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다. 얼마전 3년 만에 모인 친구들 모임에서 "김제동 공연 갈까?" 하는 말이 나왔고, "그래, 가자"로 말이 모아져 8일 만에 또 뭉쳤다. 대부분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아줌마들이기에 6만원이라는 입장료가 엄청났지만 일 년에 한 번 나를 위해 쓰는 돈인데...라며 당당해졌다.
그녀들은 내가 처음 원주 와서 살 때 원주여성민우회 동화읽는소모임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다. 난 큰아이는 업고 작은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였지만 열심히 활동했다.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어 자주 만나기도 힘들고 민우회랑도 멀어져 있지만 아이들을 함께 키운 민우회 모임을 생각하면 고향 같다.
김제동은 갑작스럽게 열린 이번 공연은 한국여성민우회를 후원하는 공연이라서 수락했다고 한다. 김제동은 2005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주는 푸른미디어상(언어상)을 수상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김제동 님은 사투리 화자가 주는 친근함으로 말의 장단과 고저가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연예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바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반짝이는 기지와 날카로운 비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특유의 유머로 보는 이에게 자극적이거나 말초적이지 않은 넉넉한 서민적 웃음을 전달한다. 때문에 그는 늘 편안한 분위기로 시청자들의 사랑과 공감을 이끌어낸다."(선정 이유)
개그 프로를 그닥 즐기지 않는 나는 티비에서 김제동이 진행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를 본 건 그와 관련된 이러저러한 뉴스를 통해서다. 그러다가 요즘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서 방송에 전혀 나갈 수 없게 된 사연 때문에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원주에서 올라갔는데도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서 공연장 앞이 한산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뜨거운 감자의 <고백> 뮤직 비디오가 나왔는데 이젠 1박 2일에 안 나오는 김C 아저씨가 넘 보고 싶어졌다.

누군지 모르는 아이돌이랑 나와서 춤도 추고 그랬는데 본인도 이야기했지만 넘 어색했다.
김제동을 처음 보고 놀란 건 사람이 참 작다는 것이었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너무 말라서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하지만 김제동은 자신의 이런 신체 약점을 모두 개그 소재로 삼아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다. "못 생긴 김제동 덕분에 잘 생긴 아무개가 대접 받는 거 아니냐, 못 생겼다고 욕하지 말자, 우주에 딱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니 내가 최고다, 그리고 비교는 부분적 차이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으니 비교하지 말자."
김제동은 관람객의 연령대가 유치원생에서부터 70대까지인 관계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더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답게 역시 책으로 시작했다.<지식-e>에 담긴 팀버튼의 "개성이 강한 사람은 늘 세상에서 괴물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길게 아주 웃기게 하면서.

김제동 토크 콘서트에는 늘 초대 손님이 있는데 이 날은 김신영이 나왔다. 김제동은 김신영을 정말 좋은 아이라고 소개했다. 또 속이 깊은 소녀 가장이기도 하다고. 공연장에 와서 십분 전에 만났다는데 둘이서 한 시간 동안 주고받는 에드립이 몇날 며칠 연습한 것처럼 척척 맞았다.

김제동의 본격 토크는 초대 손님인 김신영이 들어가고 난 후부터였다. 김신영이랑 둘이서 주고받는 말장난에 '저러다 끝나는 거면 넘 허무하네' 그러고 있었는데...음, 역시 김제동이었다. 그후로 계속된 김제동 토크에 너무 웃어서 원주에 와서도 내내 머리가 아팠을 정도다.
김제동은 언어, 특히 영어와 각 지방 사투리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는데 모두 끄덕뜨덕... 영어는 경험상 너무 어려서부터 안 해도 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만 강요하면 민중성이 살아날 수가 없단다. 이 썩을 놈아!- 아주 친환경적이고 애정이 듬뿍 담긴 욕이니 자주 써야 한다고. 가장 나쁜 욕은 "이 안 썩을 놈아, 이 PVC 같은 놈아! 요즘 이런 욕 들을 사람 많죠?" 라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주 심한 욕이라며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박경리의 <토지>에서 한 대목씩 뽑아냈는데 그게 참 어찌나 시의적절했는지... 그리고 욕은 모난 부분을 잘라내서 둥글둥글하게 만들고 더 큰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적절한 욕을 하면서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것은 좋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정치판 이야기도 좀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쪽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관객들 편을 갈라 박수치기를 몇 번 시킨 후 잘한 쪽 못한 쪽으로 금방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편을 갈라놓으면 이렇게 금방 갈라집니다."라는 말로 요즘 세태를 풍자해주었다.
김제동이 은평 보궐선거에 나올 거라는 설에 대해 어이없어 하면서 자신은 나이가 들면 친구들이 많은 고향에 내려가서 동네 이장을 하는 게 꿈이란다. 김제동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국회가 늘 웃음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지금은 개성이 강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관객들을 불러내어 즉석 춤추기도 시켰는데 용감하고 대범한 분들 넘 많더라. 한 분이 전북 완주의 한 초등학교 토크 콘서트를 섭외하러 왔다고 하니까 1년 안에 가겠노라고 즉석에서 허락하기도.
내가 앉은 자리가 중간 이후여서 사진 상태가 모두 멀다. 김제동은 원래 관객 200명 이하의 소극장에서만 공연을 했는데 이번처럼 다양한 연령층이 몇천 명씩이나 모인 곳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웃겼다.

냉방이 시원찮은 공연장은 엄청난 관객들의 웃음과 함성으로 무지하게 더웠다. 김제동은 조명 받아가며 세 시간 동안 떠들어대니 얼굴에선 땀이 비오듯 쏟아졌는데도 불평 한마디 안 했다.
세 시간의 공연이 다 끝나고 무대 뒤로 들어갔던 김제동이 앵콜 외침에 기타를 들고 다시 나왔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김광석을 좋아한다며 <일어나> 1절을 부르며 흥분된 공연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혀주었다. 다시 일어나고 싶은 요즘 김제동의 마음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더 짠하다.
일어나 - 김광석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 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김제동 토크 콘서트를 보고 난 느낌은 관객과 함께 어울려서 고통마저도 즐거운 웃음으로 승화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 의미 없이 실컷 웃고 난 다음에야 뼈가 있었구나 되새기게 만들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하는 참으로 편안한 사람.
그가 떠나가는 관객들을 향해 던진 마지막 말은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제동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요, 꿋꿋하게 보란듯이 잘 살아주세요! 끝까지 당신을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