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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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김연수 작가님의 책을 몇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때마다 따뜻함을 느꼈는데 내가 최근에 읽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라는 단편집에서도 작가님의 따뜻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제목부터 회상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수록된 작품 모두 어린시절과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 들이었다.


모든 작품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자전적 이야기가 확실한 <뉴욕제과점>이었다. 올해 내가 읽은 단편중 이 단편보다 인상깊은 단편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글쎄, 아마 없을것 같다.


줄거리는 등단해서 이제 작가라는 명함을 가진 김연수 작가님이 지금은 없어진 ‘뉴욕제과점‘ 아들이었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제과점 아들로 살아가면서 받았을 부러움, 하지만 실제로는 빵을 마음껏 먹지 못했던 사실들, 아픈 어머니 대신 팥빙수를 만들었던 일, 그리고 뉴욕제과점이 이제는 사라지고 국밥집으로 바꼈다는 이야기까지 누구나 경험해봤을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을 감성적으로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 속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대단히 묵직하다. 자전적 소설이어서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P.104(뉴욕제과점)



나에게도 작가님처럼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다. 생겨나는걸 보진 못했지만 사라지는건 봤던 것들, 나만의 추억의 장소들, 더이상 현실에는 없는 것들, 다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 어느덧 새로 얻어지는 것보다는 사라지는 것이 많은 나이가 되다보니 기대보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왜 영원할거라 생각했는지, 왜 영원할 수는 없는건지, 왜 소중한건 더 빨리 사라지는 건지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이야기한다,다 그런거라고,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많은 불빛(추억)보다는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존재한다고,어차피 인생은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오늘도 찬찬히 내가 간직하고 있는 불빛들을 하나씩 꺼내봐야겠다. 그리고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의 차이도 생각해봐야겠다.



Ps.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후에 전람회의 서동욱님이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타계 했다는 뉴스를 봤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오랜 친구가 떠난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었다. 전람회 1집때부터 앨범도 사고 좋아했었다. 그가 부른 <마중가던길>, 듀엣으로 불렀던 <그대가 너무 많은>, <떠나보내다>, 그가 작사한 <하늘높이>. 다시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의 불빛들을 떠올려봤다. 부디 다른 세상에서는 아픔없이 행복하시기를 바래본다. 그동안 아주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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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전작읽기를 진행중이다. 한번 빠지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인지라 매주 한권씩 야금야금 사서 읽고 있다. 북플에서는 인지도 대비 그렇게 많이 언급되시는 작가님은 아닌데, 나는 그저 좋다. 왜 좋냐하면 일단 비슷한 나이대(라 믿고싶다..)에 비슷한 취향(음악?), 그리고 비슷한 감성 때문이다.


작가님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 이렇게 우울해서 어찌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해피엔딩인 작품도 없고, 교훈도 없고, 희망은 희박하고, 주인공은 다 상처투성이에다가,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과연 행복이란게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다 읽고 나서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왠지 위로가 된다. 작가님만의 특유의 위로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 위안 속에는 사랑이 숨어있다.


읽은 책들을 간단히 리뷰해보자면...



<어떤 비밀>

절기별로 쓴 최진영 작가님의 24개의 편지와 그 이야기들. 진정한 계절 산문이다. 내용은 다 다르지만 한결같이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매월이 시작할때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산문집.

˝누구에게나 말한 수 없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당신의 오래된 비밀 때문에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예의를 갖춘다.˝ (10월)



<쓰게 될 것>

최진영 작가님의 세번째 단편집. 첫번째 단편집인 <팽이>는 아직 못구했다. 장편을 잘쓰면 단편이 좀 취약할 수 있는데 작가님의 단편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단편집의 키워드는 ‘미래‘다. 작가님에게 미래는 희망찬 미래가 아닌, 불안하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쓸쓸하지만, 내가 선택한 미래다. SF 느낌의 ‘쓰게 될 것‘과 ‘인간의 쓸모‘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홈 스위트 홈‘은 읽고 나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단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홈 스위트 홈)



<비상문>

짧은 단편이지만 상당히 무거운 작품이다. 작가님은 ‘자살‘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상문‘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이렇게 지은걸까? 유서도 없이 자살한 동생 신우,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신우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찾을수는 없었다, 어디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은 이유를 알았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게 있다고. 내겐 빛니는데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런거.˝  (65p)



<오로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예약한 제주도 숙소를 주인공인 ‘오로라‘가  쓰게 되고, ‘오로라‘는 그곳에서 제주도 살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을 치유한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했는데, 결국 이별하고, 그리고 나서 이를 회복하는 이야기. 주인공이 묻은 것은 새가 아니었고, 이젠 열어봐서는 안될 자신의 비밀이었다. 2인칭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이한 구성이지만, 이런 구성이 좀 더 주인공의 심정을 잘 전달해준다.

