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사두고 안읽다가 이제서야 읽었는데...
뭐야 너무 좋잖아... 나머지 한강작가님 책들 다 구매해야 겠다.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오월의 일이었다. 관리실 옆 화단의 모란은 잘린 혀 같은 꽃이파리들을 뚝뚝 밸어대고, 노인정 어귀의 보도블록에는 분드러진 흰 라일락꽃들이 행인들의 구두 밑창에 엉기던 봄날이었다. (내 여자의 열매) - P9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내 여자의 열매) - P34

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녁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핧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 P43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 P91

바닷바람이 아이의 옷 속으로 파고든다. 오그라드는 가슴을 퍼려 애쓰며 아이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무허가 주택들의 들쭉날쭉한 담벼락들이 흐린 시야 속에서 겹처진다. 해질녁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 P99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

눈물 따위로 버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아기 부처) - P119

나는 그의 흉터와 용기를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바로 그 흉터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 때문에, 평생 숨기고 싶었을 알몸을 보여줄 만큼 나를 신뢰해준 데 대한 고마움 떼문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아기 부처) - P127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갖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아기 부처) - P134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했던 죄. (아기 부처) - P135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시간 낭비잖아요" - P137

나는 얼마나 어리석였나. 그 어리석음으로 서로를 망쳐면서도 그것을 몰랐나. 그것을 인내라고, 혹은 연민이라고 부르며 믿었으나, 과연 누구를 위한 인내였나. (아기 부처) - P159

어느 날 그는 빗방울이 전선에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그러니 정말 흥미 있는 이야기는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되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그가 전선의 빗방울을 보기 전까지이다. (어느 날 그는) - P177

사랑이 뭔데?
그가 할 말을 잃고 있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그 순간순간의 진실일 거야. 순간의 진실에 대해서 물은 거라면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영원을 믿어?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당신 힘으로 버텨내려고? 버터내볼 생각이야?
(어느 날 그는) - P208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 버리잖아. (어느 날 그는) - P210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위질지도 몰라. (어느 날 그는) - P210

집착하지 않는 성벽이었으므로, 사랑이란 대체로 집착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므로, 그녀의 사랑은 쉽게 식었다. 민화는 자신의 사랑이 식었다는 것을 굳이 그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숨길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 P211

그랬다. 그는 민화의 애정이 식어가는 과정을 보았다.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과정을 똑똑히 목격하면서도 그것을 저지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이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그렇게까지 잘못했단 말인가? 얼마나 큰 잘못에 대한 벌로 그녀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어느 날 그는) - P231

그는 눈을 감았다. 델 것 같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입술과 턱을 적신 그 눈물은 억센 힘줄이 드러난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러닝셔츠로 번졌다. 바로 그 순간으로 인하여 그의 삶이 바뀌었으나, 그는 아직까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무수한 그림자들의 춤추는 곡선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어느 날 그는) - P239

그때 그는 자신이 언젠가 일 년에 하루뿐인 초파일을 아쉬워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하루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만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붉은 꽃 속에서) - P260

옛날에, 중국의 한 스님이 멀리 있는 다른 스님을 찾아갔어.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물었지.
저쪽 방에 가서 주무시지요.
객스님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가, 도로 문을 열고 들어왔어. 이 객스님 하는 말이, 밖이 어둡습니다, 스님. 한데 이, 방에 있던 스님이 촛불을 켜서 건네주었다가, 객스님이 받자마자 후욱, 불어 꺼버렸어. 바로 그때, 초를 들고 섰던 객스님의 눈에서, 깨달음의 눈물이 흘러내린 거라. (붉은 꽃 속에서) - P261

나무들이 바라보는 쪽은 언제나 햇빛이 드는 쪽이다. 운동장의 저 나무는 밝은 곳에서 자란 덕분에 둥글고 의젓한 모양새로 가지를 뻗었지만, 그늘에 선 나무들의 가지는 예외 없이 간절하게 휘어 있다. 어떤 나무는 빛 속에서 태어나고 어떤 나무는 그늘에서 태어나나,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잎사귀는 똑같이 푸르다. 그들의 잎사귀는 햇빛을 향해 고스란히 펼쳐진다.
(붉은 꽃 속에서) - P266

