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님의 소설만큼 산문도 너무 좋다.















절반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절반을 살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종이를 반으로 접듯 인생을 반듯하게 접어봅니다. 스무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가 만납니다. 반으로 접은 인생을 다시 반으로 접어봅니다. 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도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렇게 계속 접다보면 나는 점점 작아지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한 점에서 만나겠지요. 죽음이란 어쩌면 그런것일까요.
(6월) - P117

당신의 슬픔보다 내 슬픔이 중요해진다면 나는 나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다. 울고 있는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보다 당신 책임을 따지거나 빈정거리는 말이 먼저 터져나온다면 내 사랑은 끝났음을 절감할 것이다.
(6월) - P142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
당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P144

모르시겠지요. 당신을 향한 사랑은 당신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만들어졌고 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내 안에 장기처럼 붙어서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사랑. 이별이 모든 것을 휩쓸고 망가트릴수록 어떤 사랑은 괴물처럼 부풀어 올라 자기를 과시합니다.


가끔은 그런 나의 사랑이 징그러워요,
그러나 그것 없이 살 마음은 없습니다.
(7월) - P149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와 스콜이 다가올 조짐이 느껴지면 허연 시인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를 꺼낸다. 시집을 펼치면 단번에 칠월이 나타난다. 여름 내내 책상 귀퉁이에 그 시를 펼쳐둔다. 글을 쓰다가, 글쓰기를 멈추고 벽을 바라보다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가, 연필을 찾다가, 달력에 써놓은 일정을 살피다가, 메일함을 열고 그럼 제가 원고를 언제까지...


라는 문장을 쓰다가, 너무 힘든 날에는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시다가, 귀퉁이의 시를 망연히 바라본다. 내가 펼쳐놓았으나 스스로 책꽂이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시.
(7월) - P152

이별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 할 수밖에 없다면 잘하고 싶다.

사랑에 관해 어떤 말을 해야 할 때, 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헤어지자는 말은 가장 나중에 할 것.
이별을 고했다면 다시는 만나지 말 것.


길을 걷다 우연히 너를 만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른다.
(7월) - P157

행복하자고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하자는 사랑에게
나는 졌습니다.
(10월) - P239

최선을 다해 니의 사상을 지킬 것이다. 하찮아지지 않도록, 숭고하게, 존엄하게. 이런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집착이나 광기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미친 사람이 되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나의 희망은 거기 있다. 당신을 사랑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10월) - P246

누구에게나 말한 수 없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당신의 오래된 비밀 때문에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존정한다. 예의를 갖춘다.
(10월) - P259

당신이 당신으로 살아온 그 모든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당신으로 살아갈 그 모든 시간의 일부이길 원합니다.
(1월) - P333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어요.
(1윌) - P355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2월)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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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실비 제르맹~!! 이 책은 정말 좋았다. 아름다운 문체, 묘사, 내용까지 완벽했음.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순전한 허구로 간주된다.

어머니, 그녀의 목소리는 숨이 짧고 날카롭게 울린다. 아들에게 가족의 영웅담을 들려주던 시절 그 목소리에 깃들어 있던 따뜻한 억양은 사라지고, 웃음소리에 담겨 있던 문고 투명한 울림도 더이상 찾을 수 없다. 영웅담은 쓰레기가 되고, 기쁨 또한 모두 소진된 것이다. - P50

난파한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이 어린 침입자 앞에서 하넬로레 외숙모는 어떤 감정토 드러내지 않는다. 그곳 독일에서는 마침내 하느님이 찬양을 받고 통켈탈 부부는 파멸하고 만 터였다. 그녀는 아이가 사건의 전모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부모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달갑지 않은 이 조카를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나 아이에게 대놓고 묻는 일은 삼간다. 클레멘스의 슬픈 종말에 대해서도, 아들이 떠나고 몇 주 뒤에 세상을 떠난 테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그녀는 부모와 나라와 이름을 모두 잃은 이 아이에게 동정과 불신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곧 열세 살이 되는 소년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이나 새로운 신분을 제공한다고 해서 아이에게서 추악한 역사의 오물을 씻어낼 수 있을지, 아이가 겪은 이중의 상에서 헤방시킬 수 있을지 그녀는 의심한다. - P56

두사람은 도버 절벽 위에서 일어난 비극을 그후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그누스 역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 저마다 자신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조심스레 감당한다. 그들은 그 무엇도 부인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소망은 헛된 것임을 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방 없이, 상대방과 관계없이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간에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현재이며, 각자의 과거 역시 이 현재의 눈부신 그늘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 P208

