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처럼 계속 들리는 소리가 있다

설명을 하고 싶지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웅웅 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울림 같은 소리도 아니다

이전에는 도통 듣지 못한 소리다

그건 그러니까 비어있는 소리였다

공허한 소리가 매일 밤 나를 찌른다

텅 비어 있는 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프레디 머큐리가 혼자가 되었을 때 약 없이는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텅빈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렸기 때문이 아닐까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멤버 시드 베렛도 점점 자신이 만든 음악에 갉아 먹혀 텅 빈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기에 결국 음악에 먹혀 버린 케이스가 아닐까. 빌리 엘리어트에도 잘 나오지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는 엄청났으며 노동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시대를 핑크 플로이드는 노래했다. 어둡고 보이지 않는 앞날과 공장 가동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노래하면서 그들의 음악은 인정을 받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전반에 깔린 우울과 산업혁명 같은 것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속에서 시드 베렛도 점점 텅 빈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시드가 탈퇴하기 바로 전 굶어가며 잠도 자지 않고 음악 작업만 하던 시드 베렛에게 로저 워터스 등 멤버들이 왔을 때 시드 베렛은 멤버들을 보며 대작의 곡이 탄생되었다고 했다. 몇 날 며칠 잠도 자지 않고 곡을 만들었다며 멤버들에게 보여줬는데 그것은 백지였다

 

프레디 머큐리도 멤버들과 헤어지고 그런 텅 빈 소리에 잠식되어 간다. 의식의 십분의 구를 빼앗겼을 때 프레디는 간신히 텅 빈 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라미 말렉의 프레디는 어쩐지 입을 너무 강조한 것 같다.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화가 좋냐고 하면 턱을 어루만지며 글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냥 실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보는 게 더 낫다는 건 분명하다

 

천재 프레디에게 바치는 찬사로는 고개를 끄덕하겠지만 영화적으로는 초반 멤버들과 만나는 장면부터 허구라서 영화에 대해서는 칭찬을 보낼 수는 없다

 

쿵쿵짝, 쿵쿵짝 이런 음악은 들어봤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갈릴레오 갈릴레오라는 노래를 들어봤지만 누군지는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팍 와닿았겠지만 퀸의 노래를 예전부터 죽 들으며 자랐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허구와 창작과 영화적 요소가 너무 많아서 뭐야? 하게 된다. 분장을 잔뜩 하고 나온 퀸의 앨범 투자자 레이 로스터(마이티 마이어스)는 없는 인물이다. 프레디는 이 영화 이후, 라이브 에이드 이후에 에이즈가 걸렸다는 걸 알았지만 휴우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을 다룬 영화 ‘러브 앤 머시’를 본받았다면 어땠을까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좋았던 걸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가 좋았던 걸까. 마지막 장면을 손꼽고 있지만 그건 영화 밖의 이야기다. 영화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건 그냥 실제 퀸의 라이브를 보는 게 훨씬 낫다

 

적어도 영화라면, 영화는, 영화가 프레디에게 찬사를 보낸다면 영화 내적인 장면, 프레디라는 인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취해야 하겠지만, 요컨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질병인 에이즈라는 것에 자신의 음악이 잠식 되어서는 안 된다는 프레디의 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만들었으면 인기가 떨어졌을까. 왜 러브 앤 머시처럼 좋은 영화는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잘 만들지 못한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는 흥행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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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천막 밖으로 나가서 물살을 봐야 한다. 멜러리는 자신이 봐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죽고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보이(남자아이의 이름)에게 그 일을 맡 길 수 없다. 그때 자신이 앞을 보겠다고 하는걸(여자아이의 이름). 보이는 멜러리가 낳은 아이고 걸은 같이 지내던 임산부가 낳은 아이인데 걸을 낳고 밖을 보는 바람에 죽어 버렸다. 여기서 멜러리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산드라 블록은 엄마로써 아들은 살리고 싶고 자신이 이 종말의 세계에서 죽는 게 낫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걸에게 그 가혹한 일을 시킨다는 것에서 오는 원죄의 조임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을 표정으로 연기를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민과 자기학대가 부딪히고 모성애와 인류애가 이기심과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한다. 그 장면은 보는 이들을 흡입한다

 

저 귀여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말의 세상에 내던져야 하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에는 나는 너무 이기심이 많은 여자. 걸의 옆에는 내가 낳은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어떻게든 이 아이는 살아야 한다. 내가, 내가 죽는 게 낫지만 내가 죽으면 이 두 아이 모두 죽음에서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보이에게 밖을 내다보게 할 수는 없다. 그때 그 어린 꼬마 '걸'이 내가 볼게요,라고 한다

 

우리는 삶에서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되고 그때 나의 입장, 내가 끌어안을 수 있는 내 새끼의 입장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와 그 너머의 내가 서로 마주하게 되는 것을 떠올린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버드 박스는 꽤 해냈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 버드 박스는 인류 종말, 퍼스트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밖에서 다닐 때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멜러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어려운 방법을 감행하고 보이와 걸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로 한다

 

영화는 여러 영화가 겹쳐지나 간다. 영화 속 초현실 크리처는 인간을 무참히 자살로 몰고 간다. 그것에 ‘왜’라든가 ‘이유’같은 건 없다. 영화 밖에서도 가끔 이유를 묻지 못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당한다. 영화에서처럼 마찬가지로 자살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보면 제목이 버드박스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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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자보다 가난한 자가 되도록 해라. 배부른 자는 바다를 보고 어떻게 더럽힐까 생각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 속에서 생명을 발견한다 - 알멕 에드워드 팔론소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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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서 고요하게 죽음으로 간 의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끝까지 내몰았을까

무엇이 그를 일주일에 한 번 귀가하도록 했을까

무엇이 그의 등에 책임과 존경을 계속 쌓이게 만들었을까

그건 아마도 신념이라는 기이한 무형태의 수용이 그를 한없이 메시아의 모습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가족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도 버릴 정도로 신념이 그의 모든 가치관, 그 위에 있었다

국정감사로 국회에서 한 여성의원의 한심하다는 질책에 답을 하던 그가 생각난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주위에서는 사실 잘 볼 수는 없다

인구 몇 명당 몇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있고 신념을 위해 움직이는 것일까

천 명당 한 명? 만 명당 한 명? 십만 명당 한 명? 아무래도 그는 소수의 편에서 다수의 사회 부적응자들을 살리려고 했었다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그는 늙어 죽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됐다

신념은 그에게 나이 들어간다는 희귀한 순간을 느낄 새도 없게 만들었다

신념은 그의 삶을 싹둑 잘라 버리고 말았다

화도 질책도 없이 하루에 스무 건 이상의 업무를 봤던 그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메시아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죽음 직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서 다 나눠줘 버리고 그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따뜻한 날에 생명을 다 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조금씩 뜯겨 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받은 이들이 살아난 것에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모든 자산인 것처럼

 

축 늘어진 그림자를 질질 끌며 질기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사는 동안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음도 의미 없을 것이다

그는 비록 일찍 생명이 다 했지만 짧은 그의 생은 많은 이들의 행복으로 비축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와는 아무 상관은 없지만 그의 죽음은 영웅이나 신화적 존재가 아닌 한 인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진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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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리 토마토와 딸기는 말이야

니나가와 미카의 컬러를 먹는 기분이 들어

무척 퇴폐적인데 산뜻하면서 아름답지

니나가와 미카의 컬러가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밋밋함이 오종종한 세계에 마법이 펼쳐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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