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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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51 리뷰를 쓰려고 노력했으나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고독을 경험했기에 이런 시를 썼을까? 소설을 읽는 것처럼 한편 한편의 작품을 멈춤없이 읽었다. "아무도 모른다, 저 홀로 없어진 구름은 처음부터 창문의 것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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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01 22: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형도의 시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새파랑님
잎 속의 검은 입
자주 펼쳐 보게 됨요 ^ㅅ^

새파랑 2022-04-01 22:55   좋아요 3 | URL
앞으로 이 책은 항상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려고 합니다 ㅋ 너무 좋아요 ^^

mini74 2022-04-01 22: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외웠던 시가 기형도님 시네요 ㅎㅎ

새파랑 2022-04-01 22:55   좋아요 4 | URL
전 머리가 나빠서 외우지는 못할거 같아요. 그때그때 꺼내봐야 겠습니다~! 역시 자발적인 미니님~!!

mini74 2022-04-01 23:08   좋아요 4 | URL
ㅎㅎ무슨 그런 겸손한 말씀을요 ㅋ저도 지금은 ㅠㅠ 20대 젊은 시절 이야기지요 ~ 행복한 금욜밤 보내세요 새파랑님 *^^*

청아 2022-04-01 2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는 리뷰 쓰기 어렵죠!😅 그래도 한편 한편 놓지 못하고 읽어내셨다면 충분히 기형도 시인에게 빠져드신것 같아요.^^*

새파랑 2022-04-01 23:00   좋아요 4 | URL
시는 리뷰쓰기 어려운거 같아요 😅 게다가 오늘 퇴근하고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아직 일이 안끝나서 ㅎㅎ 오늘부터 저의 원픽 시인은 기형도 시인입니다 ^^

그레이스 2022-04-01 23: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잎속의 검은잎 시도 좋았고, 그의 죽음도 너무 허망하고,,, 그 어머님이 아들의 시를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셨다는 이야기도 넘 가슴아프고,,, 제 시간 어딘가에 자국을 남긴 시인이죠

새파랑 2022-04-01 23:11   좋아요 4 | URL
이번 기회에 기형도 시인에 대해 알아봐야 할거 같아요. 전 그전까지 몰랐어요 ㅜㅜ 너무 젊은 나이에 떠나셨더라구요 ㅜㅜ

페넬로페 2022-04-01 23: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형도시인은 우리 세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어요. 근데 시는 언제나 읽기 어려워요. 시로 리뷰쓰기는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4-01 23:46   좋아요 4 | URL
저는 왜 잘 모르고 지냈을까요 😅 지금이라도 알아서 너무 좋습니다 ^^ 기형도 시인의 그 분위기가 특히 좋더라구요~!!

독서괭 2022-04-02 0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게 좋으셨다니! 입 속의 검은 잎은 있는데 몇편만 발췌독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읽어볼까 싶어지네요~

새파랑 2022-04-02 06:15   좋아요 3 | URL
제가 어두운(?) 분위기를 많이 좋아하다보니 딱 맞더라구요 ㅋ 꼭 다시 읽어보세요~!!

희선 2022-04-02 0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형도 시인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네요 더 살았다면 시도 많이 썼을 텐데...


희선

새파랑 2022-04-02 06:19   좋아요 2 | URL
요절하신 분들이 더 오래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거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게요. 오래 사셨더라면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셨을텐데 아쉽습니다ㅜㅜ

han22598 2022-04-02 0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고독해야 시를 쓸 수 있을까?
고독을 선택할 것인가...시를 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선택해도. 시는 여전히 읽기도 쓰는 건 어려운 일일 듯 해요 ㅎㅎ
기형도. 기억해두겠습니다.

새파랑 2022-04-02 06:21   좋아요 2 | URL
시인의 감성은 확실히 다른 측면이 있더라구요 ㅎ 저도 시를 읽는걸 어려워 하는데 이 시집은 정말 좋았습니다. han님하고 잘 맞을거 같아요 ^^

햇살과함께 2022-04-02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친구가 생일선물로 기형도 전집을 선물해서 처음 알게되었어요. 새파랑님 글 보고 다시 꺼내서 몇편 읽어보아도 좋네요!!

