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87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사링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거기에 어떤 합리적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일단 마음에 들어왔다면, 연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인 <노르망디의 연>은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결된 사랑의 서사시이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핵심은 남여간의 사랑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노르망디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부모님을 여윈 소년 ˝뤼도 플뢰리˝는 삼촌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데, 삼촌의 직업은 우체부이지만, 그 지역에서는 연(Kite)의 장인(또는 미치광이)으로 알려져 있다. 삼촌은 각양각색의 연을 만들어 하늘에 날린다. 삼촌이 연을 통해 날리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사람으로 여겼다는 거냐. 생각해보거라. 그 멋진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옳아. 한 평생을 연에 바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광기가 있는 게 분명해. 다만 해석이 문제 될 뿐이지. 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 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P.18



그러던 어느날 숲에서 한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던 ˝뤼도 플뢰리˝는 금발의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로, 폴란드 귀족의 딸이었다. 단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 ˝뤼도˝, 하지만 첫 만남 이후 ˝릴리˝는 폴란드로 돌아가고, 몇년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다.

[6월 중순에 배가 잔뜩 불러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샛노란 금발의 소녀가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뭇가지 아래엔 응달과 양달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내 눈엔 이 명암의 유희가 릴라 주위에서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이유도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동적인 순간에 나는 어떻게 보면 예고를 받은 셈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떤 내적 힘인지 약점인지 모를 뭔가에 이끌려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리라는 건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였다. 그 엄격한 금발의 환영에게 딸기 한 줌을 내밀었던 것이다.]  P.25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는데, 주인공의 혈통인 ˝플뢰리˝ 집안은  대대로 기억력이 엄청 좋아서 과거의 일을 현재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릴리˝를 볼 수 없었지만 ˝뤼도˝는 그녀를 마치 옆에 있는것처럼 느낀다. 매일매일 그의 앞에 찾아오는 그녀, 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그녀. 이것도 병인걸까? 하지만 그런 좋았던 기억을 박제할 수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는 공부를 했고, 작업실에서 나의 후견인을 도왔다. 하지만 흰옷 차림으로 손에 밀짚모자를 든 금발의 소녀가 내 곁에 찾아오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에르비에 선생님이 아주 정확히 말했듯이 이건 분명히 ˝기억력 과잉˝이었다.]  P.27

[내가 ˝나의 귀여운 폴란드 여자˝라고 부르던 그 애를 보지 못한지 거의 4년이나 되었지만 내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애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아주 섬세했고, 움직일 때마다 조화로운 생동감이 느껴졌다.]  P.32



4년이 지났지만 ˝뤼도˝는 여전히 그리워하며,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숲으로 간다. 그리고 눈을 감고 환상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실제의 ˝릴리˝가 있었다. 믿어지지 않은 일, 하지만 매일매일 그녀를 기억속에서 봤기 때문인지 지금의 재화가 마치 어제 일처럼 낯설지 않았다.

[4년 전부터 나를 기다린 것 같네………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설탕도 잊지 않았네!  /  난 절대 아무것도 잊지 않아. /  나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잊는데 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아..]  P.33



이후 ˝뤼도˝와 ˝릴리˝는 연인이 된다. 꿈 많고 경쾌한 귀족집안의 ˝릴리˝에 반해, 부모 없이 가난하게 자란 ˝뤼도˝는 그녀에게 썩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집착에 가까운 ˝뤼도˝에 비해 ˝릴리˝의 사랑은 강도는 약했지만, 그녀 역시 ˝뤼도˝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의 불균형은 한쪽을 애타게만 할 뿐이다.

