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는 음악을 할 때는 순수의 모습이 된다

완전한 본연의 모습

지성의 액기스

증폭된 재능과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몸과 마음을 덮어 버린다

온전히 음악으로 빠져들어 음악과 합일되는 그 순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식별하는 시간이다

 

그의 재능은 그를 평탄하게 걷게 놔두지 않는다

고립과 쾌락을 오고 가는 극단적인 삶

아내도, 황제도, 음악을 하던 음악가들도 아마데우스의 재능을 실용하지 못하고 남용하게 한 결과 살리에르의 집요함이 동정으로 변모할 때 아마데우스는 술과 약에 영혼을 팔아 버린다

아마데우스가 후세에 프레디 머큐리로 환생하지만 결국 역작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프레디 역시 자신의 음악에 먹히고 만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닮았다기 보다 거의 똑같다

.

 

아마데우스는 불멸의 삶을 음악을 통해서 이루었다

몸은 비록 찌꺼기가 되었지만 영혼은 음악 속으로 들어가 시대를 거쳐 불멸하고 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찰트와 꺼져 버릴까 두려워 그의 곁에서 한없이 꺼지고 불붙기를 반복하는 무섭고 안타까운 살리에르의 예술을 느끼기에 충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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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못 꽂힌 책들을 미친척하고 죽 세워봤다. 그래도 구석구석 버려지듯 처박혀있는 책들이 있다

 

신은 나에게 ‘정리’라고 하는 것은 1도 주지 않으셨다. 거시적인 것보다 나라고 하는 인간 자체가 미시적인 정리도 안 되어 있다 보니 매일이 엉망진창이다

 

저기 작가들은 자신의 글이 자신이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읽는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아마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자세라든가 태도 같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떤 작가가 그랬는데 출판을 고려하지 않고 글만 쓴다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잠시 쪼그리고 앉아 2분 정도 생각을 했다. 2분 정도 지나니 다리에 쥐가 왔다. 조깅과 계단 오르기 때문에 다리가 엄청 뚱뚱해졌다

 

다음 독서모임에 총균쇠 하기로 했는데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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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저녁 벤 녀석이 태울 것 같은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녔다. 매일 몇 킬로미터나 되는 근처에 있는 낡고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다녔다. 떨어지고 찢어진 비닐을 겨우 달고 비닐하우스라는 걸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비닐하우스는 몇 개나 되었다. 벤 그 녀석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했다. 그 녀석이 태울만한 비닐하우스는 내가 다 알아볼 수 있다. 벤 녀석이 비닐하우스 하나를 태웠다면 나는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해요?

예?

뭐 하냐고?

그냥 보는 거예요

 

한 달 가까이 매일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을 다녀도 타버린 비닐하우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면서 나는 벤 녀석이 나로 하여금 비닐하우스를 태워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녀석이 건네준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나의 머릿속에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이미지를 심어 준 다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미지는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점점 커져가고 있는 착각이 든다.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꿈을 꾸면 어린 내가 태워버려 활활 타오르는 비닐하우스를 보며 일종의 절정기를 느낀다. 벤 녀석이 태워버리는 것을 기다리기 전에 내가 비닐하우스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내가 쓸모없고 소용없는 것들을 태우는 것이다. 없애는 것이다. 그러는 편이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태워 없애는 것. 수많은 인간들 중에 개츠비 같은 벤 녀석 만이 하는 이 짓거리를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그래야 혜미가 돌아올 것 같으니까. 커다랗고 하루 종일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럼에도 잘 굴러가는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내가 태워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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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통 삼일에 두 편 정도 보는 것 같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영화적 허용을 넘어버린 몰이해의 바다도 있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본을 들이지 않은 영화도 있고 혹은 너무할 정도로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어어? 뭐야? 하는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영화를 보고 나면 또 다른 영화를 찾거나 일단 한 번 마음에 들어버린 영화는 질리지 않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영화의 장점이라면 실망을 하더라도 또다시 영화를 찾게 된다는 것 같다

 

영화는 책과 달라서 시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모든 장면에 감독은 은유를 심어 놓기를 바라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책은 상상에 의존을 하기에 조금 허술하더라도 읽는 이의 상상에 맡겨져 더 넓고 큰 세계를 만들어 돌진하는 과감함을 지니는 반면에 영화는 전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 그 이후에 상상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시각에 의존을 하면서 시각 그 너머의 세계를 스크린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영화는 기적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는 지정할 수 없는 기이함이 있어서 기술력이 최고조에 이른 요즘의 영화가 오래전에 만든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느냐고 하면 글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요즘 영화를 만들고 영화 속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들이 예전만큼 열정이 없거나 노력을 덜 하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누구나, 전부, 모두가 열심히 힘을 내고 있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는 그 이외의 것이 영화적 요소에는 꼭 필요한 거 같다

 

그건 아마도 어레인지일 수도 있고 영화음악일 수도 있고 또는 흐름이나 홍보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에 대한 평으로 먹고사는 영화평론가의 말이 이제 정설이 된 시대는 벗어났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 중에 좋은 영화를 본다는 건 수많은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좋은 영화라는 걸 알려면 영화를 시간을 내고 품을 들여 봐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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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오래된 단편집 ‘개똥벌레’를 보면 ‘헛간을 태우다’가 있다

 

그것은 단지 태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두 달에 한 번쯤 들판에 버려진 쓸모없는 것들을 태우는 거야

말하자면 범죄행위

그런데 아주 간단해

석유를 뿌리고 성냥불을 그으면 끝

세상에는 쓸모없이 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없어지는 거야

그런 것들이 진짜 많아 그런 것들은 전부 태워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10분도 걸리지 않아 그런 것들을 없애는 일은

태워 없앤다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것들

늘 가까이에 있지

그리고 그것들은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것도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야

그건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그것들이 태워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뿐이지

비처럼 말이지

비가 오면 홍수가 나고 다 떠내려가는 것이라는 벤의 말처럼

쓸모없는 것들은

바꿔 말하면 쓸모없는 인간들

그런 인간은 이미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정해진 대로 살아간다

누군가 자신을 태워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계획과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는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사라져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태워지기를 바라는 것들과

태워없애기를 바라는 사람들

정답을 애당초 없고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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