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N23075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만약 내가 '보뱅'의 <그리움의 정원에서> 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그렇게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통해서 저자인 '보뱅'의 '지슬렌'에 대한 마음을 알고나니, 이 책이 온통 '지슬렌'이라는 여인과 그녀 주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의 정원에서>보다는 덜 직접적이었지만, 애틋함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 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P.36



'보뱅'이 보는 주위의 모든 것은 다 그녀를 향해 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하느님의 이야기를 할때도 그 중심에는 한 여인이 있고, 그녀는 아마 '지슬렌'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책을 읽는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자고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P.88



그리고 그녀에 대한 마음의 결정판이 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인 <작은 파티 드레스>이다. 이 작품은 그냥 예술이었다. 몇번을 읽어도 아름다웠고, 몇번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산문이라기보다는 시라고 부르는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우리 안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기다림이 있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기다림은 공기와 공기가 섞이듯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지루함의 절정이라고나 할 수 있는 기다림. 이 기다림이 그곳에 항시 존재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항시 무였던 것도,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유년기의 우리는 전부였고, 신은 우리 영역의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었 다. 풀밭 속의 풀잎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P.119


[내 고독의 물방앗간에 당신은 새벽처럼 들어와 불길처럼 나아갔다. 당신은 내 영혼 속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들어왔고, 당신의 웃음이 내 영토를 흠뻑 적셨다. 내 안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암흑천지에 큰 태양 하나가 돌고 있었다. 만물이 죽은 땅에 옹달샘 하나가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가녀린 여자가 그렇게나 큰 자리를 차지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P.121


[그런 다음 당신은 떠나버렸다. 배신을 한 건 아니었다. 당신 안에 나 있는, 굴곡이 단순한 같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 당신은 눈처럼 하얀 작은 드레스도 가지고 가버렸다. 이 드레스는 더 이상 내 삶에서 춤추지 않았고 내 꿈속에서 맴돌지도 않았다. 내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은 순간 눈꺼풀 밑에서 펄럭였을 뿐. 눈과 세상 사이, 바로 그곳에서.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열에 들떠 펄럭였다. 비애의 뇌우가 그것을 가슴 위로 내리쳤다. 금 간 유리창 위로 내려지는 덧문처럼.] P.122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P.124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리뷰 이기 때문에 아닐수도 있지만, '지슬렌'을 염두해 두고 이 작품을 썼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어떻게 하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걸까? 마음의 정화가 필요한 분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Ps. T가 읽으면 재미없을수도 있음. F에게는 강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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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3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파랑 오늘 드레스 입고 남편 마중 나가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제가 T라서 그런지 보뱅 책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사놓고 안 읽은 게 이 책입니다.... 뭔가 오글거릴 거 같은데;;; 곧 읽어보기로.

새파랑 2023-11-13 11:11   좋아요 0 | URL
오 안읽으셨군요 ㅋ 저는 처음 한번 읽었을때는 응? 이랬는데 재독하니 응!! 이랬습니다 ㅋㅋ

좀 오글거리실수도 있습니다 ~!!

자목련 2023-11-13 15:35   좋아요 2 | URL
오글거림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잠자냥 님도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수이 2023-11-13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가 읽어본 보뱅 책 중에서 제일 에러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보뱅이니까. 티건 에프건 그와 무관하게 이 책은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읽어야 제일 흡입력 빠를 거 같긴 합니다. 읽었을 당시에도 그런 걸 느꼈어요. 근데 확실히 오글오글이네요, 첨부하신 문장들 다시 읽어도;;

새파랑 2023-11-13 11:13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셨군요. 저는 이제 두권 읽었는데 두권다 너무 좋았습니다 ㅋ 역시 T에겐 무리인 작품인걸까요? 제가 오글거리는걸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아서 좋았습니다 ^^

다락방 2023-11-13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옴마낫.
F 인 저는 이 책 읽으면서 T 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F 취향이 아님요.

잠자냥 2023-11-13 11:09   좋아요 2 | URL
안 되겠다, 내가 오늘 집에 가서 드레스 입고 읽어볼게.

새파랑 2023-11-13 11:1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T가 이 책을 좋아하긴 힘들거 같은데...

확실한건 다락방님 P 이신듯 ㅋㅋㅋ

오늘 점심은 순대국밥 만두 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파랑 2023-11-13 11:32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드레스 입고 은오님과 함께 읽어보세요 ㅋㅋㅋ

잠자냥 2023-11-13 11: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술파랑이 제 웃음버튼 자주 눌러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11-13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산문집이 <가벼운 마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았어요. <그리움의 정원>을 읽고 먼저 읽었어야 했을까요. 그런데 그 좋음을 리뷰로 쓰고 싶은데, 그러다 지금까지 리뷰는 못 쓰고 있어요. <그리움의 정원>도 읽고 다시 이 책도 읽고, 또 남은 보뱅의 책도 읽고...

