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들의 내한 공연이 이뤄지면 여지없이 한국떼창이 화재에 오르는 유튜브 영상이 많다. 그러면 수순처럼 일본에서 팝스타가 실망했다는 영상까지 같이 따라온다.


한국은 흥의 민족이라 떼창으로 감동을 오히려 받고 가는 팝스타들의 영상을 만들어서 올린다. 일본으로 간 팝스타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일본 관중에게 실망을 하고 어쩌고 같은 영상이 올라와서 보는 이들이 일본 놈들 쯧쯧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제는 이런 호들갑 좀 그만 떨자. 국뽕은 나쁘지는 않지만 지나치면 호들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왜 떼창을 하지 않을까. 이번 엄청난 인파의 일본 버니즈와 만나는 뉴진스의 팜하나의 푸른 팜호초 영상을 봐라. 수많은 일본인들이, 그것도 지금 세대,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를 좋아하던 세대가 전부 한데 모아 팜하니의 푸른 팜호초를 따라 부르잖아.


일본의 밴드 글레이의 한 공연에서는 20만 명이 한 번에 모였다. 20만 명이라고. 2만 명도 벌벌 떨만한 인파인데 열 배인 20만 명이 모여 글레이의 노래를 같이 불렀다. 이 공연의 스텝만 7000명으로 공연이 끝나고 관중이 빠져나가는데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국뽕에 차오르는 건 좋으나 지나치면 나 이외의 것은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적당해해야지. 피규어 세계에서도 그렇다. 한정판으로 한국의 작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유명한 한국의 한 피규어 회사가 있는데 이미 나온 피규어들은 이게 피규어인지 실물을 그대로 줄여 놓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로 인기가 많은 회사가 있다.


이 회사에서 나온 피규어가 원더우먼, 조커, 할리퀸, 메라 등 실물과 너무나 흡사하게 피규어를 만들어서 세계도 놀라고 피규어 전문가들도 놀라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피규어가 나오면 너도나도 영상을 만든다. 그 대부분이 한국이 해냈다, 드디어 한국이 미쳤다. 같은 문구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을 만들어서 내놓을 때마다 국뽕에 차오른 말과 문구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한국이 해냈다 보다는 피규어 만들어 내는 그 회사가 해낸 것이고, 피규어 작가들이 해낸 것이니까 그들을 주어로 집어넣어서 말하는 게 낫다고 본다. 피규어를 나도 좋아해서 가끔 피규어 유튜브를 보는데 그들도 나름대로, 뭐랄까 경쟁은 아닌데 경쟁을 하고 있다.


이번에 아주 비싼 아톰이 새롭게 나왔는데 너도 나도 구해서 올리고 있다. 먼저 구입해서 영상을 만들어 빨리 올려야지 조회수가 다른 유튜버보다 많이 나오는지 몰라도 여러 피규어 유튜버가 하는 얘기가 비슷한 얘기뿐이다. 피규어 세계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개성이 강한 유튜버가 있는데 이들은 유행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살린 피규어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조금씩이자만 꾸준하게 구독자도 늘고 광고도 자주 들어오는 것 같고 괜찮아 보인다.


피규어 세계는 그렇다 치고 테크튜브들은 더 하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애플 신제품 발표나 새로운 휴대전화가 나오면 너도나도, 전부 우르르 같은 기종을 비슷한 말로 올릴 뿐이다. 뭐 이벤트를 하는 유튜버가 있고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다 보니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다. 뭐든 적당히 하면 되는데 그만 그 선을 넘어가 버리면 호들갑이 된다. 떼창은 한국이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피규어는 10년 전에 비해 지금이 그 시장이 더욱더 커지고 확고해진 것 같다. 물가가 치솟은 요즘, 먹고살기가 힘든데 어째서 피규어 시장은 규모가 점점 확장되는 것일까. 알고 있는 속눈썹 샵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 보니 일주일 내내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하더라. 즉, 외식가격이 올라, 한 끼 정도 안 먹을 순 있어도 속눈썹 연장하는 건 해야 한다는 거다. 그걸 해야 하는 나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 않았을 때 드는 불안이나 예약을 해 놓고 가서 시술을 받을 때 어떤 알 수 없는 기분이 물가가 올라 한 끼 정도 굶으면 돼, 하고 생각해 버린다.


피규어도 그렇다.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뭘 어쩌지도 못하는 피규어를 손에 넣게 되었을 때는 그 안도감과 여러 감정이 평온해진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공유가 가능하다. 그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소리를 지르러 가는 공연도 그렇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에 가는 것이 비록 돈이 많이 들지는 모르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오면 그 숨 가쁜 기억으로 일주일, 한 달을 보내는 동력이 된다. 그 동력이 떨어질 때, 비록 나의 상태가 비루하고 남루하더라도 모은 돈으로 좋아하는 팝스타나 가수의 공연에서 또 충전을 한다.