˝누구나 감추고 삽니다. 한 명쯤은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홀로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묻어버려요. 마음에 심장처럼. 그럼 들키지 않고 그는 당신이 됩니다.˝  (57p)



<겨울방학>

작가님의 두번째 단편집. 장편에 비해 단편은 비교적 따뜻하다. 겨울방학이라는 표제작의 제목처럼 서늘하지만 나름의 휴식이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휴가때 어디 여행을 가서 읽기에 딱 좋은 단편집이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보다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말하지만, 작가님은 이 작품집을 통해 반대로 말한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다 같으면 이렇게 많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아. 단 한
명이면 되지.˝  (250p)



<원도>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죽지 않고 계속 살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긴 답변‘이라고 하고싶다. 주인공의 이름은 ‘원도‘다. 어린시절  (죽은)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만족스럽다‘는 유언아닌 유언을 낙인처럼 지니고 살아가는 ‘원도‘, 타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나에게는 애정을 주지 않은 어머니를 가진 ‘원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따뜻한 말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던 ‘원도‘, 무엇보다도 모든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한 ‘원도‘. 마지막에 그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작가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 읽고 나서 찝찝함이 오래갔었다. 그럼에도 한번씩 주인공 ‘원도‘가 떠올랐다. 이기적이고, 비호감이고, 찌질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럴수도 있었겠구나란 연민이 들었다.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줬더라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그래도 죽는것 보다는 사는게, 사랑하는게 구원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 언니에게>

작가님 작품중 두번째로 어두운 작품.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 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저 평범한 소녀였지만, 단 한번의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인 ‘제야‘를 둘러싼 모든게 무너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일기형식이지만 시간순서대로 배열된건 아니고 주인공인 ‘제야‘가 (고통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읽어 나가면서 ‘아 안돼, 제발‘ 안타까웠고, 다 읽고나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다.(혈압주의 작품이다.)

왜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숨겨져야 하는가, 왜 가해자는 행복을 누리면서 피해자는 매순간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건가. 언젠가 제야에게 치유의 날이 올 수 있을까? 제야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노력해야 해.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161p)



<해가 지는 곳으로>

작가님 작품중 세번째로 어두운 작품. 작품의 내용은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시스템이 파고되고, 살기 위해 ‘해가 지는 곳‘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 한다...) 스토리 자체로만 본다면 작가님 작품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편의 디스토피야 영화를 본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어둠 그 자체이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다. 바이러스나 전쟁이 무서운건 어쩜 사람이 많이 죽어서라기 보다는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전 영원하지 않아. 그냥 난 알아 버린 거아. 좋았다가 없어지면 외로워진다는 걸.˝  (121p)




여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가님의 초기작(당신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과 유명작(구의 증명, 단 한사람, 내가 되는 꿈)은 이미 읽었다.  지금까지 13권 읽었으니 나름 열성팬이라 자처해본다. 다른 책들도 부지런히 구매하고 읽어서 또하나의 전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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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4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나이가 아니라서 그럴까요?
저는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어요.
계속 고민해 봐야겠어요^^

새파랑 2024-11-24 14:14   좋아요 1 | URL
작가님이 글에서 가끔 음악 이야기도 하시는데 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더라구요. 제가 좀 우울한걸 좋아해서 저에게 딱입니다 ㅋ 페넬로페님 어떤 책 읽으셨는지 궁긍합니다~!!

coolcat329 2024-11-26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최진영 작가 잘 모르지만(여자시더군요! 저는 얼마 전까지 남자인 줄 알았답니다) <구의 증명>은 워낙 유명해서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3권을 읽었다니 찐 팬이시네요.
아무튼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

새파랑 2024-12-02 12:59   좋아요 1 | URL
넵 오랜만입니다. 북플 자주 들어오고 싶은데 여력이 일되가지고 ㅜㅜ
내년부터는 자주 들어올겁니다~!!

