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은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데이빗 길무어의 체재로 변환된(대충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다음 7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로저 워터스나 데이빗 길무어나 핑크 플로이드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무척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에는 음악으로 이런 메시지 같은 걸 던지는 그룹이 있다니 참 신비한(신기한 일이 아닌) 일이다.

 

찌질하고 찬란하고 극단에 무모하고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희망을 갈구하고 질서의 파괴와 절망하고 결핍된 대학생활을 견디게 해 준 몇 가지 중에 핑크플로이드의 음악이 있었다.

 

소니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는 휴대는 가능하지만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면 시디판이 튀어 처음부터 나온다. 그래서 휴대용이지만 어딘가에 놓고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대학교의 볕이 좋은 곳에 앉아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한없이 들을 수 있었던 대학시절은 암울했지만 꽤 행운이었다.

 

공강 시간에 아이들이 공을 찰 때 볕이 드는 곳에 앉아서 디비전 벨을 듣고 있으면 마치 양수 속에 옹크리고 들어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눈앞의 태양의 미광은 수많은 꽃가루를 보이게 만들었고 꽃가루들은 불투명하고 아주 부드러운, 그래서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와 있게 만들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은 그런 세계로 이끌었다.

 

지난 시간을 잊게 만들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이 융해되는 아주 묘한 느낌. 마치 영화 큰텍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미지의 우주의 모습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현상을 나도 느낀 것이다.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고 풍부한 상상력에 의존해 있던 대학생인 나에게 7년의 공백을 깨트리고 나온 디비전 벨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어느 지점을 보고 있노라면 거기서 전설 속의 돌이 자연스럽게 발광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눈물이 죽 나온다. 세상에는 그런 음악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병합되는 말이다. 돈의 필요성은 알아도 돈의 중요성을 딱히 몰랐던, 약간의 진지함과 약간의 침묵을 사랑하고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일에 흥미를 가졌던 대학생 나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이 함께 했었다는 건 꽤 흡족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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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추억2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서 들고 내렸다.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고 카메라를 꺼낸 가방 속에는 가져갈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책 위에 같이 올려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 카메라는 30년이 넘은 올림푸스 팬 시리즈 중에 하나다. 지금은 단종이 되어서 더 이상 새로운 팬 시리즈를 구입할 수 없는 카메라로 필름을 밀어 넣으면 하프 타입인 카메라다. 필름의 고유한 색감을 잘 표현해 주었으며 비교적 작동 방법이 간단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겨울의 냉기가 얼굴을 훑었다. 아주 차가운 기운이 얼굴에 와닿았고 발밑으로 눈이 밟혔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는 세상도 온통 새하얀 눈밭으로 덮인 휴게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가서 내가 낸 발자국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휴게소에는 차들이 밀려 들어와서 그런지 평일치고 사람들이 많았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도 끊임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여행을 가고 밑 지방에서 위 지방으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었다. 평일에는 대부분 일을 해야,까지 생각하고 더 이상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휴게소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휴게소는 일터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일탈 같은 곳인 것이다.

국도에 있는 작은 휴게소의 화장실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깨끗하고 음악도 솔솔 흘러나왔다. 오줌을 시원하게 놨다. 소변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체온이 조금 빠져나갔다. 손을 씻고 말린 다음에 화장실 입구에 서서 팬으로 또 몇 컷의 사진을 담았다. 그러는 동안 추위가 몰려와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왔다.

휴게소 안에 풍기는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어딘지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그건 대부분이 급격하게 내리는 폭설 때문에 억지로 휴게소에 들어온 기운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휴게소 안에 들어왔으니 사람들은 돈가스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감자를 먹고, 김밥과 어묵과 콜라를 먹었다. 어쩐지 다른 날 보다 더 왁작 지껄하는 소리가 실내에 가득했다.

