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역시 좋다. 왜 그렇게 원망의 말을 안했는지 답답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우울한 기분이 이 책을 읽고 더 우울해졌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해온 모든 것이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린 듯한 공허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해온 것은 모두 헛고생이 되고 의도한 일은 모두 무의미해지며 신앙했던 것은 사실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눈앞에 들이대진 것 같았다. 그때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보다 더 큰 홍소가 울려 퍼졌다. - P338

하지만 조금 전과 지금은 모든 것이 근본에서부터 다르다. 일본은 기리시탄 금지로 들어선 것이다. 금지로 돌아섰다는 것은 멕시코와의 통상도 버렸다는 뜻이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소임도, 여행도 모두 헛되고 무의미하게 변했다는 뜻이다. - P348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 P348

우리는 함께 좌절한 자였다. 불확실한 샘을 찾아 오늘도 내일도 사막을 여행하는 유랑민과 비슷했다.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아도 그들은 믿고 있던 영주와 평정소에 배신당했다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내가 꿈꾸는 것을 주님이 버린 고통을 맛보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배신당한 자와 버림받은 자 사이에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듯한 우정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353

사령관은 목이 쉰 나의 중얼거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다나카에게 자살이라는 큰 죄를 범하게 했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나의 오만한 계획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다나카를 벌한다면 나야말로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주여, 그의 영혼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에게 그 죄에 대한 벌을 물어주십시오.‘ - P410

그때 그는 세계가 이렇게 넓을 줄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넓은 세계를 본 후에는 그저 피로만 남고 지금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지쳐 있다. - P413

그 미지의 운명, 그것을 끝내고 마침내 돌아왔다. 기쁨도 없고, 공허한 기분과 피로감만 남아 있는 건 왜일까. 너무 많은 것을 봤기 때문에 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일까. 너무 많은 것을 맛보았기 때문에 맛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일까. - P432

세계는 넓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P456

"자네는 정치의 변화에 운 없이 휩쓸린 거야." 귓가에는 조금 전에 이시다가 한 말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원통하겠지. 자네의 원통함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네."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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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09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께 엔도 슈사쿠 두권 땡투했어요👍👍안 읽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새파랑 2022-06-09 23:14   좋아요 1 | URL
앗 ㅋ 저도 플친님 리뷰보고 구매했어요~ ㅋ 북플의 순기능(?) 인거 같아요 ^^
역시 책부자 미미님 감사합니다~!! 전 요새 중고 삼매경이여서 땡투가 별로 없네요 😅
 

엔도 슈사쿠는 정말 대단한것 같다.


포교도 외교처럼 술책을 부리고 흥정을 하고 위협을 하고 때로는 타협도 해야 한다. 나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러는 것이 꼭 꺼림칙하고 지저분한 행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포교를 위해서라면 눈을 감아야 하는 일도 있다. 이곳 멕시코에서도 1519년에 정복자 코르테스가 상륙하여 소수의 병사로 무수한 인디오를 잡아 죽였다. 그 행위가 하느님의 가르침에서 볼 때 옳은 행위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디오가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그 야만스러운 풍습에서 구원받아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악마의 풍습에 빠져 사는 인디오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지, 다소의 악에 눈을 감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전할지는 아무도 경솔하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 P176

"신부님들의 진정한 행복이란 게 일본에는 지나치게 독합니다. 강한 약은 어떤 사람의 몸에는 독으로 변합니다. 신부님이 말하는 더없는 행복은 일본에 그런 독입니다. 멕시코로 와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 멕시코도 스페인 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조용히 살았을 텐데 말이지요. 신부님들의 더없는 행복이 이 나라를 흐트러트렸습니다." - P207

"많은 인디오의 고통을 잊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은 모르는 체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체하며 진심인 듯한 말투로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역겨웠습니다. 이 나라 신부님들의 입술에서는 늘 아름다운 말만 나옵니다. 신부님들의 손은 절대 흙으로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 P224

그러고 나서도 두 번이나 더 계절풍에 의한 폭풍을 만나고 드디어 조국 스페인의 산루카르항을 멀리서 바라본 것은 베라쿠르스를 떠난 지 열달 만이었다. - P258