전 한국작가님중 최진영, 김연수 두분만 믿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24-12-0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진영 작가의 책을 많이 보셨군요? 저는 구의 증명, 만 읽었습니다.
어떤 비밀, 이란 산문집에 관심이 가네요.^^

새파랑 2024-12-07 17:10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ㅜㅜ <구의 증명>이 제일 유명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다 좋더라구요~! 산문집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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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36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믿고 읽는 백수린 작가의 초창기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다. 문학동네 북클럽에도 가입한데다, 이 책이 이달의 도서? 이길래 문학동네 북샵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작품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괜찮았다.


사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기대한 분위기는 <여름의 빌라> 였는데, <여름의 빌리>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우선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좀 쎄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많았으며, 작가가 의도를 꼭꼭 숨겨놔서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숨은 의도를 찾는 고생도 했어야 했다. (해설이랑 인터뷰를 보면 답이 잘 나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꼽는다면 표제작인 <폴링 인 폴> 이었다. 이 단편은 완전 내 취향 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짝사랑의 아쉬운 감정을 너무나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건 작가님의 자전적인 작품(?) 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한국어 강사인 나의 수업에 재미교포인 '폴'이 참가하게 되고, 처음에는 그를 꺼리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를 신경쓰게 된다. 삼심대 중반인 나, 그리고 이십대 중반인 폴. 극 I인 나와 극E인 폴.


폴 역시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은 만남이 거듭할 수록 옅어졌다. 그는 나를 친누나 같다고
했고, 어느날 폴은 술자리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유리코라는 일본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폴과 유리코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독해진다. 하지만 결코 이 마음을 폴에게 말할 수는 없었고 나는 폴에게, 폴은 결코 알 수 없는 나만의 작별인사를 준비한다. 폴은 내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나는 폴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렸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두번 다시 나는 이런 감정으로 그를 바리볼 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럴듯하게 명명된 적이 없는 초라한 내 사랑. 이제 와 고백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만큼은 건네고 싶었다. 삼 십대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 P.65 <폴링 인 폴>


언제나 궁금했었다. 짝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건가? 짝사랑 당하는 사람은 짝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모르는척 하는 걸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느 시기가 되서야 알게 되는걸까? 물론 짝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 이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작품이 단순한 짝사랑 이야기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짝사랑 이야기에 미국인인 폴과 이민 1세대인 폴의 아버지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모국에 대한 마음과 역사 인식을 절묘히 섞어놨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아주 매끄러웠다. 살짝 <눈부신 안부>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그 다음으로 <거짓말 연습>이 좋았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언제나 진실말을 말했던 걸까? 아니 타인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스쳐 지나가면, 나만 놓아 버리면 끝인 사람들인데? 필요에 따라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꼭 나쁜것 만은 아니다. 나쁜건 나를 떠나버린 사람들이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P.15 <거짓말 연습>




Ps. <폴링 인 폴> 작품집을 읽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그런데 하루키는 왜 좋은걸까? ㅎㅎ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폴링인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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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2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던 소설집인데 벌써 가물가물 느낌만 남았어요. ㅎㅎㅎ깨끗하고 맑은 취향(?)의 새파랑님께는 어울릴 것 같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4-05-13 21:26   좋아요 3 | URL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열반인님~!! 사실 전 한강작가님이나 최진영 작가님이 더 취향입니다~!!

저 깨끗하고 맑지는 않는데...단지 보뱅을 좋아할뿐 ㅋ

바람돌이 2024-05-13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북홀릭님과 새파랑님 두분이 한꺼번에 백수린 작가를 좋다고 하시네요. 익히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새파랑 2024-05-13 21:27   좋아요 1 | URL
아 ㅋ 요새 바빠서 북플을 잘못하고 있는데 북홀릭님도 그러셨군요~!!!

백수린 작가님 작품 다 괜찮았습니다~!!
 