뭐 어떻든 어떤 분야든 국뽕에 차올라 마음이 막 그럴 때가 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호들갑 떨며 깊어지면 나 아닌 것은 나쁜 것으로 보는 현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남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각할 필요는 없다.


이번 글래스톤베리 2024년도 유튜브에 영상이 떴다. 신디로퍼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콜드플레이까지. 너무 좋더라. 후덕해졌지만 에이브릴 라빈도 노래를 불렀다. 아엠 위드 유를 부르는데 사람들은 그저 즐긴다. 글래스톤베리는 그래서 좋다. 저 수많은 깃발 중에 앞에서 펄럭이는 ‘퇴사’ 깃발을 보라. 이 한 번의 글래스톤베리를 위해 회사까지 떼려 치우고 간 걸 보면 와우 하게 된다.


Avril Lavigne - I'm With You (Glastonbury 2024) https://youtu.be/eE-mcJAdCLw?si=3YKBU9eQzP-klV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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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바른 것,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평범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소외된 자들이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자신의 비틀어진 감정은 꽁꽁 숨겨둔 채 나는 그러지 않아 하는 얼굴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다.


그래서 정작 돌처럼 겉과 속이 같은 사람들은 소외당하고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벌레 취급을 한다.


비상식과 비정상을 규정짓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들은 정상일까. 그저 겉으로 멀쩡하면 정상일까. 장애가 있으면 단지 불편할 뿐이지만 아픈 사람으로 본다. 정신이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뉴스로 매일 접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정상이지만 정상인이라 칭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기류는 말한다 “나는 늘 지구에 유학 온 기분이었어.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사람한테는 이 세상은 정말 재미있는 곳일 거야. 내가 상처받는 하나하나가 다 즐거움이고 나도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누리고 싶었어. 평생 딱 한 번이라도.”


사사키는 말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잖아. 그건, 다들 내일 죽고 싶지 않거나 죽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닐까? 내일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 죽음을 개의치 않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야. 그런 흐름에 섞이는 게 사회의 일원이라는 거겠지.”


멜론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멜론의 맛을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멜론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멜론의 맛을 모르기에 멜론의 맛을 듣기만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 세계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평범함을 규정짓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아,라고 말하지만 그 평범함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면 나의 모친이 생각난다. 나의 모친은 조카가 그저 평범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 평범이라는 범주에 개성이라는 건 말살되어 있다. 조카는 이미 미술에 미쳐있다. 학교에서 전교생 통틀어 그림으로 1등이고, 미술 학원에서도 1등이라 다른 걸 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물론 나중에 프로로 뛰게 되면 좌절도 하고 울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엄청난 실력과 노력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조카의 모습이 모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들처럼 똑같이 수업받고 성적 좋아서 자랑도 하고 싶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아야 된다는 주의다.


거기에는 조카의 무뚝뚝한 성격도 모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옆집 아이들처럼 싹싹하지 못하나 한다. 옷 입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조카 옷을 구입해서 늘 나와 마찰을 일으킨다. 조카는 할머니가 사준 옷을 입지 않는다. 할머니의 눈 높이에서 산 옷을 입지 않은 조카 역시 모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흐름에 속하지 못하는 아주 개성이 강한 소외된 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고 그들을 소외시키는 사람의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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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가 버렸다. 칠월은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쨍쨍한 태양이 힘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칠월이 일 년 열두 달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사람이 나다.


정말 거짓말처럼 칠월이 딱 되었을 때 매미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매미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쐐에에에 에 하며 아주 시끄럽게 매미들이 우는 소리가 좋다. 매미소리는 시끄럽지만 소리다. 오토바이, 자동차 같은 소음이 아니다. 그래서 매미소리는 참 좋다. 누군가는 매미가 도시에서 다른 소음 때문에 그렇게 시끄럽게 운다고 하는데, 촌으로 가도 매미는 쐐에에에 에 시끄럽게 울더라.


도심지라고 해도 강변에는 차가 없으니까 저녁에 조깅을 하다가 숲이 있는 곳으로 가면 매미소리가 들린다. 듣기 좋다. 여름이고. 조깅을 하면 땀이 흠뻑 나오고. 너무나 좋다.