새파랑 2023-11-13 15:41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도 보뱅 좋아하시는군요~! <가벼운 마음>아직 못들여놨는데 이것도 곧 들이려고 합니다 ~!!
올해가 가기전에 보뱅 완독이 목표입니다~!!

<그리움의 정원> 완전 좋습니다 ㅜㅜ

페넬로페 2023-11-13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슬렌이란 여인에 대한 사랑의 글이 보뱅의 책에 계속 나오나봐요.
저는 T인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운명의 꼭두각시‘가 넘 좋아 그걸 능가할지 모르겠어요.

새파랑 2023-11-13 20:53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이 T이신가요?
ㅡㅡ 예상외입니다ㅋㅋ

<운명의 꼭두각시> 너무 좋습니다. 아직 리뷰 쓰기를 아까는 중입니다 ㅋ 삼독하고 리뷰 써야지 하고 있습니다 (과연...)

전 이 책 보다는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더 추천합니다~!!

독서괭 2023-11-15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백자평에 ‘T든 F든‘이라고 쓴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ㅋㅋ 사랑감성 충만한 새파랑님에게 어울리는 책인 것 같네요. 그런데 그리움~이 더 좋다고요? 알겠습니다. 전 이미 <지극히 낮으신>을 먼저 찜해놔서..

새파랑 2023-11-15 18:52   좋아요 1 | URL
사랑감성이 충만하지는 않은데 ㅋ
저도 <지극히 낮으신>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감 2023-11-16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즘 원픽이 보뱅인가요?ㅋㅋㅋ
이분 작품이 꽤 많던데, 전작 읽기 파이팅입니다ㅋㅋㅋㅋ
저도 시간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3-11-16 12:15   좋아요 1 | URL
요새 보뱅에 꽂혔습니다~!@ 물감님에게는 좀 안맞으실 수 있을거 같아요 ㅋ

전작하기에는 몇권 출판 안되었고 얇아서 금방 할수있을거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11-16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 f 얘기가 여기서 나왔군요. ㅎㅎ
제가 보기엔 n과 s의 차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저도 보뱅은 수집 중입니다.^^

새파랑 2023-11-16 15:39   좋아요 1 | URL
그럼 N에게 잘 맞을까요? ㅋ 전 NF여서 ㅋ 보뱅 책 내용도 좋고 표지도 좋고 최고입니다~!!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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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4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 '파스칼 키냐르' 읽을만 하네! 하고 다음으로 집어든게 <로마의 테라스>인데, 아이고야...거의 <릴케 단편선> 급이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때문에 얼굴에 화상을 입고 떠돌이 인생을 살아야 했던 판화가 '옴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인데, ('키냐르'의 작품들이 이런 예술가의 일생을 다른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가 아닌 어떤 여인에게서도 나는 더이상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었지. 내게 간절한 것은 그런 기쁨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야. 내가 평생을 바쳐 오직 하나의 육체, 내가 늘 꿈꾸던 포옹의 자세를 취한 육체만을 그렸던 건 그때문일세.] P.8



일단 형식이 정말 독특하다. 4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장은 짧고, 어떤 장은 길다. 그리고 장과 장이 연결되는건 아니고, 장별로도 느낌이 다 다르다.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고, 의식의 흐름도 아니다. 해설을 보니 이 책을 47개의 판화작품들이 모인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은 늙어갈 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흩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 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P.83



그래서 재독하면서 47개의 각 장들이 47개의 판화 작품에 대한 묘사라고 이해하고 다시 읽으니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역시 이런 어려운 책은 해설을 먼저 읽는게 현명한것 같다. 해설을 보니 어느정도 이해를 했다.(그래봤자 10퍼센트 정도 이해했으려나...)

[그녀들의 커다란 존 재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그 그림자도 점점 진해지 지, 상실된 것은 언제나 옳은 거야. 나는 사랑을 더러운 속임수라고 부르겠어.] P.138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별 넷이었는데, 재독하고 나서는 별 다섯이었다. 무조건 두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몸므'가 동판에 예술을 새겼다면, 작가인 '키냐르'는 종이에 예술을 새겼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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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2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 안 마시고도 취한 듯한 독서 효과. 일부러 노린 술파랑.

새파랑 2023-11-12 19:4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오늘은 그래도 허접하게나마 읽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카페와서 리뷰를 쓰고 있습니디~!!