커피부스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종이컵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뱀파이어에서 짜낸 피처럼 보였다. 이만큼 큰 종이컵에 요만큼 되는 에스프레소를 담아서 창밖이 보이는 긴 바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에스프레소는 쓰다. 쓴 맛으로 먹는 것이 에스프레소인 것이다. 등을 구부리고 카메라의 아서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도 사람들이 앉았다. 그중 한 여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인데 오래전 모델인 니콘 D70이었다. 카메라를 만지고 있으니 혹시 D70의 브라케팅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브라케팅으로 사진을 담으려면 이래이래 해서 담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D70은 아무래도 지난 카메라지만 꽤 잘 나온다, 어지간한 건 다 담아낼 수 있다, 잘 어울리는 렌즈가 탐론의 90미리 마이크로 렌즈, 일명 ‘90마’로 담아내면 노란색에 관해서는 기가 막힌다, 등등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사진동호회인데 신입들이라 중급 이상 모이는 곳으로 마음먹고 가는 길에 이렇게 고립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D70으로 몇 년 동안 사진을 담은 적이 있어서 그 카메라에 대해서는 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땐 몰랐는데 D70을 들고, D70에 대해서 물어본 여자만 정장 차림이었다. 일행들은 모두가 등산복 차림이었는데 그 여자만 검은색 정장 차림에 색조화장과 눈 화장에 머리도 방금 숍에서 하고 온 것처럼 웨이브가 파도처럼 져 있었다. 얼굴을 보니 30대 초반?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일행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들로 대체로 50대 전후로 보였다. 다른 여자 일행도 있었는데 나이가 꽤 많이 보였다. 모두가 손에 대포 같은 카메라를 한 대씩 들고 있었다.

이후로 카메라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다가 휴게소가 금강휴게소처럼 2층이 있어서 거기로 올라가서 망원렌즈로 사진을 담는 것에 대해서 논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뷰에 눈을 대고 자세를 잡으니 영락없는 스나이퍼처럼 보였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카메라의 렌즈를 받치고 카메라 바디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서 연신 이렇게요? 이렇게요?라며 물었다. 목소리가 농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필름 카메라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였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찍고 바로 볼 수 없으니 빠른 디지털에 비해 시간이 느린 게 필름 카메라다. 아서를 돌려 환경의 밝기에 맞춰 조리개 따위를 조절하고 필름을 다 채울 동안 셔터를 누르고 나면 다 돌아간 필름을 수동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려야 한다. 다 돌아갔다는 끄그그극 하는 소리가 나면 필름을 탈착하고 현상을 한 다음 인화를 해서 손에 들어야 비로소 사진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했다.

그녀는 자신도 필름으로 한 번 사진을 담아보고 싶다며 내 손을 어쩌다가 잡았는데 내 손이 너무 차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 손을 그녀는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리고 우리는, 까지는 전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휴게소에 들어간 것도 눈이 심하게 내린 것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2월에 서울에 간 것도 물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겨울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눈이 내린다면, 하는 상상을 왕왕 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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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에 서울에 갈 일이(라고 주위에는 말했지만 백남준 아트 센터에 가려고) 있어서 고속버스를 탔다. 운전을 하면 버스를 탈 때만큼 멍하게 있을 수는 없기에 가끔 고속버스를 탄다. 그곳에 도착하면 나를 배웅하러 누군가 나와 있을 테고 멍한 생각에 지치면 고속버스에서 잠이 들어도 개운하다.


그때가 2월 중순이었는데 그 전날 엄청난 눈이 전국에 내렸다. 한반도가 마치 새하얀 무스케이크 같은 모습이 되었다. 눈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 온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겠어,라는 좀 못된 마음을 먹고 내려서인지 굉장했다. 만약 원더우먼이 봤다면 매직이군요,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원더우먼 1편에서 런던에서 처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갤 가돗이 크리스 파인의 품에서 그런 대사를 했다.

 

그렇지만 내가 있는 이곳 바닷가에서는 그렇게 뉴스에서 떠들썩한 것과는 다르게 눈이 내리자마자 녹아버려서 크게 와닿지 않았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보는 풍경은 군데군데 모아놓은 눈이 천덕꾸러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땅바닥은 젖어 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는 자주 타지 않기에 고속버스를 탄다는 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탈이다. 꼬마였을 때는 멀미 때문에 어딘가로 훌쩍 떠난다는 설렘보다 고속버스가 그저 거대한 바퀴 달린 네모난 악어처럼 보였다. 그렇게 심하던 멀미도 어느 기점부터 산타 할아버지처럼 나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고속버스의 의자는 마치 ‘당신을 여지껏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며 다소곳 하게 보인다. 우등고속이라 홀로 좌석에 건방진 자세로 퍼져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며 이어폰으로 쇼팽을 듣는 건 거짓말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가면 된다.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읽으며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했다. 버스는 서서히 움직였다. 거대한 벌레 같은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남들 몰래 마음이 두근거린다. 책을 펼친 채 잠시 시선을 차창 밖으로 둔다. 군데군데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눈 뭉치들이 보였고 사람들이 추운지 등을 구부리고 지나치는 모습도 보였다.


