구덩이, 어떤 종류의 어두운 부분은 그 자체의 힘으로 그 자체의 사이클을 통해 점점 커지죠. 그리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게 되죠. 가령 당사자가 멈추고 싶어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이는 요즘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떠올라. 이렇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5년 전에도 악플을 달았는데 지금도 악플을 달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5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악플을 달면서 지내는 거지. 이 같은 사이클로 점점 커지는 거야. 확대 반복하는 거야


악플을 다는 사람은 좀비와 비슷해. 의지 하나만 있거든.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악플을 멈출 수가 없는 거지



집 앞에 바닷가에 여름이 되면 바닷가에 나가서 뒹굴거리며 하루키 소설을 읽어. 그래서 그을릴 대로 그을려. 사람들은 가을이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데 이런 계절은 놀러 가고


나는 한 여름이 가장 책 읽기가 좋더라고. 유월부터 해변에 나가서 뒹굴 거리며 책을 좀 보는데 시간이 왕창 나서 책을 읽은 적은 없고 생활에 틈을 벌려 시간을 내서 책을 좀 읽는 거지


그래서 많은 책은 읽지 않아도 매일 책을 좀 보는 거 같아. 바다도 어쩌다 보는 바다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바다는 생활 하면서 매일 보는 바다가 좋아. 그것처럼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 거지, 시간을 내서 말이야. 한 겨울이 되기 전까지 바닷가에서 앉아서 책 읽기가 좋거든


우리 동네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유월부터 해가 뜨거워지면 전부 해변에 나와서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 거 같아


또 맞은편에는 퍼브가 있는데 주인장 좐 아저씨와 친해서 어떤 날은 좐 아저씨가 자정에 손님들을 전부 내 보내고 셔터를 내린 후에 새벽 4시까지 둘이서 술을 마셨거든 ㅋ


근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 술이 된 건 아니고 내가 영어를 못하니까 ㅋㅋ 친하게 된 계기는 퍼브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손바닥만 하게 사진으로 출력해서 기둥에 하나씩 붙여 놨거든


금요일에는 늘 파티를 하는데 어느 날은 너무 시끄럽게 놀다가 경찰이 오기도 했어 ㅋㅋㅋ


중고등학교 때 친구집에 모여 술 마시며 시끄럽게 하면 주민신고 들어가서 경찰이 오곤 했는데 ㅋ 그런 일이 일어났었지


이 사람 영국인들이 많은데 나보다 영국 음악을 잘 몰라. 그래서 데이빗 보위부터 시작해서 버브, 스웨이드, 라됴헤드의 잡다한 이야기 해주면 재미있어하고


오아시스의 스탠 바이 미를 틀어서 전부 떼창으로 따라 부르지. 금요일이겠다, 흥이 올랐겠다, 오아시스 노래 부르다 보니 목이 터져라 부르는 거지


그러다가 에오에오에오 경찰이 와서 주민신고가 들어와서 어쩌고 ㅋㅋ 아, 좐 아저씨는 웨일스 출신인데, 알지? 웨일스를 영국에 껴서 말하면 난리난리 나는 거


태엽 감는 새 이야기 하려고 하다가 샛길로 빠진 태엽 감는 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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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의 이미지를 끌어모아 디자인을 한 번 해봤어. 하루키는 20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보타리 라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latters grinzane award의 한 부분의 섹션 수상자로 선정되어서 수락 연설을 했어

선사시대부터 동굴 속에서 인간은 상상의 세계를 꽃피우며 전해 오던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하루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서 연설을 했지