꼬마요정 2023-11-1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키냐르 어려워보여요!! 그래도 새파랑 님 리뷰 보니까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11-12 23:10   좋아요 1 | URL
키냐르 작품 어렵긴 한데 매력이 넘치는거 같습니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기분? ㅋㅋ 꼬마요정님이야 쉽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페넬로페 2023-11-1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고 재독이나 삼독을 하면 꼭 별 다섯이 되더라고요. 작가들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얼마나 고심하며 썼는지도 느껴지고요. 이 책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책 완독하면 뿌듯하잖아요.

새파랑 2023-11-12 23:34   좋아요 1 | URL
확실히 해설을 읽고 재독을 이어서 하면 안보이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요새는 한번 읽은 책은 재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트레버 신작은 세번 읽었습니다 ㅋㅋ 리뷰 써야되는데 ㅎㅎ

yamoo 2023-11-13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냐르...음...로마의 테라스까정 좋았습니다.
새파랑 님께 <부테스>를 추천드립니다. 전 부테스 읽고 더이상 키냐르는 안 읽어요..ㅎㅎ
<부테스>를 보시고 좋으시면 계속 죽~~ 즐독하시면 됩니다...네, 제겐 부테스가 한계엾어요..ㅎㅎ

새파랑 2023-11-13 10:20   좋아요 1 | URL
부테스 일단 메모 하겠습니다 ㅋㅋ 키냐르는 한번 읽고는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ㅜㅜ
너무 예술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yamoo님 처럼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저는 좀 힘들었습니다 ㅋㅋㅋ

꼬마요정 2023-11-13 11:57   좋아요 1 | URL
제가 키냐르 작품을 <부테스>로 처음 접하고 키냐르 책을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3-11-13 12:18   좋아요 1 | URL
앗 ㅋㅋㅋ 그정도인가요? 읽기가 겁나는군요 ㅜㅜ

페크pek0501 2023-11-13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인 경우, 재독은 필수죠^^

새파랑 2023-11-13 15:02   좋아요 1 | URL
재독 필수, 삼독 선택, 사독 이상은 사랑~!!
 
릴케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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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3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었나? 그때 언급된 '릴케'를 보고 한번 읽어봐야지 했다가 이번에 단편집을 읽었는데, 아이고야...한번 밖에 안읽어서 그런지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시 읽으려고 아직 책박스에 넣지는 않고 책상에 두었는데, 다시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시인이 쓰는 단편이다보니 아름다운 문장들은 많았다. 하필 내가 읽을때는 연필이 없어서 밑줄을 그을수는 없었다. 재도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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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2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파랑 집 술병에 꽂힌 연필.

새파랑 2023-11-12 19:47   좋아요 0 | URL
앗....

릴케 왜이리 어렵나요. 윌리엄 트레버 처음 읽을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ㅋㅋㅋ

페크pek0501 2023-11-13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책이 있더라고요. 저와 코드가 안 맞는 것 같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ㅋㅋ
인연이 없는 책이라고 치고 재독은 안 합니다.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하하~~

새파랑 2023-11-13 15:04   좋아요 1 | URL
요즘 그래서 독일문학은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ㅋ 몇일전에도 ‘토마스 만‘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ㅋㅋ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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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2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 뭔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러시아 문학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 문학이라 하면 좀 가난하고, 찌질하지만, 연민이 가는 내용인데, 이 작품은 약간 결이 달랐다.(이게 다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이다...)


<소네치카>의 독서광 '소냐'의 젊은시절은 좋았는데, 왜 결혼하고 그렇게 내려놔야 했는지 안타까웠고(남편하고 자식 열심히 키워봤자 소용없다...)

<스페이드의 여왕>의 친정어머니 '무르'는 왜이리 괴팍한건지 좀 그랬다. 연민이 느껴지고 재미있긴 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던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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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2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파랑 취중 폭탄 선언 “남편하고 자식 열심히 키워봤자 소용없다”

새파랑 2023-11-12 19:4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지금 리뷰쓸태 이 책이옆에 없어서 그냥 썼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는건 부질없는 남편뿐 ㅋㅋㅋ

독서괭 2023-11-12 21:15   좋아요 1 | URL
새파랑 유부녀로 밝혀져…

새파랑 2023-11-12 23:0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 그런건가요?

scott 2023-11-12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드디언 책탑 리뷰 폭퐐중 ~ㅎㅎ홧팅 ^^

새파랑 2023-11-12 21:01   좋아요 0 | URL
최근에 안써서 페이퍼로 써볼까 하다가 능력부족으로 그냥 간단하게 리뷰를 썼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3-11-12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하고 자식 열심히 키워봤자 소용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한 줄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1-12 23:09   좋아요 0 | URL
열심히 리뷰를 써보고 싶었는데 기억나는게 저거밖에 없어서....

yamoo 2023-11-1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뿜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1-13 12:42   좋아요 0 | URL
아 ㅋ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ㅋㅋㅋ
 

이 책도 정말 좋다. 두번 읽었다. 세번 읽어야 겠다.














