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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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64 <노르웨이 숲>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했는데, 허무하다는 것 외에는 좀 아쉬웠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죽음을 이야기 한다는건 그 시대가 그만큼 우울했다는 거겠지. 허무를 좋아하지만, 이 책은 좀... '사노'의 선택은 공감이 되었지만, '세스코'의 허무는 '갑자기 왜?'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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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10-16 19:4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스코는 감정이 없는 사람...상대를 궁금해 하지 않는 관계는 오래 갈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세스코가 그 운동권 회장? 에게 느끼는 감정이 좀 공감하기 힘들었어요. 별로 열정적인 관계도 아니었고 정치적인 뜻도 크게 없었던거 같은데 그 사람에게 그렇게 큰 감정을 느꼈다는게 좀 개연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정도로 큰 상실이었나 하는 느낌?

전반적으로 제가 공감을 잘 못했나 봅니다 ㅜㅜ

2023-10-16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6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10-16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왼데요?! 술파랑 술 마시고 피곤할 때 읽은 거 아닙니까?!

새파랑 2023-10-16 19:59   좋아요 1 | URL
앗 의외인가요? ㅋㅋ그런데 어떻게 아셨나요? 진짜 술마시고 읽긴 했습니다 ㅡㅡ

<풀꽃>이랑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풀꽃>이 더 좋았습니다~!!

서곡 2023-10-16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읽었는데 가물가물 ㅎㅎ 신형철 평론가가 인생책이라고 했던 작품이죠...

새파랑 2023-10-16 20:2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그렇게 써있더라구요~! 뭐 나쁘다 그런건 아니고 저랑 안맞았던걸로 ㅡㅡ

서니데이 2023-10-17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셨던 것 같은데, 그것보다 이 책이 2018년 출간이라는 게놀랍네요. 그냥 몇년 전 같긴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요.
새파랑님,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3-10-17 21:39   좋아요 1 | URL
출판한지 얼마 안되었군?
아 보니까 1997년에 구판이 있긴 하더라구요 ㅋ 지금 감기걸려서 골골대고있습니다.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하시길~!!

그레이스 2023-10-23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숲과 비슷하단건 아닌듯요
전 이것대로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3-10-23 17:48   좋아요 0 | URL
허무함? 외에는 비슷하진 않은거 같습니다~!! 저도 다시 읽으면 좋아질까요? ㅎㅎ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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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63

"천사들은 힘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다네. 만약 자네가 자네 힘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네 또한 지치지 않을 걸세. 아르세니,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자는 물에 빠질 것을 두려 워하지 않는 자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라우루스>는15세기 페스트가 유행하던 러시아를 배경으로, '아르세니', '우스티나',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로 살아갔던 '아르세니'에 대한 일생을 담은 작품이다.


'아르세니'는 할아버지로 부터 배운 약초에 대한 지식과 성스러운 치료 능력으로 주위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한다.

["우리 모두는 아담이 간 길을 가고 순결을 잃으면 비로소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아르세니야, 울면서 기도하렴. 그리고 죽음은 아픈 이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죽음으로써 해방되는 기쁨도 누리게 될 테니 말이다."] P.49



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들은 살리지 못한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아내와 아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그이곳 저곳을 순례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계속 치료한다.


이렇게 순례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태어난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의사일까? 아님 러시아 중세 시대에 환생한 예수일까?

[아르세니가 우스티나에게 말했다. "마치 내가 먼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려. 사람들도 그때 치료하던 사람들과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해서 한때 내가 치료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도 든다오.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거나 내가 어떤 원점으 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당신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오."] P.442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고 가독성도 좋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단히 어려웠다... 한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내 이해력이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무거움을 느꼈다. '아 명작이구나, 쉬운 작품이 아니구나' 이런 느낌? 뭔가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성경이 이런 이야기일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 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루키나 마을의 금발 소년이 저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요?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제가 오래 살면 살수록 제가 가진 기억이라는 것은 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 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P.494



성경하니 예전에 읽은 코멕 메카시의 <더 로드>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더 로드>랑 비교하면 <라우루스>가 훨씬 재미있고, 더 성스로웠다.


오랜만에 읽은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리뷰에도 쓸 말이 별로 없다... 일단 완독학 것에 의의를 두고, 꼭 재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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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0-16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쓸 말이 별로 없다.. ㅎㅎㅎ 완독에 축하드립니다. 어려운데, 또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다는 건 의외네요.