밤새 그의 설익은 꿈은 작은 소리에 놀라 조각나곤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그의 등을 누군가 떠밀었다. (붉은 꽃 속에서) - P269

신기한 것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을 때 그것을 잠자코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래서 그 감각과 생김새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면 어느 사이 그것이 사라져 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난 밝고 빈 마음속에서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기억이나 감정이 솟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쉬었다. 선방에서 나와 잠시 경내를 걸을 때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폭우에 씻긴 듯 또렷해져 있곤 했다. (붉은 꽃 속에서) - P284

용담이 그 지등의 불을 불어 껐을 때, 서울 큰스님의 법문과 달리 덕산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기뻐하며 큰절을 했다. 그 불꽃이 꺼진 순간 그의 마음에 어떤 불이 켜졌을까. 어두우나 밝으나 오롯이 거기 있었던, 늘 거기 있었던 마음 한자리를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 P287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 P287

서른 살이 되던 겨울, 어느 저녁 그여자는 세면대에서 발을 씻다 말고 갑자기 손을 멈춘다. 상처는 진작 아물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가시덩굴이 날카롭게 그녀의 발을 찔러올 때 입술을 악물었던 그날의 햇빛, 눈이 아리도록 바다와 논배미와 비포장도로의 모래 먼지 위로 차올랐던 햇빛이 그녀의 차가운 발등 깊숙이 박힌다. (아홉 개의 이야기) - P294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를 걸을 때였지.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싹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뒷친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 소리를 낸 순간.
(아홉 개의 이야기) - P300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님아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남자는 들었다. 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고통을 느길 수도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승의 소리들은 귓전에 머물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태중에서 소리부터 들게 되는 것과 같이.
(아홉 개의 이야기) - P303

아주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만져지고 안 들리면, 꿈속같이 고요해지면, 그 캄캄한 곳에서, 그때 무서워하거나 쓸쓸해하지 말아.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아홉 개의 이야기) - P308

새의 시체가 썩어갈 때까지 나는 그것을 가지고 다녔어. 새의 온기가 사라지고 나자 이번에는 내 손의 온기가 그 싸늘한 새에게 옮겨졌고, 마침내 내 손이 새인지 새가 내 손인지 알수 없어졌지.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시체가 부패했을 때에야 그것을 철길 끝의 흙 둔덕에 묻었어. (철길을 흐르는 강) - P355

만일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내 몸을 태워보아줘. 사리가 나올지도 몰라. 늑골과 늑골 사이에, 명치가 있던 자리를 잘 찾아봐. 거기 얹혀 있던 외로움이 뭉처서 독한 돌이 되어 있을 거야. 당신이 그랬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한번 외로운 사람은 영원히 외로운 사람이라고.
(철길을 흐르는 강) - P359

다만 꼭 한 장면만은 넣고 싶어. 그곳이 무슨 강이라고, 물에 뛰어드는 사람처럼 철길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벗어둔 어머니의 흰 구두. 아버지가 직접 만든 새 구두였지. (철길을 흐르는 강) - P370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을 되풀이한다. 그렇게 체세포가 모두 바뀌는 데 칠 년의 주기가 걸린다고 들었다. 칠 년 동안, 내 세포들이 새것이 되었다. 내 눈과 귀와 코와 입술, 내장과 살갖과 근육 들이 소리 없이 몸을 바꾸었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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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뱅. 너무 좋다. <환희의 인간>과 비슷한 느낌의 작품.


그에게 글쓰기는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재와 함께 머물고 기다리며 존재를 감각하는 과정이다. - P127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속 정원의 광채에 눈이 부신, 빛무리에 둘러싸인 동정녀처럼, 그녀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홀로 있다. 고독한 사람들은 시선을 끌어당겨서 그들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커다란 유흑을 젊어진 그들은 선명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신 앞에 있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관심을. - P11

그러나, 거기서 당신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책을 만난 것이다. 책과 함께라면 당신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독서는 대립 없는 삶이며, 선택의 강요로부터 면제된 삶이다. - P24

당신은 순서도 이유도 없이 읽는다. 독서는 강요될 수 없다.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 그것을 결정할 수 없다. 독서는 사랑이나 맑은 날씨와 같아서 아무도, 심지어 당신조차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읽으며, 당신이 읽는 것은 곧 당신 자신이다. 독서란 피의 유치원에서 스스로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발견해 낸, 결코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 P25