[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나는 너의 절반이 되고 싶지 않아. 너, 이 끔찍한 표현 알아?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나?˝ ˝나의 반쪽을 못 보셨나요?˝. 5년, 10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심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너를 보면 심장에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벨소리밖에 못 듣겠지….]  P.152



그러던 중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릴리˝의 집안은 전쟁의 포화속에서 소식이 끊기게 되고, ˝뤼도˝는 그녀의 소식을 여기저기 찾아 해맨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잘 버텨내야만 했고, 릴라도 내게 그러길 요구했다.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P.180



노르망디 역시 독일의 지배하게 들어가게 되고, ˝뤼도˝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한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신성한 일에 몰두하면서도 언젠가는 그녀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과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났을 때는 그시절의 모습과 감정이 남아있을까?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P.162

[-네가 계속 나를 잊는다면 끝이 될 거야, 뤼도, 끝이라고, 네가 나를 잊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 거야.
-난 너를 잊지 않아. 너를 감추는 것뿐이야. 너도, 타드도, 브뤼노도 난 잊지 않아. 너도 알잖아. 독일 군인들에게 자기 삶의 이유를 들킬 때가 아니라는 것. 저들은 그런 걸로 사람들을 총살하고 있어
- 아주 자신만만하고 아주 평온해졌구나. 자주 웃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
-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어쩔 거야?]  P.270





로맹 가리의 <노르망디의 연>은 2차세계대전 이라는 암울한 비극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리를 통해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는 프랑스인도 나오고, 전직 포주이지만 귀부인으로 변신하여 독일군의 첩보를 빼내는 프랑스인도 나오며, 히틀러의 악행을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실행하는 독일인까지 그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아간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모든 걸 파괴하지만, 그럼에도 추락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정의, 자존심, 연민, 그리고 사랑... 로맹 가리가 ‘노르망디의 연‘을 통해 하늘로 띄우고자 했던건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까? 전쟁은 참혹하지만 인간은 절대 참혹하지 않다. 그리고 로맹가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다.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Ps 1. <노르망디의 연>은 크게 ‘뤼도와 릴리의 만남과 이별‘,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독일군의 몰락‘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 책에서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상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뤼도와 릴리‘ 이야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리뷰도 이걸 위주로 써봤다.


Ps 2. 이 책은 여러모로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장편소설인 <유럽의 교육>과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전쟁속에서 피어나는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노르망디의 연>이 좀 더 사랑에 치우쳐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노르망디의 연>이 더 좋았다.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 사랑은 절대 뺄 수 없는 소재인것 같다.


Ps 3. 지금까지 읽은 나만의 로맹가리 Top 3
1. 노르망디의 연
2. 새벽의 약속
3.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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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05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군요.
새벽의 약속 새파랑님 강추로 사놨는데 이 책도 보이면 사야겠습니다. 근데 저는 사랑은 별로라...😅😅

새파랑 2022-07-05 08:05   좋아요 1 | URL
다행히 이 책은 품절이라고 합니다~!!! 전 중고로 구매 ㅋ
사랑이야기보다는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주류고 더 재미있습니다 ㅋㅋ 새벽의 약속은 좀 감동이고 이 책은 좀 애틋함?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중고에서 보이면 냉큼 구매하세요 ^^

청아 2022-07-05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프사 바뀌셨네요? ^^
p.277도 그렇고 멋진 말들이
많이 담긴 소설이군요?! 품절이라니 미리 사두길 잘했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2-07-05 11:35   좋아요 1 | URL
역시 책부자 미미님은 가지고 이미 가지고 있으시군요 ㅋ 프사는 너무 더워서 바꿔봤습니다 ^^ 좋은 문장이 많더라구요 ㅋ

바람돌이 2022-07-05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마다 최애작이 갱신되다니 역시 로맹가리가 대단한거겠죠?
노르망디의 연도 킵해놓습니다. ^^

새파랑 2022-07-05 16:51   좋아요 0 | URL
제 스타일은 에밀 졸라보다는 로맹 가리 인거 같습니다 ^^

그레이스 2022-07-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도 많이 읽으셨죠?
새로 읽은 책이 계속 1위 탈환을 하는군요^^
저는 collection 인 상태 그대로예요.