새파랑 2023-10-16 18:30   좋아요 1 | URL
감히 이런 책에 제가 리뷰를 쓰는게 맞는걸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 뭔가 이 책을 읽은것 만으로도 구원받는 기분이었습니다 ~!!

잠자냥 2023-10-16 19:50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마침내 다 읽어서 구원받은 느낌인데…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16 20:02   좋아요 1 | URL
앗 들킴....
잠자냥님 이 책 좀 읽어주십시요~!!

페넬로페 2023-10-16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럴 때 많아요.
감동받고 뭔가 있는 느낌인데
막상 글 쓰려면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거요.
저는 완전 처음 듣는 작가인데
새파랑님께서는 제가 모르는 작가 소개해주는 책 전도사 같습니다
역시 👍👍👍

새파랑 2023-10-16 20:19   좋아요 1 | URL
저도 북플에서 좋다는 글 보고 읽은거여서 ㅎㅎ

표지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사실 리뷰를 잘 써보려고 했는데 이 책이 옆에 없어서 그냥 썼습니다. 줄거리 생략 ㅋㅋ

yamoo 2023-10-17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듣는 작가여서 검색을 해 봤는데, <비행사>의 작가군요! 비행사 사 놓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언제 읽을지....어려운 책이라는 새파랑 님 언급에 저도 보고 확인해 보고 싶네요~^^

새파랑 2023-10-17 12:14   좋아요 0 | URL
역시 읽어보셨군요. yamoo님에게는 쉬울거 같습니다. 제가 워낙 배경지식이 없어서 ㅜㅜ

어려워도 좋았습니다~!!

yamoo 2023-10-17 13:06   좋아요 1 | URL
ㅋㅋ 새파랑님...비행사 사놓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구요~~~~ㅎㅎ
읽어봐야하는데...건너 뛰고 새파랑님이 <라우루스> 어렵다고 하시길레...어려운 지점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새파랑 2023-10-17 13:18   좋아요 0 | URL
앗 ㅋ 감기가 들어서 정신이 없네요 ㅜㅜ

책이 어렵게 읽히는건 아니고 정말 좋은데 뭔가 성스럽습니다 ㅋ 읽어보면 아실겁니다~!!

희선 2023-10-18 0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무거움 그리고 성스러움을 느낀 책이군요 다시 태어난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싶어하다니... 다시 태어난 사람을 알아볼지...


희선

새파랑 2023-10-18 12:55   좋아요 0 | URL
책이 정말 성스로웠습니다 ㅋ 제목부터 성스로움~!!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의 과오를 극복하긴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성경이 이런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단다. 하지만 인간을 흙으로 빚은 하느님이 흩어진 우리의 육신을 모두 모아서 다시 원래대로 만드실 거다. 죽으면 다른 물질들과 섞여서 땅과 강,풀의 일부가 되 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아르세니야, 바닥에 쏟아진 수은이 여러 개의 작은 방울로 흩어지지만 땅에 스 며들지 않듯이 우리 육신도 이와 같단다. 수은은 솜씨 좋은 장인이 나타나서 다시 용기 안에 넣어줄 때까지 그대로 있단다. 이렇듯 전지전능하신 그분 역시 우리의 흩어진 육신을 모아서 부활시켜주시는 거란다." - P47

"영혼이 뭔가요?" 아르세니가 물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의 몸에 불어넣는 것이고 이로 인해 우리가 바위나 식물과는 구별되지. 아르세니야, 영혼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단다. 영혼은 양초의 불꽃과 같은데 다만 이승에 속하지 않아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이 있단다." - P46

"우리 모두는 아담이 간 길을 가고 순결을 잃으면 비로소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아르세니야, 울면서 기도하렴. 그리고 죽음은 아픈 이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죽음으로써 해방되는 기쁨도 누리게 될 테니 말이다." - P49

"솔로몬이 말하길 ‘이상한 일이 세 가지,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곧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자리, 뱀이 바위 위를 기어간 자리,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자리, 사내가 젊은 여인을 거쳐간 자리다."솔로몬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흐리스토포르 역시 이것을 알 수 없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아르세니 역시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P82

