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1619년~1659년)은 조선 17대 왕으로 인조의 둘째 아들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간 머물렀던 봉림대군이 바로 그다.

귀국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세자가 되었고, 1649년에 왕이 되었다.

하지만 재위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벌 정책 외엔 특별히 떠오르는 업적이 없다.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있었다.

세종이야 워낙 유명한 왕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었지만 효종 능으로 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효종이 어떤 임금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걸어 올라갔다.

 

세종대왕릉도 영릉(英陵)이고 효종대왕릉도 영릉(寧陵)이다. 그래서 여주 영릉 하면 두 임금의 능을 다 이른다.

업적을 늘어놓은 전각 하나 없고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표지석도 세종대왕릉 앞에만 있어서 후손에게 인기가 떨어지는 왕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요런 숲길을 10여 분 올라갔다.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

조선 왕릉 재실 대부분이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곳은 옛모습 그대로여서 보물로 지정.

앞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품위가 느껴지고 좋은 느낌이 드는 재실이었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마당에도 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저 앞에 보이는 건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느티나무.

 

재실 후문.

 

왕릉을 바라보고 세워진 정자각(丁字閣).

 

정자각 뒷문을 열면 왕릉이 보인다.

이곳에서 왕릉을 바라보며 제사를 올린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과 금천교.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고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다리.

 

위쪽이 효종릉이고 아래쪽이 인선왕후릉이다.

효종의 능은 건원릉(구리시에 있는 태조의 능) 서쪽에 있었는데 현종 14년(1673년)에 이곳으로 옮겨왔고

인선왕후는 현종 15년에 이곳에 모셨다.

 

인선왕후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딸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가 있을 때 다음 왕인 현종을 낳았다.

 

효종은 소현세자와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지만 소현세자와의 의리를 생각해 북벌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소현세자는 효종보다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서구 신문물의 통로였던 청나라에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인조에게 제거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림)한 치욕을 씻는 길은 오직 북벌(北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시열을 비롯한 신하들은 효종을 의리의 군주라 했다고.

효종실록에는 효종의 소현세자에 대한 애틋하고 살갑고 끈끈했던 기록이 많다고 한다.

 

 

 

왕릉 주변을 둘러싼 석물.

 

왕들의 업적은 다 밀어두고 산책하기 좋은 왕릉의 순위를 꼽으라면 단연 효종의 영릉이 세종의 영릉을 앞섰다.

아늑한 산골짜기에 부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도 좋고 넓게 펼쳐진 잔디(사초)도 좋아서

봄에 신록이 살아나면 다시 가보기로 했다.

 

세종대왕릉에 가실 분들은 그 옆에 있는 효종대왕릉에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 집에 와서 바로 주문한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효종의 북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적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정통성 콤플렉스 때문에 소현세자는 할 수 없는 북벌을 명분상으로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거봐, 소현 형님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내가 하고 있으니 내 정통성도 인정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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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1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희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아직 못가봤네요.
이렇게 생생한 사진이랑 같이 보니 더 좋네요~^^
소현세자와 효종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치욕적이고 아픈 순간과 맞물려 안타까울 뿐이예요.

소나무집 2012-01-18 09:13   좋아요 0 | URL
이런 데 다녀오면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하게 되니 좋더라구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해석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구요.
사실 알고 보면 효종도 괜찮은 왕이될 수 있었는데 그놈의 종기 때문에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꿈을 못 이룬 왕이에요.

무스탕 2012-01-1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먼 거리도 아니건만 맘만 먹으면 휭~ 다녀올수 있는 곳인데 왜 그렇게 움직이질 못했을까요?
몰랐기도 하지만 맘 먹을 생각도 안 했었던게 사실이네요;;
소나무집님께 잘 소개 받았으니 이제 날 풀리면 꼭 나들이 한 번 하겠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2-01-1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후문이 좋더라구요.
머랄까, 속닥대는 느낌, 무엇인가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일들이 일어났을 느낌이 든달까요.

서삼릉하고 서오릉이 가까운데, 이번에는 공부 좀 하고 다녀와야겠어요.
겨울 나들이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소나무집님 페이퍼를 보면서 떠오릅니다.

소나무집 2012-01-19 18:06   좋아요 0 | URL
후문,
사람들의시선을 덜 받아서 뭔가 더 저지르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죠?ㅋㅋㅋ
저도 서울 주변 살 때는 서삼릉 서오릉 표지판을 늘 보면서 다녔건만
거기에 누가 누워 있는지 생각도 안 해봤답니다.

2012-01-18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2-01-19 18:07   좋아요 0 | URL
뭔?^^
 

드라마 <뿌리깊은나무>를 열심히 보았는데 

백성을 사랑하는 의로운 군주 세종과 충심으로 가득한 무휼을 볼 수 없으니

겨울밤이 지루하기만 하다.

