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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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사조가 바뀌었고 피츠제럴드의 글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헤밍웨이가 글을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며 자살한 것에 비하면 피츠제럴드는 어두운 곳에서 죽을 때까지 글을 썼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피츠제럴드는 진정한 글쟁이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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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는 몰락한 이후 자신의 퇴락해가는 모습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만다. 상승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젤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보였고 머리카락은 힘이 없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예쁘게 말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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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고 힘 빠진 모습에서 우울해지는 여자가 어디 젤다뿐이겠는가. 사람들은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바라지만 ‘늙다’라는 동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가 ‘아름다운’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자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예쁘게 나이 먹었네, 곱게 늙었네, 같은 말을 하지 말고 ‘늙었네’와 ‘나이 들었네’를 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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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실력을 살려 책도 펴냈지만 출판사는 다른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젤다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을 피츠제럴드가 소설에 그대로 사용하고, 그 사실로 인해 젤다의 병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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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배신감을 받았다. 젤다의 일기와 편지들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 젤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결락과 우울함은 너무 깊고 컸다. 젤다도 자살을 하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추앙했던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수군거렸고 손가락 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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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젤다가 지나가, 저 여자 매일 밤새도록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도 지폐에 불을 붙여 피웠대,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 좀 도와주지 말이야, 이젠 볼품없는 얼굴이 되었군, 남편의 글도 이젠 한물갔대 나 봐, 남편은 젤다의 퇴락해가는 이야기를 소설에 섰대, 불쌍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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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군거림을 젤다는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정신병원으로 땅만 보며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면 무섭도록 잔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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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기가 있었지만 젤다가 피츠제럴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지처럼 톰 뷰캐넌 같은 남편을 만나서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수면 위에서 평탄하게 살아갔을까.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정신병원의 화재로 인해 3월의 봄날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 곁으로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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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그린라이트를 바라보며 데이지를 생각한다. 5년 만에 나타는 개츠비는 멋있고 유능한 갑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개츠비는 5년 만에 성공의 가도에 올랐지만 그 5년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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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개츠비가 자신을 투자한 5년을 어떤 식으로 투사했을까. 무일푼이었던 인간이 5년 만에 성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개츠비는 5년 동안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오로지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 개츠비는 어떠한 부분에서는 서슴없이 행했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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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를 사랑하는 자신처럼, 데이지 역시 자신을 자신만큼 사랑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츠비. 개츠비는 5년 동안의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앞을 막는 것을 광기로 밀어 버린다. 방해가 되는 것이 사람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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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개츠비의 머릿속에는 사랑을 속삭였던 데이지의 모습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개츠비는 처절하게 데이지를 기다린다. 마지막 수영장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휑한 모습은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첫 장면을 떠올릴 만큼 황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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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받은 편지와 사진을 앨범 속에 포트폴리오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런 모든 모습을 꾸준하게 바라보는 이, 개츠비의 유일한 친구 닉 캐러웨이가 있었다. 닉은 마지막에 타이핑 한 개츠비라는 글자 위에 손글씨로 ‘위대한’을 쓴다. 그곳엔 스콧 피츠제럴드의 모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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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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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영화는 왜 미학적으로 퇴보하는가. 대사나 장면이나 씬 사이의 여백이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영화. 인물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가 대단하다. 피고 지고하는 인생사가 온전히 온전히 묘사된다. 마음 깊이 슬퍼지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훌륭한 영화 - hd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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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mi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의 삼포 가는 길의 댓글이다. 딱 영화의 감상을 잘 요약해 놓아서 들고 왔다. 황석영의 소설을 오래전에 읽었는데 후에 영화를 봤지만 설원과 문숙의 활달한 모습만 기억에 있어서 다시 찾아본 영화 ‘삼포 가는 길’은 명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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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만 살아와서 거침없이 욕을 하고 미친 것처럼 만개한 꽃과 같은 백화를 보면 마음 깊이 슬프다. 이 영화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백화에게는 특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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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것처럼 문숙은 연기를 한다. 세련된 대사에 세련된 영상이다. 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건 문숙이다. 이 영화의 문숙을 보고 허스토리의 문숙을 보면 이상하게 슬프고 눈물이 난다. 왜 그런지는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잘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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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화냥년? 그래 난 화냥년이다. 화냥년이야. 더러운 년이라구. 더럽고 썩고 썩은 년이라고. 난 너희들 사내놈들한테 살이 빠지도록 팔고 사는 년이라고.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왜. 라고 울부짖는 백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빠져들고 같이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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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대사도 있다. 그 대사를 잘 들어보면 백화의 애이불비를 느낄 수 있다. 