우리는 아이에게 수없이 말한다. 어서 크라고 제촉하면서 나이가 주는 단조로움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는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말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욕망과 더는 자신을 돌보지 않으려는 은밀한 바람을 알아본다. 하지만 그런 빈말은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 말은 아이의 공상 위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 P37

삶의 아주 초기에,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은 것이다. 삶의 아주 초기에, 이미 끝이 찾아온 것이다. 모든 삶은 그 기원부터, 그 여명부터 소멸을 항해 나아가도록 정해져 있다. - P37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이의 시선과 생각이라는,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 절망했던 푸르른 섬들에 다다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그녀처럼 사랑하는 것은 더욱 감미로운 일이다. 부재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랑,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랑. - P51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지친다. 그래도 ‘그것‘ 그 초목의 잎, 그 빛. 그 이름이 있다. 때때로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그래야 하듯,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따로 떨어져 고요 속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이 낡지 않고 변치 않았음을 보게 된다. 당신이 선택했던 처음 그날처럼 빛나고 있음을.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그것이 당신을 선택했고, 당신을 비추며, 당신을 그 자리에 머무르도록 붙잡고 있음을. - P70

당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은 당신에게 그 가치를 되돌려 준다. 그것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고, 그렇기에 곧 당신 자신이 된다. - P71

그것 외에는 쓸 것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에서 노래할 것은 삶 속에서 사라진 사랑뿐이니까 그 사랑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꽃의 향기를 모으듯 글을 쓴다. 치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꽃잎 위의 갈색 반점, 곧 사라질 젖니에 깨물린 흔적 같은 자국, 지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기다림 외에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82

사랑이란 단순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신비롭다. 복잡한 것은 결코 신비롭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목소리만큼 단순한 것은 없다. 목소리만큼 신비로운 것은 없다. - P90

그녀가 자신의 삶에 대헤 이야기한다. 당신은 몇 시간이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오직 성스러운 말, 시간의 겹에서 끌어낸 말만을 들을 것이다. 들리는 것은 오직 의지할 곳 없는 고독한 말뿐이다. 세상을 위해 쓰이는 다른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비인간적이고 병든 말이다. - P97

당신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늦장 부리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술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는 말하지 않은 한 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삶에서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일 년은 한번 짓는 미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십 년은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당신에게 남겨지는 것은 단 하나의 행운, 단 하나의 축복뿐임을 생각한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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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26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이 나왔는데,,, 모르고 있었네요.
보뱅 읽으면서 가끔 생각한건데 불어로 읽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습니다.

새파랑 2025-03-26 21:10   좋아요 1 | URL
불어를 배웠어야 하는데 ㅜㅜ 보뱅은 진짜 감수성 천재 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예술입니다~! 이번 작품도 좋아요~!!

페크pek0501 2025-03-27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우 중 보뱅이 너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읽어 말어, 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 중 하나만 읽는다면 무엇을 읽는 게 좋을까요?

새파랑 2025-03-27 16:22   좋아요 1 | URL
저는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좋았는데 페크님에게는 <가벼운 마음> 이나 <환희의 인간>을 추천합니다~!!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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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26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시간에 나는 한 카페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을 읽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루하루 소모가 반복되던 날들 중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후에는 계속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나는 2024년에 한강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거라고 예상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온다면 한강작가님이 받을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당시에 내가 읽은 한강 작가님 작품은 <채식주의자>, <희랍어시간>, <작별하지않는다> 단 세편이었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인상적이었고, 특히 시적인 문장과 기존 한국문학에서 느끼기 힘든 특유의 깊은 어둠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라딘 우주점에 가서 안읽은 중고책을 하나둘 모으고 있었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지만 더이상 못읽는 와중에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행타는걸 선호하지 않아서 한강작가님 신드롬이 한창일때는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그동안 못읽고 있었다가, 이제 유행이 좀 가라 앉아서 다시 읽으려고 마음을 잡고 선택한 작품이 <소년이 온다>였다.