 

뿌나에 대한 그리움에 절절매고 있는데 여주 영릉을 먼저 떠올린 건 남편이었다.

지난 일요일 집을 나서기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여주로 향했다. 

 

원주에서 40분 거리.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함께 묻혀 있다.

영릉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장료 500원을 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세종대왕상이 있다.

세종은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1397년에 태어나 1450년에 돌아가셨다.

셋째였지만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나자 세자로 책봉된 지 두 달 만에 왕위에 올려져 조선 4대 임금이 되었다.

재위한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6진 개척, 쓰시마 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전 분야에 업적을 남겨 조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대접 받고 있다.

 

세종대왕상 건너편으로는 세종의 업적을 볼 수 있는 세종전(박물관)이 있고,

그 옆으로 세종 때 만들어진 수많은 과학 기구 모형을 전시해놓아 발길을 잡아끌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혼천의, 간의, 측우기 외에도 훨씬 많은 발명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도 감탄은 끊이지 않고 나왔으니... 

누군가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업적 한 가지도 간신히 남기거늘 세종이 왜 불면증에 시달렸는지 알 만하다.

 

 

 

 

 

제사 준비를 하던 재실.

 

훈민문을 지나면 홍살문과 금문교가 나오고 정자각이 보인다.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丁字閣). 丁 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문 번역은 T(티) 자로 되어 있었다.

정자각 뒤로 영릉이 보인다.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원래는 헌릉(아버지 태종의 능- 지금의 내곡동, 가카 때문에 전 국민이 알게 된 바로 그 동네) 곁에 있었으나

문종, 단종이 단명하고 세조의 일을 거치고 나자 예종 때(1469년) 신하들의 건의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세종보다 두 살이 많은 소헌왕후는 심온의 딸로 1408년 12살의 충녕대군에게 시집 와서 왕비가 되었다.

세종과 사이에서 8남 2녀를 두었다고 하니 부부간의 정도 좋았던 모양이다.

조선 왕비 중 자녀를 가장 많이 둔 왕비로 궁궐 안주인의 소임도 잘해서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하니

어찌 세종의 사랑을 안 받을 수가 있었을까?

죽어서도 한 무덤 안에서 알콩달콩 하고 있을 왕과 왕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조선 왕릉에는 각 공간에 맞는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문인석, 무인석, 석호, 석양 중에서 유독 무인석의 인상이 강렬하다.

"무사 무휼 전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렇게 외치며 세종의 아버지 태종을 향해 칼을 겨누던 그 멋진 호위 무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

 

왕릉 앞에서 바라본 모습. 주변에 소나무숲이 양쪽으로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세종대왕릉을 산책한 후 효종릉에도 다녀왔다.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과 왕비의 능이 세종 능 곁에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 <뿌리깊은나무>를 보는 동안 열독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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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2-01-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주에 영릉이 있었군요. 저희도 기회되면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정말 무인석이 인상적이네요.^^

꿈꾸는섬 2012-01-17 13:30   좋아요 0 | URL
아차, 소나무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나무집 2012-01-17 16:36   좋아요 0 | URL
여주는 가려고 마음 먹으면 가가운 곳이지요?
꿈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스탕 2012-01-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에서 보던 왕님을 바로 만나고 오시다니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울 애들도 도대체 다니기를 싫어하니 강제로 업고라도 가야 할텐데 엄마도 못지않게 게을러서리..;;;
저 무인석이 무휼이었다면 나인들에게 별로 인기는 없었겠습니다. ㅋㅋㅋ

(저도 꿈섬님 따라서) 소나무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소나무집 2012-01-17 16:38   좋아요 0 | URL
세종릉에는 겨울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요. 드라마 덕분인인지.
울 애들도 이젠 안 가려고 해서 그날 강제로 데려갔어요.
뿌나에 나온 무휼은 너무 멋있었지요?

마노아 2012-01-1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 무~~휼!! 화면이 진동하는 느낌이었어요. 사진 보면서 다시금 뿌나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요. 세종대왕, 뿌듯한 이름이에요.^^

소나무집 2012-01-19 18:09   좋아요 0 | URL
그죠? 저는 뿌나에서 무휼 보는 재미가 엄청 좋았어요.
 

정조 13년에 건립을 시작한 이 행궁은 정조가 13차례 아버지의 묘를 참배할 때마다 머물렀고, 사도세자와 동갑이었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를 열어 드린 곳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 가까이 있는 화성 행궁에서 아버지 회갑연을 겸한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어 드린 것.