2022-07-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6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7-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작품 중 1번, 당연 읽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불행하기는 하지만 또 그런 시절에도 사람들이 살아내는 걸 보면 인간의 힘이 위대한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7-07 08:37   좋아요 1 | URL
로맹가리 본인이 2차세계대전에서 드라마틱하게 활약해서인지 이야기가 더 진실되게 느껴지더라구요. 역시 로맹가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

희선 2022-07-07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본 걸 잊지 않는다니 부럽네요 책읽기에 아주 좋은 재주군요 한번 보고 기억하고 다시 만났는데 전쟁이 일어나서 슬펐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은 살아가기도 하는군요 사랑이 있기에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7-07 08:38   좋아요 0 | URL
사랑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 기억력이 너무 좋은것도 안좋은거 같아요. 잊어야 할건 좀 잊어야 하는데 ㅎㅎ

페크pek0501 2022-07-07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봅니다. 희망이 있는 동안은 살만 하거든요. 어젠가 실망할지라도...

277쪽의 표현이 좋네요.^^

새파랑 2022-07-07 18:14   좋아요 2 | URL
전 로맹가리의 저런 감성적인 문장이 너무 좋더라구요 ㅋ 가능성은 낮더라도 미약하나마 희망이 있는게 좋겠죠? ^^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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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로스의 작품은 80퍼센트 이상 좋지만 가장 추천하고픈 시리즈는 미국 삼부작이고,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미국의 목가>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But 이 책은 절대 오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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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7-05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100자평 짱입니다^^👍👍

새파랑 2022-07-05 06:25   좋아요 2 | URL
^^ 이 책에서 저 문장이 젤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아 2022-07-05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영화로 먼저 봤는데 감동적이었어요.ㅠㅠ 소설을 꼭 읽어야겠습니다. (영화 보다 더
자세할것 같아 기대^^)

새파랑 2022-07-05 11:24   좋아요 3 | URL
이 책 영화도 있군요 ㅋ 역시 영화도 광 미미님~!! 이 책은 필립 로스 중 그나마 순한맛(?) 입니다~!!

페넬로페 2022-07-05 13:53   좋아요 2 | URL
미미님,
영화제목이 소설제목이랑 똑같은가요?
아메리칸 패스토럴?

청아 2022-07-05 13:57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영화 제목은 <아메리칸 패스토럴>이예요!!

그레이스 2022-07-05 20:31   좋아요 2 | URL
예!
영화도 같은 이름요
나름 잘 만들었어요
어두운 부분이 있긴한데...

바람돌이 2022-07-05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봤는데 필립로스가 미국 3부작이 좋군요. 미국 3부작 중에서는 휴먼 스테인 읽었는데 좋았습니다. 미국의 목가도 이렇게 멋진 100자평이니 꼭 읽어야겟네요. ^^

새파랑 2022-07-06 06:40   좋아요 0 | URL
휴먼스테인이랑 미국의 목가랑 둘다 좋았던거 같아요 ㅋ 그냥 썼는데 멋진 100자평이라니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5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립로스는 미국의 목가!

새파랑 2022-07-06 06:4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필립로스는 장편도 좋고 중편(?)도 좋습니다~!!
 

로맹 가리의 명작 중 하나이지 않을까?


릴라는 흰 반코트를 입고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팔에 책 몇권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미소 띤 채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 안녕, 뤼도 다시 보게 되어 기뻐. 그렇잖아도 너를 찾아가려던 참이야. 어떻게 지내?

나는 벙어리처럼 묵묵히 있었다. 이번에는 내 안에서 경악 같은 것이 올라오더니 두려움으로, 그리고 공포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 P294

저런 네가 그 애를 너무 만들어낸 거야. 4년 동안의 부재는 상상에 너무나 큰 몫을 남기지. 꿈이 땅에 닿을 땐 늘 충격이 생기는 법이야. 생각이 몸을 갖게 되면 제 모습을 닮지 않게 되지. 프랑스를 되찾게 될 때면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 몰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이건 진짜 프랑스가 아니야. 다른 프랑스야!‘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너무 많이 안겼어. 그들이 떠나고 나면 재회는 잔인할 게다. 그렇지만 네가 그 애를 다시 찾게 될 거라고 뭔가가 내게 말해주는구나. - P298

사랑에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 너는 네 기억으로 살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상으로 산거야. - P298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 P362

릴라가 다시 나의 비밀스러운 삶에 함께 살게 된 것이 이제 두달 남짓 된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고 일부러 자지 않았는데, 신경쇠약 상태가 그녀가 나타나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밤 그녀를 불러낼 수 있었다. - P370