이제 사랑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아르세니의 새로운 삶이 시작 되었다. 한편으로는 우스티나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갑자기 그의 삶에 등장한 것처럼 예고도 없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 P93

"날 믿어요, 내 사랑, 내가 죽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라오. 오히려 그 반대요. 내 생명은 나와 당신의 희망이라오. 이제 와서 내가 죽음을 찾아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오?" - P151

"천사들은 힘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다네. 만약 자네가 자네 힘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네 또한 지치지 않을 걸세. 아르세니,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자는 물에 빠질 것을 두려 워하지 않는 자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 P156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이 말을 하면서 스트로예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해하기론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면서 다른 모든 감정을 밀어내는 그런 감정인 걸로 아네만, 몸도 아프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그런 감정은 느끼지 않는단 말이지. 그녀가 보고 싶긴해. 옆에 있고 싶기도 하고 말이지.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해. 하지만 미칠 것 같은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 P295

아르세니가 우스티나에게 말했다. "마치 내가 먼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려. 사람들도 그때 치료하던 사람들과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해서 한때 내가 치료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도 든다오.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거나 내가 어떤 원점으 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당신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오." - P442

"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 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루키나 마을의 금발 소년이 저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요?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제가 오래 살면 살수록 제가 가진 기억이라는 것은 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 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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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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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62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



고독하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이 책의 주인공 ‘시오미‘는 고독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그래서 폐 질환을 가지고 있던 그는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폐 절제 수술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결국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죽은자가 된다. ‘시오미‘는 어떤 사랑을 했길래 그렇게 고독했던걸까?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걸까?

[˝나는 옛날부터 고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아아, 바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강한 의지로 일관된 고독, 영웅의 고독,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속에 빠져 떠밀려가는 듯한, 이런 나약하고 가련한 고독은 대체 뭐란 말인가. ˝] P.63




이 작품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요양원에서 만난 나와 30살의 ‘시오미‘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나는 언뜻 보면 밝아보이지만 어딘지 초연한 듯한 ‘시오미‘를 알게 된다. 그는 폐 절제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살아돌아오지 못할 경우 나에게 두권의 노트를 맞기면서 그것을 읽어봐달라고 한다. 결국 그는 수술실에서 살아오지 못한다. 무리한 수술을 말렸어야 했을까? 말렸더라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그는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나처럼 예술가도 아닌 인간에게 인생이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와 함께 끝나는 거야. 미래라는 게 없어. 죽음이 있을 뿐이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야. 현재라는 건 없어. 그래, 대부분은 현재조차도 없지. 거기엔 과거가 있을 뿐이야. 물론 그건 진짜로 사는 건 아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지 않고 뭘 산다고 하겠어.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의해 살고있어. 과거가 그 인간을 결정해버리는 거지. 산다가 아니라 살았다야. 죽음은 단지 표시일 뿐이야.˝] P.41




2장은 ‘시오미‘의 첫번째 노트로, 10대의 ‘시오미‘는 1년 남자 후배인 아름다운 청년 ‘후지키‘를 마음에 품는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햇갈리는 관계. 하지만 이건 자신이 봐도, ‘후지키‘가 봐도, 주변에서 봐도 사랑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선배를 따르던 ‘후지키‘는 이런 ‘시오미‘의 애정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멀리 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오미‘는 고독해진다.

[왜지? 하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다같이 행동하겠다. 단순히 그 뿐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하얗게 빛바랜 실의의 기억이 내 의식 속을 재빨리 스쳐갔다. 후지키를 알게 된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오미 선배, 시오미 선배, 하며 무슨 일만 있어도 친하게 다가와 매달리곤 했다. 그것이 가을이 되고, 내가 후지키네 집에 가끔 놀러오면서 어머니와 지에코와도 어울리게 된 후로 후지키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나와 만나는 걸 피하고, 나와 이야기하는 걸 피한다. 대체 왜일까. 왜 그렇게 내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P.93



받아줄수도 없고,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 ‘시오미‘의 감정은 그칠 줄 모른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후지키‘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아무 의미도 없게된 ‘시오미‘의 사랑. 그런데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데, 후지키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랑을 거부한 후지키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사랑도, 고독도, 집착도, 거절도, 끝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든게 다 허무할 뿐이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후지키, 정해진 길 밖에 걸을 수 없었던 후지키, 그리고 그런 후지키를 그토록 사랑 했던 나.] P.146