  

정조의 화성행차도. 행궁 위에 서장대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서장대 지붕만 살짝 보였다.  <아하! 그땐 이런 문화재가 있었군요 - 주니어김영사>에서.

 서장대에서 줌~으로 찍은 모습인데 그림 속의 행궁보다 훨씬 규모가 작아 보인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지만 일제 시대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인해 낙남헌 한 곳 빼고 전부 사라졌다가 1993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화성 행궁의 정문 신풍루 앞. 신풍이란 정조대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 정조의 뜻대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행궁 모형을 보고 있는 아이들.

 

 정조가 어머니의 환갑 잔치를 열어 드린 봉수당 앞마당.

봉수당이라는 이름은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다.

  

<봉수당진찬도>. <노빈손 정조대왕의 암살을 막아라>에서.

뒤주가 전시되어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들어가본 딸아이의 소감은 "깜깜하고 답답하고 죽을 것 같애요."  당파 싸움 때문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던 사도세자는 그런 곳에 8일이나 갇혀 있었으니... 그때 정조의 나이 11살, 지금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같다. 

화성행차도가 그려진 건물 벽.  

화성 행궁이나 화성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안내문이 없어서, 아니 있었지만 좀 부실해서 집에 와서 공부 제대로 했다.  

*** 참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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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10-07-2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원 화성,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찬찬히 보았습니다.
왠지 마음을 끄는 곳이네요.^^

소나무집 2010-07-31 11:05   좋아요 0 | URL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다녀가세요. 우리도 반밖에 못 걸었는데 나중에 덥지 않을 때 도시락 싸들고 다시 가기로 했어요. 그동안 정조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더니 정조의 마음이 다 느껴지더라구요.^^

꿈꾸는섬 2010-07-3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갔을때는 복원공사중이라 벽에 행차도도 없었는데 너무 예쁘네요. 다시 가보고 싶어요.^^

소나무집 2010-07-31 11:07   좋아요 0 | URL
화성 행궁은 생각보다 안 좋았어요. 궁 안에는 유료로 하는 체험 학습만 잔뜩 있고...

꿈꾸는섬 2010-08-11 12:37   좋아요 0 | URL
에고 그랬군요. 제가 갔을땐 그런 것도 없었어요. 어째 유료 체험장만 만들어놓았을까요? 아쉽네요.

세실 2010-07-3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성을 직접 다녀온 느낌입니다.
님 참 교육적이세요. 바람직한 부모상^*^
요즘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을 보라합니다" 하는 공익광고 보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집 2010-07-31 11:09   좋아요 0 | URL
거기서 본 설명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더라구요. 덕분에 집에 와서 책 쌓아놓고 공부 많이 했어요.^^ 떠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너무 풀어놓고 살았더니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걱정이에요.^^

찌찌 2010-08-0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음주에 화성에 가려고 했는데 벌써 다녀 오셨네요. 무더위에 힘들진 않으셨는지요? 아이 독서신문 만드는법을 순오기님께 물었더니, 선우양을 추천해 주더라구요.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 많이 얻어 갑니다. 매우 감솨~ 무더위에 가족 모두 건강 하시와요~

소나무집 2010-08-08 15:58   좋아요 0 | URL
우리 가족이 갔던 날은 그래도 견딜 만했어요. 아침에 일찍 갔거든요. 중간에 소낙비도 내리고. 독서 신문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긴 하지만 재미도 있고 덕분에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아주 훌륭한 독후 활동인 것 같아요.
 

사계절출판사 다녀온 날 동생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근처에 있는 수원 화성에 다녀왔다. 가까이 살 때는 차를 타고 화성을 통과한 적도 여러 번 있지만 특별한 관심이 없으니 가볼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긴 덕에 이젠 어딜 가다 근처에 역사 유적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수원 화성에 가보고 놀란 건 성의 규모였다. 정조가 수도로 삼아 새로운 꿈을 펼치고자 했으니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겠지... 아름다우면서도 꼼꼼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성을 보니 정조가 품었던 큰 꿈이 보이는 듯했다.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 성은 물론 중국 성의 장단점까지 참고해서 만들었는데 <화성성역의궤>에 화성 공사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나와 있어서 그 책을 보고 훼손된 부분을 복원. 조선시대 성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수원 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성의 둘레 5.74킬로미터, 성벽 높이는 5미터 가량.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 시설 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갖고 있다. 약 6킬로미터에 달하는 성벽 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물이 각기 다른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로 했다. 서장대까지 두 시간 동안 걷느라 힘은 들었지만 중간중간 있는 건물에 들어가 앉아 쉬기도 하면서 수원 화성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창룡문에서 서장대까지 반만 돌았는데 한 바퀴 다 돌려면 도시락 싸들고 하루 일정으로 가야 할 듯. 