새파랑 2022-04-02 08:56   좋아요 3 | URL
멋진 선물을 받으셨군요~! 역시 선물은 책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 ^^ 좋은 작품은 시대를 거스르는거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2-04-02 09:21   좋아요 3 | URL
그 친구가 남긴 유일한(?) 좋은 기억? ㅋㅋ 예전엔 책 선물하면서 간지에 메모하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 그 책 다시 보면 한번씩 추억에 잠기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4-02 09:29   좋아요 3 | URL
간지에 메모라니 왠지 낭만이 있네요 ~ 그럼 중고도 못팔겠군요 ㅋ 저도 그런 책이 아주 조금 있는데 더 애정이 가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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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31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달력의 문장도 좋네요.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가끔은 좋은 일들만 떠올라서 채색하게 되는 일도 없진 않을 거예요. 새파랑님, 오늘은 3월 마지막 날입니다. 4월에도 건강하고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4-01 11:06   좋아요 1 | URL
지나고 나면 다 쉽게 느껴지는데 당시에는 꼭 그렇지 않더라구요 ㅎㅎ 이제 4월 입니다. 즐거운 4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2-04-0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필사도 여전히 꾸준하게 하고 계셨네요.
좋은 문장이 가슴속에 꾸욱 새겨질 것 같습니다.^^
4월에도 충만한 독서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새파랑님.^^

새파랑 2022-04-01 16:32   좋아요 1 | URL
필사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긴 하지만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지님도 즐거운 4월 독서 하세요 ^^
 

이렇게 몰입하면서 감명깊게 읽은 시집은 처음이었다. 평생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시집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 한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몸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아무도 모른다, 오직 자신만이 홀로 즐겼을 생각
끝끝내 들키지 않았을 은밀한 성욕과 슬픔
어느 한때 분명 쓸모가 있었을 저 어깨의 근육

아무도 모른다, 저 홀로 없어진 구름은
처음부터 창문의 것이 아니었으니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 넓고 큰 방에서 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괴롭힐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 된다.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깨지 못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 미리 깨어 있는 꿈은 비극이다.
포도 위에 고딕으로 반사되는 발자국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희미한 음향을
듣는가 자네 아직도 꿈꾸며,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희망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들 청춘이란 말없음표 몇 개로 묶어둔 모포처럼 개어둔 몇 장 슬픔 아니던가
많은 기다림의 직립과 살아 있지 않음들 또한 땅에 묻히리라 잊혀지리라
가끔씩 낯선 시간 속에서 뒤늦게 폭발하는 불발탄의 기억에 매운 눈물 흘리며
언젠가는 생을 낙오하는 조준선 위로 떠오르는 몇 소절 누군가의 후렴에 눈살 찌푸리며 따라 일어설 추억들이란 간직할 것이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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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30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다 하셔서 누구지? 했는데, 기형도 시집이었네요.
새파랑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3-31 06:49   좋아요 1 | URL
전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정말 좋네요 ㅋ 시가 이렇게 좋다는데 대해 깜짝 놀랐습니다 ^^

모나리자 2022-04-01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장들이 가득하네요.
너무 빨리 떠나 시인.. 지금도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는데 살아 생전에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좋은 시는 독자들이 알아보나 봅니다.
저도 기형도 시인의 시집 읽어봐야겠네요.^^

새파랑 2022-04-01 16:30   좋아요 1 | URL
제가 시집을 잘 못읽는데 이 시집은 정말 좋더라구요 ㅋ 간만에 성공한 시집이었어요~!@
 
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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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50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젊은 시절의 작가가 독일에 대한 원망 보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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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3-30 10: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 문장 가볍게 넘겼었는데 지금 읽어보고 이해했네요. 이 책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문장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100자평의 힘ㅎㅎ ^^*

새파랑 2022-03-30 10:07   좋아요 4 | URL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백자평으로 썼어요. 책을 읽자마자 리뷰를 써야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전 이 문장을 미니님 리뷰 보고 너무 인상깊어서 이 책을 읽었어요 ^^

그레이스 2022-03-31 07:47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문장 좋네요
저는 읽자마자 바로 리뷰 못써요 😢

새파랑 2022-03-31 10:22   좋아요 1 | URL
읽은책은 다 리뷰를 쓰려고 하다 보니까 시간이 쫌만 지나면 리뷰쓸께 쌓이더라구요 😅

mini74 2022-03-30 1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0자평이 이렇게 완벽할수가 ㅎㅎ 어떤 문장을 만나고 싶어 책을 읽는다는거 왜 이리 낭만적으로 느껴지는지 ㅎㅎ 새파랑님 👍

새파랑 2022-03-30 11:00   좋아요 4 | URL
이게 다 미니님의 리뷰 때문입니다~! 저 문장이 너무 좋았어요 ^^

페넬로페 2022-03-30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유가 있다면 운명은 없다!
좋은 말이고 새겨야 할 문장 입니다^^