3장은 ‘시오미‘의 두번째 노트로, 20대가 된 ‘시오미‘는 고등학교 시절 ‘후지키‘의 집에 자주 놀러갔었고, 그의 엄마와 여동생 ‘지에코‘와도 친해졌는데 ‘후지키‘가 죽고 난 후에도 가족들을 지속 방문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에코‘와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연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지에코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의 고독을 너무나 소중히 했던 것이리라. 후지키 시노부를 잃은 후 나는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닌 얼음 같은 고독은,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진다 해도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지에코는 너무나 어리고 천진했다. 그리고 나는 지에코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랑하는 이 마음의 모순을, 나 자신에게도 지에코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P.207



‘시오미‘는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원하지만, 머지않아 나올 입대 영장 때문에, 내면에 있는 고독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지에코‘는 ‘시오미‘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에, 그가 여전히 오빠를 잊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오빠의 모습을 찾는것 처럼 느꼈기 때문에, 결국 ‘시오미‘의 군입대를 계기로 두 사람은 그대로 이별한다. 만남의 유지는 그렇게 힘든데, 이별은..한 순간이다.

[그녀는 나를 잊었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쁨과 슬픔은 전부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람은 새로운 고민, 새로운 괴로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걸까.] P.246




4장은 1장의 화자인 나가 ‘시오미‘가 남긴 노트를 다 읽고 나서 ‘지에코‘에게 노트를 건내기 위해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다. 이미 다 끝나버렸는데,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이 노트가 그녀에게 의미가 있을까? ‘시오미‘는 자신이 쓴 노트가 ‘지에코‘에게 전달되기를 바랬을까?


나는 의미가 있다고, 전달되기를 바랬을거가 생각한다. 다시는 못본다 하여도 말이다. ‘시오미‘는 아마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고독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원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다면 너무 의미없는 인생이었을 테니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아름다웠고, 어떤 문장은 너무 아팠고, 어떤 문장은 너무 공감했다. 너무 고독해하는 ‘시오미‘가 만약 내 주위에 있었더라면 그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사랑해야 한다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독도 살아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 사랑의 강함과 고독의 강함은 정비례하지 않아. 상대를 더 강하게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때가 많거든. 하지만 설령 상처를 받는다 해도, 언제나 상대보다 더 강하게 사랑하는 입장에서 야 하는 거야.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햇볕에 미지근해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아서, 거기엔 어떤 고독도 없어. 남을 강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고독을 거는 거야. 설령 상처받는 두려움이 있다 해도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고독이란 그런 식으로 단련되어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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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0-10 1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불꽃으로도 녹지 않는 얼음 같은 고독‘이라니 많이 슬픈 내용일 듯 합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좋은ㅋ

‘산다는 게 아니라 살았다야‘ 이 부분도 공감이구요. ^^

새파랑 2023-10-10 18:31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일본문학이었습니다 ㅋ 표지가 좀 그랬는데 재미있고 감동도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10-10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았지만 왠지 아픔이 묻어나오는 소설 같네요.
이 작가 모르는 작가인데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과거에 대한 회한은 항상 남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3-10-10 18:32   좋아요 3 | URL
저도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북플에서 좋다고 해서 바로 사서 읽었습니다~!! 이 책 읽고 어제 밥을 못먹었습니다 ㅜㅜ

scott 2023-10-10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가을에 이토록 쓸쓸한 글이 ㅋㅋ 새파랑님의 고독은 책만이 치유 할 수 있음요 ^ㅎ^

새파랑 2023-10-10 21:21   좋아요 1 | URL
아 쓸쓸한가요? ㅋ 요새 가을 타나 봅니다~! 지금 <라우루스>도 읽고 있는데 이것도 쓸쓸하네요 ㅜㅜ

은오 2023-10-10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술파랑님 저 이거 궁금해요! 이거 새파랑님께 땡투 ㅋㅋㅋㅋ
근데 취중리뷰인가요?? ㅋㅋㅋ
고독하디 실폐가 웬말입니까?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10 21:21   좋아요 3 | URL
앗 ㅋㅋ 쉬는시간에 조금씩 급하게 쓰다보니 오타입니다....

