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정말 좋다.








"실종된 목사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줘야겠네." - P17

"훌륭한 선전 자료가 된다는 얘기군요. 이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아주 중대한 종교탄압의 경우로서 국제적 중요성, 특히 미국에서 큰 중요성을 가질 만한 사건이다. 그런 뜻이죠? 달리 말하면 기독교 순교사에 들어갈 한국의 장(章)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된다는거고요." - P18

"목사님께선 47세. 한 목사는 28세, 두 분은 전쟁이 나기 일주일 전인 6월 18일 공산당 비밀경찰에 체포되었고 같은 날 일단의 다른 목사들도 함께 검거됐습니다." 나는 방첩대에서 들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두 분은 총살 직전에 우리 보병부대에 구조되어 감방에서 풀려났 습니다." - P31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 P37

괴뢰군 일개 중대와 어느 골짜기에서 야밤중에 부닥뜨려 총검으로 백병전을 치른 거야. 양쪽이 모두 돌격했는데 처음엔 정규 백병전 같았지. 그러나 잠시 후부터는 쌍방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 난투전이 벌어졌어. 문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 데다 양쪽이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 우리가 어느 쪽을 죽이고 있는 건지 알수가 없었네. 모두 똑같은 언어로 "누구야, 너 누구야?"만 외쳐대고 있었으니 말일세. - P45

한데 가만있자, 내가 왜 이따위 얘길 쓰고 있는 거지, 자네한테? 알 수 없구먼. 어쩌면 나 자신이 두려워졌는지도 모르이 나 자신이 바로 공포의 근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지는군. - P46

"기독교인이나 목사도 인간이란 점을 잊지 마시오. 그들을 잴 때는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척도와 저울대 위에 올려놓고 그 감정과 허약함을 재어야 하지 않겠소? 나는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어떤 성직자도 육체적 정신적 고문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 P54

"내가 말하는 진리는 내 양심의 진리요, 대위."
"제겐 진리를 판단할 힘이 없단 말씀입니까?"
"이것 보오."그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인간에 관한 사실을 얘기하고 있고 나는 내 신앙의 진리를 얘기하고 있다는 걸 모르시오?" - P55

"그가 순교자냐 영웅이냐 따위 또엔 아랑곳하지 않아. 그런 건 관심 밖이니깐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가 끝까지 광신도로서, 자기야말로 이 지상에서 가장 의로운 하나님의 종이라는 그 믿음을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죽었느냐 하는 거야. 그게 그의 믿음이었고 그가 생각한 자기 모습이었거든. 그러니 과연 그가 그런 모습을 구기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죽었는지 알고 싶은 걸세." - P96

"젊은 친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소?" - P103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고 신은 용서하는 거야. - P113

그러나 장 대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열두명 목사들의 순교는 이제 확고한 사실이 됐어. 이제 필요한 건 더 많은 질문이 아니라 그 사실을 공표해서 그들의 영웅적이고 성스러운 행동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일이야. 그 순교자들의 영광을 증언하는 데는 신 목사를 제쳐놓고 다른 적격자가 없어! - P130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꼭 개새끼들같이 훌쩍거리고, 낑낑거리고, 엉엉 울면서 죽어갔어!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그자들은 개처럼 죽은 거야! 개처럼, 알겠어? 모두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 - P140

"그자는 유일하게 내게 대항했던 자였어. 난 당당하게 싸우는 걸 좋아해. 그자는 용기가 있었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만큼 배짱 있는 친구는 그자 하나뿐이었어. 난 내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자를 존경해. 그래서 그자만은 쏘지 않았던 거야. 사실은 쏘아버렸어야 하는 건데.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진작 쏴 죽였어야 했어. 난 너를 알고 있어, 이 가짜 목사야!" - P141

"자네가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네" 하고 군복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우린 지금 신앙의 순교자들을 다루고 있어. 그대가 탈영병 백명을 데려다 백 명의 영웅으로 둔갑시키겠다면 좋아, 얼마든지 그래보게. 그러나 정말이지 그대가 함부로 신앙의 순교자를 날조할 수는 없는 거야. 그거야말로 최대의 경멸을 받아 마땅할 신성 모독이지. 순교자는 하나님의 뜻에 봉사하는 것이지 인간의 일시적 필요에 봉사하는게 아냐!" - P149