모비 딕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3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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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온기를 제대로 향유하려면 몸 어딘가가 반드시 추워야만 하는데, 이 세상 모든 특성은 오로지 대조를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은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다며 우쫄덴다면 그는 더이상 편안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작품이 있다. 명작이라고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작품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보물섬>, <레 미제라블>, <돈키호테>? 가 그런 예시일거 같은데, 나에게는 <모비 딕>도 그러했다. 뭐 고래사냥 하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왠지 어린시절에 요약본을 읽어본거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왜 늠름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늠름하고 건강한 청년들 대다수는 언젠가 바다로 가게 되길 그토록 열망하는가? 처음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당신과 당신이 탄 배가 이제 육지에서 벗어났다 말을 난생 처음 들었을 때, 그토록 신비한 떨림을 느꼈던 것은 왜인가? 왜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던가? 그리스인들은 왜 바다의 신을 따로 두고 그를 제우스의 형제로 삼았을까? 이 모든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 1권 P.40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선물받았고(내가 골랐지만...), 받았으니 읽어야 하기에 읽게 되었다. 읽고 나서 정말 감탄했다.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해야하고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해야 하는 걸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포경선의 역사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몇몇 장들은 각주를 세밀하게 풀어쓴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논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번째 항해가, 그뒤에도 또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더내기 힘든 것들이다.] 1권 P.135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바탕이 성경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렇고, 많은 상징들이 등장하며, 일반인에게는 낯선 해양 용어들과 장비들 때문에 한번 읽고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혔다. 번역이 정말 잘되었다는게 느껴졌다.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이 유명한 첫번째 문장 때문에 ˝이슈미얼˝이 주인공인것 같은데, 그건 이니고 진짜 주인공은 ˝에이헤브˝ 선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항해에서 ˝모비 딕˝이라는 흰색의 대형 향유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헤브˝ 선장이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를 이끌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향유고래‘ 들을 추격하고 사냥하는 이야기인데, 그의 최종목적은 자신의 다리를 뺏어간 ˝모비 딕˝ 이다. 초반에 멋있게 등장한 ˝이슈미얼˝은 이 작품의 화자 역할을 할 뿐이다.
(˝이슈미얼˝이 작품 초반에는 식인종 출신인 ˝퀴퀘그˝와 브로멘스를 코믹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말도 못 하는 멍청한 짐승에게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녀석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미친 짓이에요! 멍청한 짐승 때문에 격분하는 건 말이죠, 에이헤브. 선장님, 제게는 신성모독으로 보입니다.] 1권 P.310



˝에이헤브˝ 선장의 직속 부하로 세 항해사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 가 나오는데, 이들은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이 바로 그 스타벅스 커피의 유례라고 한다. ‘피쿼드호‘는 아주 큰 대형 어선으로 모선이라 한다면, 포경 보트 세척은 모선에 실려있는 작은 배로, 실제로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자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 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거대한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2권 P.207



˝스타벅˝을 포함한 대부분은 ‘향유고래‘를 잡아서 돈을 벌어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게 목적인 일반적인 선원인데 비해, 선장인 ˝에이헤브˝는 돈보다는 복수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원들은 결국 리더인 선장의 복수심에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피쿼드호‘에 탄 선원 모두는 ˝모비 딕˝과의 일전을 치뤄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흰 고래를 잡겠디는 너희의 맹세는 나의 맹세만큼이나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에이해브는 심장, 영혼, 육신, 허파 그리고 목슴 까지 그 맹세에 묶여 있다. 너희는 이 심장이 어떤 곡조에 맞춰 뛰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여기를 봐라. 내가 마지막 두려움까지 모두 꺼 줄 테니!˝ 그러더니 그는 거센 입김 한 번으로 불꽃을 꺼버렸다.] 2권 P.396



‘피쿼드호‘와 ‘모비딕‘의 싸움은 마치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아니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비유한 것으로 느꼈는데, 과연 인간이 자연과 신을 넘어서는게 가능하기는 할까?

[˝영감 당신은 녀석을 절대로,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짓을 그만두세요. 이건 악마의 광기보다 더 지독한 짓입니다. 이틀 동안이나 추격했고, 보트가 두 차례나 산산조각났으며, 당신의 그 다리는 또 한번 당신 몸에서 떨어져나간데다, 당신의 사악한 그림자는 영원히 종적을 감췄습니다. 선한 천사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당신에게 경고하고 있어요. 뭘 더 원하나요? 이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몽땅 힘쓸어버릴 때까지 녀석을 추격해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지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요? 아아, 이 이상 녀석을 쫓는 일은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입니다!˝] 2권 P.489





내가 예전에 배를 타본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배라는 것도 하나의 축소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면서 단 한번의 정박도 없이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목적을 위해 항해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친근하면서도 두려웠다.