‘만약 내가 이런 자에게 배례하면.… 골짜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자 마음속에 그런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복받쳤다. 그는 숙부처럼 부처님을 마음속 깊이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절에서 참배할 때면 아름다운 불상에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신사 앞에 서면 합장할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고 볼품없는 사내에게서는 거룩함도 고귀함도 느낄 수 없었다. - P302

"그들의 감성은 늘 자연적인 차원에 그쳐서 결코 그 이상 비약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차원 안에서 그 감성은 놀랄만큼 미묘하고 치밀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감성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인은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의 하느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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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9

˝이봐요, 이 집이건 저 집이건 집구석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요즘은 이 집 것들이나 저 집 것들이나 매일반이라니까. 돼지같은 족속들이지 뭐.˝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열번째 작품인 <집구석들>은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너무 막장이어서 그런지 뭔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목로주점>이 서민의 삶을, <대지>가 농민의 삶을, <나나>가 화류계의 삶을, <제르미날>이 광부의 삶을 그렸다면, <집구석들>은 ˝옥타브 무레˝를 중심으로 중산층의 탐욕적인 삶을 그린다.

[˝작가들은 과장이 심해요. 제대로 교육받은 계층에서는 불륜이란 아주 드문 일이거든요. 좋은 가문 출신의 여자는 마음이 고결하기 마련이죠.˝]  P.149



집주인, 다양한 계층의 세입자, 하인들이 모여사는 슈아줼 거리의 이 아파트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있지만 이중에 정상적인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 무언가에 미쳐 있다. 돈에 미쳐있고, 욕정에 미쳐있으며, 체면에 미쳐있다. 주인들은 하인들을 저급하다고 무시하지만, 하인들은 주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앞에서는 못본 척 하면서도 뒤에서는 마구 배설한다.

[한편 리자는 베르뜨와 옥 따브 얘기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그들이 간통의 불미스러운 진상을 숨기려고 써먹은 거짓말들을 들추어냈다. 그들 둘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눈을 딴 데로 돌리지도 못하고 마주 보며 그대로 있었다. 그들의 손은 차갑게 식어갔고 하인들의 증오 속에 백일하에 드러난 그동안의 관계의 오욕을, 그 약점을 그들의 눈은 자인하고 있었다. 상한 고기와 시금털털한 채소가 비 오듯 쏟아지는 그 밑에서 이렇게 간통죄를 범하는 것, 그것이 자기네들의 연애라니!]  P.418



서로 속고 속이며 돈으로 서로를 매수하고, 거짓말이 난무하는 집구석들 속에서 살게된다면 순수한 사람도 타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 과연 이걸 인간의 본성으로 봐야하는 걸까? 아니면 <집구석들>의 내용이 너무 극단적인걸까? <집구석들>은 자연주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막장드라마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Ps1. 이후 출판되는 루공마카르 총서 열한번째 작품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는 <집구석들>의 주인공인 ˝옥타브 무레˝가 다시 등장하는데, <집구석들>에서 처럼 찌질하지는 않고 백화점 사장으로 변신해서 그나마(?) 낭만적인 사랑을 한다.


Ps2. 개인적인 감상으로 <집구석들>은 <인간 짐승>이나 <목로 주점>급은 아닌 것 같고, 내용이나 재미 측면에서는 <대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희곡을 읽는 기분? 역시 막장이 읽는 재미가 있다.


Ps3. 다음번에는 에밀졸라의 또다른 대표작 <제르미날>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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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07 2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막장 드라마 보는 것도 말리는 편인데
소설은 재밌을것 같아요.새파랑님의 리뷰를
참고로 각오하고 읽어야겠습니다.^^*
와 다음에 드디어 제르미날 도전하시는군요👍

새파랑 2022-06-07 20:46   좋아요 2 | URL
퇴근 후에 리뷰를 열심히 쓰려고 하다가 <사무라이>가 읽고 싶어서 금방 썼어요 ㅋ
구매한건 <제르미날>을 더 먼저 했는데, 미미님 리뷰보고 내용을 대충 알아서 인지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

페넬로페 2022-06-07 20: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집구석들이 여러 집안의 얘기인가 봐요~~
욕심내고, 욕망을 좇다보면 인간은 더 질주하는데 이런 얘기들도 읽기 쉽지 않을듯요~~
새파랑님, 루공마카르도 끝이 보이네요^^