야 너 몇 살 쳐 자셨냐

흥, 화류계에서 누가 나이 따져서 언니 동생하는 줄 아나, 마신 술잔하고 사내 숫자로 셈하는 거야, 요 병신아.

농땀, 미얀미얀 재송해용. (치마를 들춰 올리며) 어때 마음에 들어? 

헤헤 지랄로. 같은 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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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주는 장면은 참 촌스럽지만 슬픈 장면이라 백화가 받은 삶은 계란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삶은 계란이다. 백화는 삶은 계란을 먹으며 꿋꿋하고 거칠게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욕쟁이 백화와 풋풋한 점순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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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은 춥고 고되기만 하다. 발가락은 눈밭에 빠지는 바람에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함께 삼포로 가는 일행들이 있어 참고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고향인 삼포는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안온한 곳이 아니고 낯설기만 하고, 또다시 뜨내기의 길만이 앞에 놓일 뿐이다. 마치 하루키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하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밀려나버린 주인공은 나의 모습인 동시에 내 주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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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와 자신의 남편,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두자 두 사람은 명실 상부한 뉴욕의 셀러브리티 커플로 알려진다. 톡톡 튀고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당시의 미디어와 사람들은 추앙했고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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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그런 삶을 더욱 사랑했고 옆에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늘 지켜봐 주었다.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늘 웃고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빠져 들었고 연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술과 문학과 재즈를 즐겼다. 주위에는 돈이 흘러넘쳤고 옆에는 명성이 있는 자신의 남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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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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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지속되고 개츠비 이후에 개츠비만 한 글이 안 나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피츠제럴드의 절친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파리의 한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피츠제럴드를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한 손에 쥐고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피츠제럴드를 찾은 헤밍웨이는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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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이봐 자네. 요즘 괜찮은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피츠제럴드: 이보게 친구, 잘 보게. 이것이 삶이라네.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 한잔하고 가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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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봐도 잘 나온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가 왔음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변해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후에 그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옆에 있는 젤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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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만취였고 호텔의 분수에 뛰어 들었고 신문의 일 면을 장식했다. 연일 열리는 파티와 파티 사이에 천재적으로 써 내려간 단편은 거액으로 출판사에 팔려 나갔다. 피츠 제럴드의 이 모든 행동과 삶은 오로지 젤다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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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젤다와 개츠비 속의 데이지를 욕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의 눈과 촉은 젤다를 향해 있었고 그녀가 움직이면 그의 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세 시간이 걸리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가 바라는 옷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선물했을 것이다. 투정을 부리면 받아줬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면 안아줬고 매일 밤마다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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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 독특했고 의상도 화려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요즘도 하기 힘든 머릿결의 웨이브라든가 스타일은 당시 최고였고 피츠제럴드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다. 부족함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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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서 철없이 자란 여자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하지만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대로 꽤 멋지고 괜찮은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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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많은 돈을 거머쥐며 부족함 없이 살기를 원하며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젤다와 데이지에게 과연 손가락 짓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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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미국은 29년에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맺게 된다. 대신 미국의 문학적인 영웅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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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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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휴일’이라는 이 영화는 1956년도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고 내레이션이 나온다. 내레이션과 배우가 말을 주고받는 영화 작법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거리가 왜 이렇게 한산할까, 이상야릇한 노릇이군, 어허 이건 무슨 일일까.라며 내레이션이 나오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서울의 휴일이라면서 영화는 포문을 연다