아직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을 자고 있다. 뉴스에서는 또 역대급이라는 말을 써 가며 폭염이 벌써 왔다고 한다. 물론 덥기는 덥지만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잠들어야 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은 오래 맞고 있으면 좀 별로다. 매년 하는 말이지만 여름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은 조깅을 하면서 땀을 듬뿍 흘리고 나면 자연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에어컨 바람을 맞다가 자연바람을 맞으면 덥덥한 바람으로 느끼겠지만 땀을 잔뜩 흘리면 몸의 온도가 올라가서 자연바람도 시원하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시고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여름밤이 시원하다. 설령 폭염이 닥친 날이라고 해도 에어컨 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닷가에서 책을 읽으며 고등어 굽듯이 뒹구르르 태양에 몸도 잘 구우면 보기도 좋고, 더위도 덜 탄다. 자동차에 에어컨도 아직 틀지 않고 있다. 창문을 열고 다녀도 될 만큼 자연바람이 아직 시원하다.


시원하다고 느끼려면 에어컨 바람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조깅이나 스쾃을 매일 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나도 코로나 이전보다 달리는 거리가 줄었다. 며칠 전에는 마음먹고 그때만큼의 거리를 달렸는데 무리였다. 몇 번을 쉬어야 했는지 모른다.

칠월 일 일이 되자마자 매미들이 합창을 한다. 아직은 때 이른 소리처럼 들리지만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나에게 있어 아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덥지만 무덥지 않고, 시끄럽지만 소음처럼 들리지 않아서 매미소리는 좋다.

조깅을 하러 나왔더니 고영희 씨가 자세를 잡고 있다. 아마 잠자리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가을에나 나타나는 고추잠자리가 이 시기에 가득 나타난다. 강변을 조깅하면 눈에 띄는 현상들이 있는데 오뉴월에는 벌레들이 엄청나다. 날벌레 떼들이 곳곳에 있어서 팔을 휘저으며 달려야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이상하지만 고추잠자리가 가득 나타난다. 코로나 때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서 메뚜기가 엄청 나타났다. 그때 기록을 보니까 초딩들이 방아깨비를 잡아서 다리를 잡아떼는 재미에 빠져 있는 모습을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해 놨다. 코로나 때 전국에서 내가 있는 이 도시에 메두기 떼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에 때로 메뚜기가 나타났다고 해도 미국처럼 곡식을 아작 내는 일은 없다고 한다.


고영희 씨 더운데 조깅하지 말고 저기 그늘에서 쉬고 있어.

이곳은 아파트 단지 안이다. 한 40년 된 아파트 단지인데 아파트는 한 동이며 엘베가 없는 아파트고 단지 안에 이런 건물도 있다. 이곳을 지나치면 한 5초 동안 서서 여기서 단편 공포영화를 찍으면 참 좋겠는데, 같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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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붉은 꽁지가 아이의 얼굴을 스치고 해변을 물들였다. 자동차 보닛이 가스레인지처럼 달아올랐고 밤의 달빛이 놀다 들어온 강아지처럼 방구석에 처박힐 때면 그 사람은 레오파드 원피스를 몸에 부착시키고 화장을 했다. 눈썹을 올리고 눈 화장을 하고 립글로스를 발랐다. 그 사람은 늘 어두워지면 외출을 했다.


바다는 거대한 그늘로 더욱 침잠된 비극을 피어오르게 하고 낮 동안 뜨거웠던 열기가 남아 있는 해변의 구석구석에서 비극의 맛을 보려 갯지렁이가 꾸물대는 모습이 몽환적으로 비쳤다.


초초하게 쭈그리고 앉아 다리를 말고 날짜변경선 너머 달의 뒤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마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잠기곤 했다. 이런 감정을 달래듯 풋사과를 씹었다. 시고 단 맛이 위로처럼 따뜻하고 축축이 목 안으로 차오르고 까닭 모를 눈물이 고여왔다.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눈물은 눈으로 나오지 않고 등으로 흘러 기분 나쁘게 셔츠를 적셨다. 수명이 다 된 매미가 더운 어둠 속에서도 엄마엄마 비극적이게 울었다. 그 소리에 정신을 가만히 집중하노라면 내 육체는 아주 얇고 투명한 빛의 막이 되어 집개미가 식탁 위를 오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저 밖 해안가 가로등의 하얀빛이 고통처럼 얼굴을 뚫고 방구석에 뿌리를 내릴 것만 같아서 눈을 감았다. 해가 숨어 버렸지만 가시지 않는 더위에 눈을 감고 보이는 그 세상에 적응하려 했다. 그럴수록 침착하고 음험하게 끓어오르는 숨 막히는 열기에 냄새나는 입을 벌렸다.