새파랑 2022-06-07 20:48   좋아요 3 | URL
그래서 ‘집구석‘이 아니라 ‘집구석들‘ 이더라구요 ㅋ 읽는건 재미있어서 금방 읽어지던데 밑줄을 그을만한게 별로 없더라구요 ㅋ

많이 읽은것 같은데 세어보니 아직 절반도 못읽은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6-07 2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졸라 도장 깨기네요. 19세기의 막장은 어떤지 관심이 막 갑니다. ^^
제르미날은 옛날에 영화로 봤는데 책은 어떨지 제가 막 기대되네요.

새파랑 2022-06-07 21:40   좋아요 2 | URL
저 루공마카르 20편중 이제 7편 읽었어요 ㅋ 아직 도장 깨기 까지는 아닌거 같아요 ㅎㅎ 프랑스소설을 좋아하긴 한데 요런 이야기는 공감은 잘 안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6-07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막장드라마 자극적이긴 한데 저는 지금 제가 사는 현실보다 막장은 없는 것 같아서ㅋㅋ 다양한 집구석 사람들을 경험하겠군요^^ㅎㅎ

새파랑 2022-06-07 21:48   좋아요 2 | URL
이 책에 써있는 집구석들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한것 같아요 ㅋ 갑자기 제가 이런 막장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런건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ㅋ

파이버 2022-06-07 2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막장 이야기라니 흥미진진하네요 새파랑님 벌써 에밀 졸라도 이만큼 많이 읽으셨군요0_0 멋지십니다!

새파랑 2022-06-07 23:36   좋아요 3 | URL
아직 에밀 졸라의 읽을 책이 많이 남아있답니다~!! 이 책 무슨 코메디 보는 느낌도 약간 듭니다. 사람들이 다 뻔뻔해요 ㅋㅋ

coolcat329 2022-06-07 2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휴 ㅋㅋ 저 이 책도 있는데요. 최고 막장이군요. 새 책으로 샀는데 ㅠㅠ

새파랑 2022-06-07 23:37   좋아요 3 | URL
저도 새책이에요. 근데 이야기는 재미있고 다른분들 평가도 좋아서 읽고 후회하시진 않을거 같아요~!! 쿨캣님 에밀 졸라 책 모으시는거 아니었나요? ^^

coolcat329 2022-06-08 07:51   좋아요 3 | URL
네 맞아요 ㅋ
근데 이 책 너무 막장이라시니 바로 읽을 것도 아닌데 중고로 천천히 사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ㅎㅎ

mini74 2022-06-08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 목소리가 왜 들리죠. 이노무 집구석 !! ㅎㅎㅎ 저 방금 도서관 갔다가 이 책 빌려왔어요 새파랑님~ 두껍네요. 읽다 결국 반납하고 사는 루틴을 반복할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ㅠㅠㅠ ㅎㅎ

새파랑 2022-06-08 12:29   좋아요 2 | URL
이책 자간도 좁고 페이지도 엄청나더라구요 ㅋ 나름 신간인데 빌리셨군요~!! 이놈의 집구석, 이놈의 집구석 ㅋ

독서괭 2022-06-08 13:06   좋아요 3 | URL
이노무 집구석 ㅎㅎㅎㅎㅎ

독서괭 2022-06-08 1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심하게 아름답지 못한 인간군상이군요! 재미는 있겠지만 읽다 한숨 나올 것 같아요 ㅎㅎ

새파랑 2022-06-08 14:00   좋아요 4 | URL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문란해서 이게 가능해? 이런 기분이 계속 들었습니다 ㅋ

물감 2022-06-08 2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밀졸라 다시 시작하셨나요?ㅎㅎ
중산층의 이야기라. 역시 기대가 됩니다! 졸라표 막장은 용서할수 있을거 같아요😀

새파랑 2022-06-08 22:10   좋아요 2 | URL
이 책은 물감님 왠지 좋아하실거 같아요~!! 재미있는 막장입니다 ㅋ 제가 못쓴 리뷰를 멋지게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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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좋아한다면 읽고 절대 실망하지 않을 작품. 일단 기차가 나오는 책은 다 좋지만 이 책은 특히 더 좋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여운을 많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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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07 0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왜 그 물에 잠겼다가 집에 돌아가게 되는 그 단편 너무 좋아하고요, 표제작도 좋아합니다. 크, 이 단편집 정말 좋죠.