업무중에 취하지는 않습니다 ㅋㅋ

전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얄라알라 2023-10-11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흑...쓸쓸한 아름다움... 책 읽으시느라 식사를 거르심인가요? 새파랑님 ㅎ 역시!!!

새파랑 2023-10-11 07:28   좋아요 0 | URL
식사를 거르는건 아니고 ㅋ 그정도의 열정은 없습니다~! 가끔 시간내서 조금씩 쓰고 다시 일하고, 조금씩 쓰고 일하고 ㅋ

리뷰를 빨리 써야 퇴근하고 책읽을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희선 2023-10-12 0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야기가 담기기도 했나 봅니다 이 작가도 폐결핵이었다니... 작가는 괜찮았으려나 찾아보니 일찍 죽지는 않았네요 소설에서는 죽게 하고... 본래 그런 거기는 하겠습니다 처음 좋아한 사람이 죽다니, 그게 상처가 돼서 더 기분이 우울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3-10-12 07:17   좋아요 0 | URL
작가의 사소설 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희선님도 이 작품 좋아하실거 같아요~!!
 

아~ 이 책은 왜이리 좋은것인가..
읽고나니 너무 고독하다.






"화내고 싶을 땐 화내는 게 좋아. 그게 정신 건강이라는 거야.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울고 싶을 땐 울고, 웃고 싶을 땐 웃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우린 이상하게도 감정을 억누르는 게 미덕이라고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어. 물론 이성을 무시해 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다시생각해보면,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았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다는 건 자기를 표현하는 거야. 자기를 불태우는 거야. 있는 힘을 다해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태워야 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료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부러워. 물론 (하고 목소리를 죽이며) 남한테는 분명히 폐가 되긴 하겠지만. - P30

"나처럼 예술가도 아닌 인간에게 인생이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와 함께 끝나는 거야. 미래라는 게 없어. 죽음이 있을 뿐이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야. 현재라는 건 없어. 그래, 대부분은 현재조차도 없지. 거기엔 과거가 있을 뿐이야. 물론 그건 진짜로 사는 건 아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지 않고 뭘 산다고 하겠어.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의해 살고있어. 과거가 그 인간을 결정해버리는 거지. 산다가 아니라 살았다야. 죽음은 단지 표시일 뿐이야." - P41

"어젯밤까지도 결심이 서지 않았어. 너라면 이해해줄지도 모 르지. 시시하면 태워버려난 평생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어. 그리고 딱히 남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쓰지도 않았고. 하지만 너한텐, 아냐 됐어. 어쨌든 너한테는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 내가 죽으면, 이야." - P46

그건 자살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이 집요하게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오미는 스스로 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중에도 끝까지 수술을 하도록 의사에게 부탁했다. 수술이 위험 하다는 것, 그의 체력으로는 생명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만약 내가 억지로라도 반대했더라면. 하지만 그런 후회보다, 어쩌면 그의 강인한 의지가 타인의 어떤 반대보다도 강했을 거라는 상상이 희미하게나마 나의 무력감을 달 래주었다. 그리고 그 회한과 뒤섞여, 맨 처음 들었던 의문, ― 그 수술은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시오미가 고의로 자신을 죽이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 의문이 쏟아지는 햇빛과 반짝이는 순백의 눈 속에서 내 마음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 P55

이건 꿈이야, 깨고 나면 뭐야 시시한 꿈이잖아. 라고 단언할 수있는 그런 일시적인 거야, 내게 결정적으로 주어진 단 한번뿐인 인생이잖아, 인생이란 건 좀 다른 거야, 더 밝고, 더 보람 있고, 더 ‘찬란한‘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꿈에서 절대 깨어날 수 없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깨어날 수 없는 것, 이 악몽과도 같은 꺼림칙한 공포가 그대로 나의 현실임을 나는 끝내 인정할 수밖 에 없었다. - P60

나처럼 병세가 심한 인간은 짧은 기간 뒤에 확실히 죽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실 외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현 실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기나긴 미망 끝에 싫어도 알게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꿈에서 깨어날 리 없을 테고, 그 죽음의 순간은 이제 곧, 틀림없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산 다‘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 P60

나는 옛날부터 고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아아, 바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강한 의지로 일관된 고독, 영웅의 고독,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속에 빠져 떠밀려가는 듯한, 이런 나약하고 가련한 고독은 대체 뭐란 말인가. - P63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 - P63