우리가 걷기 시작한 이 건물은 창룡문으로 장안문, 화서문, 팔달문과 더불어 수원 화성에 있는 4개의 성문 중 하나로 화성 동쪽에 있다. 성문 앞에 둥글게 옹성(항아리 모양)을 쌓아 성문을 보호하고 있다.

창룡문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성 안으로 도로가 나 있어 차가 다닌다. 저기 서 있는 차들은 대부분 관광 버스였는데 관광객이 전부 일본인이랑 중국인이었다. 그네들은 화성에 와서 무엇을 얻어갈까 궁금하다.

동북공심돈. 화성에는 세 개의 공심돈이 있는데 돈의 내부가 비어 있는 망루라는 뜻이다. 이 공심돈에는 안에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벽에 뚫린 구멍은 빛의 통로이자 총구멍 역할.     

가까이 있는 적과 멀리 있는 적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의 각도가 다 다르다.   

동북각루. 각루는 높은 위치에 누각 모양으로 세워 주변을 감시하거나 휴식용으로 이용했는데 동북각루,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남각루 등 네 개가 있다. 이 각루는 방화수류정(꽃을 좇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데 수원 화성 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  

 방화수류정 아래 보이는 건물로 북수문이다. 수원 화성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개천이 성 안을 지나고 있는데 물길 위에 이렇게 수문을 세워놓았다. 물보라가 칠 때면 무지개가 걸려(?) 화홍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수원팔경 중 하나. 남편 회사 감사님을 지내신 적이 있는 염태영 현재 수원시장님이 늘 자랑하셨다고.. 

장안문. 장안이라는 말은 중국의 수도 장안을 뜻하면서 백성들을 크게 편안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조가 화성으로 천도할 꿈을 꾼 의도가 엿보이는 명칭인 듯. 국내에서는 가장 큰 성문이다.

 장안문을 지나자 포루가 나왔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가까이 온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화포를 숨겨두는 장소. 서포루, 북서포루, 동포루, 동북포루, 남포루 등 다섯 개가 있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었으니 서장대를 향해 힘내자. 하나 둘~ 하나 둘~

아침에는 시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텁지근하면서 더워졌는데 성벽에 뚫린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이 쑹~쑹~ 나오는 게 신기하다며 그 앞을 못 떠나던 우리 딸. 웬만한 선풍기 바람보다 더 시원했다.    

 드디어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 도착했다. 서장대에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쏟아졌는데 마루에 사람들이 오글오글 앉아 있었다.  

사방 100리가 한눈에 보이는 장대는 성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묘(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융릉)를 참배한 후 이곳에 와서 직접 군사를 지휘했다고 한다.

비오는 서장대에서 바라본 수원 시내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정약용이 고안해내서 수원 화성의 공사 기간을 단축시킨 거중기. 동생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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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3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원에서 학교 다닐때 가끔 갔었는데 소나무집님 페이퍼로 보니 반갑네요.^^
날이 많이 더워 다니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소나무집 2010-07-31 11:13   좋아요 0 | URL
아침 일찍 가서 많이 덥지는 않았어요. 모자도 우산도 없이 갔는데 나중에 소나기까지 내리고...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 했어요.
수원에서 살았었나 봐요?
수원 화성은 맘만 먹으면 전철 타고도 갈 수 있는 곳인데 이제야 다녀왔어요.
그날 보니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덕분에 서울은 몰라도 수원 화성은 아는 외국인이 많대요.

2010-08-11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8-0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가가 팔달문 앞을 지나야 해서 그 앞만 지나다녔고,
융릉은 가봤는데 수원화성은 못 가봤는데 덕분에 잘 봤어요. 감사~ ^^
정조의 마음이라~~~~~~~ 느껴보고 싶네요.

소나무집 2010-08-03 07:14   좋아요 0 | URL
나중에 한 번 들러 보세요. 시간이 없으면 코끼리 열차처럼 생긴 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방법도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구경하려면 성을 따라 걸어야 돼요.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의 건물들이 정말 독특했어요.
정조가 이걸 왜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걷는 것도 좋아요.

희망찬샘 2010-08-0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랑 수학여행으로 후딱 지나간 기억~ 남아있는 게 없네요. 이런 게 진짜 여행이군요.

소나무집 2010-08-08 15:58   좋아요 0 | URL
남는 게 없는 거~ 단체 여행의 단점이지요.^^

BRINY 2010-08-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원성 복원 시원찮게 해놨죠. 조선시대에 쌓은 부분은 색만 바랬지 금 하나 안가고 틈도 없이 촘촘하게 쌓여져있는데, 20세기에 복원한 부분은 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