릴라는 분수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삭발된 채였다. 손에이발기를 든 미용사 시노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살짝 물러나서 자기 작품에 감탄하고 있었다. 릴라는 여름 원피스 차림으로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몇 초 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내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부짖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시노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릴라를 품에 안고 군중을 헤치고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이미 행해졌고, 이루어진 뒤였다. 사람들은 ‘어린 여자‘에게 점령군과 함께한 잠자리의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훗날 이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끔찍한 짓거리 너머로 남은 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그 모든 친근한 얼굴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흉측했다. - P410

이 이야기를 마침내 끝내려 한다.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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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7-0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새파랑님 이 책 완독 하 신 후

눈물이 가득!^^
.·´¯`(>▂<)´¯`·.

새파랑 2022-07-04 00:00   좋아요 1 | URL
눈물을 한가득 품고 리뷰를 쓰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리뷰 쓰는걸 잠시 접었습니다 ㅜㅜ
 

좀 뒷북으로 쓰는 구매 페이퍼.


6월달 책읽기는 역대 가장 부진했다. 책 읽는것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책을 못읽은 날이 절반이 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안읽어도 구매는 했다...
6월 1차 구매한 책이 8권이었는데, 이후에 구매한 책이 17권이다. 1Q84 문고판이 여섯권이긴 하지만. 간략히 코멘트를 해보자면,



1~6. 무라카미 하루키 : 1Q84 문고본

이미 1Q84 세권짜리 세트랑  합본특별판 이렇게 두 종류를 가지고 있지만, 지름신이 강림하여 사버렸다. 벌써 세번은 읽은거 같은데 이번에는 문고본으로 다시 읽어봐야 겠다. 가방에 1권을 계속 넣고 다니는데 아직 10페이지(?) 밖에 못읽었다.


7. 다니자키 준이치로 : 소년

이미 읽은 책. 슌킨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이 책을 동네서점에서 구매했는데, 방향(?)이 좀 상반되긴 하지만 재미있었다. 임팩트 측면에서는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강했다. 그러나...


8. 다니자키 준이치로 : 요시노 구즈

동일 작가의 책을 연속해서 읽어서 일까? 이 책은 조금 읽다가 포기하고 방치중이다. 일단 한문이 너무 많고 용어가 낯설어서 잘 안읽혔다. 혹시나 해서 리뷰를 찾아보니 이 책을 읽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좀 더 대중(?) 적인 준이치로의 책을 먼저 읽어야겠다.


9.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작가의 성향(?)이 마음에 안들어 접어두었다가 준이치로 덕분에 구매한 책.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든다.


10~11. 다니자키 준이치로 : 세실

그래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 중 가장 인기가 많은게 이 책인거 같은데...분량의 압박이 있지만 표지부터 재미있어 보인다.


12. 코맥 매카시 : 더 로드

코맥 매카시의 작품은 아직 접하기 전인데, 호불호가 좀 갈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구매해봤다.


13. 헤르만 헤세 :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지금까지 읽은 헤세 책들 중 실망스러운 책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평가도 너무 좋길래 새책이지만 구매했다. 표지부터 완벽하다.


14. 다니자키 준이치로 : 만, 시계모토 소장의 어머니

또 준이치로다. 특정 작가 책을 몰아서 보는걸 추천하지 않던데, 몰아서 사는건 괜찮은거 같다. 이것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던데...


15.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오래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 최상급의 중고가 없어서 구매를 미뤘다가 이번에 드디어 구매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일련번호가 무려 4번이다.(안나 카레니나 다음.)  그래서 완전 기대된다. 인생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16. 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미니님이 전반기 가장 좋았던 책이라고 하니 덥썩 구매했다. 과연 얼마나 좋길래? 기대가 된다.


17. 보들레르 : 우울의 고백

(사진에는 없지만...) 이미 읽고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쓴 책. 요즘 우울해서 인지 읽으면서 치료가 되는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 <악의 꽃> 사러 우주점에 왔는데 없더라는...