[이제 조그마한 새들이 여전히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시끄럽게 울며 닐아다녔고, 시무룩한 힌 파도는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을 때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거대한 수의같은 바다는 오천 년 전에 넘실거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2권 P.513




<모비 딕>은 이야기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문장도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내용 자체가 많은걸 상징하고, 많은걸 담고 있다보니 한번 읽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하긴 힘들거 같다. 한 40% 정도 이해했으려나? 이 작품은 꼭 재독을 해야겠다. (나에게 이런 작품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리고 일러스트가 들어있는 다른 판본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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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4-21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저도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헤브 선장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기도 했고요.
스타벅의 생각과 이미지가 좋았어요.
이 세상을 떠받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타벅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새파랑 2024-04-21 21:45   좋아요 1 | URL
왜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으로 꼽는지 공감했습니다~!! 저도 인생책으로 ㅋㅋ 너무 방대해서 한번 읽기에는 안될거 같은 느낌입니다~!!
북플을 떠받히는 페넬로페님~!!

청아 2024-04-21 1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무슨 테스트에서 스타벅 나왔던거 기억납니다.ㅋㅋㅋ 새파랑님 이 글 당선되실 것 같아요!! 리뷰보니 저도 얼른 이 책도 읽고싶어요. 흐어엉...ㅋ

새파랑 2024-04-21 21:47   좋아요 2 | URL
역시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미미님~!! 미미님도 이책 구매 하셨을텐데요? ㅋ 언제 여유 되실때 꼭 읽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목련 2024-04-23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정신의<모비딕>을 읽고 있어요^^

새파랑 2024-04-23 19:35   좋아요 0 | URL
역시 자목련님은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4-28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 미제라블을 읽으면서(3권 읽고 차례임) 소설이 아니고 무슨 논문 같다고 느꼈죠. 설명이 장황해서요.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나, 감탄하며 읽게 되어요. 대작에 깃든 작가의 정성과 노고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새파랑 2024-04-28 13:49   좋아요 1 | URL
레 미제라블도 비슷하군요. 전 아직 엄두를 못내겠습니다. 대작이 괜히 대작이 아니더라구요~!!!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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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4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진다고.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왠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설명하기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 보낸 경험이 다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고, 반려동물일수도 있고. 나의 경우,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당시에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과 슬픔이 옅어졌었다. 어쩌면 이게 맞는 것일수도 있다. 처음에 느꼈던 충격과 슬픔의 강도가 계속된다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P.78



하지만 다 그런건 아닐것이다.<애도 일기>의 작가인 '롤랑 바르트' 도 아니었다. 옅어지기는 커녕 점점 아픔이 짙어져간 사람.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2년동안 수시로 그녀를 회고하는 메모를 남긴다. 그리고 그 메모를 엮은 작품이 바로 <애도 일기> 이다. 그가 출판을 목적으로 남긴 메모는 아니었다. 1977년 10월 25일에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난 다음날부터 약 2년동안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메모로 남긴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P.50



얼마나 그리웠던 걸까? 얼마나 아팠던 걸까? 이런 감정이 완전한 슬픔이구나. 생전에 얼마나 사랑과 신뢰가 있었어야만 이런 애도를 할 수 있는 걸까? 높이 있을수록 더 깊이 떨어지듯이 너무나 소중했었기에 상실은 너무 깊었다.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P.92



이런 슬픔의 극단을 계속 안고 살아간다는게 말이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2년 후 '롤랑 바르트'는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한달 뒤에 사망한다.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지만, 어떤 이는 자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계곡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정말 죽은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나요? 정말 내가 마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어요."] P.167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 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P.216




어머니에 대한 그의 슬픔이 <애도 일기>가 아닌 <망각 일기> 였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만약 그가 마음속으로만 어머니를 추모하고, 어머니에 대한 메모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덜 아프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감정이라는게 글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게 되면 더 극대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글쓰는 사람들)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더 감성적인 걸지도...


저마다의 슬픔의 깊이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두번다시 만날수 없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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