여기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어떤 이야기와도 닮지 않은 이야기다. 응축될 대로 응축된, 그래서 단어들이 당기만 해도 모두 부서져버리는, 그런 현실 속 삶의 응결체다. 아무리 저항력이 강한 밀도 높은 단어들을 찾아낸들, 괴리된 시간으로부터 온 이 이야기는 정신 나간 허구로 비칠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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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10-31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덕분에 실비 제르맹에게 입덕했어요^^

새파랑 2024-11-01 17:40   좋아요 1 | URL
앗 그러시군요~!! 영광입니다 ㅋ 매력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인거 같아요 ㅋ 청아님의 리뷰가 기대가 됩니다^^
 

최진영작가는 산문도 좋다 ㅜㅜ
한번에 읽기에 너무 아깝다.




거기까지 가서 뭐하려고 어차피 혼지잖아. 아무도 내게 관심 없어. 바다를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혼자서 지루하게 돌아갈 일만 님았지. 이 경험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어? 결국 나만 아는 일로 남겠지. 심지어 나에게조차 별 의미가 없을걸, 비밀이 쌓일수록 외로워질 뿐이야. (3월) - P32

내 속의 너무 많은 내가 별일 아닌 것으로 남겨버린 일을 누군가는 신기하개도 기억한다. 아무리 살아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듯 살아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일들이 있다. 삶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서 동시에 존재하는 커다란 직소퍼즐이다. 지금 겪는 일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언젠가 이 일과 이어지는 퍼즐이 나타날 것이다. 의미는 채워지고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다. 기억한다면. 기다린다면. 섣불리 버리거나 봉인하지 않는다면. - P36

내가 여기 있어.
혼잣말이었다.
그때 너를 봤어.
어떤 대답은 시간을 충분히 여행하고 돌아온다.
(3월) - P36

울며 웃는 사람. 생색내지 않는 배려. 드러내지 않아서 홀러나오는 따뜻한 심성. 애정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말투와 눈빛, 밤을 지새고 아침을 걸어오는 사람. 눈부신 햇빛 속에서 멀어지던 뒷모습. 당시 나는 몰랐다. 그 시절 그 아침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억할지. 그리고 몰랐다. 소중한 사람과 오래 연결되려면 나도 같이 애써야 한다는 걸. 누군가를 향한 이유 없는 걸음과 무리 없는 만남이 절대 흔치 않음을 이젠 안다.
(3월) - P50

어떤 죽음은 그와 같습니다. 목격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요.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게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질문을 멈출 수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됩니다.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4월) - P63

나는 당신의 눈빛에서 영혼을 본다. 당신이 옆에 없을 때도 당신을 느낀다. 당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우리가 이생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길 바란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마음뿐.
(4월) - P63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4월) - P77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인가?
그건나보다 당신이 더 잘알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니는 당신의 거짓말을 잘 일아채는 사람, 그러나 당신이 애써 감추는 것까지 알고 싶진 않다. 당신이 보여주는 것, 말하는 것만을 알고 싶다. 당신이 내게 건네고픈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 그 너머까지 상상하고 싶진않아. 당신 마음을 짐작하는 건 무척 외로운 일. 그래서 때로는 애틋한일.

(5월)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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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작품은 갈수록 좋아지는것 같다.








정신을 차리기 위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을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물도 생각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인물에게 휠씬 매료되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키의 인물처럼 살고 싶었다. - P50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소중한 존재는 이 세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돼요.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어떤 면에서 그 본능을 거스르게 합니다. 타인을 무모할 정도로 믿고, 타인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심지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도 있죠. - P92

요즘 그런 일들에 대혜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꼐 사라저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 바로 그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 만은 없고. - P261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단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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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다는 아니지만~ 나를 돌보는 일이 언제나 어렵다.

나를 돌보려면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돌아보는 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 P33

하지만 최근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는 또 내가 사람을 한번 믿으면 걷잡을 수 없이 좋아하게 된다는 것. 현수 언니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 P134

그 대신 다음달까지 나언니 집에서 재워줘. 그러자 언니가 나를 곽 껴안아주었다. 이로써 집을 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걸리게 생겼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언니가 좋으니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보다 내어준 마음을 거두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미정을 절대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다. - P135

그렇게 말해놓고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찝껍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가장 면처 스스로를 의십하균 했다. 버롯이라고 한다면 개중 가장 못된 버릇이었다. 회사 공유 드라이브에서 파일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거나,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았거나, 친구와 사소한 다툼을 벌였을 때. 나는 언제나 내가 한 행동들을 먼저 되짚어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오래도록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벌서는 아이처럼. 하지만 서른이 넘은 이 시점에 누가 나에게 벌을 준단 말인가?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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