새파랑 2022-06-07 08:3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이작가님 책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믿고 보는 이작가님 추천작 ^^ 마지막에 실려있는 <럼주차> 같습니다 ㅋ 오늘 저녁은 럼주 마시세요~!!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7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ㅅㅅ
장바구니에 또 넣어야겠네요ㅎㅎ
덕분에 또 좋은책
추천받아가요~~

새파랑 2022-06-07 10:03   좋아요 2 | URL
요 책 좋습니다. 후회하시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건수하 2022-06-07 0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넘 좋아서 빌려 읽었다가 장만을 했답니다. 그런데 장만하고는 안 읽어봤.. 책장에서 찾아봐야겠어요 ^^

새파랑 2022-06-07 10:04   좋아요 3 | URL
일단 구매하셨다면 시작이 반이니까 절반은 재독하신걸로~!! 저도 읽고 너무 좋아서 친구한테 선물도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2-06-07 0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책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찾아서
타이틀만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파랑 2022-06-07 10:04   좋아요 2 | URL
타이틀이 가장 좋지만 다른것도 좋더라구요. 그림도 마음에 들고 ^^

독서괭 2022-06-07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분명히 옛날에 사서 (안 읽고)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ㅜㅜ

새파랑 2022-06-07 13:54   좋아요 3 | URL
(안읽고)가 핵심이네요 ㅋ 이번달안에 찾아서 꼭 읽어주세요 ^^

독서괭 2022-06-08 13:36   좋아요 1 | URL
본가에 있다고 합니다 ㅋㅋㅋ 곧 제손에 들어올 예정!!

새파랑 2022-06-08 13:58   좋아요 1 | URL
혹시 본가가 알라딘 우주점 이신가요? ^^ 읽고 좋으셨으면 합니다~!!
 

정화가 된다. 아주 좋다. 망망대해에 남겨진 기분.






눈이 내렸다.
저물녘, 구름 사이로 자갈투성이인 강가에 연한 빛을 비추던 하늘이 어두워지자 사위가 돌연 고요해졌다. 두 송이, 세 송이 눈발이 흩날렸다. 눈은 나무를 베고 있는 사무라이와 하인들의 일옷을 스치고, 덧없는 목숨을 호소하듯 그들의 얼굴이나 손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인간들이 묵묵히 손도끼만 움직이고 있으니 이제는 그들을 무시하듯 이리저리 주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안개가 눈과 섞여 퍼지자 시야는 온통 잿빛이 되었다. - P7

"전쟁이 있으면 말이야, 전쟁만 있다면 공을 세워 땅도 늘릴 텐데." - P14

그는 또 요조와 함께 산기슭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낚시를 하러 가기도 한다. 늦가을, 갈대가 무성한 그 어두운 연못에서 갈색 물새에 섞여 목이 긴 백조 서너 마리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볼때가 있다. 백조들은 추위가 심한 먼 나라에서 바다를 건너 찾아온 것이다. 봄이 되면 철새는 다시 크게 날갯짓을 하며 골짜기의 하늘을 날아 떠나간다. 그 새를 바라볼 때마다 사무라이는 자신은 평생 가볼 수 없는 곳을 그들은 알고 있겠구나, 하고 문득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 P17

몸을 구부리고 대기실에 있는 가신들에게 인사하며 그는 일본인들이 결국 자력으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했다.

‘개미 같은 인종이다. 그들은 뭐든지 하려고 든다.