소녀가 깔깔대고 웃고 어머니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후지키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하며 웃었다. 이럴 때 의 후지키와 나만 알고 있는 그 차가운 후지키는 어찌 이리도 다른 걸까. 왜 내게는 늘 냉담한 가면을 쓰고 대하는 걸까. - P92

왜지? 하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다같이 행동하겠다. 단순히 그 뿐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하얗게 빛바랜 실의의 기 억이 내 의식 속을 재빨리 스쳐갔다. 후지키를 알게 된 지 아직 1 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오미 선배, 시오미 선배, 하며 무슨 일만 있어도 친하게 다가와 매달리곤 했다. 그것이 가을이 되고, 내가 후지키네 집에 가끔 놀러오면서 어머니와 지에코와도 어 울리게 된 후로 후지키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나와 만나는 걸 피하고, 나와 이야기하는 걸 피한다. 대체 왜일까. 왜 그렇게 내 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 P93

"사랑하기 때문이라. 난 말이야, 진짜 고독이란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 어떤 괴로운 사랑에도 견딜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영혼의 강하고 적극적인 상태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기도하고 있는 인간의 상태 같은 거지. 기도는 신 앞에서는 갈대처럼 나약한 모습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뺏길 게 없는 한계까지 다다른 강함을 보여주지. 고독이란 그런 게 아닐까?" - P116

"하지만 그런 경우, 사랑의 강함과 고독의 강함은 정비례하지 않아. 상대를 더 강하게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때가 많거든. 하지만 설령 상처 를 받는다 해도, 언제나 상대보다 더 강하게 사랑하는 입장에서 야 하는 거야.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햇볕에 미지근해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아서, 거기엔 어떤 고독도 없어. 남을 강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고독을 거는 거야. 설령 상처받는 두려움이 있다 해도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고독이란 그런 식으로 단련되어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 - P117

"사랑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것 아닙니까? 시오미 선배가 절 사랑해주는 것도 제가 선배를 좋아해주기를 기다리기 때문 아닌가요?"
"난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니에요. 그렇다면 선배가 이렇게 괴로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건…………"
나는 머뭇거렸다. 후지키가 이렇게 날카롭게 몰아세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상대방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란 게 있을까. 나 역시 결국은 후지키가 나를 사랑하게되고, 둘의 사랑이 맺어진 데서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후지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후지키에게 경멸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떴는지, 후지키의 얼굴이 창백하게 소나무 그늘에 떠올랐다. - P130

아무 의미도 없는데, - 후지키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랑을 거부한 후지키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사랑도, 고독도, 집착도, 거절도, 끝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든게 다 허무할 뿐이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후지키, 정해진 길 밖에 걸을 수 없었던 후지키, 그리고 그런 후지키를 그토록 사랑 했던 나. - P146

사랑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이 순간을 후회없이 사는 것이다. 불안이 뭐란 말인가, 죽음이 뭐란 말인가, 이 영혼의 고요함, 이 맑은 행복, 이 음악, 이 달빛…….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이렇게 널 사랑하면서, 지금,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오로지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만이 남았다. - P164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지에코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의 고독을 너무 나 소중히 했던 것이리라. 후지키 시노부를 잃은 후 나는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닌 얼음 같은 고독은,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진다 해도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지에코는 너무 나 어리고 천진했다. 그리고 나는 지에코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랑하는 이 마음의 모순을, 나 자신에게도 지에코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207

그녀는 나를 잊었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쁨과 슬픔은 전부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람은 새로 운 고민, 새로운 괴로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걸까. - P246

지에코는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옮겼다. 내 마음은 점점 어둡게 가라앉았다. 어제는 지에코를 다시 만난 게 하나의 기적처럼 기뻤는데, 오늘은 모든 게 허무한 반복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헤어진다. 사람은 헤어지기 위해서만 만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은 고독에게 너무 깊이 갉아먹힌 것일까. 이런 허무한 두 사람의 밀회 뒤에,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걸까. 내가 군대에 가버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다. 가까운 미래에 나는 전장 어딘가에서 비참하게 죽겠지. 그리고 지에코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살아가겠지. 산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쇼팽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기차를 타고 고우미 선을 달리는 것이 다.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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