겨울의 차가운 대기는 아름다운 태양빛을 눈부시게 산란시켰다. 사람들은 여름처럼 눈을 찌푸리고 미간을 좁히고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모두 비슷한 움직임이지만 다른 철학이 개개인에게 있는 것 같아 신기하다. 길고 긴 우등고속버스가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하게 빠져나갈 때는 마치 어린 시절 극장에서 화면으로 본 로봇의 운전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택시의 뚜껑이 보이고 오토바이 운전자의 헬멧도 보인다. 인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가끔 보이고 혀를 내밀고 걸어가는 강아지의 등도 보인다. 버스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 창밖으로 보는 세상은 전부 눈 밑에 있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탄다는 건 그런 분위기에 흠뻑 젖게 만든다. 멍해져도 좋을 시간, 좋을 장소인 것이다.


버스는 롯데 백화점을 경유해서 현대호텔을 지나 제니스성형외과를 지나쳐 메인 도로로 빠져 나온다. 도로 위로 올라온 대형버스는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갑고 경쾌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거대한 버스는 서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방학이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지나 톨게이트를 향해 버스는 빠르게 돌진한다.


가까운 창밖의 풍경이 시놉시스처럼 빠르게 흘렀다. 경주를 지났다. 경주를 지나니 날이 스산하고 흐렸다. 하늘은 잿빛을 잔뜩 짊어지고 우울한 시어머니의 얼굴처럼 보였다. 창 하나로 가로막혀 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무척이나 차가워서 십 분만 서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릴 것만 같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버스 안은 따뜻했고 의자는 편안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울까지 3시간은 넘어가야 한다. 실컷 자고 일어나도 2시간이 남을 것이다. 버스는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버스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올라탄 고속버스는 대구를 지나칠 무렵에 더 이상 도로 위를 달릴 수 없다며 가장 가까운 휴게소에 거북이 운행으로 들어갔다.


눈 때문이었다.


경주를 기점으로 해서 위 지방으로 갈수록 며칠 동안 내린 눈 때문에 도로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구에서부터 잿빛 하늘은 눈을 계속 뿜어대고 있었다. ‘마이 페이보릿 띵’이 어울릴법한 광경이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은 전부 눈으로 덮여있었고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어가기 전에 버스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눈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예보가 없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날씨는 버스를 그만 휴게소에 묶어두게 만들었다. 얼마 동안 휴게소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 몰랐다. 비처럼 쏟아지는 눈은 휴게소에 들어온 차들을 잠깐 사이에 전부 하얀색으로 만들었다.


눈의 세계라는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웅성거리며 계획에 차질이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지 않았다. 예고 없이 휴게소에 들어간 버스 때문에 잠을 자던 사람들이 일어났고 옆 좌석에 앉은 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처지를 걱정했다.


평일이라 사람들은 정말 큰일이 난 것처럼(큰일인 것이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나를 제외한 버스 안의 대부분 사람들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려서 안절부절못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거의 반 백수로 4일 동안 아무런 할 일도, 바쁜 일도 없었다. 멈춰버린 이 시간을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될 대로 되라,라는 식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도 좋을 법한 어두침침한 날 가운데의 폭설이었다. 눈이 더 펑펑 쏟아져 집채 더미처럼 쌓이든, 그 쌓인 눈이 얼음으로 변해서 그곳에서 펑, 하며 미스터 프리즈가 나타나서 다이아몬드로 저온상태를 유지하며 극 냉동복을 입고 극저온 블래스트를 웃으며 사람들에게 마구 쏘아댄다고 해도 어쨌든 3일이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세계가 아무리 일그러질 정도로 삐뚤어져 가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영차 영차 하면 대체로 3일이면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있으니 눈이 앞을 내다보지도 못할 만큼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만난 엄청난 양의 눈을 반기는 사람들은 아이들뿐이었다.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니 방뇨의 기운이 올라와 화장실로 향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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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리 미노그의 특징이라면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 같은 투명한 목소리에 있다. 배우로도 인기가 있었던 카일리 미노그는 88년에 같은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제이슨 도노반과 듀엣 곡 ‘이스페셜리 포 유’를 불러 더 많은 인기를 얻는다. 이 노래는 일본의 여성 듀엣 윙크가 리메이크해서 아시아 쪽에서는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카일리 미노그의 첫 앨범 ‘카일리’ 앨범을 구입했을 때가 생각나는데, 중학교 1학년 겨울이 되었을 때 집에 서울서 고모와 사촌 형이 잠시 들렀다. 사촌 형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사줄게 뭐 갖고 싶어?라고 물어서 대뜸 카일리 미노그요, 해서 레코드 가게에 가서 집어 온 기억이 있다.