그때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 누군가 쳐다보고 있었다. 열기에도 보송한 얼굴을 한 채 예쁜 이마를 드러내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름다운 입술을 한 그 사람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안다. 어룽어룽한 전체적인 얼굴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 사람은 작은 입을 벌려 무엇이라 말을 했다. 나는 몸을 공벌레처럼 말고 조용히 그 사람의 모습을 눈을 감고 바라보았다.


가로등이 땀 내 나는 바람에 흔들리고 갯것들이 귀신같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고 성가시게 갈라진 머리칼이 뾰족하게 주뼛 솟았다가 힘이 풀어지며 바닷속 해초처럼 흐물렁거렸다. 그 사람은 손을 내밀었는데 나는 더욱 내 몸을 마는데 손에 힘을 주었다. 매미 소리가 또 들렸을 때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깨진 거울 파편처럼 차디차게 반짝이며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그 사람은 침잠된 비극을 잘 접어서 알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했다. 그 속에는 어쩌면 탄식이나 후회보다 비참함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돌멩이처럼 더 몸을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눈을 뜨려고 하니 마른 눈물에 눈이 붙어버렸고 무덥고 어두운 비극 속으로 어디선가 차가운 빛 한 줄기가 스며들었다. 빛줄기를 타고 끓어오르는 은유를 보았고 은유 속에 울면서 타오르는 그 사람이 있었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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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경영난 속 휴간이라는 기사를 봤다. 휴간하면서 신인문학상 공모전도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구름처럼 흘러가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실제로 닥쳤구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에는 댓글이 한 줄도 달리지 않는다. 뭐랄까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많이 동떨어진 다른 곳의 이야기인 것이다. 일 년에 공모전은 수없이 열린다. 그리고 당선자들은 쏟아진다. 매 년 공모전이 여기저기에서 열리니 달려들었던 사람들에서 어떻든 매 년 당선자가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 년 배출하는 문학 공모전의 당선자와 당선작을 대체로 잘 모른다. 쏟아졌다가 사라진다. 그래서 온전히 문학에 전념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드물다. 내가 아는 중소규모의 출판사도 매년 에세이와 시집을 발표한다. 공모전이라기보다 출판사 측에서 이 정도면 괜찮아, 해서 책을 출판하고 그 비용은 대체로 텀블벅으로 한다. 그래서 시집 같은 경우는 읽어보면 시?라고 생각되는 시집이 많이 있다. 박준이나 유희경 같지는 않다. 이전의 우리가 알만한 등단 시인의 시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렇게 출간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거의 모두가 강연을 한다. 그래서 그 강연이 들을만한 강연이가 한다면 또 글쎄다 같은 의문이 든다.

이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일단 책을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그 책을 읽어줄 독자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글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책까지, 그것도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것이니까. 흐름이라는 건 설령 좀 잘못 흘러간다고 해서 딱 버티고 막아서 다른 흐름으로 돌리는 것이 아주 어렵다. 흐름이 바뀌는 흐름이 보이는 건 꽤 시간이 걸린다.

종이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전자책으로 전부 넘어가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이런 흐름은 시간이 걸린다. 종이책은 한 권 구입해서 여러 사람이 돌려 볼 수 있으니까 자신의 폰으로만 볼 수 있는 전자책이 수입적인 부분에서는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러나 조금씩 눈에 띄지 않지만 종이책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문예지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문예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 것은 나의 단편 소설을 2년이나 연재해 준 계간 풍자문학이 사라졌을 때다. 수면 밑에서 깔짝깔짝 거리고 있던 나를 그래도 수면에 닿게 해 준 계간지가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런 계간지는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소설뿐 아니라 수필, 기행문, 시까지 여러 문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하루키 역시 에세이는 문예지를 통해서 발표를 한다. 그런 점은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계간지 같은 문예지는 그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정치와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영화가 기록하고 다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흐름이다. 야후를 대동한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전문가들은 큰일이 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흐름이다. 스마트 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역시 큰일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주 5일 때에도 그랬다. 그냥 흐름이다. 그 흐름에 올라탄 나는 몸을 맡기면 된다. 단지 그 흐름 속에서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이 있고, 못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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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김밥과 부탄가스! 근데 폐간됐군요.
문학사상은 좀 아쉽네요. 살아있는 동안 살려고 몸부림쳐야 살아지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지겠지요.

교관 2024-07-07 11:22   좋아요 0 | URL
2016년도 여름호부터 2017년 가을호까지 저의 단편 소설이 실렸답니다 ㅋㅋ 그래서 좋은 추억이 담긴 계간지입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