사실 이 작품이 한강 작가님의 대표작인건 알고 있었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역사배경의 소설을 선호하지 않고, 5월 광주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게 나의 독서 인생 가장 큰 실수였다. 바로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었다는 것. 만약 이 책을 한강 작가님의 첫 작품으로 읽었더라면 나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 작가님의 모든 책을 구매하고 읽었을거라 확신한다. 아 바보같이 나는 왜 이제서야 <소년이 온다>를 읽은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문학중 단 하나, 최고의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소년이 온다>를 고를 것이다. 왜 한림원에서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번을 쉬지 않고 무겁고 아프게 느껴지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텍스트 만으로 이렇게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니, 문장 문장하나가 마치 실제 장면처럼 그려질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영상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것 같은 감정의 깊이. 이게 바로 문학의 힘,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6개의 장과 마지막 에필로그로 그성되어 있는데, 1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어느 장 하나 빠지지 않고, 이야기는 촘촘히 이어진다.




<1장> 어린 새 : 동호

2인칭 시점으로 화자가 주로 관찰하는 대상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직 중학생인 소년 ˝동호˝다. ˝동호˝는 친구인 ˝정대˝와 함께 시위대가 행진하던 광장에 있었지만, 군인들의 총격에 강제로 해산되고,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것을 본다. 이후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사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상무관으로 가고, 그곳에서 이후 이아기의 주인공들인 ˝은숙˝, ˝선주˝, ˝진수˝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17


˝동호˝는 친구 ˝정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게다가 ˝정대˝의 누나인 ˝정미˝도 실종되었다. 이제 곧 무장한 군인들이 이곳 상무관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동호˝는 친구와 누나를 찾아서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자신까지도.] P.45.




<2장> 검은 숨 : 정대

2장은 군인이 쏜 총을 맞아 사망한 ˝정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망한 다수의 시민과 함께 군인들에 의해 포개져 방치된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육신을 떠나지 못한다. 썩어가는 시신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들의 육신, 나의 심장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고통. ˝정대˝의 영혼은 친구 ˝동호˝의 죽음을 느낀다.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딜까, 이제 우리한텐 몸이 없으니 만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을텐데.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P.51


5월 광주의 잔혹한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이 2장이라 생각한다. 아무 잘못도 없이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들, 그들의 빼앗긴 인생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단지 그곳에, 광주의 광장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억울한 혼은 아직 여기에 있다. 지금도 남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




<3장> 일곱개의 뺨 : 은숙

3장 부터는 5윌 광주 이후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3장의 주인공은 당시 고3 여학생이었던 은숙이다. 그녀는 계엄군이 상무관을 무장진압하기 직전에 시민군들과 대학생 ˝진수˝의 배려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함께 싸우고 싶었던 마음과 함께 살아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은숙.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P.89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출판사 직원이 되어, 5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국가의 지속적인 감시와 검열 때문에 그 책 내용의 대부분은 삭제되고 만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연극으로 상영된다. 삭제된 부분은 소리로 전달되지 않고 단지 입술의 모양으로만 표현된다. 하지만 이 책의 원고 교정을 했던 은숙은 이들이 말하려는 내용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연극 속에서 소년을 본다, 그리고 동호를 떠올린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른지 못 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P.102




<4장> 쇠와 피 : 진수

4장은 그날 이후 살아남았던 대학생 ˝진수˝에 대한 이야기로, 그와 함께 고문을 당하고 감금된 나의 회고로 진행된다. 당시의 비인간적인 고문은 작가님의 문장을 통해 그 아픔과 비참함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정말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괴롭히는게 가능한걸까? 사실이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증거니까.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럽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진수˝는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형량은 무의미했다. 국가에서 그들을 특사로 석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는 그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감옥 밖에서 형량을 사는것과 다르지 않았다. 5월의 아픔과 감옥에서의 치욕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술로 버티던 ˝진수˝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죽음밖에는 답이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아픔. 결국 국가가 그에게 선고한건 7년형이 아니라 사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아니, 그런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걸 증명한 거야.] P.130




<5장> 밤의 눈동자 : 선주

5월 광주에서 시민군에 가담해 저항하다 옥살이를 한 ˝선주˝가 주인공이다.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한 사회단체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날의 아픔과 치욕속에서 쥐죽은듯이 조용히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윤˝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5월 이후 몇십년만에 말이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 구속된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그녀 스스로 증언하는게 가능하긴 한 걸까? 악몽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있다고 중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살아남기 위하여] P.167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

