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호러가 될 뻔한 이야기지만 미스터리 로맨스로 재미있다. 강풀의 원작답게 인간적이고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마녀라 불리는 미정이는 너무 예뻐서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지만, 남자들이 좋다고 다가오면 다치거나 죽어버린다. 그래서 점점 혼자가 되는 미정이를 구렁텅이에서 빼 내려, 목숨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예뻐서 남자애들이 미정에게 선물을 주거나, 좋다고 말을 하면 어김없이 돌아가는 길에 남자애들이 포트 홀에 빠지거나 다치고 만다. 점점 미정이가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계속 죽는 남학생이 생겨나고 결국 미정이는 동네에서 쫓겨난다.

미정에게 마음을 내비친 남자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는 마치 데스티네이션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연출이 되었다. 엄청난 번개가 조짐을 보이더니 내리친다거나, 전봇대의 전기가 지릿지릿 움직이다가 남자에게 확 온다거나, 간판이 끼리리릭 하면서 죽음을 암시한다.

고등학교 동창인 동진은 그런 미정을 안타깝게 보지만 소문이 소문이라는 증거, 미정이는 마녀가 아니라는 증거를 수집한다. 통계학과 출신답게 증거를 근거로 접근하여 법칙을 알아낸다.

이 법칙은 데스노트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씩 드러난다. 미정이와의 거리가 10미터 안에서일 때, 10분을 같이 있을 때, 몇 마디를 이상이 되었을 때, 그리고 미정이가 남자의 이름을 알았을 때 등등 이런 규칙이 맞으면 남자는 죽거나 다치게 된다.

그럼 다치는 남자는 왜 그렇고, 죽는 남자들은 왜 그럴까. 동진은 그간 미정에게 다가갔다가 다쳤던 남자들을 죽 만나면서 하나씩 소거법 같은 것으로 규칙을 알아내서 직접 미정이 사는 집 근처로 가서 배달원으로 미정에게 매일 다가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동진이가 대학교 때 미정이처럼 혼밥 하고, 말도 없고 혼자서 집에 가는 중혁이라는 친구를 보고 다가간다.

동진을 자꾸 밀어내는 중혁은 동진의 끈질긴 친화력에 결국 친구가 되고 두 사람은 대학을 나와 중혁은 형사가 되고, 동진은 통계학자? 같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말미에 중혁의 비밀도 밝혀진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때문에 미스터리 호러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로맨스다.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고 좋다. 노정의와 고윤정은 시크하게 나오면 인기가 치솟는다. 그런 매력을 잘 이끌어내는 것 같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사건으로 불안할 때 누군가 그건 네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 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후반부로 가면 미정에게 다가가서 규칙에 전부 속하는데 죽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동진은 그 이유를 밝히려고 목숨을 걸고 미정의 곁으로 다가간다.

원작에 비해서 못하다는 혹평이 많지만, 원작을 보지 않고 판타지 로맨스물을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자기 잘못도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의 힘으로 구원을 할 수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마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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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방송을 다시 듣기 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정든 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050506 화요일 오전 12시 14분입니다. 이 날의 방송을 들으니 정든 님 목감기가 걸려서 목소리가 어비스의 물속 같은 신비로움이 묻어납니다. 어비스는 꽤 잘 만든 공포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영화를 보면 후에 나온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전초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에 이렇게나 멋지게 바닷속 판타지 공포를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게 됩니다. 바닷속에 갇히면 어떤 기분일까요. 문득 고립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고립이라는 건 무인도에 갇힌 고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의 고립을 말합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힐 경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까지 심각한 고립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가득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갇혀 고립이 되면 무서움이 굉장합니다. 곧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게 될 텐데 말이죠. 폭풍 속으로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미친 듯이 달리는 두 주인공이 생각납니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병으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노래도 듣고 싶군요. 패트릭 스웨이지는 암 때문에 말년에 힘들었습니다. 2008년에 췌장암 진단을 받았는데 고작 1년 뒤에 영화 고스트처럼 빛이 되어 하늘로 갔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죽기 전의 스웨이지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마치 나뭇가지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지만 홀로 췌장암 투병을 하며 지내는 건 고립과 같습니다. 고립이라는 건 자기 자신이 고립 속으로 더 몰아넣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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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말이지만 