"왜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해?" 대령은 떨떠름한 얼굴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걷기 시작했다.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그걸 꼭 까발리고 떠들어야 하나?" - P152

난 아버지가 순교자가 아니었으면 하고 열심히 희망했었다는 거, 자네는 알고 있나? 난 그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 꺾이고 실패하길 바랐던 거야. 그가 최후 순간에 가서 패배하고, 납작하게 부서지길 바랐어. 영혼이 약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도 한번 느끼게 말야. 의심한다는 것, 자기의 신과 신앙과 기타 모든 걸 의심해 본다는 것이 어떤 건가를 그가 딱 한 번만이라도 느껴보고 자기 인생의 무서운 불의와 공포를 한 번쯤 맛본 다음 죽어가게 말야. - P157

"저런! 그래 언제 이 병신 같은 전쟁놀이를 그만둔다지?"
"전쟁은 천지창조 이후 계속돼온 것 아닙니까?" 그는 머리를 저었다. "정말이지 인간에게는 사악한 데가 있어. 정말 그래." 우리는 악수했다. "전쟁이 끝난 뒤까지 살아 있다면" 하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서울 거리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구려." - P242

"목사님, 무엇 때문이죠?" 나는 다시 절망에 잠겨 말했다. "왜 사람들을 속이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당하는 고통은 고통일 뿐 거기에는 우리가 이승 너머에서 찾아낼 어떤 정의로움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을 속여야 합니까?" - P254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그렇소. 당신이 환상이라 부른 그 영원한 희망 말이오. 희망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하긴 이게 사실이지만)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요, 하늘나라 하나님의 왕국에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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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28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순교자군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은 이 작품을 매우 혹평하시는데, 한때 교회를 다녔던 입장으로서 이 책은 신의 존재와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정말 잘 형상화했다고 생각하는 1인이에요. 가독성도 좋고...전 괜찮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리뷰도 좀 길게 썼다는..ㅎ

새파랑 2022-07-28 15:02   좋아요 2 | URL
저도 교회를 안다니지만 아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ㅋ 리뷰를 찾아봐야 겠네요 ^^ 저도오늘 퇴근하면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scott 2022-07-31 22:59   좋아요 0 | URL
저도 신자 아니지만
두분 말씀에 동감^^

mini74 2022-07-29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읽으시는군요 새파랑님...저는 말로만 듣던 책, 읽어보고싶다면서도 자꾸 다른 책에 밀리더라고요. 새파랑님 리뷰가 궁금해집니다.

새파랑 2022-07-29 17:55   좋아요 1 | URL
전 이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 흡입력이 있어서 카페가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ㅋ 강추합니다~!!

scott 2022-07-29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더위에 책 읽다 순교 하기 없귀!

시원한 에어콘 바람 앞에서 열독!

  〃 ̄ヽ
r‘-‘|.|  O | ∧∞∧
`‘ーヽ_ノ~(-ω-。)
    | ,|   ノ  ∪
  r‘  ̄ |  0_0ノ

새파랑 2022-07-30 09:34   좋아요 1 | URL
더워서 집에서 맥주마시면서 책보다가 자버렸습니다 😅 역시 여름독서는 카페가 좋은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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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독교 버젼. 이제 3분의 2 읽었는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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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조재룡 옮김 / 난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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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95

"날이 밝았어요, 당신만 빼놓고, 이제 곧 모든 것이 시작되겠지요. 당신, 당신은 절대로 시작되지 않아요."


너무나 읽고 싶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의 병>을 읽었다. 지금까지 뒤라스의 작품은 <연인>,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여름비>, <히로시마 내사랑> 이렇게 네편인데, 이제 뒤라스의 작품은 다섯편을 읽었다.


