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고 항상 어린 시절 살던 동네로 돌아온다. 그 동네의 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동네를 지나칠 때면 기시감이 화악 든다. 그래서 매일 조깅을 하면서 돌아서 그 동네를 지나친다. 아직 군데군데 어린 시절의 동네 모습이 남아 있다. 살았던 집과 동네는 전부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골목에는 아직 오래된 집들이 있다.

동네가 사라지는 모습을 매년 조금씩 지켜봤다. 어릴 때 다녔던 교회도 있고 성당도 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있다. 하지만 모습은 많이 변했다. 작고 그림 같았던 교회와 성당은 재건축을 통해 거대해졌고 요새 같아졌다. 초등학교의 운동장은 사라졌고 건물이 앞뒤로 더 늘어났고 저녁 8시 이후에는 교문을 닫았다. 교문이라고 하지만 허리께 오는 바리케이드를 쳐 놓는 상태다.

유월의 저녁에 더욱 기시감이 든다. 어린 시절에 뛰어 놓던 나의 작았던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목청껏 부르던 친구들. 골목에서 시끄럽게 놀다 보면 야간을 하고 온 회사원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컴퓨터도 업고, 게임기도 없었지만 골목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건 재미있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시간에는 엄마에게 끌려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유월이 되면 낮이 길어진다. 노을도 더 붉어지고. 그래서 동네가 예뻐졌다.

밤이 오기 직전까지,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하기 직전까지 동네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다 보면 동네 골목을 지고 저 멀리 노을이 붉게 진다. 오렌지 빛이 황홀하게 보였다. 동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서 스노볼 같은 걸 가지고 노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확하게 스노볼은 아니고 작은 상자 안에 작은 바다가 있고 그 위에 배가 떠 있어서 흔들면 파도 위에서 배가 휘청휘청하는 스노볼이었다. 나는 그걸 앉아서 가지고 놀고 있다.

코가 간질간질할 만큼 햇살이 좋은 봄날에 빛을 받으며 그렇게 앉아서 놀던 골목이 있던 동네를 매일 조깅을 하며 스쳐 지나온다. 동네 근처 아직 마당이 있는 집을 지나칠 때면 담 밖으로 비어져 나온 각종 나무에서 나는 허브향이 좋다. 이런 향을 맡을 수 있는 시기는 일 년에 4, 5월 달 정도밖에 안 된다. 유월이 되면 거리에 심어 놓은 아카시아 향이 나고 밤꽃 냄새가 풍긴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집에 심어 놓은 나무에서 나는 허브 향은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은 언제나 좋다. 특히 고단하기만 한 어른의 생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그런 소리 집어치우라고 하지만, 지금 행복해?라고 물었을 때 나 지금 행복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은 썩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거가 끝났다. 막상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 그동안 SNS에 올렸던 정치풍자 같은 글들을 올리기 전의 시시한 글만 올리고 지내야지 했지만 쉽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어른이 된 4, 50대는 늘 불안해하며 지낼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나고 20대 누군가가 SNS에 4, 50대를 향한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읽고 뭉클하지 않을 4, 50대가 있을까 싶다. 24시간 중에 잠깐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행복한 꿈을 꾸는 건 다음 날을 보내는 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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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컬트 호러 액션 판타지 세대갈등을 무너트리는 드라마적인 괴랄한 만화 같은 이야기다. 일본 호러 공포의 경계를 다 파괴하고 기묘한 공포물이 된 영화다.

1시간 정도는 일본 공포물 답게 무섭게 흐르는데, 그 뒤로 공포 작법이 허물어진다. 공포영화인데 전개는 코믹 만화처럼 전개된다.

억울하게 죽은 사유리가 귀신이 되어서 그 집에 들어온 한 가족의 엄마, 아빠, 동생, 누나, 할아버지를 아작 내서 죽여 버린다.

그래서 다 죽어가던 할머니가 각성하고 벌떡 일어나 무술을 하며 주인공인 손자 노리오를 훈련시켜 사유리를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사유리는 워낙에 악귀라 그 기에 눌리지 않기 위해 할머니와 노리오는 항상 즐거운 기운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많은 음식을 먹어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한 생명력으로 사유리를 이길 수 있다.

중반부로 넘어가면 코믹 같지 않은 코믹으로 넘어간다. 사유리를 물리치기의 해서 발설하는 주문은 [혈기왕성 성기발랄]이다. 사유리가 이러는 건 가족의 끈끈한 유대가 싫어서 다 죽이려 한다.