50년대의 영화는 60년대의 영화와는 또 달라서 목소리 톤이 거의 이북 사투리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본 편이라 지난 배우들의 얼굴을 꽤 알고 있지만 50년대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생소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와 뷔너스 산부인과 의사인 부부, 노능걸(기자는 휴일이 따로 없다)과 양미희가 서로 바빠서 둘 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모처럼 둘 만이 시간이 되는 서울의 휴일에 같이 보내려다가 남편 노능걸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부인인 양미희에게 한 시간만 기다리라며 나가서 후암동 살인 사건에 휘말려 쫓기면서 부인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못 지키고 양미희는 친구들의 말과 신문사에 전화를 해도 오늘 안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바람을 핀다고 의심을 하고, 남편은 취재를 갔다가 살인범과 격투 끝에 검거하고, 다른 곳에서 살인범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 것을 도와준 양미희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남편을 이해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서울의 신 세대, 신 여성과 신 남성인 부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휴먼, 가족애, 불륜, 정신질환, 배신, 리벤지 모든 것을 영화 속에서 녹아내려고 했고 그리고 잘 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세련됐다

이 영화 ‘서울의 휴일’은 ‘로마의 휴일’의 스타일을 잘 따라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여성의 모습인 양미희의 헤어스타일은 오드리 헵번을 따라 했고 입고 있는 세련된 양장 스타일 역시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대화 역시 신시대에 맞게끔 영어를 섞어가며 하고 대사는 소설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 희한한 운명의 희롱이로군 짓밟힌 인생과 생명의 탄생. 같은 대사가 이 영화 속에는 널려 있다. 그리고 영화 시작 초반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엔조이 하고 있는 거잖소.

석 달 만에 우리 둘만의 시간인데 당신은 너무 에고이스트에요.

요즘의 여성들은 애정의 진리를 통 모르는군.

이러다가 오늘 플랜이 다 틀어지고 말 거예요.

그렇게 빈정만 대시면 전 동무들하고 놀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효

친구들을 동무들이라 칭하는 것도, 말끝이 올라가는 이북 사투리에 요, 가 효,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당시에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동경이 되는 생활과 배경, 그리고 건물과 술을 영상 속에 가득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아주 세련되게 만든 영화다

양미희 뒤로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반도 호텔이다. 계단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집 안 내부의 모습도 지금 우리집 보다 좋다. 거실과 침실도 크고 벽지도 세련됐다. 분명 로마의 휴일이나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는 영화의 배경을 답습했다. 당시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영화 속 세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창문의 커튼과 책장의 모습도 세련됐다. 다른 장면을 보면 책장 속의 책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신문을 보면 한글보다는 한문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50년대에는 한글보다 한문으로 글을 읽는 것이 어쩌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이 영화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키스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소설책을 읽는 듯 흘러가다가 두 사람은 포개져서 키스를 한다. 아마 극장 밖에 이런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즉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지방에는 극장도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상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를 쓰고 보러 가지 않았을까

산부인과의 모습도 세련됐다. 의사 가운을 입은 주인공 양미희의 모습이다

후암동 살인사건의 제보를 받는 모습이다. 전화기의 모습을 보면 세트에 맞추기 위해 소품을 구하려 고생을 한 듯 보인다. 외국에서 들여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뒤의 페치카의 모습도 좋다

서울의 당시 시내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구경도 해보지 못할 최초의 자동차가 이 영화 속에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이 장면은 꽤 쇼킹한 장면이었다. 양미희의 회상 부분인데 한강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옮겨놨다. 수영복의 모습 역시 당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속의 배우들이 입던 세련된 수영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수영복이 있다는 것조차 당시 사람들은 몰랐을 테니까

60년대의 로맨스 빠빠나 서울의 지붕 밑 같은, 이 영화보다 더 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맥주도 아마 최초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크라운 맥주로 여성은 맥주를 마실 때 새끼손가락을 든다

당시에는 없었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모습도 나온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가 미술적으로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테이블 보의 문형부터, 뒤로 보이는 건물과 신여성들도 보이는 옷들 역시 한껏 세련됐다. 이 장면에 두 명의 신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화는 남편들을 까는 내용인데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난봉쟁이라 일컫는다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남편의 동료들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양미희를 데리고 기분을 풀어 주려고 맥주를 마시러 간다. 이런 장면은 요즘은 흔한 장면이나 봉건 제도가 강했던 50년대에서는 틀을 깨는 장면이다. 여자 혼자 남자 셋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건 사실 요즘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굉장히 세련된 장면으로, 야외의 테라스에서 맥주를, 남녀가 마주 보며 맥주 잔을 부딪힌다. 역시 뒤로 반도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맥주를 마시기 전 남편의 친구들과 골프를 친다. 내기 골프에서 양미희가 져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이다. 사실 골프보다는 크로케에 가깝다. 공을 좁은 곳에서 이리저리 굴려 홀에 집어넣는다

캡처한 장면 되로 보이는 지붕에 서울시청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집어넣을 수 있는 한국의, 서울의 세련된 배경은 다 넣었다

이 장면에서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남편 친구들은 양미희에게 왜 술잔을 부딪히는지 아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대사가 나온다. 