6장은 이제는 늙은 ˝동호˝의 어머니가 ˝동호˝에게 쓴, 보낼 수 없는 편지다. 너무 그리워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동호˝를 본 것 같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동호˝라고 믿는다.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 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시장통 좌판 사이로, 골목골목으로 한시간을 뒤지고 댕겨도 없어야. 무릎 속이 쑤시고 어질어찔 골이 흔들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P.179


자식을 먼저 보낸, 그것도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식을 둔 부모님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자식잃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이 세상에 없다. 어머니는 그때 ˝동호˝를 상무관에서 데리고 나오지 못할걸 아직도 후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속에 ˝동호˝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시절 그대로. 어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1980년 5월 광주에 멈춰있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끝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에필로그는 작가님이 이 책을 쓴 계기와 다짐이 실려있는 장이다. 난 여지껏 이렇게 비장한 에필로그는 본적이 없다. 1980년 1윌 작가님은 서울로 이사오고, 이후 친척들로 부터 5월 광주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르 듣게 되며, 우연히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집을 보게 된다. 이후 작가님은 5월 광주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5월 광주의참상을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서아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씨주세요.] P.221






그 날 이후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겪은 아픔은 모두 이어진다. 과거 그들이 겪은 아픔은 한강 작가님의 펜을 통해 현재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이런게 문학의 힘이자 역할이라 본다. 역사는 단절될 수 없는 것이다.과거는 단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참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책의 뒷면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이라고.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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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19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빠져나오기가 힘들죠
한강 작품은 다 그런거 같아요 ㅠㅠ
전 아직 리뷰 못 쓰고 있어요.

새파랑 2025-03-19 21:50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뛰어난 작품을 리뷰 쓰는게 부담이 되긴 했는데 그래도 왠지 기록하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ㅜㅜ 리뷰 쓴다고 다시 읽는데도 너무 우울하네요 ㅜㅜ

명작입니다~!!

페넬로페 2025-03-20 0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새파랑님께서 한강을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하시니 저도 재독해야 할 것 같아요^^

새파랑 2025-03-20 14:54   좋아요 1 | URL
독보적이다는 느낌이 듭니다 ㅋ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몰입감도 좋고 ~! 이런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3-20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도 여운 있게 읽으신 것 같아 좋네요. 특히 이 작품은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한강 작품인지라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아프지만 꼭 읽어야 할 소설이에요^^

새파랑 2025-03-20 08:00   좋아요 0 | URL
역사 전문가 화가님 ㅋ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5-03-24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오고 열해가 넘었군요 저도 아직 못 봤네요 언젠가 보기는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 일을 경험한 사람은 그걸 잊지 못할 듯합니다 경험하지 않았다 해도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군요


희선

새파랑 2025-03-26 21:04   좋아요 0 | URL
이 작품 희선님은 완전 좋아하실거 같아요. 감정이 점점 고조되기 보다는 처음 부터 끝까지 계속 강렬한 아픔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제 읽으셔야 합니다 ㅋ

페크pek0501 2025-03-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읽었지만 리뷰를 쓸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새파랑 님은 꼼꼼히 잘 쓰셨네요. 이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한강 작가는 더욱 아파하며 소설을 썼을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죠. 아파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같았으니까요. 등장인물들의 분신이 되어 쓴다고나 할까... 저도 5 18에 대한 소설, 영화를 많이 봐서 더 이상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듯해요. 위대한 쾌거예요.^^
 

너무 좋다. 영원히 꿈 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세계의 끝일지는 몰라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출구가 있을거야. 난 그걸 확실하게 알 수 있어. 하늘에 그렇게 쓰여 있어, 출구가 있다고. 새들은 벽을 넘잖아. 벽을 넘은 새들이 어디로 날아가겠어? 바깥 세계야. 이 벽 밖에 다른 세계가 있어. 그래서 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사람들을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거라고. 밖에 아무것도 없다면 굳이 벽으로 둘러쌀 필요가 없잖아. 반드시 어딘가에는 출구가 있어." - P61

"그러나 자네는 그 세계에서, 자네가 여기에서 잃은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잃어버린 것과 잃어 가고 있는 것들을." - P103