엑스파일 시즌 1, 7화에 멀더와 친구 형사가 이야기하는데 잘못 판결을 안 판사의 눈이 적출되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말도 안 되는 판결을 하면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한다. 엑스파일 시리즈는 지금까지 나온 판타지 공포물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무한도전과 비슷하다. 새로운 영화가 나와도 엑스파일을 뒤지면 어지간한 이야기는 이미 다 했다. 7화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다. 도스 같은 화면이 뜨면서 말을 하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엘리베이터를 떨어트리고, 감전 등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슈퍼컴퓨터의 초기 버전쯤 된다. 요즘 인공지능이 잘못 선고한 판결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화가 나서 판새의 휴대폰으로 들어가서 통장의 자본을 회수한다. 그 돈이라는 게 세금으로 이루어졌는데 제대로 판결하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만 생기는 것에 대한 회수다. 인공지능은 판새가 운전대를 잡으면 제너레이터를 꺼버린다. 교통카드를 먹통 시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소등하고 전기공급을 중단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영역을 넓혀 판새를 도와서 잘못된 선고를 내린 동료 판새들의 휴대폰으로 들어가 일상을 망가트린다.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티브이를 틀면 잘못된 판결한 뉴스만 계속 나온다. 판새가 다니는 길목의 모든 전광판에는 그 뉴스가 나오며 식당에 가면 음식 주문을 받지 않는다. 이유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든 사람이 그러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지속적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알림을 보내고, 급기야는 가족에게로 뻗어나간다. 결국 판새는 정신이 나가서 행려병자 같은 몰골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바이러스에 걸려 구토를 끊임없이 한다. 그나저나 엑스파일 시즌 10이 나온 지도 거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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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상한데 내가 이상해지는 꿈을 자꾸 꾼다


하늘이 움직였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하늘이 움직인다는 게 너무나 이상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가만 서서 하늘이 움직이는 모습을 봤다. 집에 오니 아버지가 와 계셨다. 회사에서 이렇게 일찍 올 리가 없는데 아버지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냄새가 햄을 굽는 냄새였다. 그러나 햄이 타는 냄새가 났지만 아버지는 불을 끄지 않았다. 아버지는 햄을 까맣게 태워서 먹었다. 나에게 태운 햄을 덜어 주었다. 나는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이런 음식을 먹지 않는다. 게다가 아버지는 음식을 태워서 먹는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태운 햄을 먹었다. 아무렇지 않게 먹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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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쓴 글


오늘, 날이 좀 풀린다더니 아직 밖은 쌀쌀하다. 겨울의 끝물이 스포일러의 약물이 물에 번지듯 너무 서서히 빠지고 있다. 잠시 걸으며 생각을 했다. 근래의 이재명 대표를 보면 ‘길 위의 김대중’의 현실판을 보는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을 마치 때려죽일 놈으로 몰고, 검사세력은 이재명을 도대체 얼마나 불러 세웠나. 거기에 온갖 언론마저 이재명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인물로 도배를 하고 비정상적인 기사를 내보낸다. 급기야 헌재마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얼마나 외로울까. 김대중은 엄혹한 시대에 몇 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정보부에 납치되어 밧줄에 꽁꽁 묶여 가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민주주의 열망이 꺼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게, 말로만 하는 소신이라는 게 이처럼 처절하고 힘들고 아프게 보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모습이 이재명에게서 보인다. 위로하러 간 사람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폭행까지 하려 한다. 이재명은 외롭다. 어릴 때 뛰놀던 앞마당과 포근했던 엄마의 가슴과 든든한 아빠의 목소리, 귀여운 친구들과 즐거웠던 그때를 떠 올릴 여유가 없다. 이처럼 외로운 사람이지만, 언젠가 이재명 대표가 편안한 마음으로 뒤돌아볼 수 있도록 외로운 이천오백만 명이 이재명을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나하나의 외로운 이들이 모이면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정치를 잘할 거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당장 내려오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세수만 펑펑 쓰고 국민은 불행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으면 괜찮은가. 도덕적으로 깨끗하니까? 그러나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말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일뿐 도덕적으로 많은 잘못을 했다는 건 우리가 다 알고 있다. 법적으로 걸리는 게 없게끔 했기에 이를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포장을 한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라도 자신의 지역구 사람들에게 예산 잘 받아와서 지역구 시민들 복지 빵빵하게 해주는 정치인이 환영받는 거 아닌가. 그놈의 도덕적 깨끗함을 정치인에게서 찾지 말고 정치를 잘하는 정치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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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트리에의 작품으로 광기가 가득하고,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포영화다.

라스 폰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를 촬영하기 직전 정신병원에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퇴원하고 영화를 촬영했다는데, 이 영화뿐 아니라 다른 영화도 정신에 담이 오고, 항문에 치질이 걸릴 것 같은 내용과 영상이 가득하다.

특히 이 감독이 보여주는 숲의 모습은 언제나 기기하고 괴괴하고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짙 녹음과 그늘이 가득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이 감독의 영화가 실인마 잭의 집이었는데, 그때 보고 인스타에 올렸을 때 강제 삭제되었다. 불과 몇 년 전인데 그때는 아톰이 팬티만 입고 날아가는 모습도 삭제가 되었다.