이렇게 세상의 첫 막이 내리면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다. 대개는 따분한 무언가다.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자신에게 무가치한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들을 사게 된다. 말하자면 교실에 앉을 자리 하나, 혹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떠맡는 직책 하나. 그러고 나면 우리는 단념한다. 우리는 꼭 읽어야 하는 것만 의무적으로 읽는다. 거기에 기쁨은 없으며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 복종이 있을 따름이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사막의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중요한 건 오직 복종이다. 그다음에 우리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신문조차도 우리는 집에 책이 한 권도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이다. 모래 속에 묻힌 집들이랄지, 마귀든 책이든 세상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삶들이다. 그들에게도 간혹 사전은 한 권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약삭빠른 영업사원이 팔고 간 백과사전도 있다. 하지만 읽기 위한 책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궂은날을 위해 예비해 둔, 가구나 다름없는 책. 참나무로도 소나무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좀 이상한 가구다. 손도 대지 않을, 월부로 구입한 스무 권짜리 작은 종이 가구. - P13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 P16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 P35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 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 P36

내가 책을 읽는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자고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 P88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신 혹은 사물들을 피난처로 삼는 삶이다. 그곳에는 무가 차고 넘친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수많은 문들로 이루어진, 자체의 풍문들로 길을 잃은 삶과는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 삶들을 가지고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다. 그런 삶에서는 말할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구걸하는 이 여인의 순결한 얼굴을 보려면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밖에 없다. 저녁 시간 차곡차곡 쌓이는 그 글들을 바라볼밖에. 어린아이의 잠 속에서 불어나는 엄청난 유산이다. - P91

우리 안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기다림이 있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기다림은 공기와 공기가 섞이듯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지루함의 절정이라고나 할 수 있는 기다림. 이 기다림이 그곳에 항시 존재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항시 무였던 것도,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유년기의 우리는 전부였고, 신은 우리 영역의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었 다. 풀밭 속의 풀잎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 P119

유년기가 끝나면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우리 자신이 죽은 이후로 우리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 P119

내 고독의 물방앗간에 당신은 새벽처럼 들어와 불길처럼 나아갔다. 당신은 내 영혼 속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들어왔고, 당신의 웃음이 내 영토를 흠뻑 적셨다. 내 안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암흑천지에 큰 태양 하나가 돌고 있었다. 만물이 죽은 땅에 옹달샘 하나가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가녀린 여자가 그렇게나 큰 자리를 차지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 P121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 P121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불타버린 문턱에 재 한 줌 남지 않았다. 우린 태초의 해맑은 나뭇잎들 곁에 그대로 남아있다. 당신은 그 작은 파티 드레스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는 듯이, 나는 거기서 만물의 순진성을, 이 땅 위에 실현된 어느 성탄의 기적을 끊임없이 예감했 다는 듯이.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얼굴에서 어둠을 걷어내고 순결한 아이의 얼굴을 되돌려준다.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랑이 전부라는 듯이. - P122

그런 다음 당신은 떠나버렸다. 배신을 한 건 아니었다. 당신 안에 나 있는, 굴곡이 단순한 같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 당신은 눈처럼 하얀 작은 드레스도 가지고 가버렸다. 이 드레스는 더 이상 내 삶에서 춤추지 않았고 내 꿈속에서 맴돌지도 않았다. 내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은 순간 눈꺼풀 밑에서 펄럭였을 뿐. 눈과 세상 사이, 바로 그곳에서.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열에 들떠 펄럭였다. 비애의 뇌우가 그것을 가슴 위로 내리쳤다. 금 간 유리창 위로 내려지는 덧문처럼. - P122

부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부재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무(無)임을 자각한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몸을 떠는 짐승의 막연한 자각이다. - P123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 P124

사랑이 끝나는 순간 세 동방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수와 침묵과 기쁨. 그들이 푸른 대기 속을 천천히 나아간다. 어둠의 왕관과 황금눈물을 가지고서. 유년기에서 걸어 나온 이들이다. 그들은 영혼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우수와 침묵과 기쁨. 언제나 같은 순서다. 침묵이 한복판에, 중심에 있다. 침묵의 희고 작은 드레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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