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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정운영 교수의 마지막 글모음 책이다.
DJ 말기부터 노무현 대통령 임기 전반기까지의 사설을 모았다.
2005.9.8. 날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238p. 영웅을 본뜬 〈영웅본색〉 따위로 한순간이나마 위로를 찾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면, 그것은 너무 삭막하지만 또한 피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글처럼 삭막하지만 피할 수 없었던 세상을 2005년 9월 24일에 떠났다.
22p.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37p. 시장 경제의 핵심은 이윤 창출에 있지 사회적 책임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같은 투자라도 “소수를 위해 ... 지갑을 불려주는 것과, 다수를 위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유전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돈 버는 일만이 투자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69p.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산업화의 역사와 민주화의 현실이 충돌하는 시대이기에 “독재의 사슬도 기억케 하고, 빈곤의 사슬도 기억케 하라” 박(태준) 회장의 외침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71p. 새로운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이다. 그 참여는 입법, 행정, 사법의 전통적인 3권 분립에 제4의 ‘시민 권력’을 추가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한 것이다.
77p. 한 바라문과 카스트 제도 토론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신분을 귀족이나... 농부로 결정하는 것은 마치 최초의 불쏘시개로 사용한 재료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불을 장작불, 나무쪼가리 불, 지푸라기 불, 쇠똥 불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의 인과 관계 강조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가끔 파계의 걱정마저 감돈다. 예컨대 윤회를 앞세워 겁주는 –장사하는- 무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망고 씨앗에서 망고 나무가 자라고 망고 열매가 열린다면 이는 씨앗의 환생이다. 그러나 이 망고에 영혼이 어디 있으며, 이런 환생이 과연 윤회냐고 말이다.
79p. 학식이니 인품이니 경륜이니 하는 덕목들은 흔히 고상한 명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쓰이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신분과 지위 안보를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91p.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이 있었다. 서구에서 타오른 68혁명의 봉화는 부패한 자본주의 문명을 성토했고,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혁명은 주자(走資)로의 탈선을 고발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경직된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과녁이었다. 카프카 복권으로 개시된 1960년대 해빙기에 작가 밀란 쿤데라, 영화감독 밀로시 포르만 등 문화계 지식인이 저항의 불씨를 지폈다.
98p. 감세, 복지 축소, 기회균등은 자고로 우파의 전매 특허였다.
101p. (칠레) 인민연합의 슬로건대로 ”구리는 칠레의 봉급“이고 ‘외화벌이’ 밑천이었다. 그러나 칠레 구리의 주인은 미국 자본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아나콘다 구리 회사는 1969년 전 세계에 행한 투자의 17퍼센트를 칠레로 돌렸을 뿐인데, 전 세계에서 얻은 이윤의 79퍼센트를 칠레에서 챙겼다. 아옌데가 동광(銅鑛)국유화를 외쳤을 때 그의 제거는 예고된 운명이었다. ...
비행기 폭격에 이어 탱크가 관저로 돌진하는 가운데 아옌데는 ”내가 인민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라고 고별 방송을 했다. 그 약속대로 망명 제안을 거절한 채 최후까지 싸우다가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으로 6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아옌데의 실패는 한 교수의 논평대로 “부자와 빈민이 서로의 에고이즘을 정부 강요한 데 있었다”. 게다가 개혁의 물질적 준비조차 없이 개혁을 서두른 정부의 에고이즘이 또 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편지를 보냈고, 카스트로 역시 “마르크스라는 만병통치약의 쉬운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개혁은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며, 개혁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다.
103p.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6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
그 지뢰보다 무서운 것이 빈곤이다. 지뢰는 묻은 곳에서만 터지지만 빈곤은 심지 않아도 퍼지기 때문이다.
600만 봉지의 쌀 대신 600만 개의 지뢰를 묻은 어른들의 횡포와 잔인에 목발 짚은 저 소년은 어떤 분노를 지피고 삭일 것인가. ...
어른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받는 벌은? 어른을 잘못 만난 죄밖에 달리 없을 터이다. ...
문제는 결국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너와 나의 차별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우리는 아이들을 굶길 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도시락을 숨길 만큼 인색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보다 더한 가난 속에 그들을 가둔 것은 내가 나설 일도 아니고,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124p. 금리가 제구실을 못할 때 재정이 나서는 것은 케인스 이래의 상식이다.
130p. 세율이 0퍼센트면 납세자는 즐겁겠지만 세수가 한 푼도 없어 나라 살림이 안 된다. 세율이 100퍼센트면 버는 것을 모두 세금으로 빼앗기니 누구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생산 의욕과 세수 안정을 감안해 최적 세율을 결정한다.
154p.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 그 야유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든, 혁명이 빈곤에서 폭발하지 않고 불평등에서 폭발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79p. 나도 투기는 잡고 투자를 앞세워야 한다는 완고한 사람이지만, 돈에 물꼬를 터주고 몰아야 한다. 그것은 부자들에 대한 굴복도 아니고,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도 아니다. 먼저 돈을 흐르게 하라. 결코 출몰하게 해서는 안 된다.
187p. 내일 열릴 남북 축구에서 길거리 응원을 막는 진짜 이유가 소문대로 반미 시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면, 반미 역시 하나의 사회 ‘현상’이고, 규제의 역효과보다 완화의 효과가 더 크다면 일상적 수준의 반미주의에는 일정 정도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반한이 아니듯이, 한국이 미국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도 반미가 아니다.
204p. (다니엘 벨) 그가 주목한 것은 신용카드로 상징되는 ‘신용 사회’의 출현이었다. 신용 사회의 하드웨어가 외상 거래나 할부 매매라고 한다면, 그 소프트웨어는 단연 거래에서의 신뢰일 것이다. ... 그럼에도 “할부 판매의 트릭은 부채(debt)라는 단어를 피하고 신용(credit)이란 단어를 강조한 것”이라는 석학의 관찰은 정말 예리하다. 채무자라는 지칭보다 신용차입자라는 지칭이 훨씬 점잖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208p. 세상을 사노라면 한편도 생기고 우리와 저들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에 내 편 네 편으로 가를 대상이 아닌데도 우리와 저들, 동지와 적의 대립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녕 불화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음험한 계략이다.
212p.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산다는 말이 진정으로 빛나려면, 근로자가 죽으면 기업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233p. 생활은 궁핍했지만 모두의 생각조차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인은 사후에 더욱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장 콕토의 절창에 격려되고, 사회는 거대한 생산력주의의 굉음에 이목을 집중하라는 약삭빠른 평론가들의 호소에 선동되고 있었다.
253p. 섣부른 세계화 찬가와 설익은 ‘글로벌 스탠더드’ 설교가 어떻게 국가 경제를 거덜냈는지는 외세의 기업 사냥과 엄청난 국부 유출이 증명한다. ... 새 정권에 새로 전하거니와 개혁은 쿠데타가 아니라 일상의 생존방식(modus vivendi)이 돼야 한다.
255p. 글쎄 정권에 정권을 바꿔가며 출세에 출세를 거듭한 ‘전천후 고관’ 중에 정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몇이나 되고, 그래서 꼭 다시 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내놔보라구! 유능의 내막이 실은 기막힌 처세와 변신이란 말이렷다.
283p. 한반도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전쟁 방지라면 군사적 견제 못지않게 정치.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 그들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보다 위험을 동반한 공존이 한반도 평화에 그래도 나은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