새파랑 2022-03-30 12:24   좋아요 5 | URL
저 문장 너무 좋았어요 ㅋ 앞으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3-31 1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문장 캘리그라피 책갈피로 만들어 코팅했어요. 언제 기회되면 보여드릴게요😉

새파랑 2022-03-31 10:23   좋아요 4 | URL
와우 ㅋ 쿨캣님 캘리그라피도 하시는군요. 너무 멋지십니다 ^^ 구경하고 싶어요~!!

coolcat329 2022-03-31 10:32   좋아요 3 | URL
아니 제가 한 건 아니구요. 동네 도서관에서 해줬습니다. ㅋㅋ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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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49

하루키 좋아하나요?

(봄날의 곰을 좋아하나요를 변형해 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두명의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난 "무라카미 하루키"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겠다. 만약 한명의 작가를 꼭 꼽아야 한다면? 그건 불가능 하다. 그때는 차라리 "필립 로스"라고 해야겠다.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일단 가장 부담없이 아무 책이나 꼽아서 읽을 수 있는 작가는 "하루키"가 확실하다. 이번주에 멀리 갈 일이 있어서 가방속에 넣고 나갈 세권의 책을 골랐는데, 그 중 하나가 "하루키"의 <반딧불이>였다. 특별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루키"의 작품이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까지 이 책을 두번은 읽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드는데, 그럼 이번이 삼독인 작품이다.





<반딧불이>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역시 가장 좋은 단편은  표제작인 <반딧불이>이다. 이 단편은 "하루키"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노르웨이 숲>의 초창기 단편 버젼이다. <노르웨이 숲>과 아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단편만의 임팩트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부자연스러우리만큼 투명했다. 그녀의 눈이 이렇게 투명하다는 것을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조금 신비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투명감이었다. 마치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다.]  P.21



<반딧불이>에서 '반딧불이'는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하루키"는 왜 갑자기 '반딧불이'를 등장시킨 걸까? 아마 결코 닿을 수 없는,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반딧불이'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눈을 말끄러미 바라볼 때 드는 느낌과도 같은,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런 기분을 어디로 가져갈수도, 어디에다 넣어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 걸칠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내 귀까지 닿지 않았다.]  P.42





그 다음으로 좋은 단편은 <헛간을 태우다> 이다. <헛간을 태우다>는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과 동일한 제목인데,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내가 아직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을 태우다>를 안읽어봐서 어떤면에서 다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미국식 헛간과 일본식 헛간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아직 한편밖에 안읽어 봤는데(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이번 기회에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어봐야 겠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나는 기혼이었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니 가정이니 수입이니 하는 것은 발 크기며 목소리 톤이며 손톱 모양과 같이 순수하게 선천적인 것이라고 믿는듯 했다. 요컨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P.51



<헛간을 태우다>를 다 읽고 나서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그녀의 남자친구)가 마지막으로 태운 헛간은 어느곳에 위치한 헛간이었을까? 그가 태운건 헛간이 아니라 여자친구인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위기가 왠지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다섯 개의 헛간 앞을 달린다. 우리집 근처의 헛간은 여전히 한 곳도 불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헛간이 탔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또 12월이 오고, 겨울새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나는 불에 타 허물어지는 헛간을 생각한다.]  P.80





나머지 네편의 단편은 나에겐 재미있었지만, 위에 소개한 두 작품에 비해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하루키"의 필력과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작가가 '장님 버드나무'나 '코끼리 공장' 같은 것을 소재로 글을 쓸수 있을까? 이래서 "하루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호불호가 극명히 나눠지긴 하겠지만.


하루키 너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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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3-30 0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가 참 작품을 많이 썼네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하루키옹이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헛간을 태우다~~
두 작품 비교해보고 싶네요^^

새파랑 2022-03-30 06:17   좋아요 4 | URL
하루키 작품을 다 모으고 싶은데 너무 많아서 못모으겠어요. 출판사도 다양하고 ㅋ <헛간을 태우다> 요건 <버닝> 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도 하던데 전 아직 못봤어요 😅

희선 2022-03-30 01: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작가가 많으니 한사람만 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두사람도... 작가보다 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건 작가도 좋아하는 걸지... 다른 단편은 봤는데 여기 실린 단편은 못 봤네요 하루키 상상력을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2-03-30 06:19   좋아요 4 | URL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에요. 희선님은 일본문학 좋아하시니까 이 책도 분명 좋아하실거 같아요 ^^ 좋아하는 한가지만을 꼽는건 어렵습니다~!!