 

사촌 형은 음악에 대해서 굉장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서울음반의 앨범을 구입하는 게 좋다, 서울음반에서 녹음한 음악이나 수입한 음악이 음악 적으로 풍부한 음을 낸다, 이런 말을 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다른 회사의 앨범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아직도 음이 깨지지 않고 괜찮구나, 같은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슬슬 음악감상실에 출입을 하게 되고 거기서 카일리 미노그를 듣게 되었는데 사촌 형을 데리고 음악감상실에 갔더니 이런 어촌에도 이렇게 멋진 음악 감상실이 있다며 신기해하던 기억도 있다. 학창시절에 유리창을 박살 낼 것 같은 시끄럽고 고출력의 강력한 메탈을 듣는 가운데서도 그 중심을 잡아준 몇 개의 음악이 있었다.

 

카펜터즈가 그랬고 아바가 그랬고 카일리 미노그가 그랬다. 이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나, 할 정도로 카일리 미노그의 노래는 그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테이프를 펼치면 앞면에는 가사와 함께 뒷면에는 카일리 미노그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빼곡한 그 글을 유심히 읽고 학교에 가서 거짓말을 보태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소위 음악을 하는 이이들과 음악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그래서? 그런데?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카일리 미노그는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를 지치지 않고 열정을 더 가지게 하는 건 아무래도 암을 이겨내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 삶 때문일 것이다. 이후 반짝이고 예쁘기만 했던 카일리 미노그는 암 투병 환자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Crystallize라는 암 투병 환자를 위한 곡을 만들어 수익금 모두를 기부하기도 한다. 이제 한국의 카일이 미노그 팬들은 그녀를 민옥 이모라고 부른다.

 

이 먼 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노래를 들어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인간의 어떤 알 수 없는, 설명 불가능한 텔레파시 같은 것들이 모여서 그녀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고 죽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민옥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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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자연적으로 하루키 에세이가 떠오르고, 하루키 에세이를 보면 연쇄적으로 대학교 1학년 여름이 떠오른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이 우리 삶을 가까스로 유지시켜 준다고 하루키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카메라를 하나 들고 가방에 팬티 두 장과 메탈리카 반팔 티셔츠와 하루키 에세이 한 권을 넣고 동해를 타고 하루는 포항의 청하에서, 하루는 영덕에서 하루는 울진에서 하루는 강릉에서 그렇게 며칠씩 태백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다가 서울로 가서 백남준 아트전을 보고 오는 것이다.

 

그때는 하루키에 빠져 있었고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이 나의 어떤 정신적 고갈을 막아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집 떠나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어디 멀리 떠나가도 집에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버스를 타고 여기서 저기까지 가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담고 지치면 그늘막에 앉아서 빵을 씹어 먹으며 맥주를 홀짝이며 하루키 에세이를 읽었다.

 

이틀째인가 삼 일째인가 강릉 어디쯤에서 지치고 무더운 가운데 그늘에서 잠시 졸았는데 일어나 보니 에세이 빼고는 전부 도둑을 맞았다. 다행히 주머니에 넣어둔 돈은 가져가지 못했기에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태백까지 올라갔다. 돈이 없어 아침에 사 놓은 바게트가 고작 저녁이 되었는데 책상처럼 딱딱해서 놀랐고 그것을 잘 씹어서 먹으니 맛있어서 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위기의식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될 대로 되라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같잖은 것 같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아직도 좀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지내면서 사진 전시회도 몇 번 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면 호오 하며 고생고생하면서 전시회 했었지,라고 기억하게 된다.

 

태양 볕에 타서 새카맣고 고픈 배를 움켜잡고 마를 대로 말라서 어딘가에 앉아서 하루키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벽돌 옮겨 볼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심해에 사는 거대 해양생물 같은 풍채를 자랑하는 아저씨였다. 소규모 벽돌공장을 하는데 일하는 사람 한 명이 없어져서 나의 몰골을 보더니 척 알아봤다며 일을 해보라는 것이다.

 

열심히 벽돌을 날랐다. 잠자리도 제공되었다. 완전 거지 같은 몰골이었는데 빨래도 할 수 있었다. 이틀 일을 하고 저녁에 공장 사람들과 고기를 구워서 먹는데 먹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처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그때 지치지 않고 늘 어딘가에서 하루키를 읽었다. 그때 하루키에게서 받은 느낌은, 그 책을 읽기 위한 좋은 장소보다는 어디서든 앉아서 읽으면 책 읽기에 좋은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책을 가장 집중해서 많이 읽었던 때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그 복도의 벤치에서였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책을 읽으며 큭큭 하며 웃기도 했다.

 

하루키도 책을 읽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1968년 4월 그 휑한 방에 있던 딱딱한 메트리스 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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