"그게... 어떤 세계죠?" 나는 박사에게 물었다. "그 불사의 세계 말입니다."
"평온한 세계예요. 자네 자신이 만들어 낸 자네 자신의 세계이지. 자네는 그곳에서 자네 자신일 수 있어.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고. 또 모든 것이 없어. 자네는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겠나?" - P121

"두려워할 일은 없어. 이건 죽음이 아니야. 알겠나? 영원한 삶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자네는 자네 자신이 되는 거야. 그에 비하면, 지금 이 세계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환영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걸 잊지 말게나." - P127

"‘내 탓이 아니야‘는 이방인 ,의 주인공 말버릇이었죠, 아마. 그 사람, 이름이 뭐었더라. 음."
"뫼르소." 하고 나는 말했다
"아, 맞다. 뫼르소." 그녀가 되풀이했다. "고등학교 때 읽었어요. 하지만 요즘 고등학생들은 이방인 같은 소설, 전혀 안 읽어요.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조사를 했거든요. 당신은 어느작가를 좋아해요?" - P255

"그렇게 멋진 세계인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그림자가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적어도 우리가 살아야 할 세계야.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도 있고. 너는 그곳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거기에서 죽어. 네가 죽으면 나도 사라져.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야." - P308

나는 눈을 감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세 형제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미치, 이반, 알료샤, 그리고 배다른 스메르쟈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름을 전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P314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울 수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고,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세계에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품이 존재한다. 그 슬픔은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가령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종류이다. 그 슬픔은 어떤 형태로도 바꿀수 없고, 바람 잔 밤의 눈처럼 그저 고요히 마음에 쌓여 갈 뿐이다. - P318

좀 더 젊었던 시절,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든 언어로 환치해 보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언어를 늘어놓아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는 없었고, 나 자신에게도 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언어를 닫고, 나의 마음을 닫았다. 깊은 슬픔이라는 것은 눈물이라는 형태조차 띨 수 없다. - P318

"무서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만약 영원히 상실된다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거 하나는 꼭 잊지 말아요."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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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버젼만 네가지는 되는듯. 언제 읽어도 좋다.


"내가 기억하는 건 두 가지밖에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살던 곳은 벽에 둘러싸여 있지 않았고, 거기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를 끝고 다녔어." - P103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한 통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전화기에도 녹음된 메시지는 없었다. 아무도 내게는 볼일이 없는 것 같았다. 상관없다. 나 역시 아무에게도 볼일이 없다. - P111

그러나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지고 나면. 나의 상실같은 그녀를 만나기 전보다 휠씬 깊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황망한 결락을 어떻게 처리한 수가 없었다. 그 우물은 너무도 깊고 너무도 어두워, 아무리 흙을 퍼부어도 메울 수 없다. - P246

인간의 성향이라는 건 대략 25세까지 결정되고, 그 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외적세계가 그 성향에 어떻게 반응하느나는 것이다. - P267

결점이 많은 인간은 비슷하게 결점이 많은 사람에게 연민을 품는 경향이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등장인물이 안고 있는 결점은 때로 결점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결점에는 백 퍼센트 동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경우는 그 결점이 너무도 대대적이라 배경으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 P264

"내 생각에, 마음은 참 불완전한 것 같아요."

"내생각도 그래. 아주 불완전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흔적을 남겨.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다시 더듬을 수 있지.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더듬듯이."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요?"

"나 자신에게." 나는 대답했다. "마음이란 그런거야. 마음이 없으면 어디에도 가지 못해."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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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5-03-18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난 주부터 Haruki Murakami 책
<다시 읽기> 시작해서 아주 Classically
<Norwegian Wood> 반 정도 읽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무라카미의 책 13권 전체를
한꺼번에 몰아 다시 읽을 것 같진 않지만
요즘 워낙 우울한 인문학 책만 파다가
무라카미의 책도 짬짬이 섞어보려고 방향을 좀 틀었습니다.

<Norwegian Wood>끝내면
<Kafka On the Shore> 로 넘어갈 건데
거의 20년+ 만에 다시 읽는 셈이 됩니다.
언제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파랑 2025-03-18 16:38   좋아요 1 | URL
오 반갑습니다~!! 머리아플때는 하루키죠ㅋ 읽으면 너무 좋습니다~!

아 <세계의 끝..> 방금 다 읽었는데 삶의 의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ㅋㅋ 멜랑콜리 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