쓰고 보니 17권의 책 중 일본 작가의 책이 무려 13권이다. 이번달에는 진짜 책을 조금만 사야겠다.

Ps. 오늘 우주점 가서 럭키백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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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02 11: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읽지 않아도 산다.
저도 이틀 전에 멀리까지 원정 가서
질렀습니다.
쿨럭.

새파랑 2022-07-02 11:16   좋아요 6 | URL
일단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겠죠? ㅋ 이번달에는 좀 분발해 보겠습니다 ^^

2022-07-02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2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7-02 11: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은 일관된 소설 사랑이 아름다운 차트네요 ㅋㅋㅋ뭔가 일부러 맞춰 사신 듯 가지런함 ㅋㅋㅋㅋ

새파랑 2022-07-02 13:58   좋아요 5 | URL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 제가 가지런한걸 좋아합니다~!!

모나리자 2022-07-02 12: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역시 대단하세요~
꾸준한 구매와 구매 대금도 대단하시군요.
영미소설이 1위! 과연 소설 전문 리뷰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도 알찬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2-07-02 13:59   좋아요 3 | URL
소설 좋아하지만 전문 리뷰어 라고 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 아직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파트 저층입니다 ㅋ 오늘 엄청 덥네요 ㅜㅜ

scott 2022-07-02 12: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광활점 책 포장 상태 보다 새파랑님의 상자 속 책정리가 더 뛰어나 보입니다👍👍👍👍

새파랑 2022-07-02 14:00   좋아요 3 | URL
알라딘 우주점에 취직시켜 주면 잘할 수 있습니다~!!

독서괭 2022-07-02 13: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특정 작가 책을 몰아서 보는 걸 추천하지 않지만 몰아서 사는 건 괜찮다는 말씀에 🤣🤣🤣
새파랑님은 하루키 찐 팬이시네요!
제가 이 중 읽은 건 판탈레온 뿐이군요. 재밌습니다.
새파랑님은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책 높이가 높아질 듯요~^^

새파랑 2022-07-02 14:02   좋아요 4 | URL
판탈레온 재미있나보네요 ㅋ 곧 읽어보겠습니다~!! 일단 책 높이가 높아지기 전에 집부터 옮겨야 겠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07-02 15: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Q84 문고본도 있었군요. 새파랑님 세번이나 읽었다니 읽어보고 싶네요. 하루키와 일본작가 사랑이 넘치는 페이퍼네요~!

새파랑 2022-07-02 15:10   좋아요 4 | URL
아직 안읽으셨다면 추천합니다 ^^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파이버 2022-07-02 16: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6월에 날씨도 안좋아서 저도 역대급으로 읽기도 운동도 건너뛰었어요ㅜㅜ 몰랐는데 1Q84 문고판이 있었군요 6권이라니 ㅎㄷㄷ 합니다

새파랑 2022-07-02 16:59   좋아요 4 | URL
7월은 더 걱정입니다. 날씨도 덥고 ㅜㅜ 문고판 한손에 들어오고 딱 좋습니다~!!

서니데이 2022-07-02 18: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저 기록을 보고 나면, 책을 조금이라도 덜 사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요.
매년 보는 거지만, 그 때는 반성하게 되지만
그리고 조금 지나면 익숙한 소비습관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님, 주말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다음주까지 더울 것 같아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7-02 22:45   좋아요 4 | URL
저는 책사고 커피 마시는거 빼고는 돈을 별로 안써서(과연?) 그래도 괘안은거 같습니다 ㅋ 오늘 운동 나갔다가 더워서 죽을뻔했네요 😅 내일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페넬로페 2022-07-02 18: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Q84가 문고판이 있군요.
이번엔 일본작가의 작품이 압도적이네요.
요즘 새파랑님 엄청 바쁘신가봐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길 바래요~~
책읽기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새파랑 2022-07-02 22:47   좋아요 4 | URL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ㅜㅜ 시간이 없다보니 리뷰를 쓰기보다는 책읽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책읽을 시간도 별로 없네요 ㅋ 여름에는 일본작가~!!

singri 2022-07-02 19: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더로드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2-07-02 22:47   좋아요 2 | URL
일단 출퇴근(?) 가방에 더 로드를 넣었는데 아직 표지만 읽어봤어요 ㅜㅜ

그레이스 2022-07-02 20: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4권 빼고 다 있네요
1Q84가 6권으로 분철되서
나왔나요?@@
전 우주점이 가깝지 않아서, 럭키백 패스!