그 중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관한 부분이야

“제 또 다른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 역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라는 단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첫 단락은 이렇습니다.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는데,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스파게티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는 순간이었고, 라디오세너는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음악이었고, 나는 휘파람으로 음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영감을 받아 쓴 이 단락은 일단 이렇게 써 둔 다음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요컨대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아카이브에 보관하기 전에 필요한 장면만을 편집해 보관하는 것처럼 잘 정리해서 보관해주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깨기 전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기록해두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요.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단락은 잘 발효되어 단편 소설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잡지에 이 글을 기고했고, 단편 모음집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는 이 단편을 매우 긴 자연 소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로 발전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짧은 단편은 이야기의 형태를 취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장편 소설로 팽창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2단계 발효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저에게는 자주 일어납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은 짧은 단락으로 나타나고, 더 견고한 형태를 취할 때까지 한 단계식 자라나고 발전해나가는 일종의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의 화학 작용이죠. 저는 전체의 과정을 주시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 일련의 과정을 따르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 이야기는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연스러워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설득력을 잃은 이야기는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위 이야기는 첫 번째 단락과 관련하여, 단편으로 출간했을 때, 한 비평가로부터 꽤나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그는 그 첫 단락이 매우 비현실적인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남자는 정오에 혼자 주방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의견입니다. 그런데 저는 종종 혼자서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일이 발생하고,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지만, 스파게티 면이 거의 다 익어갈 때쯤, 전화가 울립니다. 진심입니다.

여하튼, 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전체 소설의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너무 궁금한 상태로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신나는 일입니다. 독자들과 함께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한 페이지 또 다음 페이지를 함께 읽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적어도 소설이라는 세계는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라고 했어. 하루키는 스푸트니크의 연이이 탄생괸 이야기부터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 태엽 감는 새 부분만 발췌를 했어

물론 연설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고 중간중간 나의 설레발 의역을 왕창 넣었어 ㅋㅋ 태엽 감는 새 이야기 밑으로의 연설에서는 ‘자유로움’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어

이 연설이 좋은 건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했다는 거야. 연설문 원본을 원한다면 말해줘. 그럼 원본을 달아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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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전부 해결되고 정우도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노상철은 장인을 찾아간다. 장인은 노상철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가 이젠 멀쩡하게 지내라고 한다. 노상철은 웃으며 멀쩡하게 못 살아요.라고 한다.

노상철은 자신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 때문에 멀쩡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노상철은 장인에게 말한다.

멀쩡하지 않지만 이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냥 이대로 지내려고 한다. 보니까 전부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고 한다.

이 시리즈는 시작부터 멀쩡한 사람이 없다. 친구를 성폭행한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죄를 덮는 현구탁도.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들을 위해 삽으로 머리를 쳐 죽이는 신추호나 오직 자신의 아들만 지키면 된다는 양흥수도 멀쩡하지 않다.

친구들에게 따까리 쓰레기 같다고 말하는 보영이도, 의사 박형식을 꼬셔서 어떻게 한 번 해 먹으려는 박다은도, 딸과 아내를 매일 폭행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심동민도, 아내에게 받은 자격지심 때문에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는 박형식도 멀쩡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총에 맞아 죽을 까봐 휴학한 대학생 하설에게 말리라는 잔인한 말을 하는 김정숙도, 정우를 향한 집착을 사랑이라 여기도 미쳐버린 나겸이도, 잘못을 10년이나 숨기면서 정우에게 면회 한 번 가보지 않은 수오, 건오도, 출세를 위해 친구도 배반하고 자신이 한 성폭행은 치기 어린 한때의 실수라 여기는 양병무, 착한 척 하지만 모든 사건에 깊이 관여해서 여기저기 입신을 위하기만 하는 신민수도 멀쩡한 인간이 없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인생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에게 내내 상처를 주고 있던 정우도, 아내를 위하는 길이라 여겼던 신념이 아내를 죽음으로 몰게 만든 노상철 역시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리즈에서 사장 멀쩡한 사람은 하설이다. 그러나 하설도 주류에서 이탈해서 폭력을 본 본채 하지 않는다. 이런 정의감 때문에 자신의 목숨 위험한 줄 모른다.

현구탁이 최고의 악이고, 심동민이 덜한 악일까. 덜 멀쩡하고 완전 멀쩡하지 않은 인간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이 시리즈에 나오는 멀쩡하지 않은 인간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나 역시 멀쩡하지 않고 주위에 멀쩡한 인간이 있나? 없다.

대부분 멀쩡한 척 지내고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인간의 얼굴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이 시리즈에도 넌지시 말하고 있지만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우리가 구분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를 보니 예전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 영화 속 등장인물 모두가 잔인했다.

그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늘 우리가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잔인하다. 멀쩡하지 않다. 하지만 노상철의 대사처럼 멀쩡하지 않지만 이대로 지내야 한다. 이대로 지내면 된다. 변영주 감독이 지대로 한건해부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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