이렇게 코믹하게 흘러가다가 후반부에 사유리의 사연이 나온다. 믿었던 가족에게, 그것도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지만 엄마는 모른 척하고, 동생은 사유리만 없어지면 가족이 행복할 거라고 한다.

분명 이 영화는 똥 같은 영화인데 보다 보면 묘하게 설득이 된다. 사유리는 자신을 죽인 자신의 가족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렇게 미운 가족이지만 엄마는 차마 죽이지 못한다. 가족이란 인간에게 그런 존재다.

무술연마와 태극권을 사용하며, 먹방과 함께 웃긴 장면의 반복이 공포와 어울려서 신선한 반전의 괴랄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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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사람을 타고 타올라,

재가 되어 없어지는데,

글 속의 너는,

넌 그을음으로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타는 냄새를 풍긴다,

지속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는 건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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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따뜻하고 아름답고 어여쁘고 코믹하면서도 감동이 가득한 이야기. 자극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는 다시 보니 성장 영화였다.

누가 성장을 하는 가 하면 컬리 수가 아니라 아주 냉철하고 컴퓨터 같은 변호사 그레이가 성장을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나 홀로 집에]의 코믹함과 [귀여운 여인]의 여러 장면을 답습해서 존 휴즈 감독이 머리를 굴려 만들었을 것이다. 코믹한 장면은 효과음이나 연출이 애니메이션에 가까울 정도로 유쾌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빌과 컬리 수는 거대한 그레이의 아파트에 머물게 되면서 점점 냉철한 그레이가 컬리 수에게 마음을 열며 따뜻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레이는 고급고급으로 걸친 옷과 헤어 스타일 그리고 입에서는 고급의 언어만 튀어나오는데 대책 없는 귀여움의 컬리 수는 거칠고, 욕설에 가까운 말투와 깔때기 없는 언어구사를 들으며 점점 동화되어 간다.

스낵바에서는 냄새 때문에 절대 가지 않던 그레이는 빌과 컬리 수와 피자를 먹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큰 소리로 웃으며 인생의 즐거움을 알아 간다. 그 사이에 고급부류의 애인의 방해가 이어지고 점점 컬리 수에 마음을 열어 간다.

그레이로 나오는 켈리 린치는 큰 키에 웃음마저 예쁘다. 이 철없고 고급스러운 그레이 역의 켈리 린치가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는 술에 절어 아들과 함께 잠을 자려는 인생 밑바닥의 연기를 보인다.

이 영화에서 단연 으뜸은 컬리 수다. 연기도 연기지만 컬리 수가 울면 보는 이들도 같이 따라 울게 된다. 여러 귀여움의 대명사가 할리우드 영화 판에 있었지만 컬리 수 만한 아역배우도 없다.

컬리 수의 알리산 포터도 지금은 40대 중반이다. 시간이 정말 똥이다. 아역으로 인기가 치솟은 배우들의 저주답게 알리산 포터도 이후 내리막 길을 걷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개고생을 하고 가수로, 댄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애덤 르바인, 파렐 윌라 암스의 심사 전원의 표를 얻어 더 보이스 시즌 10의 우승자가 된 알리산 포터.

그러나 그 마저도 거의 십 년 전이다. 90년대 영화는 가끔씩 보면 요즘과 달라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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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빛의 고통으로

이루어졌다고 괴테가 그랬다.

세상 모두에게 각자의 색채가 있다.

고통 없이 태어난 이 없고,

고통 없이 죽어가는 이 없어

고통은 아름답다.

당신은 그래서 아름답다.

당신만의 색채가 있어서.

고통으로 빚어낸 당신이 거기 있어서

그곳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네가 시들어 갈 때

세상이 고통의 비를 뿌려 줄 거야.

그때 우리 마음껏 통증을 느껴

아름다운 색채가 되자.




오늘은 좋아하는 이승하 시인의 ‘사랑의 탐구’ 시집에 나온 한 구절을 발췌해 봅니다.

[삶을 투시하여 사상이 떠오르고, 사상이 무르익어 말이 넘치고, 말이 걸러져 시가 되고, 시가 사람을 만나 노래가 된다면 좋겠다]

시에 음을 갖다 붙인 게 노래니까, 노래나 한 곡 들어요. https://youtu.be/UjYQbAVOAFo?si=zs-YvbK2_LwDrV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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