새파랑 2022-07-02 22:49   좋아요 4 | URL
역시 피해갈수 없는 그레이스님이군요~!! 1Q84 문고본 중고로도 많습니다 ㅋ 저도 우주점이 집앞에 있는건 아닌데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한번씩 가요 ^^

희선 2022-07-03 0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월이 가고 칠월이 왔네요 지난달에 사신 책이군요 바로 못 봐도 사두면 언젠가 보겠지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을 많이 사셨군요 여름에도 책을 읽으면 좋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저도 별로 못 보네요 뭐 하고 사는 건지...

새파랑 님 칠월엔 읽고 싶은 책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희선

새파랑 2022-07-03 12:07   좋아요 4 | URL
6월에는 희선님이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거 같아요~!! 7월에는 함께 분발하시죠 ^^

Kletos 2022-07-03 1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에는 책읽기가 너무 힘드네요 ㅎㅎ 새파랑님 글 보고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와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함께 화이팅입니다-!

새파랑 2022-07-03 13:48   좋아요 2 | URL
여름보다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거 같아요 ^^
다 비슷한가 봅니다~!! 그래도 kletos님 7월억 화이팅 입니다~!!

바람돌이 2022-07-03 15: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문학대장 새파랑님! 저는 요즘 부쩍 문학이 너무 좋아지는 중입니다. 새파랑님 따라서 저도 열심히 문학읽기!! ^^

새파랑 2022-07-03 19:30   좋아요 2 | URL
절 문학대장이라고 하시기엔... 좀 부끄럽네요 😅 전 아직 멀었습니다~!!!

coolcat329 2022-07-04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판탈레온 킥킥~거리며 읽었는데 새파랑님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금각사는 샀다가 안 읽고 팔았는데 읽을걸 그랬습니다. ㅠ

새파랑 2022-07-06 08:32   좋아요 1 | URL
판탈레온은 좀 재미있는 책인가보네요 ^^ 준이치로는 작품별로 좀 차이가 크더라구요 ㅎㅎ

mini74 2022-07-04 0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문고판 넘 귀엽습니다 ㅎㅎ 모래의 여자 ㅠㅠ전 좋았는데 두근두근 ㅎㅎ 금각사 저 사 놓고 반쯤 읽은듯 합니다. ~~

새파랑 2022-07-06 08:33   좋아요 1 | URL
문고판 자간이랑 줄간격이 좀 작아서 그렇게 읽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ㅋ 오늘은 모래의 여자를 읽어볼까 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7-07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중 제가 읽은 책은 9번과 14번 책입니다.
14번의 <만>은 야한 책으로 기업합니다.삼각관계의 사랑...^^

새파랑 2022-07-07 18:18   좋아요 2 | URL
둘다 좋다고 하던데 페크님도 읽으셨군요 ^^ 기대가 됩니다 ㅋ <만>을 먼저 읽어야 겠군요~!!
 

너무너무 좋다.


때로는 눈을 뜬 채 사랑하려고 해보았지만 언제나 감게 되었다. 시각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해서 내 감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릴라는 내게서 살짝 떨어져 엄격함이 가시지 않은 눈길로 내 얼굴을 훑었다. - P131

나는 그녀의 고독을, 그녀가 나 없이 걷는 산책로를,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가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을 질투했다. 이제 나는 내 지나친 요구와 전제적인 폭압을 비웃을 줄 알았다. 내 삶의 이유에게도 이따금 나를 떠날 권리를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심지어 고독과 더불어, 수평선과 더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흰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키 큰 식물들과 더불어 나를 배반할 권리까지도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 P136