독서괭 2022-03-30 07: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하루키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제 느낌으로는 결이 많이 달라 보이는데, 이 둘을 꼽으시니 흥미롭습니다!
전 하루키는 소설 두 권 읽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이네요.

새파랑 2022-03-30 08:01   좋아요 5 | URL
갠적으로는 에세이 보다는 장편 소설을 추천합니다 ^^ 전 소설이 더 좋더라구요 ㅋ

거리의화가 2022-03-30 09: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삼독한다는 건 역시 새파랑님께 의미있는 책이여서겠죠. 저는 하루키 책이 어렵더라구요. 오히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더 저에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주 날씨가 참 좋습니다^^ 좋은 날 책과 함께 하시는 길이 즐거울 듯해요. 저도 떠납니다^^ㅎㅎ

새파랑 2022-03-30 09:37   좋아요 4 | URL
도스토엡스키가 전 더 어렵던데 ㅋ 드디어 여행을 떠나시는군요 ^^ 책과 함께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3-30 09: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저랑 취향이 같으시군요!
저도 하루키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좋아합니다^^

새파랑 2022-03-30 10:08   좋아요 4 | URL
역시 같은 취향이시군요 ^^ 일단 믿고 읽는 두 작가입니다~! 전 자매품 체호프, 필립 로스, 소세키도 있어요 😆

청아 2022-03-30 09: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서 두 작품이 가장 좋았는데 반갑네요ㅋㅋㅋ게다가 삼독이시라니 역시 새파랑님은 진정한 하루키 마니아!!👍 발췌문 읽어보니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영화를 먼저 봤는데 역시 소설이 더 재밌어서 놀랐던거 같아요.^^*

새파랑 2022-03-30 10:11   좋아요 4 | URL
역시 미미님도 저랑 같은 취향 이시군요~!! 영화를 벌써 보셨군요 ㅋ 그때 유명했던거 같은데 전 볼 생각을 못했어요 😅

전 영화보단 소설파~!!

mini74 2022-03-30 11: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네! 네 ! 하루키 무진장 좋아합니다 ㅎㅎㅎ 저도 헛간을 태우다 좋아해요. 근데 저는 하루키 에세이에 자꾸 손이 가더라고요. 은근히 웃긴거 같아요 작가님 ㅋㅋ

새파랑 2022-03-30 11:05   좋아요 5 | URL
미니님은 역시 유머가 풍부하셔서 재미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군요 ㅋ 전 좀 비극적인걸 좋아해서 에세이보다는 소설? 😅

stella.K 2022-03-30 11: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독자는 작가 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둘을 서로 부딪혀 놓고 최후엔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는
간신배 같은 전략!
무덤에서 도 슨상님이 다시 일어나시지 않을까요?ㅋㅋㅋ
하루키는 저에겐 참 묘한 작가죠. 가까이 하기엔 넘 멀고
멀다고 하기엔 애매한. 한마디로 확 좋아할 수 없는 작가랍니다.ㅠ

새파랑 2022-03-30 12:01   좋아요 5 | URL
하루키도 호불호가 크더라구요 ㅋ 그래도 최근에 가장 많이 읽은게 필립 로스여서 차선책으로 선택했습니다 ^^ 좋아하는 작가가 많아서 큰일이에요 ㅎㅎ

라로 2022-03-30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을 쓰는 하루키를 제외하면 다 좋아해요. 하루키 소설은 제게 잘 안 맞더라구요. 매번 실패. 하지만 수필이나 음악 등등은 매우 좋습니다.^^

새파랑 2022-03-30 17:38   좋아요 3 | URL
저랑 반대시군요 ㅋ 전 하루키 소설파 입니다~!! 이번 LP책 읽는데 전 읽기 힘든거 같아요 ㅋ 팬심으로 꾸역꾸역 읽는 중입니다 😅

레삭매냐 2022-03-30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춘수쌤 팬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읽고
있답니다.

그래도 역시나 팬은 아니
라고 말하고 싶습니닷!!! ㅋㅋ

새파랑 2022-03-30 17:39   좋아요 3 | URL
책은 다 좋아하시는 레삭매냐님은 진정 책쟁이가 맞는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2-03-31 0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라색 병, 노란색 뚜껑과 반딧불이 뭔가 색이 전하는 의미가 있을듯요^^

새파랑 2022-03-31 10:24   좋아요 2 | URL
뭔가 복분자(?) 병 같은 느낌이 드는데 ㅋ 하루키가 보라색을 좋아해서 그럴까요? 제가 한번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