아무튼 라스 폰트리에 영화는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이야기와 영상이 많다. 두 명의 주인공이 영화를 전부 끌고 간다. 그렇지만 꽉 차게 느껴진다.

무섭고, 스릴러 같으면서 드라마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자연주의 적인데 아주 야해서 외설스럽고 예술적으로 보이는 성교 장면들. 이어지는 충격적인 가학적인 장면들.

진정한 공포의 주체는 귀신이나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 죽고 못 살아서 사랑한 상대방이 변심을 하고 무섭게 변하면 그보다 더 공포가 없는 현실도 그렇다.

이 영화를 아직 못 봤다면, 그래서 보고 싶다면 이래저래 정신을 바짝 부여잡고 봐야 한다. 성기는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이 되고 가학 역시 적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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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것 같다가도 질 것 같은 불안감이 맴돌면 그게 마치 하나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졌다고 느껴졌을 때 드는 박탈감과 허무 그리고 열패감은 크다. 그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진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인생을 살아보면 언제나 내 생각대로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건 나의 문제, 내 쪽에서 일어난 오류로 인한 실수와 실패다. 그러나 내가 진 상황이 나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억울함이 몸 안에서 꿈틀 되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오컴의 면도날에 대입하여 하나씩 소거한 다음에 다시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억울하기에 할 수밖에 없다.

엑스맨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 브라이언 싱어가 맡은 1, 2편은 아주 잘 만들었다. 영화 속 정부는 매그니토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그냥 매그니토라서 그렇다. 매그니토로 태어났기 때문에 싫어한다. 매그니토 같은 별종이 엘리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저 싫은 것이다.

‘왜’가 아니라 ‘너’라는 이유로 싫어한다.

엑스맨에 나오는 돌연변이들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양한 인종, 질병에 노출된 사람, 사고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런 모습이기에 싫어한다. 엑스맨 1편에는 잊을 수 없는 대사가 나온다. 트럭에서 로그가 울버린에게 아다만티움의 갈퀴가 손을 뚫고 나올 때 아프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대답 한 “매번”이라는 대사였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매번 힘들고 지치지만 바로 털고 일어나서 맞서야 한다. 덕분에 더욱더 결속하고 뭉쳐야 하는 힘을 얻었다. 나의 모친은 평생 우파였다. 평생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던 모친이 어제는 뉴스를 꼼짝하지 않고 보고 있다가, 이건 판사들이 법을 어기는 거라며 이번에는 이재명을 찍겠다고 했다. 저들은 그저 이재명이기에 안 된다는 것이다. 어제 이후 다시 뭉쳐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후보가 우리를 믿고 가겠다는데 우리가 쓰러질 필요가 있나.

여기(어제)는 비가 온다. 이전에는 비가 내리면 사람들에게 하늘이 존재를 알리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문학적인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근래에는 비가 내리면 모든 게 귀찮다. 특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쏴아 쏟아지는 비에 비해서 더 옷을 젖게 만드는 것 같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희망 따위 여지를 두지 않고 쓸어버리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유리창에 물방울로 붙어 떨어지기 일보직전 절망 끝에 보이는 희망 같은 거? 비가 오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는데, 몇 달 동안 폭력을 많이 본 것 같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찮은 한 개인의 힘을 보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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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다가 하늘에 뜬 달을 봤다. 달은 언제나 저기 저 하늘에 외롭지만 쿨하게 떠 있다. 떨어지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저 멀리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지도 않은 채 저기에 뜬 채 내가 바라보면 고독하게 나를 바라봐준다.

달은 늘 같은 모습일 테다.

400년 전의 달도 지금의 달이었다.

300년 전의 사람도 지금 내가 보는 달을 고개를 꺾어 바라보았다. 윤동주도 감옥에서 조그맣게 난 창으로 보이는 달을 보며 ‘달을 쏘다’를 썼다.

그 달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란 몹시도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기분이다.

달은 그렇게 오래 전의 사람들과 나를 이어준다. 달은 항상 똑같은데 매일 다르게 보인다. 그건 달과 나 사이에 있는 불순물 때문이다.

가스층이 없는 맑은 날은 진하게 보이더니 습도가 높고 대기에 먼지가 많으면 달은 뿌옇게 보인다.

구름이 하늘에 많은 날은 달이 가려지기도 하고, 아주 흐리게 보인다. 저렇게 쿨하게 떠 있으려면 달은 꽤나 힘들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일큐팔사에도 나온다.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고 든 생각을 한다. 어느 날 1984년에서 1q84년으로 와 버린 아오마메가 매일 달을 쳐다본다. 요즘 일큐팔사를 다시 읽고 있지만 참 재미있다. 읽을 맛이 난다.

그 분위기, 주위의 건물이나 사건들이 상상력으로 떠오른다. 노부인이 살고 있는 주택의 모습도, 심지어 아오마메의 얼굴도 떠오른다.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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