"자기 연이 파랑을 좇아 달아나는 걸 막으려면 연줄을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는 조언 말이다. 나는 너무 높은 곳을 너무 먼 곳을 꿈꾸었다. 내가 살아야 할 것은 내 삶이지 릴라의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붙들어 맨다고 답이 아니다.) - P137

나는 용기와 열의를 갖고 실습에 임했다. 더는 릴라를 찾아 숲으로 가지 않았고, 그녀의 부재가 길어지면 나를 덮쳐오는 무가치와 무의미의 감정에 맞서 싸웠다. ‘점점 더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는 걸 거의 즐기게 되었고, 더 웃으려고 내가 난쟁이가 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기 까지 했다. - P137

- 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나는 너의 절반이 되고 싶지 않아. 너, 이 끔찍한 표현 알아?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나?" "나의 반쪽을 못 보셨나요?". 5년, 10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심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너를 보면 심장에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벨소리밖에 못 듣겠지….

(이런 문장은 로맹가리밖에 못쓴다.) - P152

그런 비열한 짓을 생각할 수 있는 건 나치뿐이야. 릴라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용납할 수가 없겠지. 그녀와 내가 평생 가리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 그래서 모든 나치들처럼 너한테도 유대인이 필요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 물건들을 훔쳐내 벽장 속에 넣은 거고. 그런데 네 형편없는 계산은 어리석어. 행여 내가 너절한 놈이더라도 릴라는 계속 나를 사랑할 거야.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 P161

내 기억은 매 순간을 포착해 따로 두었다. 이런 걸 우리 집안에서는 비밀 장소라는 뜻으로 "양말 속에 둔다고 한다. 거기엔 한평생을 견디게 해줄 만큼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었다. - P169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이 책을 요약하는 문장~!) - P172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잘 버텨내야만 했고, 릴라도 내게 그러길 요구했다.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P180

나는 다른 프랑스인들도 나처럼 기억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이 자리에 없어 영원히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도 우리가 노력하면 살아서 현존할 수 있다는 걸 체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했다. - P207

너처럼 오로지 기억으로만 사는 사람이 딱 둘이야. 런던의 드골과 클로 졸리의 뒤프라. - P254

-네가 계속 나를 잊는다면 끝이 될 거야, 뤼도 끝이라고, 네가 나를 잊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 거야.
-난 너를 잊지 않아. 너를 감추는 것뿐이야. 너도, 타드도, 브뤼노도 난 잊지 않아. 너도 알잖아. 독일 군인들에게 자기 삶의 이유를 들킬 때가 아니라는 것. 저들은 그런 걸로 사람들을 총살하고 있어
- 아주 자신만만하고 아주 평온해졌구나. 자주 웃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
-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어쩔 거야? - P270

상상의 작품이 아닌 건 살아볼 가치가 없어. 상상 없이는 바다도 한낱 짠물일 뿐일테니까………… 이를테면, 50년째 나는 내 아내를 줄곧 지어내고 있어. 난 아내가 늙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 그녀에겐 결점이 분명 많겠지만 그걸 나는 장점으로 바꾸었어. 그리고 내 아내의 눈엔 나도 특별한 남자지. 아내도 나를 지어내길 그만둔 적이 없거든. 함께 50년을 살면서 우리는 서로 보지 않고서 서로를 지어내고, 매일 서로를 다시 지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어. 물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놓지 말아야 하지. 하지만 그건 그 현실의 목을 제대로 조르려고 붙드는 거야. 더구나 문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목을 계속해서 비트는 방식일 뿐이지……. - P274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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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7-04 2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프로필 사진
노르망디 연 표지색!ㅎㅎ

새파랑 2022-07-04 22:20   좋아요 3 | URL
ㅋ 요책이랑 맞춰서 바꿔봤습니다 ㅎㅎ 사진은 오아시스 앨범 표지를 따왔습니다 ^^

mini74 2022-07-04 2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좋다에서 눌러보니 품절 ㅠㅠ 이군요 ㅎㅎ

새파랑 2022-07-04 22:21   좋아요 2 | URL
헐 품절이네요 ㅜㅜ
저 이거 들고다니다 떨어뜨려서 모서리가 손상되서 다시 사야하나 생각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