<죽음의 병>의 줄거리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당신이라는 2인칭 주인공이 돈을 주고 몇일동안 한 여인과 관계를 가진다. 여자는 주인공에게 모든것을 해준다. 그리고 설득한다, 사랑을 하라고, 느끼면 된다고. 하지만 주인공은 어떻게든 사랑을 느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단한번도 누군가를 사랑해본적이 없었기에, 죽은 사람 이었기에... 자신밖에 몰랐던, 타인을 위해 울어보지 못한 주인공은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이는 곧 죽음의 병이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감정이 어떻게 불시에 생겨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당신에게 대답한다.어쩌면 우주의 논리에 갑작스레 끼어든 어떤 균열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실수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의지 같은 것에서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지요.] P.63

[당신이 묻는다: 사랑하는 감정이 다른 것에서도 불시에 생겨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말해달라고여자에게 애원한다. 여자가 말한다 : 모든 것에서요, 저 밤새의 비행에서, 어떤 잠에서, 잠 속의 어떤 꿈에서, 다가오는 죽음에서, 어떤 낱말에서, 어떤 죄악에서, 스스로, 저절로,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른 채.] P.63



결국 계약된 시간이 끝나고 그녀는 떠난다. 주인공은 그녀를 찾으려고 하겠지만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다시 죽은 사람이 된다.

[당신은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당신이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반쯤 열려 있거나 감긴 눈아래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몸뿐이다. 몸들의 관통, 당신은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 당신은 절대로 알아볼 수 없다. 당신은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P.66



사랑은 억지로 되는것이 아니고,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얻을수도 없다. 사랑의 부재는 죽음일 뿐이다.





뒤라스는 <죽음의 병>에 이야기라고 할만한 걸 쓰지는 않았다. 모든 불필요한 언어를 삭제하고 딱 필요한 문장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책도 대단히 얇다. 본문만 67페이지다. 수식어와 설명이 없다보니 대단히 난해하다. 그럼에도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배경만은 아주 선명하다.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랄까? 난해하지만 뭔가 어렴풋이 이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지금까지 네번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아졌다.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 앞으로 여섯번은 더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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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7-27 2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역시 새롭네요^^*
시詩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이 돋보였던! 새파랑님 뒤라스의 책을 벌써 5편이나 읽으셨군요.
저도 조만간 하나 더 읽어야겠어요ㅎㅎ

새파랑 2022-07-27 21:31   좋아요 2 | URL
저번에 <여름비>도 그랬는데 뒤라스의 약간 난해한 책은 리뷰 쓰기가 어렵더라구요 😅 근데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

페넬로페 2022-07-27 2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67페이지면 단편소설 정도의 분량인거네요.
짧아서 더 시적일 수 있겠어요
읽으면서 이미지를 연상하고요~~
난해한 작품은 리뷰 쓰기 힘들죠^^

새파랑 2022-07-27 22:10   좋아요 3 | URL
좀 난해하고 에로틱(?)한데 읽다보면 빠져듭니다 ㅋ 분량은 단편인데 문장들이 쉽지 않더라구요 😅

scott 2022-07-28 1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뒤라스,,,
세뚜!
<이게 다에요>
새파랑님 독서 리스트에 추가!^^

새파랑 2022-07-28 07:00   좋아요 3 | URL
그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아직 사놓고 안읽은 <태평양을 막는 제방> 먼저 읽어야 할거 같아요~!!

희선 2022-07-28 0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게 죽음의 병일지... 짧아서 여러 번 만나셨군요 앞으로 여섯 번 더 보시겠다니, 그때는 다른 게 보일지도...


희선

새파랑 2022-07-28 07:01   좋아요 2 | URL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뭐 이런 자체 결론을 내렸습니다. 책이 어려워서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읽을수록 빠져듭니다 ㅋ

모나리자 2022-07-28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세요! 열번을 채우시겠다니요!
정말 간결한 문장으로 된 작품인가봐요.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2-07-28 11:55   좋아요 2 | URL
얇아서 20분이면 읽습니다 ㅋ 출근길에 한번씩 읽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

mini74 2022-07-29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딱 필요한 문장만 담긴 소설이라...거기다 사랑의 부재는 죽음이라니....전 여름비랑 연인 읽었어요. 새파랑님이 아우라가 느껴진다니 궁금해요~

새파랑 2022-07-29 17:56   좋아요 1 | URL
연인보다는 여름비에 가까운 스타일입니다 ㅋ 난해하긴 합니다만 매력적입니다. 어렵지만 끌리는 추상화를 보는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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