말할 수도 없이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만은 이 황금색 액체는 우리의 시각도 만족시키고 이렇게 시원한 것이 제법 촉각도 만족시키죠. 야릇한 향기는 후각도 만족시킵니다만은 다만 한 가지 모자라는 청각은 요렇게 해서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거랍니다. 

이 이상 맥주 잔의 부딪힘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 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저 높은 동경의 대상이라 재미도 있지만 기록성을 지니는 아주 귀한 영화가 아닐까. 사람들은 로마의 휴일은 기억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는 전혀 모르니까. 참고로 컬러로 된 복원 판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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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1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대, 60년대, 70년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서울 도시 풍경을 보여줄 때의 군중 모두 날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는 모두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였을 텐데 말이죠. 요즘은 탄수화물의 비만의 주범이라고 하던데... 옛날 한국 영화 보면 틀린 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디ㅏ..

교관 2018-11-16 13:34   좋아요 0 | URL
요즘 탄수화물에는 이것저것 여러가지가 많이 들어 있나 봅니다. 저 시대에는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같은 것도 따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렇게 기분 안 좋게 만난 두 사람은 기적처럼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예쁜 사랑을 키워가고 반지를 끼워주며 결혼을 약속하고 마이가 그토록 원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해 주겠다며 히사시는 바로 예약을 한다. 마이는 너무 행복해서 무섭다고 하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만다. 난소의 종양이 뇌까지 침입하여 몇 년을 식물인간으로 지낸다. 쓰러진 첫날부터 히사시는 마이가 일어나는 그날이 올 때까지 폰으로 매일을 하루하루 기록해나간다. 그리고 예약한 결혼식장도 매년 3월 17일에 올지 모르니 계산을 하고 예약을 해 놓는다. 매일이 지옥 같지만 곁에 있어주기로 약속한 히사시는 정말 그렇게 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마이가 눈을 뜬다. 하지만 아이의 지능으로 돌아와 있지만 재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말도 하고 노래도 흥얼거린다. 하지만 히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마이. 마이는 히사시의 기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혼자서 비가 오는 날 휠체어를 타고 히사시의 아파트로 갔다가 넘어져 울고 만다. 마이를 찾아서 자신의 아파트 입구까지 온 히사시. 거기서 이까짓 기억이 뭐라고 히사시는 마이에게 자신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라며 곁을 떠난다. 기억에 없는 모르는 남자가 늘 옆에 있었는데 사라지자 마이도 허전함을 느낀다. 엄마와 산책을 하다가 웨딩홀 앞을 지나게 되다가 웨딩플래너를 만나고 히사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이는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휠체어를 타고 히사시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하지만 마이의 입장에서 히사시는 전혀 모르는 남자일 뿐이다. 기억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남자. 그리고 가면서 비밀번호를 몰라서 열지 못하던 자신의 휴대폰을 여는데 히사시에게 526개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첫날부터 기록해둔 마이에 대한 히사시의 사랑. 그리고 마이는 히사시가 있는 섬으로 가서 둘이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결말은 결혼식을 올리며 행복하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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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국수 한 그릇을 먹는 정도로 말을 해버렸는데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다. 클리셰에 신파에 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일본의 실화다. 몇 년 동안의 기억만 있는 남자와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여자. 그런 여자를 보며 그녀 곁을 떠나는 남자. 그런 남자를 다시 찾아온 여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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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계속 기다려줬고 믿어줬고 옆에 있어줬는데 아직도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 히사시 씨를 한 번 더 좋아하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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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의 말에 히사시는 바보 같은 웃음으로 “나는 계속 좋아하고 있어”라고 현재형으로 말을 한다.  히사시는 늘 마이의 편이었다. 이 장면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봐버렸다. 영화 속 마이가 뇌사상태가 되어 있을 때 실제 환자처럼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다. 그 곁을 매일 지켜주고 말을 걸어주고 하는 히사시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했다, 가 아니라 사랑한다,의 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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