선교사는 이 순간 왠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일부가 자기 몸을 희생하여 다리가 됨으로써 동료를 건너게 하는 개미를 떠올렸다. 일본인은 그런 지혜를 가진 검은 개미떼다. - P36

하느님은 누구든 쓰시지만 일본인은 철저하게 도움이 되는 자만 쓴다. 일본인은 선교사가 이 계획에 유용하다고 생각했기에 일단 위협해두고 다시 살려주었을 것이다. 이것도 일본인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 P37

"에도에서의 포교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바울회가 일본인 신도와 계속 접촉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쇼군의 쓸데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머지않아 현재 선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있는 지역에까지 박해를 초래할 거라고 베드로회의 수도사들은 호소하고 있네." - P38

‘그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우리는 포교의 자유를 얻는다.‘ - P41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오는 것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을 체념하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44

그리고 선교사는 자신을 일본의 주교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자신의 야심을 부끄러워했지만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 타일렀다. 나는 사욕으로 지위를 얻고자 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기리시탄을 금하려는 이 나라에서 최후의 강력한 방어선을 치기 위해 주교의 지위가 필요한 것이라고 오직 나만이 이렇게 교활한 일본인들과 싸울 수 있다고. - P57

영주님이 오가쓰의 후미에서 큰 배를 건조하고 있는 건 알지? 그 배는 기슈로 밀려온 남만인들을 태우고 멕시코라는 먼 나라로 갈 거네. 어제 성 안에서 시라이시 님이 문득 자네 이름을 입에 담으시면서 영주님의 사절들 가운데 한명으로 멕시코까지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네." - P60

"꿈같겠지만"

"꿈같은 일은 아니네" - P62

‘아버지나 숙부에 순종했다는 것뿐이다. 무슨 일에든 거스르지 않고 농민들처럼 인내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재능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이시다 님은 인내심 강한 그 성격을 높이 사주었는지도 모른다.‘ - P65

신학생 때부터 그는 잘 때 자신의 손목을 묶고 눕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건강한 몸을 덮쳐오는 강렬한 성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평생 포기한다고 생각한 성욕이 젊었을 때만큼 그를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언제 날뛸지 모르는 말을 묶듯이 선교사는 혼자 밤 기도를 마치고 바닥에 막대기처럼 눕기 전에 손목을 끈으로 묶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 P71

사무라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숙부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숙부의 염두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잃어버린 땅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땅을 다시 손에 쥐는 것만이 숙부의 사는 보람인 것이다. 하지만 사무라이 자신은 조금 전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와 새로운 장소를 얻어 그곳으로 옮겨갈 마음이 별로 없었다. 이 골짜기에서 이대로 살다가 이대로 죽고 싶었다. - P79

화창하다. 골짜기는 이미 봄이다. 잡목림에는 하얀 꽃이 피고 밭에서는 종다리가 울고 있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볼수 없는 이 광경을 잊지 않으려고 사무라이는 말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P92

5월 5일 오지카의 작은 항인 쓰키노우라를 출항했다. 일본인들이 ‘무쓰마루‘라 칭하고 스페인 선원들이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호라 부르는 이 갤리언선은 차가운 태평양을, 북동쪽을 향해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다. - P99

앞으로 내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사절들의 이름을 적어두자. 니시 규스케, 다나카다로자에몬, 마쓰키 주사쿠, 하세쿠라 로쿠에몬, 이 네 명이다. - P101

나는 두 달이나 이어질 이 배 여행을 신부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이 염려되었다. 스페인인 선원들을 위해 식당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는데 일본인들은 한 명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행복의 의미란 현세의 이익을 얻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일본인은 현세의 모든 이익을ㅡ부를 얻는 것,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병이 낫는 것ㅡ목적으로 한 종교라면 달려들지만, 초자연적인 것과 영원에 대해서는 전혀 무감각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 P107

사무라이는 현기증이 났다. 이마를 때리는 바람에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동쪽도 파도가 미쳐 날뛰는 바다. 서쪽도 파도가 싸우는 바다. 남쪽도 북쪽도 보이는 거라고는 바다뿐, 난생처음 사무라이는 바다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알았다. 그 바다를 앞에 두고 있으니 그가 살던 골짜기는 한 알의 겨자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P109

종교에서 현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본인. 그들을 볼때마다 나는 그 나라에는 그리스도교처럼 영원이라든가 영혼의 구제를 찾는 진정한 종교는 생겨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신심과 우리 그리스도교도가 신앙이라 부르는 것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거리가 있다. - P122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한테 펠라스코 님은 만만찮은 책사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사가 만 리의 파도를 넘어 일본에까지 와서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벨라스코 님은 정말 하느님이 있다고 믿습니까? 왜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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