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3058
˝난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난 떠날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가련한 지요! 하지만 경멸로도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건 참 지독한 일이죠!
최근에 ‘현대문학‘에서 출판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에 꽂혔다. 디자인도 좋고 구성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한 작가의 작품을 몰아서 읽을 수 있다는게 매력적인것 같다. 지금까지는 여섯권? 정도 모으고 완독한건 <윌리엄 트레버>랑 <윌리엄 포크너> 두권이지만...
그래도 일단 한권 한권 모아볼까 검색하던 찰나에 ‘사랑의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현대문학‘에서 출판된 작품중 사랑에 관한17편의 단편들을 엄선한 작품집인데, 다양한 작가의 여러 사랑이야기를 맛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맛있는 뷔페에 온 느낌이랄까?
수록작품을 나열해보면,
1. 달빛 : 기드 모파상 (소장중, 읽은 작품)
2.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 : 대프니 듀 모리에 (소장중)
3. 광란의 40번대 구역에 꽃핀 로맨스 : 데이먼 러니언
4. 메리 포스트게이트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5. 정자가 있는 무덤 :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6. 로맨스 무도장 : 윌리엄 트레버 (소장중, 읽은 작품)
7. 목장의 보피프 부인 : 오 헨리
8. 현명한 선택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읽은 작품)
9. 파울리나를 기리며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0. 그 애 : 캐서린 앤 포터
11. 윈첼시 양의 사랑 : 허버트 조지 웰스
12. 아를의 여인 : 알퐁스도데
13. 4월의 마녀 : 레이 브래드버리
14.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 윌리엄 포크너 (소장중, 읽은 작품)
15. 사랑을 하면 착해져요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16. 영구 소유 : 그레이엄 그린 (소장중)
17. 어떤 기억 : 유도라 웰티
이렇게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데 이중 읽어보거나 접했던 작가가 9명, 처음 접했던 작가가 8명이었다.(반타작?)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6번 트레버의 ‘로멘스 무도장‘과 14번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송이 장미‘ 였다. 예전에 한번씩 읽었던 작품들인데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다.
트레버의 ‘로멘스 무도장‘은 불구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매주 무도장 가는 것 만을 유일한 낙으로 사는 ‘브리디‘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첫 사랑을 떠나보내고 결혼하지 못한 채 가족에 묶여 살아가야 하는 ‘브리디‘는 무도장의 한 연주자를 마음에 품지만, 그 역시 자신과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이제는 무도장을 나오지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무도장을 나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꿈을 포기하진 못하는데, 그런 모습을 통해 사랑이란 삶의 다른 이름이진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는 뭐 별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이야기의 재미는 물론이고 단편 특유의 여운까지 완벽에 가까운 단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서 가질 수 없다면 죽여서라도 가지고 싶은 사랑이라니. 죽도록 사랑한다는걸 이렇게 차분히 글로 쓸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이런 광기도 어쩌면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한참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움푹 파인 그 해골의 환한 미소를 내려다보았다. 그 주검은 한때는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자신을 저버린 일그러진 사랑마저 정복해 버린, 긴 잠에 빠져 있었 다. 잠옷 아래에서 썩어 간 그의 잔해는 그가 누운 침대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위에, 그리고 그의 베개 위에도, 끈질 기게 견뎌 온 세월의 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P.358
이 외에도 괜찮은 작품을 간단히 언급해 보자면,
기 드 모파상은 <달빛>은 다른 단편집에서 읽은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다. 사랑에 빠지는건 어쩌면 타인의 조건 보다는 ‘달빛‘과 같은 그날의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낯선 당신> 은 그녀 특유의 스릴러 감성이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이토록 짧은 단편에 스릴러 요소가 들어가있다니~! 이미 구매는 했으니 곧 읽어야겠다.
피츠제럴드의 <현명한 선택>은 지금까지 3번 읽었나? 역시 피츠제럴드라는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다. 그 순간에는 절대적이었을지라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돌아보면 별것 아니었다는게, 사랑의 이면이지 않을까? 위대한 게츠비의 단편 버젼 느낌이다.
하버트 조지 웰스의 <윈첼시 양의 사랑>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로마에서 만난 이상형의 남자가 있었지만, 그의 성 (스눅스, ‘어리석은‘ 이란 뜻이라고 한다.)이 마음에 들지 않어서,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스눅스 부인이라고 불리는게 창피해서, 지속적인 만남을 주저하는 이야기인데... 하버트 조지 웰스 하면 <타임 머신> 때문인지 SF 작가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 생각이 바꼈다. 그의 다른 단편이 궁금해졌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돌프 비오이 카사레스는 이 책에 수록된 <파울리나를 기리며>를 통해 처음 만났다. 읽자 마자 남미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을 했는데, 소개를 읽어보니 아르헨티나 작가였다~! 남미 환상문학의 단편 버젼이였다고 할까? 그의 다른 단편이 궁금해졌다 2. 장바구니에 담았다 2.
그레이엄 그린의 <영구 소유>는 다 읽고 나서 그냥 감탄했다.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은 몇편 읽어봤고 단편은 처음이었는데, 그의 기발한 스토리텔링은 장단편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비현실적이면서도 그럴듯한 사랑 이야기. 집착은 사랑의 다른 방식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외에도 괜찮은 작품이 많았지만 다 소개하지 못해서 아쉽다. 남은 연휴기간에는 현대문학의 다른 시리즈인 <죽음의 책>을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